정세현의 통일토크 - 남북관계 현장 30년: 이론과 실제
정세현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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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세현!! 그의 이름은 외교분야의 달인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팟케스트 벙커1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특강을 들었을때, 그의 내공에 자못 놀랐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시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통일부 장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내공을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다가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급격히 화해무드로 접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살펴보고 이를 정세현의 탁월한 식견으로 그 맥락을 파악해보고 싶어졌다. 그의 식견을 느껴보자!

 

1. 우리도 변하듯, 북한도 변해왔다. 북한을 바로 알자!!

  언론에서 현실 정세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진보적인 모습의 정세현 전장관! 그는 스스로 '반공강사'였다고 말한다. 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의 한마디 논평도 그 곳에 있는 '저의'를 분석하고, 한국 정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강연을 했던 그가! 가장 진보적이고 식견있는 인사로 변신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흔히 보아왔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으로 변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정세현은 북한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북한의 6.25 때의 북한이 아니고, 5.16 직후의 북한이 아니며, 1970년대 북한도, 1990년대 북한도 지금은 없다고 단언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으로 3대가 바뀌었는데, 어찌 북한에 변화가 없었으랴! 우리는 투철한 반공교육으로 인해서, 북한은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북한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냈다. 북한과 대화하려면, 변화하는 북한을 직시해야한다. 그래야 '지피(知彼) 가 가능한 것이다. 정세현은 우리가 범하는 가장 전형적인 오류를 지적해주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왜? 김일성 우상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권력욕에 의해서 독재를 정당화하고, 권력 세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세현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소련의 스탈린 우상화, 중국의 마오쩌둥 우상화와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는 맥을 같이한다. 우상화를 통해서 모아진 힘을 경제 발전에 투입한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거짓말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진실이락 믿는다. '민족', '종교' 등의 각종 이데올로기를 진실이라 믿고,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그 조직을 위해서 싸운다. '스탈린 우상화'를 비롯한, '김일성 우상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이를 소련과 북한의 인민이 믿도록하고, 이렇게 해서 모아진 힘을 경제 발전에 투입했고, 스탈린 시기, 김일성 시기에 경제 발전이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분석한다. 정세현이 '우상화'를 분석한 방식은 유발 하라리가 '상상의 관념'을 설명했을 때의 논리와 그 구조가 같았다. 현실을 단순히 '독재', '세습'이라는 논리로 바라본다면 피상적인 인식밖에는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독재자는 행복할까? 독재자는 행복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 한다. 왜일까? 절대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을 해야하며,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치밀해야한다. 2017년 10월 4일 부터 시작된,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의 마무리 환송 오찬에서 정세현은 김정일에게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을 건의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단번에 '실무자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말합디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남측에서 올림픽 단일팀을 제의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전보고를 받고, 꼼꼼히 이를 살피고 준비했기에 가능한 즉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두개의 한국'에서 보았던 김일성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김영삼정권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직접 준비하던 김일성이 과로로 인해서 쓰러졌다는 사실은 독재자의 기본 요건이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챙기며 권력 누수를 막아야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다. 어디 김일성 뿐인가? 제3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김정은이 보여준 모습에서도 치밀한 독재자의 모습이 보여진다. 세심한 부분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연장자로 배려하고, 언론에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담이 끝나고 흘러나온 언론의 기사 중에서는, 만찬장에 홍준표 자유 한국당 대표가 초청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북측에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홍준표가 김정은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허허 웃어 넘기면서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만일 김정은과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북 정상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고한다. 정말 그들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측의 미녀 응원단들이 버스에서 갑자기 내렸다. 그녀들은 울면서 비를 맞고 있는 김정일의 플래카드를 걷었다. 장군님이 비를 맞는다며.....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세뇌교육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세뇌교육과 김일성 우상화가 미녀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미녀 응원단들이 회초리를 맞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세현은 그녀들이 회초리를 맞는 이유를 차창 밖을 몰래 보았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한국의 모습을 보았던 그녀들이 회초리를 맞았을 정도면, 비를 맞는 김정일 사진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이후, 북한에 돌아가서는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김정일의 사진을 들고 울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슬픈 현실을 다시금 엿보게 되었다.

 

2. 북한의 협상 전술

  김영삼 정부시기, 북한의 외교술을 신기에 가깝다라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시키는 '통미봉남'정책에 당시의 남한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약소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외교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세치의 혀로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으며, 강동 6주라는 땅까지 얻었던 고려의 서희를 예로들지 않더라도 외교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협상술에는 어떤 것이 있고, 이를 이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할?

  첫째, 굴레에 쓰지 말자! 북한이 자주 쓰는 원칙이 원칙의 굴레이다. 저자 정세현은 7.4남북 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라는 원칙을 받아들인 것은 원칙의 굴레에 씌워진 결과를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자주를 들먹이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말하는 평화와는 다르다. 남한에서 친북한적 정권이 정권을 잡아서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일한다는 논리가 숨어있다고 한다. 자주, 평화라는 원칙 뿐만 아니라, 회담 초기에 일반적인 원칙을 말하고 이에 남한이 동의하면, 이 원칙을 빌미로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으려하는 것이 북한의 협상술이다. 이 원칙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야 우리가 원하는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적의 무기를 이용해서 적을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자주통일! 평화통일!을 이용해서, 역으로 북한에게 굴레를 씌울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의 협상술을 역이용하는 협상술을 개발한다면, 우리의 협상 능력은 배가될 것이다.

  둘째, 시한의 굴레에 씌이지 말자! 시한을 정해 놓고 그때까지 협상을 타결해야만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한다. 이것은 북한만이 자주쓰는 전술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본군' 위안부 회담이 졸속으로 열렸다. 너무도 어이없는 졸속 회담에 많은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센 저항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어찌 정부가 우리를 핍박하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졸속 타결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외교전문가는, 시한의 굴레에 씌워졌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미국의 오바마에게 '올해말'까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타결하겠다고 말했고, 결국 시한의 굴레 속에서 아베정권은 쉽게 타결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많은 것을 양보하는 어이없는 타결이 이뤄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에게로 전가되었다. 무능한 외교! 무능한 협상력이 어떠한 결과를 빚어내는지 우리는 피부로 느꼈다.

  셋째, 내가 놓은 덧에 내가 걸려들지 말자!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들었는가? 그런데, 이산가족의 숫자가 천만일까? 정세현 전통일부장관은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은 대북 압박용, 대내 홍보 차원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정확한 조사를 거쳐 만들어진 숫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북의 천만 이산가족이 100명씩 만나면 언제 다만나겠는가?'라는 비판 기사가 종종 신문지상에 떠돈다. 대북 압박용, 대내 홍보용으로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또한, 북을 올가 매려고 만든 용어가 때로는 정부를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음에 더욱 놀랍다.

  넷째, 북한의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해라! 북한과 협상을 하면서, 북한이 남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쏜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불평은 타당할까? 물론 타당한 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관심사! 저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를 통해서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체제 보장이 된다면,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 이유가 있는가?'라는 북측의 말을 곱씹어보아야한다. 체제 안정을 위해서 강력한 협상카드를 만들기 위해서 핵을 개발하고, 이를 운반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하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다. '체제 보장'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문재인 정부는 잘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을 이용해서 '한반도 운전자'가 되어 남북이 만나고, 북미를 연결시켜주었다. 물론, 미국의 트럼프가 미국 패권주의를 포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외교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만약 트럼프가,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 패권주의를 계승했다면, 문재인 정부도 외교력 발휘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고, 북한의 주된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해서 외교력을 발휘할 때만이 좋은 외교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섯째,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도덕경에 이런말이 있다. 거두어들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베풀어야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하고, 장차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일으켜세워야한다.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야한다.(장욕흡지將欲歙之에 필고장지必固張之하고, 장욕약지將欲弱之에 필고강지必固强之하고 장욕폐지將欲廢之에 필고흥지必固興之하고 장욕탈지將欲奪之에 필고여지必固與之하니) 도덕경 제36장에 나와 있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얼어붙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이보다 좋은 전략이 없다. 기존의 보수 정권에서는 If ~ then 방식의 상호주의 외교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남북관계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를 대북 포용정책으로 변경하고, 그들에게 쌀과 비료를 주었다. 그러자 북한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적힌 쌀자루를 보면서 남한에 대해서 친근감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의 평화와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진보정권들이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베풀었기 때문이다. 값진 평화와 귀중한 통일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정세현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섯째, 철저한 준비와 돌파력을 갖춰라! 외교를 비롯한 각종 협상에서 철저한 준비와 돌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의 남북관계 성과가 있었던 것은 과거 진보정권이 탁월한 준비와 돌파력이 있었기 때문다. 가장 놀라운 것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 모의 남북 정상회담을 무려 4시간이나 갖고 있었고, 정세현은 북측 대표역할을 맡아서, 남측에서 답변하기 힘든,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해서 말하면서 공략해들어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참모진이 준비한 자료를 보지도 않고 10분 이상 답변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나이가 76세였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명석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해서 놀랍지 않지만, 나이가 76세인데도 불구하고 명석한 두뇌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비결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해오던 그의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진보정권의 돌파력도 대단했다. 금강산 관광선 출항일자를 결정할때, 정세현 장관은 국제정세를 생각해서 미루려했으나, 외교안보수석은 APEC 정상들이 모이는 11월 18일을 출항일로 잡았다. 많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클린턴이 축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돌파력이 없었던들,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3. 통일의 필요성과 교훈

  어느 택시기사가 '남한과 북한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것 같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좋은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것이다.'라고 장담했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던 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며, 만약 핵발전소에 스커드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한반도는 누구도 살수 없는 땅이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놀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주변에는 어리석은 택시기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스타크래프트나 워게임 처럼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폭비용을 계산한적이 있다. 기간은 단3일, 인명피해 150만명, 전비 1000억 달러, 복구기가 10년이상, 복구비용 3000억 달러이상이 든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원로'라는 인간들의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외국가서 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말을 한 것일까? 어찌 전쟁의 비극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전쟁을 두려워해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절실히 할수 있지 않은가?

  박근혜 지지 집회에는 태극기 뿐만 아니라, 성조기를 들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미국이 우리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볼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정세현은 미국은 '처 삼촌 벌초하듯이' 우리문제를 다룬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보수파여! 그대들이 그토록 믿고 있는 미국은 한국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국문제는 그들의 수많은 의제중에 하나일 뿐이다. 돈가진자가 자녀를 잘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이 있는자라야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다. 한국문제에 대해서 사랑과 애정이 가장 많은 자는 한국인이다. 결코 미국일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국익을 위해서 한국문제를 테이불에 올려 놓고 협상을 하며, 자국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정과 애정, 관심이 있는 자는 바로 우리뿐이다.

  그렇다면, 우선 왜? 통일을 해야하는지 알아보자. 2010년 한국에 왔던 GE-인터네날의 베칼리(Beccalli) 회장은 그의 연설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스위치가 되어 있는 한국이 살 길은기술, 세계화, 북한 이렇게 세가지다.'라고 말했다. 통일의 필요성은 북한에게만 절실한 것이 아니다. 인구절벽! 제조업 절벽!에 휩싸여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돌파구는 통일인 것이다. 특히 남북 교역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떠올려보자. 물론, 이명박 정부까지의 통계를 보았을 때이다. 이책이 이명박 정부 까지의 데이터만 있기 때문에 이를 양해바란다. 대북지원 규모는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많았으나, 남북은 반입 반출량은 보수정권인 이명받 정권시기에 가장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 사실은 남북의 교역이 서로에게 많은 이익이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통일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다. 또한, 반드시 윈-윈 게임으로 만들어야한다.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독재자들의 장기게임에 국민이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1972년 12월 27일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남한에서는 유신헌법에 의해서 1972년 12월 23일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72년 12월 27일에 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같은날!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김일성은 주석에 취임한다. 7.4 남북 공동성명에 싸인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들은 국민의 염원인 통일을 자신의 독재에 이용하며, 날짜까지 맞추며 독재행보를 했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있어야 되겠는가?

  그럼, 통일은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정세현은 남북이 서로를 용납하는 사용성, 서로 융합하는 상융성, 서로 보충하는 상보성이 갖춰져야 통일을 논의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정치적인 통일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옷도 벗지 않고 목욕을 하려는 미련한 짓이다. 먼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하나로 융합하려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때만이 통일을 논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북한을 떠안아야할까? 정세현은 바로 그 통일비용을 '일본'이 의뢰하지도 않았는데, 계산했다는 점이다. 왜? 일본이 먼저 통일비용을 계산했는가? 일본은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일본 극우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경제가 살아닌다는 망발도 서슴치 않고 말한다. 결국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계산은 일본의 통일 방해 공작인 셈이다.

  통일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동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다. 통일이 정치 논리에 빠지지 않아야했으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동독과 서독의 화폐통합을 1:1로 해버렸다. 실정은 4:1인데, 이를 1:1로 교환했으니, 동독의 인건비는 상승했고 동독인들을 고용한다고 해서 이익을 보는 기업은 없어졌다. 또한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 출신 주민의 동독 땅소유를 인정했다. 결국, 땅값이 올라가고 그로인해서 동독에는 비싼 값을 치루고 공장을 세울 기업이 없게 된다. 동독의 실업률은 높아지고, 동서독의 갈등은 높아졌다. 동독에서 배우자. 그들을 반면교사로 활용한다면 통일비용은 줄어들고, 통일의 씨너지는 높아질 것이다.

 

4. '두개의 한국', '한국사'교과서와 비교

  이 책은 '두개의 한국'이라는 책과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책을 비교하게 된다. '대구의 한국'이 밖에서본 남북한의 대립과 화해의 역사라면, '정세현의 통일토크'는 안에서 남북관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땀이 담긴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두개의 한국'에서는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때 남북 정상회담을 시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를 현장성이 강한 이 책에서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에서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은 한마디 설명도 없었으며, 1990년대 노태우 정부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노력은 북한의 화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나온 해프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두개의 한국'이 밖에서 바라본 것이기에, '정세현의 통일 토크'라는 책의 현장성과 정확성을 갖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시기에 남북정상회담 준비설에 관심이 가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우리 교과서에서의 서술내용과 다른 내용도 있다. 남북 조절위원회가 중단된 이율르 교과서에서는 팀스피릿 훈련을 빌미로 북한이 중단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정세현은 북한이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빌미로 '비도덕적인 정권'과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중단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아마도 둘다일듯 싶다. 남북 조절위원회 중단 이유가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1983년 아웅산 테러를 기억하는가?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이었던 나는 방송을 통해서, 테러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수업도중 묵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1984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23회 LA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구성 협의가 있었다. 정세현은 북한에 면죄부를 준다며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협의를 받아들였다. 정세현은 이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책에서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협상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두개의 한국'의 저자 돈 오퍼도퍼의 분석이 옳은 듯 싶다. 밖에서 본 시각이, 안에서본 시각보다 정확한 경우도 있다. 숲안에서는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246쪽에 '20010년'이라는 오타가 있다. 이를 2010년으로 수정하길 바란다. 이러한 오타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나에게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틔이게 해주었다. 정세현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약소국에서 애국하는 길은 외교관이 되어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게 원조를 많이 받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가슴에 담고 외교학과에 진학한다. 그는 대학에서 이용희 교수로부터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국제 정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통일 문제와 관련있다. (중략) 한국에서 국제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입장이 뚜렷해야 한다.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혼동하면 안된다. 항상 '안'과'밖'을 구분하며 '내 나라'입장에서 유불리를 가릴 줄 아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이 말을 1971년 4월 18일 7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는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연설을 통해서 그 참의미를 개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참다운 외교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 김대중을 만나서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 그뒤, 노무현 정권에서도 통일부 장관이 되었으며, 지금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많은 조언을 국민에게 해주고 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살라는 계시를 받고 사는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통일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제2, 제3의 정세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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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5-18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좋은 책 리뷰 잘봤습니다. 서평이 매우 길어 어디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2003년 북한 공연단 그건 일부러 오바한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몇몇 탈북자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일반북한사람들이 지도자가 있는 그런 현수막가지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즉 쉽게말해서 2003년 북측응원단이 보였던 논리대로라면 평양 김일성광장에 있는 동상도 비못맞게 우산써야하고 비오는날 김정일 김일성 현수막도 못들고 김씨일가가 들어간 것들은 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무튼 정세현 선생이 쓴 책이다 보니 정말 읽고 싶네요. 몇달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정세현 선생께서 북에 대해 하는 얘기를 봤는데 정말 옳은 말씀만 하시더군요.

아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진정한 자유는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논하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 부터라 봅니다.

전 북한의 광신도적인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을 안하진 않지만 단순한 반북프로파간다적인 것들은 진심으로 혐오합니다. 그렇기에 전 북한을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려하지만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제 주관을 피력하면 쉽사리 종북 좌파 빨갱이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일반인들에게 까지요.

하루빨리 박정희식 반공적폐를 청산하고 억압받지 않으며 북한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논하고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나루 2018-05-18 04:52   좋아요 0 | URL
관심 갖고 꼼꼼히 읽으셨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NamGiKim 2018-05-18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례하겠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리뷰 퍼가서 제 페이스북에 공유해도 될까요?

강나루 2018-05-18 04:50   좋아요 1 | URL
네 출처만 밝힌다면 좋아요

NamGiKim 2018-05-18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처 밝히고 공유할께요.ㅎㅎ
 
두개의 한국 - 개정판
돈 오버도퍼 & 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 외 옮김 / 길산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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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두개의 한국'인가? '두개의 한국'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까?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을 이루는 흘려 넘겨서는 안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한국'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만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분단을 영구화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강대국의 시각을 이 제목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정박이 이책을 소개했을 때 부터 이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워싱턴포스트지기자로 25년을 근무한 돈 오버도퍼와 미CIA 동아시아 담당 국장이나 대북협상 수석 고문을 지낸 로버트 칼린이 썼다는 것 자체가 이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볼륨과 태극기와 인공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표지 또한 강렬했다. 분단된 '두개의 한국'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남북한의 대립을 중심축에 놓고 분단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국 한국을 '두개의 한국'으로 만드는데 일정한 책임이 있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한국의 현대사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1. 외국인이라는 한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연시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진실을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한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레이모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을 하면서 일본이 입장하자 모든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도 일본을 본받을 나라로 여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예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시각은, 과거 필리핀을 식민지배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호감이 갈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돈 오버도퍼'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 한국에 했었던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했으며, 8억 상당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고 오류를 적고 있다. 우선, 액수부터 오류이다.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했다. 무상원조는 8억이 아니라, 3억달러에 불과하며, 3~4년의 식민지배를 받은 다른 식민피해국가들이 3~4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은 반면, 우리는 36년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억달러의 무상자금을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받았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으며,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지금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서 돈 오버도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돈 오버도퍼의 잘못된 역사관은 한일관계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오류 그자체이다. 그는 한반도에 2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석기 시대가 70만년전부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린다면,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그뿐이니다. BC4세기경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한반도 북부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탄생했다고 적고 있는데, 고조선의 존재는 중국의 '관자'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성립을 AD300년 으로 적고 있으나, 신라가 BC57년,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18년에 건국되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류들이다. 외국인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길 바란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많이 인터뷰한 '돈 오버도퍼'의 인터뷰와 사람을 바라보는 탁월한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는 박정희를 청렴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물론, 박정희가 언론에 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자라온 분들은 박정희를 서민적이며 청렴한 대통령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10.26사태가 발발하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는 막걸리가 아닌, 양주를 연예인과 여대생을 들을 불러 놓고 마시다가 죽었다. 또한 청와대 박정희 집무실에서 발견되었다는 돈다발들과 '스위스 비밀계좌설'등을 토대로 볼 때, 과연 그를 청렴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군사적 경험이 부족하며, 정치경력도 짧고,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서 수완이 부족하고, 적대적 언론과 대결하려는 모습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중진국으로서 '동북아 균형자'가 되려했던 그를 '로버트 칼린'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의 시각이 아닐까? 콘돌리자 라이스의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평가한 반면, 이명박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육영수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을까? 돈 오버도퍼는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다큐멘터리에는 북한의 사주로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설명은 없다.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에도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재일동포가 벌인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남한의 커다란 일을 일방적으로 북한이 했다는 쉬운 도식으로 설명한 점은 한국사회를 깊이있게 살피지 못한 그의 한계일 것이다.  아울러,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치뤄진 15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서, 항간에 떠도는 '북풍 조작설'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

  그러나 돈 오버도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변호하는데 많은 급급한 모습이다. 이책의 저자가 미국인이기에 미국을 변호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로당 중책을 맡은 박정희의 감형에 미 대통령 군사고문관 제임스 하우스만의 역할을 강조하여 서술한 것은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좀 심각한 예를 들어보자. 5.16쿠데타 당시 '미 대사관측은 한국의 민선 정부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CIA국장 덜레스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아무일도 않앴다면 한국은 급진파가 장가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은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몰랐고, 민선정부를 지지하려 노력했다는 변명이 무너진지가 오래되었는데, 돈오버도퍼는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알지 못하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돈 오버도퍼의 노력은 박정희 정권과 12.12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극에 달한다. 미국은 좀더 민주적이고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체제 진입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나, 베트남 파병시기 미국은 국익을 앞세워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또한 12.12사태를 역전시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이 전두환 제거 계획을 세웠으로 실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에 신군부가 군병력을 파병하고 유혈진압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군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점도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고 미국의 절대선으로 한국을 인도하려했으나 한국인들이 미국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의문은 7.4남북 공동성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남한 정권을 미국과 일본으로 부터 떼어 놓고 미군 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활용했다.'라는 서술은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7.4 남북 공동성명이 통일의 3원칙을 천명한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7.4 남북 공동성명을 우리민족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통일로 다가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놓은 사건일까? 아니면, 북한의 공세에 이용당한 사건일까? 이 대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4년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은 북한이 수세적 입장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그런데, 돈 오버도퍼는 당시 언론에 발표된 표면적인 내용을 소개할 뿐, 새로 밝혀진 심도있는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개정판을 내면서도 이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를 통해서 보강하지 않은 점음 못내 아쉽다.

 

2. 외국인이기에 알 수 있었던 새로운 진실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로 25년을 일한 돈 오버도퍼와 미 CIA 분석관, 스탠포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로버트 칼린의 생생한 기록들은 이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저자들의 살아있는 기록들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장면으로 나를 인도했다.

  지난 2017년 7월  충북지역의 기록적인 물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자유한국당 소속 충북도의원으로 국외연수를 갔던 김학철 의원은 ‘국민이 레밍 같다’는 발언을 했다. 그럼, 당신은 '레밍'이 어떤 동물이며,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최초의 인물인지 아는가?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라고 불리기도 하는 설치류의 일종이다.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집단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특히 노르웨이 레밍의 경우 맹목적으로 선두를 따라가다가 레밍들이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한다.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레밍' 발언의 기원이 전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이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국민에게 실망할 수는 있으나, 국민 모두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또다른 레밍이 아닌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독재자들의 호화생활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북한은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이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는 두뇌에 해당하며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노동당은 신경계에 해당하고 균형과 중재를 담당한다. 인민은 두뇌가 내린 명령을 신경계를 통해서 전달받고 이를 이행하는 골격과 근육에 해단한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이론이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한반도의 북쪽에서 믿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남북한을 통털어 가장 강력한 독재자는 김일성이다. 김일성, 그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 키워진 채소를 먹었고, 1984년 소련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의 이동 여정에 따라 모든 열차를 운행 중지시켰다. 같은해 동독을 방문했을 때는 특별 제작한 침대가 도착하기도 했다. 503호가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거울방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침대를 가지고 다녔다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같은 조취를 취한 바 있다는 돈 오버도퍼의 짧막한 첨언이다. 지배층의 사치화 특권은 어느 사회나 있는 일반적인 일일까? 그렇다면, 서민행보를 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노무현과 문제인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1972년 60회 생일을 기념해서 김일성은 20m의 동상을 제막한다.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진 이곳은 놀랍게도 일본 천황을 경배하기 위해서 설치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천황에게 참배해던 장소가 광복된 후에 김일성을 경배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괴물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테니'라는 말을 했다. 일제가 일본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듯이, 김일성도 북한에서 우상화 되었다. 김일성은 일본 천황과 싸우며 천황과 닮아간 것일까?

  북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미국의 정보 분석결과는 충격적이다. 71~72년에 북한은 7백개 대대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10년전의 2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인구가 배나 많은 남한보다 군병력이 많으며, 26명당 1명이 현역군인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군인의 숫자는 노동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김일성과 호네커 회담에서 김일성은 농부의80%, 경공업 노동자의 90%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남자는 군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장성세라는 말이 이때 어울리는 말이다.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일까? 놀랍게도 북한은 지구상에서 미국을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중에 하나이다.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면 북한은 '북한을 핵공격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지하 벙커로 대피한다. 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자, 북한은 IAEA 핵사찰을 수용했다가, 93년 훈련을 재개하자, IAEA 사찰 거부를 경고한다. 1985년 남측의 장세동 박철언, 북한의 한시해 허담이 특사로 파견되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86년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로 좌초 되었음을 음미해본다면, 북한이 얼마나 팀스피리트 훈련을 더나가서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강한 공격적 말투 속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망명전 황장엽, 북한 외교관들과 군장성들은 사석에서 미국인들에게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며 그 필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의 모험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들로서도 강력한 미군이 안전판으로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분단체제 속에서 반미주의를 통해서 북한 주민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박정희가 핵개발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데탕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뒤이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박정희로 하여금 핵개발에 몰두하게 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토록 염려하던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사건은 놀랍게도 '코리아 게이트'사건 때문이다. 주한 미군 철수 댓가로 19억 달러상당의 군사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려 했으나,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서 미하원에서 이 계획이 통과되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들도 돈으로 매수하려했던 박정희의 추악한 모습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엄한 선생님을 학생들 중에서 존경하는 학생이 많다. 스톡홀룸 증후군!! 인질범들에게 인질이 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을 해치려했던 그들의 편이되어 인질범을 추종하는 현상을 흔히 본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이 박정희의 최측근에게서는 보였을까? 10. 26 이후 박정희를 오랫 동안 보필한 공직자에게서 진심어린 애도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돈 어버도퍼는 놀란다. 홀브룩도 '서울에서 슬픔에 젖은 눈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톡홀룸 증후군이 그의 측근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박정희는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을까? 최측근도 그를 보고 슬퍼하지 않다니...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말의 원조는 누구인지 아는가? 일베들이 하는 이런 막말의 근원이 전두환에 있었다. '학생시위 배후에 평양이 있다.'라는 말을 했고, 정보담당 장교에게 북한 위협설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광주의 시민을 두번 죽이는 이같은 일을 전두환은 서슴치않고 자행했다. 정통성이 없는 전두환은 미국으로 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김대중을 풀어주는 댓가로 백악관이 초청된다.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밥도 우리돈으로 먹고와야할 정도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레이건은 전두환을 환대했다고 한다. 더욱 올라운 사실은 1980년 11월 20일 정권 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카터가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레이건이 '대통령 각하, 저도 한국의 대통령들 처럼 시위 가담 학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으로서는 전두환을 푸대접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전두환 시기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박정희가 김일성을 왜? 만나냐며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반면에, 전두환은 88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북한과 밀사를 주고 받으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서울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려 전두환도 북측과 접촉했다. 그리고 지금의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보듯이, 스포츠 경기가 평화의 전령이 되기도 한다. 정쟁에 휩싸여 평화의 무대인 평창 올림픽을 색깔론으로 흠집을 내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로 이어진다. 1991년은 남북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노태우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캐릭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라 시와 음악을 좋아했으며, 집권시에는 북방외교를 추진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12,12 쿠데타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암튼, 남측에서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북측에서는 윤기복 조선노동당 서기가 서울에 방문했다. 만약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 돈 어버도퍼는 88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기가 펼쳐질 때, 한국인이 우방인 미국을 응원하지 않고, 소련을 응원한 것에 대단히 놀라고 있다. 88 올림픽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83년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소련에 의해서 격추되었고, 소련은 공산권국가의 맹주인데,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심때문일까? 그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어째든, 이때의 진심어린 응원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진심이 상대의 마음을 연 것이다.

 

3. 외국인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 - 북핵사태!!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은 이책의 20개장(후기 포함) 중에서 절반정도를 할애 해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이부분을 읽으면서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핵문제가 언론에 발표되고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정권 말기부터이다. 91년 비핵과 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핵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책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장기적 전략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5년마다 혹은 4년 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과 미국의 특성상, 들어서는 정권에 때라서 핵문제 풀이의 해법이 달랐고, 그에 따라서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지 못했다. 그뿐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보수와 진보 정권이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며 엇박자를 키웠다.

  김영삼 정권시기 한승주 장관이 북미회담을 미국에 제안했고, 클린턴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 직접대화를 했다. 여기에서부터 남한의 외교력 부재가 시작됐다. 북미대화를 촉구한것 자체가 한반도의 운전대를 미국에게 넘긴 중대한 일이다.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미국에 기대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어리석음은 북한의 '통미봉남정책'의 빌미가 되었다. 최소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한국의 대표가 배석하여, 회담을 남북교류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하다. 김영삼 정권의 외교 실책에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93년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김영삼 정권은 이에 격분한다. 김영삼 정권에서 북-미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비판에 김영삼을 자신의 정권에서 한 정책의 결과에 분노한다. 노태우 정권시기 북한을 고립 시키는 정책에서 북한이 자유세계와 교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며, 북방외교를 전개한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김영삼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며 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지도자의 무능과 무지가 한반도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김영삼에게도 기회는 왔다. 특사로 파견된 카터가 남북정삼회담을 제의했고, 김영삼과 김일성의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들을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은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은 김일성 사후, 공안정국을 형성해 갔으며,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쳤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기 외교적인 유능함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뒤이어 들어선 보수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기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게 된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외교전략이 바뀌어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서 외교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는 구조를 남한은 가지고 있다. 서독이 정권이 뀌어도 '동방정책'이라는 외교적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마음속에 새겨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했는가? 북핵사태를 비교적 유능하게 다뤘던 정권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라 할 수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도 94년 영변핵시설을 타격하는 무모한 정책을 검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500만명이 죽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과 주한미군 가족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에 쉽게 선제타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돈 오버도퍼는 미국이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한가지 더 제시한다.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미군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글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이후 벌어지는 일본의 우경화와 평화헌법 개정에 미국의 용인 내지 묵인이 있는 것을 아닐까?

  클린턴 행정부의 인내심있는 외교로 북핵사태는 해결 직전까지 간다. 북한은 미국이 합법국가로 북한을 승인하는 의미로 클린턴의 방문을 갈망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시절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퇴임 후에 미국인 기자를 석방하기 위해서 특사로 북한 땅을 밟는다.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민주당 정권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계속 있었다면 북핵문제는 보다 수월하게 풀려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뒤어어 들어선 부시정권은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두리운다. 부시 행정부는 구체적인 정보 없이 북-미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고, 내부경제 개혁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했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북한의 손을 잡아줄 마음이 없었다. 2004년 존루이스 교수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하고, 이후 6년간 여러차례 미국 대표단을 초청해서 현장을 방문시킨다. 핵을 무기로 미국에 부던히도 구애의 노력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제네바 합의가 파국으로 치닫지만, 미국은 이를 대체할 외교적 노력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진다. 오바마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말했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관심도, 전쟁도 아닌, 외교라는 교훈을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소련과 이라크를 대체할 악의 세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럼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한 비결이 바로,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이다. 북한은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없는 사람일 수록 자존심이 쎈 법이다. 북한을 무시하기 보다는 적당한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얻는 방법은, 북한을 상대하면서 갖추어야할 필수품으로 보인다.

  둘째, '기미'를 알아차려라! '한비자'라는 책에서도 제왕은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일을 대비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교훈은 대북관계에서도 적용된다. '특별 사찰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북한의 말을 듣고 CIA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로버트 칼린은 '기미'를 알아챘다. 북한의 '군'과 '외교부'간의 마찰이 표면화된 표현으로 해석했고, 결국 로버크 칼린의 판단은 적중했다. 북한에서 '군'과 외교부'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갈등표출은 때로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좋은 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손을 잡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유세계로 나와야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대화와 교류의 손길을 끊임 없이 내밀어야한다. 북한을 궁지로 몰 수록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아진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우리가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9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탁월한 네러티브 구성으로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다. 물론 흥미를 위해서 시간순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플래쉬백 방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때로는 사건이 뒤죽박죽 되었다는 혼란을 주기도 했다.

  로버트 칼린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해서 '한반도와 주위 관련국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문제 없는 사태로 받아들였다. (중략) 적대적인 정권이 한반도 양국에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체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도 비극이 될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두개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 분단체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일부 세력들이 우리주변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단체제의 지속은 언제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의 상존을 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두개의 한국'이 '하나의 한국'으로 바뀌기를 소망해본다.

 

ps.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어 이를 소개한다.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군중과 함께 내달렸다. 나는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 한명을 포함한 약 15명의 사람들과 어느 작은 가계로 피신했다. 한 군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마침내 그는 우리 평화봉사단원들 앞에 다가와 섰다. 그는 잠시 멈칫하고 주저하다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중략)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이마가 깊이 패여서 피가 줄줄흐르고 있었다. 그는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난입해 머리를 곤봉으로 세게 내려친 후 물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략) 대다수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공수부대원들로부터 무차별 구타를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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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NBC 해설자의 발언이 제국주의적 시각과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영미권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번영과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나루 2018-02-24 08:22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 정의를 위한 처절한 2인의 전쟁 국민 90%가 모르는 이야기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동형!! 팟캐스트 '이이제이', '문희정의 라이벌'에서 막말을 해대며 즐거운 한국사 여행을 안내했던 작가! 그 작가의 책을 만나고 싶었다. 이동형의 대표작이라면 '김대중 VS 김영삼'이 아닐까? '이이제이'를 들을 때마다 광고가 많이 나와서 한번 읽어 보고 싶어하던 책이다. 이동형이 바라본 한국현대사는 한홍구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현대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가? 책속을 들어가보자.

 

1. 따라잡기 힘든 인터넷 필법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봉춘'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인터넷에서 찾았던 기억이 난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MBC를 '마봉춘'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한홍구 교수가 '유신'이라는 책에 사용한 것임을 알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동형은 'ㅎ ㄷ ㄷ', '멍미'라는 표현을 비롯한 인터넷 용어를 무차별하게 사용한다. '멍미'는 '머니?'라는 뜻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ㅎㄷㄷ'는 무슨 뜻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잦은 괄호의 사용은 읽는 흐름을 끊어버린다. 보통 글쓰기 책에는 괄호나 주는 되도록 줄이도록 당부한다. 그런데 이동형 작가의 책에는 괄호가 난무한다. "(구린 냄새가 나는데?)"라는 표현의 경우, 문장에 녹여서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을 굳이 괄호를 써서 표현한 이유를 모르겠다.

  비문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예로 "유신을 만들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은 "유신헌법을 만들고"라고 적어야한다.

  이동형의 인터넷 필법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책읽기 초반부에는 무척이나 거슬리는 표현들이 많았다. 팟캐스트에서 하던 표현들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 놓은 듯했고, 이것은 정제된 표현들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어색하면서도 불편한 표현들이다.

 

2.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오류들

  이동형 작가의 글에는 심심치 오류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몇가지 예만 들어보자. 첫째, 장덕수는 독립운동가일까? 이동형 작가는 21쪽에서 장덕수를 독립운동가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장덕수가 독립운동가 일까? 그가 여운형을 도와 독립운동을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초반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을 '변절자'라고 부른다. 보통의 변절자들이 그렇듯이, 장덕수도 30년대 부터 친일을 하기 시작한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의 간부가 되었으며, 1939년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다. 1941년에는 일제 침략전쟁의 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과 이사, 1945년에는 국민의용대 조선총사령부 지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이런 친일행위를 한자를 그의 초반부 삶만 뚝떼어서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둘째, 장준하는 2000킬로미터의 길을 혈혈단신 걸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갔을까? 아니다. 장준하선생의 회고록 '돌배개'를 보면 약5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찾아간다. 그 동지들 중에는 김준엽도 있었다. 장준하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다가 벌어진 표현상의 오류로 보기에는 세밀함이 낮아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한가지더 지적하자, 박정희를 비판할때는 이동형 작가가 현역군인이 아니었기에 벌어진 우수은 표현도 있다. "오버로크도 마르기전'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오버로크가 잉크인가? 오버로크는 이름표를 미싱으로 박을때 쓰는 표현이다. 오버로크를 잉크라고 잘못 알고 "오버로크도 마르기"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오버는 하지 않기 바란다.

  셋째, 우리나라에 정권교체가 없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땅의 지배세력이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문학가들이 상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현실을 강하게 비판할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지만, 역사가가 혹은 역사책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역사는 엄밀성이 뒤따라야한다. 530쪽에서 '단군이 이나라를 건국한 이래 단 한번의 정권교체가 없었던 땅"이라고 적고 있지만, 이기백교수의 한국사신론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제2공화국 시기에 정권이 한번 교체된 것을 떠올린다면, 한번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틀린 표현이란 사실은 모두 알 것이다.

  넷째, '6.3사태'라는 표현은 옳은 표현일까?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부른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시겠는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표현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민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평가한 용어라면, '광주사태'라는 표현은 전두환 세력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기 위한 표현이다. 마찬가지이다.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항한 '6.3 항쟁'을 '6.3사태'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찬성하는 입장의 사람들의 망언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없다. 공자의 정명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정확한 용어의 사용이 중요함은 어린아이조차 잘 알것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그가 작가이지 역사가가 아니기에 벌어진 오류들로 보인다. 한홍구의 글쓰기와 이동형의 글쓰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동형의 글쓰기에 단점만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3.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게된 쏠쏠한 재미

   이 책을 읽으며 역사의 뒷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된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그 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역사의 파편들을 짜맞추고, 작가의 분석을 더하면서 새로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김대중이 김영삼 처럼 귀국하지 않고, 해외에 머물렀던 것은 김대중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과거 그러한 비난을 종종들었고, 이에 대해서 일면 수긍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영삼이 당당히 귀국하여 가택연금을 받으면서, 그는 반유신투쟁을 전혀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서 김대중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반유신 투쟁을 전개한다.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된 계기가 바로 이시기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벌인 반유신 투쟁 때문이다. 김영삼은 유시민의 표현처럼 협객의 멋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실리를 취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서 영리한 김대중은 비겁해보이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반유신투쟁을 했다. 박정희에게 김영삼 보다 김대중이 더 미워보였던 이유를 알만하다.

  둘째, 서석재가 술김에 터트린 노태우 비자금은 진정 실수였을까?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를 역사의 심판에 맞기자며 처벌하지 않다가, 갑자기 노태우 비자금 문제가 터지자,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대의 앞에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김영삼은 왜? 돌변했을까? 매끄러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동형은 나름의 분석으로 항간에 떠돌았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것이 김영삼의 일련의 기획이라는 내용이다.(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 보시라- 이동형 작가가 많이 쓰는 괄호를 한번 흉내내봤다.) 노태우 비자금 증거를 국회에서 제시해서 일약 스타가된 박계동이 끝내 한나라당으로 간 것도 이동형의 설명을 듣고보면, 이해가 무척 쉬웠다.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그사람에게 이미 그러한 싹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셋째,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하고 왜? 번복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욕심 때문이라 말한다. 물론 대통령 욕심이 없는 정치인이 있을까? 그것말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동형은 한겨레신문 이터뷰를 근거로 제시하며, 김영삼의 박대가 김대중의 복귀를 재촉했다고 주장한다. 대학강연을 하려해도, 그 무엇을 하려해도 방해하고 감시하니, 김대중은 무척이나 분노했고 이것이 그의 복귀를 재촉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 '노벨상의 가치가 떨어졌다.'라는 말을 한 김영삼의 도량과 컴플랙스를 학실히 알게 됐다. 김영삼이 김대중을 품을 줄 알았다면 우리 현대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넷째, 정인숙의 사채를 영구보존했다.? 사실일까? 청와대에 있는 거물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정인숙을 아는가? 독제세력의 추악한 사생활을 우리에게 알려준 사건!! 그런데 이책에는 정인숙에 대한 야사가 한가지 더 적혀있다. 정인숙의 사체 일부분이 영구 보존되어 연수과정 교보재로 활용된다는 말이다. 정말 충격적인 설이다. 과연 사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이 '명월'이의 생식기를 영구보존한 것을 혜문스님이 소송을 걸어 화장을 한 사건이 있다. 아마도 '명월'이의 생식기가 정인숙으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신체 일부분을 교보재로 사용한 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의 모든 사료가 사라진다면 이책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삼국유사'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소중한 역사서로 평가 받는다. 때로는 삼국사기에서 볼 수 없는 신화와 전설, 역사적 사실을 전해준다. 이동형이 쓴 '김대중VS김영삼' 또한 한홍구가 전해주지 못한 역사의 뒷이야기를 우리에게 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확실히 재미는 있다. 즐겁게 한국 현대사를 산책하고 싶은 독자라만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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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01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ㄷㄷ‘이 ‘후덜덜‘을 뜻해요. 책에 신조어나 인터넷 은어가 많은 걸로 봐서는 DJ, YS의 관계를 잘 모르는 젊은 독자들을 겨낭한 것 같습니다. 시도는 좋은데 인터넷 용어를 모르는 중년 독자들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어요.

강나루 2018-01-01 23:12   좋아요 1 | URL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2018-01-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01-02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2018년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01-0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의사 김재규 -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한 혁명
김성태 지음 / 매직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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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대학시절 5.16에 관한 레포트를 준비하다가 '비운의 장군 김재규'라는 책을 보았다. 표지만 보고 웃임이 나왔다.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한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그가 어찌해서 추앙받을 수 있는지! 왜? 민주화투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력투쟁 내부의 갈등에서 촉발된 사건이 10.26이라 단순히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0.26으로 죽은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자연스레, 김재규에 관심이 갔다. 그는 왜? 박정희를 죽였을까? 김재규의 10.26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어떤 의미가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재규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이 밀려 왔고, 박근혜 시대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김재규를 바로 알고 싶었다. 그럼, 김재규를 만나 보자.

 

1. 10.26으로 가는 열차 - 악의 평범성과의 투쟁

  10.26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은 10.26 이전에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라는 곳이 박정희의 채홍사 역할을 해야했으니, 사람으로서 얼마나 못할일이었겠는가? 이 책의 '서울의 소리' 저자는 채홍사가 100여명의 여성을 안가로 불러들였으며(다른 부분에서는 200명이라고도 적고 있다.) 그 중에는 유부녀도 강제로 끌고가고, 심지어는 강제이혼도 시켰다고 한다. 한여성을 짓밟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한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갔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이 너무도 심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누가 박정희를 존경할 수 있을까? 10.26은 유신의 공포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꽃씨였다.

  김재규는 여러차례 10.26을 구상하고 준비했다. 3군 단장 시기 박정희를 감금하고 하야를 이끌어내려 했으며, 건설부장관 시기 그를 쏘려고 했다. 그밖에도 여러차례 10.26을 결행하려 했으나, 정에 이끌려 차마 결행하지 못했다. 불교신자인 그는 살생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6.25때도 직결처분을 하지 않았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러한 성품의 그가 10.26을 결행하려 했을때 얼마나 고뇌했을까? 혹자는 평한다. 유신의 가장 최측근이었던 그가 10.26을 한 것을 어찌 평가해야하는가? 그는 권력투쟁에서 우발적으로 10.26을 했을 뿐이라고..... 그러나 김재규가 6.3시위때 그의 부대가 대학에 진주한 사실을 아는가? 그는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대학 환경정리를 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도 박정희에게 일을 유화적으로 처리하도록 조언했으며, 독재체제를 바꿀 것을 건의했다.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했다.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정도 지키면서 이땅의 민주주의도 지키려했다. 이것이 보통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히틀러와 스탈린, 박정희를 영웅으로 모시는 사람이 많다. '대국굴기'라는 책에는 '스탈린'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신나치는 히틀러를 추모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자유주의자보다 독재자를 추앙하는 노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출실히 따르며 자신의 열정을 바친다. 한나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다. 아이히만이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하여 열심히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그는 설량한 사람이었고, 근면한 사람이었다. 단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일인지 생각하지 않고 총통의 일에 열심히 종사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사람이 없을까?  한국사 국정화에 반대 성명을 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사 국정화에 종사한 공무원들! 그들은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자는 누구던지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김재규는 그 '악의 평범성'과 투쟁하고 있었다. 그의 옥중 수양록을 보자.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국민이 우매하다면 하늘이 우매하다는 것이다. 하늘이 우매한가? 하늘을 우매하다고 보는 사람이 우매하지." 그는 중정에 근무하면서도 고뇌하고 있었다. 한 조직안에 있는 사람이 그 조직의 의견에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통의 서민들은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을 살면서 느꼈을 것이다. 김재규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의 평범성'과 투쟁했다. 그의 이러한 투쟁을 재야의 대통령 장준하 선생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석에서 훌륭한 군인이라고 김재규를 사석에서 평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 호건씨도 이를 증언하고 있다.

 

2. 기차는 10.26에 도착하다!!

  "서울에서 4.19와 같은 데모가 일어난다면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 같은 친구들이 발포 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한 것을 가지고 대통령인 나를 사형에야 처하겠는가" 박정희가 말했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정도 죽여도 끄떡없었는데 데모 대원 100~200만 정도 죽여도 걱정없습니다." 항소이유서에 적혀 있는 차지철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김재규는 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10.26을 결행한다. 한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말들을 하고 있는 박정희와 차지처!! 그들을 쏠 수 밖에 없는 김재규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손석춘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얼마나 많은 영남인들의 가슴을 쏘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항소이유서에서 처럼 서울에서 4.19와 같은 데모가 있었다면 서울 시민들의 가슴에도 총을 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땅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진자들이 많다. 특히 영남지방에는..... 스톡홀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인질범들이 구출되고 나서 인질범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다. 이땅에는 아직도 인질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많은 것일까?

  김재홍 교수는 부산과 마산에 강경진압을 건의하고 사나운 공수부대를 투입한 '지옥의 사자'도 다름 아닌 차지철과 함께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10.26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단절적인 사건들로 보지 않고 이를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면 10.26이 있었기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며, 광주에서의 희생 시기가 늦춰졌다고 볼 수 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쏠 수밖에 없는 김재규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3. 10.26에 대한 평가

  한홍구 교수와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필자들은 김재규의 10.26과 안중근의사의 10.26을 비교하면서 그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안중근과 김재규를 10.26이라는 키워드로 비교하는 것은 항소이유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연히도 우리 역사에는 70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두개의 10.26이 존재한다. 하나의 10.26은 모든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하나의 10.26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책은 김재규를 의사로 평가하고 그를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한다는 취지에서 편찬되었다. 이 책의 필자 중에서도 지승호는 김재규가 "박정희 천황체제 끝낸 공로 재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재규는 구국의 영웅인가? 아니면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신을 민주투사로 포장한 것인가? 이 화두는 많은 시기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혹자는 말한다. 10.26에 이르는 계획은 주도면밀하게 일으켜서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처리과정은 너무도 미흡하다. 그러나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는 10.26 이후의 치밀한 민정이양 계획이 서술되고 있다. 그는 10.26과 그 이후의 일들을 치밀하게 계획했으나, 이 계획을 치밀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민주화세력 안에서도 엇갈린다.

  만약 부마 항쟁의 열기가 전국으로 번지고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타도했다면 박정희의 향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김재규를 비판한다. 김재규가 박정희 신화를 만들었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재규의 10.26이 있었기에 더 큰 피를 부르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물론 광주에서의 희생을 막지는 못했다는 한계점도 있다.

  503이 김재규가 뿌려 놓은 박정희 신화를 머금고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정책을 했던 503은, 박정희가 총탄에 저세상으로 갔다면, 그녀는 탄핵으로 권좌에서 내려와야했다. 그녀는 다행히 신화가 되지 못했다. 국민의 촛불혁명이 그녀와 박정희의 민낯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김재규라는 1인이 이룬 "혁명"보다는 수많은 국민이 이룬 "촛불혁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역사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김재규가 자신이 희생을 떠안고 저세상으로 가려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희생을 줄일수는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오히려 박정희 신화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불완전한 "혁명"은 국민에 의해서 이뤄진 "촛불혁명"으로 이제 완성될 수 있었다.

 

4.  옥의 티와 동의 하지 않는 의견들

  류택형 변호사의 육성 녹취록을 읽다보면, '청불'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많이 나온다. 들을 수 없다. 라는 뜻의 '청불'이 너무 많아 글의 내용을 알 수 없었으며,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보다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배려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5부에 박정희 유신시대 정리라는 쳅터가 있다. 박정희의 삶을 중심으로 유신시대를 정리했는데, 정작 김재규 연보는 없다. '의사 김재규'라는 책에 김재규의 연보가 빠져있고 그 대신 박정희의 삶을 정리해놓은 것은 이 책의 커다란 실수가 아닐까? 이책은 박정희에 대한 책이 아님을 이책의 저자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은 김구를 실패한 리더로 본다. 더 나아가서, 일본이 한국에서 수탈해간 것보다 일본이 한국에 투입한 예산과 자본이 훌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철도와 항만을 놓았다. 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확한 데이타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이러한 지적을 한 것이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을 비판하려는 최상천의 의도란 것은 이해하지만, 그 근거들은 나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서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쌀!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여성을 성노예로 끌고간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을 남기고,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역사적 피해를 주었다. 이를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5. 구국여성 봉사단과 최태민

  항소이유서에서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과 최태민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큰영애와 최태민의 전횡을 보고서로 만들어 박정희에게 올렸으나, 박정희는 친국을 했으면서도 박근혜와 최태민을 떼어 놓지 않았다. 만약 이때 구국여성봉사단과 최태민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오늘의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며, 박정희의 신화도 건재했을 것이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역사의 실타래가 오늘을 옥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김재규는 단종에 대한 충의를 지키다 수양대군에 의해서 죽은 김문기의 후손이다. 그는 이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 김문기가 후대에 재평가 되었듯이, 김재규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설송 스님의 법문을 읇조린다.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無風天地 無花開)

이슬 없는 천지에 열매 맺을 수 없네 (無露天地 無結實)

 

  김항규씨가 이 법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 없이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으며, 땀흘리지 않은 자에게 어찌 값진 결실이 있으리요. 김재규가 일으킨 10.26이라는 바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의 꽃이 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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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7-11-12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재규 연보가 없다니! 어이상실
 
대한민국은 왜? - 1945 ~ 2015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김동춘 교수를 처음 알게된 것은 팟캐스트 '벙커1'에서였다. 자못 진보적인 교수로 비춰지기는 했지만, 그리 대단해보이지는 않은 교수로 비춰졌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강의는 우리 대한민국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그 심부에 있는 낱낱의 면모를 우리에게 들춰보여주었다. 그후, 김동춘이라는 인물은 나에게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바로본 대한민국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의 책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김동춘! 그는 나의 생각을 훌쩍 뛰어 넘었다.

 

  1. 사회학자의 현대사 바라보기.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한국현대사'과목을 수강할 때, 그들로부터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라는 학문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해서 탐구를 한다. 한국현대사는 대한민국 사람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와 같은 개발독재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 속에서 사회과학자들의 일반적인 모습들이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상당수가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사회과학 전공자들에 대한 나도모를 선입관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김동춘 교수의 생각은 나의 선입관을 깨버리고도 남았다. 이승만에서 부터 박정희 정권까지의 친일 반공의 역사와 그 속에서 벌어진 참혹한 일들을 예리하게 서술함은 물론이고, 지금의 박근혜정권에게도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이 2015년인데, 그 때는 박근혜정권의 힘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때였다. 전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김동춘 교수의 배짱과 그만의 날카로움에 놀랐다. 그의 날카로움은 유뭐와 위트를 무기로하는 한홍구교수를 뛰어 넘었다.

 

  2. 과거의 아픔을 통해 미래의 길을 찾다.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아픔과 굴절의 연속이었다. 윤치호로 대표되는 친일 개화파에서 부터 시작하여 분단과 친일파의 재등장! 친일파가 주인인 일제가 물러가자 이 땅의 주인이 되어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을 짖밟고 주인이되었고, 이들이 한국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속에서 민주화운동의 결실은 이들 기득권세력이 독차지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막막함과 답답함이 엄습해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의 우리사회의 문제의 근원을 돋보기로 살펴본다는 기쁨이 용솟음치기도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그 뿌리인 과거를 직시해야한다. 지금의 한국사회에 쌓여있는 수많은 모순들은 이미 과에서 부터 싹이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를 직시할 때, 그 해결책이 보이기 마련이다. 잘못된 과거를 치유히기 위해서는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시민' 씨알 함석헌이 말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시민이 깨어있고 그들이 연대할 때만이 문제는 해결된다. '촛불혁명'을 바라보며,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연대와 행동은 '통일'로 나아가야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친일에 뿌리를 둔 수구 기득권세력은 분단대립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 그리고 통일! 이 것이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이다.

 

  한국현대사의 모순의 뿌리를 알고 싶어하는자!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고자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자, 우리 깨어있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자! 그리고 연대하자!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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