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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재규 -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한 혁명
김성태 지음 / 매직하우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김재규!! 대학시절 5.16에 관한 레포트를 준비하다가 '비운의 장군 김재규'라는 책을 보았다. 표지만 보고 웃임이 나왔다.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한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그가 어찌해서 추앙받을 수 있는지! 왜? 민주화투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력투쟁 내부의 갈등에서 촉발된 사건이 10.26이라 단순히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0.26으로 죽은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자연스레, 김재규에 관심이 갔다. 그는 왜? 박정희를 죽였을까? 김재규의 10.26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어떤 의미가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재규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이 밀려 왔고, 박근혜 시대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김재규를 바로 알고 싶었다. 그럼, 김재규를 만나 보자.
1. 10.26으로 가는 열차 - 악의 평범성과의 투쟁
10.26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은 10.26 이전에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라는 곳이 박정희의 채홍사 역할을 해야했으니, 사람으로서 얼마나 못할일이었겠는가? 이 책의 '서울의 소리' 저자는 채홍사가 100여명의 여성을 안가로 불러들였으며(다른 부분에서는 200명이라고도 적고 있다.) 그 중에는 유부녀도 강제로 끌고가고, 심지어는 강제이혼도 시켰다고 한다. 한여성을 짓밟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한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갔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이 너무도 심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누가 박정희를 존경할 수 있을까? 10.26은 유신의 공포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꽃씨였다.
김재규는 여러차례 10.26을 구상하고 준비했다. 3군 단장 시기 박정희를 감금하고 하야를 이끌어내려 했으며, 건설부장관 시기 그를 쏘려고 했다. 그밖에도 여러차례 10.26을 결행하려 했으나, 정에 이끌려 차마 결행하지 못했다. 불교신자인 그는 살생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6.25때도 직결처분을 하지 않았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러한 성품의 그가 10.26을 결행하려 했을때 얼마나 고뇌했을까? 혹자는 평한다. 유신의 가장 최측근이었던 그가 10.26을 한 것을 어찌 평가해야하는가? 그는 권력투쟁에서 우발적으로 10.26을 했을 뿐이라고..... 그러나 김재규가 6.3시위때 그의 부대가 대학에 진주한 사실을 아는가? 그는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대학 환경정리를 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도 박정희에게 일을 유화적으로 처리하도록 조언했으며, 독재체제를 바꿀 것을 건의했다.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했다.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정도 지키면서 이땅의 민주주의도 지키려했다. 이것이 보통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히틀러와 스탈린, 박정희를 영웅으로 모시는 사람이 많다. '대국굴기'라는 책에는 '스탈린'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신나치는 히틀러를 추모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자유주의자보다 독재자를 추앙하는 노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출실히 따르며 자신의 열정을 바친다. 한나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다. 아이히만이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하여 열심히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그는 설량한 사람이었고, 근면한 사람이었다. 단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일인지 생각하지 않고 총통의 일에 열심히 종사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사람이 없을까? 한국사 국정화에 반대 성명을 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사 국정화에 종사한 공무원들! 그들은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자는 누구던지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김재규는 그 '악의 평범성'과 투쟁하고 있었다. 그의 옥중 수양록을 보자.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국민이 우매하다면 하늘이 우매하다는 것이다. 하늘이 우매한가? 하늘을 우매하다고 보는 사람이 우매하지." 그는 중정에 근무하면서도 고뇌하고 있었다. 한 조직안에 있는 사람이 그 조직의 의견에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통의 서민들은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을 살면서 느꼈을 것이다. 김재규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의 평범성'과 투쟁했다. 그의 이러한 투쟁을 재야의 대통령 장준하 선생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석에서 훌륭한 군인이라고 김재규를 사석에서 평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 호건씨도 이를 증언하고 있다.
2. 기차는 10.26에 도착하다!!
"서울에서 4.19와 같은 데모가 일어난다면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 같은 친구들이 발포 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한 것을 가지고 대통령인 나를 사형에야 처하겠는가" 박정희가 말했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정도 죽여도 끄떡없었는데 데모 대원 100~200만 정도 죽여도 걱정없습니다." 항소이유서에 적혀 있는 차지철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김재규는 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10.26을 결행한다. 한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말들을 하고 있는 박정희와 차지처!! 그들을 쏠 수 밖에 없는 김재규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손석춘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얼마나 많은 영남인들의 가슴을 쏘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항소이유서에서 처럼 서울에서 4.19와 같은 데모가 있었다면 서울 시민들의 가슴에도 총을 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땅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진자들이 많다. 특히 영남지방에는..... 스톡홀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인질범들이 구출되고 나서 인질범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다. 이땅에는 아직도 인질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많은 것일까?
김재홍 교수는 부산과 마산에 강경진압을 건의하고 사나운 공수부대를 투입한 '지옥의 사자'도 다름 아닌 차지철과 함께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10.26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단절적인 사건들로 보지 않고 이를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면 10.26이 있었기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며, 광주에서의 희생 시기가 늦춰졌다고 볼 수 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쏠 수밖에 없는 김재규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3. 10.26에 대한 평가
한홍구 교수와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필자들은 김재규의 10.26과 안중근의사의 10.26을 비교하면서 그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안중근과 김재규를 10.26이라는 키워드로 비교하는 것은 항소이유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연히도 우리 역사에는 70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두개의 10.26이 존재한다. 하나의 10.26은 모든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하나의 10.26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책은 김재규를 의사로 평가하고 그를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한다는 취지에서 편찬되었다. 이 책의 필자 중에서도 지승호는 김재규가 "박정희 천황체제 끝낸 공로 재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재규는 구국의 영웅인가? 아니면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신을 민주투사로 포장한 것인가? 이 화두는 많은 시기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혹자는 말한다. 10.26에 이르는 계획은 주도면밀하게 일으켜서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처리과정은 너무도 미흡하다. 그러나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는 10.26 이후의 치밀한 민정이양 계획이 서술되고 있다. 그는 10.26과 그 이후의 일들을 치밀하게 계획했으나, 이 계획을 치밀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민주화세력 안에서도 엇갈린다.
만약 부마 항쟁의 열기가 전국으로 번지고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타도했다면 박정희의 향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김재규를 비판한다. 김재규가 박정희 신화를 만들었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재규의 10.26이 있었기에 더 큰 피를 부르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물론 광주에서의 희생을 막지는 못했다는 한계점도 있다.
503이 김재규가 뿌려 놓은 박정희 신화를 머금고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정책을 했던 503은, 박정희가 총탄에 저세상으로 갔다면, 그녀는 탄핵으로 권좌에서 내려와야했다. 그녀는 다행히 신화가 되지 못했다. 국민의 촛불혁명이 그녀와 박정희의 민낯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김재규라는 1인이 이룬 "혁명"보다는 수많은 국민이 이룬 "촛불혁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역사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김재규가 자신이 희생을 떠안고 저세상으로 가려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희생을 줄일수는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오히려 박정희 신화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불완전한 "혁명"은 국민에 의해서 이뤄진 "촛불혁명"으로 이제 완성될 수 있었다.
4. 옥의 티와 동의 하지 않는 의견들
류택형 변호사의 육성 녹취록을 읽다보면, '청불'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많이 나온다. 들을 수 없다. 라는 뜻의 '청불'이 너무 많아 글의 내용을 알 수 없었으며,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보다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배려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5부에 박정희 유신시대 정리라는 쳅터가 있다. 박정희의 삶을 중심으로 유신시대를 정리했는데, 정작 김재규 연보는 없다. '의사 김재규'라는 책에 김재규의 연보가 빠져있고 그 대신 박정희의 삶을 정리해놓은 것은 이 책의 커다란 실수가 아닐까? 이책은 박정희에 대한 책이 아님을 이책의 저자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은 김구를 실패한 리더로 본다. 더 나아가서, 일본이 한국에서 수탈해간 것보다 일본이 한국에 투입한 예산과 자본이 훌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철도와 항만을 놓았다. 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확한 데이타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이러한 지적을 한 것이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을 비판하려는 최상천의 의도란 것은 이해하지만, 그 근거들은 나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서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쌀!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여성을 성노예로 끌고간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을 남기고,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역사적 피해를 주었다. 이를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5. 구국여성 봉사단과 최태민
항소이유서에서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과 최태민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큰영애와 최태민의 전횡을 보고서로 만들어 박정희에게 올렸으나, 박정희는 친국을 했으면서도 박근혜와 최태민을 떼어 놓지 않았다. 만약 이때 구국여성봉사단과 최태민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오늘의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며, 박정희의 신화도 건재했을 것이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역사의 실타래가 오늘을 옥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김재규는 단종에 대한 충의를 지키다 수양대군에 의해서 죽은 김문기의 후손이다. 그는 이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 김문기가 후대에 재평가 되었듯이, 김재규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설송 스님의 법문을 읇조린다.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無風天地 無花開)
이슬 없는 천지에 열매 맺을 수 없네 (無露天地 無結實)
김항규씨가 이 법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 없이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으며, 땀흘리지 않은 자에게 어찌 값진 결실이 있으리요. 김재규가 일으킨 10.26이라는 바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의 꽃이 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