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한국 - 개정판
돈 오버도퍼 & 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 외 옮김 / 길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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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두개의 한국'인가? '두개의 한국'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까?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을 이루는 흘려 넘겨서는 안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한국'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만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분단을 영구화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강대국의 시각을 이 제목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정박이 이책을 소개했을 때 부터 이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워싱턴포스트지기자로 25년을 근무한 돈 오버도퍼와 미CIA 동아시아 담당 국장이나 대북협상 수석 고문을 지낸 로버트 칼린이 썼다는 것 자체가 이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볼륨과 태극기와 인공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표지 또한 강렬했다. 분단된 '두개의 한국'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남북한의 대립을 중심축에 놓고 분단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국 한국을 '두개의 한국'으로 만드는데 일정한 책임이 있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한국의 현대사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1. 외국인이라는 한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연시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진실을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한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레이모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을 하면서 일본이 입장하자 모든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도 일본을 본받을 나라로 여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예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시각은, 과거 필리핀을 식민지배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호감이 갈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돈 오버도퍼'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 한국에 했었던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했으며, 8억 상당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고 오류를 적고 있다. 우선, 액수부터 오류이다.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했다. 무상원조는 8억이 아니라, 3억달러에 불과하며, 3~4년의 식민지배를 받은 다른 식민피해국가들이 3~4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은 반면, 우리는 36년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억달러의 무상자금을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받았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으며,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지금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서 돈 오버도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돈 오버도퍼의 잘못된 역사관은 한일관계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오류 그자체이다. 그는 한반도에 2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석기 시대가 70만년전부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린다면,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그뿐이니다. BC4세기경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한반도 북부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탄생했다고 적고 있는데, 고조선의 존재는 중국의 '관자'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성립을 AD300년 으로 적고 있으나, 신라가 BC57년,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18년에 건국되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류들이다. 외국인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길 바란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많이 인터뷰한 '돈 오버도퍼'의 인터뷰와 사람을 바라보는 탁월한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는 박정희를 청렴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물론, 박정희가 언론에 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자라온 분들은 박정희를 서민적이며 청렴한 대통령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10.26사태가 발발하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는 막걸리가 아닌, 양주를 연예인과 여대생을 들을 불러 놓고 마시다가 죽었다. 또한 청와대 박정희 집무실에서 발견되었다는 돈다발들과 '스위스 비밀계좌설'등을 토대로 볼 때, 과연 그를 청렴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군사적 경험이 부족하며, 정치경력도 짧고,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서 수완이 부족하고, 적대적 언론과 대결하려는 모습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중진국으로서 '동북아 균형자'가 되려했던 그를 '로버트 칼린'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의 시각이 아닐까? 콘돌리자 라이스의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평가한 반면, 이명박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육영수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을까? 돈 오버도퍼는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다큐멘터리에는 북한의 사주로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설명은 없다.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에도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재일동포가 벌인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남한의 커다란 일을 일방적으로 북한이 했다는 쉬운 도식으로 설명한 점은 한국사회를 깊이있게 살피지 못한 그의 한계일 것이다.  아울러,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치뤄진 15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서, 항간에 떠도는 '북풍 조작설'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

  그러나 돈 오버도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변호하는데 많은 급급한 모습이다. 이책의 저자가 미국인이기에 미국을 변호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로당 중책을 맡은 박정희의 감형에 미 대통령 군사고문관 제임스 하우스만의 역할을 강조하여 서술한 것은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좀 심각한 예를 들어보자. 5.16쿠데타 당시 '미 대사관측은 한국의 민선 정부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CIA국장 덜레스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아무일도 않앴다면 한국은 급진파가 장가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은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몰랐고, 민선정부를 지지하려 노력했다는 변명이 무너진지가 오래되었는데, 돈오버도퍼는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알지 못하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돈 오버도퍼의 노력은 박정희 정권과 12.12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극에 달한다. 미국은 좀더 민주적이고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체제 진입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나, 베트남 파병시기 미국은 국익을 앞세워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또한 12.12사태를 역전시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이 전두환 제거 계획을 세웠으로 실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에 신군부가 군병력을 파병하고 유혈진압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군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점도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고 미국의 절대선으로 한국을 인도하려했으나 한국인들이 미국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의문은 7.4남북 공동성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남한 정권을 미국과 일본으로 부터 떼어 놓고 미군 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활용했다.'라는 서술은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7.4 남북 공동성명이 통일의 3원칙을 천명한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7.4 남북 공동성명을 우리민족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통일로 다가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놓은 사건일까? 아니면, 북한의 공세에 이용당한 사건일까? 이 대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4년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은 북한이 수세적 입장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그런데, 돈 오버도퍼는 당시 언론에 발표된 표면적인 내용을 소개할 뿐, 새로 밝혀진 심도있는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개정판을 내면서도 이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를 통해서 보강하지 않은 점음 못내 아쉽다.

 

2. 외국인이기에 알 수 있었던 새로운 진실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로 25년을 일한 돈 오버도퍼와 미 CIA 분석관, 스탠포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로버트 칼린의 생생한 기록들은 이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저자들의 살아있는 기록들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장면으로 나를 인도했다.

  지난 2017년 7월  충북지역의 기록적인 물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자유한국당 소속 충북도의원으로 국외연수를 갔던 김학철 의원은 ‘국민이 레밍 같다’는 발언을 했다. 그럼, 당신은 '레밍'이 어떤 동물이며,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최초의 인물인지 아는가?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라고 불리기도 하는 설치류의 일종이다.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집단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특히 노르웨이 레밍의 경우 맹목적으로 선두를 따라가다가 레밍들이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한다.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레밍' 발언의 기원이 전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이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국민에게 실망할 수는 있으나, 국민 모두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또다른 레밍이 아닌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독재자들의 호화생활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북한은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이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는 두뇌에 해당하며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노동당은 신경계에 해당하고 균형과 중재를 담당한다. 인민은 두뇌가 내린 명령을 신경계를 통해서 전달받고 이를 이행하는 골격과 근육에 해단한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이론이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한반도의 북쪽에서 믿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남북한을 통털어 가장 강력한 독재자는 김일성이다. 김일성, 그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 키워진 채소를 먹었고, 1984년 소련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의 이동 여정에 따라 모든 열차를 운행 중지시켰다. 같은해 동독을 방문했을 때는 특별 제작한 침대가 도착하기도 했다. 503호가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거울방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침대를 가지고 다녔다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같은 조취를 취한 바 있다는 돈 오버도퍼의 짧막한 첨언이다. 지배층의 사치화 특권은 어느 사회나 있는 일반적인 일일까? 그렇다면, 서민행보를 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노무현과 문제인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1972년 60회 생일을 기념해서 김일성은 20m의 동상을 제막한다.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진 이곳은 놀랍게도 일본 천황을 경배하기 위해서 설치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천황에게 참배해던 장소가 광복된 후에 김일성을 경배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괴물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테니'라는 말을 했다. 일제가 일본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듯이, 김일성도 북한에서 우상화 되었다. 김일성은 일본 천황과 싸우며 천황과 닮아간 것일까?

  북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미국의 정보 분석결과는 충격적이다. 71~72년에 북한은 7백개 대대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10년전의 2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인구가 배나 많은 남한보다 군병력이 많으며, 26명당 1명이 현역군인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군인의 숫자는 노동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김일성과 호네커 회담에서 김일성은 농부의80%, 경공업 노동자의 90%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남자는 군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장성세라는 말이 이때 어울리는 말이다.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일까? 놀랍게도 북한은 지구상에서 미국을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중에 하나이다.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면 북한은 '북한을 핵공격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지하 벙커로 대피한다. 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자, 북한은 IAEA 핵사찰을 수용했다가, 93년 훈련을 재개하자, IAEA 사찰 거부를 경고한다. 1985년 남측의 장세동 박철언, 북한의 한시해 허담이 특사로 파견되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86년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로 좌초 되었음을 음미해본다면, 북한이 얼마나 팀스피리트 훈련을 더나가서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강한 공격적 말투 속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망명전 황장엽, 북한 외교관들과 군장성들은 사석에서 미국인들에게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며 그 필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의 모험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들로서도 강력한 미군이 안전판으로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분단체제 속에서 반미주의를 통해서 북한 주민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박정희가 핵개발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데탕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뒤이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박정희로 하여금 핵개발에 몰두하게 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토록 염려하던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사건은 놀랍게도 '코리아 게이트'사건 때문이다. 주한 미군 철수 댓가로 19억 달러상당의 군사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려 했으나,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서 미하원에서 이 계획이 통과되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들도 돈으로 매수하려했던 박정희의 추악한 모습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엄한 선생님을 학생들 중에서 존경하는 학생이 많다. 스톡홀룸 증후군!! 인질범들에게 인질이 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을 해치려했던 그들의 편이되어 인질범을 추종하는 현상을 흔히 본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이 박정희의 최측근에게서는 보였을까? 10. 26 이후 박정희를 오랫 동안 보필한 공직자에게서 진심어린 애도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돈 어버도퍼는 놀란다. 홀브룩도 '서울에서 슬픔에 젖은 눈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톡홀룸 증후군이 그의 측근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박정희는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을까? 최측근도 그를 보고 슬퍼하지 않다니...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말의 원조는 누구인지 아는가? 일베들이 하는 이런 막말의 근원이 전두환에 있었다. '학생시위 배후에 평양이 있다.'라는 말을 했고, 정보담당 장교에게 북한 위협설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광주의 시민을 두번 죽이는 이같은 일을 전두환은 서슴치않고 자행했다. 정통성이 없는 전두환은 미국으로 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김대중을 풀어주는 댓가로 백악관이 초청된다.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밥도 우리돈으로 먹고와야할 정도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레이건은 전두환을 환대했다고 한다. 더욱 올라운 사실은 1980년 11월 20일 정권 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카터가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레이건이 '대통령 각하, 저도 한국의 대통령들 처럼 시위 가담 학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으로서는 전두환을 푸대접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전두환 시기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박정희가 김일성을 왜? 만나냐며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반면에, 전두환은 88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북한과 밀사를 주고 받으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서울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려 전두환도 북측과 접촉했다. 그리고 지금의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보듯이, 스포츠 경기가 평화의 전령이 되기도 한다. 정쟁에 휩싸여 평화의 무대인 평창 올림픽을 색깔론으로 흠집을 내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로 이어진다. 1991년은 남북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노태우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캐릭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라 시와 음악을 좋아했으며, 집권시에는 북방외교를 추진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12,12 쿠데타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암튼, 남측에서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북측에서는 윤기복 조선노동당 서기가 서울에 방문했다. 만약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 돈 어버도퍼는 88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기가 펼쳐질 때, 한국인이 우방인 미국을 응원하지 않고, 소련을 응원한 것에 대단히 놀라고 있다. 88 올림픽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83년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소련에 의해서 격추되었고, 소련은 공산권국가의 맹주인데,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심때문일까? 그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어째든, 이때의 진심어린 응원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진심이 상대의 마음을 연 것이다.

 

3. 외국인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 - 북핵사태!!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은 이책의 20개장(후기 포함) 중에서 절반정도를 할애 해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이부분을 읽으면서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핵문제가 언론에 발표되고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정권 말기부터이다. 91년 비핵과 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핵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책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장기적 전략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5년마다 혹은 4년 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과 미국의 특성상, 들어서는 정권에 때라서 핵문제 풀이의 해법이 달랐고, 그에 따라서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지 못했다. 그뿐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보수와 진보 정권이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며 엇박자를 키웠다.

  김영삼 정권시기 한승주 장관이 북미회담을 미국에 제안했고, 클린턴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 직접대화를 했다. 여기에서부터 남한의 외교력 부재가 시작됐다. 북미대화를 촉구한것 자체가 한반도의 운전대를 미국에게 넘긴 중대한 일이다.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미국에 기대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어리석음은 북한의 '통미봉남정책'의 빌미가 되었다. 최소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한국의 대표가 배석하여, 회담을 남북교류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하다. 김영삼 정권의 외교 실책에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93년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김영삼 정권은 이에 격분한다. 김영삼 정권에서 북-미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비판에 김영삼을 자신의 정권에서 한 정책의 결과에 분노한다. 노태우 정권시기 북한을 고립 시키는 정책에서 북한이 자유세계와 교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며, 북방외교를 전개한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김영삼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며 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지도자의 무능과 무지가 한반도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김영삼에게도 기회는 왔다. 특사로 파견된 카터가 남북정삼회담을 제의했고, 김영삼과 김일성의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들을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은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은 김일성 사후, 공안정국을 형성해 갔으며,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쳤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기 외교적인 유능함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뒤이어 들어선 보수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기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게 된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외교전략이 바뀌어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서 외교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는 구조를 남한은 가지고 있다. 서독이 정권이 뀌어도 '동방정책'이라는 외교적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마음속에 새겨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했는가? 북핵사태를 비교적 유능하게 다뤘던 정권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라 할 수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도 94년 영변핵시설을 타격하는 무모한 정책을 검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500만명이 죽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과 주한미군 가족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에 쉽게 선제타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돈 오버도퍼는 미국이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한가지 더 제시한다.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미군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글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이후 벌어지는 일본의 우경화와 평화헌법 개정에 미국의 용인 내지 묵인이 있는 것을 아닐까?

  클린턴 행정부의 인내심있는 외교로 북핵사태는 해결 직전까지 간다. 북한은 미국이 합법국가로 북한을 승인하는 의미로 클린턴의 방문을 갈망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시절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퇴임 후에 미국인 기자를 석방하기 위해서 특사로 북한 땅을 밟는다.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민주당 정권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계속 있었다면 북핵문제는 보다 수월하게 풀려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뒤어어 들어선 부시정권은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두리운다. 부시 행정부는 구체적인 정보 없이 북-미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고, 내부경제 개혁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했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북한의 손을 잡아줄 마음이 없었다. 2004년 존루이스 교수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하고, 이후 6년간 여러차례 미국 대표단을 초청해서 현장을 방문시킨다. 핵을 무기로 미국에 부던히도 구애의 노력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제네바 합의가 파국으로 치닫지만, 미국은 이를 대체할 외교적 노력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진다. 오바마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말했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관심도, 전쟁도 아닌, 외교라는 교훈을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소련과 이라크를 대체할 악의 세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럼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한 비결이 바로,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이다. 북한은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없는 사람일 수록 자존심이 쎈 법이다. 북한을 무시하기 보다는 적당한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얻는 방법은, 북한을 상대하면서 갖추어야할 필수품으로 보인다.

  둘째, '기미'를 알아차려라! '한비자'라는 책에서도 제왕은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일을 대비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교훈은 대북관계에서도 적용된다. '특별 사찰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북한의 말을 듣고 CIA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로버트 칼린은 '기미'를 알아챘다. 북한의 '군'과 '외교부'간의 마찰이 표면화된 표현으로 해석했고, 결국 로버크 칼린의 판단은 적중했다. 북한에서 '군'과 외교부'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갈등표출은 때로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좋은 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손을 잡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유세계로 나와야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대화와 교류의 손길을 끊임 없이 내밀어야한다. 북한을 궁지로 몰 수록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아진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우리가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9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탁월한 네러티브 구성으로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다. 물론 흥미를 위해서 시간순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플래쉬백 방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때로는 사건이 뒤죽박죽 되었다는 혼란을 주기도 했다.

  로버트 칼린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해서 '한반도와 주위 관련국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문제 없는 사태로 받아들였다. (중략) 적대적인 정권이 한반도 양국에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체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도 비극이 될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두개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 분단체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일부 세력들이 우리주변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단체제의 지속은 언제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의 상존을 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두개의 한국'이 '하나의 한국'으로 바뀌기를 소망해본다.

 

ps.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어 이를 소개한다.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군중과 함께 내달렸다. 나는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 한명을 포함한 약 15명의 사람들과 어느 작은 가계로 피신했다. 한 군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마침내 그는 우리 평화봉사단원들 앞에 다가와 섰다. 그는 잠시 멈칫하고 주저하다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중략)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이마가 깊이 패여서 피가 줄줄흐르고 있었다. 그는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난입해 머리를 곤봉으로 세게 내려친 후 물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략) 대다수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공수부대원들로부터 무차별 구타를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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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NBC 해설자의 발언이 제국주의적 시각과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영미권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번영과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나루 2018-02-24 08:22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