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읽고 난후, 2권을 집어들었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 정조라는 성군을 만났기에 화성을 건설하고,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없는 세상은 해가 없는 하늘이고 달이 없는 밤이었다.

  이 암흑의 시대를 정약용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다. 실학을 집대성하고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바로 그의 18년 유배생활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학의 최고봉이자, 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학자로 남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유배를 그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 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아마도 불행을 정약용이 행운으로 바꾸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를 학문이라는 등불로 밝혀나가고자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에 대한 노론 벽파의 공격은 천주교를 트집잡아 시작한다. 그는 천주교를 배격하였으나, 노론 벽파에게는 이 사실보다는 그를 죽이겠다는 표독한 집념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 많은 인재가 죽어갔다. 이익의 종손인 이가환 부터 시작해서 수 많은 남인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의 형, 정약종도 그 수많은 사람중에 한사람이었다. 단지 정약용 그와 그의 형 정약전이 유배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였다. 피바람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유배시절의 그의 많은 저서와 민초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다. 때로는 너무도 어려운 '주역'이라는 책을 정약용의 저서를 길게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주역'의 '주'자도 모르는 나에게 너무도 이해하기 난해했다. 정약용 그가 '왕필'을 능가하는 '주역'의 대가라는 것 밖에는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이덕일이 밉기가지 했다.

  유배지에서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그의 형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완성, 탁월한 스님 혜장 선사를 유학자로 만든 일화 등이 정약용의 유학자로서의 탁월함과 그의 형재들의 재주가 사장된 사실에 대한 안타가움을 더했다. 국가의 안보보다는 정권의 안보만을 위하는 노론 벽파의 모습이 치가 덜리기도 했다. 18년 동안의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에 안착한 그에게 서용보가 측은히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정약용을 위하면서 조정에서는 정약용을 배척했다. 노론벽파의 광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익종이 죽기 직전에 그를 불러 치료하게 해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고, 치료해도 죽게 만든다. 정약용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또다시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광란의 시대! 암흑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달관했던 정약용! 18년동안 정조의 곁에 있었고, 18년 동안 유배를 갔고,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아야했다. 너무나도탁월한 그의 재능이 현실에서 너무도 짧게 쓰여진 것이 안타깝다. 언제나 인재는 있지만, 그 인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에 그 인재는 땅에 묻힌 구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노론 벽파! 그들의 광란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가로 막았고, 그리고 근대화를 막았으며, 일제 강점의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닐가? 그리고 오늘은 과연 그렇하지 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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