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로 잘 먹고 잘 살던 이오의 팔자가 돌연 기구해진 것은 제우스의 눈에 들고 부터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제우스는 본처 헤라를 속일려고 급한 김에 그만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켰다. 귀신을 속이는 것이 쉽지 어디 감히 마누라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흰 암소의 모습으로 헤라에게 넘겨진 이오는 눈알이 백개나 달린 아르고스의 감시 속에서 고초를 겪는다. 속타는 제우스가 나중에 헤르메스를 시켜 이오를 구해내지만 헤라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헤라는 등에떼를 보내 소가 된 이오를 못살게 괴롭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등에라는 것이 작은 것은 파리크기에서 큰 것은 호박벌만하다는데 호박벌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니 또 인터넷을 뒤져볼 밖에 없다. 보통 1.5cm에서 2.5cm 정도 크기라고 나와있다. 서양에서는 ‘greenheaded monster’ 라고 하며 암컷은 흡혈성으로 숙주로부터 하루 9ml이상의 피를 빨아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짧은 소꼬리를 이리저리 아무리 휘둘러봐야 사정거리 밖에 앉은 이 푸른대가리 흡혈 괴물 때문에 이오는 거의 미치고 만다. 여름철 야외에서 청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모기의 시침에 시달려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알 것이다. 더구나 이건 모기도 아니다. 올림포스 최고 여신의 특명을 받잡는 등에 최정예 군단이다. ! 가련한 이오여~ ! 잔혹한 여신이여... 아니 여신의 냉혹함을 따지기 전에 제우스의 분별없는 욕망을 탓해야 할 것이다.

 

이오는 거의 미쳐서 그리스 전역을 날뛰며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을 건너 아시아 지역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때 이오가 건너간 해협이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되겠다. 보스포러스는 암소의 건널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오가 미쳐 날뛰었던 그리스 지역의 앞바다는 이오니아해로 명명되었다. 결국 제우스가 헤라에게 손이 발이되도록 싹싹 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헛된 맹세를 한 다음에야 이오는 사람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된다.

 

그리스의 무수한 섬들이 별처럼 박혀있는 에게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유럽쪽 땅이 시계불알처럼 축 늘어진 곳이 있다. 이 시계불알과 아시아쪽 땅이 거의 붙을랑 말랑하면서 긴 해협을 이루는데 바로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시계불알 끝 부분의 건너편 아시아쪽 땅에 그 유명한 도시 트로이가 그 옛날에 있었다. 이 해협을 통과하면 마르마르해다. 마르마라해에서 북해를 바라보고 올라가려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야 한다. 보스포루스 해협 역시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고 있지만 이 곳이 이름난 것은 바로 해협의 양안으로 영원한 제국의 도시인 이스탄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협의 길이는 30Km이고 폭이 가장 좁은 곳은 750m, 수심은 36-120m 정도다.

 

보스포루스 해협에는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다리가 세 개 있다. 제일 처음 세워진 보스포루스 제1대교는 일명 아타튀르크 다리로도 불린다. 1970.2.20. 착공하여 1973.6.1. 준공되었다. 총길이는 1560m이고 주탑 사이의 거리는 1074m. 그 다음 세워진 보스포러스 제2대교는 일명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교다. 1986년 착공되어 1988. 7. 3. 개통되었다. 총길이는 1510m이고 주탑의 높이는 115m, 주탑 사이의 거리 1090m. 왕복8차로다.

 

보스포러스 제3대교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이 다리는 사장교와 현수교 공법을 혼합한 방식을 적용했으며 전체 길이가 2164m, 주탑(主塔)의 높이는 322m, 주탑 사이 거리는 1408m에 이른다. 사장교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현수교 기준으로는 4위 수준이다. 현대건설과 SK건설이 공동 시공한다. 20136월에 착공했으며 201511월 준공예정이다. 총공사비는 69740만달러다. 다리명칭은 야부즈 술탄 셀림으로 예정되어 있으나 셀림이 냉혹한 술탄으로 알려져 있어 반대여론도 있다고 한다. 야부즈는 냉혈한이라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또 현수교와 사정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사장교는 주탑꼭대기에서 와이어가 분산되어 직접 교량 상판을 잡아주는 형식이고(멀리서 보면 무슨 조개 껍대기 같은 모양이다.)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사이에 연결된 와이어에서 간격별로 또 와이어가 내려와서 교량 상판을 잡아주는 형식이다. 금문교, 남해대교는 현수교이고, 인천대교는 우리나라 대표 사장교다. 보스포러스 1,2대교는 모두 현수교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바다 위에 거대한 다리가 건설 되었다면 바다 밑으로는 터널을 뚫었다. 2013.10.29. 유럽지역의 시르케지에서 아시아지역의 위스크다르까지 해저로 지하철이 개통되어 있다. 마르마라해를 건넌다고 해서 지하철의 이름은 마르마라이다. 77km의 운행구간을 가진 마르마라이는 지하철 구간은 13.6km이고 그중 바다 밑을 지나는 구간은 1,378m이다. 2004년부터 45억달러를 들여 일본과 같이 합작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개통식에는 아베총리도 참석했다.

 

마르마라이는 바다 밑으로 기차가 다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량통행이 가능한 해저터널은 없는가? 왜 없겠는가.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 마르마라이보다 더 아래쪽 위치다. 2014.4.19. 유라시아 해저터널 공사 굴착식이 있었고 지난 2015.8.22.에는 해저터널 관통 기념식이 있었다. 이 해저터널은 접속도로 포함하여 총연장 14.6km로 터널의 길이는 5.4km이고 바다밑 구간은 3.34km인 왕복4차로 복층 해저터널이다. 총사업비는 124천만달러다. 20173월 개통예정이다. 터널이 개통되면 하루 12만대의 차량이 이동 가능하고 해협통과시간도 1시간 45분에서 15분으로 단축된다고 한다위치는 마르마라이 선 보다 더 아래쪽이다.

 

바다 밑에서 땅굴을 파는데는 지름이 13.7.m 총길이 120m 무게 3300톤에 달하는 메머드급 굴착장비가 사용되었다. 사진을 보니 인간의 능력이란 참으로 엄청나고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최후의 인간들이 거주하는 시온성을 공략하는 거대한 로봇 굴착기가 생각났다. 이 유라시아 터널 프로젝트는 터키의 건설사와 삼환기업, 한신공영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우리나라의 SK건설이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중이다. 신화 속의 암소가 건넌 해협은 이제 위로는 거대한 다리가 세워지고 아래로는 터널이 뚫어져 개나 소나 인간이나 자동차나 기차나 마구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둘러보는 크루즈가 있다.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이 많이 모여있는 에미뇌뉘에도 선착장이 있고 돌마바흐제 궁전 근처의 카바타쉬에도 선착장이 있다. 에미뇌뉘에서 출발하여 제2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가 거의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112리라. 한화로 5400원 정도. 저렴하다. 해협의 끝인 흑해 바로 앞까지 가는 코스도 있다. 6시간 정도 소요된다. 디너가 나오고 쇼도 구경할 수 있는 보다 고급진 크루즈도 있다. 비용은 160유로인가 그랬다. 한화로 8만원 정도. 소심한 소생은 역시 저렴한 크루즈를 선택했다.

 

유람선이 보스포루스 2대교에 이르면 유럽쪽 해안에 성채가 보인다. 루멜리 히사르다. 글이 너무 길어져 루멜리 히사르는 다음에 이야기해야겠다.

    

일단 지도를 참고하시라.

 

보스포러스 제1대교다. 

 

 이건 보스포러스 제2대교 되겠다.

 

 

보스포러스 아시아쪽 해변가의 저택들. 건물뒤로 보이는 성채는 아나돌루 히사르다. 다음에 이야기 하겠다. 

 

 

 

루멜리 히사르다. 뒤로 보이는 다리는 보스포러스 제2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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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1-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봤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소상히 알고 계세요? 사진도 멋지고 존경존경@_@;;;; 제가 터키에 간 건 한 십오년전ㅎㅎ;; 당연하겠지만, 참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_@;;

붉은돼지 2015-11-13 15:38   좋아요 0 | URL
다리나 터널 이런 것들은 뭐 당연히 인터넷을 좀 뒤져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니.....디너와 터키 전통 춤도 구경할 수 있는 디너 크루즈도 타볼 것을 하는 후회가 쪼끔 드는군요 ^^

oren 2015-11-13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까마득한 옛날엔 보스포러스 해협 가운데 어드메쯤엔 암소가 건너다닐 만한 야트막한 여울목이 정말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 적이 있답니다. 그런데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오`가 아르고스의 공주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고대 페르시아 전쟁`의 아주 먼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오 납치 사건`을 얘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더군요. `이오 납치 사건`이 결국 한 세대 뒤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는 `모방 범죄`를 불러왔다는 것이지요. 그 뒤로 결국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고 일리온이 함락되고 나자 헬라스인들에 대한 페르시아인들의 뿌리깊은 적대감이 `페르시아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지요. (헤로도토스는 `나는 사실은 이랬느니 저랬느니 꼬치꼬치 따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까지 덧붙여 놓았더군요. [그런데 포이니케 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이오를 억지로 아이귑토스로 납치해 간 것이 아니다. 아르고스에서 배의 선장과 살을 섞었던 이오는 임신 사실을 알고는 부모를 대할 낯이 없어 발각되지 않으려고 자진해서 포이니케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저도 예전에 한번 쓴 적이 있었답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6972956)

그런데 `보스포로스`라는 이름은 `흑해와 아조프 해를 잇는 좁은 해협`에도 붙어있다고 합니다. 소위 `킴메리오이족의 보스포로스`라 불리는 곳인데 어떤 책에 달린 주석에는 이오가 지금의 보스포러스 해협이 아니라 `킴메리오이족의 보스포로스`로 건너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붉은돼지 2015-11-14 09:59   좋아요 0 | URL
제가 본 보스포러스는 암소가 건너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 보이더군요...뭐 가장 짧은 구간은 700m정도라고 하니 헤엄쳐서 건너지 못할 것도 없지만요..그리고 그 옛날 신화의 시대에는 지형이 아마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 소가 건너다닐 만한 야트막한 여울목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희랍 고전을 보면 여러가지 버젼들이 존재하더군요...조금씩 내용이 다른 여러 버전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욱 풍성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렌님의 저런 이야기 읽을 때는 저도 희랍고전들을 하나하나 정독해 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책은 이미 여러권 사두었구요.ㅋㅋㅋ)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ㅜㅜ

oren 2015-11-14 10:31   좋아요 1 | URL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서도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시인이 읊은 멋진 대목이 길게 이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걸 기억합니다.(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전쟁때 그리스 진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딸로, 그리스 군에 의해 제물로 바쳐졌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이 구출하여 타우로이족의 나라로 데려가서는 자신의 신전에서 여사제로 봉사케 했다고 하지요. 나중에 그녀의 오라비 오레스테스와 그의 절친 퓔라데스가 그녀를 구출하게 되고요...) 다소 길지만 고대 시인의 목소리도 다시금 들어볼 겸 그 대목을 여기서 한번 인용해 봅니다..아르고 원정대가 헤쳐나갔다는 그 유명한 쉼플레가데스(맞부딪치는 바위들)도 나오고요..
* * *
검푸른 해협이여, 옛날에 쇠파리가
아르고스에서 손님에게 불친절한 바다로
윙윙거리며 날아와서는
이오를 에우로페에서 아시아 땅으로
건너게 했던 검푸른 해협이여!
(중략)

그들은 배의 양쪽에서 찰싹거리는
소나무 노를 저으며 바다의 파도를
타고 왔을까, 돛을 부풀리는 바람을 안고,
재산을 늘리기를 열망하며?
희망은 달콤한 것이어서
결코 물리는 일이 없다네,
인간들에게 재앙이 되도록.
그래서 인간들은 부(富)를 잔뜩 짊어지려고
바다를 떠돌기도 하고 이방인들의 나라를
찾기도 한다네, 다들 같은 희망에 이끌려.
그리하여 더러는 부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허사가 되지만, 더러는 큰 부를 얻게 된다네.

어떻게 그들은 맞부딪치는 바위들 사이를 지나고,
어떻게 그들은 파도가 잔잔할 날이 없는,
피네우스의 아들들의 해안을 지났을까,
네레우스의 쉰 명의 딸들로
이루어진 합창가무단들이
노래하며 윤무를 추는
암피트리테의 파도 사이로
해변을 따라 달리면서?
어떻게 그들은 바람에 돛을
부풀리고는 뱃고물에서
쉬고 있는 키가 삐걱거리는
가운데 세찬 남풍과 서풍의
입김을 받으며 새들이 많은
나라로, 하얀 바닷가로,
아킬레우스의 아름다운
경주로가 있는 곳으로 왔을까,
손님에게 불친절한 바다를 건너?

아아, 우리 여주인의 소원대로
레다의 딸 헬레네가
트로이아의 도시를 떠나
이리 와서는 물결치는 머리에
핏방울을 뒤집어쓰고
우리 여주인의 손에
목이 잘려 죽음으로써
응분의 죗값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치욕적인 굴종의
굴레에서 나를 구하려고
누군가 헬라스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가장 좋을 텐데!
아아, 꿈결에서라도 아버지의
집과 고향 도시에 갈 수 있었으면!


2015-11-14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4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숙소는 아야소피아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아야 소피아 바로 앞에 노면전차인 트램바이역이 있다. 역 이름은 술탄아흐메트역. 트램을 타고 카바타쉬역에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명한 4층 구조의 시계탑이 보인다. 네오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바로크도 잘모르는데 네오가 붙으니 그냥 그런갑다 싶다. 프랑스 시계 제작자 장 폴 가르니에가 만들었다고 한다.

 

시계탑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다. 우리는 박물관 패스가 있어서 그냥 패스. 휘황찬란한 출입구를 지나면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 있고 궁전 본관이 보인다. 별로 크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게 육지쪽 입구 방향에서 봐서 그렇지 보스포러스 해안 쪽에서 바라보면 눈부신 하얀 흰대리석 건물이 248미터에 걸쳐 뻗어있다. 궁전은 정원과 부속 건물을 합치면 총 길이가 장장 600미터에 이른다. 본관 앞에서 30명 정도씩 조를 짜서 터키어가이드 혹은 영어 가이드를 따라 들어간다.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제한된 부분만 관람할 수 있다. 신발위에 비닐 덮개 양말을 신어야 하고 내부 촬영은 금지다.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1843년에 착공해서 1856년에 완공되었다. 건축은 카라베트 발얀과 그의 아들이 맡았다. 궁전은 크게 술탄의 집무 공간, 그랜드 홀, 하렘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6개의 발코니와 6개의 하맘(목욕탕)이 있다. 내부장식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프랑스인 세샹이 맡았다. 아내는 벡사이보다 훨씬 화려하다고 연신 감탄을 한다. 소생이 보기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벡사이가 조금 날리게 화려하다면 돌마는 약간 진중하게 화려한 느낌이다. 내부장식에 금 14톤, 은 40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진짜 금을 많이 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금 14톤이면 도대체 얼마인가 궁금하다. 별로 할일도 없는 소생이 여러분을 위해 계산해 봤다. 금일 금시세는 1g이 42,374원이다. 그럼 1kg는 42,374,000원이고, 1톤은 42,374,000,000원이고, 14톤은 593,236,000,000원이다. 은은 국제시세가 없는 모양이다. 오늘자 전국 도매가가 1g은 592원이다. 그럼 1kg은 592,000원이고 1톤은 592,000,000원이고 40톤은 23,680,000,000원이다. 금값에 비하면 껌값이다. 합계 6169억원. ‘유럽의 환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수명이 별 쓸데없는 궁전 건축으로 더욱 단축되었다는 말이 허사는 아닌 듯하다. 일종의 하우스푸어다. 폼 나는 집 한 채 장만하려다가 집구석이 콩가루가 되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우리는 좋은 구경한다.

 

소국의 작은 궁전이나 저택 말고 제국의 정궁이 이렇게 바닷가 해안에 착 달라불어 지어진 경우는 소생이 알기로는 베네치아의 총독관저인 두칼레 궁전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것 같다. 견문이 일천한 소생이 뭘 모르는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풍으로 인한 부식 등으로 건물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줄은 모르겟지만 어쨌든 풍광 하나는 끝내준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노를 저어라 뱃놀이 하기도 그만이고 유사시에 여차하면 배타고 망명도생하기도 제격이다.

 

소생이 알기로 돌마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와 수정 계단일 것이다. 특히 수정계단은 이채롭다. 이런 건 처음 보는 듯 하다. 계단 난간대를 받치고 있는 길이 70~80cm가량의 기둥이 모두 수정으로 만들어졌다. ‘바카라’ 크리스탈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한마디는 나도 알아들었다. “all cristal, not glass” 그랜드 홀(대연회장)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샹들리에가 걸려있다. 이 거대한 샹들리에는 무게가 자그마치 4.5톤이고, 등이 750개나 된다. 보헤미아 크리스탈로 만들어졌으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했다

 

‘바카라’는 ‘스와로브스키’에 필적하는 프랑스의 명품 크리스탈 브랜드다. 1764년 유리공장으로 시작해서 1817년 크리스탈 생산회사로 변신했다. 18~19세기 유럽의 여러 궁전과 대저택에 샹들리에나 촛대, 꽃병 등 다양한 크리스탈 제품을 납품했다. 한편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은 크리스탈 산지로 유명하다. 보헤미아 크리스탈은 17세기부터 시작해서 18세기 패션 주얼리와 샹들리에 제품으로 유럽시장을 장악했다. 특히 보헤미아 샹들리에는 18세기 중엽 유럽 귀족사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파리와 빈의 여러 궁전에 설치되었다. 뉴욕 카네기홀, 크렘린궁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궁에는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가 설치되어있다고 한다. '스와로브스키'는 오스트리아 브랜드라고 알려져있지만 창업자 스와로브스키는 바로 보헤미아 출신이다.

 

영국 여왕이 거대한 샹들리에를 선물했다고 하니 문득 열국지의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전국시대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죽으면서 오나라와 월나라는 철천지 원수지간이 된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절치부심 끝에 복수전에 성공하여 월왕 구천을 포로로 잡는다. 구천은 오나라 왕실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며 오왕 부차의 똥까지 먹는 등 거짓 충심을 보여 구차하게 살아남는다. 구천은 나중에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와서 와신상담한다.(땔나무 위에 누워자고 쓸개를 빨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아시다시피 와신상담의 고사는 여기서 나왔다.)

 

귀국한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거대한 들보 기둥을 선물로 보내는데, 겉으로는 들보로 쓰기에 너무나 좋은 제목이 있어 대왕께 보낸다고 하지만 속내는 다른 곳에 있다. 그 들보에 맞춰 궁전을 지으려면 거대한 규모가 될것이고 대규모 토목공사는 결국 민심이반과 국고탕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꿍꿍이다. 오왕의 자만을 방조하고 사치를 조장한다는 계략이다. 영국 여왕에게 저런 꿍꿍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거대한 샹들리에를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월왕 구천은 복수에 성공하고 부차는 전쟁에 패하여 죽는다. 들보 이야기가 월왕 구천 이야기가 맞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하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용은 아래 책들을 참고했다.

 

 

 

 

 

 

 

 

 

 

 

 

 

 

 

시계탑이다.

 

시계탑을 지나면 궁전의 출입문인 술탄의 문이다.

 

술탄의 문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 비슷한 행사가 있었다. 

 

궁전앞 분수대는 공사중이어서 물이 다 빠지고 없다. 

 

분수대를 지나면 궁전의 육지쪽 정면 모습이다. 조촐해 보인다.  

 

 궁전은 보스포러스 해협에 바로 면해있다.

바다쪽으로는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는 이런 문이 몇 개 있다.

 

 궁전의 측면 모습이다.

 

바닷쪽에서 바라본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습

 

 그랜드 홀의 거대한 샹들리에. 돌마바흐체 궁전  책자에 나오는 샹들리에를 찍었다.

 

수정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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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28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료 사진도 좋지만, 실제로 보고 오신 붉은돼지님의 사진이라서 여행지의 생생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구경 많이 했습니다.
붉은돼지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붉은돼지 2015-10-29 10:13   좋아요 2 | URL
다녀와서 사진을 보니 찍기는 엄청 찍었는데 잘 나온게 별로 없더라구요...
또 다녀와서 정리하며 돌이켜 보니 못보고 놓친 것들도 많구요..ㅜㅜ

북다이제스터 2015-10-28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 다른 곳 수백장 찍고 왔는데, 붉은돼지 님처럼 정리가 잘 안 되네요 ㅠ

붉은돼지 2015-10-29 10:15   좋아요 1 | URL
다이제스터님도 천천히 정리하세요....
저는 이스탄불 다녀온지 두달이 넘었는데 아직 정리하고 있어요
정리하면서 복습을 하니 공부도 좀 되고 놓친 것들도 많아 아쉽기도 하고 그렇네요 ^^

챔피언 2015-10-30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시무시한 화려함입니다^^ 다음달부터 이사가는집 인테리어 한달간 할 예정인데, 집사람에게 꼭 구천이 보낸 대들보 이야기를 해줘야겠습니다. 요즘 안티크 가구에 꽂혀가지고, 가구에 맞는 인테리어를 시도한다는데, 후덜덜 합니다.

붉은돼지 2015-11-01 18:13   좋아요 1 | URL
저도 엔틱 좋아합니다 ^^
구천이 대들보 이야기는 안하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 ㅋㅋ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에서 예니 모스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도보로 20여분 정도다. 예니 모스크 바로 옆이 이집션바자르다.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에서 예니 모스크 가는 길에도 작은 시장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시장 안에 작은 모스크도 하나 있다. 아래층은 시장의 일부고 윗층은 사원이다.

 

 

유럽을 다녀봐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노트르담 성당이니 성 베드로 성당이니 하는 것들을 보게되면 “이햐~ 진짜 멋지네.”, “우와~ 정말 대단하다.”하면서 놀란 눈은 계속 껌뻑껌뻑거리고 입은 저절로 떡! 벌어지면서 연이어 바보 도 터지는 소리가 허파 깊은 곳으로부터 새어나온다. 처음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을 받지만 조금만 다녀보면 이놈이 그놈 같고 그놈이 이놈 같다. 점차 시큰둥해지면서 왠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놀라움에도 서서히 면역이 생긴다. 인간에게 초심 유지는 실로 지난한 과업인 것이다.

 

 

모스크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스탄불 첫 날에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를 보고 나니 그 뒤로는 역시 저놈이 이놈 같고 이놈이 저놈 같다. 뭘 모르는 놈이 보기에 술래이마니예 모스크나 예니 모스크나 다 그놈이 그놈이다. 다른 게 있긴 있다. 예니는 첨탑이 두 개고 술레이마니예는 네개다. 예니 모스크는 사원의 석재가 불에 탄 듯 검게 거을려서 조금 지저분해 보인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어째 조금 빵빵하다(?)는 그런 느낌이다. 1597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663년에 완공되었다.

 

 

예니 모스크 바로 옆이 이집션 바자르다. 인간들이 엄청나게 많다. 바글바글하고 와글와글하다. 어디 발 디딜 틈이 없는데 가만히 서있으면 등이 떠밀려서 저절로 앞으로 슬슬 전진한다. 이집션 바자르는 향신료, 허브, 오일, 견과류 등을 중점적으로 파는 전통시장이다. 1663년에 예니 모스크의 부속건물로 지어졌다. 당시 이집트에서 들어온 수입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내면서 큰 바자르로 성장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로쿰, 견과류, 올리브 비누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그야말로 가지각색 형형색색이다.

 

 

흔히 '터키쉬 딜라이트(터키 젤리과자)'로 알려져있는 ‘로쿰’은 15세기부터 내려오는 오스만 궁정의 디저트다. 설탕과 녹말가루에 젤라틴을 넣고 끓이다가 과일 에센스나 장미수를 첨가한다. 호두와 피스타치오,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넣은 것도 있다. 18세기 하지 베키르란 사람이 에미뇌뉘에 가게를 열고 왕실에 납품하던 로쿰을 시중에 팔기 시작하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탄불 시내에 관광객들이 다니는 왠만한 거리의 가게에는 다 로쿰을 판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C.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옷장 속으로 들어난 네명의 소년소녀 중에 나중에 ‘정의로운 왕’이 되는 에드먼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터키 젤리‘로쿰’이다. 이야기 초장에 에드먼드는 하얀 마녀가 내미는 터키 젤리의 유혹에 넘어가서 친구들을 배신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에드먼드는 입 주위에 허연 가루를 묻혀가면서 이 터키 젤리를 허겁지겁 먹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맛은 어떤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을 보면 ‘진짜 할바를 찾아서’라는 에세이가 나온다. 마리는 헝가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에 러시아에서 온 친구가 가져온‘할바’라는 과자를 한 입 얻어 먹고는 그만 그 맛에 홀딱 반하고 만다. 이렇게 맛있는 과자는 난생처음이란다. 그 뒤로 오랜 세월 동안 할바를 찾아 헤메게 되는데, 이 할바와 제조법이나 맛이 비슷한 터키쉬 딜라이트 ‘로쿰’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영국에서 실제로 터키쉬 딜라이트를 먹어본 일본인은 모두 ‘그딴 건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라고 질색했으며, 어떤 추리소설에는 ‘끈적끈적하고 텁텁한 단맛’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소생이 먹어본 로쿰의 맛이 바로‘끈적끈적하고 텁텁한 단맛’이었다. 물론 소생이 하고 많은 종류의 로쿰 중에 하필 이상한 맛의 로쿰을 먹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마리가 오랜세월 찾아 헤멘 끝에 알아낸 ‘할바’라는 것은 ‘중앙아시아 등에서 먹고 있는 달콤한 과자로 이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할바 기술자는 간다랏치라고 불리는 특별한 요리인으로 그 제조법은 기억과 실천에 의해 대물림 되었다. 기술자들이 손수 만드는 할바가 아직 남아 있는 곳은 이란, 아프카니스탄, 터키뿐이다. 할바의 성분은 단순하다. 설탕과 꿀, 유분이 많은 재료(아몬드 등의 땅콩 종류나 해바라기 씨, 참깨 씨), 녹말가루, 향료 등이다. 할바에 대한 마리씨의 결론은 ’우선 일정한 밀도와 끈기와 온도가 될 때까지 재료에 거품을 낸 결과요, 이렇게 해서 생긴 거품을 섞은 다음 저어가며 식히는 기술‘이다. 로쿰이 할바는 아니지만 혈연관계에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스탄불을 이미 다녀온 지금에 와서 찾아본 여행가이드북 〈이스탄불 홀리데이〉에도 ‘할바’가 나온다. 터키에서는 ‘헬바’라고 표기하는데 ‘터키의 디저트로 생선요리를 먹고 나서 꼭 찾는다. 참께와 설탕을 함게 졸인 것에 호두와 잣등의 견과류를 곁들려 먹는 디저트다’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먹어보지는 못했다. 마리여사가 그렇게나 맛있다고 하니 한번 먹어보고는 싶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예니 모스크 전경

 

 

 

 

 

무슬림들은 보기에는 털이 부숭숭하니 조금 지저분해 보여도 사실은 청결에 대단히 민감하다.

사원에 기도하러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수도에서 얼굴과 손과 발을 씻는다. 모스크에는 몸을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이 반드시 구비되어 있다. 

 

 

 

이집션 바자르.

 

 가지각색 형형색색의 로쿰

 

 각종 향신료 및 견과류

 

 올리브 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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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19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니아 연대기를 처음 읽었을 때, 저 젤리가 궁금했던 기억이 나요.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해서, 붉은돼지님의 사진을 구경합니다.^^ 사진속 올리브 비누도 색이 다양하고 예쁘게 보입니다.
붉은돼지님, 편안한 월요일 보내세요.^^

붉은돼지 2015-10-20 09:00   좋아요 0 | URL
저도 터키쉬 딜라이트 `로쿰`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요...
먹어보니... 뭐,,,,별로 제 입맛에는 안 맞는 것 같아요^^
하여튼 가게마다 로쿰이 정말 많긴 많더라구요~

살리미 2015-10-19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남편이 터키로 출장 다녀온 직원에게 터키쉬 딜라이트를 선물받아서 갖고 왔길래, `이게 뭐야?` 했더니 `찹쌀떡` 그러더라고요 ㅋㅋㅋ
자기는 맛보고 터키 찹쌀떡인줄 알았대요...ㅋ
제가 먹었던 건 아몬드랑 코코넛맛이나서 나름 맛났는데... 시장에 저렇게 쌓여있는거 보니 신기하네요^^

붉은돼지 2015-10-20 09: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ㅎㅎ 터키 찹살떡 비슷해요 ㅎㅎㅎ
밀가루같은 하얀가루도 묻어있고 약간 끈적끈적한 찰기가 있으면서 좀 텁텁한 것이.....
제가 먹은 건 그냥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로쿰인데....견과류 들어간 것은 좀 더 맛있을 것 같아요 ^^

cyrus 2015-10-19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누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처음에 저게 과자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붉은돼지 2015-10-20 09:03   좋아요 0 | URL
올리브 오일로 만든 비누가 너무 색상도 곱고,.....또 천연소재라서
아내가 몇 개 사와서 지금도 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해피북 2015-10-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달달한걸 좋아하는 편이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지는데 사진을 보니 한줌 집어먹고싶어 집니다ㅎ 붉은돼지님 덕분에 터키쉬 딜라이트를 알게되었어요 ㅋ

붉은돼지 2015-10-20 10:05   좋아요 0 | URL
로쿰은 그냥 선물포장된 것 보다 시장에서 저렇게 파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냥 작은 상자에 포장된 것을 구입했는데...맛이 영 별로였어요...ㅜㅜ

보슬비 2015-10-21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터키 친구에게 선물로 받아 먹어봤는데.... 우리 옛날 젤리들이 생각났어요. 생각보다 저도 별로...
그리 이태원에도 터키 디저트 파는 곳이 있는데, 원래 한개만 먹어도 되는것을 종류별로 골라서 먹다가 완전 달아서 죽을뻔했어요. 종류별이지만 다 달아서 어떤 맛인지 구분도 안되더라구요. ㅋㅋ

붉은돼지 2015-10-22 09:44   좋아요 0 | URL
어머 보슬비님은 터키 친구도 있고 좋으시겠어요 ㅋㅋㅋㅋ
저도 로쿰은 텁텁하니....달긴한데 뭔가 제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ㅋㅋ

 

 

그랜드 바자르를 나와서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로 향한다. 그랜드 바자르 서편이 이스탄불 대학이고 골든혼 쪽으로 조금 가파른 언덕 길을 올라가면 술레이마니예 모스크가 나타난다. 오스만의 대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작품이다. 모스크는 술레이만 대제 즉위 30주년을 기념해 1550년에 착공되어 1557년에 완공되었다. 본당의 크기는 가로 69m, 세로 63m이고, 돔의 높이는 53m로 돔 직경의 두배로 만들었다고 한느데, 그 직경은 책마다 다르다. 27m, 27.5m 27.25m 제각각이다.

 

길쭉한 첨탑들을 사원의 네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첨탑 중 두 개는 발코니가 2층 구조이고 나머지 두 개는 발코니가 3층 구조이다. 발코니는 모두 합해서 10개로 술레이만이 오스만제국의 제10대 술탄인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내부의 벽을 장식하는데 막대한 수량의 이즈니크 타일이 소모되었다. 이즈니크에서 타일을 주문한 최초의 대규모 건축공사였다.

 

모스크는 담장으로 두른 거대한 경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뒤편에는 정원처럼 꾸며진 묘지가 있다. 술레이만과 록셀란의 묘소가 여기에 있다. 시난은 자신의 묘자리도 여기에 마련했다. 모스크 담장 바같쪽 한 귀통이에 조그마하게 자리잡고 있다. 터키의 한 작가는 시난의 묘를 가리켜 커다란 유화 한 구석에 보일듯 말듯 적혀 있는 사인 같다고 했다.

 

시난은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의 건설을 맡았을 때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겨울철에는 25000명의 제국 정예부대 대원과 갤리선 노예를 건축 노동자로 부렸다고 한다. 보통 모스크를 중심으로 하여 학교, 병원, 무료 급식소, 목욕탕, 카라반 사라이(상인들 숙소). 시장 등 다양한 부속시설이 지어져 복합단지를 이룬다. 이를 퀼리에 라고한다. 술래이마니예 모스크는 복합단지 형태가 남아있는 몇 안되는 모스크인데 현재 부속 건물들은 식당이나 기념품가게가 되었다.

 

모스크는 골든혼과 보스포르스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바다 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멋지다. 또 갈라타 타워에서 보는 술래이마니예 모스크의 우뚝 솟은 첨탑은 흔히 이스탄불 최고의 센셋 풍경으로 꼽힌다.

 

 

미마르 시난은 나이가 97세라고도 하고 99세라고 하고 100세라고도 한다. 책마다 다르다. 인터넷 위키에는 생몰연도를 1489-1588로 표시하고 있다. 우리나이로 100살이다. 시난의 묘는 술래이마니예 모스크 담장 밖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소생이 소생의 두 눈으로 본 시난의 묘 안내판에는 생몰연도가 1490-1588로 되어있다. 그런데 안내판 내용을 자세히 보면 또 1492-1588로 또 표시되어 있으니, 아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런 오기가 있을 리가 없고,....그렇다면 여기에 과연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아둔한 소생은 알길이 없다.

 

나이가 99100이든 하여튼 장수만세임에는 틀림없다. 시난은 술래이만 대제, 셀림 2, 무라드 3세 이렇게 세명이나 되는 술탄들의 제위기간 동안 제국과 궁정의 건축을 책임지고 있었다. 미마르란 바로 건축가라는 뜻이다. 흔히들 오스만의 미켈란젤로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시난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뭐 크게 기분이 좋지는 않을 듯하다.

 

시난은 아나톨리아 중부의 카이세리에서 태어났다. 1512년에 오스만 군대에 징집되었다. 비엔나 공방전 등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특이 공병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등 군대 내에서도 승승장구했다. 1538년 궁정 건축가로 임명된 이후로 수많은 건축물을 세웠다. 477채의 건축물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중 196개의 건물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1539년 술래이만이 총애하는 록셀란을 위해 지은 하세키 퀼리에는 그가 세운 첫 번째 건물이다. 1550-1557년 사이에는 술레이마니에 모스크를 지었다. 시난의 최고 걸작으로 칭송받는 건축물은 그가 80대에 완성한 에디르네에 있는 셀리미예 모스크다.(1569-1575) 나이도 그렇고 작품의 양과 질에서 있어서도 오스만 역사상 아니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공전절후한 건축가다. 이런 인물에 대한 단행본 도서 한 권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안타깝다. 정치, 종교 분야외에 예술적인 부분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시난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집구석에 있는 '캠브리지 이슬람사', '이슬람 미술(한길아트)', '이슬람 미술(예경)', '이스탄불 기행' 등을 이리저리 뒤적거려 봤지만,,,,, 시난 묘지 앞에 붙은 안내판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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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슬리퍼를 질질끌며 동네 시장통을 어슬렁거리길 좋아했다. 마치 자신의 영토를 순시하는 한 마리 호랑이처럼....은 당연히 아니지만....어쨋든 그랬다. 시장 끄트머리에 오락실이 있었던 것도 아마 이유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아아아!!! 생각난다. 인베이다, 겔러그.... 아마 인베이다 아는 사람은 잘 없을걸요??? 궁금하죠?? 호호호

 

 

시장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 뽁짝뽁짝하고 와글와글하면서 뭔가 옴짝옴짝하고 움찔움찔거리는 그 느낌. 시장은 전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 혹은 거대한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꿈틀거리는 벌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내 속에서도 뭔가가 꿈틀거리고 혈관 속의 피들이 불뚝거리면서 뭔지 모르게 흥분되는 그런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어린 돼지는 그런 찌르르한 느낌이 좋았던 모양이다. 무슨 변태같다.

 

 

아!!!!! 시장하면 소생의 어둡고 깊은 무의식의 난바다에서 북조선이 갑자기 쏘아올린 대포동 미사일처럼 불뚝 솟아오르는 것이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 그렇다. 중학교 때인가 언제인가 하여튼 이성에 처음 눈뜨는 그 시기에... 장정일 식으로 말하자면 아담이 눈뜰 때... 나도 모르게 그만 눈이 떠져서(나이 80 넘어 자다가 아침에 눈뜨면 할망구한테 귀때기 맞는다고 하던데... 너무 그러시지들 마세요... 눈이 저절로 떠 지는데....죽은 척 할 수도 없고 어쩔수 없잖아요....뭐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문득 생각나서...) 시장 통에서 운명적으로 나스타샤킨스키를 목도하고야 만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어쩌다 보니 또 하게 되었네요..

 

 

나스타샤 킨스키가 아무리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도 극동의, 한반도의, 남반부의, 한 직할시의, 변두리의, 작은 시장통에 나타날 일은 하늘이 두서너쪽으로 쪼개져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말인즉슨 그녀와 몹시 닮은 소녀가 나타났다는 그런 말이다. 혹시 물정 모르시는 분들이 ‘아니 나스타샤가 어떻게???“ 하실까봐 부언합니다. 역시 늙으면 별 걱정이 다 드는 모양이군요. 허허허. 소생은 시장통의 그 소녀를 ’나타났다 킨스키‘라고 명명했다고 이야기 했었죠 아마.

 

 

그럴진대 그 나스타샤는 그냥 나스타샤가 아니다. 〈캣피플〉이나 〈파리 텍사스〉에 등장하는 나스타샤가 아니라 바로 〈테스〉에 나오는 그 나스타샤 인 것이다. 나스타샤가 〈테스〉를 찍을 때의 나이가 18세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영화는 아아아아!!! 바로 음흉한 로만 폴란스키 그놈이 찍었다고 한다. 화가 났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놈이 그래 생겨먹어도 나의 나스타샤에게는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으리라 그리 생각할 뿐이다.

 

 

 

 

 

 

 

 

 

 

 

 

 

나타났다 킨스키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하루이틀사흘 눈이오나 비가오나 밤이나 낮이나 시장통을 왔다리 갔다리 어슬렁거리던 나날이 과연 몇 날이었던가? 어쩌다 한번 스쳐가듯 보기만 해도 떨리는 가슴을 감당못해 돌아서서 심호흡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소년은 이제 한 마리 붉은 돼지가 되어 꿀꿀거리고 있다. 아 슬픈 일입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그 소녀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궁금하군요...

 

 

각설해야한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이야기를 할려다가 이야기가 너무 나갔다. 나간 길이 멀면 돌아가는 길도 아득해야 하는데 말이나 글은 속도가 열나 빨라서 이건 휙 돌아서면 바로 본론이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첫사랑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자!!! 이제 수업 시작’ 하는 분위기 알죠??? 흥흥흥. 그렇다. 이제는 공부할 시간이다.

 

 

그랜드 바자르의 역사는 정복자 메흐메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하루에 20만~40만명이 방문하는 초대형 시장이다. 면적은 45000㎡, 64개의 거리에 3600여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출입구가 20개라고 하는데 소생은 15번게이트까지 봤다. 작은 골목과 골목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소생같이 공간 지각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길 잃어버리고 왔던 길 또 오고 갔던 골목 또 가기 십상이다. 터키인들은 이곳을 카팔르 차르쉬라고 부른다.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바닥에도 타일이 깔려있고 천장도 높아 마치 큰 백화점 내부를 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상점 외에 모스크, 은행, 목욕탕, 카페, 경찰서, 우체국 까지 있어 시장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길드를 중심으로 포목상, 금은방, 가죽, 실크, 카펫 취급정 등이 동일품목 취급하는 상점들이 한 곳에 몰려있었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념품점, 의류판매점 등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서 있어 과거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다소 변형되었다고 한다. 시장은 처음에는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어서 수차례의 화재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다. 1701년의 화재사고 이후에는 상점을 벽돌과 돌로 재건하는 방안이 대두되어 현재 바자르의 모습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지진으로 여러차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둘러봐도 특별히 살만한 게 없어 구입한 물건은 없다. 아! 혜림씨 장난감으로 팽이를 2개 구입했다. 팽이는 주로 꼬마들이 팔고 있다. 처음에는 1개에 10리라를 부르더니 ‘노’라고 하자 5리라. 3리라까지 가격이 하락했다가 나중에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원 리라’라고 소리지른다. 원리라는 장난이리라. 나중에 2개 5리라에 구입했다.

 

 

아아아! 그랜드 바자르 옆에 헌책방 거리라고 있다. 소생은 혹시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그냥 헌책방 거리다. 책방이 많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않았지만 관광 기념품과 중고도서를 파는 듯하다.

 

 

그랜드 바자르의 정문

 

 

 

 

 

 

 

헌책방 거리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구입한 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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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10-03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곳 시장에서 검정색 빵덕 모자를 5~6개 흥정해서 산 적이 있습니다. 흥정하는 맛이 쏠쏠했던 기억이 나네요.^^

붉은돼지 2015-10-04 15:13   좋아요 0 | URL
흥정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아
선뜻 뭘 사기가 꺼려지더군요

사실 뭐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5-10-0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시장에서 파는 등 색깔이 넘 예뻐요. 어릴 때 EBS에서 해주는 테스 영화보고 주인공이 넘 예쁘다 생각했었는데. 소년의 눈에는 어마어마하게 예뻤겠죠?ㅎㅎ 저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 영화는 참 좋아하는데 워낙 파렴치한 짓을 많이 저지른 인간이라 영화를 보고 있으면 복잡한 심경입니다.ㅠㅜ

붉은돼지 2015-10-05 09:52   좋아요 0 | URL
얼마전 해외뉴스를 보니 폴란드 법원이 로만 폴란스키의 미국 인도 결정을 10월로 미루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폴란스키는 1977년 미국에서 13세 소녀에게 약물을 먹인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유럽으로 도망쳤죠... 한번은 스위스에서 체포되었느데 스위스는 폴란스키를 미국으로 보내지 않고 풀어줬다고 하더군요.....거의 40년 전 일이군요...ㅜㅜ

인터넷을 보니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나스타샤 킨스키가 초대되었습니다.
환갑을 앞둔 여배우는 아직 예전의 미모를 잃지는 않았지만...
하지만....아아아아!!!.. 저절로 탄식이 터져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ㅜㅜ


transient-guest 2015-10-05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보다 예전 시장의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만, 일부 상인들의 불친절함이나 함부로 쓰는 반말은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대기업형 마트보다는 시장이나 소규모 마켓이 잘 될수록 중산층도 탄탄해지고, 보통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건 전 세계적인 숙제 같습니다. 터키. 정말 가보고 싶네요.ㅎ

붉은돼지 2015-10-05 09:5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우리나라도 전통시장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동네의 작은 시장도 이제는 거의 지붕이 설치되어 있구요...상품권이나 카드 사용 가능한 곳도 많습니다. 대구만 해도 칠성시장 같은 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긴 한데요...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마트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06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 소생은...... ˝ 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문장은 이미 붉은돼지님의 스타일로 고정이 된 것 같습니다.. ㅋㅋㅋ

붉은돼지 2015-10-06 15:23   좋아요 0 | URL
뭐,,,한때는 `소첩`으로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나가는 것 같아서 관뒀어요...
소첩으로 하면 호호호 혹은 홍홍홍 거리기도 좋고 그렇긴한데....좀 방정맞은 것 같기도 해서......ㅎㅎㅎㅎㅎ

감은빛 2015-10-0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장통의 나스타샤 킨스키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는 하나도 안 궁금해요.
어서 더 들려주세요!!

붉은돼지 2015-10-07 16:06   좋아요 0 | URL
뭐 궁금하실 것도 없어요...^^

소심한 어린 돼지는
말 한마디 못 붙여보고
눈도 한번 못 맞춰본 것 같아요
헛되이 부질없이
시장통만 서성거리다가..
끝...

한심하죠 ㅜㅜ
죄송해요 감은빛님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