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어들어도 여행 관련 서적이 먼저, 수많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것도 여행 서적이 대부분. 한달씩 여행을 해도 아쉽기만 하고. 가보지 못하고,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을 책으로나마 풀다보니 마이산 돌탑처럼 책탑이 쌓인다. 다음은 요즘 쌓고 있는 책탑 중 몇 권.
뒷간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여행안내책이 꼭 그렇다. 여행을 앞두고 다급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에 끌어안다시피 책을 들이지만 여행이 끝나면 흔적없이 사라져버려도 다시는 찾지 않게 되는 책이 여행가이드북이다. 90년대 초반, 일본 것을 번역한 <세계를 간다> 시리즈를 아시는지. 이후로 자고 일어나면 우후죽순처럼 여행안내책자들이 세상에 나왔으나... 아날로그 세계에서 도저히 떠나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내 딸은 가이드북 없이 비행기에 잘만 오른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여서 나는 아직도 여행은 가이드북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럴듯해 보이는 가이드북 중에는 급조된 책들도 많아서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한다. 여행이 끝나면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게 가이드북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그래도 그 운명에서 살아남는 책이 한두 권쯤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바로 이 책이 그렇다.
각 지역별로 소개된 숙소 중 첫번째로 등장하는 호텔은 특히 믿을 만하다. 중저가의 요금, 친절한 직원, 좋은 입지 등 책 그대로 였다. 물론 그 호텔에서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은 이 책의 존재를 모른다. 책을 보여주면 누가 요즘에 책을 보고 여행하느냐는 표정을 짖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훌륭하다. 대단히 친절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내가 여행한 세 지역 중 두 지역의 호텔을 이 책을 보고 잡았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나머지 한 지역의 호텔은 이 책에서 가볍게 언급한 곳으로 역시나 가벼운 곳이었다.
저자는 안진헌. 22년 전 이 분의 지도(?)하에 방콕, 캄보디아, 베트남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의 든든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건투를 빌어요, 안진헌 님.
소설가 최민석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소설이 아닌 기행문을. <베를린 일기>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어떤 여행 동지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40일간의 남미일주>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여행을 앞두고, 남편을 위해 한 권 구매했다. 묘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도 어떻게든 사게 되는 것이 이 분의 책이다.
마드리드 레지던스에 교환작가 프로그램으로 3개월 간 머물면서 생활한 이야기인데 기대한 만큼이나 재밌게 읽었다. 그래, 책은 일단 재밌어야 돼. 작가의 순도 높은 너스레에 기분이 홀가분하고 유쾌해진다. 배울만 하다.
김호연 작가 역시 최민석 작가가 머물던 마드리드 레지던스에서 3개월을 보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호연 작가가 머물던 곳에서 최민석 작가도 머물렀다. 순서가 그렇다. 최민석 작가의 책을 읽고 내친김에 읽게 된 책이니 내 순서로는 최민석 작가가 먼저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했으니 자연적으로 비교하게 되는데...자신의 내면적인 이야기보다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하여 얘깃거리가 풍부한 쪽이 읽기에는 더 낫더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 글을 쓰는 행위보다 읽는 행위는 가볍고 가벼우니.. 독자는 요렇게나 변덕스럽고 가볍다.
포르투갈 포르투 체류기. 머물면서 매일 그림 그리고 글 쓴 이야기인데 읽을수록 빠져든 책.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분의 성실한 성찰기.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맑은 책.
오전에 쓰기 시작한 페이퍼를 점심 먹고 이어서 쓰자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기력으로 무엇을 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