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류 이야기를 한 적이 엇그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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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이끼와 지의류를 겨우 구분하게 되었는데, 바로 마당 축대에 지의류가 있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축대를 쌓은 지 20년도 더 되었는데 말이다. 무관심과 무지의 상호작용이랄까. 제 앞마당에 있는 것도 모르면서 멀리 떨어진 마운트쿡, 나가사키의 지의류가 눈에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낯선 감각을 깨우듯 익숙한 곳에서도 낯선 감각을 벼리며 깨어 있어야겠다. 가까이에 있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대접하기. 오늘도 깨닫는다.




액자로 만들어서 벽 한 면에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상화이면서 추상화 같은 느낌이 난다. 어떤 생각이 몽글몽글 자라날 것 같다.



확대하면 더욱 묘한 감상에 젖는다. 처음, 작은 알갱이를 둘러싼 진한 테두리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누군가 손으로 테두리를 그린 것처럼 보였다. 저건 또 뭐지?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끝선명접시지의'라고 한다. 끝이 선명한 접시 모양의 지의류.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든 책. 물론 구할 수는 있다. 18,000원짜리를 중고로 66,000원과 68,000원에 팔고 있다. 다행히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었는데 일반자료실이 아닌 서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어서 직원에게 요청해야 했다. '지의류라는 낯선 이름의 생물이 나무껍질, 바위, 흙 위에서 이끼처럼, 먼지처럼 살고 있다'(책 뒷표지에 있는 소개글). 먼지 같은 존재를 다룬 먼지 같은 책. 먼지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나 눈에 들어오는 책. 그래서 비싼 책. 그런 날이 올까? 갑자기 사람들이 지의류에 대해 거대한 관심을 보이는 날이. 새 덕후처럼 지의류 덕후가 생기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고 앞날은 알 수 없으니까. 지의류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다보니 별의별 잡념이...

찾아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화가가 있어서 지의류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전시회도 열고 있었다. 그림은...내 짧은 견해로는 예쁘고 우아하고 아름답긴 하나 욕심 혹은 과욕이 엿보였다. 뭔가 덜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나 할까.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시길...


p.130

일본이나 한국의 석이는 식용지의류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외국의 지의류 연구자들 중에도 석이 요리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식용지의로는 석이 외에 원형끈지의, 영불지의 등이 있다. 특히 석이는 옛날부터 일본인에게 친숙하여 에도(도쿠가와 막부)시대 전기에 편찬된 <용리이야기>에도 소개될 정도이다.


검색해보았다. 석이 버섯과 목이 버섯의 차이점은, 석이는 지의류로 인공 재배 불가, 목이는 담자균류(버섯)로 인공 재배 가능.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위는 지의류, 아래의 초록색은 이끼. 이끼는 식물,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의 복합적인 생물.



책 날개에 소개된 저자. 텐트에 주렁주렁 달린 주머니가 인상적이어서, 내 책이 아니어서 사진을 찍었다. 저 하얀 주머니에는 건조 중인 채집품이 들어 있다고 한다. 덕후라면 저 정도쯤 되어야 세상이 꿈쩍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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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미술 작품 같네요.

nama 2026-08-14 09:48   좋아요 0 | URL
볼수록 예술 작품 같지요. 인간들은 그저 흉내내기를 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지요.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안개 낀 시절>에 나오는 강렬한 한 문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화면 속의 청년은 그래서 죽음에 이르고 그의 주검을 거두기 위해 어린 여동생이 여행에 나선다는 줄거리. 


키르기스스탄 작가인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에도 모난 돌이 정 맞는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죽음에 이른다. 어린 자녀들에게 남길 회고록에 진실을 기록했다는 죄목으로.


이런 글을 쓰려면 에어컨이라도 끄고 끄적거려야 되는 거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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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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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작가의 카자흐스탄 배경 소설. 광대하고 황량한 스텝 지역의 외딴 간이역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처절하고 애틋하고 끈끈한 인생살이 이야기에 SF의 우주 정거장과 외계인이 등장하는 병렬 구조. 중앙아시아 이해와 공부에 도움이 되면서 무더위를 잊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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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요일마다 꼭 하는 일이 있다. 한겨레신문에서 김진해의 <말글살이> 칼럼을 찾아서 읽기다. 오늘 제목은 '되묻기'.


' 예컨대, 누군가가 미워질 때, 뭔가에 즐거움을 느낄 때, 화가 치밀 때, 다시 말해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되물어보라. "그게 그렇게 미워할 만한 일인가? 그게 그렇게 즐거워할 만한 일인가? 그게 그렇게 화낼 만한 일인가?" 공식처럼 이런 문장을 되뇌는 순간, 조금 전까지 당연했던 내 판단은 다시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

 우리는 대개 자기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남은 쉽게 틀렸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늘 옳다고 생각한다. 되묻기는 그 자명함에 금을 낸다. 자신에게 되묻기를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고집스러운 꼰대에서 유연한 어른 쪽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2. 















수피즘에 대해서 대강 알고는 있지만 입으로는 매끄럽게 나오지 않을 설명. 이 책에서 깔끔한 문장을 만났다.


p.46~47

수피주의는 종래의 현학적이고 이론적인 정형화에 맞서, 명상과 몰아의 체험을 통해 절대자에게 다가가려는 대중적 종교 운동이었다. 수피 사상의 요체는 존재의 통일로서, 모든 피조물은 유일한 정점인 알라에 귀속되고, 가장 완벽한 피조물인 인간은 알라의 한 작은 부분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수피라 불리는 수피주의자들은 세속적,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정화시킴으로써 그 안에 절대자(알라)가 도래하기를 기다렸다. 또 수피주의 현자들은 형이상학적인 이성을 통해서가 아닌, 무한한 명상과 영감의 길을 통해서 존재의 실체, 즉 알라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신양섭 2000: 26).


수피즘 창시자인 메블라나 루미(1207~1273)의 7가지 교훈도 음미할 만하다.


* 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


3. 














이웃서재 님의 글을 읽다가 흥미가 당겨 읽었는데, 한여름 무더위에 몰입하기 알맞은 책이다. 

과거 일본의 무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면서 더위를 잊는 것도 좋고. 그게 그렇게 고결한 세계였나?


p.305

 이제는 알겠다. 성 내에서 신고와 칼부림 사태를 벌였을 때 자신은 아무런 각오도 없었다. 그때는 할복해야 할 것이 두려워 그저 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무카이야마 촌에서 슈코쿠를 접하며 차차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은 마음이 정하는 곳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이 향하는 곳에 뜻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렵지 않다.


p.324

 "이상한 일이야. 너는 눈에 띄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와 관여하는 자는 모두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 같더란 말이지. 마음가짐이 선한 자는 더욱 선한 길을, 마음가짐이 악한 자는 더욱 악한 길을 가는 것 같더구나."


p.336

 "미련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에 남을 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것. 이 세상이 정겹다, 떠나고 싶지 않다, 이리 생각하며 가야지, 그러지 아니 하면 뒤에 남는 자들이 힘드네."

 (중략)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미련 없이 저세상으로 간다고 해서는 설익은 깨달음이라고 욕을 먹어 마땅하군요. 역시 저세상으로 가려니 가슴이 아픕니다."


4. 

산골 생활에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거저 얻는 수확이 있다. 6월에는 오디를 얼마다 줏었는지 오디잼을 대여섯 병이나 만들었다. 재작년에 심었던 봉선화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무더기 피어서 발톱에 봉선화물을 들였다. 역시 재작년에 심었던 들깨가 여기저기 씨앗을 날린 덕에 깻잎찜을 해먹고 또 해먹고 있다. 감자는 또 어떤가. 잔디밭에서 캐낸 잡초 무더기와 음식물쓰레기가 쌓여 퇴비가 된 곳에 겨울을 나며 퍼렇게 된 감자를 한 소쿠리 버렸었는데 진흙속의 연꽃처럼 파란 감자순이 올라왔다. 꽃도 피웠다. 당연 감자를 수확했다.


    



그러나 애지중지 물도 주고 약도 주고 비료도 주면서 살갑게 키우는 과일나무는 도무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사과 하나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절감하고 있다.


무더위에, 널뛰는 주식에 어찔어찔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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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막이 오른다 - 초원에서 찾아낸 12개의 이야기
김주연 지음 / 파롤앤(PAROLE&)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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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소개하는 마중물 같은 기행문으로 술술 읽히면서 관련 도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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