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앞둔 2005년 12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떤 네이버 여행 카페에 접속한 순간 짠~하고 창이 떴다. "100번째 가입을 축하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당첨 멘트에 순간 심장이 마구 떨렸다. 게다가 당첨 내역에 말문을 잊을 정도였다. 며칠 후 이런 공지가 떴다.


이번에 따리사랑에서 실시한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은 이렇게 모십니다 ....

100번째 가입히트에 당첨되신 멍멍소녀님 *^^*

1000번째 방문히트에 당첨되신 jinkijoo

1, 꽃다발과 함께하는 환영 세레모니

2, 따리에 머무시는 동안 코리아나의 최고객실 무료제공.

3, 따리에 머무시는동안 고려정에서 식사 무료제공.

4, 따리 특산품중 기념품 증정.

5, 따리에 머무시는동안 필요시 편안하고 안전한 4x4 짚차제공.

6, 창산 케이블카 왕복티켓 무료제공.

이상과 같이 즐거운 여행이 되시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합니다 ...

코리아나와 NO3는 따리의 유일한 한국인 지킴이입니다 ... 여러분들의 여행 도우미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

두분 모두 축하 드립니다 .....

(네이버 카페 '따리사랑'을 뒤져서 퍼옴.)


멍멍소녀. 초등생이었던 딸아이가 내 계정을 만들면서 사용한 아이디였다. 마침 보너스 항공권으로 세 식구가 쿤밍, 따리, 리장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저 멋진 기회를 누렸다는 것.

당첨 내역에 없는 남조풍정도 1박 2일 일정도 있었는데 귀한 대접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물론 여행 후 돌아와서, 아끼고 아끼는 여행 서적 등 100여 권을 두번에 걸쳐 국제소포로 답례를 하긴 했지만 조족지혈 수준에 불과했다. 그후 코리아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제주도에서 펜션을 한다기에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으나 거제도에서 펜션을 하고 있다는 추측성 정보만 접했다. 오늘 이 글을 쓰려고 네이버 카페를 검색하는데...이런! 기억이 가물가물. 엉뚱한 카페에 들어가서 흔적이 사라져버렸다고 아쉬워했는데 이내 하나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사장님의 근황도 발견, 잘 계셨다. 고마운 마음,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떨림과 설레임은 인생에서 여러번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베품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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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로 오며가며 읽으며 혼자서 키득거리는 맛이란... 나도 충청도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한탄하며 읽었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난 엄마는 평생 황해도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나마 몇마디 줏어들은 표현도 다 잊어버리고 오늘도 표준어에 어긋날까 자기검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놈의 띄어쓰기는 또 어떻고. 어렸을 땐 동네에 함경도에서 월남한 분이 있었는데 함경도 특유의 억양과 표현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말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어린 마음에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저 책처럼 '함경의 말들'이란 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대학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로렌스의 저 책을 드디어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1권은 도저히 책을 바르게 펼쳐 읽을 수가 없었다. 두 쪽으로 떨어져나간 책을 스태플러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책을 읽으라고 둔 건지 구색 맞추려고 둔 건지...혼자 씩씩대다가 아예 책을 구입했다. 다 읽으면 도서관에 기증할까 궁리도 해봤는데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소설도 잘 읽힌다. 한 인물의 인생 종점까지 전개되는 통 큰 스케일이 읽을 만하다. 괜히 로렌스가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도시 도서관과 시골 도서관의 차이. 도시 나름이지만, 인구가 조밀한 지역의 도서관은 사람들이 책을 어찌나 읽어대는지 낡은 책도 많고(대부분이 낡았다.) 마음먹은 대로 대출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인구소멸 지역의 시골 도서관은 출간된 지 몇년 된 책을 새책으로 만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무도 읽지 않은 새책 느낌의 헌 책을 접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 종종 자문자답에 빠진다.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던 저 책. 도시 도서관이었다면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시골 도서관에선 찾는 이가 드물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라도 읽어주지 하는 심정.
















p.91

하지만 근대를 고대와 대응시켜 벤야민 식으로 읽으면, 우리가 이제까지 역사라고 생각해왔던 문명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 퇴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실 우리에겐 이제까지 한번도 역사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으로 보면 우리가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이 반드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The Return of the Repressed) 우리는 문명사를 발전사가 아니라 억압하고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시골 도서관에서 빌린 아주 깨끗한 책. 느닷없이 벤야민을 읽게 된 건? 바로 다음 책 때문.
















잘 자란 고구마처럼 꼭지마다 꼬리를 물고 책이 이어진다. 행복한 발견. 일본 전문가들이 은근 많다.















마사오카 시키(1867~1902) 하이쿠 혁신과 단카 활성화에 큰 공을 세운 사람. 나쓰메 소세키와 동갑이자 친구. 산문에는 나쓰메 소세키, 운문에는 마사오카 시키. 


p.161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틀린 것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깨달음의 경지일까...


**마사오카 시키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용어, 일테면 1루수, 우익수, 포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한다.
















양양 출신의 소설가 이경자의 책. 양양을 소개하는 책인데...어렵다. 양양 출신만이 쓸 수 있는 책이고 양양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 같다. 책을 읽되 그 땅을 하나하나 밟아봐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터. 좀 아는 척한다면, 단양면옥은 물막국수나 물냉면보다 비빔막국수나 비빔냉면이 훨씬 맛있다. 얄팍하지 않다. 김치는 순수한 국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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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4-2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청도 출신이지만 충청도 억양이 거의 없으셨던 아버지에 비해, 충청도 억양이 그래도 살아있던 할머니와 한집에서 자란 저는 지금도 어디서 충청도 사투리가 들리면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며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다 돌아가시고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태연히 살아가는 것...한번도 태연히 살아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호들갑스럽게, 법석을 떨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듯. 생각해볼 말이네요.

nama 2026-04-26 10:24   좋아요 0 | URL
35세에 사망한 마사오카 시키는 짧은 인생의 후반기를 병상에서 보냈다고 해요. 태연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단순하게 들리지 않아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으시군요. 저는 할머니, 외할머니를 한번도 뵌 적이 없어요. 두 분 다 피난나오지 못하셨지요. 어떻게 살다가 돌아가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중학교 생활 일본어 자습서 - 2015 개정 교육과정
이경수 외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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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외운 것 같은데 실제 단어를 마주하면 더듬더듬, 답답하고 한심하다. 마음 한구석에선 악마가 속삭인다. '영어 하나만 제대로 해, 이 바보야.' 영어공부하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내 생각) 외국어 하나 더 배우는 게 신나는 일은 아니다. 꾸준하게 할 자신도 없다. 그럼에도 몇자 배웠더니 일본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관심이 증폭된다. 며칠 전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영화를 보는데 일본어가 귀를 간질이기도... 영화에서 죽을 때까지 우리말을 공부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한글 단어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빗소리, 바람소리처럼 한글도 소리로 한 몫 했을까.


중학교 일본어 자습서가 만만치 않지만 옆에 끼고 있으면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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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2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4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설이다가 쓴다.

책에서 작은 실수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사람 이름은 제대로 짚고 가야지 싶었다. 한번 꽂히면 파헤치는 버릇을 어쩔꼬.


p.104

노르딘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가 날 데리고 간 곳은 일본인 산악인 하세가와 호시노의 무덤이었다. 하세가와는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산꾼으로 세계 최초로 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 마터호른, 그랑죠라드 북벽)을 동계에 단독으로 등반한 강자다. 이 등반을 통해 세계적 등반가로 이름을 굳힌 하세가와는 '불사조'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알래스카의 호시노 미치오의 궤적을 따라 여행하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여서 '호시노'라는 이름에 눈이 머물렀다. 이리저리 검색해보고 위 산악인의 이름이 '하세가와 츠네오'임을 확인했다. 1947년에 태어나서 1991년 등반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하세가와 츠네오는 이 산악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모델이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적어두면 언젠가 읽게 되지 않을까....희망 사항. 넷플릭스에 동명의 애니메이션도 있으니 이것 먼저 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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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1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32년 전 사진을 올려본다. 35인승 버스, 왼쪽은 조수, 오른쪽은 버스 운전 기사 구루 바바. (양쪽에 나를 포함한 일행이 3명 있었지만 딸에게 부탁해서 ai로 깔끔하게 지웠다.) 바바는 아저씨, 할아버지 정도의 뜻. 구루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운전의 고수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이분이 한달 내내 혼자서 운전을 도맡았다. 인도에서 네팔로, 다시 네팔에서 인도로, 시속은 40~60 km. 한번에 30시간 씩 이동할 때도 몇번 있었다. 30시간 안에는 길에서 하염 없이 멈춰선 시간도 포함된다. 혼자 운전하다 보니 중간에 휴식 겸 취침도 필요해서 였으리라. 곳곳에서 통행세를 받는 사람들은 늘 자리를 비워서 통행세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 툭하면 벌어지곤 했다. 이래저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숙소가 따로 없었고 물론 화장실도 없으니 들판에서 해결해야 했다. 번듯한 식당에 대한 기대는 금물. 길가에서 파는 토마토, 바나나, 귤, 석류 등으로 때우고 운이 좋으면 짜파티 몇 장을 구하는 게 전부였다. 칠흑 같은 밤이 오면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는데 대담한 친구들은 버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잤다. 

 

한번은 시크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바바가 시크교도여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일행을 사원 바닥에 일렬로 쭉 앉게 하더니 우리 앞에 스테인레스 물컵과 식판을 거의 던지다시피 놓았다. 그러더니 컵에 물을 따라주고 식판에는 두세 장의 짜파티를 배급했다. 배는 몹시 고팠지만 그때만해도 인도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해 물도 못마시고 짜파티도 거의 먹지 못했다. 여행 내내 배앓이를 했다. 준비해간 지사제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워서 몸살난 친구에게도 약효가 있었다.


이 버스의 독특한 점은 후진할 때 아기울음소리를 내는데 주위에 있던 인도인들도 신기했는지 버스 뒤편으로 가서 바퀴를 자세히 살펴보곤 했다.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가 창가 좌석마다 붙어 있었고 창문 잠금장치가 시원찮아서 닫으면 틈이 벌어져서 열리고 또 닫으면 열리곤하여 창문과 싸우다보면 새벽이 희뿌옇게 밝아오곤 했다.



이른 아침. 잠시 버스에서 내리면 어쩌다가 길가 찻집에서 짜이를 사 마셨다. 달콤하고 뜨거운 짜이 한 잔. 그때 맛을 알았을까? 글쎄...세상과 처음 만난 기분? 세상에 처음 눈 뜬 경이로움? 세상의 다양성에 짜릿했던 놀라움? 순간순간이 살아 있었고 깨어 있었지만 당시엔 잘 몰랐다. 


저 35인승 버스는 첫 인도여행의 잊지 못할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씩 몹시 그립다. 버스가 그립다니... 작년에 죽은 우리 댕댕이 아진군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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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정면만 봐서는 너무 깔끔해 보입니다. 전 인도 버스 하면 울퉁불퉁한 길을 마구 달릴때 외국인에게 배정된 맨 뒷자석에서 옆에 탄 여행자들과 같이 부웅 하고 수직으로 공중부양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도 갑자기 버스가 그립네요. ㅎㅎ

nama 2026-04-10 07:33   좋아요 0 | URL
당시에도 저 버스는 고급이었어요. 외관도 깔끔하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어요. 다만 한달 내내 주행하는 동안 서서히 붕괴하더라구요. 창틀도 안 맞고, 점점 더러워지고, 비좁은 좌석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배는 고프고... 한번은 시동이 걸리지 않자 커다란 횃불을 운전석 옆 엔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모두 대피한 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