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여행은 책 <향신료 전쟁>에서 움 트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에 걸쳐 이와 관련된 책을 꾸준하게 읽었다. 목록을 만들어 보면(이미 포스팅한 글과 겹친다.)
향신료 전쟁(최광용)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로저 크롤리, 조행복 역)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김상근)
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서현섭)
대항해시대의 탄생(송동훈)
바다인류(주경철)
막스 하벨라르(물타뚤리, 양승윤, 배동선 역)
암흑의 핵심(조지프 콘래드, 이상옥 역)
처음부터 의도하고 계획적으로 읽은 건 아닌데 방향이 계속 이쪽으로 향했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아프리카(콩고)로 빠지기도 했으나 포르투갈, 스페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으로 확장되어 갔다. 마젤란은 역으로 동에서 서로 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년간에 걸쳐 심심풀이 땅콩 삼아 아시아 일대를 별 목적 없이 돌아다닌 나의 여행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간 다녀온 인도, 말레이시아 말라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마카오, 필리핀 세부 등이 한 줄로 엮인다. 물론 그 전에 스페인도 있다. 90년대 중반 무렵에 갔었다. 이렇게 어떤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동쪽에 이르렀다. 그 끝에 나가사키가 있었다.
나가사키에 관한 책은 단연 서현섭의 이 책이 압권이다.
그런데 묘한 게, 여행 전에 읽었을 때는 페이지를 잘 넘겼는데, 여행 후 다시 읽어보려고 하니 문장 하나하나에 눈이 멈추며 페이지를 잘 넘기지 못한다는 것. 무엇을 제대로 안다는 게 어려운 일이구나, 를 깨닫는다. 두고 두고 알아가는 수밖에.
여행 중에 그날 그날 대충 북플로 포스팅한 것 말고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카스텔라와 짬뽕 얘기이다.

p. 71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16세기 말 나가사키에 도래하여 전해준 남만 과자 카스텔라는 4백 년의 세월을 거쳐 나가사키 특산품의 간판 메뉴로 자리 잡았다...남만 요리라고 하면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요리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카스텔라가 처음 전해졌을 무렵에는 천황이나 쇼군 등에 대한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 1592년 무라야마 도안이라는 사람이 임진전쟁 때 사가의 나고야성에 머물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카스텔라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히데요시는 카스텔라 맛을 보고 좋았던지 포르투갈 요리사를 오사카성으로 데려가 카스텔라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카스텔라 원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내 흥미는 여기에서 멈춘다. 왜냐면 내 입맛에는 나가사키의 카스텔라보다 양양의 '코코양양' 카스텔라가 더 맛있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 모두 이 점에 의견 일치.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는 식구 중 아픈 사람이 있어 입 맛을 잃고 밥을 못 먹으면 카스텔라를 한 개 사다 주곤 하셨다. 집에서 기르던 똥개가 탈이 나서 밥을 못 먹어도 카스텔라를 하나 사와서 조금씩 떼어 주셨다. 그러면 사람도 개도 아픈 몸과 마음이 아물며 기운을 차렸다.

p.130~132 짬뽕은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상품화된 먹거리이다. 짬뽕의 원조라 알려진 천핑순은 1892년 19세 때, 단신으로 박쥐우산 1개를 들고, 중국 푸저우성으로부터 나가사키에 왔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리어카 한 대를 마련하여 옷가지 등을 싣고 나가사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행상을 했다....그는 중국인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손짓 발짓을 해 가며 7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1899년. 26세 때 천핑순을 중국인들의 밀집 지역에 레스토랑과 여관을 겸하는 '대청국 사해루 요리 여관'을 열었다. 종업원 30명. 박쥐우산 한 개로부터 시카이로(사해루)가 탄생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당시 개항지인 나가사키에는 푸저우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들이 많았다...천핑순 사장은 오갈 데 없는 유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한창 먹을 나이인 젊은이들의 식사가 부실한 것을 보고, 값이 싸며 푸짐하고 영양 만점인 시나 우동 즉 중국 우동을 만들었다. 이 시나 우동이 '짬뽕'의 시작이다. 식재료는 돼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돼지고기, 캐비지, 숙주나물, 생선묵, 새우, 오징어, 조개 등 보통 열 가지 정도가 들어간다. 면을 밀가루에 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이 도아쿠라는 재료를 넣어서 만든다. 도아쿠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짬뽕의 면이 지니는 특이한 맛을 내게 한다.
현재 시카이로라는 중국집은 증손자가 사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가봤는데 대기 줄이 길어서 그냥 포기하고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맛은? 육수에서는 진한 굴맛이 나는데 짬뽕하면 떠오르는 불 맛과 매운 맛이 빠졌다. 매끈한 일본 맛이라고나 할까?
짬뽕에 이어, 책에서는 프랑스 해군 대위 로티 얘기가 나온다..피에르 로티(Pierre Loti)를 아시는지...나는 알고 있다는...23년 전 이스탄불에 갔을 때였다. 인터넷에서 읽은 피에르 로티 찻집, 꼭 가봐야겠다는 일념 하에 택시를 탔다. 외곽에 있는 공동 묘지 옆 찻집에서 로티가 차를 마시며 소설을 썼다나 어쨌다나. 그가 썼다는 소설은 지금도 번역된 게 없어서 읽을 수도 없는데 왜 그 찻집에 가고 싶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음. 한 무리의 프랑스 관광객들 틈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왔는데 돌아간 줄 알았던 택시가 우리(식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편 고맙기도 해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숙소가 있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 택시비를 건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분명 우리 돈 2만 원에 해당하는 요금을 뒷좌석에 있던 남편에게 확인 시킨 후 기사에게 주었는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2만 원 짜리 지폐를 2천 원 짜리 지폐로 바꾸고는 요금을 더 내라는 것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의 거친 인상에 기가 죽어 그만 1만 8천 원을 더 주고 말았다. 이게 모두 피에르 로티 때문.
그러면 피에르 로티와 나가사키는 무슨 관련? 책을 보시길....
다음은 책에 없는 얘기.

군함도를 먼 발치에서 보았던 바로 그 섬 다카시마에 가는 배의 왕복승선권이다.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예전 우리 나라 기차표와 유사하다. 우리는 생활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으려나.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나가사키의 아날로그 고집이 편안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다.


앞으로 유명해질 것 같은 기타리스트 Tomohiro Iwamatsu. 박보검 닮았으니까. 같은 날, 거리 공연과 어떤 문화재 건물 작은 콘서트를 보았으니 두 번 만난 셈.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으나... 잘 되시길 빌어요.
책을 읽고, 여행을 하다 보니 세상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걸은 만큼이라도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겠다.
대항해의 동쪽 완결편, 나가사키. 다음 목표는 대항해의 시작점, 포르투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