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고대동방박물관,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 고고학박물관(이게 중심이다.) 이렇게 세 개의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생은 당초에 고고학 박물관에서 세가지는 꼭 보자고 했다. 1. 카데쉬 조약 점토판, 2. 알렉산더 대왕 석관, 3. 히포드롬 광장에 있는 뱀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뱀대가리. 점토판에 대해서는 앞서 페이퍼에서 이야기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2번과 3번은 보지 못했다. 아하!!! 실로 참담한 일이다.

 

 

당일(2015.08.09.) 우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너머까지 땡볕 아래 톱카프 궁전을 둘러보느라 강행군하여 이미 기진맥진했고, 출궁하여서는 점심을 케밥으로 대충 때우고 고고학박물관을 찾아간다는 것이 길을 잘 못 들어 헤매는 통에 노독이 퍼지고 피로가 쌓여서 발바닥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고 몸뚱아리는 물먹은 솜마냥 축 늘어졌으되 계획된 일정은 반드시 해치워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로 간신히 꿈지럭 거리고 있었던 것인데.....어휴......날은 또 어찌나 더웠던지...

 

 

드디어 도착한 고고학 박물관의 출입문을 간신히 넘어섰을 때 소생과 소생의 처와 소생의 여식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으니 한발 두발 내딛는 발걸음이 비록 평지를 걷고 있어도 마음은 마치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을세라. 산은 산은 바로 토함산!!! 기억나세요???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무게로 떠받쳐라 ♬ 산산이 부서져 공중에 흩어진......아아아아~~ 정말 좋은 노래에요. 흥흥흥

 

 

떡실신 직전의 늘어진 몸뚱아리를 대걸레 끌 듯이 질질끌고 다니며 박물관을 대충 둘러봤다. 박물관의 지하 석관실에는 십여 개의 석관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생은 그 중 제일 큰 놈이 아마도 알렉산더 대왕 석관일 것이라고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이 글을 쓸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소생이 본 석관은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 아니었다. 그때 분명히 석관실을 다 둘러봤는데 왜 못 봤을까 심장이 몹시 상한다. 용을 써본들 이제와서는 별 도리가 없다. 당시에 박물관 일부가 공사 중이었으므로 아마도 공사로 폐쇄된 구역에 보관되어 있었던 모양이라고 또 내 맘대로 생각했다.

 

 

뱀기둥의 뱀대가리는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내 뇌리에 있었다. 그런데 박물관을 한 바퀴 다 돌아도 보이지가 않아서......아니 이 대가리가 왜 안보이지??? 대가리에 갑자기 다리가 생겼나??? 어쩌나??? 다시 한바퀴 돌아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아아아!!! 그놈의 뱀대가리가 뭐라고 내 두 발바닥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는데.... 다시 한 바퀴를 돌다가는 내 대가리마저 불구덩이 속에서 활활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포기했다. 이놈 역시 공사로 폐쇄된 구역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뱀대가리는 뭐 별 미련이 없지만 알렉산더 대왕 석관은 생각할수록 아쉽다. 아시다시피 이 석관은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 아니다. 석관 옆면에 헤라클레스처럼 사자머리 가죽을 덮어쓴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군을 쳐부수는 장면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래서 일명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화려하게 채색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약간의 채색이 남아있다. 1887년 시리아 시돈의 왕실 가족묘 발굴 작업에서 발견되어 오스만 제국의 고고학자인 오스만 함디 베이가 이스탄불로 가져왔다고 한다. 화가이기도 한 오스만 함디 베이는 나중에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초대 관장이 된다.

 

 

아시다시피 대왕은 꽃다운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직까지 대왕의 진짜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소생 알렉산더란 이름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또 소싯 적 위인전도 읽은 것 같지만, 정신나간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했다는 “어이~ 거기 햇볕 가리지 말고 좀 비켜줄래?” 하는 황당한 이야기(기가 차고 코까지 막힌 알렉산더가 “내가 만약에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아마 진심이 아닐 것이다.) 와 무슨 복잡한 매듭을 단 칼에 잘라버렸다는 이야기, 난폭한 말을 길들였다는 이야기 등등 별 시답잖은 이야기 외엔 기억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대왕에 대하여 좀 알아보기 위해서 알라딘을 검색해 봤다. 대왕님께 송구스럽게도 어린이용 도서를 제외하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대왕님의 전기라고는 시공디스커버리총서의 〈알렉산더 대왕〉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알렉산드로스 이야기가 나온다. 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소생이 소싯적에는 완전 인기짱인 책이었는데 불알에 털이 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읽은 적이 없다. 사실 이게 코나 질질 흘리는 어린 놈들이 볼 책이 아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비교열전’이다. 오늘 처음 알았다. 총 50명의 영웅이 등장한다.(여기에는 영웅이라기 보다는 이른바 반면교사가 되는 시원찮은 인물도 몇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이 각 1명씩 짝을 이루어 총23쌍 46명이 출연하는데, 나머지 4명은 짝 잃은 외기러기로 그냥 단독으로 등장한다. 이 23쌍 중에 19쌍은 인물을 비교한 내용이 있고, 4쌍은 그냥 짝만 이루었지 비교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하나! 그리스의 영웅인 알렉산드로스의 짝인 로마의 영웅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로마의 일인자 카이사르다. 아쉽게 비교내용은 없다. 천병희 역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50인중 10인만 추렸다. 대왕이 빠질리는 없다. 소생 지금 읽고 있는데, 매듭 이야기, 말 이야기, 디오게네스 이야기가 다 나온다. 발킬머 나오는 dvd도 일단 구비는 해 놓았다.

 

 

 

 

 

 

 

 

 

 

 

 

 

 

아래 사진은 소생이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라고 착각했던 그 석관이다. 이 놈도 뭐 볼만은 하다.

 

 

대왕의 두상이다.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 두상이다. 레즈비언의 어원이 된 레스보스 섬 출신이다.

갸름한 얼굴에 크고 공허한 눈, 두툼한 입술, 미인이다.  

 

 

도자기 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

 

오스만 함디 베이의 자화상

 

이것이 진짜 이른바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라 불리는 석관이다. 유리로 보호되어 있고 제일 왼쪽의

앞 다리 든 말을 탄 인물이 알렉산더다. 자세히 보면 사자가죽 모자를 덮어쓰고 있다. 유리벽 안에 모셔져

있는 이 거대한 석관을 나는 왜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히포드롬 광장에 있는 뱀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뱀 대가리다. 18세기인가 19세기쯤에 술취한 폴란드

대사가 칼로 쳐서 잘랐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 석관,  뱀대가리 사진 등 위 사진 3장은 <술탄과 황제>를 쓴 전 국회의장 김형오 님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이다. 의장님께 따로 허락을 구하지는 못했다. 혜량하실 줄로 감히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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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24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물관 꼼꼼히 둘러보는 건 언제나 상당한 힘과 집중력이 필요하더군요. 체력적으로도요.

붉은돼지 2015-09-24 22:04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박물관 하나만 보는 것도 힘든데,,,오전에는 톱카프 궁전 박물관을 둘러보고
오후에 또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보려니 몹시 지치고 피곤하더군요..ㅜㅜ

박물관은 좀 애물단지같아요.....안 둘러보기도 그렇다고 보자니 끝이 없고.ㅎㅎㅎㅎ

달걀부인 2015-09-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너무너무 가보고싶은곳이네요

붉은돼지 2015-09-25 10:24   좋아요 0 | URL
저는 폴란드가 가보고 싶어요 ^^

BRINY 2015-09-25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카페트가 깔리고 어두운 조명이 깔린 전시실 안에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라고 알려진 그 관이 있었던 거 같아요. 대리석상이 넘쳐나서 놀랐던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다시 가서 하루쯤 날잡고 제대로 보고 싶습니다.

붉은돼지 2015-09-25 10:26   좋아요 0 | URL
분명히 석관들이 많이 모여있는 어둑어둑한 곳을 다 둘러봤는데요....
아마도 공사중으로 출입금지된 구간에 있었던 모양이에요...ㅜㅜ

쌩쌩할 때 갔으면 찬찬히 둘러보았을 텐데...너무 힘이 없어 대충대충 본 것 같아요 ㅠㅜ

해피북 2015-09-2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집하고 2~3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갈때면 가는 길목은 신이난데 막상 도착하면 힘이들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지더라구요. 특히 붉은 돼지님이 묘사해주신 몸이 천근만근
꺼지는 기분이 ㅎㅎ 절실히 느껴집니다. 그래도 붉은 돼지님 사진 덕분에 박물관 구경 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ㅎㅎㅎ 알렉산더 대왕 석관 저도 은근 기대했는데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다른 석관이였지만 정말 멋지네요 ㅎㅎㅎ
내일부터 추석입니다.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면서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붉은돼지 2015-09-25 15:19   좋아요 0 | URL
정말 미술관이나 박물관 둘러보는 것은 힘든 것 같아요...
또 대체적으로 이런 곳들은 내부 공기도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렇다고 어렵게 갔는데 안 볼 수도 없고 말이죠.......

해피북님도 즐거운 추석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5-09-29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보는 것이 참 어렵죠. 박물관도 미술관도, 하나씩 천천히 보려면 작은데라도 한 곳에서 최소한 하루는 있어야 대충이라도 모두 둘러볼 수 있죠.ㅎ

붉은돼지 2015-09-30 1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박물관이나 미술관 제대로 한번 볼려고 하면 몇일로도 모자랄 박물관도 많은 것 같아요...박물관은 작은 게 좋은 것 같아요..찬찬히 둘러봐도 한 두시간 정도에 가능한 그런 박물관요....그런데 보통 우리가 가는 곳은 전부 세계에서 몇 번째로 큰 어마어마한 박물관미술관들이니.....ㅜㅜ

지나가는돼지 2016-03-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석관묘는 공사중이고 뱀대가리는 고고학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있답니다.

붉은돼지 2016-04-12 09:20   좋아요 0 | URL
지나가시는 돼지님 ^^

석관묘는 공사중이었군요,...안그대로 제가 방문했을 때 박물관 일부분이 공사중이었어요
뱀대가리는 제가 놓친것 같아요 ㅜㅜ

oren 2016-04-1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덤은 아직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지요? 뒤늦게나마 이 글을 읽으니 마침 얼마 전에 붉은돼지 님 덕분에 읽었던『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에서도 보았던 바로 그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알렉산더` 부조의 석관 실물사진까지도 구경하게 되는군요.

저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천병희 번역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읽은 게 전부인데, 그 책 또한 플루타르코스가 쓴 원전에 담긴 50명의 영웅 가운데 겨우 10명만 다룬 책이어서 무척이나 아쉽더군요. 그런데 마침 최근에 <현대지성>이라는 출판사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을 <상,하 2권>으로 내놓았더군요. 원전에 실린 영웅 50명을 전부 담아서 말이지요. 이번에 나온 책도 `국내 최초 완역`이라고 소개하고는 있으나, 아마도 제 짐작으로는 영역본 중역이 아닐까 싶은데, `그리스 원전 완역`은 언제쯤 나올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우선 이 책으로라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완독`에 나서봐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 참.. 제가 이집트에 갔을 떄 `현지 가이드`한테 직접 들은 얘긴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바로 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최후의 파라오`로 활약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무덤 또한 여태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집트 사람들은 그 두 사람(알렉산드로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이 발굴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도 하더군요. 그들의 무덤이 과연 `진짜로` 발견될 수 있을지 그것도 참 궁금합니다...
* * *
사르코파구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을 하나만 들라면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사르코파쿠스일 것이다. 이것은 레바논 시돈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사르코파구스로, 그 안에 안치된 것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알렉산더 대왕의 사르코파구스라 명명된 것은 그 부조가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군의 선두에 서서 페르시아 정벌에 나선 장면을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숨을 삼키게 만들 만큼 훌륭한 석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이것은 역시 알렉산더 대왕의 사르코파구스가 아닐까, 하는 설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사서에 따르면 알렉산더 대왕은 바빌론에서 죽었고, 유골은 알렉산더의 유언대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묻혔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묘가 발견되지 않았다.
- 다치바나 다카시,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중에서

붉은돼지 2016-04-12 09:30   좋아요 0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비교열전이란 것을 안 지가 얼마 안됩니다. 그리고 천병희 번역본이 또 발췌본이어서 조금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이윤기 작가의 따님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완간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완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 아니라 영역본 번역이고 불필요한 부분은 일부 생략했다고 소개에 나와있더군요.... 현대지성에서 나온 영웅전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알렉산더 대왕 아래 사람의 사르코파구스가 저 정도인데 대왕의 석관은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대왕의 석관이 하루빨리 모습을 드러내길 기대해 봅니다. 고고학사의 일대 사건일것입니다. ^^
 

 

 

 

 

 

 

 

 

 

 

아아아아!!!! 로마제국 쇠망사 5을 다시 읽고 있다. 몇 달만에 다시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다. 앞 뒤 맥락이 연결되고 말고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오로지 활자를 읽어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두어 장쯤 읽다가 눈알이 어느 한 구절에 이르자 갑자기 머리 속에서 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이 번쩍 뜨인다. 바로 오후드 전투이야기다.

 

소생이 이 오후드 전투대목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터키 서부 아나톨리아의 어느 촌구석에서 마른 흙구덩이를 후비파다가 발굴한 설형문자 점토판의 내용이 지리적으로 2000여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3000여년 전의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 벽에 새겨져 있는 상형문자의 내용과 서로서로 똭!!!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한 어느 고고학자의 놀라움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는 아니다.....

 

각설하고 그럼 오후드 전투란 무엇인가??? 쇠망사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충 이렇다. 오후드 전투는 마호메트가 무슬림을 조직하고 메카의 쿠라이시족과 벌인 두 번째 전투다. 전쟁이 아니다. 이슬람 교세 확장 초기의 사건으로 쇠망사에는 623년에 있었던 일로 되어있다. 마호메트의 군세는 950명 정도였고 적군인 쿠라이시족은 3000여명 규모였다. 전투는 메디나 북쪽 6마일 거리에 있는 오후드 산에서 벌어졌는데 이 전투에서 무슬림은 70여명을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다. 마호메트도 투창에 찔려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돌에 맞아 치아 두 개가 부러졌다. 쿠라이시족의 수장 아부 수피안의 아내는 마호메트의 숙부 하므자의 창자를 먹었다고 한다. 생순대인가??? 으으으으

 

그렇다면 소생의 눈알이 번쩍거린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전 페이퍼에서 소생이 올 여름에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의 성유물실에서 본 마호메트의 치아를 보관한 성유물함 이야기를 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박물관에서 구입한 영문판 가이드북을 찬찬히 보니 “the reliquary in which was kept the Prophet’s tooth, broken during the Battle of Uhud on 19 March 625” 요렇게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햐~ ‘우후드 전투가 무슨 전투지?? 이게 꽤 유명한 전투인 모양인데... 궁금해서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뭐 쓸만한 내용이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소생과 우후드 전투가 이렇게 운명적으로 똭!!! 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싸리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더덕을 만난 기분이다.

 

쇠망사에는 오후드 전투가 623년으로 되어있고 가이드 북에는 625319일이라고 되어있다. 또 쇠망사에는 치아 두 개가 부러졌다고 되어있는데, 박물관 가이드북에는 ‘tooth’로 단수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다른 한 개는 어디로 갔나? 피가 튀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전투 중에 용케도 부러진 이빨을 다 챙겼네...대단하다. 대단해...이런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소생은 로마죄국 쇠망사 (쇠망사가 입에 붙다보니 제국까지 죄국이 되었다.)6권까지 다 읽으면 에코의 중세를 시작할 것이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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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5-09-2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호메트가 ˝신에게는 아직 12권의 코란이 남아있습니다..!!˝ 란 결연한 각오로 알라신께 기도하고 출전했다면...아마도..

붉은돼지 2015-09-24 10:08   좋아요 0 | URL
메피님~ 조심하셔요...루시디처럼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어요 ㅋㅋㅋ
그러면 혹시 메피님도 루시디처럼 유명해지시는 건 아닐까요????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5-09-24 10:12   좋아요 0 | URL
음....그런 유명은 그다지..유명을 달리하게 될까봐요....

그냥 뭐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나 외쳐야겠군요.

cyrus 2015-09-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드 전투는 오후에 일어난 전쟁입니까? 이상 아재개그였습니다...

붉은돼지 2015-09-24 10:06   좋아요 0 | URL
글쎄요 ㅋㅋㅋㅋ
저는 오후드 전투를 이빨빠진 전투라고 명명하고 싶어요 ㅎㅎㅎㅎ
 

톱카프 궁전의 처음 출입문인 황제의 문에서 담장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귈하네 공원 입구다. 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 중 하나라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유명한 카데쉬 조약 점토판 등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의 유물을 전시한 고대동방박물관과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 등 그리스와 비잔틴 시대의 조각상들을 모아놓은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타일 장식품과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된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동방 박물관에서는 우선 고대 바빌로니아의 느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에서 가져왔다는 화려한 색채의 타일 부조가 볼만하다. 사자, 유니콘 등이 타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 느부카드네자르가 누군가 하면,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수십만의 유대민족을 노예로 삼아 바빌론으로 끌고간 바로 그 사람이다. 성경에는 느브갓네살로 등장하는데 말하자면 유대민족의 원수다. 노예로 끌려온 유대인들의 삶은 참담했을 것이다. 역사는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보니엠이 노래 불렀다. 연식 좀 되신 분들은 알쥬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는 디스코 풍의 흥겨운 노래지만 가사는 애절하다. (노예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 떠나온 고향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내용이다. 이게 또 코메디 프로에서는 다들 이불 개고 밥먹어로 개사되어 사람들을 웃겼다. 한 민족의 한 맺힌 역사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기는 하나 뭐 어쩌겠나 너무 깊이 들어가면 모두가 피곤하다

 

 

 

 

 

 

 

 

 

  

 

이 박물관에서는 하이라이트는 역시 카데시 조약 점토판이다. 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라고 한다. 물론 발견된 것 중의 최초이리라.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에 깨알같이 작은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점토판의 크기는 가로 13.8센티미터 세로 17.6센티미터 정도다. 당시의 국제어인 아카드어로 적혀있다고 하는데 소생이 보기에는 무슨 작은 칼자국 같은 걸 빽빽하게 새겨놓은 것만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저 글자같지도 않은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내었는지 소생같은 아둔한 인사는 몇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일이다. 그저 놀랍고 생각하면 감탄스러울 뿐이다.

 

BC 1286, 한창 뻗어나가던 이집트 왕국의 람세스 2세는 정예부대를 이끌고 장장 1600킬로의 대원정을 감행하여 지금의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카데쉬에서 소아시아지역의 강자인 히타이트 왕국의 무와틸리 2세와 한판 붙었다. 이른바 카데쉬 전투다. 진짜 전투는 오론테스강 서안의 평원에서 벌어졌다. 히타이트의 함정에 빠진 람세스 2세의 이집트군는 거의 몰살당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궤멸 직전에 원군이 도착해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전투로 이집트는 많은 손실을 입었고 히타이트는 사실상 승리를 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확전을 바라지 않아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무와탈리 2세가 죽고 그 아들 무르실리 3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무와탈리 2세의 동생인 하투실리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차지했다. 하투실리 3세는 외교에 능했다. BC 1269년 람세스 2세와 하투실리 3세가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것이 카데쉬 조약인데 내용이 현대의 평화협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조약 체결 뒤 두 나라는 60여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BC 1245년에는 하투실리 3세의 딸이 람세스2세에게 시집을 오고 하투실리 3세의 아들 투달리야 4세는 람세스 2세의 누이와 결혼하기도 했다

 

카데쉬 조약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이집트 땅의 대왕 람세스와 히타이트 영토의 대왕 하투실리 사이의 영원한 평화와 우정을 위하여 조약을 맺는다.”로 시작되는 이 조약문은 전쟁의 중단, 요청 시 상호 군사 원조 약속, 상호 약탈 금지, 도망 병사는 본국으로 송환하나 송환된 병사는 사면해야 하며 그 병사와 관련하여 연좌제 등 처벌하진 않는다, 하투실리 자손들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람세스2가 도와준다. 카데쉬와 아무르는 히타이트 지배하에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도망 병사 사면 및 연좌제 처벌 금지 조항은 인도적 배려가 돋보이기는 하나 내정 간섭적인 면도 없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조항이 들어갔는지 궁금하고 놀랍다. 카데쉬가 히타이트의 지배하에 있다는 조항은 결국 전쟁에서 히타이트가 이겼다는 뜻일 것이다. 람세스는 카데쉬에서 이집트가 이겼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러 신전과 무덤에도 그렇게 기록했다. 역사 왜곡은 요즘도 횡횡하고 있으니 고대라고 다를 리가 없다.

 

히타이트는 BC 18세기에서 BC12세기까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의 하튜사를 중심으로 번성한 왕국이다. 최전성기인 BC 14세기에는 아나톨리아 대부분과 시리아, 레바논, 메소포타미아 일부 지역까지 장악한 제국을 형성했다. 이집트가 아직 청동기 무기로 싸울 때 벌써 철제 무기를 사용했으며, 전차 다루는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위용을 떨치던 제국은 동쪽의 아시리아의 압박과 그리스계 해상민족의 침입으로 BC 1180년경 허망하고도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3,000여년간 아무도 그 제국을 기억하지 못했다. 제국은 완전히 잊혀졌다. 컴컴한 망각의 늪 속에 침몰해 있던 제국을 인양해 세상에 알린 사람은 바로 독일의 고고학자 빙클러였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터키의 보가즈쾨이에서 고대 도시의 흔적을 처음 찾아냈고 19세기 말엽에 프랑스 고고학자가 비로소 보가즈쾨이를 발굴하고 처음으로 쐐기문자가 적힌 점토판을 발견했다. 1906년 독일과 터키의 합동조사로 보가즈쾨이에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독일 학자 휴고 빙클러와 테오도르 마크리다는 카데쉬 조약 점토판을 손에 넣었다. 점토판은 당시의 국제어였던 아카드어로 새겨져 있었다. 빙클러의 발굴 작업은 무지막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미 수메르어와 아카드어의 쐐기문자를 해독했던 그는 자신의 관심대상인 쐐기문자 점토판만 집중적으로 발굴하게 하고는 다른 것들은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 점토판으로 빙클러는 자신이 사라진 히타이트 제국의 왕실문서보관소를 발굴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보가즈쾨이가 바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였던 것이다.

 

빙클러는 이 곳에서 히타이트어로 된 쐐기문자 점토판도 엄청나게 발굴했다. 히타이트어 쐐기문자는 당시에는 미지의 언어였다. 언어학자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기였는데, 이 중대한 일은 오스트리아 군대에 중위로 근무하고 있던 체코인 베드리히 흐로즈니에게 맡겨쪗다 . 26세에 빈의 아시리아 학과 교수가 된 이 언어학의 천재는 이미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여러 고대 언어에 정통해 있었다. 피땀의 노력에 행운 역시 거들어서 흐로즈니는 히타이트어 쐐기문자를 해독해냈다. 남은 것은 발굴된 엄청난 양의 점토판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하투샤 발굴을 주도한 독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렇게 해서 밝혀진 히타이트의 역사는 엄청난 것이었다. 말그대로 점토판이 살려낸 역사였다.

 

 

 

 

 

 

 

 

 

 

 

 

원래 카데쉬 조약의 원본은 은판에 새겨졌다고 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어데갔는지 찾을 수 없고 빙클러는 복사본 점토판 3개를 발굴했다. 하나는 베를린 박물관에, 둘은 여기 터키의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빙클러가 발굴한 점토판과 똑 같은 내용이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에도 새겨져 있다. 육로로 2000킬로나 떨어진 두 장소에서 3000년이나 지난 동일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오늘날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 건물 입구에 카데쉬 조약문의 확대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겠지만 복사판 하나 가져다 놓는다고 뭐 변하는 건 없다. 말하자면 가오잡는 것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뉴욕에 직접 한번 가봐야겠다. 갈 수 있다면 말이죠... ㅋㅋㅋ

 

 

 

 

 

 

 

 

 

 

 

 

터키 고고학 박물관 입구

 

 

 

3000살 먹은 돌사자 앞에서 재롱부리는 8살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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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0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점토판이 풍화 작용을 견딘 게 참으로 신기해요. 전시된 점토판이 거의 부서지기 직전인데 고대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걸 처음에 발견했다면 하찮은 돌무더기로 봤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5-09-17 12: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정말 신기합니다. 대리석도 아니고 돌도 아닌 점토판이 말이죠....
빙클러는 보가즈쾨이에서 엄청난 양의 점토판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히타이트 제국의 왕실 문서고였던 것이죠...
 

귈하네 공원은 원래 톱카프 궁전의 일부였다. 지금은 궁전 담장 밖으로 밀려나 독립된 공원이 되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터키어로 장미의 집이란 뜻이다. 튤립 축제가 열리는 4월에는 활짝핀 장미와 튤립이 볼만하다고 한다. 뭐 지금은 장미도 튤립도 없다. 공원에 들어서면 큰 길 양옆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있다.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 뒤쪽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슬람 과학기술사 박물관이다. 당시에는 몰랐다. 지금 정리하면서 알았다. 뭐 당시에 알았다고 해도 둘러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기도 했지만 아내는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더 이상 박물관은 안돼!!!

 

공원을 가로지르는 큰 길을 따라 위 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바다 쪽에 거의 다와서 그야말로 그림같은 카페가 똭!!하고 있다. 일명하여 삼각지 까페. 뭐 짐작하셨겠지만 이건 소생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무슨 소린가 하면 돌아가는 삼각지도 아니고 버뮤다 삼각지도 아닌데,,,,까페에서 바라다보이는 바다는 금각만과 보스포러스 해협과 그리고 마르마라 해, 이 세 곳의 바닷물이 서로 만나는 그런 절묘한 지점의 바다인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 바다를 건너면 아시아다. 여기는 유럽의 끝이고. 유럽의 끝에 위치한 있는 까페 삼각지~~ !! 무슨 노래가 나올 것만 같다. ~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마도 아시는 분 별로 없을 것이다. 요절한 천재가수,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 부분에서 풉!! 식사 중 밥알 폭탄을 터뜨린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배호는 그리 간단한 가수는 아니다

 

 

 

 

 

 

 

 

 

  

각설하고 까페는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까페의 의자는 투박한 목재의자인데  우리나라 옛날 중고등학교 걸상과 거의 비슷하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여튼 전망이 정말 굿이다. 베리베리굿이다. 한여름인데도 모두들 흐뭇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뜨거운 차이를 마시고 있다. 차이는 터키식 전총 차다. 홍차 잎을 스트레이트로 진하게 내려서 뜨거운 물을 더 붓고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차다. 아이스 차이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콜라나 주스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차이를 마셔줘야 할 것만 같다. 차이 2인분과 혜림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2층으로 된 주전자, 찻잔 2, 각설탕, 무슨 뜰개같은 것이 나온다. 아래층 주전자에는 그냥 뜨거운 물이 들어있고 윗층 주전자에는 홍찻잎을 넣어 끓인 뜨거운 찻물이 들어있다. 찻잔에 반쯤은 윗층 주전자의 진한 홍찻물을 붓고 나머지 반쯤은 아래층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붓는다. 주전자가 뜨겁기 때문에 수건을 사용한다. 그리고 각설탕을 퐁당!!! 탄닌성분 때문에 떫은 맛이 강해 설탕을 넣는다고 하는데 설탕을 넣어도 역시 떫다. 일인당 서너잔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상하게 나는 두잔 정도 마시니 머리가 띵하고 약간 어질하다. 아내는 멀쩡하다. 역시 아내는 강하다. 소생은 뭐 배만 나왔지 천생이 약골이라 차이 섯 잔에 두통이 다 생긴다.

 

 

 

 

 

 

 

차이 주전자 뒤로 아이스크림 껍질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우리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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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9-0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배호닷!
사실 배호는 저의 엄마 아버지 세대가 좋아하셨죠.
안개낀 장충단 공원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배호 같이 부르는 사람도 없어요.
착 가라앉은 저음에 노래는 왜 그리도 멜랑꼴리한지...
평전이 있었군요. 근데 절판이라니... 우울하군요.ㅠ

붉은돼지 2015-09-08 12:32   좋아요 0 | URL
예 사실 배호는 저보다는 제 부모님 세대에서 좋아하시는 분이죠
배호하면 삼각지보다는 역시 장충단 공원이죠 ㅎㅎㅎㅎ
평전이 있는 줄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나오더라구요..그런데 절판 ㅜㅜ

2015-09-07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8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9-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간혹 차이 한잔만 시키면 각설탕을 두개씩 주더라구요. 처음에는 한알만 넣어서 먹었는데 나중에 아무 생각없이 두알 넣어 먹었더니 .....왜 각설탕 두알을 주는지 알겠더라구요. 각설탕 한알과 두알의 차이가 어마어마 하더만요....

붉은돼지 2015-09-08 12:3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부터 두개 넣고 마셨어요 그래도 떫더라구요...
한창 더울 때 여행을 다녀서 차이는 많이 안마셨어요,,,,더워죽겠는데 뜨뜻한 거 마실려니....ㅜㅜ
그래도 터키사람들은 열심히들 마시더라구요 ㅎㅎㅎㅎ

해피북 2015-09-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을 읽다보면(나는걷는다) 사람들이 차이를 권하는 장면이 많아서 어떤 차를 권하나 궁금했는데 홍차였군요! 가는 길목마다 차이를 권했다고 했는데 ㅎㅎ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좀 힘들었을성 싶네요 ㅋㅂㅋ

붉은돼지 2015-09-0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사람들 정말 차이를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 더운 날씨에도 마시는 걸 보고 놀랐어요^^
날씨가 좀 선선할 때 갔으면 저도 아마 차이를 많이 마셔서 조금 적응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여행기간 동안 딱 두번 마셨는데 마실 때 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라구요....이상하게 아내는 안그런데 저만....
역시,,,제가 아마 약골이라서 그런지...ㅎㅎㅎㅎ

보슬비 2015-09-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 음식점에서 저렇게 차를 내놓을때 손잡이 없이 뜨겁게 마셔야해서 힘들었어요.^^
전 각설탕 한개정도가 제 입맛에 딱 맞았답니다. 홍차 카페인도 만만치 않아서 어질어질한건 카페인 부작용인것 같아요.ㅎㅎ

붉은돼지 2015-09-21 12:44   좋아요 0 | URL
터키 사람들 한 여름인데도 뜨거운 차이를 잘들 마시더라구요 ~
보슬비님 말씀대로 아마 홍차 카페인 때문인 것 같아요....저는 이스탄불 여행동안 딱 두번 차이를 마셨는데 두번 다 머리가 아프더라구요 ㅜㅜ
 

오늘은 톱카프 궁전 안에 있는 보물 전시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유물 전시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20-30분 정도 줄서 기다린 후에 보물실에 입장했다. 보물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술탄의 단검일 것이다.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다이아라고 한다. 컬리넌 다이아가 원, , 쓰리, ,,,,있는 걸로 아는데 서열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지만 바빠서 패스. 스푼머시기는 86캐럿이나 되는 물방울 모양의 거대 다이아를 49개의 작은 다이아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술탄 메흐메트 4세가 즉위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 다이아를 발견한 사람은 어부인데, 유리조각으로 착각해 스푼 3개 값에 팔았다고 해서 스푼메어커스 다이아몬드라고 불려진다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역시 어부는 어부로 살 팔자였나보다. ‘단검은 칼자루에 커다란 에메랄드가 3개 박혀있고 칼자루 끝의 뚜겅을 열면 시계가 장치되어 있다. 칼집은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치장되어 있다. 단검은 18세기초 마흐무드 1세가 페르시아의 샤에게 선물로 보낸 것인데 페르시아 내정이 불안하여 샤를 만나지 못한 사절단이 그냥 가지고 돌아온 것을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필름 느와르의 거장 줄스 다신 감독의 영화 중에 1964년 작으로 톱카피 Topkapi라는 영화가 있다. 국제적인 보석털이범 커플이 공범자들을 모아 톱카피 궁전에 보관되어 있는 술탄의 단검을 훔친다는 이야기다. 치밀한 작전으로 정보국 요원들을 따돌리고 단검 탈취에 성공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궁금하쥬??? 아닌가??? 뭐, 사실은 저도 못봤어유.. 헤헤헤... 대도(大盜)에 관한 영화로 가장 재미있고 뛰어난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후 등장하는 도둑 영화들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보고 싶으면 한번 보시라고 말할려고 하니 국내에 출시된 게 없다. 언젠가 EBS에서 방송한 적은 있다. 줄스 다신은 1911년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필름누아르 영화인 벌거벗은 도시로 명성을 얻었으나 매카시 선풍에 칼바람을 맞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그리스에 정착한다. 그리스에서 다신은 신화 속의 여신같은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를 만나 일요일은 참으세요, 페드라, 톱카피등을 같이 찍었고 64년 결혼했다. 부부가 함께 그리스 군사정권에 반대하여 그리스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그리스 대리석 조각의 반환 운동을 지원했으며 2008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

    

 

 

 

 

 

 

 

 

 

 

소생은 멜라니 메르쿠리를 오늘 처음 알았다. 알고보니 이 메르쿠니라는 여성이 보통 인물이 아니다. 참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고 멋진 사람도 많고 운좋은 사람도 많다. 뭐 물론 그 반대인 사람도 많겠지만....어쨋든 그녀는 양가집 참한 규수로,,, 1920년 그리스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56년 칸에서 줄스 다신을 처음 만났고 60년 줄스 다신 감독의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햇다. 1962년에는 국내에선 죽어도 좋아로 상영되었던 유명한 영화 페드라에 출연했는데 영화 음악을 본인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64년에는 줄스 다신과 결혼한다. 둘다 재혼이다. 67년 그리스에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 국외로 추방되어 프랑스에서 배우와 샹송가수로 활동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 반대 운동을 계속했다. 74년 군사정권이 붕괴하자 귀국하여 1981년에는 그리스 최초의 여성 문화부 장관이 된다. 그것도 두차례에 걸쳐 10여년간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녀는 물론 미인이지만 예쁘지는 않았고 목소리도 몹시 허스키했으며 골초였다. 1994년 사망했는데 그리스 국민들은 그녀를 몹시 사랑해서 국민장을 치루었다. 

 

기념품 샵에서 구입한 톱카프 궁전 가이드 북에서 한 컷

 

 

톱카프 궁전에서 지쳐 주저앉은 혜림씨

 

음료수 한 병으로 원기회복한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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