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재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재판부(수원지법 형사9단독: 박민)의 ‘성착취‘라는 표현이었다. 피해자들과 반디지털성폭력 활동가들은 줄곧 ‘음란물‘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 ‘성착취물’로의명명을 요구해온 터였다. 판사의 입에서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성착취 범죄"라는 말이 나왔을 때, 머릿속에 지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자신이 ‘음란물‘이냐며 고통스러워하던 피해자들의 모습, 우리부터 용어를 적확히 사용하자며 서로 독려하던 활동가들, 사법 시스템 속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를 수용하며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법조인들이 떠올랐다. - P414

"너 여기만 광산인 것 같지? 나한테 50원, 100원내고 다운로드받아가는 그 개새끼들이 다 내 광산이야!"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와닿았던 대목이다. 현실에서 ‘산‘은 어디든 존재한다. 디지털 환경의 특성상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영상물의 원본과 복사본은 차이가 없고, 언제든 저장과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진호는 수감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이 광산들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구속되지 않은 양진호의 주변인들이 그 광산에서 채굴 작업을 진행 중이며, 그렇게 얻은 이익은 또다시 피고인 양진호를 방어하는데 쓰이고 있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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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룰 때,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건강하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 P34

신체와 정신은 함께 정상적으로 발달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오늘날의 건강 질환이 바르게 해결됩니다. 신체에 정신을 맞추거나 반대로 정신에 신체를 맞추는 게 아닙니다. 정신과 신체의 완벽한 조화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의 심적 기능과 신체의 체력적 한계를 지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P43

신체와 정신의 균형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신체의 모든 근육 운동을 의식적으로 ‘조절 control‘하는 것입니다. 신체의 골격 구조를 형성하는 뼈에 의해 구현되는 지렛대 이론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신체 메커니즘에 대한 완벽한 지식으로 신체의 활동과 휴식 그리고 수면에 적용되는 평정과 중력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컨트롤로지‘라고 명명한 이 지식이 없다면 정상적인 삶의 결과물인 신체의 완전함을 얻을 수 없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찾아오는 죽음도 피할 수 없습니다. - P46

"너무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Not Too Much, Not Too Little"라는 그리스인들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소홀히 하면 신체적·정신적 효율성이 파괴되고, 서서히 점진적으로 도덕성이 약화됩니다. 부정직함과 부도덕이 점차 증가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균형 잡힌 책임감을 상실합니다. 이상주의와 윤리적 문화도 잃게 됩니다. 이는 그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입니다. - P51

자연의 섭리대로 인간이 ‘정신적·신체적 균형‘을 발견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몸 또는 마음이 아니라, 몸과 마음입니다! NOT MIND OR BODY BUT MINDAND BODY"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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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황정은 작가의 추천으로 강렬한 <자두> 표지만 머리 속에 넣어두었다가 최근에 이주혜 작가가 신간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로 책읽아웃에 나왔길래 <자두>를 먼저 읽었다생각보다 얇고(하드커버라 두꺼워 보임글씨도 크고 자간도 넓어서 금방 읽게 되는 책이다(이런 편집 보면 종이 낭비 생각이 안들 수 없다…. 그러나 노안이 오는 눈엔 읽기 좋기도….).


화자는 번역가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번역을 마치고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낸 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곧 역자 후기를 보내달라는 편집자의 요청 메일에 역자 후기를 쓰며 과거를 회상한다곧 이 소설은 화자의 역자 후기이다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에 포함된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의 우연한 만남유사한 경험을 한 두 여성 시인의 사랑과 상실에 대한 공감의 이야기를 통해 화자의 회상이 시작된다.


과거 시아버지의 병원 입원으로 남편과 함께 돌봄을 수행하며 며느리로서 겪은 미묘한 부당함불편함어긋남으로 결국 남편과의 이혼에 이르게 된다대놓고 가부장적인 주장을 하는 시아버지나 남편이 아니지만젠틀함을 표방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표피를 살짝만 벗겨도 거기 숨겨져 있는 다른 본심을 보게 된다오히려 여성 간병인 영옥씨와의 짦은 담배 한 대의 시간으로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 이해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게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나속은 짓이겨지고 짓물러진 자두 같은 이야기다.


이주혜 작가는 번역가로 활동하다 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했다는데본인이 실제 번역한 책을 모티브 삼아 이야기가 출발하는번역과 창작이 어우러진번역가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살린 소설 도입부인 것 같다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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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0-04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주혜 작가의 글을 읽고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을 꺼내왔어요. 다만 저는 이주혜 작가의 단편 소설이 먼저였고 그 후에 자두 그리고 에이드리언 리치 꺼내오기로 순서가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신간이 나왓다는 소식에 얼른 구입해두었습니다. 후훗.

햇살과함께 2022-10-04 14:4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역시 책 부자~
저는 <자두> 도서관 대출하면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도서관에서 사줄지 기다려 봐야겠어요.
에이드리언 리치 책 500페이지가 넘네요?? 당장 못읽겠는데요?? ㅎㅎㅎ

다락방 2022-10-04 14:59   좋아요 2 | URL
저도 꺼내놓기만 하고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0-04 16: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다락방님 책상에 그런 책이 몇 권일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0-04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 저 3권이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황정은 작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의 저 책은 제게 숙제같은 책.
그리고 이주혜작가네요. 이주혜작가 책도 담아갑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4 23:19   좋아요 0 | URL
저도요~ 황정은 작가 좋아해요.
황정은 작가 책도, 황정은 작가 추천 책도^^
리치, 저에게도 새로 생긴 숙제네요 ㅎㅎ
 

2022년 10월 강릉 고래책방

강릉 여행 책방 검색하다 아침 8시부터 한다고 해서 고래책방 & 고래빵집에 가기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책방 주인장께서 건물주가 아니면 각이 안 나올 규모다. 1층은 베이커리와 문학 및 신간, 굿즈 위주, 2층은 인문 과학 어린이책 위주, 지하 1층은 강원도 및 강릉 관련 책이나 강릉이 사랑하는 작가 책 전시, 3-4층은 세미나실이나 행사에 사용하는 장소인 듯.

책 사고 시그니처 음료인 고래에이드(귀여운 고래 젤리가 2개 들어있다)와 바다라떼와 아아, 시그니처 쿠키인 고래쿠키 2종 주문. 음료가 색이 너무 이쁘다(그러나 바다라떼 섞으면 갑자기 녹조라떼로 변한다…) 음료 잔도 너무 탐난다. 책 사니 선물로 귀여운 고양이 뒷모습 마우스패드와 엽서도 주시고~

우영우 드라마 인기로 고래책방의 고래 음료 및 굿즈 인기 많았을 듯하다.

경포호 한 바퀴 산책하고 점심은 초당버거^^ 초당두부마을 오랫만에 갔는데 완전 핫플레이스로 바뀌었다. 예전엔 두부전문식당만 있었는데, 지금은 핫한 카페와 식당에 사람들의 줄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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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3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버거💗사릉합니다
오늘 연휴 마지막날 푸드 릴레이😋
햇살님 저 버거
단 두✌입에
순삭😋하셨을것 같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3 22:30   좋아요 2 | URL
버거 너무 맛있었어요~ 아침도 든든히 먹고 간식도 먹어서 배가 많이 안고파서 기본 초당버거만 시켰는데 3패티 타노스버거 시킬 걸 하고 후회 ㅎㅎ

바람돌이 2022-10-03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강릉 가게 되면 고래책방도 꼭 가보는 것으로.... 요즘 이런 핫한 서점들이 곳곳에 생겨서 정말 좋네요. ^^ 좋은 사진과 책방 소개도 감사합니다. ^^ 저기 음료잔들 너무 예뻐요. ^^

햇살과함께 2022-10-03 22:35   좋아요 1 | URL
강릉에 독립서점 많이 생겼더라고요~ 일정상 오전에 가느라 고래책방으로^^ 지난 주에 유리잔 굿즈를 하나 사서,, 음료잔 굿즈로 파는지 확인 안했는데 너무 탐나는 잔이에요^^

그레이스 2022-10-03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뤠?하고 개그로 받게 되는 책방 이름!^^
저도 가보고 싶어요.~~

햇살과함께 2022-10-03 22:3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개그 ㅋㅋㅋ 강릉 여행 강추입니다. 이번주 주말엔 강릉커피축제라고 하네요~

페넬로페 2022-10-03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책방 좋은데요.
찜해 놓을께요.
마침 우영우 드라마 인기있어서 더 핫 플레이스가 될 것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2-10-04 14:25   좋아요 1 | URL
저는 우영우를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 보신 분들은 고래굿즈 하나씩 샀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10-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 책방 음료와 쿠키 버거...먹을 것이 가장 많고 예쁜 곳이군요?
고래 책방 고래 고래~✍️✍️
독립서점도 햇살님 덕분에 너무 갈 곳이 많아졌어요~^^ 언제 다 가볼 수 있을지??ㅋㅋㅋ
고래 에이드와 바다 라떼는 색감이 예술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4 14:28   좋아요 1 | URL
부산에도 예쁜 책방 많으니 가까운 곳부터 방문해 보세요^^
색감 이쁘죠? 그런데 바다라떼는 섞으면 탁한 쑥색으로 변신..
주로 아메리카노 먹는 저에겐 좀 달았어요!

새파랑 2022-10-0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릉에도 저런 멋진 책방이 있군요! 강릉 가본지 오래됐는데 가게된다면 저긴 꼭 가봐야 할거 같아요 ㅋ
책도 다섯권이나 사셨군요 ^^

햇살과함께 2022-10-04 14:31   좋아요 1 | URL
강릉은 몇 번 갔는데, 저도 정작 책방은 처음 갔네요^^
강릉 너무 핫해져서 오히려 안 가게 되는 곳 같아요.
책은 각 한 권씩, 저는 두 권^^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한번은 너무 답답해 통번역대학원 동기 K에게 하소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언니가 텍스트를 너무 사랑하나봐.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잖아" 하는 말을, 배꼽을 잡고 깔깔 웃는 토끼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왔습니다. 사랑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K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만 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텍스트를 너무 사랑해서 번역이 갈팡질팡하는 역자. 너무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꼬이는 해석. 저는 K의 말을 혼자만의 변명으로 삼으며 기나긴 겨울을 한권의 책과 함께 동굴에서 보냈습니다. 어느새 마감일이 왔고 2000매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월이었습니다. - P9

그러다가 앞의 문단을 만났고 이상한 환기를 경험했습니다. 단호하고 냉철하고 때로는 신랄한 문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적이고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었으니까요. 저자가 드물게 내비친 사담을 향해 저속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걸까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하기엔 그 문단이 가시처럼 뇌리에 박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목표랑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불면과 싸울 때면 간혹 가본 적도 없는 그 고속도로 언저리를 더듬었습니다. 혼자 상상하고 짐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어떤 식으로 서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습니다. - P15

두 사람의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에이드리언리치는 ‘자기 이야기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죠. 실제로 리치는 그 어느 허구보다 극적이었던 그 ‘사건‘에 대해, 그후 세 아들과 함께 그 경험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거라곤 모든 것이 시작되는 3월 봄밤에 두 여성 시인이 돌이키기 싫었을 지난날의 상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뿐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공통의 경험이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차이를 훌쩍뛰어넘게 했겠지요. - P17

싱숭생숭하고 불안한 이 마음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늘 하루 8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일까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시간인 줄 알았는데 시간만은 아니었고, 안도감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을 고스란히 계단참에 흘려보내고 있었고, 안도감은커녕 막연한 불안감으로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습니다. - P47

"어르신, 죽으려거든 날 좋을 때 죽어요. 이런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이런 날 죽으면 자식들 고생합니다. 부디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죽어요. 그래야 자식들이 덜 서럽습니다. 알았지요? 꼭 좋은 날에 죽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염천에 죽어 자식 가슴에 한을 심지 말아요." - P77

양쪽 집에 이런 우리 부부의 뜻을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제 부모는 여전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충고했고, 시아버지는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저와 세진의 눈치를 봤습니다. 제 부모의 폭력적인 방식은 화가 났고, 시아버지의 수동적인 방식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만났다가 아이 말이 나오면 집에 돌아와 꼭 세진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아이 이야기는 지치지도 않고 나왔습니다. 친척 누가, 혹은 이웃의 누가 손주를 봤다더라, 돌잔치를 한다더라. 출산율이 곤두박질친다더니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끝없이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시아버지의 방식은 좀 치사한 데가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아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갑자기 제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 P91

영옥씨처럼 이 건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만아는 은밀한 통로를 지나온 모양이었습니다. 영옥씨가 저를 난간 옆 불룩하게 튀어나온 턱에 앉혔습니다. 옥상 공기는 텁텁하고 습했습니다. 영옥씨가 실외기 더미를 덮은작은 지붕 구조물 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담뱃갑을 하나꺼냈습니다. 그리고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여 제게 내밀고 연달아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담배 한대를 피웠습니다. 어느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고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터뜨렸습니다. 저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웃었습니다. 절대로 웃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웃고 나니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옥상에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 P105

소변기를 침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시아버지의 바지춤을 제자리로 올렸습니다. 이제 시아버지는 모든걸 체념한 사람처럼 제게 완전히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행여 시아버지를 놓칠세라 한껏 힘을 주며 버텼습니다. 그때 제 귀에 들려온 소리는 분명 착각도 환청도아니었습니다.
죽어라…… 죽어……… 콱………
이 이야기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세진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겐 그 무참함을 표현할 언어가 없습니다. - P113

시아버지는 그해 겨울에 죽었습니다. 어떤 죽음이었는지는 여기에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 죽음이 세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제게도 깨끗이 지우는게 불가능한 어떤 감정을 안겨주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 P115

우체국으로 들어가 국제우편을 보낼 수 있는 우표를 샀습니다. 그날 산 엽서 중 가장 예쁜 엽서를 한장 꺼냈습니다. 기억 속의 라일락색 명함에 적혀 있던 간병인 파견업체 이름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찾은 주소를 수신인란에 썼습니다. 엽서가 영옥씨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어쩌면 그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벌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신인란에는 제 이름을 적었지만 사실 영옥씨에게 제 이름을 알려준 기억도 없습니다. 유리병에 쪽지를 넣어 태평양에 던지는 것만큼이나 치기 어린 행위였지만, 제 마음만은절대로 우습지 않았습니다. 내용 칸에 볼펜을 대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일단 영옥씨,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또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문장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한 문장을 쓰고 밖으로 나와 우체통에 엽서를 집어넣었습니다.
"영옥씨, 아침에 잘 일어나고 있나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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