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 신중하셨군요. ㅋㅋ 신중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에도 감사드립니다. 이것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인 것 아시죠? (아시리라 믿어요.)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더'와 '덜'을 따진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 ㅇ님의 댓글 중에서.

 

 

 

 

 

이것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일부 사람들만이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에는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자, 예를 들어 볼게요. 오래 전 어느 소설에서 읽은 것이랍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찾질 못하겠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왜곡할 수 있음.)

 

 

사랑하는 사이의 두 연인이 동거하면서(적어도 자기네들은 사랑한다고 믿고 있어요.) 부엌일을 서로가 맡지 않으려고 해요. 하기 싫다는 것이죠. 어느 날 서로 상대가 부엌일을 맡아야 한다며 설득력 있는 말을 골라 하면서 크게 싸워요. 각자가, 자신은 바빠서 부엌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서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긴 한데, 그중 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덜 바쁜데, 그 덜 바쁜 사람이 자신이 ‘덜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질 않아요. “나도 바쁘다.”라고 주장할 뿐이에요. 그러면서 서로 “당신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라고 말해요.

 

 

이게 말이 되나요? 사랑한다면 아무리 하기 싫은 부엌일일지라도 참고 해야죠. 잘하지 못하는 부엌일일지라도 배워서라도 해야죠. 그러므로 사랑한다면 덜 바쁜 사람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고, 더 바쁜 사람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해요. 상대가 그러길 원하니까요.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거예요.

 

 

님이 댓글을 쓴 그 문제의 페이퍼에서 제가 마광수 저,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이것 맞다고 봐요.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 밥상을 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가 자신의 밥상을 차리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죠.) 결국 상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되어 버리는 거죠. (부엌일을 하기 싫어 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순 없어, 라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부모 자식 간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부모가 자식에게 일류 대학에 가길 원해서 학업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은 결국 일류 대학에 들어간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 되거든요. 자식이 아무리 공부하기 싫어 해도, 자식의 그런 괴로움 따위는 무시하고 무조건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가길 강요하는 부모라면, 생각해 볼 만해요. 자식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부모일지 몰라요.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저도 님의 댓글(위의 네모 박스 안의 글)에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페이퍼를 쓴 것은 재미 삼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를 나눠 보고 싶었답니다. 그런 관계의 구조가 우리 인간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속성 같아서요. (예를 들면, 일방적으로 자기 자신이 상대에게 더 많이 전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만나기로 한 장소에 상대가 늦게 나타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님의 먼댓글을 잘 읽었어요. 인쇄하여 꼼꼼히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에구,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갖지 않을 글(그 페이퍼)을 괜히 썼나, 싶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을 만나,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이 <싱거운 후기>를 급하게 썼는데요, 내일이나 모레에 다시 손질할 부분을 찾아 수정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댓글(3) 먼댓글(1)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from Value Investing 2012-11-07 12:38 
    페크님께서 두번씩이나 인용해주신 부분(‘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에 대해서는 쉽게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진지하게 반박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무 급작스럽게 범주를 넓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타적 사랑이나 숭고한 인류애 등을 생각해 보면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타인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까지 승화시키느냐 그
 
 
페크pek0501 2012-11-0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쓴 페이퍼인데, 지금 수정했어요.
밑줄을 친 부분을 넣은 게 수정이랍니다.^^

방문자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2-11-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서 수정하신 부분까지 포함해서 잘 읽었습니다. ㅎㅎ
페크님의 글을 읽으니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여러 '책 속 구절들'이 있어서 부득이 또다른 먼댓글을 (페크님의 인용글에서 일부 차용한 제목으로) 달아봅니다. 오늘은 바깥날씨가 한결 따스해진 것 같죠? 그런만큼 더욱더 좋은 하루 되시길 빌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52   좋아요 0 | URL
예, 요즘 참 좋은 계절이에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오렌 님과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먼댓글도 받아보고~~~
님 덕분에 공부 많이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그 관계만이 갖는 비밀스런 구조라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에 접근해 보고 싶어 ‘연인 관계에서 누가 더 사랑하는 자일까’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 글에서 썼듯이 연인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플라톤의 <향연>에 이어 이번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흥미롭게 정독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 대한 분석과 해석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 자체도 경이로운데, 저자의 통찰력은 더 경이로웠습니다.

 

 

 

연애엔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이죠. 첫사랑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기술의 부족’입니다. 결국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애에도 친구 관계에도 결혼 생활에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기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것도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부모답지 못한, 철없는 젊은 부모가 많다고 하는데, 자녀 양육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옳지 못한 태도로 키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이죠.

 

 

 

연애 역시 사랑만 갖고선 안 돼요. 상대를 제대로 알고 자신을 제대로 알고 연애의 특성을 알고 자신의 위치(또는 좌표)를 알아야 해요. 더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연애에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한 것도 그것으로 인한 인간의 심리가 연애(두 사람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해(또는 연애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해요.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더라도요.

 

 

 

이런 예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 대학생이 한 남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매일 집 앞에서 기다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심지어 학교의 강의 시간표까지 베껴 가지고 다닐 정도로 집착하여, 여자가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 인간에 대한, 연애에 대한 이해력(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을 소개하며 끝맺습니다.

 

 

 

 

무릇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 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

 

18세기 문인 이옥의 말이다.

 

 

고미숙 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에서.

 

 

 

 

 

 

 

 

 

 

 

 

 

 

 

 

 

 

 

 

 

 

 

 

 

 

 

 

 

 

 

 

 

 

 

 

 

 

 

<추가>

 

 

이 글이 생각나서 추가합니다.

 

 

....................

타인을 향한 비난은, 많은 경우 비난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난하는 사람의 불행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비난하는 사람이 오히려 애처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이렇게 하십시오.

“너 어떻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를 하니?”

이것이 아닌,

“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즉, 말할 대 상대를 향해 비난하는 투로 하지 말고,

나의 상태만 묘사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대화법입니다.

....................혜민 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77쪽~78쪽.

 

 

 

“너 어떻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를 하니?”“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의 차이를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기술’ 공부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10-2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 후기 페이퍼도 참 좋아요.
호모에로스, 사두고 아직 안 읽었어요. 향연을 정독하셨군요. 어렵다고만 들었는데
전 아직... 지금 담아갑니다. 이렇게 독서에 채찍이 되니 고맙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기술'은 저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도 잘 못하지만 방법을 잘 몰라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좌표를 잘 설정하고 잘 안다는 것,
이게 중요한 기본이라는 점에 절대 공감해요.^^
고즈넉한 토요일 해거름, 벌써 창밖이 꽤 어두워요.^^

페크pek0501 2012-10-27 18:10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향연>을 읽고 충격을 받았답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면서요.
최근에 읽은 <사랑의 단상>도 마찬가지예요. 경이로워요. 에리히 프롬의 저서는 원래 애독합니다.

이 페이퍼의 끝에 추가로 글을 넣은 것도 읽어 주세요. 혜민 스님의 글인데,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 글이라서 함께 올렸답니다.
고맙습니다. ~~ 오늘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걸었답니다.
이 빗소리를 아직도 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 하면서요. ^^

프레이야 2012-10-27 18:34   좋아요 0 | URL
혜민스님의 말씀, 덧붙여 끄덕끄덕해요.
머리론 알지만 실천이 늘 어렵지요. 늘 의식하고 주의해 삼가는 게 관건. 오늘도 많은말을 했지만 말을잘 한건지 그저 헛소리나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방식으로 헛나가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인간관계의 근본은 정, 정을 헤아리며 잘 살아야겠어요. 좋은페이퍼 감사^^ 댓글 오자수정했더니 시간 달라졌어요.ㅎㅎ

페크pek0501 2012-10-30 00: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 님...
"오늘도 많은말을 했지만 말을잘 한건지 " - 저도 이런 생각에 말을 적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말이 많아지면 실수도 많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으음~~ 그러다가 생각이 너무 깊으면 삶도 피곤해진다, 뭐 그러면서 대충 살자, 그래요. ㅋㅋ

글샘 2012-10-2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는 중인데요~ ^^
10대부터 70대까지 공통의 관심사가 사랑이라지요.
김영민의 '사랑, 그 환상의 물매'도 사랑의 단상과 연관지어 읽어볼 만 하더군요.

페크pek0501 2012-10-30 00:28   좋아요 0 | URL
아, 글샘 님도 <사랑의 단상>을?
처음에 저는 이것 사 보지 않으려고(읽을 게 쌓여서)리뷰만 읽고 말려고 남이 쓴 리뷰를 열심히 찾아 보다가 결국 사게 되었어요. 어떤 글에 반했기 때문이에요.
사랑보다는‘인간 심리'에 더 관심이 가요. 그런데 인간 심리를 가장 잘 꿰뚫을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사랑인 듯해요.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것이어서 새로운 정신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집중함으로써 생각이 깊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생각이 깊어진 연인들의 심리를 읽으면 ‘인간’이 보이죠. 그래서 사랑에 관한 책은 흥미로워요.
고맙습니다. ^^

숲노래 2012-10-2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난도 칭찬도 모두 '듣는 이'한테 하는 말이 아닌 '말하는 이'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말을 들을 때면 '말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 수 있어요.

"아나스타시아" 읽어 보셨나요? 얼마 앞서 7권이 번역되었는데, 3권 책이름이 <사랑의 공간>이에요. 한번 즐겁게 여러 차례 읽어 보셔요. 러시아 타이가 숲에서 살아가는 아나스타시아는 당신 말을 담은 이 책을 읽을 적에 '숲으로 가서 새와 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서 읽으'라고 했답니다.

페크pek0501 2012-10-30 00:30   좋아요 0 | URL
님의 댓글을 읽으니 이 글이 생각나네요. (어느 폴더에 제가 써서 저장한 글이에요.)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 위기철 저, <아홉살 인생>에서.

잊고 있었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추천하신 책은 관심 갖고 검색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0-2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나 에리히 프롬을 애독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혜민 스님 같은 이의 책을 대수롭지 않은 베스트셀러 나부랑이라고 무시할 이도 있을텐데, 페크 님은 그런 편견없이 골고루 다루는 글이라서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12-10-30 00: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베스트셀러라서 관심이 가서 읽었는데, 사유 깊은 글이 많았어요.
특히 제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이 많아서 반복해 읽었답니다.
저는 대중서를 좋아해요.ㅋㅋ 그리고 되도록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니까 만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의 크기가 똑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은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쪽이 되거나 덜 사랑하는 쪽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더 사랑하는 자일까?

 

 

알랭 드 보통 저, <우리는 사랑일까>와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을 읽고 나니 그 답이 보였다.

 

 

 

 

 

1. 노력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연인 관계에서 둘 중 누가 더 사랑하는 자일까. 이를 알기 위해 ‘두 사람 중 누가 더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우리는 사랑일까>에 이런 글이 있다.

 

 

....................

(전화 통화로) 대화가 펼쳐지는 어느 지점에서, 앨리스(여자)는 자신이 가지 않으면 에릭(남자)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으리라는 감을 잡았을 것이다.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그 남자의 욕망은 아주 작고, 분명히 그녀의 욕망보다 약했다. 그 남자는 혼자 있는 것마저 감수할 테지만, 그녀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 - 그래서 노력하는 일은 그녀의 몫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사랑일까>, 371쪽.

 

 

 

 

연인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가, 둘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는지 모른다.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상대보다 더 노력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자이다.

 

 

 

 

 

2. 기다리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두 연인 중에서 누구에게 권력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덜 사랑하는 자에게 권력이 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사랑을 더 받는 자에게 권력이 있다.

 

 

....................

스탕달은, 애인 사이에서는 언제나 한쪽이 상대방을 더 사랑하며, 그래서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우리는 사랑일까>, 172쪽.

 

 

 

 

연인 관계에서의 권력은 ‘기다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기다리고 있는 쪽보다 기다리게 하는 쪽에 권력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

....................<사랑의 단상> 67쪽~68쪽.

 

 

 

 

기다리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것. 기다리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알랭 드 보통 저, <우리는 사랑일까>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

 

 

 

 

 

 

 

 

 

 

 

 

 

 

3. 연인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연인들은 서로 상대를 얼마나 알까. 몇 년 연애를 했다고 해서 친숙한 사이라고 해서 과연 상대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와 연인을 비교한다면 친구보다 연인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릭)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그 첫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안’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예상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질문과 해석이 뒤따르는 불안정 상태에 힘이 빠졌다.

....................<우리는 사랑일까>, 149쪽

 

 

 

 

앨리스처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연인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연인인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196쪽.

 

 

 

 

누구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를 사랑할수록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질 것이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믿음이 약할수록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연인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4. 피곤하다는 말을 듣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함께 있을 때 상대로부터 “당신을 만나면 한순간에 나의 모든 피로가 풀려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은 게 연인일 것이다. 반대로 상대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하나가 이 말일 것이다.

 

 

“오늘 좀 피곤해요.”

 

 

피곤하다는 상대의 말을 들은 연인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나를 만나면서 피곤함을 느낄 수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울적해질지 모른다.

 

 

....................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앨리스, 지금은 밤 1시 30분이에요.”

“그래서요?”

“이런 토론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왜 매사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뭘 알고 싶은데요? 내가 왜 청혼하지 않는지?”

에릭은 반대편으로 돌아눕고 베개에 머리를 고쳐 뉘었다.

“사랑을 나누면서 당신은 날 똑바로 보지 않아요.”

“앨리스, 부탁이에요. 이런 얘기는 내일 하면 안 되겠어요? 지금 피곤해요.”

....................<우리는 사랑일까>, 256쪽~257쪽.

 

 

 

 

상대가 피곤하다고 말하면 잔인하게 들리는 게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음을 전달하는 말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이미지를 변질시키러 오는 것은 모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의 피로를 두려워한다. 피로란 경쟁 대상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것이다. 어떻게 피로에 대항해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나와 그 사람을 연결하는 이 유일한 끈인 피로를, 사랑에 지친 그가 ‘내게 주기 위해’ 조각조각 자르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내 앞에 놓인 이 피로의 꾸러미를 어쩌란 말인가?

....................<사랑의 단상>, 167쪽.

 

 

 

 

상대의 피로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연인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피곤하다(피로하다)는 말을 듣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

마광수 저,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에서 저자는 말한다.

 

 

“청춘시절에 연애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토록 ‘비퉁그러진 성격’을 갖고서 살아가게 된다.”(41쪽)고. “‘숫총각, 숫처녀 박멸 운동’을 벌여야만 그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41쪽)고. 그리고 연인 관계에서의 ‘정신적 사랑’이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육체적 쾌락’을 강조한다. 육체적 쾌락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장(場)인 이 생태계에서 원칙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46쪽)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하늘의 축복’이 아니다. 연애는 언제나 피 튀기는 ‘심리전(心理戰)’의 양상을 띠고 있다.(49쪽)

 

연애는 그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한없는 ‘줄다리기’의 연속이라서 동시에 극심한 피로감도 안겨 준다.(51쪽)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

 

 

 

 

 

 

 

 

 

 

 

 

 

 

 

 

 

 

 

 

 

<우리는 사랑일까>와 <사랑의 단상>를 읽으면서 연애는 ‘피 튀기는 심리전’이고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 준다는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의 글에 공감하였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은 연애를 삼갈 일이다.) 연애가 ‘피 튀기는 심리전’이 되고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 주게 되는 이유는, 사랑이란 감정이 유동적이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연인 관계에서뿐 아니라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로 나뉜다.)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사랑을 더 하는 쪽과 사랑을 덜 하는 쪽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을까. 우리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 바라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설령 질투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혹시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더 사랑하는 쪽에 있다고 해서 울적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예를 들면, 한 여자를 몇 년 동안 짝사랑을 하던 한 남자가 드디어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로 나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보다 그 남자를 부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보다 그 남자가 더 행복해 보일 것이므로.

 

 

달콤한 행복은 사랑을 받는 데에 있지 않고 사랑을 하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댓글(8) 먼댓글(1)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심리상태들의 강도에 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2-11-06 00:38 
    <더>와 <덜>의 구별사람들은 보통 감각, 감정, 열정, 노력과 같은 의식의 상태들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어느 한 감각이 같은 성질을 가진 다른 감각보다 두 배, 세 배, 네 배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음을 확언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정신물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신물리학의 반대자들조차 다른 감각보다 더 강한 감각, 다른 노력보다 더 큰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순전히
 
 
숲노래 2012-10-27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을 그으면서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을 나눌 만한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내는 사람이 있고... 또 읽는 사람이 있으니 ^^;;;

사랑할 뿐인 삶일 테니까요.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사랑스러운 삶일 테니까요.

페크pek0501 2012-10-27 16:58   좋아요 0 | URL
된장 님, 반갑습니다.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네요. 감사드립니다.
님에 대한 답글은 제가 올린 글 <싱거운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2-10-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늘 이렇게 몇 권의 내용을 비교분석해가며 읽고 생각정리하고 쓰시고,
놀라워요. 참 좋습니다.^^
저 위의 두 권은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사랑을 더 하는 쪽과 사랑을 덜 하는 쪽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을까. 우리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 바라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설령 질투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특히 이 부분에 공감해요.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피곤하고 힘든일이란 점도요. 그만큼의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니.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는 대사 영화 '음란서생'에서도 나왔지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왕비를 지극히 사랑하여 질투하고 집착하는 왕이 하는 말...

여긴 하루종일 비가 내려요. 추적추적... 몇 개씩 달려있는 나뭇잎이 다 젖었어요.
전둥번개도 치고 아까 대낮부터도 하늘이 어둡네요.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자요^^

페크pek0501 2012-10-27 18:02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 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네요.
으음~~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글 쓰면서 힘이 빠지고 그래요.

몇 권의 책 내용을 비교분석했다는 평은 과분하고요, 그냥 읽다 보니 두 권의 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배열해 본 것입니다. ㅋㅋ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프레이야 님을 보면서(올려진 글의 제목의 목록을 보면서) 아, 부럽다, 했어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저, 졌어요. ^^

다크아이즈 2012-10-2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찍이 토마스 만이 토니오 크뢰거에서 가르쳐 준 이 단상을 연애중이거나 치열한 연애를 거쳐온 사람들에게 말해봐도 공감 못 얻는 이 분위기를 어찌할까요? 피폐한 상처만 남을 뿐인데도 사랑은 주는 거기 때문에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릇된 학습 위안 같은 거가 아닐까 생각해봤답니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 연애의 이런 기본 심리(아닌 정직한 상식!)를 알고 덤비면 덜 상처받을 수도 있을까 해서 저는 아들이 대학생 되면 이런 책을 마구 선물할까 합니다. 기질 상 이백오십프로 사랑에 지고도 그게 사랑이라 문밖에 서성일 부류 같아서요. 하기야 암만 알고 덤벼도 지 맘대로 안 되는 게 사랑이니 별 도움이야 되겠습니까.


페크pek0501 2012-10-30 0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인상 깊어서 리뷰를 쓴 적이 있어요.

저는 연애 심리를 잘 나타내어 준 책으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꼽습니다. 이 책을 보고 연애 심리를 좀 알게 되었어요. 하긴 안다고 해도 실전에선 아마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니 젊은이들에게 읽으라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듯해요. 차라리 나이가 들어서 그 책을 읽어 봐야 좀 알게 된다고 할까요.
사랑도 결혼도 어렵습니다. 그런 어려운 관문을 잘 통과할런지, 저도 우리 애들을 보면 걱정될 때가 있어요.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말이죠.ㅋㅋ

"사랑에 지고도 그게 사랑이라 문밖에 서성일 부류 같아서요."- 이 문장 참 맘에 드네요. ^^
긴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oren 2012-11-0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페크님의 이 글을 보자말자 참으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무튼 쉽게 답글을 달 수조차 없게 만드는 그런 인상을 잠시 받았었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두 연인이 언제나 서로를 향해 '더'나 '덜'에 대해서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울 수도 있고 그래서 언제나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더 사랑하는 것일까를 글로 표현한다는 건 하여튼 여간 어려운 글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더'와 '덜'을 따진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된장님'의 댓글에 적극 공감을 느끼게도 되더군요.

아무튼 뒤늦게 제가 긴 댓글을 달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심리상태들의 '더'와 '덜'에 대한 한 탁월한 철학자의 통찰을 (페크님의 글에 기대어) 정리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먼댓글로 쓴다는 것도 아울러 말씀드릴께요.

덧) 10월 마지막주에 '가을산행' 때 '필례약수터'를 막 지나자말자 '더덜'이라는 제목의 팬션 같은 집을 발견했는데, 그 집 주인이 더도 덜도 말고 '더덜'과 같은 그런 집을 상상하고 이름을 달았다면 정말 대단한 이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관련글 http://blog.aladin.co.kr/oren/5940503)

페크pek0501 2012-11-06 19: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오늘 올린 <싱거운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요.

추신.
먼댓글을 받으니 영광스럽습니다. ㅋ
 

 

 

 

이번 글이 이 서재에 150번째로 올리는 글이다. 100번째로 올린 글이 지난 해 9월이었으니 거의 13개월 만에 150번째가 된 것이다.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왜 블로거 활동을 중단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내게 있어 블로거 활동은 연애이고, 도박이고, 실속이 없는 짓인 줄 알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즐거운 취미 활동이기 때문이다.

 

 

“불행만큼 인간이 전념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알랭 드 보통)

“불행만큼 인간이 전념하는 대상은 즐거움이다.”(pek0501)

 

 

 

 

 

1. 블로거 활동은 연애다 : 블로거 활동(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타 블로그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 것을 포함한 활동을 말함)을 하면서 연애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만나지 못하면 연인이 궁금한 것과 같이 블로그도 그렇다. 며칠 동안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하면 궁금하다.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듯, 블로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연인과 연애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지듯, 블로그와 연애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진다. 연인과 작별하면 마음고생을 해야 하듯, 아마 블로그와 작별하게 된다면 마음고생을 하게 될 것 같다.

 

 

블로거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창의성으로 인한 즐거움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구성하고 내가 마무리 작업까지 해야 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재미있다. 또 하나는 평가로 인한 즐거움이다. 매번 글을 올릴 때마다 추천의 수와 댓글의 내용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쓰기는 재미있다. (최근 즐겨찾기의 수가 5명이 늘었는데 그중 4명은 비공개한 블로거였다. 이것도 평가로 본다.) 원래 가장 재밌는 놀이가 창의성이 있으면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놀이가 아닐까. 연애를 할 때 상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옷차림에서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으로 연출하는 재미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연애를 하겠는가. 블로거 활동도 마찬가지다.

 

 

 

 

2. 블로거 활동은 도박이다 : 블로거 활동은 중독성이 있다는 점에서 도박과 같다. 화투를 치는 도박꾼은 돈을 따면 그 재미로 또 화투를 칠 것이며, 돈을 잃으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화투를 칠 것이다. 블로거도 글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재미로 또 글을 쓸 것이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글을 쓸 것이다. 결국 도박꾼도 블로거도 똑같이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블로거들은 돈을 매번 잃으면서도 화투를 치는 도박꾼과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불미스런 일로 이곳을 떠난 블로거라도 우리는 그에게 위로의 말 대신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른다.

 

 

“당신의 중독이 치료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시간을 빼앗기고 몸이 축나는 블로거 활동을 끝낸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블로거 활동을 했던 시간에 지금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겠지요.”라고.

 

 

 

 

3. 블로거 활동은 실속이 없는 짓이다 : 블로거 활동(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블로거들의 활동)은 금전상 아무런 이득이 없는, 실속이 없는 짓이다. 그 시간에 만약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훨씬 실속이 있는 일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블로거 활동을 한다. 디스크라는 병이 생겨도, 안구건조증이 생겨도 그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허점으로 인해 마음이 끌리는 일이 많다. 평소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우산 챙기는 걸 깜박 잊었던 일을 말하는 것을 보면 갑자기 그가 좋아진다. 구멍난 양말을 신어서 창피해 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위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고 싶다.

 

 

만점의 시험지, 일류 대학, 최고로 유능한 사회인…, 이런 것들만을 지향하는 이 사회가 삭막하게 여겨질 때마다 나는 허점이 있는 사람이 좋아진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실속이 없는 블로거들이 나는 좋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작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략)

 

 

 

 

 

 

 

 

 

 

 

 

 

 

 

 

 

4. 블로거 활동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 블로거 활동을 하게 되면 댓글을 통해 여러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이웃들과의 만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소외감과 고독을 상당히 덜어 준다. 그래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이 블로거 활동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쓴 것입니다. 좋은 이웃들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추신.

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것.

실속을 따지지 말 것. 그냥 블로거 활동 그 자체를 즐길 것. 인생, 별거 아니다. 죽을 때쯤, 그땐 참 즐거웠노라, 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주 잘 산 것이므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2-10-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pek0501님께 바라건대, 불꽃같은 블로거 생활보다 장작불, 화롯불같은 블로거 생활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페크pek0501 2012-10-17 12:4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고 싶어요.
마립간 님도 이곳에서 오래 뵙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10-1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으로 이득이 안 된다지만,
'마음'에 도움이 되면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면,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이라 하겠지요.

언제나 즐겁게 삶을 일구시기를 빌어요.

페크pek0501 2012-10-17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된장 님. 블로거 활동을 열심히 하면 몸은 좀 고단해도 풍성해지는 정신세계와 따뜻해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이것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0-1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한 구들장 온기 같은 블로거가 됩시다요!! ㅎㅎ
마음에서 즐거우면 되는 것이죠.^^

페크pek0501 2012-10-17 12:48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 님. 인생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잊지 말자고요.
참,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제가 님의 페이퍼에서 살짝 가져왔다는 것, 아시죠?
님도 필요하시면 제 페이퍼에서 살짝 가져가셔도 됩니다.(있을까 모르겠지만요.ㅋㅋ)

카스피 2012-10-1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당^^

페크pek0501 2012-10-17 12:4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공감하시는 1인을 만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oren 2012-10-1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 그 어떤 시대에도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소통 과잉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 모습들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혼자'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축구선수 기성용은 인터넷을 쓸 수 없는 환경을 '지옥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죠)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깊이 깊이 탐색했던 사람 가운데 하이데거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아직까지 살아서 오늘날 어마어마한 사용인구를 지닌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봤더라면 뭐라고 말했을지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 * *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 『존재와 시간』中에서

페크pek0501 2012-10-18 15:03   좋아요 0 | URL
오렌 님이 애덤스미스, 쇼펜하우어, 키케로에 이어 이번엔 하이데거의 글을 배에 싣고 오셨네요. 멋집니다. 이 배를 타면 가지 못할 곳이 없을 것 같군요.ㅋㅋ
하이데거의 저작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를 거론하는 책들은 많이 읽어서 마치 그의 저작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듭니다.
책을 읽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이 하이데거를 비롯해 마르크스, 프로이트, 다윈, 에리히 프롬인 듯해요. 이들의 저작은 다 읽었는데 하이데거는 못 읽었네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언어가 인간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무척 감탄했었어요.(저, 원래 감탄 잘 해요. 제 특기죠.ㅋㅋ)

이 가을, 오렌 님이 사진과 단풍과 더불어 가장 멋지게 이 계절을 보내실 듯 생각됩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순오기 2012-10-1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공감 백배!^^
하지만 요즘은 교육쇼핑(?^^)에 동참하느라 한동안 소홀했어요.
행복한 가을 되시기를...

페크pek0501 2012-10-18 15:06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반갑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저는 워낙 게으름뱅이 블로거이기 때문에 요즘이 아니라 늘 조금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만...(남이 볼 땐 게으름뱅이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하느라 하는 거예요. 킥킥...)
워낙 바쁘시게 사시는 분인 것, 방문자들도 잘 알 겁니다.
님도,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바쁘신 일 끝내시고 빨리 원위치하시길... 그래야 순오기 님이죠. 파이팅!!!!!!!!! 또 봐용^^

글샘 2012-10-1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한 구들장같은 서재가 되시길 빌면서...
pek 님이 읽으심 홀랑 빠질 책 하나 알려드릴까요?
일본에서 천 년 전에 헤이안 시대에 궁녀가 쓴 '마쿠라노소시'란 책 보셨나요?
한번 읽어 보시면... 왜 권했는지... 아실랑가? ㅋ

페크pek0501 2012-10-18 15:10   좋아요 0 | URL
글샘 님, 오랜만이군요.
오늘은 옛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조용한 구들장같은 서재가 꼭 될꼬예요.(될 거예요.)
아마 제가 가장 오래 남는 블로거가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는...ㅋ

아, 그 책, 180쪽밖에 안 돼서 좋습니다. 누가 추천하시는데, 안 읽겠습니까.
요즘 읽는 책들이 거의 300쪽이 되어서 그 정도의 쪽수라면 앉아서 떡먹기입니다.(누워서 떡먹기는 어려워요.ㅋㅋ)
꼭 구입해서 읽고 그 감상을 님의 서재에 댓글로 남기겠습니다. 그런데 이 게으름뱅이가 언제 읽으려나요. 으음~~~ 책이 밀려 있어서 말이죠. 그래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읽고 그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해도 달력 몇 장 안 남았네요. 슬프다..... 떠나는 모든 것들은 슬픔을 잉태하는 것 같아요. 또 봐용^^

글샘 님 - "왜 권했는지... 아실랑가? ㅋ"(끝에 높여서 읽기)
페크 님 - "왜 권했는지... 아실랑다.ㅋ"(끝에 낮추어서 읽기)
 

 

 

 

1.

대학생 시절에 어느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한 달간 2학년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능숙한 선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교단에 서면 긴장이 되어 표정이 굳어지곤 하였다.

 

 

2주일쯤 지난 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한테 교생인 나에게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대부분의 교생들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마련이어서 나도 내 인기를 확인하게 될 그 편지들을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하나씩 뜯어보던 날, 나는 깜짝 놀라며 실망하였다. 숙제로 제출한 그것들은 나의 바람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내 인상이 차갑다, 냉정해 보인다, 깍쟁이 같다 등의 글을 적었던 것이다. 교사답게 보이는 데에만 치중하다보니 내 얼굴과 말투가 그들에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평가에 어찌나 실망이 되던지 그날 하루 종일 우울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이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그 학생에게 다른 학생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것도 그 학생을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그 바람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이에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고 얼굴까지 빨개졌다. 능숙한 선생님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한순간에 바보 같은 선생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은 정말 비슷비슷해 보였다. 당혹해 하는 내 모습이 안됐던지 학생들은 하나 둘씩 위로를 해 왔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인기는 조금씩 올라갔다. 내 실수로 인해서 오히려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가 오르자 자신감이 생겨 덜 긴장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었다. 유머와 관련한 이야기와 내 연애 이야기도 해 줬는데, 그들은 무척 재밌어 했다.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교생실습이 끝날 때쯤, 나와의 작별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로 나는 인기 있는 교생이 되어 있었다. 나의 인기를 증명하는 건 바로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사진과 내게 쓴 편지를 한 권의 앨범에 담아서 내게 주었던 것. 그 선물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어느 교생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을 받지 못했다. 교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앨범엔 그 당시 60명쯤 되는 학생들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 있다.

 

 

학생들과 친해지기 시작한 건 학생의 이름을 잘못 부른 나의 실수로 인해서다. ‘실수’라는 건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때론 이 나쁜 것이 이로운 일을 만들기도 한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이 밖에도 내가 살면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라는 걸 깨닫게 하는 일이 참 많다. 또 하나 예를 들면 둘째 아이를 낳던 날, 첫 딸에 이어 두 번째도 딸이어서 그땐 무척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매인 것보다 자매로 자식을 둔 게 더 좋다는 생각이다. 그때와 달리 시대가 변해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된 것도 그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자매는 자랄 때도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주위에서 봐 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매는 결혼을 하고 나면 친하게 지내며 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아들보단 딸이 더 부모를 챙긴다는 점에서도 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을 낳아 실망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2.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즐거움,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새로운 걸 배우는 즐거움. 여기선 전자의 즐거움에 속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깨달은 것과 똑같이 깨달은 이를 책에서 만났다. 바로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책이다.

 

 

먼저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등 열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열 편의 에세이로 중국의 40년 동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자는 1960년에 출생,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라고 했듯이, 독자로 하여금 그의 일상 속의 일화를 들여다보게도 하고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게도 한다.

 

 

독자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이야기

저자(위화)가 중학생이던 시절엔 책이 귀했다. 그래서 책을 돌려 가며 읽었다. 모든 책들이 수천 개의 손을 거쳐서인지 심하게 낡은 상태의 책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책은 앞부분의 10여 쪽 정도가 찢겨 나간 책도 있었다. 그는 책 제목도 몰랐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책을 읽었고, 또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

 

 

..............................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81쪽~82쪽.

 

 

 

그 시대엔 파손된 책으로 독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저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 파손된 소설들이 처음으로 저자의 창작 열정에 불을 붙여서 여러 해가 지나 마침내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으므로 결국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두 번째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인 동시에 공산당의 말단 간부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저자는 간부였던 친구 아버지들이 타도 대상이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아버지에게도 그런 액운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저자의 아버지는 지주 집안의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던 건달이라서 그저 먹고 마시며 노는 것밖에 몰랐으므로 집안은 점점 기울어갔다.

 

 

..............................

이렇게 기울어가던 집안은 1949년에 이르자 2~3백 무 정도 남아 있던 땅마저 전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지주 신분마저 팔아버린 셈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중국 전체가 해방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총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전화위복으로 지주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우리 형도 할아버지의 건달 생활에 따른 격세의 수혜자가 되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16쪽.

 

 

 

할아버지가 건달이어서 집안이 기울어갔던 것은 그 당시엔 분명 나쁜 일이지만, 그 때문에 훗날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세 번째 이야기

저자는 스물두 살 무렵, 한편으로는 치과의사로서 사람들의 이를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중에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직업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

여러 해가 지나 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농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단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방금 한 농담을 계속하자면 나와 헤밍웨이는 마오쩌둥이 말한 것 중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36쪽~137쪽.

 

 

 

 

****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교생실습 때의 나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나와 저자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임에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09쪽.

 

 

 

 

3.

프로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 자주 가던 때가 있었다. 특히 9회 말에서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역전의 승리를 거둘 때의 그 짜릿한 통쾌함 때문에 ‘야구는 9회 말부터’ 라는 말을 좋아했다.

 

 

인생이란 스포츠와 같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스포츠가 어느 팀이 이길지를 예측할 수 있지만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우리의 예측을 뒤엎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스포츠와 닮았다.

 

 

우리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당장엔 알 수 없게 만드는 ‘삶의 반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을 듯하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2-10-0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 시절과 여고 교실에서의 교생실습에 얽힌 추억담이 너무나 풋풋해서 좋네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엉뚱하게도 '노년에 대하여' 글을 남긴 키케로가 자꾸만 떠올랐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을 두려워하거나 한탄하지만, 키케로는 '노년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인데, 페크님의 이번 글과 나름대로 유사한 점도 있는 것 같아요.ㅎㅎ
* * *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 · · · · ·
노년에, 말하자면 육욕과 야망, 투쟁, 적대감, 그리고 온갖 욕망에 대한 복무 기간이 끝나, 마음이 스스로 만족하는, 이른바 마음이 자기 자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 키케로,『노년에 대하여』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0-10 14:10   좋아요 0 | URL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이 글에 공감합니다. 언젠가는 주름이 많이 생길 날이 올지라도
저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한가한 시간만 있다면 늙음을 서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함께 늙는 일인 것 같아요.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요.

반가웠습니다.^^

프레이야 2012-10-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그래그래 끄덕끄덕ᆢ이러며 읽었어요. 완전 공감ㅎㅎ 교생 때의 이야기는 참 훈훈하네요.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게 사람이고 그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는 거 같아요.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세상에 나를 키우지 않은 건 없구나, 열화같았던 내 여름을 함께한 대상을 비롯해 내 지난 어리석음까지도 날 키우는 재료였구나 하는 거에요. 위화의 저 책도 담아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14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 님, 이 책 좋아요. 저는 개인의 일상을 통해 보여 주는 한 나라의 역사 이야기가 재밌더라고요. 이 책이 중국에서는 출판 금지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설은 출판이 되었으나 이 책은 비허구성의 책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역사가 더 애절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전화위복, 이란 말을 제가 좋아합니다. ㅋㅋ

다크아이즈 2012-10-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 책 샀는데, 정말 좋네요. 허삼관매혈기 안 읽었는데 위화의 이 <비허구성 글> 덕분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왜 이리 잘 쓰는 작가들이 많은 걸까요?

페크pek0501 2012-10-10 14:17   좋아요 0 | URL
아, 손님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위화의 책은 처음 읽은 거랍니다. 워낙 명성 있는 작가라서 궁금해서 구입하게 되었어요. 이미 일간지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어서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쓰는 작가, 정말 많아서 기죽으며 읽게 돼요. 그러나 즐거운 기죽음이에요.ㅋㅋ 책을 산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으니까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10-10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새벽, 제가 이 글에 얼마나 위안을 얻고 가는지 언니는 모르실거예요. ^^

페크pek0501 2012-10-10 14:18   좋아요 0 | URL
아, 달여우 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저도‘삶의 반전’에 위안을 받으며 사니까요.
삶이 수학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숨막히겠습니까.
때로는 꼴찌가 일등이 되는 역전의 기회가 숨어 있는 삶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아요. 제가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마립간 2012-10-1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이젠 아주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느껴지는데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10-1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10-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글을 읽으니 저도 고 1때 본 교생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등학교 때 교생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프로의식이 있는 선생님처럼 보여서 정말 선생님 같았거든요. 제가 그 선생님을 흉내 내고 싶어나 봐요.ㅋㅋ 말하자면 저의 롤모델이 되었던 거죠.
카스피 님, 오랜 만에 뵈니 반갑군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10-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 님이 생각한 '능숙한 교사'란 바로 '긴장된 몸'으로 학생을 마주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모습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내 모습을 바라고 그리는 대로 나타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교사'가 될 까닭이란 없어요. 이제 잘 아실 텐데요,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부모'가 될 까닭도 없어요. 그저 '사랑스러운 어버이'가 되면 즐겁고, 동무들 사이에서도 '서로 사랑스러운 동무'로 지낼 때가 가장 즐거워요. 교사 또한 '서로 사랑스럽게 마주하는 사람(어른)'이라면 가장 즐겁겠지요.

겉(지식)으로는 능숙한 교사(교생)로 아이들 앞에 서려 했지만, 마음속(생각)으로는 아이들하고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운 교사이기를 바랐으니, 나중에 '잘못' 이름 부르는 일을 빚었겠지요. pek0501 님 스스로 학생 때에 느낀 '내가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교사' 모습을 스스로 빚었으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7   좋아요 0 | URL
아, 된장 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땐 제가 대학생인 때라 어려서? 그런 거예요.
고등학생들과 나이가 몇 살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선생님답게 보이는 걸 중요시했어요. 또 학교에서도 그렇게 교육시켰고요.
물론 지금은 안 그래요. 요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정하고 재밌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논술 수업 시간이 참 재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제 목표랍니다. 사랑스러운 선생님이면 더 좋겠지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2-10-11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