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 신중하셨군요. ㅋㅋ 신중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에도 감사드립니다. 이것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인 것 아시죠? (아시리라 믿어요.)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더'와 '덜'을 따진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 ㅇ님의 댓글 중에서.

 

 

 

 

 

이것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일부 사람들만이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에는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자, 예를 들어 볼게요. 오래 전 어느 소설에서 읽은 것이랍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찾질 못하겠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왜곡할 수 있음.)

 

 

사랑하는 사이의 두 연인이 동거하면서(적어도 자기네들은 사랑한다고 믿고 있어요.) 부엌일을 서로가 맡지 않으려고 해요. 하기 싫다는 것이죠. 어느 날 서로 상대가 부엌일을 맡아야 한다며 설득력 있는 말을 골라 하면서 크게 싸워요. 각자가, 자신은 바빠서 부엌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서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긴 한데, 그중 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덜 바쁜데, 그 덜 바쁜 사람이 자신이 ‘덜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질 않아요. “나도 바쁘다.”라고 주장할 뿐이에요. 그러면서 서로 “당신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라고 말해요.

 

 

이게 말이 되나요? 사랑한다면 아무리 하기 싫은 부엌일일지라도 참고 해야죠. 잘하지 못하는 부엌일일지라도 배워서라도 해야죠. 그러므로 사랑한다면 덜 바쁜 사람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고, 더 바쁜 사람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해요. 상대가 그러길 원하니까요.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거예요.

 

 

님이 댓글을 쓴 그 문제의 페이퍼에서 제가 마광수 저,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이것 맞다고 봐요.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 밥상을 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가 자신의 밥상을 차리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죠.) 결국 상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되어 버리는 거죠. (부엌일을 하기 싫어 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순 없어, 라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부모 자식 간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부모가 자식에게 일류 대학에 가길 원해서 학업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은 결국 일류 대학에 들어간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 되거든요. 자식이 아무리 공부하기 싫어 해도, 자식의 그런 괴로움 따위는 무시하고 무조건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가길 강요하는 부모라면, 생각해 볼 만해요. 자식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부모일지 몰라요.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저도 님의 댓글(위의 네모 박스 안의 글)에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페이퍼를 쓴 것은 재미 삼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를 나눠 보고 싶었답니다. 그런 관계의 구조가 우리 인간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속성 같아서요. (예를 들면, 일방적으로 자기 자신이 상대에게 더 많이 전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만나기로 한 장소에 상대가 늦게 나타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님의 먼댓글을 잘 읽었어요. 인쇄하여 꼼꼼히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에구,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갖지 않을 글(그 페이퍼)을 괜히 썼나, 싶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을 만나,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이 <싱거운 후기>를 급하게 썼는데요, 내일이나 모레에 다시 손질할 부분을 찾아 수정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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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from Value Investing 2012-11-07 12:38 
    페크님께서 두번씩이나 인용해주신 부분(‘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에 대해서는 쉽게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진지하게 반박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무 급작스럽게 범주를 넓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타적 사랑이나 숭고한 인류애 등을 생각해 보면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타인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까지 승화시키느냐 그
 
 
페크pek0501 2012-11-0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쓴 페이퍼인데, 지금 수정했어요.
밑줄을 친 부분을 넣은 게 수정이랍니다.^^

방문자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2-11-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서 수정하신 부분까지 포함해서 잘 읽었습니다. ㅎㅎ
페크님의 글을 읽으니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여러 '책 속 구절들'이 있어서 부득이 또다른 먼댓글을 (페크님의 인용글에서 일부 차용한 제목으로) 달아봅니다. 오늘은 바깥날씨가 한결 따스해진 것 같죠? 그런만큼 더욱더 좋은 하루 되시길 빌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52   좋아요 0 | URL
예, 요즘 참 좋은 계절이에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오렌 님과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먼댓글도 받아보고~~~
님 덕분에 공부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