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

이 책에서 뽑아 옮겼다. 



4. 복수


어떤 사람들은 복수를 결행하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보복을 당하는 까닭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비교적 대범한 자세다. 보복을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는 데 복수의 기쁨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24쪽)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복수하려는 사람이 상대편에게 내가 꼭 복수하고 말거야.” 또는 밤길 조심해.”라는 말로 겁을 주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편이 뉘우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시청자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그렇게 썼을까? 


나는 복수하려는 사람은 복수의 계획을 상대편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작가가 그렇게 썼다고 본다. 그 엄청난 복수의 계획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또 상대편이 자신이 복수할 거라는 것을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떤 불행이 닥치리라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에 떨게 만드니까.


복수를 궁리하는 사람은 곧 나아서 쾌유될 수도 있었을 상처를 늘 아프게 간직하는 셈이다.(24쪽)


해칠 방법을 모색하며 마음이 편할 리 없다. 



5. 역경


번성한다고 두려움과 번거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요, 역경 속이라고 위안과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재봉일이나 수예에서 슬프고 장중한 바탕에 경쾌한 무늬를 넣는 것이, 밝은 바탕에 어둡고 침울한 무늬를 넣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그러니 이와 같은 눈의 즐거움에 미루어 마음의 즐거움을 판단해보라. 향이나 양념은 피우거나 빻을 때 가장 향기로운 법이다. 미덕도 이러한 값진 향기와 같다. 번성은 악덕을 가장 잘 드러내지만, 역경은 미덕을 가장 잘 드러낸다.(27쪽)



7. 부모와 자식


자녀에게 용돈을 인색하게 주는 것은 해로운 실책이다. 그로 인하여 자녀들이 비열해지고 수단을 부리게 되고 좋지 않은 친구와 사귀게 된다. 그리고 풍족해지면 쉽게 방탕해진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한 권위는 유지하면서도 돈줄까지 틀어쥐지 않을 때에야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부모나 학교 선생이나 하인이나 모두들) 어린 자식들 간에 경쟁심을 일으키고 부채질하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다. 대개의 경우 이것은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 불화의 씨가 되어 가정에 풍파를 일으킨다.(34쪽)



8. 결혼과 독신 생활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게는 반려자이며,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38쪽)



10. 사랑


부부의 사랑은 인간을 만든다. 친구 간의 사랑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방탕한 사랑은 인간을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게 한다.(48쪽) 



23. 자기 자신을 위한 지혜


제 자신만을 위한 지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타락한 행위다. 그것은 집이 무너지기 조금 전에 틀림없이 빠져나가는 쥐의 지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땅을 파서 살 곳을 마련해준 오소리를 쫓아내는 여우의 지혜다. 그러나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키케로가 폼페이를 가리켜 말한 것처럼 “비길 데 없이 자기 편애에 빠진 사람”은 대체로 불행하다는 점이다. 평생을 두고 제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결국은 그들 자신이 운명의 변덕에 제물이 되고 만다. 운명의 날개를 제 몸을 아끼는 잔꾀로 묶어두었다고 잘못 생각했을 뿐이다.(108~109쪽)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행복하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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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2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게 알리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복합적일 것 같아요.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가 뉘우치기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복수를 정당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합리화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니고 너가 문제라는 책임 전가일 수도 있겠고...인간군상만큼 많을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26 10:08   좋아요 0 | URL
복수를 알리는 이유가 말씀하신대로 복합적이겠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딱 한 가지 때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네가 먼저 시작했고 나는 그것에 복수를 할 따름이라는 명분을 알리려는 이유도 있겠어요.복수를 위해 상대편의 애인을 뺏는 경우도 있더군요.
잉크냄새 님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5-25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날씨가 더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장미가 피었네요. 5월이니 이제 그럴 때도 된 것 같은데, 참 예쁘네요. 집 가까운 아파트 담장에 장미가 예쁘게 핀 곳이 있어요. 시간 될 때 가봐야겠어요.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말 중에 ˝밤길 조심해˝라는 말이 위협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 뭘까요.^^;

잘 읽었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26 10:11   좋아요 1 | URL
그저께인가 찍은 사진입니다. 장미가 시들기 전에 잘 찍어 둔 것 같아요. 걷기 운동을 하다가 찍었어요.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 맞습니다. ˝차 조심해.˝라고 말해도 무서울 것 같습니다.ㅋㅋ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입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희선 2025-05-26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한테 알리고 싶어하는군요 저라면 아무 말 안 하고 할 듯합니다 그런 거 알리면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생각이 더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 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괜찮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5-26 10:13   좋아요 0 | URL
아무 말 안 하고 복수하면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는데 겁을 주고 싶고 내가 가만히 있을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기도 할 것 같아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하니 복수하기보단 마음을 추스르는 게 좋을 듯요. 가장 좋은 복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게 산다, 는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yamoo 2025-05-29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이컨 수필집과 몽테뉴 수필집을 다 읽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근데 인용하신 걸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거 같기는 합니다..ㅎㅎ

에세이집은 한 권을 제외하고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단 하나의 예외가 쇼펜하우어의 에세이집이죠. 너무 강렬한 주장이라 안 잊혀져요..ㅎㅎ

페크pek0501 2025-05-31 12:53   좋아요 0 | URL
1561생인 베이컨의 수필은 비유법의 구사 능력이 뛰어나 읽는 재미가 있어요. 그걸 배우기 위해 읽어요. 시대에 뒤떨어진 문장이 보이긴 합니다만, 가령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믿지 않아 잘못 쓴 부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대의 글이라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책 뒤쪽에 꼼꼼하게 미주가 정리돼 있어 역시 좋은 출판사는 다르구나 싶어요.
저도 쇼펜하우어의 책은 세 권쯤 읽은 것 같아요. 재밌죠.^^
 



그런데 언어 마술사 같은 내 동행자는 대단한 재능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하나의 건축물을 내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 건축물은 그 자체로 규정되어 솟아오르는 듯이 보였고, 어떤 내적 필연성으로 존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내가 그 안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 그 건축물 안에는 결여되어 있기에 아쉬웠고, 그저 단지 하나의 단순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럴듯한 완결과 완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 흔히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듯이 말이다. 어쨌든 나는 유창하게 떠드는 그 남자의 말을 기꺼이 경청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몰두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나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가 내 정신과 주의력을 요구했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101쪽.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도 지옥이 있으니,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그것이다.”

또 최근에 나는 악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동정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곳으로부터 인간들에게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참으로 나는 뇌우의 징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말도 명심하라. 모든 위대한 사랑은 모든 동정을 넘어 선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조차도 창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5쪽.





완독회 

이병률


(상략)


찬 소주를 앞에 놓고 대개의 우리가 반복하는 일이란

소매를 접고 접어도 별반 뒤집어지지 않는 질문 같은 

것일지도


시 한 편씩을 돌아가며 읽는 낭독회를 마쳤지만 그래봤자

매번 그것으로 어제의 기분을 누르며 살려는 것


모두가 밤을 헤엄치는 기분에 빠져 있다

나만 혼자 바람 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곳으로부터 모두를 꺼내야겠다는 마음을 조금 섞고

싶어서겠다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61쪽.





시기와 질투에 관한 명언 :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헤시오도스)

동정보다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낫다.(헤로도토스)

바보들을 우리는 시기가 아니라 경멸한다. 시기는 일종의 칭찬이기 때문이다.(J. 게이)

번영을 누리는 친구를 질투심 없이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아에스킬로스)

사람은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을 때 미움도 가장 많이 받는다.(J. 드라이든)

사람의 마음에 시기심만큼 강하게 뿌리 내린 감정은 없다.(R. B. 셰리든)

시기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예프투셴코)

시기하는 자는 자기 화살로 자기를 죽인다.(익명)

질투는 휴일이 없다.(베이컨)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라로슈푸코)


이 중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는 말이 와 닿는다. 상대편을 사랑해도 자존심을 챙기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니던가. 보통 사람은 자존심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할 만큼 이기적이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작가가 소설에서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해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렸다면, 그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세상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 고통에 독자가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세상이 되기 위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그 고통은 그저 타인의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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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5-1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간만에 언니와 제가 같이 읽은 책이 나왔네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읽은지 꽤 되죠. 서재 활동 초기 때였던 것 같은데.
살짝 지루했던 것 같기도한데 나름 괜찮았던 책으로.
원래 독일문학이 좀 그렇잖아요. 요즘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어디 좋은데 다녀오셨나봐요. 어제 소나기치곤 장맛비처럼 내리고 약간 후텁지근한 것으로 보아
이제 초여름으로 넘어가려나 보다 싶어요. 덥기 전에 잘 다녀오셨네요.^^

페크pek0501 2025-05-17 20:36   좋아요 0 | URL
하하~~ 오늘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를 완독했어요.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아이디어가 기발하잖아요. 그림자를 풀밭에서 살짝 거둬들여 둘둘 말아 접어 가지고 간다는 것.
그림자를 주는 대신 금화 주머니를 받게 되어 부자가 되었으나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고 사람들한테 무시 받는 존재가 됩니다. 과연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ㅋㅋ여러 가지를 유추해 보라는 게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집니다.^^

yamoo 2025-05-17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끝내줍니다. 그리고 싶은 풍경이네요. ㅎㅎ
저도 그림자를 판 사나이 재밌게 읽었더랬죠. 가장 필요없은 게 인간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라 일종의 동화책 같았죠.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17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이런저런 글을 끌어다 썼어요. 지금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신록이 한창 예쁠 때라서요. 한번 그려 보십시오. 푸른 5월의 풍경을!!!
저는 그림자를~ 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가지고 있어야 차별 받지 않는다, 쪽으로 읽었어요. 이민자, 성소수자 쪽으로도 생각해 봤네요.^^

잉크냄새 2025-05-17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가 연두연두 초록초록 합니다.
계절을 걷다 보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이맘때즘의 계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페크pek0501 2025-05-18 15:50   좋아요 0 | URL
연두 초록이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건가요?
잉크냄새 님의 표현이 참 좋으십니다!!

서니데이 2025-05-18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지난번 서재 사진의 분홍색 꽃도 좋았지만, 연초록 풍경 사진도 참 좋네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없다고 생각하면 결핍이나 소외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지만,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다음에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사진 잘 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18 15:55   좋아요 1 | URL
날씨가 참 좋네요. 집에 있기 아까울 정도로요. 그러나 집에 있는 게 저는 더 좋아요.
연초록도 예쁘지만 빗물이 고여 있는 게 맘에 들어 서재의 전체 배경으로 올려 봤어요. 의자 밑에 빗물이 있지요.
다수의 모양새나 성향을 따르지 않으면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문제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흥미를 끄는 소설입니다.
푸른 5월이 길게 길게 ~~~ 머물다 가면 좋겠습니다^^


2025-05-2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2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5-05-2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참 잘 찍으시네요.
초록으로 가득찬 화면이 너무 좋네요.

시기와 질투.
저도 한때 질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어차피 질투한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투 자체를 안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질투를 해서 내가 뭔가 달라진다면 그건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질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저는 달리기 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저렇게 잘 달릴 수 있는 젊은 신체에 질투가 나지만,
저는 절대 젊은 몸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아무 소용없는 감정입니다.
그냥 이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이고,
이 몸으로도 어떻게든 달리기와 다른 좋아하는 운동들을 잘 하도록
익숙해지는 길 밖에 없겠지요.

페크pek0501 2025-05-23 12:14   좋아요 0 | URL
사진은 스마트폰 덕분입니다. 사진 찍고 나서 색상을 밝게 입히고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는 등 편집을 합니다. 사진 잘 찍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잘 모를 땐 대각선 구도를 활용하라고 하더군요. 맨 아래의 두 사진이 대각선 구도죠. 완전한 대각선보다 살짝 비껴가는 듯해야 더 좋은 것 같아 그렇게 찍는 편입니다. 사람만 없으면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이 끼인 사진이 많아 잘라내곤 합니다. 초상권 침해, 운운할까 봐서요.ㅋㅋ
저도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는 말이 와 닿더라고요. 젊은이들이 당연히 부럽죠. 더 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이것도 불가능한 바람이겠죠.^^
 

*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도련님」, 「산시로」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모두 소설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인간 관찰기’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듯한 구샤미의 집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가 구샤미, 그의 가족,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하여 보고 느낀 것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읽다 보면 웃음 짓게 만드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가령 이런 것들.


“그 왕에게 한 여자가 책을 아홉 권 가져와 사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리고요?”

“왕이 얼마면 팔겠느냐고 물으니 아주 비싼 값을 부르더래요. 그래서 너무 비싸니 좀 깎아달라고 하자 그 여자가 갑자기 아홉 권 중 세 권을 불에 태워버렸다고 해요.”

“아깝군요.”

“그 책에는 예언인지 뭔지 딴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쓰여 있었다고 해요.”

“그래요.”

“왕은 아홉 권이 여섯 권이 되었으니 가격도 조금 떨어졌겠지 생각해서 여섯 권에 얼마냐고 물었는데, 여전히 처음 가격에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왕이 너무하다고 하니, 그녀는 다시 세 권을 빼서 불에 태웠대요. 왕은 아직 미련이 남은 듯 남은 세 권을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는데 여전히 한 푼도 깎지 못한다고 하니, 그걸 깎으려고 하면 남은 세 권도 태워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해 왕은 결국 비싼 돈을 내고 남은 세 권을 샀다고 하네요. (...)”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06쪽.


책을 불에 태우는 방법으로 책을 판매하다니 비인간적인 상술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책을 태워도 왕이 책을 끝까지 사지 않는다면 판매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 도쿠센도 말은 훌륭하지만, 막상 닥치면 다 똑같아. 자네, 9년 전의 대지진 기억하지? 그때 기숙사 2층에서 뛰어내려 다친 사람은 도쿠센 군꾼이었다니까.”

“그 행동에 대해서 그 친구는 꽤 변명이 많았지.”

“그렇다니까. 본인 말을 들으면 아주 그럴듯하지. ‘선(禪)의 창끝은 날카로우니 순간적으로 재빨리 사물에 대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지진이라고 당황했지만 나는 2층 창에서 의연히 뛰어내렸으니, 그게 다 수양의 결과가 아니겠는가’라며 기쁘다고 말했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말이야. 지기 싫어하는 친구야. 하여튼 선(禪)이니 불(佛)이니 하며 떠드는 무리처럼 수상한 사람들은 없어.”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400쪽.


정신 수양을 했다는 사람이라면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흥분하지 않고 침착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보다 더 흥분하여 자신이 2층 창에서 뛰어내린 것에 대해 도쿠센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2층 창에서 의연히 뛰어내렸으니 그게 다 수양의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네. 



“자네 같은 악동을 만나면 못 당하겠군.”

“어느 쪽이 악동인지 몰라. 나는 선승입네, 깨달았네 하고 떠드는 자는 아주 질색이야. 우리 집 근처에 난조인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 80세가량 되는 노인이 있어. 요전에 소나기가 많이 왔을 때 그 절에 번개가 떨어져서 정원에 있던 소나무가 쪼개졌지. 노인은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완전 귀머거리야. 그렇다면 태연한 것도 당연하지. 대개 그런 것이야. 도쿠센도 혼자 깨달았으면 됐지, 걸핏하면 남을 유혹하려 드니까 나빠. 실제로 도쿠센 때문에 지금 두 명이 미친놈 소릴 듣고 있다니까.”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401쪽.


절에 번개가 떨어져도 노인이 태연했던 것은 귀머거리였기 때문이란다. 


 


**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이병률



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나는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입니다


언제나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을 바라지는 않아요

맛이 없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사랑과의 잘못은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떨어뜨린 줄기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것이 땅콩입니다

그것을 줄기로 치느냐 뿌리로 치느냐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사랑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헷갈려 하지만요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의 숫자나 세고 돌아와도 되는 것입니다 


(하략)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18~19쪽.




***



단상 : 확신은 강력한 것


무엇을 결정할 때 확신에 차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잘난 확신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쑤다’에서 애순(문소리 분)의 딸 금명(아이유 분)이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어 했던 남자는 영범(이준영 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는다. 영범(이준영 분)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범(이준영 분)이 금명(아이유 분)과의 결혼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금명(아이유 분)의 이 예비 시어머니는 확신에 차 있어서 불행을 자초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확신. 어쩌면 이건 핑계일 뿐이고 가난한 집안의 딸인 금명(아이유 분)보다 더 좋은 조건의 신붓감을 고르고 싶은 예비 시어머니로서의 욕심일 것이다. 이런 확신은 있었겠다. 자기 아들이 좋은 조건의 신붓감과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 이 확신은 결과적으로 그릇된 확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불행하지 않기를 가장 바랐을 어머니가 아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는 강력한 확신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위해 양파를 찾는데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사과 두 개’가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비닐봉지를 열어 보면 그것이 ‘사과 두 개’가 아니라 ‘양파 두 개’라는 것을 알 텐데, 비닐봉지를 열어 확인해 보지 않고 사과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양파가 없다고 단정을 내린다. 뒤늦게 그것이 양파라는 것을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확신이란 이렇게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


발레를 배울 때 신는 발레 슈즈가 닳아 새것을 샀다. 

 새것을 사고 보니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발레 슈즈가 닳을 정도로 발레를 했다는 점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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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9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중딩시절 재미있게 읽은 일본소설중의 하나입니다.당시에는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의 대문호인지 모르고 이작가 글좀 쓰네했던 적이 있었네요

페크pek0501 2025-05-10 11:26   좋아요 0 | URL
어머나! 중딩 때 저 고양이~, 를 읽으셨다니 부럽네요. 카스피 님은 수준 높은 중학생이었나 봅니다. 저는 중학교 때 뭐했나 모르겠어요.ㅋㅋ 일본 소설을 처음 읽은 건 금각사, 인 것 같아요. 그것도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카스피 2025-05-10 16:56   좋아요 1 | URL
넵,집에 있던 책중에 오래된 을유문고 세계문학전집 몇권이 있었는데 그중 한권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5-05-11 13:27   좋아요 0 | URL
오! 세계문학전집. 우리집에도 있었는데 저는 읽을 생각을 못했어요.ㅋㅋ

서니데이 2025-05-09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레에 사과가 들어가면 맛있어요. 저희집은 있으면 넣는데, 요즘 카레 먹은지가 조금 되었더니 먹고 싶네요. 그래도 양파가 없으면 아쉬울 거예요.
발레 계속 하셔서 좋을 것 같아요. 자세교정에도 그렇고 운동 효과도 있을 것 같지만, 다른 것보다도 좋아하는 걸 하는 기쁨도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신발도 예쁘고, 그리고 레이스 있는 발레복도 입으면 예쁠 것 같습니다.
페크님,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10 11: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카레에 사과를 넣으면 맛있어요. 그런데 감자 양파 당근을 넣어야 한다는 고정관넘 때문에 사과를 넣을 생각을 못할 때가 많아요. 집에 사과가 있는데도 말이죠.
발레, 주 1회라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게 쉽지 않아요.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1회에 80분 수업이라 땀을 많이 흘려요. 치마를 입어야 발레를 하는 것 같다는...ㅋㅋ 클래식 음악도 듣기 좋답니다.
비가 창문을 적시는 주말이네요. 서니데이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stella.K 2025-05-11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갑자기 언니가 엄청 부러워졌습니다. 슈즈는 알겠는데 저 까만 천은 허리에 두르는 거죠? 이름이 따로 있나요? 암튼 저는 저 고양이 두 번 읽기를 시도했는데 다 성공 못 했어요. 너무 잔잔한데다 제가 소설은 좀 편차가 심하거든요. 다시 도전해야 봐야겠어요. 전 요즘 가끔 펄벅의 <대지>가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중학교 때 재밌게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풍경사진 멋집니다. 올핸 이상하게 봄이 봄 같지가 않은 것 같아요. 이맘 때 제법 후텁지근했던 거 같은데 저만 이런가요? ㅠ

페크pek0501 2025-05-11 13:26   좋아요 1 | URL
끈을 허리에 감아 뒤에서 리본으로 묶는 건데 발레복 스커트, 인 거죠. 저는 스타킹이 신기 싫어 달라붙는 바지에 저 스커트를 입어요. 한 바퀴 돌 때 스커트가 둥글게 퍼지는 맛이 있거든요.ㅋㅋ
<고양이로소이다>는 547쪽짜리인데 5백 쪽 넘게 읽었으니 수십 쪽만 읽으면 완독이에요. 몇 달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 책을 보다 보니 이제야 완독하나 봅니다. 재밌어요. <대지>는 책을 갖고 있는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책 중 하나예요. 중학교 때 <대지>를 읽으셨다니 수준이 높은 학생이었네요.
저도 이번 봄은 좀 특이하게 생각되더군요. 5월 치고 날씨가 선선해서요.^^

희선 2025-05-1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를 텐데, 사람은 자신이 옳다 여기는 걸 바꾸지 않기도 하는군요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걸 늘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봉지에 든 게 양파인지 사과인지는 봐야 알죠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고 여길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5-14 23:55   좋아요 1 | URL
대부분 자기가 아는 게 옳다고 믿죠. 자신이 잘못 생각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봉지에 든 것조차 확인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믿어 버려요.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신중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5-05-12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ㅠㅠ 마음이 아린데 너무 좋아요

저는 약속장소에 먼저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걸 좋아해요.
기다리면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 시간을 즐기죠.^^
그렇지만 안오는건... ㅠㅠ

페크pek0501 2025-05-14 23:57   좋아요 0 | URL
약속장소에 딱 맞춰 가려 하면 간혹 늦는 경우가 생기고 그럴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건강을 위해서도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좋죠. 저도 십분 전에 도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 건, 슬픈 일이에요.^^

2025-05-15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6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2025-05-17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만나고 바로 최애 작가가 되었지요.
읽은 지 오래 되어서 언젠가 또 읽어보고 싶답니다. 어느 블친이 선물해준 이 책을 고이 모셔두고 있지요. 국민작가, 일본의 셰익스피어라는 칭호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가지요.

발레도 열심히 하시고 새 옷을 가진 기쁨이 제게도 느껴지네요.ㅎ^^
주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5-17 14:40   좋아요 1 | URL
저는 도련님, 이란 소설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만나고 팬이 되었지요. 이 소설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하는 할머니와 도련님 사이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을 좋아합니다.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도 발레가 인기랍니다. 문화센터에도 발레 강좌가 많이 있더군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은빛 2025-05-21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발레 슈즈가 닳을 정도로 발레를 하셨다니! 대단하세요.

저는 비싼 런닝화가 닯을까봐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쿠션이 약한 런닝화를 사서
평소에는 그걸 신고 달리고 있어요.
일부러 10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뛰거나 대회에 나갈 때에만
비싼 런닝화를 꺼내 신어요. ㅎㅎ

도쿠센이란 인물이 궁금해지네요.
이 책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5-05-23 12:20   좋아요 0 | URL
발레 입문은 2017년으로 기억해요. 코로나 때 쉬다가 다시 시작했지요.
저보다 발레 잘하는 수강생들이 많아 늘 따라가는 마음으로 배웁니다. 가끔 왕초보 분이 들어오면 내가 많이 늘긴 했구나 실감하지요.
감은빛 님의 런닝화 사용 방법에 웃음이 나네요. 알뜰한 주부 같습니다. 저도 아끼는 옷이 몇 벌 있는데 그건 친구 자녀나 친척의 결혼식 때만 입거든요. 후후~~~
고양이로소이다, 저는 재밌게 읽었는데 지루하다는 평도 있어요. 서점에서 직접 보시고 구매하시면 좋을 듯해요.^^
 

요즘 40세 전후로 보이는 두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있다. 나보다 젊은 작가들은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는지 알고 싶었다. 


*













정지우,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신문에 실리기 좋을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식궁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이 책에는 ‘예민함 궁합’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 있다. 


연애나 결혼에서 흔히 이러저런 궁합들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궁합 중의 궁합은 ‘예민함의 궁합’이 아닐까 싶다.(87쪽)


누군가는 냄새나 청결에, 누군가는 말투나 표정에, 누군가는 단어나 색깔에 민감하다.(88쪽)


그렇게 어릴 적부터 어디에 얼마나 예민한가는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예민함의 궁합이 대단히 중요해지는 것 같다. (...) 말투에 너무 예민해서 상대방의 퉁명스러운 말투 하나에도 크게 상처받는 사람은, 말투 자체가 별달리 문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살면 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는 냄새에 극도로 예민하여 항상 가글을 하는데 한 사람은 좀처럼 그런 데 둔감하다면,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무척 많이 쌓이게 될 것이다.(88~89쪽)


예민함의 부분들이 거의 일치하는 사이는 사실 그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고 크게 불편할 이유도 없다.(89쪽)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결혼하기에 앞서 상대편의 무엇을 참기 어려운가에 대해 서로 관심을 갖고 판단하여 결혼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자신이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예로 수다스러운 사람이 싫을 수도 있고 말 없는 사람이 싫을 수도 있다. 


나는 독재적인 사람이나 오만한 사람을 싫어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나마 좋게 해석하여 참을 수 있다. 상대방이 기분 상할까 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러나 독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오만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은 상대하기가 어렵다.  



 

**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소설가가 쓴 산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한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원고들을 매만진 칼럼들이라고 한다.  


당신은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판단을 마지막 순간까지 유보하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가지고 손쉽게 누군가에게 선이나 악으로 꼬리표를 붙이려 하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97쪽)


소설가로서 나는 언제나 서사의 매끄럽지 않은 부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마음을 주는 사람이다. 소설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은 그런 지점들이 아닐까? 우리는 삶과 세계를 하나의 매끄럽고 완결된 서사로 재구성하려 애써 노력하지만, 사실은 끝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 단편적인 서사들을 성글게 엮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그리고 바로 거기, 언어로 설명할 수 없고 때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서사와 서사 사이의 결락 지점. 그런 지점이야말로 문학적인 것의 자리일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98쪽)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어서 옮겨 봤다. 





봄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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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5-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예민한 게 다르기도 하죠 정말 그게 잘 맞아야 좋을 듯하겠습니다 다르다 해도 서로가 무엇에 예민한지 안다면 좀 나을 듯한데, 그런 데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으니, 뭘 그런 것 가지고 할 때가 많을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5-05 21:09   좋아요 0 | URL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누구나 어떤 면에선 예민한 거죠. 또 예민하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예민하지도 않고요. 아마 모든 면에서 예민했다가는 과부하로 살 수 없을 겁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하는 사람하고는 잘 지내기 어렵겠죠.^^

서니데이 2025-05-04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이는 참 어려운 것들이 많아요. 잘 맞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처음엔 잘 맞던 사람도 시간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생기고요. 예민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서로 다르고 만약 반대라면 조금 힘들거예요. 그래도 잘 배려하는 분이 계시고, 또 잘 안될 때가 있긴 한 것 같고요.
주말이 거의 다 지나갔어요. 페크님,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05 21:16   좋아요 1 | URL
결혼하고 나면 육아 문제, 교육 문제로 많이 다툰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고 싶은 아내와 그렇지 않은 남편과의 마찰 같은... 이런 것도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거죠. 연애할 때 충분히 상대편에 대해 알아야 하고 문젯거리가 될 만한 것은 서로 얘기를 나눠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이어서 절에 갔다왔답니다. 어머니때부터 다니던 절이 멀리 있어서 자주 갈 수 없으니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는 간답니다. 푸른 5월처럼 우리 마음도 푸르기를 바랍니다.^^

잉크냄새 2025-05-05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의 궁합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기는 한데, 쉬워 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문제로 보입니다.

페크pek0501 2025-05-08 17:01   좋아요 0 | URL
정말 쉽지 않겠죠?
지금 생각난 것인데,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양보와 타협이라는 덕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의 궁합 공감가네요^^

페크pek0501 2025-05-08 17:02   좋아요 1 | URL
저도 공감이 갔어요. 곱씹어 볼 만한 글입니다.

모나리자 2025-05-17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젊은 세대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알 수 있겠네요.
부지런히 살아야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는데 한동안 게으르게 살고 있는 제가 반성하게 됩니다.
6월부터는 좀 더 활동하기로 다짐해 봅니다.ㅎ^^

페크pek0501 2025-05-17 14:34   좋아요 0 | URL
저보다 젊은 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아요. 정보가 빠르고 이 시대에 더 익숙한 글을 써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지요. 저 역시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 ‘아 저 책도 빨리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게다가 할일은 어찌나 많은지..ㅋㅋ
그래도 틈틈이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5-05-21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 궁합이란 부분에 정말 공감해요.
저는 말 속에 숨은 뜻, 맥락 따위에 예민한 편입니다.
엊그제도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눴어요.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라고 했지만,
그의 말 속에 가난에 대한 혐오가 숨어 있다고 느껴 저는 무척 불쾌했습니다.
제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지적을 하고 말았는데,
그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라구요.
화가 났지만 참고 차근차근 말하고 있던 저도 그 지점에서는 그냥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어요.

페크pek0501 2025-05-23 12:29   좋아요 0 | URL
오히려 화를 내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아, 그렇게 들으셨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하는 정도로 말했으면 좋을 텐데요. 저도 가끔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말 속에 뼈가 있네, 하는 느낌이요. 저건 나 들으란 소리 같은데 하는 느낌. 지적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만 상하죠. 한 사람의 생각을 고치려면 그 사람의 뇌 구조 전체를 바꿔야 하는 일일 거예요. 삶의 역사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그 대신 그런 사람은 안 만나게 되더군요. 지적질하기 싫거든요. 편한 사람만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만나게 되어요. 유유상종^^
 














유인경, 「그렇게 심각할 필요 없어」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법’이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 누구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책을 내랴 방송 출연을 하랴 강연을 다니랴 바쁘게 사는 작가다. 내가 한 친구에게 유인경 님 같은 사람을 사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자기도 그렇다고 말해서 함께 웃은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선배님이라고 부르든지 언니라고 부르며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너그럽고 활달해 보여 좋다. 내가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 들어주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 것만 같다. 큰 고민거리도 그녀에게 말하고 나면 하찮은 일이 되고 말 것 같다. 

 


전자책을 읽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싶어 옮겨 본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나이 들면 낙엽 지고 가지 치듯 저절로 정리되더군요. 내가 서서히 물러나거나 저쪽에서 사라지거나 번잡한 관계들이 사라지고 핵심 인물만 남아요.


오래전에 한 스님이 고민이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구나’ ‘겠지’ ‘다행이다’란 3단계로 나눠 생각하라고 했어요. 누가 친구들에게 내 흉을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당연히 기분 나쁘죠. 그때 ‘아무개가 내 흉을 봤구나’(인정), ‘나한테 못마땅한 게 있었겠지’(이해), ‘그래도 뒷말만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엉뚱한 글은 안 올려 다행이다’(긍정 수용)로 나눠 생각하면 크게 고민할 것도 없다고 했는데 꽤 도움이 됐어요. 누군가는 날 욕할 권리가 있고 난 그걸 무시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나이 들어 편안해지는 가장 큰 비결은 나 이외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서예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안달복달하고, 되고 싶은데 될 수 없는 사람을 질투하느라 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거든요. 60년 넘게 살아 보니 부와 권력과 미모와 화목한 가정을 영원히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요. 처녀 시절의 눈부신 미모에 집착해 성형중독이 된 여배우, 거물이었다가 고물로 추락한 정치인, 재산은 많지만 자녀가 엉망인 재벌, 과거의 명함과 영화를 못 잊어 “나 때는 말이야”만 떠들어 꼰대 취급을 받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연연할 것이 별로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의 숨을 쉰답니다.


질투를 하지 않으니(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에게 착한 말, 좋은 말, 축복의 말을 자주 해요. 별장을 가진 친구 덕분에 별장에서 놀아보기도 하고, 부자인 데다 넉넉한 품성의 친구가 사는 밥과 선물을 기꺼이 받으면서 땡큐만 연발합니다. 세금 걱정이나 관리는 친구의 몫이고 나는 잠시라도 누리기만 하니까 그들이 계속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답니다. 뻔뻔하다고요? 편안해지려면 기꺼이 뻔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나이의 힘이죠. 


승신 씨, 지금부터 너무 평화와 편안만 누릴 필요는 없어요. 목마르다가 마신 한 잔의 물이 생명수처럼 느껴지듯 오래 걸려 스스로 만든 편안함이 진짜 값지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봐요. 


편안해지는 비결은 세월이 아니라 확실한 걱정거리와 막연한 두려움이 안개처럼 나를 감쌀 때 잠시 멈추고 그 생각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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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essa 2025-04-30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산홍이 뷰티풀해요. ^^!!!

페크pek0501 2025-04-30 12:58   좋아요 0 | URL
연산홍도, 철쭉도 화려한 색상이 마음을 끕니다. 봄이 주는 선물입니다.^^

Vanessa 2025-04-30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개했네요~~~

페크pek0501 2025-04-30 12:58   좋아요 0 | URL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2025-04-30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01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5-04-30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날 욕할 권리가 있고 난 그걸 무시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다른 듯 같은 이 권리가 참 어려워요. 우리 눈이 바깥만 보도록 구조화되어서 안으로 밖으로 향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나봐요.

페크pek0501 2025-05-01 11:49   좋아요 0 | URL
우리는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부 사람들의 시선을 더 중요시하도록 훈련을 받아 온 셈이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내면,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 요즘 많이 나오네요. 어떤 상황에 놓여도 중요한 건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나를 욕해도 내가 그 욕을 안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이런 식으로요. 완벽해지려고 하지도 말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말고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나가는 연습이 필요한 듯해요. 남을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말이죠.^^

stella.K 2025-05-01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세월지나면 다 정리가 되는데 당시엔 왜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건지. ㅋ 유인경 기자 참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일선에서 물러날 때도된 것 같은데. 이런 분은 은퇴하면 병 날 거예요.^^

페크pek0501 2025-05-02 22:10   좋아요 1 | URL
유인경 작가(책을 많이 냈더라고요.)는 늘 활력 있게 살 것 같고 이런 분은 집콕~ 하면 정말 병 날지 몰라요. 자기 성향에 맞게 살아야 건강해요. 경향신문 기자로, 부장으로 퇴직후에도 왕성한 활동 보기 좋아요. 대단한 능력자이죠.^^

하나의책장 2025-05-03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에는 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해줘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5-05-04 13:03   좋아요 0 | URL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요.
유인경 작가가 딸을 대상으로 하여 쓴 글을 책으로 낸 게 있는데 오히려 어머니들이 많이 샀다고 하네요.^^

희선 2025-05-04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더 먹어야 편안해지려나 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하네요 마지막에 편안해지는 건 세월이 아니다는 말이 있으니... 자기 자신을 좋아해야 하는데, 그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잘 안 되니, 꼭 그렇게 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5-05 21:50   좋아요 0 | URL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며 늙어 가는 게 좋은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저도 나이를 먹고 보니 저절로 너그러워지지 않더라고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나이 먹으면 자신감 상실, 열등감으로 오히려 속이 좁아지기 쉬워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이 들자고요. 푸른 5월, 잘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