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희곡 중 ‘갈매기’라는 작품이 있다. 청년 트레플료프의 어머니인 아르카지나는 여배우이고, 소린은 트레플료프의 외삼촌이다. 소린이 아르카지나에게 말한다. 아들한테 돈을 주라고.


아르카지나 : 그 아이가 안됐어요! (생각에 잠겨) 취직이라도 하면 어떨까요…….

소린 : (휘파람을 분다. 그다음에는 주저하면서) 내가 보기엔 가장 좋은 것은 네가……. 그 아이한테 돈을 주는 거야.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옷을 입어야 하니 말이야. 보렴. 3년이나 똑같은 프록코트를 입고 다니고, 외투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잖아……. (웃는다) 젊은 녀석이 흥취 있게 노는 걸 막을 일은 아니잖니……. 외국으로 나가도 좋고……. 돈도 많이 들지 않으니까.

(중략)

아르카지나 : 그래요. 돈은 있어요. 하지만 저는 배우예요. 몸을 치장하는 것만으로도 파산할 지경이라고요.(436~437쪽)


아르카지나는 몸치장에 쓸 돈은 있어도 아들의 옷을 사 줄 돈은 없다고 한다. 대사만으로도 어떤 어머니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톤 체호프, 「체호프 희곡 전집」



‘니나’라는 젊은 아가씨는 ‘트리고린’이라는 유명 소설가를 흠모한다. 둘이 친한 사이는 아니다. 


니나 : (주먹을 쥔 한쪽 손을 트리고린 쪽으로 내밀면서) 짝수일까요, 홀수일까요?

트리고린 : 짝수.

니나 : (한숨 쉬고서) 틀렸어요. 내 손에는 한 알의 완두콩이 있을 뿐이에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점을 쳐본 거예요. 누가 조언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트리고린 : 그건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오.(434쪽)


위의 대화를 보면 니나가 트리고린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고, 니나가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희곡은 대사에 인물에 관한 정보를 숨겨 놓는다. 니나가 트리고린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 손 안에 든 완두콩의 개수가 짝수인지 홀수인지 맞춰 보라는 물음을 트리고린에게 굳이 던질 필요가 없다. (체호프가 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행동의 숨은 뜻을 모르면 희곡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말과 행동과 몸짓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직장의 여자 동료에게서 금요일 저녁에 전화가 왔는데 남자가 전화를 받으려다가 전화기를 잘못 건드려 전화가 끊겼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 다 미혼이다. 이때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하며 전화하지 않는 남자라면 상대편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삼 일 후인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둘이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남자에게 그날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묻는다. 남자는 전화를 받으려다가 전화기를 잘못 건드려 끊어졌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여자가 상대편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안심이 된다면 그녀가 잘못 해석했다고 본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전화가 끊기고 바로 액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만날 때까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묻게 돼 있다. 둘이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희곡을 읽을 때도 등장인물의 말, 행동, 몸짓을 꼼꼼히 살피며 읽어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이 된다. 이 맛에 희곡을 읽는다.



니나 : 작가나 배우가 되는 행복을 위해서라면 저는 가까운 사람들의 미움, 가난, 환멸도 견디겠어요. 다락방에 살면서 호밀 빵만 먹고, 자신에 대한 불만과 스스로가 모자란다는 고통도 감수할 거예요. 하지만 그 대신 저는 영광을 요구할 거예요……. 진정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영광 말이에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머리가 빙빙 돌아요……. 아아!(430쪽)


이 글에서 작가는 명성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는지 묻는 듯하다. 한 예로 어느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나 안티팬들의 비난에 시달려 마음이 괴롭다면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안티팬들의 비난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두꺼운 책이라 무거워 분책을 하였다. 비용은 6천원. 



....................

더 써야 하는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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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3-13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시대에도 홀짝이 있었군요.

페크pek0501 2025-03-13 23:27   좋아요 0 | URL
1860년에 출생한 체호프이니 옛날이죠. 잉크냄새 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시대에 홀짝이 있었던 게 신기하군요. 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좋은 발견입니당~~

감은빛 2025-03-14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갈매기 라는 희곡은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어요. 제가 부산 사람이라 한때 부산갈매기 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래서 갈매기 라는 단어를 접하면 반가워요.

요즘 잇따른 연예인들의 소천 소식에 마음이 좋지 않네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만요. 말씀처럼 명성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면 인생의 다른 면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본인이 그런 삶을 선택한 거라면 또 옆에서 뭐라고 할 권한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 답답한 시절을 지나고 있네요. 이게 현실인가 싶다가도, 확실히 꿈은 아닌데. 그럼 현실이 맞네. 이러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눈 감고, 귀 막고 살고 싶은 유혹에 자꾸만 빠집니다.

페크pek0501 2025-03-14 12:36   좋아요 0 | URL
갈매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저도 읽어 보기 전에 들어 본 희곡이었어요.
부산 갈매기이시군요.ㅋ
저는 악성 댓글이나 비난이 쏟아지면 사이판이나 괌 같은 곳에 가서 아니면 국내라도 한적한 섬에 가서 인터넷 연결을 끊고 칩거하며 책이나 읽으며 산책이나 하며 맛있는 것 사 먹으며 한 달쯤 시간을 보내고 오면 자기에 대한 비난이나 소문은 사라져 있을 거라고 봐요.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거든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르지요.
답답한 시절이라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다는 기사를 본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살아 내야 합니다요..^^

희선 2025-03-14 0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곡은 별로 못 읽었네요 이 책 끝까지 못 봤어요 읽어야지 하는 생각만 했네요 나오는 사람이 하는 행동과 말 그리고 몸짓을 잘 봐야 알 수 있군요 페크 님은 그런 걸 잘 보시는군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3-14 12:39   좋아요 0 | URL
저도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소설에 비해 희곡 읽기는 쉽지가 않아요.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리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할 때의 분위기 파악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오디오북을 가지고 있어 들으며 종이책을 읽으니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이럴 땐 오디오북이 좋습니다. 오디오북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레이스 2025-03-14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철!
과감하시네요^^

체호프 대표 희곡만 읽고,,, 단편들 읽고 있어요
읽을수록 넘 좋아요.^^

페크pek0501 2025-03-14 12:41   좋아요 1 | URL
아, 저 책이 제가 속한 동아리의 교재랍니다. 들고 다녀야 해서 무거워서 분철, 해 봤어요. 비용이 들어 그렇지 편한더라고요.
체호프 단편집을 두 권 읽었는데 다 좋았어요. 민음사 것과 펭귄 클래식 것을 읽었는데 겹치는 작품이 있긴 했어요. 체호프는 단편의 천재, 라고 봅니다. 희곡은 아직 다 읽지 못해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