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자책이 있는데 읽어 주는 기능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완독했다. 그런데 꼼꼼히 한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아 종이책을 어제 샀다. 좋은 글이 많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다가 가기 싫다 하고 마음먹은 이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겠다 마음먹은 이후, 내게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사적 관계도 끊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았다.(161쪽)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너 의외로 다리가 굵다”라든가 “너 얼굴이 생각보다 커”, “어머 배 나온 것 좀 봐. 왜 그렇게 살이 쪘어. 얼른 빼!”라든가, “너 성질 좀 안 좋잖아”, “너 머리 그렇게 자르지 마. 이상해”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멀리했다.(161쪽)


“언니 그러면 주변에 사람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그걸 다 끊어내면 혼자 남아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나 자신을 폄하하는 말들과 괴로워하며 싸우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나아요.”(161~162쪽)


“듣기 싫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라는 사람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왜 굳이 해야겠니? 나는 성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말도 없이 그냥 차단했고, “저기 내가 좀 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니?” 하고 접근해 오면 “아니 괜찮지 않으니까 절대 하지 마세요!”라며 응수했다.(162쪽)


그냥 되었던 것 아니다. 연습했다.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렸고, 그리고 기회가 오면 떨리지만, 이렇게 하면 내가 교양 없고 예의 없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혹은 꼰대라고 욕할까 봐 겁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162쪽)


⇨ (이에 내가 덧붙여 말한다면) 그런 기분 나쁜 말을 하는 곳에 나를 두고 싶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


이런 글을 읽으면서 왜 내 속이 시원해졌는지 모르겠다. 저자에게 잘했네요,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굳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남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한두 번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나의 경우 한 친구의 어떤 단점이 못마땅해서 내가 잔소리를 하는 악역을 맡고 싶지 않아 끊어낸 적이 있다. 만나면 내가 상처를 주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지금도 연락이 오면 따뜻하게 대해 주고 내가 연락을 하진 않는다.


늘 기분 좋은 말만 들을 수는 없을 테니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 받는 걸 감수하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행운이라 할 만하다.  




올해 2월에 산 책. 



....................

어제 외출했더니 오늘 일이 많아 긴 시간 동안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 글을 좀 쓰려 했는데 매일 칼퇴근하는 남편이 귀가했다. 내가 안방에서 내다보지 않으니 거실에서 “이리 오너라” 한다. 웃겨. 자기가 왕인가? 거실로 나가 보았다. 장을 봐 왔다고 한다. 동태탕을 사 와서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편히 그리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장을 보는 것은 그의 취미.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니 이 시간이다. 이제 누워 쉬고 싶어 이쯤에서 글을 마친다. 다음에 많이 써야겠다. 매일 일을 미루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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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28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관계를 끝장낼 용기란 결국 상대방과 동등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선다는 의미죠.

페크pek0501 2025-02-28 21:18   좋아요 1 | URL
저자는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146쪽)라고 쓰기도 하고,
˝우리는 우리의 장점에 대해 들어야 한다˝(154쪽)라고도 썼더군요. 제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나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던 터라 공감했어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그런 거군요. 앞으로 이 책을 꼼꼼히 읽어 많이 배우려 합니다.
고통만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는 글이 와 닿았어요. 제가 바꿔 표현하면 약자가 되어 본 자만이 성장한다. 가 되겠어요. 약자의 위치에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성장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2-28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그냥 안 만나고 서서히 끊어내는 쪽이에요. 싫은 사람을 계속 만나는건 자기 학대같아요. ㅎㅎ
장봐와서 이리 오너라 하는 남편 너무 멋져요. 우리 남편도 장 봐오면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해도 다 봐주겠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5-03-01 13:04   좋아요 1 | URL
아, 자기 학대일 수 있겠네요. 예전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다 받아들이기로 하며 산 것 같은데 이젠 걸러 낼 것은 걸러 내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이에요.
이젠 나이 들어 집안일을 혼자의 힘으로 하기가 벅찬데 청소, 장 봐 오기 등을 남편과 나눠 하니 좋긴 해요.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님의 표현이 재밌습니다.^^

2025-03-0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3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5-03-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따뜻한 음식이 좋은 시기인데 동태탕 맛있게 드셨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편안한 사이에서는 더 그렇고요.
사람을 만날 때, 끝나고 돌아올 때 좋은 기분이 드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조금씩 느낌이 다르긴 해요. 좋은 사이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이전에는 가까운 사람도 시간 지나면서 멀어지고, 전보다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간관계는 참 어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3-03 12:39   좋아요 0 | URL
동태탕이 매콤해서 맛있었어요. 가끔 음식을 사 오면 편하지요.
만나고 돌아올 때 좋은 기분이 드는 사람을 만나라, 좋은 말씀이네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네요. 나이가 들고 나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