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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는 글은 그냥 끄적거리는 잡문이다. 


오후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을 보았다. 

화면으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했다. 

이 장면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더해졌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뉴스를 보니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이 일에 무관한 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심지어 어느 뉴스 앵커는 '이번 누리 호의 발사 실패'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실수'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목표로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의 아쉬움을 보고 너무나 쉽게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는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발사체가 폭발한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성과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 칭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반응 하나는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의 반응이다. 우주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이 되니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마땅히 우주 개발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득 우리 나라가 특히나 실패에 민감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 사업의 성패, 결과에만 주목하는 정서에 길들여있어서인지 누리호 발사 이후 인터뷰를 한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해 보였다. 이들이 내년 5월에 예정된 다음 발사 준비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준비할지 눈에 선하다. 국민이나 해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정서야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개발에 관하는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대로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을 신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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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이 아니라 다른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늘이 성수대교 붕괴한 지 27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남겨두고자 한다. 이 사고는 27년 전(1994) 오늘, 738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 속보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성수대교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길에 지나는 다리였다.


사고 당일 오전에 어머니는 황당한 뉴스 속보를 보고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한참 애가 탔던 순간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긴장하셨을까. 짐작하건데 아버지도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시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정리를 마치고 켠 TV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보신 아버지는 당신이 다리가 무너지기 10분 전 즈음에 다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다리가 많이 휘청거렸다는 말씀과 함께. 과거에 올라왔던 기사를 보니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그 중 9명이 내 또래의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특히 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 시간, 출근 시간과 겹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 특히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는 사실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이러한 사고에 예외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기도 하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 동네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 겨울에 동사했던 할아버지, 중학생 때 아파트에서 투신한 뒤 잔디밭에 누워 있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났다.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전국에 전해진 지 이틀 후인 1994년 10월 23일.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동창모임에서 준비한 충북 단양 지역 관광에 참여하고 오셨다. 어머니는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타고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저녁 뉴스에는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도배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망자 29명, 실종자 1명' 이런 문구가 끊임없이 여러 방송사의 뉴스 자막으로 등장했다. 


"엄마, 저거 엄마가 어제 타신 배 아니에요?" 나의 물음에, 늘 큰 기복이 없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당신이 저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하시는 거였다. 단 하루 차이로 어머니는 대형 사고를 피하셨던 것이다. 나는 3일 사이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사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사고 희생자 될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희생자 규모가 비슷함에도 유독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고 모두 안타까운 인재로 일어난 일이다.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기도 혹은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들이어야만 했나?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묻고 싶어진다. 오늘이 가기 1 시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일들을 이유없이 끄적거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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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22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충격적인 뉴스가 생각나요. 그러다 잊고 살다가 벌새 란 영화를 보며 다시 떠올렸지요. 정말 작은 예산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눈치보기 바쁜 과학자들과 관계자들을 보면서 언론이 악의 축인가 과학자들은 정말 여기서 일하기 싫겠단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면 어릴 적 국민학교때 실험 수업이 참 싫었어요. 비커 하나라도 깨면 그게 얼만데 사오라는 둥 하던 요상한 선생님 ㅠㅠ 이기억나요 ~ 초란공님 글에 무지 공감합니다 *^^*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씨앗을 뿌린 서방 국가, 그리고 모비 딕

 


어제 날짜(831)를 기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20년 주둔을 종료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군 주둔의 역사는 2001911일 직후 시작되어 이제 만 20년을 맞게 된 셈이다. 신문 기사를 살펴보니 메켄지 중부사령관은 ‘20년 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 종전을 의미 한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공모자들을 끝내는 임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간 미군은 12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과 동맹국, 미국에 조력한 아프간 인들을 대피시켰다.


 

또 다른 매체에서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43년간이나 계속되던 전쟁이 301159(현지시각) 미군 철군 완료로 종료가 선언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말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개입으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충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이 주둔했던 지난 20년 만을 언급했지만, 소련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며칠 전 기사를 훑어보다가 어느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모든 건 다 영국 때문이다’, 라고 비판하는 대목(혹은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출처를 다시 찾을 수가 없는데, 당시에 이 기사를 보면서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충돌해온 것은 미국인데 왜 영국 때문이라고 비난을 할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관련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프가니스탄과 서방 세계의 충돌에 더 오랜 역사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그 영국인이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펼쳐본 모비 딕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언급된 대목이 나와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소설의 제1장에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 부분을 이해할만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소설의 1장에서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화자 자신이 다시 고래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상선 선원으로서 여러 번 바다 냄새를 맡아본 내가 이제 와서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내가 이 고래잡이 항해에 나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오래전에 작성된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좀 더 긴 연극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짧은 막간극이자 일인극이었다.

(36, 모비 딕,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신의 섭리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이 고래잡이배를 타는 것이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긴 연극 혹은 역사적인 사건 사이에 낀 막간극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시를 든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모비 딕 1장에서 인용)

 


대통령 선거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라는 긴 연극 사이에, 일인극에 불과한 자신의 고래잡이 항해가 위치한 신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비 딕1850년에 주로 쓰였으므로,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이 시기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좀 더 조사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건을 계기로 19세기 중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조사한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검색하여 대강을 정리한 것으로, 큰 흐름에서 역사적인 사건들만 참고하면 될 듯하다. 이를 제외하고 자세한 사항이나 구체적인 연도 등의 정보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북으로 러시아, 동쪽과 남쪽으로 인도·파키스탄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 과거에 페르시아로 불린 현재의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울러 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혹은 심장부)에 위치한 셈이어서 문명의 교차로라고 할 만 했다. 오랜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그리고 북방계 민족 및 제국이 충돌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주의 시대가 한창일 때, 여러 열강은 서아시아로 진출했으며 바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열강들의 충돌과 갈등이 표출되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러시아는 남하정책으로 이미 현재의 이란 지역인 페르시아에 진출해있었다. 당시에 영국은 이미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인도를 식민지 삼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놓고 대립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말하자면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까지는 아니더라도 막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세계의 판을 쥐락펴락하는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근거로 하여 북상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와 충돌하는 형국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특히 영국은 이슬람 제국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에 저항하는 정부를 축출하고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혹은 통상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이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했던 사건은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슬람 제국과 3차에 걸쳐 벌인 아프간 전쟁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은 1838-1842년 사이에, 2차 아프간 전쟁은 1878-188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바로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당시의 큰 전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차 아프간 전쟁은 이 소설이 출간(1851)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차 아프간 전쟁에서 인도 용병을 앞세운 영국 군대는 카불을 점령하여 다른 왕을 옹립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허수아비 지도자를 앉힌 것인데, 이는 일본군부가 중일전쟁을 벌이고 만주국과 같은 괴뢰 정부를 세운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저항이 너무나 격렬해서 영국군이 카불에서 철수했다는 점이다. 최근 카불에 아직 남아서 숨어 지내는 어느 서양인이 국내 취재진과 영상 인터뷰를 진행한 장면을 보았는데,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이 너무나 혹독해서,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과 더불어 이번 겨울은 이 곳에 남게 된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군/인도용병이 거의 전멸했던 제1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의 전투 그림

 


18421월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의 막바지에 영국군은 아프간에서 철수 중이었다. 한 기록에 의하면 대략 2피트(60 cm)의 눈 쌓인 계곡에서 영국군 700, 인도 용병 3800, 그리고 이들의 가족 등을 포함한 12천 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공격으로 전멸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아마도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고, 1841-1842년 당시 한창 젊은 22-23세로 포경선을 타던 멜빌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모비 딕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8년의 시간은 더 있었으니 자세한 내막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멜빌이 소설에서 썼던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영국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저항군에게 거의 전멸 당했던 어느 계곡의 전투를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주목해보는 부분은 멜빌이 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Bloody Battle In Affghanistan)라는 표현은 백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꽤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많은 백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야만인과 같은 비하적인 표현을 멜빌은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고 철수를 하게 된 영국이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2차 아프간 전쟁은 26년 후인 1878년에 발발하는데, 이번에도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카불을 침공한다. 이 때 영국군은 일본군이 한일합방을 강요했듯이 영국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조약에 강제로 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때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일부 병합되어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고 한다. 큰 희생을 겪었지만 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겨본 베트남인들이 자부심과 사기를 잃지 않은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인들도 그대로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민중은 또 다시 영국에 대항했고, 이들은 제3차 아프간 전쟁을 통해 19198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만다.


 

다시 정리를 하면 어느 뉴스 영상에서 한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모두 영국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그 사람이 잘못 언급했거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3차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유린한 대영제국의 역사적인 침공사건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멜빌의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그가 이미 목격한 제국주의 열강의 행적과 그 영향은 이제 20세기와 21세기에 미국이 대신하여 그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간다고 이해된다. 미국은 이 곳에 탈레반의 씨앗을 심은 것에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이 현상의 근원에는 허먼 멜빌도 목도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이미 영국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행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계기로 그동안 모비 딕 1장에서 멜빌이 썼던 문구의 역사적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카발라를 언급하는 멜빌은 분명히 유대 신비주의적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영원 회귀의 개념을 담고 있는 이 신비주의는 이 회귀의 구조가 모비 딕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떠오른 관을 붙들고 홀로 살아남았던 이슈메일은 언젠가 또 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역시도 카발라적이다. 그런 까닭에 모비 딕 1장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라는 표현을 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고 나니 더욱 멜빌의 통찰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인 우리는 정말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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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9-02 0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미국의 서진으로 인해 멸망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배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도 멜빌은 폭력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파국을 경고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초란공 2021-09-02 22:13   좋아요 3 | URL
아 그렇네요. 피쿼드호를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더하여 저는 ‘모비 딕‘을 백인 문명의 질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에이해브처럼 덤비는 이들은 ‘모두 죽는다‘는 위협적인 백인 문명으로요.
나중에 이 부분가지고 쓸 기회가 되면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

mini74 2021-09-02 17: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읽었던 모비딕 앞부분으로 이렇게 역사까지.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초란공님. *^^*

초란공 2021-09-02 22:16   좋아요 4 | URL
읽어주신 소감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사가 미흡하여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의 지적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아무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네요~

초딩 2021-09-03 0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피쿼드호도 이민자들이 처음 멸한 인디언 부족 이름이죠? 정말 모비딕의 그 방대함과 그 속의 빗댐은 대단합니다!

초란공 2021-09-03 12:17   좋아요 3 | URL
정말 <모비 딕>은 ‘모비 딕‘ 같달까요? ㅋㅋ

scott 2021-09-0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주말 독서 모비딕 꺼내놨어여 ㅎ 주말 화창한 날씨처럼 멋지게 ~

초란공 2021-09-04 11:55   좋아요 2 | URL
‘저도 <모비 딕> 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ㅋㅋㅋ 스콧님도 화찬한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1]

언젠가부터 과거의 특정한 날에 있었던 사건 혹은 

특정 인물이 겪었을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면,

이것 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고 멍때리곤한다.

아마도 모든 고민의 근원은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일 것 같다. 모든 예술의 전제 조건 또한 필멸의 삶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연한 기회에 어제는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의 2주기가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1931.02.18-2019.08.05) 


<칼라 퍼플>, <빌러비드>, <솔로몬의 노래>, <재즈>, <술라>, <자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누가 승자일까요?>, <얄미운 사람들에 관한 책>,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까지.... 자신의 입장과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 인종차별/젠더 갈등에 관한 문제 제기 등을 글로 보여준 흑인 문학의 거장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서양의 백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인종차별을 받아온 흑인들의 

예기치 못한 심리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을 그토록 받아왔으면서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분노를 아시아인에게 분출하는 

일부 흑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하는 것들.... 


또 미국에서 흑인이 아시아인의 물건 혹은 돈을 훔쳤을 때,

신고하려는 사람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백인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참고 기사: https://news.v.daum.net/v/20210806105602103)

 

그들 역시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조리한 일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는 상황 역시 상처받고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보이는 패턴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이 상황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2] 

76년 전 오늘(2021.08.06)이 76년 전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일본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에 나오겠다고 하는 어느 후보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적이 없으며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나라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소름끼칠 정도다. 


몇 년 전에 회사 외부 미팅을 나가 상대 중소기업 회사의 임원과 면담을 한 기억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은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지 않았어야 더 잘 살았을 거다'라는 말을 해서, 태극기 부대 집회에 열심히 나가고 아침마다 '일베' 사이트에서 놀곤 하시던 울 회사 부사장이 놀라셨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 그 말은 좀 심한거 아니요? 허허...' 아직은 내가 사람들에 대해,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계속 공부해야할 이유가 된다. 앎으로 인해 내가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아무튼 76년 전 오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기록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페이퍼로 끄적였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에 까지 생각이 미쳤다. 주중에는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중단했던 <파친코>읽기를 오늘부터 다시 해보려한다. 주말에는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사람들의 작품을 읽고 사람들과 이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이들이 태어나 소멸한다는 것일테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간다. 백신의 과학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백신을 맞고 멀쩡하던 내가 다음 주에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유서 같은 것을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매년 유서를 새로 쓴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백신 때문만이 아니라,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이란 대상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해보곤 한다. 


[3] 

딴 생각을 하고 멍 때리다가 문득 어디선가 봤던 문장을 찾아보려고 

여기 저기 책을 뒤적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계획'을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7월 16일, '트리티티 테스트'라고 알려진 원자 폭탄 실험 광경을 보고 인용했다는 문장이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Bhagavad Gita>


'이제 나는 세상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도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일본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그 피해 상황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번에는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강연과 운동을 벌였다. 반공주의자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50년대 초에 미국을 휩쓸었던 공산주의자 색출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그는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증언해야 했다. 이 때 맨하탄 계획에 함께 했던 동료 에드워드 텔러라는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가 오펜하이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했다. 말하자면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 셈인데, 이후 오펜하이머는 비밀인가 취급 허가를 박탈당하고 그의 인생은 말그대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대신 에드워드 텔러는 영전하여 맨하탄 계획 이후 폭발력이 훨씬 강한 '수소 폭탄' 계획을 지휘하게 된다. 그가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일 테다. 권력과 명성을 얻은 그 였지만 동료들을 배신한 대가는 과학계의 냉대였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다.  



 


[4]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잡생각의 왕이다.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Little Boy)이 하나 떨어졌고,

다시 미국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Fat Man)을 하나 더 떨어뜨린다. 그런데 두 원자 폭탄이 종류가 다르다는 걸 방금 알았다. 

히로시마에 떨어 졌던 원자 폭탄(Little Boy)는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건배럴 방식(포신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 방향의 두 방사성 물질을 강제로 합치는 방식으로 임계질량에 도달하게 하여 '연쇄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반면,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던 원자 폭탄(Fat Man)은 '플루토늄239'를 사용했는데, 인플로젼 방식(내폭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형으로 방사성 물질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구형 질량 외부에서 '느린 폭발'을 일으키면, 이 압력이 내부에 있는 플루토늄을 구의 중심 방향으로 수축시켜서 임계질량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이 방식을 개발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양자 물리학 이론 개발에 기여하기도 했던 물리학자,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의 선구자 '존 폰 노이만'이라니 아이러니 하다. 


일본과 독일은 20세기에 수많은 인간을 학살하고 인류에게 큰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긴 바 있다. 동시에 우리 인류는 이들이 이 기간동안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이나 그 밖의 과학기술을 통해 축적한 지식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 내에 가해진 엄청난 폭격으로 국가가 망했음에도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부를 얻고 다시 일어난 국가들이기도 하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다. 




[5] 

또 딴생각을 해보다가 두 사람 생각이 났다. 50년대 말에 미공군에서 일했던 두 사람이며 전역한 후 모두 사진가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미국의 사진가 게리 위노그란드 Garry Winogrand.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국내에서 <사진강의노트>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자 교수인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이다.


두 사람 모두 공군에서 폭격기 승무원이었다. 이들은 50년대 말 냉전이 한창일 때 언제든 원자 폭탄을 싣고 적지로 날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끊임없이 폭격 장소를 확인하고, 항로를 검토하고, 비행 상태를 점검해야해서였을까... 이들은 모두 민첩하게 반응해야하는 스냅 사진의 대가들이었다. 공군에 복무했기에 이들이 사진가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 모두 당시에 고급 취미로 인기있던 사진찍기를 군복무 시절 동료로부터 접하고 PX에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사진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관조해야했던 이들의 임무가 영향을 주기는 했을 것이다.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일을 해야 했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사진가가 되었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그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멍때리다가 핵무기, 그리고 이 환경에서 사진가가 나오기도 하는 우연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카메라 역시 전쟁으로 더욱 기술이 발전하고 완성된 제품이다. 공교롭게도 독일의 라이카와 일본의 니콘과 캐논 같은 회사가 카메라의 발달을 더욱 앞당겼다. 갈릴레오가 만든 천체 망원경이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만든 천체 망원경, 스피노자가 갈아서 만들었다는 렌즈로 만들었을 현미경 혹은 망원경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발견을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기도 한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 기술과 독일/일본과의 관계는 전쟁을 매개로 한다. 이 기술과 지식 역시 오늘날 전 인류에게 나누어주는 수혜에 희석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자야겠다. 


하루가 지났으므로 다시 오늘 부터 <파친코>를 읽어보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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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7 0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흐름을
오늘 코스트코 갔다가 와인앱으로 진열된 와인을 거의다 찍다가 1865보다 높은 평점인데 싼 완인을 기쁘게 사서 홀짝 거리며 (아 ㅜㅜ 따는 순간 오늘 끝날 것 같아요를 예감합니다) 따라가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전 예전에 어느 사업부 부장님이 전쟁이 한 번 일어나줘야한다는 트윗을 해서 그 분과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리고 사진
이건 제가 좀 할 말이 많은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든 이유를 용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그리고 두 폭탄이 결국 다른거 였군요.

제목만 보고는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먼지 이론이 생각되었는데 그것 보다는 더 잼있네요 ㅎㅎㅎㅎㅎ
아~ 초란공님 건배요~~~

이상 취권이었습다
시원한 밤 되세요~

초란공 2021-08-07 00:57   좋아요 4 | URL
잠실 알라딘과 코스트코를 애용하시나봅니다 ㅋ
저는 따놓은 고량주를 홀짝 해볼까요 ㅋ

조금 덥지만 또 잠시 낼 수 있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멍때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 말이지요. ^^

저도 아우렐리우스 수준까지 가보았으면 합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요^^;;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8-07 01:01   좋아요 4 | URL
알라딘은 잠실이고
코스트코는 하남이요 ㅎㅎㅎ

하남 코스트코 간다고 온 가족이 이야기해도,저는 하남 스타필드 출발~ 이라고 이야기하다 핀잔을 듣습니다 ㅎㅎ

항상 감사합니다 ~ :-)

페넬로페 2021-08-07 01:02   좋아요 4 | URL
초딩님께서는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은 와인으로 인한 취중집필이신건가요 ㅎㅎ

페넬로페 2021-08-07 0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삶과 죽음에 관한 글 너무 좋네요.
멍 때리기로는 너무 심오합니다.
이 딜레마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봐야겠어요^^
얼마전 라디오 북클럽에서 들었는데 토니 모리슨 작가가 글도 잘 쓰지만 랜덤 하우스 편집장에다 흑인 여성 최초의 타이틀이 많이 붙는 작가더라고요~~
저는 두 작품 정도 읽었는데 저도 다시 읽고 싶습니다^^

초란공 2021-08-07 01:15   좋아요 4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도 프린스턴에서 토니 모리슨과 같이 글쓰기를 가르쳤던 것 같아요. 라히리의 <저지대>가 3대에 걸친 가족사라면, 이민진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가족사라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또 흥미로운건 위에 언급한 이민진 작가도 프린스턴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고...아무튼 토니 모리슨과 이민진 작가의 공통점도 있네요^^ 제 잡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ㅋㅋㅋ
 



우리가 되돌아갈 길은 없다

: 크리스 조던(Chris Jordan) 감독의 영화 《알바트로스 Albatross》를 보고




영화는 영국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늙은 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구절로 시작한다.


The spirit who bideth by himself

In the land of mist and snow,

He loved the bird that loved the man

Who shot him with his bow.

 

연무와 눈의 나라에서

혼자 사는 정령,

그는 사랑했소

활로 자신을 사람을 사랑했던 새를.


[번역 출처: 윤준 지음, 코울리지의 시연구, 도서출판 동인, 144p]



     시에서 물안개와 눈의 나라에 사는 정령을 가리키며, 시에서 가리키는 바로 알바트로스이다. 알바트로스는 자신을 쏘아죽인 인간을 사랑했다. 정령은 인간에 의해 죽어간 무고한 새를 사랑했다. 구절에서 무엇보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새를 사랑함이다. 새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진작가이기도 영화감독 크리스 조던은 처음에 북태평양 가운데에 버려진 미드웨이 섬에 와서 새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인간이 버린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 알바트로스 사체를 촬영하는 작업으로 시작했지만, 감독의 시선은 점차 알바트로스라는 자체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감독은 인간의 영향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에 대한 연민을 넘어 존재에 대해 진정한 애도 보내게 것이다. 감독은 이를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영화의 부제를 우리 시대를 위한 사랑이야기라고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알바트로스가 겪는 재앙의 단면을 마치 다른 알바트로스가 옆에서 지켜보듯이, 새의 눈높이에서 가까이 다가간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독특한 시점이 가능할 있었던 이유는 알바트로스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드웨이섬은 태평양 가운데에 위치해있는 섬으로, 2차대전 당시 미해군의 태평양 기지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병력이 모두 철수하고, 최소한의 인력이 관리하는 정도로 버려진 섬이 되어버렸다. 영상 중간중간에는 인간이 떠나간 적막한 군사시설물을 있다. 이런 미드웨이섬은 가까운 육지가 최소한 3,0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이다. 알바트로스는 섬에서 처음부터 천적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새들은 낯선 존재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 의해 멸종한 새로 알려진 인도양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처럼 새도 역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모리셔스섬의 도도새 역시 천적이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날개도 퇴화되어 날지 않게 되었다. 다만 도도새는 섬에 처음 상륙한 유럽인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식용을 위해서든 단순한 오락거리를 위해서든 총과 칼을 들고 다가간 사람 앞에서 날지 못했고, 심지어 빠르게 도망가지도 못했던 도도새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유럽인들을 바라보다가 죽어갔을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이들 무리 속에서 가만히 자신들을 지켜보는 감독에 적응하게 되었을 것이다. 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새의 얼굴에 가까이 내밀어도 이들은 신경을 쓰지 않은 보였다.


     알바트로스는 현존하는 가장 새로 알려져 있다. 태평양에 폭넓게 서식하며, 펼친 날개의 길이가 2 미터에서 최대 3.7 미터까지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양쪽 팔을 펼쳤을 길이보다 길고, 심지어는 길이 가까이 되는 셈이다.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새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에도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바다 가운데에서 만난 신천옹이 뱃전에 내려 앉아 쉬는 동안 선원들이 손으로 잡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나아가 모비 색과 더불어 새의 색은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 있다. 하지만 크리스 조던의 《알바트로스》에서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에서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알바트로스가 환경운동가들의 주목을 받게 이유는 영화에서도 분명히 보여주듯, 알바트로스 사체에서 발견된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대개 개의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점점 원기 왕성해지는 새끼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연구자들이 보고한 추적조사에 의하면, 알바트로스는 일단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면, 일주일 이상 바다 위에서, 통상 16,000 km 비행한다고 한다.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말이다. 알바트로스는 과정에서 바다에 떠있는 각종 쓰레기들을 먹이로 오인하고 삼켜버린다. 인간이 버린 각종 쓰레기를 뱃속에 가득 채운 어미 알바트로스는 둥지로 돌아와 자신이 먹은 것들을 다시 게워내어 새끼에게 먹인다. 바로 여기에 지속되는 재앙 있었다. 문제는 미드웨이섬이 오염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인간이 무심코 버린 각종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었고, 알바트로스는 쓰레기조각들을 수집하여 배에 채우고 돌아오게 것이 문제였다. 반면, 같은 섬에 사는 흰제비갈매기 알바트로스처럼 새끼에게 먹이를 바다에서 구해오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다.  알바트로스에게 닥친 재앙은 1차적으로 이러한 정황에서 비롯되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를 갈라 새의 뱃속에 있는 소화되지 않은 잔존물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었다. 새의 사체에서 나온 물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영상에서만 알아본 물건들은 주로 물에 뜨는 플라스틱 조각 병뚜껑, 칫솔, 그물, 낚시줄 등으로 보였다.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인간인 자신이 알바트로스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반면, 새들은 자신이 이유도 모른 죽어가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감독은 직접 죽은 새의 몸에 손을 얹고, 죽은 새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새들에게 닥친 -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화자인 감독은 이러한 자신이 경험을 두고, ‘애도의 진정한 본질은 사랑과도 같다. 바로 상실에 대한 사랑의 경험인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코끼리에 관한 어느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적이 있다. 코끼리는 뼈만 남게 어미 코끼리의 잔해에 매년 찾아와 끌어 앉고 마치 울부짓듯 소리를 내었더랬다. 코끼리 역시 일종의 애도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감독이 담담하게 꺼냈던 말을 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크리스 조던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가 해변에서 발견하여 뱃속의 잔존물을 꺼낸 대상은 알바트로스라고 불리는새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한때 현존했던 바로 였던 것이다. 이제 살아남아 비행에 성공한 알바트로스들은 일단 섬을 떠나면 3년에서 5년간 번도 땅을 밟지 않고, 바다 위에 혹은 씩이나 하늘에 떠있게 것이었다. 알바트로스들이 떠난 미드웨이섬은 고요했다. 다만 섬의 해안가에는 뱃속의 이물질들로 인해 죽은 알바트로스의 사체들만이 말없이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던 점은 단순히 새가 마주해야 했던 재앙에 대한 연민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알바트로스 대신 인간이 이러한 운명을 맞았다면, 알바트로스 혹은 다른 존재가 인간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지금은 이처럼 인간이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재앙을 피할 있었지만, 과연 죽은 알바트로스의 운명 대신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을까? 과거의 역사가 교훈은 지구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차별적이다. 인간도 예외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영화  《알바트로스》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알바트로스의 재앙을 통해 여기에 투영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읽어낼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 알바트로스를 쓰다듬으며 흐느끼던 감독은 인간의 운명 또한 예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누리는 문명으로 인하여 강제로,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알바트로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알바트로스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나아가 인간의 운명은 알바트로스가 겪고 있는 삶과 운명의 연장선에 있음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영화에서 감독이 남긴 마디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다. 바로 There is no going back.이라는 말이었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 후퇴는 없다정도의 의미로 번역될 있는 표현은 영화에서 새끼 알바트로스들이 처음 비행을 시도하기 위해 해변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표현이 알바트로스와 인간의 운명이 오버랩되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직간접적으로 인간이 유발한 모든 원인으로 인해 현재의 알바트로스와 미래의 인간이 겪게 운명을 경고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미 우리 인간에겐 순수의 상태 되돌아갈 방도는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바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미래 인간의 운명에 보내는 과거 인간의 애도와 사랑의 노래다.  



Farewell, farewell! But this I tell

To thee, thou Wedding-Guest!

He prayeth well, who loveth well

Both man and bird and beast.


가시오, 가시오! 하지만 한마디는

당신에게 해야겠소, 결혼식 하객이여!

사람뿐만 아니라 새와 짐승을

사랑하는 이가 기도를 하는 이라고.


[번역 출처: 윤준 지음, 코울리지의 시연구, 도서출판 동인, 154p, Part V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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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대한 간략한 보고서

 


작년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게 되어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쿠타니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에서 34 (1983-2017) 서평을 담당했는데요, 그녀가 은퇴 처음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서가 바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 《진실》 표기)입니다. 책을 읽던 알게 소설 편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입니다. 《진실》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가쿠타니가 단편 소설을 언급한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상대주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울프가 말한 자기중심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자부심 넘치는 셀피(selfie) 시대를 거치며 부상한 나르시시즘 주관주의와 정확히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우리 자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라쇼몽 효과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같은 대중 소설부터 < 어페어>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우리 문화에 스며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 책을 읽을 당시에는 라쇼몽 효과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쿠타니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라면 류노스케의 「라쇼몽」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한 같습니다. 제가 소양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가쿠타니의 글도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대목만 가지고는 어림짐작만 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라쇼몽 효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류노스케의 「라쇼몽」 찾아 읽어보면 되겠죠. 가쿠타니는 과연 「라쇼몽」 자신의 글에서 어떻게,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끔 라쇼몽 효과 의미가 무엇일지만 가끔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 글에서 만나게된 라쇼몽 대한 언급과 자료들을 모아 라쇼몽 효과의미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우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읽어봤습니다. 10페이지짜리 단편이라 금방 읽을 있습니다. ‘라쇼몽 한자어로 읽으면 라생문(羅生門)’ 해당합니다. 어떤 마을 외곽의 폐허가 2 누각의 문이 라생문이라고 불리는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곳이기에 동물이 들락거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누각의 나무를 뜯어다 내다팔기도 하고, 시체를 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어느 , ‘화자 라생문을 지나다가  2 누각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화자 조심스럽게 누각 안을 보니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고, 어느 노파가 횃불에 의지해 시체의 머리털을 뽑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자 노파의 악행에 분노하여 칼을 들고 노파를 위협합니다.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물음에 노파는 대답합니다. ‘ 여자 시체는 사람을 속여 고기를 여자로 악행을 저질러 왔던 여자인데,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고 한다고 말이죠.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겁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화자 말을 듣고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납니다. 노파의 옷을 팔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가쿠타니가 말한 라쇼몽 효과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쿠타니는 《진실》  3장에서 다시 라쇼몽 언급합니다.

 


울프는 1989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느 글에서 이런 상황 전개를 한탄하며, 미국 소설의 전통적 리얼리즘이 사망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들이 “(자아의 세계로부터 나와) 이렇게 요동치는, 기이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돼지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걷는 바로크적인 우리의 나라로 향해 그것을 문학 자산으로 되찾 것을 촉구했다. (…) 울프는 기자의 목소리와 관점을 새로이 강조한 1970년대 뉴저널리즘의 영향력 있는 주창자였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선언이 문학계의 많은 이들을 전향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루이스 어드리크, 데이비드 미첼, 드릴로, 줄리언 반스, 팔라닉,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같은 작가들은 수십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포드 매덕스 포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혁신자들이 「라쇼몽」같은 새로운 현실을 포착하고자 개척한 다중시점, 신뢰할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같은 장치를 여러모로 활용했다.”  

 


대목에서 가쿠타니는 「라쇼몽」 언급하며, ‘다중시점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 다시 읽어도 다중시점이란 표현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다양한 시점이 등장한다면 저처럼 소설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시점의 변화만큼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있을텐데요. 다양한 시점이 저에게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만 소설 속의 노파와 화자 각자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듯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해석만 찾아볼 있었습니다. 아니면 소설의 행간을 읽어 감지해 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다시 가쿠타니가 언급한 대목이 소설과 맞지 않는 듯하여 혼란을 느끼던 , 단편 소설에 대한 작품해설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 가지 실마리를 찾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단편 소설 「라쇼몽」말고,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가 사실은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만 단편 소설 「라쇼몽」에서 가져와 적용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소설 「덤불 속」에는( 단편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각자 자신의 진실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스터 출처]

By Daiei, (c) 1962

http://entertainment.webshots.com/photo/2011951000055228984dXleQp[dead link] accessed 01-March-2008,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644246



그러므로 가쿠타니가 《진실》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비판하며 언급하는 라쇼몽 효과 「라쇼몽」이란 작품은 사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소설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영화  <라쇼몽>에서 분명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 영화 <라쇼몽> 사실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 내용이었던 것이죠. 실제 단편 「라쇼몽」 아니구요. 그렇다면 가쿠타니가 말하는 다중시점 라쇼몽 효과 엄밀히 말하자면 덤불 효과 옳은 것이겠죠. 따라서 라쇼몽 효과라는 표현의 유명세는 사실  단편 소설 「덤불 속」에게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저널리스트 하트(Jack Hart) 글쓰기 《논픽션 쓰기》(정세라 옮김, 유유)에서 저자는 논픽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데, ‘시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의 마지막에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영화로 자주 인용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조차 명의 시점인물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정리해봅니다. 가쿠타니의  《진실》 하트의 《논픽션 쓰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라쇼몽 효과 모두 다중시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실 경우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언급한 라쇼몽 효과 맥락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 내용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실제 단편 소설 「라쇼몽」 제가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시점 변화를 찾을 없었다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었던 것이구요. 가지 이해하게 점은 미국의 문단에서 주로 회자되고 소비되고 있는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실제 「라쇼몽」보다는 다중시점이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라는 점입니다.

 


라쇼몽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홍구 교수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역사이야기코너를 연재하며 글에서 라쇼몽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역사서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한홍구 지음, 창비, 2020) 공저자 한홍구 교수라서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학비평가들이나 역사학자가 라쇼몽 언급할 ,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가 궁금했었고, 실마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에 라쇼몽 언급한 한홍구 교수의 글을 링크해두겠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수많은라쇼몽 진실을 찾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87.html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https://ko.wikipedia.org/wiki/라쇼몽_(1950_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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