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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자 종이 인형을 만드는 

아내의 작은 전시를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읽기와 쓰기, 책으로부터 시작된 인연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인연과 관계맺기의 모습을 경험해보게 되었네요.


이번 전시는 작고 조촐한 곳에서 준비되었습니다.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을 법한,

방산시장의 독립 서점 '그래서 책방'에서 제공한

'그래서 쇼룸'이라는 곳에서 진행됩니다.


이곳 방산시장 주변에는 인쇄소를 비롯하여 

많은 업종의 상가가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이 가운데 인쇄소에서 책이나 인쇄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르고 남아 버려지는 종이들이 발생합니다.

이를 안타까워하신 업체 사장님과 이런 상황을 새로운 작업으로 

연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책방, 예술가가 모여 멋진 작업들을 

하고 계시더군요. 


책과 사람은 이러한 인연들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기도 하니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전시장은 여러 업종의 현장이 모여 있는 종합시장 상가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처음 오시는 분들은 '미궁'의 신세계를 

경험하실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의 현장을 보면서, 그리고 이분들이 건네는

무심한 듯 따뜻한 한 마디와 눈길을 느끼면서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가 작가가 아니다보니 전시의 내용을 떠들기도 어렵습니다만,

작가가 고른 책 중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물건들을,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버려졌을 종이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장소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있다고 

느꼈습니다. 주변의 상가 대표분들도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아내와 전시준비를 함께 했습니다.

조금 피곤했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멋진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동네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여 

장소와 전시회가 준비되었습니다.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전시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됨을 다시 생각해보며,

아내 대신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방산시장 주변에 오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주시길.




전시장 위치: 서울시 중구 방산종합시장 A동 2층 101

(그래서 책방의 '그래서 쇼룸')


전시 일정: 2023.11.18(토) - 11.27(월) ] [목, 일 휴관]





[전시 작업에 참고한 도서들]

[1]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좋은여름] (2019)

[2] <빨간머리앤을 좋아합니다>,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9)

[3]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난다] (2019)

[4]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시와 지음, [도서출판 가지] (2022)

[5]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예경] (2015)

[6]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 bonpon지음, 이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9) 

[7]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다니는 수첩>, 김목인 지음, [책읽는수요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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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1-18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초란공님 종이인형 사진을 살짝 보여주셨을 때 그냥 취미가 아니신것 같았어요! 너무 예쁘고 마음에 쏙 들었는데 아내분 전시회 여셨다니 축하드립니다.들러보고싶네요.(저 어릴때 살던 지역이라 반갑습니다ㅋㅋ)

초란공 2023-11-18 14:22   좋아요 1 | URL
아 이전에 올린 글도 기억하고 계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이 지역에 사셨다니 지리를 잘 아시겠어요. ^^

jella68 2023-11-2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도 종이도 좋아하는지라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궁긍해지네요.요즘은 다이어리 꾸미기에 이어 정크저녈이라는 게 잇어서 독서하면서 내용 정리합니다. 일종의 스크랩 형식. 아내분의 독서법 기대됩니다.

초란공 2023-11-20 12:15   좋아요 1 | URL
요새는 전자책도 시도해보곤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종이책인가 봅니다.^^
jella68님의 정크저널은 어떻게 독서 활동과 이어지는지 더 궁금해지는걸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스를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내친다구요? 

무지하고 천박한 이유를 대는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하여,

홍범도 장군에 대해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근현대사에 무지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의 책탑 사진을 구경만 해보다가 저도 동참해봅니다.^^

아직 빈약한 '홍범도 장군 3층 책탑'이지만,

최근 출간된 방현석 작가의 소설 <범도>는 곧 올 예정입니다. 

그럼 홍범도 장군 5층 책탑이 될겁니다. 


홍범도 장군을 내친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따져 묻고,

저들의 무식하고 모순적인 주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라딘에서라도 홍범도 장군 읽기를 제안합니다~!!


제가 모르던 홍범도 장군에 관한 다른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기를^^


<녹두 전봉준>을 함께 넣은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던 김삼웅님으로

<홍범도 평전>을 지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녹두 전봉준이 관군에 붙잡혀 취조당할 때, 스스로 이런 변론을 했다고 하죠.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백성들의 원성과 절규다. 봉기를 일으킨 것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함이었다.”(<범도>, 1권 291면)


참수당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전봉준은 자신을 취조하던 갑신정변의 수괴 서광범 앞에서 당당히 이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녹두 전봉준의 정신이 곧 항일 전선에서 싸우고자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정신이기도 할 겁니다. 


 


가난한 백성들로부터 짜낸 혈세를 일본군 군영 건축비로 배정한 대한제국의 내각이나 그것을 받아 착복한 삼수 부사나 도적놈이긴 매일반이었다.”(<범도>, 2권 25면) 


이 문장을 다시 보니 기시감이 듭니다. 2023년 대한민국의 모습 그대로같습니다. 


그리고 <범도>는 책이 두꺼워서 좀 더 튼튼하게 양장본으로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리아스><오딧세이아>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되풀이되어 이야기되고 읽혀온 것처럼, 양장본으로 제작된 <범도>를 <일리아스> 옆에 꽂아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후손들도 오래도록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이 싸웠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말입니다.    






참고로 송은일 소설가의 저작 <나는 홍범도>도 치밀한 자료 조사에 기반한 소설이며, 두 권짜리 <범도>에 비해 얇고 가독성이 좋아 중고등학생들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강추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홍범도 장군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범을 잡던 포수, '범포' 홍범도의 아내는 일본군에 고문당하고 자진했으며, 두 아들은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했습니다. 나아가 함께 목숨을 걸었던 많은 동지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같은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정보를 넘겨준 이들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일본을 위해 같은 민족을 괴롭혔던 이들, 그리고 일본군을 잡기 시작하며 홍범도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곧 범포가 내려온다~' 고 말입니다.^^

홍범도 함께 읽기 해봅시다!

 


기사를 찾아보니, 시인이자 평론가인 <민족의 장군 홍범도>의 저자

이동순 교수의 시와 서해성 시인의 시가 게재된 기사도 있군요.



[한겨례] ‘내가 돌아오지 말걸’…홍범도 평전 펴낸 한 시인의 토로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62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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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31 22: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유해 봉환식 영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역사가 역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닫고
있습니다.

저도 참전하겠습니다.

초란공 2023-08-31 23: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해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되다니요....

청아 2023-08-31 23: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부의 노골적인 역사 지우기가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근현대사 공부를 하게끔 하네요. 저도 한 권 담아갑니다.

초란공 2023-08-31 23:33   좋아요 4 | URL
국민을 공부하게 만들어주는 정부네요 -.-;; 어떻게 이정도로 뻔뻔할 수가 있을까요.

2023-09-01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어j 2023-09-01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구입해서 읽어봅니다!

초란공 2023-09-01 09:09   좋아요 1 | URL
네~ 함께하시지요! 감사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결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습했다. 키예프 공항을 폭격하는 장면과 하늘에 별이 박힌 듯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는 영상을 보았다. 지난 세기에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이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이웃 국가들을 침공했던 사실은 책에만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다. 실제 러시아의 침공 영상을 보니 두렵다. 한 정치가의 작전개시한 마디에 누군가의 삶과 장소가 파괴되고, 이와 결부된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말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먼저 공격했다, 혹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친러시아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국제사회는 무력해 보인다.


상당한 경제재재를 감수하고서라도 군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큼 푸친이 목적한 바를 챙기기 전까진 경제 제재조치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문제가 푸틴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여기에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냉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니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 사이에 낀 우리가 풀어야할 외교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요즘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고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를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저자의 문장은 아름답다. 글로 옮기기 힘들었던 미묘한 일상의 감상과 사유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감수성을 배우고 싶다. 그의 산문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잣대에 기대어 순순히 굽히지 않는 면모도 있다. 저자의 다른 산문이나 비평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러시아의 공습 기사를 보고,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저자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모습은 저자의 몸에 비인간화라는 공포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전쟁이 무섭다. 오만과 증오에 눈이 가려 심각한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 무섭다. 전쟁을 막을 지혜와 역량이 우리에게서 발휘되지 못할 것이 무섭다.”(나는 전쟁이 무섭다(2010), 48)


 

전쟁을 겪은 세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가 이제 경제 10대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제국이 아니다. 정신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날 길이 없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과 손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국가든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휘둘리기도 하고, 고통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금껏 지켜왔다. 우리의 운명은 주변 강대국의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 특히 중국과 같은 나라들과 다면적인 사항(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항)을 고려하여 행동에 나설 일이다.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으면서, 이웃 국가를 비난하고 자극하여 안보위기를 부추기는 철없고 머저리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말은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한 정치인들의 명단을 잘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이 명단을 활용할 방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자신의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인용한 내용에 전쟁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 인용문은 201165일자 <주간 아사히 긴급 증간 아사히 저널>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일찍이 전쟁절멸보장 법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난 세기 초에 덴마크의 육군대장 프리츠 홀름이 각국에 다음과 같은 법률이 있다면 지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쟁이 터질 경우 10시간 안에 다음 순번에 따라 최전선에 일개 병사로 파견된다. 첫째로 국가원수, 두 번째는 그 남자의 친족, 세 번째는 총리, 국무위원, 각 부처 차관. 네 번째는 국회의원. 다만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종교계지도자들. 전쟁은 국가 권력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홀름은 생각했다. 따라서 맨 먼저 권력자들부터 희생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한승동 옮김, 돌베개, 34)

 


다시 정리하면, 중국과 같은 주변국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고 자극하여 국가의 안보에 위협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여기 전쟁절멸보장 법안의 첫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 소련(스탈린)과 나치(히틀러) 시대의 유럽 역사를 다룬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함규진 옮김, 2021)을 읽을 때 느꼈던 부분이지만,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은 전쟁 시에 양쪽 진영 모두에 큰 고통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등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지난 세기에 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특히 스탈린 시절 소련은 공업화를 추진하고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탈린이 유럽의 곡창지대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탈한 것이 문제를 야기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대기근 홀로도모르(Holodomor)'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기근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하여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관련 내용은 피에 젖은 땅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를 참조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는 러시아 침공 소식을 전한 다음 증시 하락기사를 내보냈다. 아마도 국내의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를 하고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주가 폭락만큼의 충격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황현산 선생의 언급처럼 장소와 물질에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통해 몸에 기억된 흔적들이 외부기억 장치들에 연결되어 쉽게 휘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몸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과 관계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 우리는 상상력마저 잃게 된다고 선생은 우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몸에 남게 되는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고 윤리와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마련해주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뉴스 영상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새롭게 주목해보는 것은 전쟁이 더 확대 될 경우, 우크라이나 난민이 적어도 500만 명은 발생할 것이라는 뉴스보도였다.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난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필요한 때는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막연한 전쟁의 공포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에 나를 집어넣는 능력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프랑스가 국가를 위해 일할 수재들을 교육시키고자 국가 최고의 기관에 보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귀족주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문학적/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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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5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전쟁까지는 안갈거라 생각 했는데 이런일이 ㅜㅜ 근데 저도 전쟁보다는 주가 생각이 먼저 나더라구요 ㅎ 반성해 봅니다 ~!

초란공 2022-02-25 13:00   좋아요 2 | URL
저는 미국이 개입하면 세계 대전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대신 올림픽 끝난 직후 주말에 바로 공격 개시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며칠 더 지켜보기로 했던 걸까요. 러시아 유도 챔피언에 유럽에서 첩보활동하면서 사람을 잡아들였던 푸틴의 치기가 아직도 남아있는게 아닐까요. 아니면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착각하는지도요. ㅜㅜ

프레이야 2022-02-25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정말 안타까운 사태입니다.
홀로도모르도 그랬는데 아직 그 땅 그 사람들의 고통이 끊이질 않네요.
초란공 님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밤이 선생이다”를 다시 꺼내 보게 되네요.
공감능력 상실의 시대와 그런 세대가 무섭습니다. 권력자들부터 전쟁절멸보장 법안이 일찌기 있었군요. 전쟁을 몸소 겪은 아버지 세대는 그 공포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어요 기억에 오래오래. 열아홉에 혈혈단신 피난 오신 아버지는 아직도 가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초란공 2022-02-25 13:02   좋아요 4 | URL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야기되어야 상상력을 통한 공감능력도 유지될 수 있지 읺을까 싶습니다. 부모님들의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고 싶네요. ^^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2-25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쟁절멸보장 법안‘ 너무 좋네요.

전쟁도 무섭고, 전쟁을 막을 힘이 없다는 사실도 무섭네요. 경제 제제 외에는 전쟁을 막을 방도도 없는 거 같고요.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국민들도 무섭고. 모든 게 무섭습니다.

초란공 2022-02-25 21:3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다시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네요...ㅜㅜ

얄라알라 2022-03-01 12:44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저도 ‘전쟁절멸보장 법안‘ copy해서 댓글 쓰려고 쭈욱 댓글 읽으며 내려왔는데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이 법안 심정적 지지하시네요.

자꾸 울컥거리고 울게 됩니다.
사용금지된 무기까지 썼다니.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이
난민됨의 두려움이
...비오는 3.1절 더 비장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2022-03-0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1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3-08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빨리 멈춰야 할텐데 말이죠 ㅠㅠ 초란공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려나봅니다. 당장 생겨나는 난민들도 그렇고요.

그레이스 2022-03-0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3-08 1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쓰는 글은 그냥 끄적거리는 잡문이다. 


오후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을 보았다. 

화면으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했다. 

이 장면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더해졌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뉴스를 보니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이 일에 무관한 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심지어 어느 뉴스 앵커는 '이번 누리 호의 발사 실패'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실수'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목표로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의 아쉬움을 보고 너무나 쉽게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는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발사체가 폭발한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성과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 칭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반응 하나는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의 반응이다. 우주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이 되니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마땅히 우주 개발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득 우리 나라가 특히나 실패에 민감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 사업의 성패, 결과에만 주목하는 정서에 길들여있어서인지 누리호 발사 이후 인터뷰를 한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해 보였다. 이들이 내년 5월에 예정된 다음 발사 준비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준비할지 눈에 선하다. 국민이나 해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정서야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개발에 관하는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대로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을 신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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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이 아니라 다른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늘이 성수대교 붕괴한 지 27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남겨두고자 한다. 이 사고는 27년 전(1994) 오늘, 738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 속보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성수대교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길에 지나는 다리였다.


사고 당일 오전에 어머니는 황당한 뉴스 속보를 보고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한참 애가 탔던 순간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긴장하셨을까. 짐작하건데 아버지도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시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정리를 마치고 켠 TV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보신 아버지는 당신이 다리가 무너지기 10분 전 즈음에 다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다리가 많이 휘청거렸다는 말씀과 함께. 과거에 올라왔던 기사를 보니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그 중 9명이 내 또래의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특히 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 시간, 출근 시간과 겹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 특히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는 사실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이러한 사고에 예외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기도 하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 동네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 겨울에 동사했던 할아버지, 중학생 때 아파트에서 투신한 뒤 잔디밭에 누워 있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났다.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전국에 전해진 지 이틀 후인 1994년 10월 23일.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동창모임에서 준비한 충북 단양 지역 관광에 참여하고 오셨다. 어머니는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타고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저녁 뉴스에는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도배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망자 29명, 실종자 1명' 이런 문구가 끊임없이 여러 방송사의 뉴스 자막으로 등장했다. 


"엄마, 저거 엄마가 어제 타신 배 아니에요?" 나의 물음에, 늘 큰 기복이 없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당신이 저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하시는 거였다. 단 하루 차이로 어머니는 대형 사고를 피하셨던 것이다. 나는 3일 사이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사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사고 희생자 될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희생자 규모가 비슷함에도 유독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고 모두 안타까운 인재로 일어난 일이다.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기도 혹은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들이어야만 했나?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묻고 싶어진다. 오늘이 가기 1 시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일들을 이유없이 끄적거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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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22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충격적인 뉴스가 생각나요. 그러다 잊고 살다가 벌새 란 영화를 보며 다시 떠올렸지요. 정말 작은 예산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눈치보기 바쁜 과학자들과 관계자들을 보면서 언론이 악의 축인가 과학자들은 정말 여기서 일하기 싫겠단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면 어릴 적 국민학교때 실험 수업이 참 싫었어요. 비커 하나라도 깨면 그게 얼만데 사오라는 둥 하던 요상한 선생님 ㅠㅠ 이기억나요 ~ 초란공님 글에 무지 공감합니다 *^^*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씨앗을 뿌린 서방 국가, 그리고 모비 딕

 


어제 날짜(831)를 기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20년 주둔을 종료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군 주둔의 역사는 2001911일 직후 시작되어 이제 만 20년을 맞게 된 셈이다. 신문 기사를 살펴보니 메켄지 중부사령관은 ‘20년 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 종전을 의미 한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공모자들을 끝내는 임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간 미군은 12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과 동맹국, 미국에 조력한 아프간 인들을 대피시켰다.


 

또 다른 매체에서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43년간이나 계속되던 전쟁이 301159(현지시각) 미군 철군 완료로 종료가 선언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말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개입으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충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이 주둔했던 지난 20년 만을 언급했지만, 소련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며칠 전 기사를 훑어보다가 어느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모든 건 다 영국 때문이다’, 라고 비판하는 대목(혹은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출처를 다시 찾을 수가 없는데, 당시에 이 기사를 보면서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충돌해온 것은 미국인데 왜 영국 때문이라고 비난을 할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관련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프가니스탄과 서방 세계의 충돌에 더 오랜 역사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그 영국인이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펼쳐본 모비 딕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언급된 대목이 나와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소설의 제1장에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 부분을 이해할만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소설의 1장에서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화자 자신이 다시 고래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상선 선원으로서 여러 번 바다 냄새를 맡아본 내가 이제 와서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내가 이 고래잡이 항해에 나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오래전에 작성된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좀 더 긴 연극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짧은 막간극이자 일인극이었다.

(36, 모비 딕,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신의 섭리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이 고래잡이배를 타는 것이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긴 연극 혹은 역사적인 사건 사이에 낀 막간극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시를 든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모비 딕 1장에서 인용)

 


대통령 선거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라는 긴 연극 사이에, 일인극에 불과한 자신의 고래잡이 항해가 위치한 신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비 딕1850년에 주로 쓰였으므로,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이 시기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좀 더 조사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건을 계기로 19세기 중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조사한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검색하여 대강을 정리한 것으로, 큰 흐름에서 역사적인 사건들만 참고하면 될 듯하다. 이를 제외하고 자세한 사항이나 구체적인 연도 등의 정보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북으로 러시아, 동쪽과 남쪽으로 인도·파키스탄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 과거에 페르시아로 불린 현재의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울러 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혹은 심장부)에 위치한 셈이어서 문명의 교차로라고 할 만 했다. 오랜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그리고 북방계 민족 및 제국이 충돌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주의 시대가 한창일 때, 여러 열강은 서아시아로 진출했으며 바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열강들의 충돌과 갈등이 표출되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러시아는 남하정책으로 이미 현재의 이란 지역인 페르시아에 진출해있었다. 당시에 영국은 이미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인도를 식민지 삼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놓고 대립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말하자면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까지는 아니더라도 막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세계의 판을 쥐락펴락하는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근거로 하여 북상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와 충돌하는 형국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특히 영국은 이슬람 제국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에 저항하는 정부를 축출하고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혹은 통상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이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했던 사건은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슬람 제국과 3차에 걸쳐 벌인 아프간 전쟁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은 1838-1842년 사이에, 2차 아프간 전쟁은 1878-188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바로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당시의 큰 전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차 아프간 전쟁은 이 소설이 출간(1851)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차 아프간 전쟁에서 인도 용병을 앞세운 영국 군대는 카불을 점령하여 다른 왕을 옹립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허수아비 지도자를 앉힌 것인데, 이는 일본군부가 중일전쟁을 벌이고 만주국과 같은 괴뢰 정부를 세운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저항이 너무나 격렬해서 영국군이 카불에서 철수했다는 점이다. 최근 카불에 아직 남아서 숨어 지내는 어느 서양인이 국내 취재진과 영상 인터뷰를 진행한 장면을 보았는데,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이 너무나 혹독해서,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과 더불어 이번 겨울은 이 곳에 남게 된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군/인도용병이 거의 전멸했던 제1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의 전투 그림

 


18421월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의 막바지에 영국군은 아프간에서 철수 중이었다. 한 기록에 의하면 대략 2피트(60 cm)의 눈 쌓인 계곡에서 영국군 700, 인도 용병 3800, 그리고 이들의 가족 등을 포함한 12천 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공격으로 전멸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아마도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고, 1841-1842년 당시 한창 젊은 22-23세로 포경선을 타던 멜빌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모비 딕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8년의 시간은 더 있었으니 자세한 내막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멜빌이 소설에서 썼던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영국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저항군에게 거의 전멸 당했던 어느 계곡의 전투를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주목해보는 부분은 멜빌이 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Bloody Battle In Affghanistan)라는 표현은 백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꽤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많은 백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야만인과 같은 비하적인 표현을 멜빌은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고 철수를 하게 된 영국이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2차 아프간 전쟁은 26년 후인 1878년에 발발하는데, 이번에도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카불을 침공한다. 이 때 영국군은 일본군이 한일합방을 강요했듯이 영국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조약에 강제로 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때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일부 병합되어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고 한다. 큰 희생을 겪었지만 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겨본 베트남인들이 자부심과 사기를 잃지 않은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인들도 그대로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민중은 또 다시 영국에 대항했고, 이들은 제3차 아프간 전쟁을 통해 19198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만다.


 

다시 정리를 하면 어느 뉴스 영상에서 한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모두 영국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그 사람이 잘못 언급했거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3차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유린한 대영제국의 역사적인 침공사건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멜빌의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그가 이미 목격한 제국주의 열강의 행적과 그 영향은 이제 20세기와 21세기에 미국이 대신하여 그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간다고 이해된다. 미국은 이 곳에 탈레반의 씨앗을 심은 것에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이 현상의 근원에는 허먼 멜빌도 목도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이미 영국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행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계기로 그동안 모비 딕 1장에서 멜빌이 썼던 문구의 역사적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카발라를 언급하는 멜빌은 분명히 유대 신비주의적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영원 회귀의 개념을 담고 있는 이 신비주의는 이 회귀의 구조가 모비 딕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떠오른 관을 붙들고 홀로 살아남았던 이슈메일은 언젠가 또 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역시도 카발라적이다. 그런 까닭에 모비 딕 1장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라는 표현을 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고 나니 더욱 멜빌의 통찰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인 우리는 정말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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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9-02 0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미국의 서진으로 인해 멸망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배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도 멜빌은 폭력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파국을 경고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초란공 2021-09-02 22:13   좋아요 3 | URL
아 그렇네요. 피쿼드호를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더하여 저는 ‘모비 딕‘을 백인 문명의 질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에이해브처럼 덤비는 이들은 ‘모두 죽는다‘는 위협적인 백인 문명으로요.
나중에 이 부분가지고 쓸 기회가 되면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

mini74 2021-09-02 17: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읽었던 모비딕 앞부분으로 이렇게 역사까지.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초란공님. *^^*

초란공 2021-09-02 22:16   좋아요 4 | URL
읽어주신 소감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사가 미흡하여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의 지적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아무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네요~

초딩 2021-09-03 0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피쿼드호도 이민자들이 처음 멸한 인디언 부족 이름이죠? 정말 모비딕의 그 방대함과 그 속의 빗댐은 대단합니다!

초란공 2021-09-03 12:17   좋아요 3 | URL
정말 <모비 딕>은 ‘모비 딕‘ 같달까요? ㅋㅋ

scott 2021-09-0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주말 독서 모비딕 꺼내놨어여 ㅎ 주말 화창한 날씨처럼 멋지게 ~

초란공 2021-09-04 11:55   좋아요 2 | URL
‘저도 <모비 딕> 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ㅋㅋㅋ 스콧님도 화찬한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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