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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지음, 백수린 옮김 / 목요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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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지음 | 백수린 옮김 | [목요일]

 


여름의 끝(La fin de l'été)을 추억하는 애도의 기록

 

아내를 따라 그림책을 보다보니 그림책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문구를 종종 접했지만, 여전히 내가 스스로 찾아 읽고 느끼고 판단하지는 못했다. 그림책은 대체로 텍스트가 적어서 금방 읽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아동용 그램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림책의 독자에는 제한이 없다. 이번에 읽은 그림책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라는 제목의 책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책이었다.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 소개에 따르면 그녀는 1971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프랑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림책 관련 행사 및 도서전으로도 유명한 볼로냐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2004)로 선정되었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2018)한 이력이 보인다. 이제는 그림책과 관련하여 볼로냐를 비롯한 해외 무대에서 점점 더 많은 국내 작가들의 소식을 접하기에 이 상의 위상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다. 짧게 소개된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콘세이요의 다른 작업들이 궁금해진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책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편견을 최대한 줄이고, 겉에 표현된 이미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겉표지를 펼치면 소녀로 보이는 인물 그림이 나온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손에는 열쇠로 보이는 물건 하나를 쥐고 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림 속 들판에 숨어 있던 새들이 놀라 달아나듯 새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듯, 들판은 풍요로운 느낌 보다는 황량한 겨울 들판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 보이는 것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이다. 가는 펜과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들이 계속 이어지며 화면을 구성한다.

 

그림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누군가의 빛바랜 사진 앨범을 넘기면서 구경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작가의 작업들은 언젠가 그녀가 응시하고, 감각하여 각인된 기억들을 소환하여 이미지로 정착해둔 스냅 사진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정면을 응시하는 듯 하는 소녀의 스케치는 오래 전 부모님이 들고 있던 필름 카메라 렌즈를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면 곧 등장하는 푸른 앙리는 작가의 아버지로 보인다. 소녀의 모습은 앙리가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어린 시절의 작가일 듯하다. 책에 그려진 그림들은 접착용 테잎으로 붙여둔 사진처럼 구성되어 있다.

 

커튼 달린 창틀, 컵을 잡고 있는 손, 얼굴 표정을 그리지 않은 소녀의 두상들... 이런 단편적인 그림들은 모두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보인다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명징하며 지극히 사진적이기도 하다. 또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래서였을까, 콘세이요의 스케치는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움을 준다. 작가의 소소한 스케치들이 새로운 기억을 소환한다.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책을 더 읽으면 작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일흔 살 즈음으로 보인다. 아마도 지난 늦여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 작업은 이제 중년이 된 딸(작가)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담아 낸 것이리라. 아마도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전형적인 아버지였을 것 같다. 서로가 소통이 많지 않던 부녀 관계. 이제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시골집에 와서 아버지가 살던 공간과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추억이 묻어나고, 죽음이라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자각이 느껴진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지난 글에서 처음 읽었던 그림책처럼 공교롭게도 이번 책을 관통하는 주제도 죽음이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별명이 있는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에서 예술사적 관점으로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삶에 집착한 간접적인 증거로서 정물화를 언급한다. 특히 중세인들은 죽음이라는 소멸 현상을 정물화를 통해 삶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북부 유럽어권에서 정물화를 ‘still life'라고 표현하고, 더구나 라틴어 권에서는 ’nature morte’, 죽은 자연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게다가 모든 문학 작품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림책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그림책이 다루는 주제를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책에서도 삶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삐삐롱 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언급했던 것처럼, 적절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아이들도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인식하고 나름대로 소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그림책을 읽어내는 일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메시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 놀이와 같단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책 읽기란, 그림을 통해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을 들여다보고, 저자의 기억과 상상을 더듬어 따라가는 일이다.

 




내 시선은 다시 앙리가 살던 집의 찬장에 머문다. 안개처럼 반투명해보이는 유리문이 있는 찬장 아래에 피클을 담는 병이 보인다. 이 병에는 앙리가 숲에서 가져와 넣어 둔 까치밥나무 잎이 들어 있다. 까치밥나무 열매는 여름에 익는다고 한다. 아마도 앙리는 이걸 병에 넣어 둔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매일같이 산책하던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주머니에는 매일 확인하는 우편함 열쇠를 넣은 채로 말이다. 우편함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앙리는 입김이 날 정도로 쌀쌀해진 어느 날 익숙한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집 앞에는 돌아올게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로. 하지만 이 산책이 앙리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을 것 같다. 그렇게 앙리는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산책길에서 벤치에 앉아 깃털처럼 가벼워졌을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이런 자세한 정황은 책을 보고 내가 상상해본 내용이다. 책에 표현된 시선을 따라가면서 작가의 추억을 들여다 볼 뿐이다. 저자는 앨범을 보고 외부를 관찰하는 것 같지만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묻혀 있던 작가의 기억, 곧 내면의 풍경이다. 딸은 아마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정하게 대화해본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먼저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지내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듯하다. 작가는 부모님의 결혼사진과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을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지 않았을까. 새롭게 다가오는 자각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제 지난 여름 아버지가 담아 두었을 까치밥나무 잎에 머문다. 꽃무늬 벽지가 있는 한 쪽 벽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옷이 그대로 걸려 있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했던 시절, 웃음소리와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을 것만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앙리는 여름이 끝날 무렵,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까닭에 까치밥나무 열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면서, 소멸하는 자연을 대변하는 사물이 된다. 앙리가 즐겨 산책하던 풍경은 이제 작가의 추억 속, 여름의 끝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배경을 상상해보다 책의 표지를 보니, 푸른색으로 그려진 앙리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진다. 책의 겉표지를 넘길 때 보았던 소녀(아마도 어린 작가의 모습)의 손에 든 열쇠는 아마도 아버지의 우편함 열쇠가 아니었을까. 우편함 열쇠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겠다. 혹은 소통이 별로 없던 딸의 편지가 와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주는 텍스트가 거의 없는 그림책을 읽는 일은 보다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림책은 언어를 떠나 공통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 나는 그림책 읽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그림책에는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다르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책은 그만큼 풍부한 자유도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특이점처럼 느껴진다. 묻혀 있던 무수한 기억들이 공존하는 지점인 동시에 새로운 상상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는 전환점으로서 말이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면, ‘지난 여름의 끝을 추억하던 작가가 아버지에게 전하는 한마디가 담겨있다. 빨간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 즈음, 아마도 푸른 안개와 함께 풍경 속으로 사라졌을 법한 작가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는 인생에 여전히 미숙했고(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특히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던모든 아버지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자 애도의 메시지다.

 




 같은 책을 읽고 쓴 옆지기의 리뷰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https://blog.aladin.co.kr/734094286/1242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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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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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며

 



아내와 함께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 공부를 한 아내와 이공계 전공인 나는 책에 대해 서로 취향이 많이 다르다. 그림책 읽기는 그 접점으로서 같은 책을 각자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듯하여 내가 아내에게 제안해본 것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나온다고 하니까. 난 그림책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받아서 읽고, 각자가 책에 관해서 써보기로 했다. 여기에 규칙이 하나 있다면, 글을 다 쓰기 전까진 상대방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다.

 

막상 그림책을 받고서 읽어보니 난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텍스트는 거의 없는 데다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순히 부담 없이 금방 읽고 함께 무언가를 써보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림책의 텍스트는 어디로 나아갈지 방황하는 나의 생각을 붙들고 제안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그림을 읽어내야 할지가 나의 관심사였다. 안 그래도 공감능력(?)이 부족한 내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일까 고민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없던 일로 되돌리기도 멋쩍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떤 일이든 마음의 부담을 많이 안고서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프로그램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나 혼자 시행착오를 해가며 꾸역꾸역 시작해보기로 한다. 난 아무래도 뭔가를 시작했다가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내게 부족한 것들을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듯하다. 나도 역시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 점이 스스로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나. 그러니 아내와 그림책 읽기도 그저 나의 엉뚱한 생각으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가 뭔가 재미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만 모르고 지나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러니 부담 없이 그림책을 읽어 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들어 기록해보기로 한다.


자 그럼 이제 시작!”

 

 


할머니의 팡도르

(원제: I Pani d'Oro della Vecchina, 2012)

안나마리아 고치(Annamaria Gozzi)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Violeta Lopiz)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음식을 매개로 운명과 밀당 하는 할머니

 


책장을 넘기면서 눈에 들어오는 빨간색의 패턴과 할머니, 그리고 검은 색의 형체 없는 존재는 궁금증부터 일으킨다. 빨강과 검은 색의 색연필이 대부분인 이 그림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아무리 어른들도 보는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죽음이란 주제는 으레 달갑지 않다. 아무런 기대 없이 책을 펼친 문외한으로서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닌, 우리를 규정하는 자연의 엄연한 진실이라면, 우리가 기피할 이유는 없다. 대신 저자와 그림 작가가 이 형이상학적인 진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표현했을까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빨간 두건을 한 할머니는 코와 볼은, 할머니의 집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주름과 가늘어진 입술을 지니게 된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매년 해오던 크리스마스 빵과 쿠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때 집 밖에 표현된 검은 색의 저승사자(사신)은 할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이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메마른 나무와 사신이 검은 색으로 표현된 것이 대조적이다. 온기를 지닌 존재, 생명은 붉은 색으로, 엄연한 진실, 곧 죽음은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이겠다. 할머니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과일과 계피, 그리고 꿀이 가득 들어간 크리스마스 빵을 만드느라 사신이 곁에 가가와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신의 임무는 응당 사람을 저승의 세계로 데려가는 일이다. 따라오라는 사신의 말에 할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빵을 완성하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대신 자신이 빵에 넣을 소를 만들던 주걱을 사신의 입에 넣어 준다. 이런 식으로 사신과 할머니 사이의 밀당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사신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따뜻하게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자신이 만들고 있던 빵이며 쿠키를 맛보여 준다.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인상 깊다. 특히 추상적인 죽음을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검은 덩어리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이 사신은 할머니를 언제든 삼켜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듯 언제나 커다란 입을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북부 이탈리아 출신인 작가 안나마리아 고치는 신화와 전설, 민속 전통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수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책의 이야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도 이탈리아 전통과 디저트에 얽힌 전설이라고 한다. 나는 가끔 우리가 삶과 죽음을 마치 별개인 듯 분리하는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집에서 돌아가셨던 할머니와 달리 이제 우리는 집에서 맞는 죽음이 거의 금기시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는 할머니 세대의 삶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은 보다 가까웠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역시 자신의 죽음을 단지 두려워 미룬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주일 정도를 미루었을 뿐이다. 죽음을 의연하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지혜를 발견한다. 어쩌면 금빛 팡도르는 이승에서 그녀의 삶을 규정한 전통과 기억이 빚어낸 할머니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빵과 쿠키를 아이들과 사신이 함께 어우러져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갈 시간임을 받아들인다. “이제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의 바램 하나를 더 생각해 내었다. 나도 언젠가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기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과 집단의 기억은 할머니가 자신의 찰다 속에 숨겨 놓은 레시피처럼, 온기를 가지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책을 들춰 보았더니 한 그림에 눈길이 멈춘다. 할머니는 사신과 마주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접시에 담아 사신에게 건네는 장면이다. 빵 하나를 맛본 사신은 자신의 임무를 잠시 잊고 아름다운 맛이군요라고 감탄한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엄연한 진실을 그리면서도, 삶에 대한 비결 하나를 한 문장으로 남겨 놓은 듯하다. 바로 이 문장이다. 바로 매 순간을 살면서 삶에 감탄하는 일이 바로 삶의 비결이 아닌가 하고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오늘 처음 그림책에 대해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발견한 것 하나다. 다음에는 아내가 어떤 책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참고] 아내가 이 책에 대해 쓴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알라딘서재][할머니의 팡도르] 

 삶이 만들어 내는 달콤하고 진한 생의 맛 (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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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또는 생존 투쟁에서 선호된 품종의 보존에 관하여)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지음 | 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독서일기] 2 - 자연상태에서의 변이


 

지난 1장에서 다윈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경우(사육과 재배를 통해) 동식물에서 나타나는 변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2장에서는 자연 상태에 있는 동식물들의 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개입(사육과 재배)하여 특정 품종의 선택과 개량을 만들어 냈다. 효과를 빠르고 분명하게 확인할 있다는 말이다. 반면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동식물의 변이는 느리게, 그리고 어떤 환경적인 조건에 의해 우연히 진행되기 때문에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찰스 다윈은 20 가량 동식물 종이 변화하는 기작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 그리고 어떻게?’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다윈이 사육과 재배를 통해 나타난 변이와 자연에서 발견한 변이들의 사례를 놓고 설명의 순서나 방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논리른 주장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써내려나간 정황을 행간에서 느낄 있었다.

 



     종의 기원 2장에서 다윈은 질문 하나를 독자에게 던지며 시작한다. ‘유기체들은 과연 변이를 겪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당시에 통용되던 (species) 변종 대한 개념이 학자들마다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다윈은 이런 분류상의 개념이 자체로 모호하며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치밀한 다윈이 주장을 아무런 검토없이 내놓지는 않았다. 옮긴이 서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다윈은 사망 나이 70대에 이르는 동안 거의 2,000명과 수만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20세부터 70세까지 거의 매일 통의 편지를 셈이다. 다윈은 몸이 좋지 못했던 점과 중간중간 일의 진행이 미루어지기도 정황을 고려하면, 컨디션이 좋은 , 혹은 바로 서신에 대한 답변을 보내야 했던 상황을 참작할 , 하루에 편지 2-3 정도는 일상적으로 썼을 것이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결혼하며 정착하게 다운하우스(Down House)’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않고 지냈던 다윈은 자신의 집을 실험실을 겸비한 지적 중심지/연구 센터를 구축했던 셈이다


 

     다른 의미에서 종의 기원 당대 지성들이 구축해 집단 지성의 결정체로도 있을 같다. 이것은 다윈의 기여와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윈의 지적 성장에 영향을 주고 받은 이들을 인정하자는 의미다. 다윈은 작업을 주도하고, 자신의 통찰을 담아 종의 기원 세상에 내놓은 대표 저자인 셈이다. 따라서 책에서 다윈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은 당대의 지성들과 끊임없이 대화와 토론을 거쳐 세상에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수많은 동료 지성들과의 토론과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상당히 신중했던 다윈이 생전에 출판까지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은 자신의 대작 모비 에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고래의 진화, 그리고 라마르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과학자도 아닌 멜빌에게 까지 초기 진화론에 대한 언급을 소설에도 담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미 서양의 지성 사회에서는 진화론 등장하게 조짐을 전반적으로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다양한 사실과 논의를 거친 사항들이 확보되어 있었는데,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터뜨릴지 중요했을 것이란 의미다. 2천년 가까이 영향력을 지녀온 서양의 종교가 제시해온 세계의 기원에 대한 의문에 도전장을 내는 셈이었는데, 어설프게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번의 일격으로 공고한 분열을 일으키고 충격을 주기위해 다윈은 20 가까이 자신의 비밀노트 증거와 통찰을 담아가며 준비했다.    

   

 

     다윈은 2장에서 자연상태에서 발견할 있는 여러 동식물들의 차이 주목한다. 심지어 곤충의 애벌레가 제각기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듣고 이를 언급한다. 개인적으로 활짝 벚꽃을 보다가 살구나무 꽃을 보고 놀라움을 느낀 적이 있다. 심지어 매화꽃과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나무의 꽃은 모두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벚나무만 관찰하더라도 여러 벚꽃을 보다 보면 꽃잎의 색이나, 가지의 형태도 조금씩 다른 나무들을 있다. 어떤 벚꽃은 수양버들처럼 쳐지는 가지가 있는 벚나무도 적이 있다. 이처럼 비슷하게 보이는 식물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머리가 아플정도로 복잡해보인다. 분류의 기준에 수학 공식처럼 불변하지 않은 어떤 전제나 법률조항처럼 분명한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개체 차이 다윈에게도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다윈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다변적또는 다형적 속에 관한 것이다”(97)라며 분류에 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개체들의 차이 주목하게 되면 원인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다윈은 종들에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 우선 거리라는 변수를 고려한다. 경우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어느 종에서 차이를 보이는 별개의 종으로 분류할 있는지 문제가 된다고 반문한다. 결국 거리라는 요인을 고려해보아도 뾰족한 실마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 다윈은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변종 또는 의심스러운 종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검토해 가치는 충분하다”(101)라고 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증거를 통해 그것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왔으며 따라서 변종으로 분류되어야만 한다는 무게를 실어 준다”(102)라고 덧붙였다. 아마도 문장은 2장의 중간 단계의 결론으로 삼을 있겠다. 주장의 배경이 되는 단서는 아마도 창조론과의 관계에서 찾을 있다. 성경을 따르는 창조론자들의 경우, 자연에서 있는 수많은 종들과 변종들이 사실은 모두 원래 모습대로 창조되어 변화없이 지금까지 유지된다고 본다. 당연히 자연에서 발견할 있는 수많은 변이들을 설명할 없다. 다윈은 여기에서 과감하게 나아가 여러 종과 변종들은 사실 공통 조상으로부터 변화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1장에서도 다윈은 동식물을 사육 또는 재배하는 사람들이 개입하여 품종 개량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겪은 개체들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재배자, 사육자들도 종들에게 공통 조상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당대의 정황을 고려하면, 다윈이 공통 조상개념을 명시한 것은 상당히 과감한 시도였다는 의미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공통 조상 놓아 두었다면, 반대쪽 끝에는 종과 변종, 종과 아종, 그리고 변종들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차이를 만드는 기작으로 자연 선택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며 표현을 살짝 노출시키고 있다


 

부모보다 약간 달라진 상태에서 점점 달라지는 상태로,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구조적 차이들을 누적시켜 나가는 자연 선택의 작용 때문에 변종의 계대(passage) 이루어진다고 본다.”(105)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계대(passage) 계통적으로 세대를 이어 나가는 뜻한다. 쉽게 말하면 자연 선택의 작용 때문에 개체는 계통의 (공통적인) 특징을 이어 받으면서도 (개별적인) ‘차이 만든다는 의미다. 개념을 설명하면서 다윈은 발단종(incipient species)이란 개념도 언급하고 있다. 다윈에 따르면, 발단종이란 뚜렷한 특징을 가진변종을 의미했다. 옮긴이(장대익 교수) 발단종을 개체의 단순 변이에서 아종이나 종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 변이에 비해 뚜렷한 영속적 특징을 갖는다 설명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어느 부모 새로부터 태어난 자손에 어떤 새로운 차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차이가 자손 세대에서만 나타나고 후대에 유전이 되지 않는다면 자손 새는 발단종 아니다. 발단종은 분명한 특징이 유전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당시에 통용되던 개념은 모호하기에 변종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다윈은 지적하기도 한다. 유전과 관련한 개념은 현대유전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유전자 수준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보다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아직은 역시 분명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신중을 기하는 다윈은 자신의 과감한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자신의 논리를 준비했는지 느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윈은 수많은 지인 전문가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비판하고 형성해나가며, 사항을 종의 기원 치밀하게 짜넣었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신의 주장에 끌어 들여 자신의 논증에 허점을 줄이고, 논증에 찬성하는 이들을 아군으로 혹은 반박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셈이다.  예를 들면 알퐁스 캉돌을 비롯한 명은 넓은 분포 영역을 갖는 식물에 대체로 변종이 있음을 보였다. 이유로 다윈은 넓은 영역에 분포해 있는 식물이 보다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다른 유기체 집단과 서로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바라보았다. 이것 역시 우연적인 요소와 빈도의 문제로 이해해볼 있다. 보다 넓은 영역에 분포해 있는 어느 식물은 식물에 영향을 주는 환경 요소가 보다 다양할 있다는 자연스러운 이유 때문이다


 

     2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에는 변이의 발생 빈도에 영향을 주는 조건들에 대한 서술이 있다. 이를테면 분포지역이 넓고 흔히 있는 종에서 변이가 대단히 일어난다 의미로, 바로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변이에 영향을 있는 요인과 가능성이 좁은 곳에서 드문드문 변종이 발생할 가능성보다 크다는 의미다. 수긍하기에 어려운 논리는 아니다. 다윈이 언급한 다른 변이 요인 대한 진술은 (genus) 속한 (species) 작은 속에 속한 종보다 변이한다 것이다. ‘(genus)’ 생물 분류의 단위로 가장 마지막 단위인 (species) 속보다 단위인 (family)사이에 위치하며, 무리의 근연종으로 이루어진다. 다윈은 다양한 생물종들과 변종들을 조사하고, 여러 학자들과의 서신 교환 토론을 통해 창조설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부정하고 있다. “만일 종이 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을 설명할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113) 비글호 항해를 비롯하여, 다윈이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애초에 다윈이 창조설 부정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는 비글호 항해를 통해 설명하기 힘든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 형태들을 수집하고 목격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는 쪽이 옳다. 그리고 의문을 평생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수많은 고민을 했을 거이다. 물론 명확하게 연관성을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윈의 건강상의 문제와 이런 심리적인 고민 사이에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다윈은 당대에 굳건하던 믿음을 흔드는 문제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없다


 

     이제 다윈은 2장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언급한 변종이 발생의 빈도와 관련한 서술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소결론을 내린다.

 


변종은 새로운 별개의 종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113)


 

경향성에 대한 주장으로 다윈은 속이 커지고, 우세한 형태들은 우세하게 변화된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되어 우세해질 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러면서 속은 작은 속으로 나뉘는 경향 있음을 아울러 이야기하며 마무리한다. 다시 말해 (아직은) 변이 현상에 대한 기작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세한 생물 형태의 집단은 점점 커지고, 다양하게 변이체를 만들어내고 분기하면서 뚜렷한 특징을 지닌 작은(하위) 집단으로 나뉘어 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볼 있겠다. 그렇게 생명체의 종은 다른 변종을 만들어내고, 사이의 새로운 변이체가 생겨나며 생명체가 다양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명체들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고 있다. 특히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염두에 두면 더욱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까지 다윈은 인간의 개입이 반영된 생물체의 (빠른) 변이 현상과 자연에서 발견되는 (느린) 변이 현상을 이야기 했다. 생물체 집단이 커지고, 변이를 거듭하여 다양해짐에 따라 야기되는 문제는 희소한 자연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것이다. 부분은 다음에 나올 3 생존투쟁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이번 장에서 살짝 선을 보인 자연선택이란 표현은 다음 나오는 4 전체를 통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윈은 1장과 2장을 서술하면서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었을 것이다.  

 



"1장에서 도달한 원리를 자연 상태에 있는 유기체에 적용하기에 앞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유기체들이 과연 변이라는 것을 겪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95면)- P95

"같은 어버이로부터 태어난 형제에서 종종 나타나거나,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서식하는 동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흔히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는 사소한 차이들이 많은데, 이를 개체 차이(individual differences)라고 부른다." (96면)
- P96

"이러한 연결 고리들이 잡종인지의 여부는 매우 불확실하다. 이 밖에도 엄청난 양의 실험적인 증거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 증거들은 그것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왔으며, 따라서 변종으로 분류되어야만 한다는 데 무게를 실어 준다." (102면)
- P102

"‘종과 아종‘ - 몇몇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별개의 종으로 분류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형태들 - 또는 ‘보다 덜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변종들과 개체 간의 차이‘ 사이를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104면)
- P104

"어느 한 단계에서의 차이가 더 높은 다른 단계로 이어지는 이유가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서로 다른 지역 내에서 다른 물리적 조건들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관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부모와는 약간 달라진 상태에서 점점 더 달라지는 상태로, 어떤 분명한 방향으로 구조적 차이들을 누적시켜 나가는 자연선택의 작용(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때문에 변종의 계대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105면)
- P105

"종이란 단지 그 특징이 뚜렷하고 명확한 변종일 뿐이다. 종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은 각 지역에서 큰 속에 속하는 종들이 작은 속에 속하는 종들보다 변종들을 더 빈번히 만들어 낼 것임을 예측한다." (108면)- P108

"만일 우리가 각각의 종이 어떤 특별한 창조의 행위로 생겨난 것으로 간주한다면, 왜 적은 종을 포함한 집단보다 많은 종을 포함한 집단에서 변종이 더 많이 생겨나는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109면)

"작은 속보다 큰 속에서 변종을 만들어 내는 종의 비율이 더 높음이 어김없이 증명되었다." (109면)

- P109

"종이란 단지 뚜렷한 특징을 가진 영구적인 변종에 불과하다는 나의 견해에서 이러한 사실은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동일한 속의 종들이 많이 형성되는 곳(또는 종의 생산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이라면 어디에서나 대개 그러한 생산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9면)

"더구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느리게 일어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특히 더욱 그러하다." (109면)
- P109

"지질학은 우리에게, 작은 속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그 규모가 대단히 커지는 일이 흔한 반면, 큰 속은 최대치에 도달한 후 쇠퇴하고 결국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어떤 속의 종들이 많이 형성되는 곳에서는 평균적으로 많은 종들이 여전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뿐이며, 이는 사실이다." (110면)
- P110

"현재에도 평균보다 더 많은 수의 변종과 발단종을 생산해 내고 있는 큰 속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많은 종들이 여전히 어느 정도 변종들과 유사한 측면을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들 서로의 차이는 양적인 면에서 보통보다 더 적기 때문이다." (111면)
- P111

"그렇다면 변종이란 서로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가지는 형태들의 집단으로, 어떤 형태들 주위 - 그들의 부모 종 주위 - 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111면)- P111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일반적으로 변종들은 훨씬 더 제한된 분포 영역을 갖는다는 점이다." (112면)- P112

"종이 한때는 변종으로 존재했다가 그렇게 변한 것이라 가정할 경우, 우리는 그러한 유사성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만일 종이 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을 설명할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113)- P113

"변종은 새로운 별개의 종으로 변해 가는 경향이 있다.따라서 큰 속은 더 커지고, 현재 자연계에서 우세한 생명 형태들은 우세하게 변화된 자손들을 많이 남김으로써 계속해서 더 우세하게 될 것이다." (113)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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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드디어 다윈 1
찰스 로버트 다윈 지음, 장대익 옮김, 최재천 감수,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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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또는 생존 투쟁에서 선호된 품종의 보존에 관하여)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지음 | 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독서일기]

1 - 사육과 재배 하에서 발생하는 변이

 

사이언스북스에서 기획된 드디어 다윈시리즈의 결과물인 종의 기원 읽어보려한다. 진화학자 장대익 교수가 번역한 찰스 다윈의 초판 버전이다. 번역자의 서문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초판이 다윈의 독창성이나 과감함이 가장 드러나 있다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2판은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완판되고나서 만에 재출간되었다.

 

     최근에 읽은 전염병에 관한 저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저자 데이비드 쾀멘이 엮은 On the Origin of Species: the Illustrated Edition에서 판본의 변화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확인할 있다. 쾀멘은 다윈의  종의 기원 직접 그림과  주석을 더하고, 비글호 항해기 일부를 인용하거나 다윈의 서간문을 첨가하여 폭넓은 이해를 의도했다. 쾀멘이 새롭게 엮은 종의 기원에서  1859년에 나온 초판 1250부가 출간 첫날 완판되었다는 이야기를 출판업자(John Murray)로부터 들었다고 나온다. 이후 2판은 가지 오탈자와 수정사항이 가해졌을 뿐이라고 이해하지만, 장대익 교수의 언급대로 초판이 나온 이후 다윈의 생각 변화나 표현의 수정이 가해져서 다윈의 초심 읽기에는 1판에 주목을 했을 것이라 이해해본다.  

 

     쾀멘이 엮은 종의 기원에는 2 이후의 판본들에는 다윈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사용했던 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표현이 1869년에 다시 출간된 종의 기원에는 5판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1판이 나온 10년이 지난 셈이다. 말하자면 다윈의 종의 기원 다윈이 항해를 다녀온 이후 20여년 다듬어진 자연 선택 공통 조상 대한 개념이 초판 출간 이후 10 동안 인간 사회의 압력(다윈에 비판적이었던 시각들)으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진화해갔다고 있겠다. 따라서 다윈이 자신과 사회의 어떤 문턱을 처음 넘어서기로 결심한 결과물, 그러니까 종의 기원1판을 읽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독서일기에서는 장의 개념에만 집중할 예정이다.

 

     1장에서는 사육과 재배에서 나타나는 종의 변이에 관해 운을 띄우고 있다. 인간이 특정 비둘기 품종을 길러냈던 수천년 전의 조상을 언급하기도 하며 대물림 개념과 변이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운을 띄운다 표현한 이유는 아직  종의 기원 핵심개념인 자연선택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 다윈은 수없이 자료를 읽고, 전문가들과 편지를 교환하고 토론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원에서 비둘기와 따개비를 비롯한 동식물을 재배하고 관찰하며 자연선택 개념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나 이야기들이 많고, 사람들의 반응, 사회의 반응 또한 수도 없이 의식했을 것이다. 개념을 얼른 선언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 저기 슬쩍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끼워 넣음으로써 느껴지는 같다.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했을까 상상해본다.

 

     다윈은 집비둘기의 기원은 잠깐 언급하며 (다윈은 물론 집에서 직접 집비둘기를 기르며 종을 관찰했다) ‘대물림 개념을 이미 분명히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이렇게 슬쩍 자신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표출한다.

 

나는 그것들(대물림하는 여러 종류의 비둘기들을 가리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자손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충분히 공감할 있다.”(73)

 

     다윈의 표현은 종의 기원 다른 핵심개념인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유래 대해 장에서 미리 운을 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윈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당시에 품종 개량하는 전문가들은 아마도 (성경의 해석에 따라) 처음부터 별개의 종이 창조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돌보는 품종들이 수많은 별개의 토착종들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73)라는 점에도 다윈은 분명히 주목하고 있다.종의 기원 통해 이렇게 믿는 이들에게 한방 먹이기 위한 준비를 다윈은 1장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윈 자신은 책에서 이러한 견해에 충분한 증거와 논리로 맞설 것이라는 선전포고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종의 기원 1장은 매우 다르게 읽힌다. 결국 원대한 목표를 위해 개와 , 고양이, 비둘기, 딸기 등등의 동식물의 사례를 집요하게 수집하고 배치해 두었던 것이다.

 

      1장의 후반으로 가면서 다윈은 인간에 의한 동식물의 재배와 사육에서 나타나는 선택이라는 기작에 주목한다. 다윈은 우수한 동식물의 품종을 소유하고자하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선택 (unconscious selection)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언급한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이루어지는 종의 변이는 변화 양상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일어났지만, 재배와 사육에서 집중적인 선택을 통해 보다 빠르게 변화 효과를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이런 훌륭한 과일(다윈은 앞에서 품질 좋은 배를 언급했다) 먹을 있게 이유 일부는 과거에 원예가들이 어디서나 찾을 있었던 최상의 변종들을 자연스럽게 선택해 보존한 덕분이다.”(84)

 

     이와 비교하여 다윈은 문명화되지 못했던 고대의 토착 식물들은 후대의 문명화된 나라에서 계속적인 선택을 통해 완벽한 수준으로 개량되지 못했기 때문에 재배할 가치가 없는 식물들만 보인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1장에서는 인간에 의해 선택된 품종에 나타나는 변이에 초점을 맞춘다. 무엇보다 2장에서 이야기할 자연상태에서의 변이 결국 유사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짐을 설득하기 위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는 재배와 사육에서의 변이를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다윈은 이렇게 종의 변이 대한 독자의 이해와 설득을 기반으로 생존 투쟁 관해 이야기하는 3장에서 원리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선 1장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선택 동식물의 종에 나타나는 변이의 선택 압력을 제공한다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려 한다.  



"나는 그것들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자손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P73

"모든 사람이 가장 우수한 동물들을 소유하고 그것을 번식시키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일종의 무의식적 선택(unconscious selection)이 보다 더 중요하다"- P80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은 그 변화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일어났지만, 그 효과는 매우 컸다는 점이다."- P81

"우리가 오늘날 이런 훌륭한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된 이유 중 일부는 과거에 그 원예가들이 어디서나 찾을 수 있었던 최상의 변종들을 자연스럽게 선택해 보존한 덕분이다."- P84

"이처럼 인위적 선택의 중요성을 언급한 지금까지의 견해에 따르면, 사육 및 재배 품종이 구조와 습성 측면에서 인간의 필요성이나 기호에 맞게 적응된 이유가 이내 명백해진다."- P85

"나는 생활 조건이 변이를 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생식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 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가변성이 모드 상황에서 내재적이고 불가피한 우연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P90

"나는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원인 중에서 단연코 가장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누적적 선택의 작용이라고 확신하다. 그 작용이 체계적이고 빠르게 적용되든, 아니면 무의식적이고 느리게 적용되든 상관없이 말이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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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모비딕


(102-135, 685-884p)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한달 동안 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새해가 시작된 일주일 동안 지인의 부모님 장례식을 다녀오게 되었다. 몸보다 마음이 울적한 주로 새해를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마감이 정해져 있는 일들이 갑자기 생겨나고, 벌인 일들은 많고 해서일러스트 모비딕 읽기를 느긋하고 꾸준히 해나가기 힘들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속도를 내어 11일만에 완독하게 되었다. 빨리 읽어서 좋은 것보다는 소설 속의 사건 전개에 따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관조하듯, 혹은 파헤치듯 텍스트를 따라가지 못한 같아 아쉬운 점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출판사 작가정신의 모비딕 읽은 다음, 이번에 문학동네의 일러스트 모비딕 처음 읽게 되었다. 오늘 드디어 일러스트 모비딕 읽기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결말을 쥐고 독서 일기를 마무리하는 만큼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책을 덮은 지금 모비딕을 쫓는 번의 대추격 과정에서는 내가 마치 바로 옆에서 모비딕의 분수공에서 나오는 물보라와 꼬리지느러미로 내리칠 넘실거리는 물보라를 같이 맞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102장에서 104장에 이르는 부분은 지금까지 고래의 외형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오늘 이야기는 고래의 내부로 들어가 뼈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뼈들이 남아 화석으로 전해지는 고래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겠다.



오직 급박한 위험의 한복판에서만, 녀석의 성난 꼬리가 일으키는 소용돌이 속에서만,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 위에서만 완전히 살이 붙은 고래, 살아 숨쉬는 고래의 진면목을 발견할 있다.” (693)


고래를 요약한다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다.” (695)



멜빌 자신도 고래에 대해 가능한한 많은 것을 알아내고 집대성하려는 야심찬 목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고래와 포경업의 역사와 관련된 방대한 사실들을 거대 서사와 함께 집대성하는 작업이다. 물론 멜빌이 고래의 지식에 대해 천착하고자 하지만 그에게 고래는 여전히 신비함이 많고 모르는 것이 많은 신의 피조물이다. 빼대 이야기를 끝낸 이슈미얼은 이어서 고고학적, 화석학적, 대홍수 이전의 원시적 관점에서 고래의 자취를 들여다보려 한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거대하고 자유로운 주제가 지닌 미덕, 모든 것을 확대하는 엄청난 미덕이다! 우리는 주제의 크기 만큼이나 확장된다. 웅장한 책을 쓰려면 반드시 웅장한 주제를 택해야 한다. 벼룩에 대한 책을 쓰려고 시도 해본 이들은 많겠으나, 주제로는 결코 불후의 명작을 없다.” (696)



모비딕 당시(1850) 허먼 멜빌은 상선, 포경선, 군함을 타고 세계를 여행해본 경험이 있던 31살의 청년 작가였다. 멜빌의 작품인 타이피 오무 나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인용문을 보면 야심 있는 청년 작가의 포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우리가 주제의 크기 만큼이나 확장되듯이 멜빌의 독서와 글쓰기도 이와 같았을 같다. 말하자면 고래와 포경업에 관한 서사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 이런 확장하는글쓰기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고래의 진화와 멸종에 관한 멜빌의 확증편향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개념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말한다. 소설 전반을 걸쳐 멜빌은 이슈미얼의 입을 통해 어떤 존재나 사물의 현상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마치 마법에 걸린 받아들이고 있다.  주제는 공교롭게도 고래의 진화와 멸종 대한 내용(105)이다. 흥미로운 장에서 멜빌은 고래의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가를 자문했고, 북미 대륙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아메리카들소와 같이 멸종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본인의 논리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멜빌은 우선 다음과 같이 반문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의 고래가 이전 모든 지질시대의 고래보다 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담의 시대 이후로는 크기가 줄어든 아닐까?” (700)


사실이 이러하므로 나는 모든 동물 가운데 유독 고래만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없다.” (701 )


리바이어던이 그처럼 광범위한 추격과 그처럼 무자비한 피해를 오랜 기간 동안 견뎌낼 있을 것인가, 결국 바다에서 절멸해버리지 않겠는가” (703)


하지만 고래 사냥은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에 리바이어던에게 그처럼 불명예스러운 종말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703)



인용해놓은 논리를 따라가보면 멜빌 자신은 고래가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멸종 위기에 처한 미국 들소와 달리 고래는 일단 포획의 수가 적다는 점을 가지 근거로 든다. 과거에는 소수의 파트너가 모여 다녔던 반면, 이제는 향유고래가 거대한 행렬을 이루어 다니면서도 서로 떨어져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 해안에서 고래를 보지 못하면 다른 외딴 해안에서 구경거리가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는 생각보다 허술해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결론(고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론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멜빌의 확증편향 해석이라고 것은 고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문제 제기 단계에 이미 정해 놓고, 다양한 사례와 근거를 결론에 적합하게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현상의 양면을 보려고 노력했던 멜빌을 생각해보면, 사례에서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진실을 놓고도 계속 회피하는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그도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이런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멜빌의 확증편향 사례는 소설에서 부분이 아마도 거의 유일하거나 부분이 가장 두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물 사이에 맺어진 운명 같은 연결고리


소설에서 에이해브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쉽게 간과되는 인물이 페달라(파르시) 듯하다. 페달라는 소설의 전개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슈미얼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페달라를 통해 해결할 있기 때문이다. 에이해브의 운명을 예언하는 인물로서 역할을 하고, 어쩌면 조용하고도 굳건히 악의 하수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해브는 전제군주처럼 보였고, 파르시는 그저 그의 노예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하나의 멍에에 메인 듯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재자가 하나는 깡마른 그림자이고 다른 하나는 견고한 늑재인 그들을 나란히 몰고 있는 듯했다. 파르시가 어떤 존재이건 간에, 옹골진 에이해브는 순전히 늑재와 용골로만 이루어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 (821)   



소설 중에서 고래해체 작업을 묘사한 장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바다 위에 죽은 고래를 떠있도록 묶어 두고, 이를 해체하던 장면에서 고래 위에 퀴퀘그가 올라가 작업을 하고, 모선 위에선 작업자가 바다에 빠져도 곧바로 건져 올릴 있도록 서로 밧줄을 묶고 작업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밧줄은 원숭이 밧줄이라고 불리는데 퀴퀘그에 묶인 밧줄의 다른 끝에는 바로 이슈미얼의 몸이 묶여있다. 이들 에이해브와 파르시(페달라) 관계도 보이지 않는 원숭이 밧줄로 연결된 공동운명체였다.



페달라가 에이해브에게 말해주는 예언에서 자신이 선장의 수로 안내인으로 선장보다 먼저 가게 되며, 에이해브가 죽게되면 자신이 선장 앞에 나타나 안내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이교도-기독교인(미국인) 조합으로서 퀴궤그와 이슈미얼이 원숭이 밧줄 연결되어 있었다면, 페달라와 에이해브 역시 공동운명으로 묶여있는 관계로 이해해볼 있다.



대립하는 인물과 인물들의 고뇌


소제목은 양심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의 스타벅과 피쿼드호를 위험에 몰아넣는 에이해브 선장 사이의 관계를 염두에 것이다. 스타벅은 에이해브 선장에게 끊임없이 고래에 대한 복수를 위해 추적하는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반복하며 설득한다. 복수에 대한 생각으로 눈이 에이해브 선장은 스타벅의 제안에는 안중이 없다. 일본해 근방에서 강력한 폭풍으로 돛이 찢겨나가는 소동을 맞은 선원들은 상황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이를 보고하러 내려간 스타벅은 선장실에서 지난 선장과 대립할 선장이 자신에게 겨누었던 머스킷 총을 발견한다. 선장의 머스킷 총을 들고 혼자 생각하던 스타벅은 잠이 들어 있는 선장 앞에서 갈등한다.


그래도 미친 영감이 배에 선원 모두를 자신과 함께 파멸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꼴을 가만히 참고 지켜봐야 하나?” (784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께서는 대체 어디 계신 건가요?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786)



대목은 운명의 선택 앞에 고민하는 햄릿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멜빌이 소설을 셰익스피어를 발견하고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문장에 셰익스피어가 썼던 표현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영국 문호가 사용했던 유명한 구절을 활용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대목에서 멜빌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주로 문장을 떠올렸을법하다.



다시 선장 앞에서 총을 들고 있는 스타벅에게 돌아가자. 페이지에 걸쳐서 고민하던 스타벅은 총을 놓고 선장실을 뒤로 하고 갑판으로 나온다. 아마도 장면은 총을 들었으면 격발해야 한다 소설의 불문율을 따르지 않고 독자의 뒷통수를 안되는 소설의 장면일 것이다. 그러면 소설이 사건 없이 끝나가는 길목에 발생한 극적인 사건이었텐데. 하지만 멜빌은 보다 극적인 결말을 예비해두기로 했던 모양이다.



한편 선장 에이해브는 뱃전 너머로 몸을 구부린 바다를 내려다보고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떠올린다. 에이해브는 옆에 있던 스타벅에게 자신이 40 18 처음 고래에 작살을 던지기 시작하던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에이해브는 58 정도였다. 육지에서 보낸 3년을 제외하고 지난 37년의 바다생활을 회상하는 에이해브의 목소리에는 피로감과 중압감이 가득히 담겨있다. 밥벌이로서 지탱해온 삶의 지난함, 지겨움도 느낄 있다. 역시 저와 함께 갑시다라며 에이해브를 설득하는 스타벅의 말을 듣고 선장은 잠시 고뇌한다.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팔을 들어올리는 것은 나인가, 신인가, 아니면 또다른 누구인가?” (833)



하지만 결국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처음 발견하게 되고, 최후의 추격을 시작한다. 에이해브의 곁에서 죽음의 수로 안내인 예언한 페달라의 모습이 스쳐간다.



페달라의 꺼진 눈에는 창백한 죽음의 빛이 깜빡거렸고, 입가에는 끔찍한 경련이 일어나 그를 괴롭혔다.” (837)



잠깐의 내적갈등을 겪었던 에이해브는 이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숙명론자가 된다.



이봐,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연극에서 이번 전체는 바꿀 없도록 이미 내용이 정해져 있어. (…) 운명의 여신을 모시는 부관이야.” (860)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추격하던 셋째 , 추격 보트에 오르기 직전 스타벅과 굳은 악수를 나누기도 한다. 소설의 후반에서 모비딕 추격을 전후하여 인물의 대립 갈등과 고뇌가 어지럽게 얽히고 있다.



모비딕 덮으며 떠올랐던 생각은 이야기가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였다. 사람의 지도자가 이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운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수도 있겠다. 혹은 공동체에 스타벅과 같이 집단의 운명을 예견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면 보다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야기는 각자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해석될 있는 여지가 있는 법이니까. 소설의 후반으로 가면서도 특별한 사건 없이 고래뼈나 화석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지고, 고래의 크기 변화나 멸종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면서 결말에 대해 더욱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밥먹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원고를 써나갔을 멜빌을 상상해본다. 모비딕을 추적해서 작살을 꽂아버리고 말겠다는 에이해브와처럼 멜빌에게서도 작가의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느낄 있다. 허먼 멜빌은 모비딕호의 에이해브이기도 했다. 에이해브는 마치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던 광기어린 사람으로만 비춰질 모르지만, 에이해브 선장 자신의 인간적인 고뇌와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살펴볼 있었다. 이는 스토리만 뽑아놓은 버전에서 없는 소설읽기의 묘미이다. 이번에 손에 묵직하게 존재감을 발휘했던 일러스트 모비딕 완역본에 록웰 켄트의 유명한 그림이 곁들어져 있다. 켄트가 그렸던 그림 중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그림들은 대부분 암울하면서도 광기어린 표정과 눈빛을 담고 있는 에이해브의 모습들이었다. 그가 지녔을 법한 눈빛의 절반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의 눈빛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여인을 생각하며 여인의 집에서 빛나던 초록색 불빛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던 장면에서 상상해볼 있는 눈빛과 닮지 않았을까. 변화와 파국을 암시하는 듯한 주인공의 눈빛에 아마도 많은 미국인들이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로 동안 예상했던 문학동네 일러스트 모비딕읽기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빨리 읽은 만큼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놓친 부분도 많을 것이다. 이부분은 다른 출판사의 모비딕읽기를 통해 계속 진행하며 생각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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