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Generation>

하비 피카/ 풀 볼 (글)

에드 피스커 (그림)

김경주 옮김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모음]

 

미국의 현대 역사에 있어서 60년대는 그 언제보다도 역동적이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사회, 문화 및 예술 등의 사회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던 시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히피문화, 여권운동(성차별 반대), 인종차별반대 운동, 케네디 대통령 암살, 루터 킹 목사 암살, 미국의 베트남 전 참전 및 반전 운동 확산, 68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은 60년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사의 한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한 문화적 요소로서 '비트 세대'를 반드시 고려해야할 것 같다. '비트 세대'는 대체로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를 관통하는 큰 문화적 흐름의 하나였다. 기존의 체제에 대한 저항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미국의 작가 들에게 좀더 색다르고 도전적인 시와 산문을 쓰도록 영향을 주었으며,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의 문학작품 및 생활에 큰 영향을 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 비트 세대들은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징집 반대, 반전주의, 마약복용 허용 등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생활방식으로 많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미국 현대사를 이루는 중요한 19세기 중반의 비트 세대에 한정해서 조명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트 세대'들의 대표 인물인 잭 케루악(Jack Kerouac),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urg),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를 중심으로 이들을 둘러싼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비트 세대'에 대한 정보를 문학이나 역사를 통해 접하게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진'이라는 분야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57년 스위스 태생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하며 찍은 사진들로 만든  <The Americans>라는 사진집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 사진집은 사진사적으로 기존의 근대 사진을 뛰어 넘어 현대 사진으로 넘어가는데 큰 영향을 준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대단한 테크닉이나 위대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의 모호한 연작이었던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의 부유한 시절을 보내던 미국에서 어떤 점에서 보면 기존의 다큐멘터리적인 사진들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연작의 형태로 미국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호불호가 매우 강했을 것이다. 후에 잭 케루악이 이 사진집에 주목하고, 널리 이야기하면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와 잭 케루악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했지만, 이 <비트 제너레이션>에는 그 친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한 문장 나온다.

"케루악과 긴즈버그는 함께 썼던 시 <풀 마이 데이지>를 로버트 프랭크, 알프레드 레슬리와 함께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케루악의 나레이션은 최고였고, 독립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었다."

(44면)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독립영화 제작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바로 케루악과 긴즈버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 줄 밖에 단서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정보였다. 특히 영화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들의 작업을 찾아보면 케루악과 긴즈버그의 시와 이들의 영화화 작업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57년 9월 미국 일간지 <New York Times>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On the Road>에 대한 서평이 실린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1957년에 잭 케루악과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의 발간은 이미 비트 세대의 분출이 여러 분야에서 예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비트 세대'의 중심 인물들의 생활을 보면(마약과 동성애, 심지어 강도와 우발적 살인) 일반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거부감을 야기할만하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여자 친구의 머리에 유리잔을 올려놓고 윌리엄 텔 놀이를 하다가 여자 친구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인 윌리엄 버로스의 일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트 세대들에 대한 보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이들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면모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미국 역사의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화일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 버로스의 유명한 소설 <벌거벗은 점심 Naked Lunch>가 원래는 <벌거벗은 욕망 Naked Lust>였던 것을 앨런 긴즈버그가 잘못 읽었고 이 제목에 대해 잭 케루악이 비난한 사실로 인해 정해진 제목이라는 일화 등은 <비트 제너레이션>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픽 노블을 읽어나가니 영화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앨런 긴즈버그 및 루시엔 카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하는 영화였다. '비트 세대'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가지는 데에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실제 있었던 사실과 다른 점들은 있을 수 있으니 당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한다.  

 

 

(불만스러운 점들)

책의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 제너레이션>에 대해 독자로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텍스트가 너무 작아 읽기에 눈이 아팠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모두 시력이 좋은 사람들만을 가정한 것인지... 나는 책을 읽으며 상당히 불편했다. 일반 만화보다 글이 많은 그래픽 노블의 특성과 독자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렇게 책을 만들었을까. 나아가 책의 막바지에 이른 184페이지 부터는 잠깐이지만 글자 크기가 더욱 작아져있다. 이렇게 편집할 요량이면 왜 판형을 더욱 키워서 글자를 크게하고 가독성을 높이는데 좀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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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씨앗을 뿌린 서방 국가, 그리고 모비 딕

 


어제 날짜(831)를 기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20년 주둔을 종료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군 주둔의 역사는 2001911일 직후 시작되어 이제 만 20년을 맞게 된 셈이다. 신문 기사를 살펴보니 메켄지 중부사령관은 ‘20년 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 종전을 의미 한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공모자들을 끝내는 임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간 미군은 12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과 동맹국, 미국에 조력한 아프간 인들을 대피시켰다.


 

또 다른 매체에서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43년간이나 계속되던 전쟁이 301159(현지시각) 미군 철군 완료로 종료가 선언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말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개입으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충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이 주둔했던 지난 20년 만을 언급했지만, 소련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며칠 전 기사를 훑어보다가 어느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모든 건 다 영국 때문이다’, 라고 비판하는 대목(혹은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출처를 다시 찾을 수가 없는데, 당시에 이 기사를 보면서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충돌해온 것은 미국인데 왜 영국 때문이라고 비난을 할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관련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프가니스탄과 서방 세계의 충돌에 더 오랜 역사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그 영국인이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펼쳐본 모비 딕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언급된 대목이 나와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소설의 제1장에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 부분을 이해할만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소설의 1장에서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화자 자신이 다시 고래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상선 선원으로서 여러 번 바다 냄새를 맡아본 내가 이제 와서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내가 이 고래잡이 항해에 나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오래전에 작성된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좀 더 긴 연극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짧은 막간극이자 일인극이었다.

(36, 모비 딕,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신의 섭리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이 고래잡이배를 타는 것이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긴 연극 혹은 역사적인 사건 사이에 낀 막간극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시를 든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모비 딕 1장에서 인용)

 


대통령 선거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라는 긴 연극 사이에, 일인극에 불과한 자신의 고래잡이 항해가 위치한 신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비 딕1850년에 주로 쓰였으므로,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이 시기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좀 더 조사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건을 계기로 19세기 중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조사한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검색하여 대강을 정리한 것으로, 큰 흐름에서 역사적인 사건들만 참고하면 될 듯하다. 이를 제외하고 자세한 사항이나 구체적인 연도 등의 정보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북으로 러시아, 동쪽과 남쪽으로 인도·파키스탄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 과거에 페르시아로 불린 현재의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울러 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혹은 심장부)에 위치한 셈이어서 문명의 교차로라고 할 만 했다. 오랜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그리고 북방계 민족 및 제국이 충돌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주의 시대가 한창일 때, 여러 열강은 서아시아로 진출했으며 바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열강들의 충돌과 갈등이 표출되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러시아는 남하정책으로 이미 현재의 이란 지역인 페르시아에 진출해있었다. 당시에 영국은 이미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인도를 식민지 삼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놓고 대립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말하자면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까지는 아니더라도 막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세계의 판을 쥐락펴락하는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근거로 하여 북상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와 충돌하는 형국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특히 영국은 이슬람 제국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에 저항하는 정부를 축출하고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혹은 통상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이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했던 사건은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슬람 제국과 3차에 걸쳐 벌인 아프간 전쟁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은 1838-1842년 사이에, 2차 아프간 전쟁은 1878-188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바로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당시의 큰 전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차 아프간 전쟁은 이 소설이 출간(1851)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차 아프간 전쟁에서 인도 용병을 앞세운 영국 군대는 카불을 점령하여 다른 왕을 옹립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허수아비 지도자를 앉힌 것인데, 이는 일본군부가 중일전쟁을 벌이고 만주국과 같은 괴뢰 정부를 세운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저항이 너무나 격렬해서 영국군이 카불에서 철수했다는 점이다. 최근 카불에 아직 남아서 숨어 지내는 어느 서양인이 국내 취재진과 영상 인터뷰를 진행한 장면을 보았는데,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이 너무나 혹독해서,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과 더불어 이번 겨울은 이 곳에 남게 된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군/인도용병이 거의 전멸했던 제1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의 전투 그림

 


18421월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의 막바지에 영국군은 아프간에서 철수 중이었다. 한 기록에 의하면 대략 2피트(60 cm)의 눈 쌓인 계곡에서 영국군 700, 인도 용병 3800, 그리고 이들의 가족 등을 포함한 12천 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공격으로 전멸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아마도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고, 1841-1842년 당시 한창 젊은 22-23세로 포경선을 타던 멜빌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모비 딕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8년의 시간은 더 있었으니 자세한 내막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멜빌이 소설에서 썼던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영국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저항군에게 거의 전멸 당했던 어느 계곡의 전투를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주목해보는 부분은 멜빌이 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Bloody Battle In Affghanistan)라는 표현은 백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꽤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많은 백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야만인과 같은 비하적인 표현을 멜빌은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고 철수를 하게 된 영국이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2차 아프간 전쟁은 26년 후인 1878년에 발발하는데, 이번에도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카불을 침공한다. 이 때 영국군은 일본군이 한일합방을 강요했듯이 영국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조약에 강제로 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때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일부 병합되어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고 한다. 큰 희생을 겪었지만 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겨본 베트남인들이 자부심과 사기를 잃지 않은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인들도 그대로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민중은 또 다시 영국에 대항했고, 이들은 제3차 아프간 전쟁을 통해 19198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만다.


 

다시 정리를 하면 어느 뉴스 영상에서 한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모두 영국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그 사람이 잘못 언급했거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3차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유린한 대영제국의 역사적인 침공사건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멜빌의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그가 이미 목격한 제국주의 열강의 행적과 그 영향은 이제 20세기와 21세기에 미국이 대신하여 그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간다고 이해된다. 미국은 이 곳에 탈레반의 씨앗을 심은 것에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이 현상의 근원에는 허먼 멜빌도 목도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이미 영국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행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계기로 그동안 모비 딕 1장에서 멜빌이 썼던 문구의 역사적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카발라를 언급하는 멜빌은 분명히 유대 신비주의적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영원 회귀의 개념을 담고 있는 이 신비주의는 이 회귀의 구조가 모비 딕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떠오른 관을 붙들고 홀로 살아남았던 이슈메일은 언젠가 또 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역시도 카발라적이다. 그런 까닭에 모비 딕 1장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라는 표현을 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고 나니 더욱 멜빌의 통찰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인 우리는 정말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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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9-02 0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미국의 서진으로 인해 멸망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배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도 멜빌은 폭력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파국을 경고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초란공 2021-09-02 22:13   좋아요 3 | URL
아 그렇네요. 피쿼드호를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더하여 저는 ‘모비 딕‘을 백인 문명의 질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에이해브처럼 덤비는 이들은 ‘모두 죽는다‘는 위협적인 백인 문명으로요.
나중에 이 부분가지고 쓸 기회가 되면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

mini74 2021-09-02 17: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읽었던 모비딕 앞부분으로 이렇게 역사까지.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초란공님. *^^*

초란공 2021-09-02 22:16   좋아요 4 | URL
읽어주신 소감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사가 미흡하여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의 지적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아무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네요~

초딩 2021-09-03 0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피쿼드호도 이민자들이 처음 멸한 인디언 부족 이름이죠? 정말 모비딕의 그 방대함과 그 속의 빗댐은 대단합니다!

초란공 2021-09-03 12:17   좋아요 3 | URL
정말 <모비 딕>은 ‘모비 딕‘ 같달까요? ㅋㅋ

scott 2021-09-0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주말 독서 모비딕 꺼내놨어여 ㅎ 주말 화창한 날씨처럼 멋지게 ~

초란공 2021-09-04 11:55   좋아요 2 | URL
‘저도 <모비 딕> 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ㅋㅋㅋ 스콧님도 화찬한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잊지 않기 위하여'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

광활한 대기가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파도가 바위에서 솟구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날아가라, 나의 현혹된 페이지들이여!

부수어라, 파도여! 흥겨운 물살로 부수어라

돛배들이 모이를 쪼고 있던 저 평온한 지붕을!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



정신 없이 새로운 달이 시작했다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8월의 한가운데에 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광복절이 되니 언젠가 읽어보려고 생각만했던 책들이 생각나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정리해보려고 한다. 


몇 달 전에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았던 것인데, 어린 시절에 '비행기'만 나오면 뭐든지 좋아했던 터라 미야자키의 <붉은 돼지 Porco Rosso>를 좋아했었다. <바람이 분다> 역시 비행기가 나오는 영화였지만 전작 <붉은 돼지 Porco Rosso>만큼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던 것은 이 애니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공군의 주력 전투기 '제로센'의 제작을 담당했던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처럼 전쟁의 실상과는 거리를 둔 채 전쟁을 '낭만화'하는 분위기가 짙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헐리우드 영화처럼 '전쟁'과 '사랑'을 결합하며 결과적으로는 전쟁 자체로부터 거리를 두어 애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쟁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결코 마음편히 보고 끝나게 되지 않는다. 내가 비행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학창 시절에 내가 비행기를 좋아했던 것은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헬리콥터 및 비행체 설계도를 비롯해서, 라이트 형제와 같이 하늘로 오르려고 했던 이카루스의 자손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바람이 분다>는 주인공이 한 소녀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객차 앞으로 나와 풍경을 보던 주인공은 앞 객차의 뒤로 나와 풍경을 바라보던 소녀의 모자가 날아가자 잡아주는 것으로 두 사람이 만난다. 주인공이 모자를 건네주자, 소녀가 말하는 대목이 바로 위에 인용한 폴 발레리의 싯구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러자 주인공은 폴 발레리의 싯구라는 것을 깨닫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알아본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낭만적이다. 


전투기 제작자, 엔지니어 였던 호리코시 지로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2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원자 폭탄 제조 및 개발을 지위한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들이 한 작업의 의미를 깨닫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긴 했다. 물론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 이 일의 의미를 파악하고 행동에 옮겼으면 더 나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폴 발레리의 문장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일본 비행기 엔지니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출간된 <폴 발레리의 문장들>을 보고 다시 이 애니메이션과 발레리가 50여 년 간 남겼던 아포리즘을 엮은 책이 나온 것이다. 발레리의 작품이 특히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특히 이런 작품들을 대중적으로 잘 포장하여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언젠가 읽을 책들을 정리하려다가 갑작스럽게 '광복절'을 맞아 특별히 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서 조만간 읽어보려고 생각했던 책을 정리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주제의 연장선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책은 <들어라 와다쓰키의 소리를>이란 책이다. 이 책은 일본전몰학생기념회에서 엮은 책으로, 인간어뢰, 카미카제(자살 특공대)의 일원이었던 일본 청년들(여기에는 분명히 재일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쓴 일기 겸 소감을 쓴 기록을 모은 것이다. 소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유서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 책은 22세의 육군특별공격대원으로 오키나와에서 미국 기동부대로 돌진해서 전사한 청년이 '출격 전야'에 남긴 소감문으로 시작한다. 현실에 대한 애착과 고뇌 속에서도 조국 일본을 위해 '특별공격대원'으로 뽑힌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워하는 대목, 죽음에 대한 예감을 비장하게 기록해놓았다. 전투기를 몰고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돌아올 기름과 낙하산이 없었던 이들은 바다 위로 떨어져 끝을 맺느니 진주만에 정박해있던 전함과 공항 시설에 마지막까지 피해를 입히고자 했다. 이 책은 '제로센'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일본을 구하고자 했던 호리코시 지로와 이 비행기에 올라 삶을 함께 마감하고자 했을 일본 청년들의 심리를 함께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사료가 될 것이다. 



 



또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읽어보려고 사두었지만 계속 읽지 못하고 있는 책 한 권을 더 가져와본다. 소설가 정혜주가 쓴 <날개옷을 찾아서>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삶을 바탕으로 쓴 '평전 소설'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공공의 적'이 된 검찰 만큼이나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버렸다. 이어서 계속 터져나오는 '성추행/성폭행' 사건으로 이 집단은 정신을 못차리는 모양새다. 문제는 의식이 있고 뜻있는 군인들이 많이 있어도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일부 고위직 군인들의 도덕불감증과 관행이 이러한 사건을 계속 양산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추락한 위상을 떠올려보면 권기옥 비행사의 삶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권기옥 여사의 일대기에 요약된 활동만 봐도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하고 과감한 일을 해낼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송죽결사대, 3.1운동, 평양도경 폭파, 임시정부 독립군항공대 조국진공작전 등등...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의 대화는 소설형식을 빌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기본적인 뼈대는 권기옥 여사의 행적을 기반으로 했다. 책에 있는 띠지에는 조종사라는 직무에 어울리지 않은 '안경'을 쓰고, 다부지게 입을 다물고있는 권기옥 여사의 사진이 담겨 있다. 


<날개옷을 찾아서>의 뒷부분에 실린 사진 자료 중에는 권기옥 여사가 1924년 7월 첫 단독비행에 성공한 후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사진과 편지가 실려 있다. 권기옥 여사의 단호하면서도 짧은 편지는 다음과 같다. 


"20여 년 구속받던 아픈 마음과 

쓰린 가슴 상제주께 호소하고

공중여왕 면류관을 빼앗으려 가나이다.


길이 사랑하여 주심 바라

삼가 이 꼴을 눈앞에 올리나이다.


사랑하시는 기옥 올림

4257년 7월 5일 운남에서"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독립운동가 중에서 독립 운동에 참여하고, 머나먼 중국땅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살림을 도맡으셨던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과 일대기를 담아온다. 정정화 여사는 몇 년 전에 우연히 보게 된 한 연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극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해보니 '달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일인 연극을 했던 분은(검색해보니) 원영애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나레이션과 정정화 여사의 목소리를 번갈아가며 정말로 대단한 연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감동적이었던 연극이었다. 


정정화 여사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망명했고, 망명 27년 간 임시정부의 살림을 맡아 뒷바라지 하신 분이다. 국내에 자금을 전달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발각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던 분이었다. 연극을 통해서나마 정정화 여사의 삶을 접하고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연극을 보고 나는 바로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를 구매하여 읽었지만 다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읽으면서 내내 원영애 배우의 연기가 계속 떠올랐다. 


정정화 여사의 삶과 행적을 잊지 않고자 여기에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로 나온 <정정화: 정화>을 추가해본다. 참고로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가 처음 나왔을 때의 제목은 <녹두꽃>이었다. 




 




군복무 시절에 읽었던 책으로 아직도 기억나는 책은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가 있다.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에 징집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쉬저우에서 충칭 임시정부까지 6천리 이상의 거리를 도보로 찾아갔던 분이다. 일본군과 만날 위험 속에 낮에 숨어 있다가 밤에 이동하기도 하고, 일념 하나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모습, 그리고 이후 전개되는 안타까운 한국사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은 근현대사를 처음 알기 시작했던 나의 학창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언젠간 나도 장준하 선생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오늘은 광복절을 기념해서 그동안 읽어두려고 생각했던 책들을 몇 권 모아보았다. 나는 아직 한국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다. 나에게 항상 아쉬움과 결핍감으로 느껴지는 이 분야는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에게 주는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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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17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제 하고 싶네요 :-)

아 시를 좀 여유 있게 읽고 싶은데 ㅜㅜ 전 안되요
근데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는 좋네요.
:-)

초란공 2021-08-17 21:55   좋아요 0 | URL
저는 시 읽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 시 관련 리뷰만 기웃거리게 되네요~^^
 


 '()과 ()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부유했던 한 인간의 고백록' 






D.H. 로렌스의 에세이 귀향을 읽는다. 제프 다이어의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를 읽고 로렌스라는 인물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다이어의 설명에 따르면 로렌스 자신도 뭔가를 결정하는데 애를 먹곤 하고, 오랫동안 폐렴과 같은 증상으로 상당히 성마른 성격을 가진 예민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로렌스의 소설만으로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여전히 제한적이고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고 느꼈다.

 


귀향은 영문학 전공인 번역가가 그의 에세이 중에서 자전적 요소가 강한 글을 뽑아서 번역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궁금하지만 부담스럽게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다, 로렌스가 어께에 힘 빼고 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말하자면 로렌스가 '문학적 기교나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히는' 수필집인 셈이기에 지금 로렌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관심사와 잘 맞는 다고 생각한다.

 


다이어의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는 저자가 주로 로렌스의 '서간집'을 기반으로 로렌스의 면모를 들여다본다. 다이어가 언급한 사항과 귀향의 연보에서 내가 다르다고 느낀 사항은 '서간집'을 출간한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귀향의 연보에는 로렌스의 '서간집' 출간이 1962년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에서 다이어는 로렌스가 자비로 7권짜리 책을 출간한 것으로 언급해 놓았다. 이 부분은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내가 처음 접한 로렌스의 소설은 무지개. 앞부분 일부만 읽었을 뿐이지만, 귀향에서 로렌스는 1915년에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무지개가 발매 금지되는 사건을 겪었다. 이 때의 충격과 환멸이 컸던 모양인지 자신의 에세이에 마치 제 3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러고는 언론과 출판, 그리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저 부르주아 세계로부터 외떨어졌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 졌다."(41)라고 건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 때 장학금을 받고 영국에서 가장 좋은 통학제 학교(노팅엄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로렌스는 이곳에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부르주아 친구들을 만났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영국의 모습을 처음 접하고 그 실체를 체험했던 것인데,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지개의 발매 금지 사건) 이후로 그는 영국의 부르주아 독자를 상대로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걷어치우고 외따로 지냈다."(41)


 

로렌스는 스스로를 마치 제3자에 대해 진술하듯, 자신을 ''라고 지칭하면서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애초에 계습사회에 놓여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 같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바틀비의 선언처럼 말이다. 로렌스는 이 지독한 계급사회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아예 걷어치우고, '나는 내 방식대로 살기를 택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이 담벼락에서 바둥거리지 않겠다'고 외치는 듯했다.


 

 

"나는 가난한 집 자식이다. 난 분명 지금처럼 얼마 되지 않는 수입과 매우 미심쩍은 명성의 작가가 되기 전에 환경의 무서운 손아귀에 붙잡혀 발버둥 치며 우연의 괴롭힘을 겪는 것이 마땅했으리라. 그러나 난 그러지 않았다. 일은 모두 그냥 저절로 일어나서, 난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낼 일도 없었다.

   그건 유감스러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난 틀림없는 전도가 불확실한 노동계급의 가난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난 어떻게 되었나?

(...)

나는 노동계급으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랐다." (43-44)

 

 


솔직하지만 좌절감도 묻어나는 자기 인식의 고백이다. 로렌스가 문필 수입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교사 수입보다 적을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한 번도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한 번도 굶은 적도 없고 말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아주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48) 결국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존재는 자기 자신뿐일 테다.


 

하지만 그는 전업 작가였고, 내면의 어디선가는 '상승'의 욕구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과 잘 지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한다. 세속적 의미에서, 인간적 의미에서 그는 자신이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무엇이 그를 끊임없이 고립시키고 가두었을까. 내게는 이 또한 일종의 편집증을 동반하는 우울증세로 보였다. 그는 세상과의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듯싶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절감이 점점 깊어지는 눈빛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현실의 벽과 상승의 욕구 혹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내면에서 충돌한 것이, 어쩌면 어느 문제 하나를 결정하고 끝맺으려고 해도 언제나 내게는 '분열증적'이고 성마른 성격으로 드러나게 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로렌스가 처음 '문예지'에 실린 자신의 시와 단편소설을 사람들이 읽어보고 이야기해줄 때 로렌스는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조차 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감정을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마음인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단서는 로렌스의 다음 고백에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계급 출신으로서 나는 중산계급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나의 살아 있는 생의 맥박을 단절시켜 버리는 걸 몸으로 느낀다."(49)


 

로렌스는 45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그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부유했다. 아이 셋과 대학교수인 남편을 포기한 뒤 로렌스를 선택했던 여인 프리다와 결혼하고서 말이다. 17살 때 심하게 앓았던 '폐렴' 증상으로 그는 일정 부분의 폐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이따금씩 폐렴 증세로 고통을 받았던 로렌스. 이 책 귀향에 소개된 유년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사진을 보면서 몸은 점점 말라가고 눈빛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연령대의 사진에 나온 남자가 바로 로렌스임을 알고, 그가 삶의 이른 시기에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사진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로렌스의 작품을 읽는다면 아들과 연인 Sons and Lovers을 먼저 읽기 시작할 것 같다. 자신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 책의 첫 부분이 모두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45년의 삶을 살았던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사망하기 4년 전인 41살 때(1926)부터다. 이 해에 로렌스는 여동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 프리다와 심하게 다투었고, 화가인 도러시 브렛과 정사를 가졌다고 한다. 아마 로렌스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로렌스를 흠모하던 귀족 출신의 화가 브렛과의 만남에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것 같다.


 

로렌스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관심이 간다. 아들과 연인을 읽은 다음에 아마도 로렌스의 그림이 들어간 화집 Painting of D. H. Lawrence를 구경해보고 싶다. 말년의 그가 바라본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 있을까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로렌스가의 책이 꾸준히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여전히 속도는 느린 것 같다. Painting of D. H. Lawrence책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


 

지금 로렌스의 연보를 보니 1919년에 '독감'을 심하게 앓았다고 나와 있다. 아마도 이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에 대유행을 시작했던 스페인 독감이 아니었나 싶다. 이 독감을 앓던 시기에 로렌스는 영국에 있을 때로 보인다. 병약했던 그는 이 당시의 독감으로 폐에 더욱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가을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서 아내 프리다와 재회하여 카프리 섬에 정착했다.

 


'스페인 독감'하면 언젠가 알게 되었던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의 삶을 떠올린다. 에곤 실레와 그의 아내가 바로 스페인 독감으로 191810월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실레의 아내가 3일 먼저 사망했는데, 아내는 임신 6개월이었다고 한다. 에곤 실레, 스페인 독감, 실레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그림들, 로렌스의 사람과 외설 시비에 휘말렸던 그의 작품 등등을 떠올리면 귀향의 역자가 사용했던 표현 '()과 생()의 공존'이라는 표현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여기에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녀석이 이 둘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0대 후반에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직후 즈음 찍은 청년 로렌스의 모습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에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콧수염의 사내다. 30세 즈음,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구레나룻을 기른 로렌스의 모습은 보다 조심스럽고 예민해 보이며, 20대 당시 보다 눈빛이 깊어지고 신중해져 보인다. 잔혹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느꼈던 것일까. 그의 모습은 언제든 폭발할 듯 예민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29년의 모습은 훨씬 수척해 보인다.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졌지만, 다소 초점을 잃은 모습으로 보인다. 줄곧 폐렴과 폐결핵 등으로 '()'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점차 죽음을 직감했으리라.


 

그는 짧은 생에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에 연결되고 안착한 것이 아니라, 단절되고 부유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에도 중산계급에도 자신이 잘 맞지 않으며 이로부터 배제 혹은 단절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감각이 그에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전업 작가로서, 또 다른 의미에서 부유하는 삶의 한 가운데 있었다. 로렌스에게는 이러한 단절감과 부유하는 삶이 태생적인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지녔던 ''(그리고 '')에의 열정만큼이나 컸던 단절감과 부유하던 삶을 다시 떠올려보니, 그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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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13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부터 읽어봐야겠네요. 로렌스의 문장들도, 그의 삶도 인상적이예요!!

초란공 2021-08-14 00:22   좋아요 1 | URL
네^^ <미•짜•괜>은 음...뭐랄까요... 산만한듯 수다스러우면서도 은근히 웃기는 책이랄까요 ㅋㅋ 표지나 만듦새는 개인적으로 좀 아쉽더라구요..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


























































"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 절대 출판하지 못할지라도, 절대 완성하지 못할지라도, 몇 년 후에 손을 떼고, 몇 년간의 노력이 끝을 맺지 못하고, 처음 가졌던 야망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기록이 된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약간이라도 진척시켜야 한다. 타오스에서 타오르미나까지, 우리가 찾아갔던 곳에서부터 절대 발을 들이지 못할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진척시키도록 애쓰는 것이다." (308)




장의 장의 구분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글이 수다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제프 다이어만의 솔직함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두서없이 생각이 가는대로 글을 써가는 특징은 이번에 읽은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로런스의 모습은 다이어가 로런스의 서한집(로런스는 무려 7권짜리 서한집을 자비로 출판했다)중 여러 곳에서 인용한 부분에 근거하는데, 로런스가 얼마나 성마르고 예민한 면모가 있는 인물인지 잘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로런스가 제프 다이어와 닮은 구석도 많은 듯하다. 다이어도 온갖 질병을 달고 다니고, 어께가 좁다는 콤플렉스를 비롯해서 끊임없이 셀프 디스를 하며 자책하기도 하고 독자를 웃기기도 한다. 물론 다이어가 쓴 말의 절반은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회만 되면 로런스 연구서 쓰기를 미룰 핑계를 찾아내는 '재능'을 가진 작가의 면모가 유감없이 들어있다. 다이어는 태어나기 전부터 뭔가 모범적이고 반듯한 것에 두드러기가 나는 인물 같다. 알레르기 치료약에도 알레르기를 가진 인물이니 말이다. 뭔가 하고 싶어서 실행으로 옮기고 나면 시간 낭비했다고 자책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만, 또 하려고 했던 일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고민하는 사람이 제프 다이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예상 외로 '교훈적'이다. 왠지 '제프 다이어스럽지 않은' 마무리이지만, 이 또한 그가 D.H. 로런스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그의 서간집을 읽고 좋아하면서도 그에 대해 연구서를 쓰지 않은 여정의 기록이기에 마음에 든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우울증세로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과 열정을 잃었을 때, 제프 다이어가 다시 무언가에 대한 열의와 열정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만의 로런스 연구서 쓰기 프로젝트'같은 것들이 있어서일 거다. 바로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것, 현대인의 우울증을 완화하고 삶을 새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런 대상을 각자 하나씩 갖는 일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겐 하루에 단 30분 정도만 주어지는 독서 시간일 수도 있다. 나만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책에 대한 생각]

*이 책은 장의 구분 없이 저자의 생각들을 이어붙이듯 쓴 글이기에 독자에 따라 읽다가 지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이어의 솔직한 수다와 은근한 유머가 이런 점을 상쇄해주는 면이 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서 로런스에 대한 연구서를 완성하지 않는다. 그 '변명'을 책의 마지막에 다소 '교훈적'으로 써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이유가 나름 인상적이다.  


**전자책이 아니라면 물성으로서의 책 역시 독자에게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일반적인 소프트커버에 비해 얇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거슬리는 더스트 커버가 같이 나오지 않은 점은 좋다. 


***미주에 대한 방식이 독자에게는 불편하다. 본문의 해당 문장 일부를 미주란에 가져와 참고문헌을 기록해두었는데, 원서에 번호가 없었더라도, 번역서에는 본문에 일련번호를 달아 혹시나 찾아보고 싶은 독자가 활용하기 쉽게 배려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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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주에 우연히(실은 주말 부터)
로렌스 비평책 집어들었는데 마침 타임지(주말판)에 로렌스 읽기 열풍에 대한 기사가 실려서 심도 있게 읽을까 했는데 ㅎㅎㅎ

그런데 한국어판 표지가
자기계발서 처럼 보이네요 ^ㅅ^

초란공 2021-08-09 17:1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표지가 별로 마음에 안듭니다 ㅋㅋ 타임지도 읽으시고 역시 스콧님! 로렌스 읽기 열풍 소개좀 부탁드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