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Generation>

하비 피카/ 풀 볼 (글)

에드 피스커 (그림)

김경주 옮김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모음]

 

미국의 현대 역사에 있어서 60년대는 그 언제보다도 역동적이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사회, 문화 및 예술 등의 사회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던 시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히피문화, 여권운동(성차별 반대), 인종차별반대 운동, 케네디 대통령 암살, 루터 킹 목사 암살, 미국의 베트남 전 참전 및 반전 운동 확산, 68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은 60년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사의 한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한 문화적 요소로서 '비트 세대'를 반드시 고려해야할 것 같다. '비트 세대'는 대체로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를 관통하는 큰 문화적 흐름의 하나였다. 기존의 체제에 대한 저항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미국의 작가 들에게 좀더 색다르고 도전적인 시와 산문을 쓰도록 영향을 주었으며,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의 문학작품 및 생활에 큰 영향을 주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 비트 세대들은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징집 반대, 반전주의, 마약복용 허용 등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생활방식으로 많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미국 현대사를 이루는 중요한 19세기 중반의 비트 세대에 한정해서 조명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트 세대'들의 대표 인물인 잭 케루악(Jack Kerouac),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urg),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를 중심으로 이들을 둘러싼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비트 세대'에 대한 정보를 문학이나 역사를 통해 접하게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진'이라는 분야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57년 스위스 태생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하며 찍은 사진들로 만든  <The Americans>라는 사진집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 사진집은 사진사적으로 기존의 근대 사진을 뛰어 넘어 현대 사진으로 넘어가는데 큰 영향을 준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대단한 테크닉이나 위대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의 모호한 연작이었던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의 부유한 시절을 보내던 미국에서 어떤 점에서 보면 기존의 다큐멘터리적인 사진들이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연작의 형태로 미국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호불호가 매우 강했을 것이다. 후에 잭 케루악이 이 사진집에 주목하고, 널리 이야기하면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와 잭 케루악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했지만, 이 <비트 제너레이션>에는 그 친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한 문장 나온다.

"케루악과 긴즈버그는 함께 썼던 시 <풀 마이 데이지>를 로버트 프랭크, 알프레드 레슬리와 함께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케루악의 나레이션은 최고였고, 독립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었다."

(44면)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독립영화 제작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바로 케루악과 긴즈버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 줄 밖에 단서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정보였다. 특히 영화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들의 작업을 찾아보면 케루악과 긴즈버그의 시와 이들의 영화화 작업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57년 9월 미국 일간지 <New York Times>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On the Road>에 대한 서평이 실린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1957년에 잭 케루악과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의 발간은 이미 비트 세대의 분출이 여러 분야에서 예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비트 세대'의 중심 인물들의 생활을 보면(마약과 동성애, 심지어 강도와 우발적 살인) 일반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거부감을 야기할만하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여자 친구의 머리에 유리잔을 올려놓고 윌리엄 텔 놀이를 하다가 여자 친구의 머리에 총을 쏘아 죽인 윌리엄 버로스의 일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트 세대들에 대한 보다 생생한 묘사를 통해 이들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면모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미국 역사의 한 단면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화일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 버로스의 유명한 소설 <벌거벗은 점심 Naked Lunch>가 원래는 <벌거벗은 욕망 Naked Lust>였던 것을 앨런 긴즈버그가 잘못 읽었고 이 제목에 대해 잭 케루악이 비난한 사실로 인해 정해진 제목이라는 일화 등은 <비트 제너레이션>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픽 노블을 읽어나가니 영화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앨런 긴즈버그 및 루시엔 카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하는 영화였다. '비트 세대'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가지는 데에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실제 있었던 사실과 다른 점들은 있을 수 있으니 당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한다.  

 

 

(불만스러운 점들)

책의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 제너레이션>에 대해 독자로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텍스트가 너무 작아 읽기에 눈이 아팠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모두 시력이 좋은 사람들만을 가정한 것인지... 나는 책을 읽으며 상당히 불편했다. 일반 만화보다 글이 많은 그래픽 노블의 특성과 독자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렇게 책을 만들었을까. 나아가 책의 막바지에 이른 184페이지 부터는 잠깐이지만 글자 크기가 더욱 작아져있다. 이렇게 편집할 요량이면 왜 판형을 더욱 키워서 글자를 크게하고 가독성을 높이는데 좀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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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첫날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이달의 첫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은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소개를 겸합니다.

제가 주목하게된 도서는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벤야민 번역하기>입니다.




 1월 중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소식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같이 출간되어 더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구하듯 줄을 서서 책을 사려는 독서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소개를 보면 이 책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역사책 같기도하고, 평론집 비슷하면서, 우리 삶의 다양한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 모음집인듯 보입니다. 
 (아직 않읽어 봤으므로, 기대평만...^^)
  발터 벤야민의 전방위적인 생각과 글쓰기의 방식과 닮았을까요.
 
  분명해보이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가 바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특이한 이력과 다양한 독서(곧 다양한 관심)이 모여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룬 유기체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묵직하지만, 언젠간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2004년에 저자 김재준이 '여성동아'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가 있으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이 기사는 다분히 자녀가 있는 부모의 시선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교육법'을 화두로 삼고 기획한 기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우리의 독서 현실과 독서 방법, 그리고 글쓰기의 중요성'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재'란 단어가 같은 의미는 다분히 '엘리트 양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이 단어 사용에 조심스럽네요.  
  기사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리 좋은 학교 교육 제도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고 봐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입시를 위한 학원 없는 사회', '타인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공부'를 아이들이 접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데에 관심이 생깁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또는 그러한 노력도 없이) 남자-여자를 대립구도로만 보거나,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쉬운 현실입니다. 
교육제도 또한 그렇습니다.

학교제도에 순응하기만 하는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르게 할 수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자의대로 빼앗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문기사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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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대한 간략한 보고서

 


작년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게 되어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쿠타니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에서 34 (1983-2017) 서평을 담당했는데요, 그녀가 은퇴 처음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서가 바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 《진실》 표기)입니다. 책을 읽던 알게 소설 편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입니다. 《진실》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가쿠타니가 단편 소설을 언급한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상대주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울프가 말한 자기중심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자부심 넘치는 셀피(selfie) 시대를 거치며 부상한 나르시시즘 주관주의와 정확히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우리 자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라쇼몽 효과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같은 대중 소설부터 < 어페어>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우리 문화에 스며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 책을 읽을 당시에는 라쇼몽 효과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쿠타니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라면 류노스케의 「라쇼몽」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한 같습니다. 제가 소양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가쿠타니의 글도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대목만 가지고는 어림짐작만 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라쇼몽 효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류노스케의 「라쇼몽」 찾아 읽어보면 되겠죠. 가쿠타니는 과연 「라쇼몽」 자신의 글에서 어떻게,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끔 라쇼몽 효과 의미가 무엇일지만 가끔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 글에서 만나게된 라쇼몽 대한 언급과 자료들을 모아 라쇼몽 효과의미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우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읽어봤습니다. 10페이지짜리 단편이라 금방 읽을 있습니다. ‘라쇼몽 한자어로 읽으면 라생문(羅生門)’ 해당합니다. 어떤 마을 외곽의 폐허가 2 누각의 문이 라생문이라고 불리는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곳이기에 동물이 들락거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누각의 나무를 뜯어다 내다팔기도 하고, 시체를 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어느 , ‘화자 라생문을 지나다가  2 누각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화자 조심스럽게 누각 안을 보니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고, 어느 노파가 횃불에 의지해 시체의 머리털을 뽑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자 노파의 악행에 분노하여 칼을 들고 노파를 위협합니다.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물음에 노파는 대답합니다. ‘ 여자 시체는 사람을 속여 고기를 여자로 악행을 저질러 왔던 여자인데,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고 한다고 말이죠.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겁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화자 말을 듣고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납니다. 노파의 옷을 팔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가쿠타니가 말한 라쇼몽 효과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쿠타니는 《진실》  3장에서 다시 라쇼몽 언급합니다.

 


울프는 1989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느 글에서 이런 상황 전개를 한탄하며, 미국 소설의 전통적 리얼리즘이 사망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들이 “(자아의 세계로부터 나와) 이렇게 요동치는, 기이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돼지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걷는 바로크적인 우리의 나라로 향해 그것을 문학 자산으로 되찾 것을 촉구했다. (…) 울프는 기자의 목소리와 관점을 새로이 강조한 1970년대 뉴저널리즘의 영향력 있는 주창자였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선언이 문학계의 많은 이들을 전향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루이스 어드리크, 데이비드 미첼, 드릴로, 줄리언 반스, 팔라닉,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같은 작가들은 수십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포드 매덕스 포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혁신자들이 「라쇼몽」같은 새로운 현실을 포착하고자 개척한 다중시점, 신뢰할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같은 장치를 여러모로 활용했다.”  

 


대목에서 가쿠타니는 「라쇼몽」 언급하며, ‘다중시점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 다시 읽어도 다중시점이란 표현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다양한 시점이 등장한다면 저처럼 소설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시점의 변화만큼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있을텐데요. 다양한 시점이 저에게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만 소설 속의 노파와 화자 각자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듯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해석만 찾아볼 있었습니다. 아니면 소설의 행간을 읽어 감지해 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다시 가쿠타니가 언급한 대목이 소설과 맞지 않는 듯하여 혼란을 느끼던 , 단편 소설에 대한 작품해설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 가지 실마리를 찾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단편 소설 「라쇼몽」말고,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가 사실은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만 단편 소설 「라쇼몽」에서 가져와 적용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소설 「덤불 속」에는( 단편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각자 자신의 진실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스터 출처]

By Daiei, (c) 1962

http://entertainment.webshots.com/photo/2011951000055228984dXleQp[dead link] accessed 01-March-2008,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644246



그러므로 가쿠타니가 《진실》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비판하며 언급하는 라쇼몽 효과 「라쇼몽」이란 작품은 사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소설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영화  <라쇼몽>에서 분명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 영화 <라쇼몽> 사실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 내용이었던 것이죠. 실제 단편 「라쇼몽」 아니구요. 그렇다면 가쿠타니가 말하는 다중시점 라쇼몽 효과 엄밀히 말하자면 덤불 효과 옳은 것이겠죠. 따라서 라쇼몽 효과라는 표현의 유명세는 사실  단편 소설 「덤불 속」에게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저널리스트 하트(Jack Hart) 글쓰기 《논픽션 쓰기》(정세라 옮김, 유유)에서 저자는 논픽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데, ‘시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의 마지막에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영화로 자주 인용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조차 명의 시점인물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정리해봅니다. 가쿠타니의  《진실》 하트의 《논픽션 쓰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라쇼몽 효과 모두 다중시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실 경우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언급한 라쇼몽 효과 맥락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 내용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실제 단편 소설 「라쇼몽」 제가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시점 변화를 찾을 없었다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었던 것이구요. 가지 이해하게 점은 미국의 문단에서 주로 회자되고 소비되고 있는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실제 「라쇼몽」보다는 다중시점이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라는 점입니다.

 


라쇼몽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홍구 교수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역사이야기코너를 연재하며 글에서 라쇼몽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역사서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한홍구 지음, 창비, 2020) 공저자 한홍구 교수라서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학비평가들이나 역사학자가 라쇼몽 언급할 ,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가 궁금했었고, 실마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에 라쇼몽 언급한 한홍구 교수의 글을 링크해두겠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수많은라쇼몽 진실을 찾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87.html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https://ko.wikipedia.org/wiki/라쇼몽_(1950_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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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대표는 주간지 편집기자 생활을 시작으로하여 한겨례에 입사한 편집자, 편집장 언론분야에 30 몸담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 보다도 유치한 생각이 어떻게 아이디어가 있는가?’ 대해 기획과 편집자의 시선으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라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글쓰기(기사쓰기와 같은) 기획의 관점에서 적용되는 아이디어로 적용 범위를 좁혀야 이해가 쉬울 같습니다.  

 


우선 본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종을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 참석자 중에는 대부분이 언론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같았습니다. 언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이미 면접을 봤던 사람도 있었구요. 우선 고경태 대표가 본인의 글쓰기에 자극을 주고 심지어는 혁명적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책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 박경리 작가의 토지였습니다. 종을 이야기했는데, 각각 여러 권의 책이라 읽기에는 노력이 필요할 같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방침은 우선 쉽게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입말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문어체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구어체로 쉽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은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문쓰기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문장은 복문도 많은 편이지만 읽히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구요


 

고경태 대표는 유치한 ’, ‘유치한 생각이란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기에 낮은 곳에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질문이란 문제의식을 갖는 , 그리고 같은 침묵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어 곳을 파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이미 6권의 책을 펴낸 저자로서) 경험을 돌아보면, 책을 썼던 것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더라는 말이구요. 유치한 생각은 (당대의) 담론을 일상의 것으로 끌어다 놓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고경태 대표가 한겨레에서 일하는 동안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주제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 방사와 동물권 논의, 형제복지원 사건 보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등과 같은 굵직 굵직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언론인들, 기자들에게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같은 시간이 지난 사건들오 여전히 제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탐사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아직 해결해야할 숙제가 많다고 말이죠. 이런 점에서는 유치해보이더라도 역사의 맥락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일, 시대 정신 혹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노력을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있게된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한겨레 21에서 시노하라의 8·15’ 표지 기사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60년대 일본 전공투 세대인 아버지, 그리고 당시 20대인 대학생 아들, 이렇게 3대가 맞는 일본의 패전 기념일(815)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거대한 주제의 담론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별주체들이 받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상당히 인상적인 기획 취재였습니다.

 


저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고경태 대표에게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1] 굿바이, 편집장에서 인문학 칼럼 연재를 중단한 착한 필자’ 1, 2 나오는데, 실명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죠.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2] 중에 형제복지원관련 보도를 3부에 걸쳐 장편의 글을 연재했는데, 기사가 소설 구조를 차용한 글쓰기 시도한 기사입니다. 저도 글쓰기 방식이 궁금해져서 질문했는데요, 질문은 기존의 탐사 보도와 관련 기사 글쓰기와 기사가 어떤 점이 다른가를 물었습니다.  자세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만, ‘소설 구조 적용한 기사라는 젓은 서사 내러티브를 사용하여 호흡의 글을 썼던 것인데, 편이 200 원고지 120매정도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A4용지 장에 대략 1500자로 계산합니다만, 그렇다면 기사는 A4용지 16 정도의 기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기사 치고는 상당히 글인 셈입니다.

 


이렇게 서사가 있는 논픽션 글쓰기 방식이 실제 기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요즘에는 흔히 활용되는 것은 아닌 같습니다. 일단 서사 내러티브를 적용하려면 탄탄한 구성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호흡의 글과 탄탄한 구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으며, 독자가 읽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상 고경태 저자의 저서 굿바이, 편집장출간 기념 강연회를 다녀온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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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1632) 렘브란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in, 1606-1669) 1606년에 태어난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이다. 오늘은 렘브란트의 그림 점에 얽힌 생각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것은 독일의 소설가 W. G.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 읽던 중에 이와 얽힌 이야기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렘브란트는 해부학 수업이 있던 (1632 1),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있는 제발트는 소설에서 우선 상황의 의전적 성격에 주목한다. 저자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부 행사는 레이덴 대학의 해부학 실험실이 아닌, 암스테르담의 화물계량소에서 공개 해부행사가 열렸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네덜란드의 분위기로 인해 당시에는 암스테르담의 하우트흐라흐트에 있는 유대인 구역이 형성되어 있었고, 무역이 활발했으며, 따라서 수입과 수출하는 물류의 계량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구역에서 1639년부터 1658년까지 19 살았다고 한다.

 


다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자. 니콜라스 튈프 박사가 직접 시연하던 해부 행사의 실험 대상인 시신은 해부 행사 당일 새벽에 절도죄로 사형을 당한 사형수 아드리안 아드리안스존, 일명 아리스 킨트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그는 교수형을 당한 직후 그의 시신이 화물계량소로 이송되어 공개 해부 행사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시신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모자를 쓰고 깔끔하게 입은 튈프 박사의 옷차림과, 해부 과정을 관찰하고 있는 다른 참관자들(의사들) 또한 호화로운 정장차림이다. 소설가 제발트는 자료 조사를 통해 의전적인 해부 행사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 주목하는 부분은 일반적인 해부 절차가 하복부를 절개하고 가장 먼저 부패가 시작되는 내장을 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시신의 손과 부분의 해부를 먼저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도죄로 사형을 내린 정황도 황당하긴 하지만, 제발트가 주목한 부분은 해부작업이 범죄를 저지른 손을 먼저 해부함으로써 의식이 갖는 보복적인 성격과 대중 교화적인 목적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연스럽게 뒤틀려 보이는 손은 시신에 가해진 폭력을 표시한다 제발트는 지적하고 있다. 행사가 의전적인 성격이라는 점은 해부작업이 끝난 엄숙하고 상징적인 연회가 개최되었다 사실이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왕립미술관에 있는 가로 2미터 세로1.5미터에 달하는 그림을 보면 보다 실감나게 느낄 있을 같다.

 


한편 참관자들의 시선은 대개 시신의 해부 부위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튈프 박사 너머의 해부학 서적에 주로 향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유가 그림에서는 시신의 중심을 천으로 가리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알몸으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제발트는 이유보다는 시신의 부러진 목과 뒤틀어 놓은 손이라는 육체성이 이미 해부학 교과서에서 보이는 하나의 도표, 하나의 인간 도식으로 환원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시 그림을 보고 생각을 해보니 의미를 조금 깨달을 있었다. 시신의 해부에는 이미 죄인의 몸을 사용한 것이고, 하나의 식은 물체에 불과하다. 교과서에 부분적으로 그려진 육체의 도식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일 것이다


 

토성의 고리 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행사 당일(1632 1), 당시 36세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참석했다는 점이다. 그림에서는 데카르트의 초상을 참조해볼 , 데카르트가 그려져 있지는 않은 같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학문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저서 방법서설  5 41세가 되던 1637 출판했을 ,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해부학에 관한 내용을 여러 쪽에 걸쳐 언급할 있었던 것도 바로 당시의 경험과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축적되었기 때문임을 있다.

 


하나 흥미로운 연결점은, 렘브란트가 그린 해부학 행사가 이루어진 10개월 후인 1632 11월에 렘브란트가 7 살게 하우트흐라흐트의 포르투갈-유대인 공동구역의 같은 블록 내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렘브란트이 공동구역에 1639년부터 살았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스피노자가 7 되던 해에 이미 사람은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는 말이 된다. 렘브란트가 스피노자보다 26 연상이므로, 아마도 렘브란트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유명한 상인인 스피노자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자들과 대화가가 이런 공간에서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면 무척이나 흥미롭다. 스피노자보다 36 연상이었던 데카르트와는 아마도 만났을 가능성 보다는 당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데카르트의 저서를 통해 그를 멀리서 보았을 같긴하다. 하나의 그림과 텍스트를 가지고 옆길로 빠져 나름의 상상을 엮어보았다. 오늘은 렘브란트의 그림 점을 가지고, 해부학 행사가 있던 , 데카르트(당시36) 렘브란트(당시26) 같은 공간에서 각자 자신의 활동에 몰입했을 광경을 아울러 상상해보았다





[참고도서]

[1]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 이재영 옮김 | [창비]

[2] 스피노자 스티븐 내들러 지음 | 김호경 옮김 | [텍스트]

[3]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지음 |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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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0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엔가 오래 전에 만났던 <토성의 고리>
를 다시 읽었습니다.

제발트 전작읽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경건
하게 읽었는데 이전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
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캄포 산토>도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읽고
이번에는 리뷰를 쓰야지 싶었는데... 생각대
로만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초란공 2019-12-08 23:55   좋아요 0 | URL
저도 동감합니다. 이번에 렘브란트의 그림이 나왔던 부분을 다시 보니 새롭게 보였어요. ^^ <캄포 산토>는 저도 읽고 싶네요. <기초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영국에 있다는 ‘제발트 길‘도 걸으면 제발트가 묘사한 우울한 분위기가 다시 떠오를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