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nry (Paperback)
Kerr, Judith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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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Henry

Judith Kerr 지음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부부가 함께 읽는 그림책

우리의 현재가 언제나 기억될 소풍이 될 수 있기를

 

이번에 읽게 된 그림책은 독일계 영국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주디스 커(Judith Kerr, 1923.06.14-2019.05.22)의 작품 My Henry이다. 국내에는 주디스 커의 작품이 꽤 잘 알려져 있어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디스 커는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몇 년이 지난 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유대인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은 전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고, 나치는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나치 세력이 발흥을 하고 독일 내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위협이 되어가던 1935(당시 12)에 주디스 커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를 했다. 작가는 지난 2019년에 95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이 곳 영국에서 살면서 아이 및 어른을 위한 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했다. 무려 83년을 고국이 아닌 타지인 영국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사실상 영국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 My Henry는 주디스 커가 88세가 되던 해인 2011년에 출판되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나이젤 닐(Nigel Kneale, 2006년 사망)을 떠올리면서 작업한 책이다. 화자인 노인는 자전적인 주인공이다. 소파에 앉아 오후에 마시는 차 시간을 기다린다. 마치 실버타운 혹은 요양원에서 여생을 지내고 있는 듯하다. 화자는 매일 오후 4시에서 7시 사이에 차도 마시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시간은 화자가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생전에 소심하여 모험을 좋아 하지 않았던 남편(왠지 낯설지 않다...)과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던 화자는 생전에 함께 해보지 못했던 모험을 하는 것이다. 사자 사냥을 함께 떠나거나, 커다란 나무 높은 곳에 올라 저절로 채워지는 차 주전자로 차를 마시고, 소풍을 나간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 화자는 남편과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기도 한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노부부의 모험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업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작가의 삶을 거슬러 상상해보게 된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참혹한 2차 세계 대전을 겪었다. 나는 이 삶의 실존적인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상상만 해볼 뿐이다. 아무 것도 없이 영국에 도착하여 생존의 위기 앞에 서야했을 주디스 커 가족의 두려움을 상상해본다. 여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녀의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함께 더해져 작가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52년을 함께 했던 작가 부부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얇은 그림책 한 권이지만, 사람과 생에 대한 단단한 신뢰와 존중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삶을 오롯이 짐작해볼 수 있어 숙연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노부부가 함께 하는 상상 속의 소풍 활동을 모두 색연필로 작업하여 표현했다. 우선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마치 화자의 꿈속에 들어간 기분이다. 88세의 작가가 작업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귀엽고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림들이다. 아마도 화자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의 소파에 앉아 낮잠을 잘 때, 남편 Henry와 소풍을 떠날 것이다. 생전에 함께 해보지 못했던 활동을 시도해보면서 말이다. 화자는 이럴 때 영락없이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생전에 Henry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그 모든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돌이켜 본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서로를 바라보았을 모든 순간들이 스쳐갔을 것이다. 부부가 된다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처럼 저절로 익는 것은 아닐 터이다. 천둥과 벼락, 땡볕과 서리 맞는 시간을 함께 해야 단단히 잘 여문 대추 한 알을 맞이할 수 있다. 이 시간을 함께 거쳐 왔을 그림 속 부부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외견상 담담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림책이지만, 애틋하고 쓰라린 감정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영원히 자신과 함께 잊지 않으리라는 것,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난 화자가 꿈에서 먼저 간 남편과 돌고래가 끄는 수상 스키를 타고, 인어와 놀고, 유니콘을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남편과 헤어지면서 내일은 달에 소풍갈까요?’하는 대목을 읽을 때, 내 안의 슬픔이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다. 아직 내 안에 있는 대추가 둥글어지고 붉어지려면좀 더 서리를 맞아야 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읽은 My Henry는 텍스트가 길지 않아 원서를 구해다 읽었다. 작가 주디스 커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고, 소리 내서도 읽어보았다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작가의 손길로부터 삶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는 이 책은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보물 같은 그림책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지금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이 시간이 훗날 소풍처럼 추억될 수 있길 바라게 하는 책이다.




이 그림책에 대한 아내의 리뷰 [번역본 & 원서]

[알라딘서재]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aladin.co.kr)


[알라딘서재]MY HENRY (aladin.co.kr)




 

"They think I‘m sitting in this chair
Just waiting for my tea."

"But sometimes we prefer to give
The world a miss, because
We picture how we used to live
And think how nice it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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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8-09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내분과 함께 알라딘을 하시는군요!!! 넘 부러운 걸요!!^^

초란공 2021-08-09 18:09   좋아요 0 | URL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서 그림책을 같이 읽어보자했어요. ^^;;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그림책을 올리지 못했네요...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지음, 백수린 옮김 / 목요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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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지음 | 백수린 옮김 | [목요일]

 


여름의 끝(La fin de l'été)을 추억하는 애도의 기록

 

아내를 따라 그림책을 보다보니 그림책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문구를 종종 접했지만, 여전히 내가 스스로 찾아 읽고 느끼고 판단하지는 못했다. 그림책은 대체로 텍스트가 적어서 금방 읽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아동용 그램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림책의 독자에는 제한이 없다. 이번에 읽은 그림책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라는 제목의 책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책이었다.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 소개에 따르면 그녀는 1971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프랑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림책 관련 행사 및 도서전으로도 유명한 볼로냐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2004)로 선정되었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2018)한 이력이 보인다. 이제는 그림책과 관련하여 볼로냐를 비롯한 해외 무대에서 점점 더 많은 국내 작가들의 소식을 접하기에 이 상의 위상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다. 짧게 소개된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콘세이요의 다른 작업들이 궁금해진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책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편견을 최대한 줄이고, 겉에 표현된 이미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겉표지를 펼치면 소녀로 보이는 인물 그림이 나온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손에는 열쇠로 보이는 물건 하나를 쥐고 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림 속 들판에 숨어 있던 새들이 놀라 달아나듯 새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듯, 들판은 풍요로운 느낌 보다는 황량한 겨울 들판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 보이는 것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이다. 가는 펜과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들이 계속 이어지며 화면을 구성한다.

 

그림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누군가의 빛바랜 사진 앨범을 넘기면서 구경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작가의 작업들은 언젠가 그녀가 응시하고, 감각하여 각인된 기억들을 소환하여 이미지로 정착해둔 스냅 사진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정면을 응시하는 듯 하는 소녀의 스케치는 오래 전 부모님이 들고 있던 필름 카메라 렌즈를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면 곧 등장하는 푸른 앙리는 작가의 아버지로 보인다. 소녀의 모습은 앙리가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어린 시절의 작가일 듯하다. 책에 그려진 그림들은 접착용 테잎으로 붙여둔 사진처럼 구성되어 있다.

 

커튼 달린 창틀, 컵을 잡고 있는 손, 얼굴 표정을 그리지 않은 소녀의 두상들... 이런 단편적인 그림들은 모두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보인다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명징하며 지극히 사진적이기도 하다. 또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래서였을까, 콘세이요의 스케치는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움을 준다. 작가의 소소한 스케치들이 새로운 기억을 소환한다.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책을 더 읽으면 작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일흔 살 즈음으로 보인다. 아마도 지난 늦여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 작업은 이제 중년이 된 딸(작가)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담아 낸 것이리라. 아마도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전형적인 아버지였을 것 같다. 서로가 소통이 많지 않던 부녀 관계. 이제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시골집에 와서 아버지가 살던 공간과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추억이 묻어나고, 죽음이라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자각이 느껴진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지난 글에서 처음 읽었던 그림책처럼 공교롭게도 이번 책을 관통하는 주제도 죽음이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별명이 있는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에서 예술사적 관점으로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삶에 집착한 간접적인 증거로서 정물화를 언급한다. 특히 중세인들은 죽음이라는 소멸 현상을 정물화를 통해 삶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북부 유럽어권에서 정물화를 ‘still life'라고 표현하고, 더구나 라틴어 권에서는 ’nature morte’, 죽은 자연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게다가 모든 문학 작품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림책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그림책이 다루는 주제를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책에서도 삶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삐삐롱 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언급했던 것처럼, 적절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아이들도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인식하고 나름대로 소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그림책을 읽어내는 일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메시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 놀이와 같단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책 읽기란, 그림을 통해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을 들여다보고, 저자의 기억과 상상을 더듬어 따라가는 일이다.

 




내 시선은 다시 앙리가 살던 집의 찬장에 머문다. 안개처럼 반투명해보이는 유리문이 있는 찬장 아래에 피클을 담는 병이 보인다. 이 병에는 앙리가 숲에서 가져와 넣어 둔 까치밥나무 잎이 들어 있다. 까치밥나무 열매는 여름에 익는다고 한다. 아마도 앙리는 이걸 병에 넣어 둔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매일같이 산책하던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주머니에는 매일 확인하는 우편함 열쇠를 넣은 채로 말이다. 우편함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앙리는 입김이 날 정도로 쌀쌀해진 어느 날 익숙한 오솔길을 나섰을 것이다. 집 앞에는 돌아올게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로. 하지만 이 산책이 앙리가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을 것 같다. 그렇게 앙리는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산책길에서 벤치에 앉아 깃털처럼 가벼워졌을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이런 자세한 정황은 책을 보고 내가 상상해본 내용이다. 책에 표현된 시선을 따라가면서 작가의 추억을 들여다 볼 뿐이다. 저자는 앨범을 보고 외부를 관찰하는 것 같지만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묻혀 있던 작가의 기억, 곧 내면의 풍경이다. 딸은 아마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정하게 대화해본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먼저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지내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듯하다. 작가는 부모님의 결혼사진과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을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지 않았을까. 새롭게 다가오는 자각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제 지난 여름 아버지가 담아 두었을 까치밥나무 잎에 머문다. 꽃무늬 벽지가 있는 한 쪽 벽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옷이 그대로 걸려 있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했던 시절, 웃음소리와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을 것만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앙리는 여름이 끝날 무렵, 푸른 안개가 낀 어느 날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까닭에 까치밥나무 열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면서, 소멸하는 자연을 대변하는 사물이 된다. 앙리가 즐겨 산책하던 풍경은 이제 작가의 추억 속, 여름의 끝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배경을 상상해보다 책의 표지를 보니, 푸른색으로 그려진 앙리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진다. 책의 겉표지를 넘길 때 보았던 소녀(아마도 어린 작가의 모습)의 손에 든 열쇠는 아마도 아버지의 우편함 열쇠가 아니었을까. 우편함 열쇠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겠다. 혹은 소통이 별로 없던 딸의 편지가 와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주는 텍스트가 거의 없는 그림책을 읽는 일은 보다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림책은 언어를 떠나 공통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 나는 그림책 읽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그림책에는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다르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책은 그만큼 풍부한 자유도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특이점처럼 느껴진다. 묻혀 있던 무수한 기억들이 공존하는 지점인 동시에 새로운 상상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는 전환점으로서 말이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면, ‘지난 여름의 끝을 추억하던 작가가 아버지에게 전하는 한마디가 담겨있다. 빨간 까치밥나무 열매가 읽을 때 즈음, 아마도 푸른 안개와 함께 풍경 속으로 사라졌을 법한 작가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는 인생에 여전히 미숙했고(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특히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던모든 아버지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자 애도의 메시지다.

 




 같은 책을 읽고 쓴 옆지기의 리뷰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https://blog.aladin.co.kr/734094286/1242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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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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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며

 



아내와 함께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 공부를 한 아내와 이공계 전공인 나는 책에 대해 서로 취향이 많이 다르다. 그림책 읽기는 그 접점으로서 같은 책을 각자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듯하여 내가 아내에게 제안해본 것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나온다고 하니까. 난 그림책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받아서 읽고, 각자가 책에 관해서 써보기로 했다. 여기에 규칙이 하나 있다면, 글을 다 쓰기 전까진 상대방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다.

 

막상 그림책을 받고서 읽어보니 난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텍스트는 거의 없는 데다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순히 부담 없이 금방 읽고 함께 무언가를 써보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림책의 텍스트는 어디로 나아갈지 방황하는 나의 생각을 붙들고 제안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그림을 읽어내야 할지가 나의 관심사였다. 안 그래도 공감능력(?)이 부족한 내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일까 고민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없던 일로 되돌리기도 멋쩍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떤 일이든 마음의 부담을 많이 안고서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요새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프로그램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나 혼자 시행착오를 해가며 꾸역꾸역 시작해보기로 한다. 난 아무래도 뭔가를 시작했다가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내게 부족한 것들을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듯하다. 나도 역시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 점이 스스로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나. 그러니 아내와 그림책 읽기도 그저 나의 엉뚱한 생각으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가 뭔가 재미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만 모르고 지나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러니 부담 없이 그림책을 읽어 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들어 기록해보기로 한다.


자 그럼 이제 시작!”

 

 


할머니의 팡도르

(원제: I Pani d'Oro della Vecchina, 2012)

안나마리아 고치(Annamaria Gozzi)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Violeta Lopiz)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음식을 매개로 운명과 밀당 하는 할머니

 


책장을 넘기면서 눈에 들어오는 빨간색의 패턴과 할머니, 그리고 검은 색의 형체 없는 존재는 궁금증부터 일으킨다. 빨강과 검은 색의 색연필이 대부분인 이 그림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아무리 어른들도 보는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죽음이란 주제는 으레 달갑지 않다. 아무런 기대 없이 책을 펼친 문외한으로서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닌, 우리를 규정하는 자연의 엄연한 진실이라면, 우리가 기피할 이유는 없다. 대신 저자와 그림 작가가 이 형이상학적인 진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표현했을까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빨간 두건을 한 할머니는 코와 볼은, 할머니의 집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주름과 가늘어진 입술을 지니게 된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매년 해오던 크리스마스 빵과 쿠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때 집 밖에 표현된 검은 색의 저승사자(사신)은 할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이 붉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메마른 나무와 사신이 검은 색으로 표현된 것이 대조적이다. 온기를 지닌 존재, 생명은 붉은 색으로, 엄연한 진실, 곧 죽음은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이겠다. 할머니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과일과 계피, 그리고 꿀이 가득 들어간 크리스마스 빵을 만드느라 사신이 곁에 가가와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신의 임무는 응당 사람을 저승의 세계로 데려가는 일이다. 따라오라는 사신의 말에 할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빵을 완성하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대신 자신이 빵에 넣을 소를 만들던 주걱을 사신의 입에 넣어 준다. 이런 식으로 사신과 할머니 사이의 밀당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사신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따뜻하게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자신이 만들고 있던 빵이며 쿠키를 맛보여 준다.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인상 깊다. 특히 추상적인 죽음을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검은 덩어리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이 사신은 할머니를 언제든 삼켜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듯 언제나 커다란 입을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북부 이탈리아 출신인 작가 안나마리아 고치는 신화와 전설, 민속 전통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수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책의 이야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도 이탈리아 전통과 디저트에 얽힌 전설이라고 한다. 나는 가끔 우리가 삶과 죽음을 마치 별개인 듯 분리하는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집에서 돌아가셨던 할머니와 달리 이제 우리는 집에서 맞는 죽음이 거의 금기시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는 할머니 세대의 삶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은 보다 가까웠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역시 자신의 죽음을 단지 두려워 미룬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주일 정도를 미루었을 뿐이다. 죽음을 의연하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지혜를 발견한다. 어쩌면 금빛 팡도르는 이승에서 그녀의 삶을 규정한 전통과 기억이 빚어낸 할머니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빵과 쿠키를 아이들과 사신이 함께 어우러져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갈 시간임을 받아들인다. “이제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의 바램 하나를 더 생각해 내었다. 나도 언젠가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기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과 집단의 기억은 할머니가 자신의 찰다 속에 숨겨 놓은 레시피처럼, 온기를 가지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책을 들춰 보았더니 한 그림에 눈길이 멈춘다. 할머니는 사신과 마주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접시에 담아 사신에게 건네는 장면이다. 빵 하나를 맛본 사신은 자신의 임무를 잠시 잊고 아름다운 맛이군요라고 감탄한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엄연한 진실을 그리면서도, 삶에 대한 비결 하나를 한 문장으로 남겨 놓은 듯하다. 바로 이 문장이다. 바로 매 순간을 살면서 삶에 감탄하는 일이 바로 삶의 비결이 아닌가 하고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오늘 처음 그림책에 대해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발견한 것 하나다. 다음에는 아내가 어떤 책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참고] 아내가 이 책에 대해 쓴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알라딘서재][할머니의 팡도르] 

 삶이 만들어 내는 달콤하고 진한 생의 맛 (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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