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결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습했다. 키예프 공항을 폭격하는 장면과 하늘에 별이 박힌 듯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는 영상을 보았다. 지난 세기에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이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이웃 국가들을 침공했던 사실은 책에만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다. 실제 러시아의 침공 영상을 보니 두렵다. 한 정치가의 작전개시한 마디에 누군가의 삶과 장소가 파괴되고, 이와 결부된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말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먼저 공격했다, 혹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친러시아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국제사회는 무력해 보인다.


상당한 경제재재를 감수하고서라도 군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큼 푸친이 목적한 바를 챙기기 전까진 경제 제재조치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문제가 푸틴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여기에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냉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니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 사이에 낀 우리가 풀어야할 외교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요즘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고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를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저자의 문장은 아름답다. 글로 옮기기 힘들었던 미묘한 일상의 감상과 사유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감수성을 배우고 싶다. 그의 산문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잣대에 기대어 순순히 굽히지 않는 면모도 있다. 저자의 다른 산문이나 비평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러시아의 공습 기사를 보고,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저자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모습은 저자의 몸에 비인간화라는 공포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전쟁이 무섭다. 오만과 증오에 눈이 가려 심각한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 무섭다. 전쟁을 막을 지혜와 역량이 우리에게서 발휘되지 못할 것이 무섭다.”(나는 전쟁이 무섭다(2010), 48)


 

전쟁을 겪은 세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가 이제 경제 10대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제국이 아니다. 정신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날 길이 없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과 손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국가든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휘둘리기도 하고, 고통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금껏 지켜왔다. 우리의 운명은 주변 강대국의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 특히 중국과 같은 나라들과 다면적인 사항(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항)을 고려하여 행동에 나설 일이다.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으면서, 이웃 국가를 비난하고 자극하여 안보위기를 부추기는 철없고 머저리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말은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한 정치인들의 명단을 잘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이 명단을 활용할 방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자신의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인용한 내용에 전쟁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 인용문은 201165일자 <주간 아사히 긴급 증간 아사히 저널>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일찍이 전쟁절멸보장 법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난 세기 초에 덴마크의 육군대장 프리츠 홀름이 각국에 다음과 같은 법률이 있다면 지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쟁이 터질 경우 10시간 안에 다음 순번에 따라 최전선에 일개 병사로 파견된다. 첫째로 국가원수, 두 번째는 그 남자의 친족, 세 번째는 총리, 국무위원, 각 부처 차관. 네 번째는 국회의원. 다만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종교계지도자들. 전쟁은 국가 권력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홀름은 생각했다. 따라서 맨 먼저 권력자들부터 희생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한승동 옮김, 돌베개, 34)

 


다시 정리하면, 중국과 같은 주변국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고 자극하여 국가의 안보에 위협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여기 전쟁절멸보장 법안의 첫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 소련(스탈린)과 나치(히틀러) 시대의 유럽 역사를 다룬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함규진 옮김, 2021)을 읽을 때 느꼈던 부분이지만,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은 전쟁 시에 양쪽 진영 모두에 큰 고통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등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지난 세기에 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특히 스탈린 시절 소련은 공업화를 추진하고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탈린이 유럽의 곡창지대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탈한 것이 문제를 야기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대기근 홀로도모르(Holodomor)'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기근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하여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관련 내용은 피에 젖은 땅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를 참조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는 러시아 침공 소식을 전한 다음 증시 하락기사를 내보냈다. 아마도 국내의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를 하고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주가 폭락만큼의 충격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황현산 선생의 언급처럼 장소와 물질에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통해 몸에 기억된 흔적들이 외부기억 장치들에 연결되어 쉽게 휘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몸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과 관계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 우리는 상상력마저 잃게 된다고 선생은 우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몸에 남게 되는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고 윤리와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마련해주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뉴스 영상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새롭게 주목해보는 것은 전쟁이 더 확대 될 경우, 우크라이나 난민이 적어도 500만 명은 발생할 것이라는 뉴스보도였다.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난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필요한 때는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막연한 전쟁의 공포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에 나를 집어넣는 능력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프랑스가 국가를 위해 일할 수재들을 교육시키고자 국가 최고의 기관에 보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귀족주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문학적/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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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5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전쟁까지는 안갈거라 생각 했는데 이런일이 ㅜㅜ 근데 저도 전쟁보다는 주가 생각이 먼저 나더라구요 ㅎ 반성해 봅니다 ~!

초란공 2022-02-25 13:00   좋아요 2 | URL
저는 미국이 개입하면 세계 대전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대신 올림픽 끝난 직후 주말에 바로 공격 개시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며칠 더 지켜보기로 했던 걸까요. 러시아 유도 챔피언에 유럽에서 첩보활동하면서 사람을 잡아들였던 푸틴의 치기가 아직도 남아있는게 아닐까요. 아니면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착각하는지도요. ㅜㅜ

프레이야 2022-02-25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정말 안타까운 사태입니다.
홀로도모르도 그랬는데 아직 그 땅 그 사람들의 고통이 끊이질 않네요.
초란공 님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밤이 선생이다”를 다시 꺼내 보게 되네요.
공감능력 상실의 시대와 그런 세대가 무섭습니다. 권력자들부터 전쟁절멸보장 법안이 일찌기 있었군요. 전쟁을 몸소 겪은 아버지 세대는 그 공포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어요 기억에 오래오래. 열아홉에 혈혈단신 피난 오신 아버지는 아직도 가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초란공 2022-02-25 13:02   좋아요 4 | URL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야기되어야 상상력을 통한 공감능력도 유지될 수 있지 읺을까 싶습니다. 부모님들의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고 싶네요. ^^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2-25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쟁절멸보장 법안‘ 너무 좋네요.

전쟁도 무섭고, 전쟁을 막을 힘이 없다는 사실도 무섭네요. 경제 제제 외에는 전쟁을 막을 방도도 없는 거 같고요.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국민들도 무섭고. 모든 게 무섭습니다.

초란공 2022-02-25 21:3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다시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네요...ㅜㅜ

얄라알라 2022-03-01 12:44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저도 ‘전쟁절멸보장 법안‘ copy해서 댓글 쓰려고 쭈욱 댓글 읽으며 내려왔는데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이 법안 심정적 지지하시네요.

자꾸 울컥거리고 울게 됩니다.
사용금지된 무기까지 썼다니.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이
난민됨의 두려움이
...비오는 3.1절 더 비장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2022-03-0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1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3-08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빨리 멈춰야 할텐데 말이죠 ㅠㅠ 초란공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려나봅니다. 당장 생겨나는 난민들도 그렇고요.

그레이스 2022-03-0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3-08 1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2-03-09 11:18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