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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평점 :
쪽 염색 장인을 닮은, 이런 여행법
신상웅, ⌜푸른 기록⌟, 소요서가, 2024
책을 읽는 동안 책의 곳곳에서 책을 만든 이의 의도가 느껴졌을 때,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국내 쪽 염색 장인의 에세이 <푸른 기록>도 그런 책이었다. 푸른 쪽 색으로 물든 양포 혹은 화포의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책의 표지 색과 질감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자와 저자 사이에서 책 내부에 접혀 있었을 세세한 이야기들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저자는 고향에 내려와 쪽을 직접 재배하고 천에 염색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 그리고 사이 시간을 이용해 자료 조사를 위한 여행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일본 등등 동아시아 여러 곳의 쪽 염색 현장을 발로 누빈 기록이다. 중국의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과 무늬를 지닌 옷감을 만들고 일상에서 사용할 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자녀에게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편지글에서 쪽 염색된 두루마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대상이 먼저 눈에 보이듯, 저자에게는 연암 선생의 화포가 보였던 모양이다. 연암 선생이 입었던 화포 두루마기는 우리나라에서 염색된 것일까, 아니면 수입된 옷감으로 지어진 것일까. 나 역시 궁금했다.
동시에 해방 직후에 그려진 한 점의 자화상도 떠올릴 수 있었다. 월북했던 화가 이쾌대가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었다. 이제 막 해방되어 건국된 이 땅에서 서양식 물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중절모와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어쩌면 이 두루마기 역시 연암 선생의 화포처럼 우리 땅에서 염색되고 지어진 옷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자가 자료 조사 차 쪽 염색 전통을 지닌 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과정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쪽 염색 과정 이전에 저자의 독특한(?) 여행법이었다. 만약 연암 선생이 청나라 연행을 하기 전에 화포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호기심 많던 연암은 현지에서의 저자처럼 인연을 만들어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현지인들과의 사소하지 않은 마주침과 인연 만들기의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저자의 특이한 여행법은 오지에서 생존하는(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저자만의 여행 감각인 듯하다. 이를테면, 인도차이나반도의 라오스 산골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산길을 걷다가 결혼식 잔치집에서 하객들에게 발견(?)되어 초대되고 환대받는 모습이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피로연에서 독한 증류주 라오라오를 마시고, 하객들과 춤을 함께 추는 저자의 능글능글한(?) 내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취기에 오른 저자가 감지하던 여인들의 아찔한 향기에 대한 언급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글을 읽을 뿐인 나 역시 곧 눈이 부시고 현기증이 나는 듯 생생하니 말이다.
저자의 가방에는 이따금 찹쌀떡이나 귤 등의 과일이 들어 있어, 현지인들에게 주며 말을 트는 모습도 여행지에서의 인연을 만드는 노하우인가 보다. 이걸 알았다고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낯선 곳, 특히 산골 오지 마을에서도 결코 굶지 않을 것 같은 저자의 인연 만들기 내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할 뿐이다. 저자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가는 인연은 오지의 산간 마을, 낯선 장소를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만들어준다. 태국 북부 산간 마을 매살롱을 지나며 저자가 기록해 둔 한 문장,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는 타문화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철학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또 나의 시선을 붙들었던 부분은 쪽 염색을 하는‘몽’족과 관련한 역사였다. 중국에서 쪽 염색하는 먀오족은 ‘둥’족과 친척이었고, 이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계기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했던 모양이다. 이들이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의 북부 산간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몽’족이라고 하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있어서 이전에 읽은 책을 들여다보다 ‘몽’족에 관한 언급을 처음 마주쳤던 책을 찾았다.
바로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 2023)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동양인들이 바로 ‘몽’족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번역자는 ‘몽족’대신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족’이라는 표현이 ‘현대 문화가 아닌 전근대적인’, 혹은 ‘미개하고 야만적인’문화를 가진 사회라는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의 5장과 6장에서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산속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몽인’에 대해 소개하는데, 이들이 미국이 야기한 전쟁으로 난민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인다. 다만 애나 칭은 보다 자세한 내막을 소개하고 있지 않아 이 대목을 읽을 때 ‘몽인’들이 미국에 난민으로 오게 된 사연이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로 <푸른 기록>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점령군으로 있던 프랑스가 물러난 후 들어온 미국. 이들이 벌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의 공산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산골에서 살아가던 ‘몽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싸우게 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패전하고 퇴각한 후다. ‘몽인’들은 미국의 ‘먹튀’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몽인’들의 비극과 고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버려진 ‘몽인’들은 공산 정부의 보복 대상이 되어,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수용소에 머물다가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으로 건너가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것. 이렇게 해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마주쳤던 ‘몽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마치 송이버섯처럼 척박한 토양에 흩어져 자신만의 생존술을 발휘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낯선 곳에서도 지난 시절 쪽 염색물을 들인 양포에 대한 ‘푸른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쪽 염색 전통을 찾아간 저자의 여정이 세계사적인 사건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저자가 일본의 골목 전시장에서 일본인들이 작업한 쪽 염색 옷감과 더불어 중국의 '먀오인’과 ‘몽인’들의 푸른 화포를 다시 만난 순간 먹먹해하던 장면이 인상 깊다. 국내에서 직접 쪽을 기르고 염색에 매진해온 저자는 매순간 작업의 의의를 끊임없이 자문했을 테다. 산골 마을에 사는 몽인들이 명절에 입고 나온 화려한 옷들을 보며,“내가 물들이는 푸른색은 명함도 내밀기 부끄럽다.”(170)고 말하는 저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를 자문하는데,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요구와의 충돌 혹은 균형에 대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 현재적 관점에서 쪽 염색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탐색하는 장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저자가 여행에서의 기억과 종이 위에, 그리고 그간 무명천 위에 남겼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 역시 저자가 전해주는 푸른 기운을 이어 받아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푸른색은 푸른색이되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닌’ 이 쪽 염색의 빛깔은 서늘하면서도 신비함을 자아낸다. 은근히 눈길을 붙들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색이다. 때론 처연한 푸른색에 눈이 시린 느낌이 들 정도다.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의 산골에서 전통을 이어온 이들이 옷감에 물들이고 남은 푸른 물은 그들의 애환과 고통, 슬픔을 오랫동안 씻어내었을 테지만, 한편으론 반복할수록 선명하게 남는 푸른 빛은 한편으로 그들의 심연에 응어리진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만 같다. 때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진실은 있기 마련이니까. 저자가 여행에서 낯선 인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그는 사라져가는 것을 찾으면서도 때론 우연한 발견들 또한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삶이든 문화가 서로 섞이며 새로운 세계로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1] "나는 콩 대신 색을 수확했다. (...) 쪽에서 풀려난 색이 하늘로 이어졌다."(13) - P13
[2] "이름을 쓴 꼬리표라도 달지 않으면 푸른 무명더미 속에서 내 것을, 나의 푸른색을 구별할 수 있을까. 저 안에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하는 속절없는 물음들."(13-14) - P14
[3]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 - P110
[4]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과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 - P196
[5] "더구나 그런 아름다움이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반갑다. 아름다움이란, 또 문화란 저렇게 삶과 섞여 살아있을 때 가장 빛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265) - P265
[6] "길은 끝이 없고 가야하는 이유도 앞에 놓인 길 위에 있다."(303)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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