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쓰는 글은 그냥 끄적거리는 잡문이다.
오후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을 보았다.
화면으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했다.
이 장면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더해졌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뉴스를 보니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이 일에 무관한 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심지어 어느 뉴스 앵커는 '이번 누리 호의 발사 실패'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실수'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목표로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의 아쉬움을 보고 너무나 쉽게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는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발사체가 폭발한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성과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 칭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반응 하나는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의 반응이다. 우주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이 되니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마땅히 우주 개발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득 우리 나라가 특히나 실패에 민감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 사업의 성패, 결과에만 주목하는 정서에 길들여있어서인지 누리호 발사 이후 인터뷰를 한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해 보였다. 이들이 내년 5월에 예정된 다음 발사 준비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준비할지 눈에 선하다. 국민이나 해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정서야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개발에 관하는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대로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을 신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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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이 아니라 다른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늘이 성수대교 붕괴한 지 27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남겨두고자 한다. 이 사고는 27년 전(1994년) 오늘, 7시38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 속보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성수대교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길에 지나는 다리였다.
사고 당일 오전에 어머니는 황당한 뉴스 속보를 보고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한참 애가 탔던 순간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긴장하셨을까. 짐작하건데 아버지도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시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정리를 마치고 켠 TV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보신 아버지는 당신이 다리가 무너지기 10분 전 즈음에 다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다리가 많이 휘청거렸다는 말씀과 함께. 과거에 올라왔던 기사를 보니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그 중 9명이 내 또래의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특히 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 시간, 출근 시간과 겹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 특히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는 사실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이러한 사고에 예외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기도 하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 동네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 겨울에 동사했던 할아버지, 중학생 때 아파트에서 투신한 뒤 잔디밭에 누워 있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났다.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전국에 전해진 지 이틀 후인 1994년 10월 23일.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동창모임에서 준비한 충북 단양 지역 관광에 참여하고 오셨다. 어머니는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타고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저녁 뉴스에는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도배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망자 29명, 실종자 1명' 이런 문구가 끊임없이 여러 방송사의 뉴스 자막으로 등장했다.
"엄마, 저거 엄마가 어제 타신 배 아니에요?" 나의 물음에, 늘 큰 기복이 없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당신이 저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하시는 거였다. 단 하루 차이로 어머니는 대형 사고를 피하셨던 것이다. 나는 3일 사이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사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사고 희생자 될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희생자 규모가 비슷함에도 유독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고 모두 안타까운 인재로 일어난 일이다.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기도 혹은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들이어야만 했나?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묻고 싶어진다. 오늘이 가기 1 시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일들을 이유없이 끄적거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