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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평점 :
과학도 사람의 일,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
-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
나는 자기계발서를 가능한 한 멀리 하는 편이다. 다만 ‘자기계발’이라는 역할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았을 때, 모든 책읽기의 행위는 어느 정도 ‘자기계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처음 보았을 때, 잠시 주저했던 것도 책 제목에서 감지되는 자기계발서의 아우라(?)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흥미를 끌었던 나름의 이유는 저자의 서문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성공한 과학자들이 재능이나 운에 공로를 돌리는 결과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현실적인 역경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통과했는지를 이야기해주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고 다시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의 원제인 ‘불가능 속으로(Into the Impossible)’를 그대로 사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 표현은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말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의 제목이 우리 문화의 맥락 속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출판사의 고민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은 전도유망한 과학자이기도 한 브라이언 키팅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9명과 만나 나눈 대화가 모티브가 되었다. 과학적 발견과 성공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과학자들(무엇보다 저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을만한 선별된 인물들)의 삶 이면의 분투와 삶의 태도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학창 시절에 이 책을 읽어보았다면, 막연하지만 좀 더 용기를 얻고 새로운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마 저자가 여러 과학자들과 나눈 대화 중에서 독자가 가장 많이 만나게 될 조언은 ‘호기심을 따르라’는 말일 테다. 호기심은 누구나 마주하게 될 역경을 견디고 나아가 이를 돌파할 힘을 줄 수 있다. 이들의 조언에 따르면 이런 삶과 커리어의 역경과 마주하여 돌파하는 사람은 더 높은 성취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과학자들은 우리를 붙들어주고 이끌어주는 동앗줄로 ‘호기심’을 들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호기심을 따르라’라는 조언은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실천적인 가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수도 있는 학계에서 이 가치는 여전히, 그리고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큰 주제를 40년 넘게 붙들고 노력을 경주해온 과학자는 어느 순간 회의에 빠져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가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본 궤도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재미와 호기심’이라는 기준이 아닐까. 단, 이 호기심을 따르려는 마음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 상황이 충돌하거나 대립할 때, 이 둘을 어떻게 균형 잡아야 할지, 혹은 이 호기심을 추구할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의 문제가 결코 호락호락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실패와 회의, 그리고 성공 그 사이에 어딘가에서 과학자들은 숱하게 길을잃고 방황하며 분투해왔을 것이다. 게다가 모든 과학자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반 독자인 우리들에게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딜레마를 안겨준다.
이 책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이라는 가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다만 나는 과학자들의 마음가짐으로 저자가 주목한 또 다른 가치에 눈길이 갔다. 바로 ‘협력’하는 마음가짐이다. 일전에 한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쳤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수업 가운데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결과물을 산출하는 공동 프로젝트 과학 수업을 할 때가 있었다. 이 때만 되면 아이들도, 선생도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아이들은 협력하여 하나의 산출물을 내는 과정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혼자 원하는 것을 아쉬움 없이 받아온 아이들은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를 수용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며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매번 서툰 모습을 보였다. 이건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내심 어린 시절부터 경험을 하도록 했으면 하는 조바심에,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과 교사 모두 공동 프로젝트 수업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실한 나의 교수법을 탓하고, 나의 교수법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더 하겠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만 했던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이야 한 반에 50명이 넘었으니 교사가 학생들을 일일이 다 챙겨줄 수도 없었던 시절이기에 그렇다 치자. 공부 잘하는 학생만 대접받던 시절이었으니, 나머지 아이들에게 무언가 함께하는 경험을 기대하기는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 반의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은 데다, 수행평가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지금, 무언가를 함께 하며,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꽤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을 떠올리니 노벨상 수상자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술’은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정서 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006년에 우주배경복사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던 존 메더의 지혜를 살펴보자.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을 보면 이기려 애쓰기보다 함께 연구하려고 힘쓰는 게 좋아요.”(219)
이 태도를 달리 말하면, 협력과 연대의 마음가짐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누구든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테지만, 이들이야말로 ‘우린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존 메더의 말에 크게 수긍하게 된다. 내가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누누이 말했던 가치가 바로 이 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1979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셸던 글래쇼 역시 “협력이 물리학 연구의 핵심이란 사실을 깨달았죠.”(95)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과학자들에게 이 협력의 가치는 각자가 기여하여 더 큰 일,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을 가능으로 바꾸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도 생각해본다.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일까? 역시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제고하는 수업 목표에 더하여, 함께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지가 관건이 아닐까. 당연히 교사들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다만 교육 현장에서 이런 본질적인 문제가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실천적인 고민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실력 있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보면, 대한민국 사회가 ‘노벨상’이라는 권위에 미쳐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대단한 상이기에 저자가 이야기하듯 ‘가면증후군’ 증세를 보인 수상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호기심하면 노벨상 수상자들 못지않다. 하지만 ‘재미와 호기심’이란 기준 만으로 연구비를 타고 이를 수십 년 넘게 지켜보고 격려해줄 사회적 장치와 안목은 아직 부족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좁은 시선일까 싶다. 특히 권위 있는 학자들에 도전적으로 질문하기도 하고, 큰 질문에 답하려고 과감히 뛰어들어 인내심 있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 먼저 이루어져야할 일이라고 본다.
저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남긴 이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은, 과학도 결국은 ‘인간의 일’이라는 점이다. 다만 다른 인간의 활동 분야와 다르게 과학은 동료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지식인 사회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더 있을 뿐이다. 성공한 과학자들의 성공 비결은, 가장 기본이 되는 재능(호기심과 노력)이외에 우리의 능력 너머의 운과 더불어 ‘사회적 기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이 동료, 타인에 대한 공감력, 정서적 지능과 이들의 말을 경청하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한 과학자의 성취가 공동체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리학자에게 재능과 운은 커리어의 주 궤도에 오르게 해주는 요소들이지만, ‘사회적 기술’은 물리학자를 완성하게 해주는 요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조언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들이 전하는 지혜이지만, 과학 분야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의 성숙도를 높이는 데에도 경청할만한 지혜들이기 때문이다.
[덧]
(117) 물리학자 '칼 위먼(Carl Wieman)' => '칼 와이먼'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안다.
독일의 물리학자 '볼프강 케테를레(Wolfgang Ketterle)' =>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표기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으나, 과거에 읽은 글에서 '볼프강 케털리'라고 했던 것 같다. 확인을 요한다.
(149) '에스허르 M. C. Escher' =>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면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그래픽 예술가 에셔의 이름을 이렇게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국내에서는 '에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나?
[1]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다."(39)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
[2] "모든 실험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학습이다."(61) "우린 어차피 실패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절박한 질문은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다룰 것인가, 혹은 실패 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63)
[3] "과학계에서도 어떤 연구가 실험실 너머의 성과로 이어지려면 일반상대성 이론 방정식을 계산하고 초고감도 검출기를 만드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이끄는 법을 알아야 한다."(66)
[4] "가능성의 한계를 발견할 방법은 그 한계를 좀 더 지나서 불가능 속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다."(76) -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말
[5]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않는 것. 나를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셸던의 태도를 따라 할 수 있다면 어떤 길을 걷든 좀처럼 헤매지 않을 것 같다."(91)
[6] "협력이 물리학 연구의 핵심이란 사실을 깨달았죠." "재미는 과학에서 대단히 중요해요. 난 늘 재미와 즐거움을 좇았습니다."(95) - 물리학자 셸던 글래쇼의 말
[7] "난 오랫동안 ‘(노벨상)이후의 삶’을 생각했어요. 노벨상을 받은 많은 이를 존경하며, 그들이 상을 받은 뒤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봤어요. 남보다 더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게는 수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서 논문을 계속 쓴 리처드 파인먼, 양전닝, 리정다오 같은 이가 성공 사례로 보였죠."(186) -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의 말
[8] "과학은 전문가가 무지하다고 믿는 것이다."(213)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
[9]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을 보면 이기려 애쓰기보다 함께 연구하려고 힘쓰는 게 좋아요."(219) - 물리학자 존 메더의 말 "그(존 메더)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위축되거나 이기려 들지 않고 그들과 협력하고 도움을 받길 선택한다."(219)
[10] "내가 보기에 우린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경쟁자이긴 해도요. 당신이 어떤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잇고, 나도 같은 걸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각자 다른 답을 얻는다면 아주 주요한 과제가 생긴 거죠. 우리 일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증거를 구하는 겁니다."(225) - 물리학자 존 메더의 말
[11] "호기심은 어떤 주제든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입장권이나 다름없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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