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지구 -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지구와 인간 공부
김추령 지음 / 종이와빵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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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어진 지구에서 함께 잘 살기위한 공부


낯선 지구

: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지구와 인간 공부


김추령 지음 [종이와빵] (2026)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AI에 대한 신기술이 발표되고 인류의 달 거주 계획이나 화성 탐사에 대한 전망을 접하는 시대에 산다. 어느 과학자의 예언 같은 선언처럼, 기술적인 특이점이 이제 곧 시작될 것만 같다. 너무나 빠른 발전 속도와 생산성,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우려는 반기술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기 쉬운 형국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위를 올려다보는 동안, 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대지와 발아래의 세계는 어느덧 꽤나 낯설어져 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제는 새로운 현실 세계로 편입되어버린 가상공간이나 우주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자연과 본래의 현실 세계로부터 오히려 더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낯선 지구>에서 저자는 인간에 의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 지구에 주목한다. 곧 이어 인간이라는 존재로 향하는 저자의 시선이 담긴 글쓰기는 지구와 인간 사이의 느슨해진 연대를 확인하고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전망을 담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인간에 주목하지만, 과거의 검은 하늘(우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질계의 역사에 관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한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낯설었다. 달이 없던 태초의 지구를 상상해본 적이 없거니와 인류가 달이 생겨나는 순간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낯선 지구의 모습이다. 물론 과학자들의 상상은 지금껏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지식과 보다 많은 파라미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에 기반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생소한 지구의 모습은 지금껏 단 하루도 같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특히 지구와 달의 형성과정에서 우연히 삐딱해진 지구의 자전축이 오늘 지구가 갖춘 모습에 이토록 큰 영향력을 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만 인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칙칙한 회색빛 얼굴을 지구에게 안겨 주고 말았다. 인간이 기후 및 자연 환경의 변화 때문에 나무 아래로 내려와 발을 딛고 살아가기 시작한 터전을 무심하고 거침없이 파헤치고 이용해온 결과다. 인류는 과거에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지구와 또 다른 지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안내한다.


 

우선 지구의 부단한 지질활동이야말로 질소나 탄소 같은 주요 원소들의 순환을 견인했다. 이로 인해 빙하기와 해빙기의 순환도 이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물질계의 흐름과 상호작용과 부단한 변화들은 생명의 출현과 이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더욱 극적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우연히,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대기 산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시간에서 말하는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차원이 다른 대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내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나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히 나의 존재가 지질시대의 대멸종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1%의 존재에 빚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로부터 나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흐름에 대한 이해의 놀라움은 나를 연대와 새로운 부채의 감각으로도 이끌어주었다.


 

내 피부에 와 닿도록낯설게느껴지면서도 연대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대상은 바로 의 존재였다. 내 몸 안에 무척이나 다양한 개체(미생물/바이러스/남세균 등의 흔적)가 들어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혼자만의 고립된 단독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건 감각이 새롭게 환기되는 경험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개체들이 내 몸 안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상호작용하고 유전자도 교환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내 몸의 세포보다 100배나 많은 유전자가 비인간 생명체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은유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언급한 것에서 더 나아가 내 몸이 정말로소우주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자가 초기 지구에서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들려주는 동안 내가 주목했던 부분 한 가지는, 어느 영국 시인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 역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바다 밑 수 km 아래, 저 심해 바닥의 열수공 주변은 수백 기압의 압력과 수백 도의 극한 환경이지만, 이런 곳에서도 혐기성 생물들은 열수공에서 분출되는 광물질에 의존해 살아간다. 무엇보다 이 세균들마저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가 새삼 낯설게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현재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한 가득 안겨준다. 이를 테면 물질계와 생명계가 서로 촘촘하게 얽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진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인간은 지구의 다양한 순환 시스템에 상당한 교란을 일으키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종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드게임 젠가(Jenga) 위에 올라가 있는 존재처럼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 놓인 나무토막을 하나씩 계속 빼고 있다. 멈추지 않고 호기심에서든 혹은 관성 때문이든 나무토막을 계속 빼려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음에도 발아래 다가온 위험을 직시하거나 멈추기 위한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은 분명하다. 다만 언제 그 운명이 닥쳐올지 모르는 것뿐이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인류 공동체는 이전과 달리 행동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데 여전히 더디다.


 

인류 대부분은 이러한 위기감을 분명 알고 있다. 다만 발아래에 있는 이 위기를 당장은 살짝 눈감고 싶은 불안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에 더하여 과거와 현재의 몇몇 공동체의 모습들,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은 여기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작은 공동체에 존재했던 작은 전통들을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캐나다 서부 선주민의 포틀래치전통이나 멜라네시아의 쿨라 링의 전통이 그렇다. 저자는 이런 전통들에서 인간이 움직이는 동기가 경제적인 것만 있지 않음을 역설했다. 특히 공동체를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에 주목했다. 저자가 여러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에서 읽어내는 것은 구성원 사이의 명예나 존경심, 연대의 가치다. 다만 이러한 가치들이 규모가 훨씬 큰 현대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좀 더 고심해볼 문제다.


 

이 책의 제목 낯선 지구는 인간의 편리함, 나아가 성장 위주의 탄소 소비 문명이 지질학적 시간에 비해 얼마나 짧은 시간 만에 지구-자연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분명한 점은 지구상의 어느 종이든 영원히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류 문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명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이 과정을 얼마나 빨리 앞당길 것인가는 분명 인류의 손에 달려 있을 터다. 저자는 오래 전 지구 곳곳의 선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연대의 문화에 주목하고 여기에서 일말의 희망을 본다. 지구는 인류에게, 나아가 모든 존재들에게 유일한 공유지이다.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인 문제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진다면 작은 공동체의 사례로부터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실마리로부터 내가 속한 공동체에 맞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낯선 지구와 다시 연결되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며, 작지만 공존을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함께 잘 살기위해 이제는 낯설어진 지구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제스처이다.

 

 


 

 


[책속으로]

[1] "지구의 삐딱함이 바로 테이아(달을 만든 외계 천체)와 텔루스(원시 지구)의 충돌로 인한 결과입니다. 테이아와 텔루스의 우연한 충돌로 만들어진 지구의 삐딱함은 지구에 거주하는 많은 생명체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물론 오늘날 인류의 등장도 그 영향을 받았지요." - P16

[2] "지의류, 땅의 옷이라는 뜻입니다. (...) 지의류는 보통 곰팡이와 광합성을 하는 녹조류나 남세균의 공생체예요. (...) 지의류의 특성을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표현이 ‘극한 미생물’입니다." - P54

[3] "지의류는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한계점을 넘을 수도 있는 지구 시스템과 닮았어요. 지의류는 공생이라는 방법으로 슈퍼 생물이 되었습니다." - P59

[4] "1905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메레슈코프스키는 한 가지 가설을 주장합니다. ‘진핵세포가 지구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세포 내에서 공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1960년대 세포내공생설을 주장했던 린 마굴리스의 발견(세포내공생설)의 원천이 되는 발견을 한 러시아 생물학자 메레슈코프스키의 발견. - P62

[5] "우리는 말 그대로 슈퍼유기체가 아닐까요? 다양한 생물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작동하고 유지되고 번성하는 초유기체 인간. 인간이라는 정의 자체가 공생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 P72

[6] "진화는 생물과 물질적 환경이 서로 얽혀 추는 정교한 춤이며, 그 춤에서 ‘가이아(지구)’라는 존재가 탄생한다."
- 데이지꽃 행성 개념을 만든 제임스 러브록의 말 - P92

[7] "모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오로지 경제적인 동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의 명예, 자존심, 그리고 사회적 약속이 경제적 이윤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지구의 여러 공동체로부터 발견한 전통(쿨라 링)과 의미 - P141

[8] "오스트롬이 발견한 작은 공동체의 복작복작하고 시시비비로 시끌벅적한 그 회의장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마을공동체의 자율적인 관리 체계에서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 낯선 인류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봅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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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믹서 - 4월 후기


나쁜 유전자


3- ‘사나운 유전자함께 읽기

 



벚꽃이 떨어지는 4월 둘째 주에 세 번째 사이언스 믹서모임을 가졌습니다. 꽃구경의 유혹을 잠시 뒤로 하고 오전부터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분들이 더 계셔서 안도(?)와 반가운 마음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정우현 교수님의 저서 나쁜 유전자(2025)를 읽고 있는데요, 그 중 제3사나운 유전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3장의 흐름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동물의 폭력성과 관계된 유전자가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았던 유전학의 역사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탐색의 출발점으로 저자는 스탈린 시대를 선택합니다. 때는 스탈린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생겨난 수많은 문제 중에서 1933년의 우크라이나 대기근(Holodomor)이 발생한 시기입니다. 스탈린의 소련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 아래 놓인 우크라이나의 농촌에 집단농장을 강요했습니다. 예상한대로 이 정책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저항했던 이들은 무자비하게 억압과 숙청을 겪었고 농부들은 곡물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심지어 농민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종자까지 독재자는 모두 수탈해갔던 것이죠. 그 결과 정확한 숫자가 집계되지 않지만 2-300만 명 정도가 굶어 죽었다도 추정됩니다. 독재자답게 스탈린은 서방 세계에 이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언론을 봉쇄하고 억압하기도 했더군요. 이 때 식량이 긴급히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구원 투수로 트로핌 리센코라는 유사 과학자가 등판하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의 비호 아래 등판했던 리센코라는 인물이 끼친 영향은 역사가 잘 보여줍니다.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식 진화론을 부정했던 소련의 독재 체제는 이를 지지하던 수많은 과학자들을 숙청했고, 소련의 유전학과 농업은 수십 년간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숙청당한 과학자의 피붙이 가운데 젊은 유전학자 드리트리 벨랴예프가 있었고요. 그는 해외에서 인기 있던 은여우의 품종개량 연구원이었습니다. 그가 독재 당국 몰래 한 연구가 바로 은여우 길들이기였습니다.


 

곧 벨랴예프는 동물의 가축화과정을 연구한 인물입니다. 기본적인 방법은 순한 은여우 개체를 골라서 순한 개체끼리 세대를 이어 교배를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실험을 반복하여 50년 정도가 지나자 거의 모든 은여우가 개처럼 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 형성되어 갖추게 되는 한 생물종의 진화적 특성을,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극히 짧은 기간에 얻어낼 수 있었음을 입증한 결과였습니다. 이 실험은 인류가 아마도 몇 만 년 동안 형성된 개의 순한 특성을 한 인간의 생애주기 이내(70년에 가까운 실험)에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연구였던 것이죠.


 

무엇보다 이렇게 가축화된 동물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커다란 눈, 축 늘어진 귀, 동그랗게 말린 꼬리, 몸집에 비해 큰 머리, 짧아진 주둥이와 다리, 귀여운 반점 등”(125)의 공통점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유형성숙적 특징이라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성체가 아닌 어린 개체에게서 보이는 특징이 성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남아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특징을 지닌 동물들은 공통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 결과는 이미 가축화된 말(horse)과 가축화에 실패한 얼룩말, 현존하는 150종의 사슴 가운데 유일하게 순록만 가축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운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은여우의 가축화실험처럼 동물의 가축화에는 여전히 알아야할 것이 많은 수수께끼라는 점에 더하여, 얼룩말과 대부분의 사슴도 이렇게 품종 개량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던져 주네요.


 

이 상황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본다면 길들임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메타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질문은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가 되겠지요. 과학자들은 우리가 가축화한동물 역시 이 과정에 개입하고 참여한 인간을 길들인다는 통찰을 얻게 됩니다. 이른바 공진화의 관점에 주목하게 된 것이죠. 특히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는 순수하게 유전적인 진화만 일어난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개체를 둘러싼 환경이나, 집단 내에 형성되거나 이와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배경이 함께 진화 과정에 참여한다는 인식이 중요한 거지요. 또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일명 사나운 유전자혹은 폭력성을 드러내는 유전자가 있는지 줄곧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알아낸 사실보다 알아내야할 사실이 더 많긴 하지만, 과학 연구는 결국 어떤 행동이나 성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134)을 확인시켜 주었죠. 더 많이 알아낼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이게 마련이라는 교훈은 유전학에서 빠질 수 없을 듯합니다.


 

다윈의 진화 개념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 종의 진화에 대한 개념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따라가면 결국 인간의 진화에 도달합니다. 마찬가지로 동물의 가축화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진화와 가축화개념에 대응하는 설명을 찾도록 하는데요, 그 답으로 제시된 가설 하나가 자기가축화입니다. 이는 진화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이 제안한 가설입니다. 그는 하나의 종인 인류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관점은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악하다(‘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고 보았던 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맥락에 가깝게 여겨집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더불어 선천적으로 폭력적인 종이지만 자기가축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스스로 길들여 야만성과 공격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종이 될 수 있었다고 보았으니까요.


 

이 개념을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는 인물이, 랭엄 교수의 제자인 브라이언 헤어입니다. 그는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2021)에서 인간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자기가축화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인간에게 협력하게 하는 능력, 다정해지는 특성을 갖게 해주었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인간은 자기가축화 과정에서 폭력성이 감소했다고 설명하는 것이죠. 하지만 과연 인간의 본성에서 폭력성이 감소했는가, 라는 주장에는 아직 반론의 여지가 많은 듯합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가장 포악하고 잔인했기에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 종이라고 말하니까요.


 

나아가 저자인 정우현 교수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결론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특별한 형질을 가졌다고 해서 어떤 환경에서든 보편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질 리는 없기 때문”(139)이라 언급하지요.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조건에서 언제나 살아남을 수 있는 형질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적자’(the fittest)라는 개념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연선택이 일어날 때, 그 변화에 맞추어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140)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적자란 결국 그 종 혹은 개체가 결과적으로 살아남고 나서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자의 판별은 오로지 사후적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한편 저자는 자기가축화 가설의 원인이 다소 단편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음도 지적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기가축화 기작을 통해 단순히 폭력성의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환경과 문화, 교육 등의 복합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자기가축화 가설의 다정함이 지니는 이중성에도 주목합니다. 인간이 자기가축화 기작을 통해 다정함을 키웠다면, 그만큼 타인에 대한 배타성과 잔혹성도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죠. 내가 몸담고 있는 내집단과 그 경계 밖의 외집단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는, 이타적인 존재일수록 극명하게 나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서로 똘똘 뭉치는 집단일수록 외집단에 대해 강한 적대감도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죠. 하지만 자기가축화 가설의 입장을 주장하는 브라이언 헤어와 같은 연구자들은 이타적인 집단의 외부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자기가축화의 부산물이라고 말합니다. 폭력성이 줄곧 감소해왔다는 입장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적대감에 대해 설명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만약 인간의 점차 폭력성이 감소하고 다정해졌다면 이는 집단 생존의 관점에서 오히려 불리해졌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법칙이 다양함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인데, 집단이 다정함이라는 특징을 얻게 됨으로써 오히려 다양성이 줄고 보다 획일적으로 변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며 3장을 마무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명료하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축화 가설에서와 같이 인간의 폭력성이 감소하고 다정함이 더해졌다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이 모든 걸 다 잠재적으로 지닌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그가 처한 환경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여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성향을 지닌 존재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란 상황 및 맥락 의존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앞에서 이타성과 배타성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말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도 동전을 던졌을 때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그 사람의 본성도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으로 이해해보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여전히 인간이 드러내는 폭력성을 단순히 자기가축화과정의 피할 수 없는 부산물로 취급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러한 이해가 좀 두루뭉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본성이 (체질적으로) ‘좀 더 다정해 졌다는 무리한 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렇다면 저자가 제3장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견해와 견주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핑커는 자신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4)에서 인류가 현재에 이르도록 폭력성이 감소해왔음을 다양한 통계 자료와 수치로 논증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원동력으로 인간이 성취한 환경적 요인을 꼽습니다. 교육과 발단된 문화와 같은 요인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입장을 취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핑커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다양한 수치와 통계 자료를 끌어오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보는 입장이라,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 업적과는 별개로, 그가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견해는 설득력이 약해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저자인 정우현 교수가 핑커의 견해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간의 폭력성과 친화성은 환경적 요인이나 문화적 발달, 교육 방식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지 않은가”(141)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점에서는 핑커의 입장과 비슷한 결을 갖고 계신 듯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자도 핑커의 논거 제시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고자 저자가 언급한 사상가 토머스 홉스와 장-자크 루소를 소환해보면, 핑커의 입장은 인간의 본성으로 (과거에는) 폭력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홉스의 입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반면 인류의 폭력성이 감소해온 요인으로 교육과 문화의 역할에 주목하고 이를 신뢰한다는 점에서, 루소의 입장(계몽주의적?)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정우현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인류가 폭력성이 감소하고 협력성/이타성이 증가하여 얻게 된 이익만으로 이 특징을 인류 성공의 보편적인 요인으로 지목하기에 핑커의 견해는 너무나 단편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인간이 보이는 협력성/이타성에 상존하는 이중성의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자기편이라고 여기는 내집단에 비해 외집단에는 여전히 강한 배타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이란 존재는 이처럼 복잡다단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유전자만 보더라도 폭력성을 발현하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 존재해서 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사나운 유전가가 있는가를 묻는다면, 여기에는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애초에 인간에게 혹은 그 이전의 동물에게 폭력성은 왜 생겨났을까요? 어쩌면 이 질문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방이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는 맹수로 가득한 초원에서 살아가는 얼룩말을 극도로 예민하고 성질이 고약한(?)’는 특징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겠죠. 얼룩말에게 폭력성은 어쩌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와일드카드가 아니었을까요. 사자나 호랑이, 고릴라처럼 강하지 못했던 인간이 성공적인하나의 종으로 남게 된 건,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처럼 인간이 협력적으로 큰 집단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인간이 폭력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어느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그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제3장에서 저자는 앞의 1, 2장과 달리 보다 강한 어조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틀렸음을 분명히 하며 마무리합니다. 특히 우리가 폭력성이라고 부르는 생물체의 특징이 단지 진화 과정에서 사라져야할 특성이 아니라 종의 보존에 필요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봅니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 폭력성은 보다 다양한 맥락이 존재하므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 판단해야 겠지요. 나아가 한 존재가 폭력성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유전자만의 특징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존재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이유, 맥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봅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폭력성에는 유전자와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배후에 있었음을 한번쯤은 의심해보라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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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연희 사이언스 믹서 4월 모임 공지

《나쁜 유전자》 3장 - 사나운 유전자



책방연희(홍대)에서 1월부터 다시 시작한 과학책 읽기 모임 ‘사이언스 믹서’가 이번 주에 있습니다. 벌써 이파리가 돋아나고 꽃이 피는 4월이 되었네요. 이번 주에는 벚꽃잎이 많이 떨어질 듯한데요, 대신 꽃사과나무 꽃이 개화준비를 하고 있네요.


올해는 정우현 교수님의 과학책 <나쁜 유전자>를 여러 달에 걸쳐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달은 ‘과학의 달’이기도 해서 고민이 됩니다. 이번 주말에 꽃구경 갈지, 과학책을 읽으러 갈지 말이죠.
 

그럼에도 책방으로 오시는 분들이라면 <나쁜 유전자> 3장 ‘사나운 유전자’을 가볍게 읽고 오시면 됩니다. 이 책은 ‘유전자’라는 큰 범주 아래 각 장이 분명한 주제로 독립적이기도 해서, 지난 1회, 2회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셨던 분들도 부담 없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3장만 읽고 책에 언급된 내용을 소재로 감상과 견해를 나누어 주시고, 또 몰랐던 과학 지식을 점검해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또 3장만으로는 뭔가 부족하여 허기(?)를 느끼시는 분들은 3장에 언급 혹은 인용된 참고 도서를 읽고 보다 깊은 이야기를 모임의 2부에서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언급된 영화나 기타 도서들에 관한 정보도 참고하시면 깊이 읽기의 재미를 느끼실 수 있겠지요.


이번 4월 모임은 제3장 ‘사나운 유전자’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가축화’ 문제, 이타성과 인간의 본성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11시에 모여 사이언스 믹서의 1부와 2부를 무사히(?) 견디어 내신다면? 이제 꽃구경 가시면 되겠습니다. 곧 만나요!


모임 신청 및 문의는 책방연희 블로그나 인스타를 통해 하시면 됩니다.



일시: 2026년 04월 11일 (토) 11시-13시
장소: 독립서점 책방연희 홍대점













@chaegbangyeonhui

#과학책읽기 #책방연희 #나쁜유전자 #정우현 #사이언스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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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11 Season 17 과학이슈 11 17
박진희 외 10명 지음 / 동아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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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꼭 알아야할 과학이슈 11 Season 17

[동아엠엔비] (2026)

 



학창 시절에 배운 과학 지식을 훗날 다시 돌아보면, 지금의 학생들은 보다 더 깊어진 지식을 더 이른 나이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발견한다. 과학 분야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지식이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전공자라고 해도 새로운 발견을 일일이 따라가는 일은 벅차다. 늘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성과들에 관심을 두어야 현대과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의 각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일반인들을 위해 꾸준히 글도 쓰는 연구자들이 많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이런 변화 가운데 최근 주목하게 된 책이 <미래를 읽다 과학이슈 11> 시리즈였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시즌 17권으로 표제어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11>로 바뀌었다. 아마도 대상 독자를 일반인 위주에서 과학에 관심을 가진 청소년으로 구체화한 시도로 보인다. 좀 더 조사해보면 이 책은 자연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삼은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시즌 15호에 실렸던 상온 초전도체 논란을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이들는 분명 큰 틀에서 최신 과학 이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해당 이슈가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일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 먼저 주목한 주제는 양자역학 100주년이었다. 작년(2025)이 유엔이 선언한 양자과학과 기술의 해였는데,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이론을 정식화한 해가 1925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이론의 태동으로 범주를 확대한다면 1900년 즈음 베를린 대학의 교수였던 막스 플랑크가 양자개념의 도입한 일을 포함시킬수도 있겠다.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사건은 아인슈타인과 인연이 있다. 19세기까지 물리학에서는 빛이 파동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이 우세했는데, 플랑크의 실험 결과를 받아들인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이론을 정립했던 것이다. 이는 사실상 양자 이론의 정립에 큰 기여를 했는데, 문제는 아인슈타인이 양자 역학의 관점들에 강하게 거부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양자 세계의 여러 현상들처럼 양자역학의 역사에는 이처럼 아이러니한 사건들이 있다.


양자역학 100주년이었던 2025년에는 아마도 이를 기념하는 취지에서 양자 역학에 본격적으로 기여한 연구자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갔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호에 실린 2025 노벨과학상에 대한 글은 양자역학 100주년에 대한 글과 닿아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인프라 투자가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한다. AI 기술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여러 반도체 소자들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반도체 소자들의 구동 자체가 바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했던 결과다.




또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양자 컴퓨팅 분야는 어떤가.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컴퓨팅의 토대를 마련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는데, 양자 컴퓨팅 분야 자체가 바로 지난 100여 년간 양자역학의 지식이 축적된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양자 컴퓨팅은 양자역학 연구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양자역학 100주년글에서 소개되어 있는 양자 컴퓨터 구현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과 보다 관련이 있는 양자 컴퓨터 구동 방식은 낮은 온도에서 큐비트를 만들고 제어하는 초전도체활용 방식이었다. 하지만 큐비트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실리콘 스핀, 광자(포토닉스), 중성 원자, 이온 트랩이 있는데, 아쉬운 점은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 구현 기술 혹은 원리에 대한 소개가 거의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번 호의 대상 독자가 청소년이기에, 이 지점에서는 더 깊이 설명을 시도하지는 않은 듯하다.


매년 노벨 과학상이 발표되면 우리 과학 연구의 현실이 거듭 조명된다. 아직 우리 나라는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작년까지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만 31명이었다. 바로 이웃하는 나라임에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차이라 생각하는 요인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하나의 큰 분야에 천착하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결과를 빨리 내야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은 늘 해외의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주목받는 결과를 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반면 일본은 해외의 유명 연구실에 합류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연구를 지속해도 좋은 연구를 도출해내곤 한다. 우리도 이제는,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핵심 분야에서 우리 스스로 주도하는 연구를 하고 해외의 유명 연구소와 대등한 결과를 많이 축적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연구자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호에서는 양자역학과 노벨 과학상, AI에 관한 기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각 호에서는 늘 과학이슈 11가지에 관한 기사를 소개하기에, 이 책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한 최신 과학 이슈에 대해 분명히 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인 '피지컬 AI'의 개념이 이미 생체모방공학과 연결되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드론이나 로봇관련 연구에서 앞으로 더 활발한 기술의 접목과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청소년들이 이 책에 소개된 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 청소년들에게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일반인들이라고 이 책의 모든 이슈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닐테니 나만의 기우인지도. 전문가라고 모든 분야를 다 익숙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반대로 전문가들이 최신 과학 이슈들을 동료들이 아닌 비전공자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러 이슈를 다루는 글에서 비전공자들을 위해 좀 더 쉽고 기본이 되는 개념들에 대한 소개가 함께 정리되어 있는 책은 독자/학습자가 흥미를 갖는 분야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학창시절에 어느 분야에 대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아도 특별히 흥미를 끄는 분야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다면, 이 책의 기획 의도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과학 분야는 매일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되고 지식이 추가되는 분야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선별하고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어 앞으로 나올 <과학 이슈 11>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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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사이언스 믹서' 후기



일시: 314() 11-13

장소: 책방연희 홍대 본점


 


책방연희(홍대)에서 진행되는 과학책 읽기 사이언스 믹서두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작년 말에 출간된 정우현 교수님의 책 나쁜 유전자2(‘희귀병 유전자)을 함께 읽고 만났습니다. 책 전체가 유전자와 관련한 생물학 이야기다보니 모든 이야기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더 뚜렷해집니다.



2장은 대표적인 유전 질환이면서 발생 빈도의 95%에 해당하는 사례가 성염색체 이상으로 발병되는 혈우병으로 시작합니다. 특히 혈우병 보인자(carrier)였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손들이 러시아나 스페인 등의 왕가에 전파한 혈우병의 재앙이 인류사에 뚜렷하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손이 섞여 있는 러시아 지역 왕가의 신임을 받은 수도사 라스푸틴의 국정 개입, 그의 존재가 어떻게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는지가 혈우병이라는 유전 질환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어서 흥미로운 주제는 근친혼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얽힌 역사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넓은 영토를 정략결혼으로 확장해간 이 역사적인 왕가의 이야기가 알려주는 생물학적 교훈을 전합니다.‘정치 권력의 분산 방지, 왕족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근친혼이 재앙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합스부르크 턱이라는 표현으로 잘 알려진 이 유전 질환은, 주걱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턱, 늘 벌어져 있는 입과 둥글넙적한 입술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런 근친혼의 문제는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에게도 족내혼의 문제(특정한 질환의 발병율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100배 이상 높음)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만 저자는 이들이 족내혼을 집착해온 역사라고 하셨으나, 이를 조금 달리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국토재정복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추방되다시피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기록이 15세기에 보이고, 16세기 베네치아에 유대인 격리구역인 게토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분리와 배제의 기작은 이미 그 역사 오래되었다는 것. 그래서 이들 유대인들의 족내혼문제는 이들의 집착’(원인)이라기보다는, 지독한 고립과 배제의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죠.



현대에 이르러 유전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유전자 가위와 같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유전자 조절과 통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한 참여자분은 생명체에 대한 경계짓기의 어려움, 혹은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생물학적, 유전학적 문제가 거시적/미시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고 의견을 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사회적 합의라는 표현이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유전학의 문제는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야하는 정치적문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함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번 달에도 참여자분들의 적극적인 대화로 이야기가 풍성해졌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달(4)에는 제3사나운 유전자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음 달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4월(4/11, 토)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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