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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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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오리진

(On the Origin of Evolution)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진선출판사]

 


진화론에 이르는 서구 지성사의 한 단면, 진화중인 진화론의 연대기


 

지금부터 162년 전 3, 50세 생일을 막 지난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쓰던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다. 기대감과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 그는 자신이 막 완성한 종의 기원이 당대에 논란의 중심이 될 것임을 짐작했겠지만, 이후 전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버릴 줄 짐작했을까. 오늘날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한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라도 누구나 다윈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서는 천재과학자라는 타이틀도 심심찮게 사용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기작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그 역시 거인의 어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양한 과학 분야의 소재에 대해 책을 쓴 메리 그리빈·존 그리빈 부부가 진화의 오리진에서 주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마치 물을 가열할 때, 물속에서 분자들의 운동이 빨라지고, ‘거대한대류가 형성되며, 바닥에서 기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끊어 넘치는 것처럼, 진화론도 수많은 이들의 고민과 이의제기, 논쟁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나아가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진화론의 계보에 속한 많은 이들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글쓰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부터 현대의 후성유전학 분야까지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을 짚어 내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결하게 정리해내는 능력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끼지만, 이런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 진화론이라는, 섭씨 100도의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의 물속을 면밀히 조명하고, 나아가 진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론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의 세 가지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종 내의 경합과 생존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체들 간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세대를 거쳐 상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 요건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두 명의 사냥꾼을 쫓는 회색곰 이야기. 곰은 두 사람보다 빠르지만, 이 위기에서 생존가능성이 큰 사냥꾼은 두 사람 중에 보다 빠른 사람이다. 이 우스개에는 진화의 첫 번째 요건의 핵심이 담겨 있다. 바로 다윈이 말하는 생존 투쟁은 종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같은 종 내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두 요건은 책의 후반에서 보다 깊은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 현대생물학의 발전으로 DNA의 구조와 역할이 규명된 이후, 후성유전학과 같은 분야의 등장으로 진화의 의미가 보다 확장되고 깊이 이해되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러한 진화의 개념과 요건들이 다윈 혼자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개념은 이미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이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좀 더 가깝게는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인 1831년에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라는 사람이 쓴 책 부록에 이미 실려 있었다. 매튜는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을 언급하면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거의 만들어내었다(149), 라고 그리빈 부부는 지적한다. 게다가 매튜는 현대생물학 지식 없이도, 앞서 언급한 진화의 핵심 요건 세 가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끓는 물(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 직전 물속의 상태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다윈의 업적이 빛을 잃는 것도 아니다. 다윈은 커다란 업적은 끓기 전의 자신의 시공간이라는 물속에서 진화론이 인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필요한 임계치를 성공적으로 넘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아는 진화론으로 나오기까지 이미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점을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다윈의 업적이 오랜 시간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오랜 시간 거듭난 결과라는 점이다. 종의 기원에는 다윈이 20년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 책을 읽고 이해한 활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과의 서신 교환 및 토론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히 진화의 오리진에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의 교류가 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다윈의 세계와 월리스의 세계, 이렇게 다양한 각자의 시공간이 진화론의 정립이라는 목표을 향해 실감나게 병치되어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진화론이 천재다윈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서구지성사가 이루어낸 인류 공동의 지적 결과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책을 읽으며 진화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난한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대립해온 인간 지성의 도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샤를 보네(Charles Bonnet)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자신의 책에 처음 사용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 에볼루치오넴(enolutionem)'서 나왔다고 한다. 다만 보네가 이 용어에 담고 있던 생각은 하느님이 종을 창조했으며, 이 종은 불변 한다’(51)는 것이었다. 바로 이미 적혀 있는 (하느님의) 두루마리를 펼친다’(54)는 의미였기에,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진화관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진화라는 용어의 개념조차도 진화해온 셈이다. 그 밖에도 진화론자들이 생물학자이자 사제였던 많은 이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겪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사제이자 역사학 및 정치경제학교수를 지냈던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맬서스는 자신의 인구론(1798)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인구 증가 기작을 언급했다. 나아가 인구 증가의 억제 요인으로 포식자, 질병, 가용 식량’(151)을 제시한다. 앞에서 언급한 앨프리드 월리스도 자신의 책 나의 인생 My Life에서 맬서스의 인구론 에세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198)고 기록하고 있다. 다윈의 경우, 그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은 그 다음 해(아마도 1838)에 처음 읽었다고 한다. 이 때는 비글호 항해기를 집필하던 시기이므로, 이 과정에서 인구론을 접하고 진화론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맬서스의 인구론은 진화론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맬서스 인구론의 기본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인구론의 기본 가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환경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우월하기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리는 자칫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우월성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변용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생학의 역사가 이러한 논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책으로 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 , 를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살아남은 세력이 우위를 누리게 된 이유로 맬서스의 논리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곧 현재 우위의 차이는 바로 우연한여러 환경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이다. 어느 개체나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 그 자체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가정이 맬서스의 논리와 미묘하게 차이난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차이가 도달하는 지점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처럼 개인의 굳은 믿음 혹은 신학적 신념의 비판과 공격, 얽히고설킨 입장 및 논리의 차이를 겪어내며 등장한 이론인 셈이다.


이렇게 진화론의 역사만 보더라도, 진화론은 분명히 과거의 전통 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인간적인 요인으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정체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후퇴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진화론 발달사가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의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퀴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의 골격을 비교하고, 이를 매머드 화석과도 비교 연구를 한 인물이다. 또 코끼리를 닮은 오하이오 동물에 마스토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이기도 하며, 멸종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한 인물이기도 하다(135). 문제는 1810년 무렵 이후 사망할 때까지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종이 멸종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진화한다는 사실을 반대했다. 그 결과 적어도 진화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라마르크와 조프루아의 연구가 한 순간에 빛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생물학계는 그대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퀴비에의 영향력으로 진화론 연구의 중심은 바다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지성사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로, 스탈린 시대의 생물학을 떠올릴 수 있다. 흔히 리센코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례는 스탈린의 요청을 받은 소련 생물학자 리센코가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는 유전 및 진화이론을 공공연하게 부정했던 사건이다. 일명 반멜델주의 생물학으로 표현되는 리센코의 생물학은 스탈린 치하의 공식 생물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련 과학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사례에 해당한다. 이 이론에 반대하던 과학자들은 직업을 잃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가 현대사에 실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진화론을 세상에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 다윈이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달랐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렇듯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기에 인간적인 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진화론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에는 현대생물학, 유전학의 발달 이후의 진화론에 대해 다룬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다양한 생물 종과 개체들에서 세포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현미경 및 결정학의 발달 등으로 생물학은 유전 인자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용어만 알고 있던 후성유전학의 간단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수확이었다. ‘획득형질이 유전 된다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후성유전학의 교훈은 특정 환경 속에서 개체가 획득한 특징이 최소한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평유전자 전달사례처럼 유전되는 특성이 수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유전자 수준에서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311)라고 했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현대생물학의 발달이 더해져 생명에 대한 이해를 지금도 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 기독교 사상을 비롯한 사회의 통념과 금기시된 지식에 대한 도전의 역사와 다윈 이후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무대에 최후의 승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큰 기여를 했지만 사회적 관습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모습도 발견한다. 월리스와 다윈의 경우는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된 보기 드문 사례다. 실제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계급의 차이나 성차별적인 관행에 의해 뛰어난 과학자들의 공헌이 가려지고 무시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한 번 더 노벨상을 수상했을 법한 매클린톡의 사례는 후대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론이 형성된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인간의 편견과 신념이 어떻게 여기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폐해를 남길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현대생물학의 발달로 유전체는 항상 역동적인 변화 상태’(299)에 있는 존재라는 것과 생물체가 돌연변이 없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311)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생물체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진화론 역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짐에 따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의 생물이 복잡한 정도에 따라 각기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의 사슬‘ 내지 ‘생명의 사다리‘ 관념을 그리스 도교 사상가에게 전해준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P17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자로 (...) 루크레티우스조차 인간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동물은 자기 종족을 복제할 수 있어야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여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 P21

"린네는 종교적이어서, 새로운 변종의 식물이 때때로 생겨난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새로운 종이 진화하여 생겨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희한한 일은 종은 불변하며 종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라고 믿은 다른 사람이 ‘진화‘라는 용어를 생물학에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린네와 같은 시대 사람인 샤를 보네다."- P51

"모든 온혈동물은 위대한 제1원인으로부터 동물성을 부여받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 따라서 타고난 원래의 활동 방식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량해 나가는 성질과 그렇게 개량된 점을 세대에서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자신의 책 <주노미아>에서 밝힌 생각- P120

"매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종의 개체가 늘어나 경합과 ‘생존투쟁‘이 일어날 것, 한 종에 속한 개체들 간에 ‘변이‘가 있을 것, 변이가 ‘상속‘될 수 있을 것이 그 세 가지다."- P150

"체임버스의 <창조 자연사의 흔적>(1844)은 선풍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진화를 상류 인사들의 대화 주제로 만들었다. "- P159

"월리스가 말레이 제도로 떠나기로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밴 와이는 빈 출신의 어느 비범한 여성이 말레이 제도에서 보내온 귀중한 표본을 스티븐스가 취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여성은 이다 라우라 파이퍼(Ida Laura Pfeiffer)로, 1797년 태어나 1842년 남편이 죽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P178

"1854년 9월부터는 종의 변성과 관련하여 내가 적어둔 어마어마한 양의 노트를 정리하고 관찰하고 실험하는 데 내 모든 시간을 바쳤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를 끝내고 다시 진화에 관심을 돌려 <종의 기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정황- P182

"(<종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현대의 종이 어떤 단일 개체로부터 이어 내려온 공통의 후손이라는 생각이었다."- P218

"세부 논쟁은 여전하지만 (진화론에 관한) 현대종합이론은 1930년대 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P254

"1980년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이나 참나무 같은 복잡한 생물체의 유전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P299

"‘생명의 책‘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그 책에서 어느 구절을 읽고 행동할지는 세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환경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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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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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Until the End of Time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지음 |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그러므로 나는 특별하며 동시에 우주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불사의 신과 필멸자 영웅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다. 하지만 이 두 부류는 모두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사랑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을 갖고 보복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보통의 인간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 중에 죽어간 용사들의 이름을 자신의 시에서 일일이 호명했던 현대 시인도 있듯이, 우리 개별적인 존재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특별해질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초끈이론이론의 관점에서 평생 우주를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이번에 읽은 그의 저서 엔드 오프 타임 Until the End of Time은 우리의 시선을 우주의 시작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안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펴냈던 전작들에서도 조금씩은 언급을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었다. 이번에 나온 저서는 자신의 신념에서 출발하여 이라는 과제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하고자 했다는 인상을 준다. 일리아드에서 영웅과 함께 죽어간 수많은 전사자들처럼, 우리 개별적인 존재들의 삶이 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는 빅뱅으로 비롯된 우주의 시작과 엔트로피를 비롯한 물리법칙에 입각한 우주의 진화를 여러 장에 걸쳐 소개한다. 이어 생명체가 등장하고 진화과정을 거친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에게 의식이란 능력이 갖추어지는 정황을 제시한다. 이 의식이란 무엇보다 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을 의미할 것이다. 저자가 취한 환원론적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외부의 환경과 반응하여 내부의 입자들이 개별적으로 특별하게배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지점은 인간사의 모든 현상에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마음은 물리법칙을 따르는 생명체에 기반을 둔다는 입장에 있지만, 물질과 마음의 관계에 있어서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도 진지하게 고려하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그린이 젊은 시절에 과학 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업으로 삼은 이유가 영원한 가치를 갖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간간이 소개하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점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친형을 언급한 부분이다. 저자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연하고 다양성을 고려하는 입장은 아마도 이런 배경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와 물리학은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곳에서 불변의 진리를 찾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291)라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견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며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자유의지는 고전물리학(결정론적)이든 양자물리학(확률적)이든 이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유의지와 물리학의 양립가능성을 취하는 대신, 우리 각각의 내부에 형성된 복잡한 배열이 다양한 행동을 낳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하고 다양한 (행동의) 자유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의 도입부에서 잠시 언급되었지만, 여러 철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이 죽음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에서 탄생했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신화 역시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했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저자는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고 인간으로 진화해온 정황을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존재의 유한성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화와 종교,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전한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존재이기에(그렇다고 유일한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감과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한다”(37)고 선을 긋는다. 이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분별이 생겨나고, 인식능력을 얻으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일 듯하다. 인간이 본래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9장과 10장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물리법칙, 특히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주의 진화를 최신의 연구 성과를 더하여 설명한다. 그것도 아주 머나먼 미래에 우주가 겪게 될 운명을 말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사고(생각하는) 행위가 엔트로피와 열이 서로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도 먼 미래의 우주에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고실험이었다. 저자는 지극히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열역학적 관점에서 사고활동을 포함한 생명활동이 정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436)이라는 저자의 결론은 이해가 가면서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막연하게 수긍하는 것과 분명하게 자각하는 행위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종교, 과학, 철학, 예술 등)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우주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린 거대한 우주라는 무대에 잠시 등장하여 사라질 양자적 잡음에 불과한가라는 다소 회의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저자는 앞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특별함이 지금 여기의 삶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개별적인 존재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 말이다.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각 존재는 입자들의 독특한 배열로 이루어진 존재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에 더하여 우리는 각자만의 자유로운 몸짓,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관점이다. 이 부분은 물리법칙이 예측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영화 <애니 홀 Annie Hall>에서 주인공이 앞으로 수십억 년만 지나면 우주가 팽창하다가 찢어져서 모든 게 사라진다는데(빅립, Big rip을 의미), 숙제는 해서 뭐하게요?”(453)라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자녀가 오늘 숙제를 해야 할 이유를 고민하는 학부모라면, 자녀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가 시작한 시점이나 종말을 인식할 수조차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있는 지금 여기가 특별하고 의미를 지닌다는 저자의 견해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칼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주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대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주다라고 할 수 있겠다. 불확정성에 근거한 양자적 요동으로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입자가 형성되었고, 입자들이 구름이 되어 뭉쳐 중력과 핵력의 영향으로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별과 행성 뿐 아니라 생명체의 출현을 예비했다. 엔트로피의 열역학법칙을 고려할 때 생명은 다소 이례적으로 물질에 갇힌 엔트로피를 해방시키는 하나의 수단’(116)으로서 역할을 한다. 통계역학 및 열역학적 관점에서 유전 물질의 안정성과 구조적 규칙성을 탐구한 에르빈 슈뢰딩거와 비교할 때 더 큰 스케일에서 생명을 바라본 셈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역작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제시했던 것과 유사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우주가 빅뱅을 통해 입자들이 등장하고, 은하와 별, 그에 딸린 행성들이 어떻게 생겨나며, 생명체의 존재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인간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지점은 엔드 오프 타임과 유사하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이 지점에서 인간의 존재란 어떤 존재인지 그 본성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가까운 미래를 염려한다. 미국이 구소련과의 냉전이 아직 진행중이던 시기에 쓴 저작이기에, 특히 핵문제를 비롯한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읽어야 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결과물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칼 세이건은 인류의 생존을 염려하며 인간의 연대, 연결됨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반면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저자는 인간의 출현까지 설명한 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 보다는 의식의 출현, 그리고 우주 전체의 종말에 이르는 보다 포괄적인 범위를 전망한다. 나아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의미 찾기에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우주에 관한 진실을 알았다면, ‘지금 여기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을지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다. <애니 홀>의 앨비 싱어가 취한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할지, 아니면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인간의 삶은) 두 어둠 사이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33)이라고 한 것처럼, 우주 속의 작은 존재에 희망을 걸지는 각자의 선택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선택의 가능성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내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언젠가 만났던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라는 카뮈의 문장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우리는 존재 자체로 경이로운 일’(456)이라고 했지만, 카뮈는 이 존재의 의미 찾기과정을 이미 한 층 더 진지하게 밀어붙였던 것 같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제시된 과학 이야기는 모두 흥미롭다. 다만 무엇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은 우리의 오랜 과거나 머나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포함한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네가 아니고 왜 나인가?’라는 문제를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우리가) 왜 특별한가?’라는 문제를 두고 앞으로 더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잘 표현한 예술 작품을 꼽으라면, 난 폴 고갱(Paul Gaughuin)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떠올리겠다. 이 작품은 고갱이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한 후 남긴 대작이기에, 카뮈의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관점에 따라 생각해보면, 고갱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이었다





Paul Gaughuin (1897년 작)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처럼 모든 생명 현상과 정신도 유한하다."- P22

"별과 행성, 그리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우주를 생각할 때, 지금 이 시대는 참으로 특별하다."- P35

"분자의 수가 작거나, 온도가 낮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작으면 엔트로피가 작고, 부자의 수가 많거나, 온도가 높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크면 엔트로피가 크다."
- 엔트로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의 결론
- P57

"지금도 우주 곳곳에서는 증기 기관 내부의 엔트로피가 주변 환경으로 방출되는 것과 유사한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을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이라 부르기로 하자."- P72

"모든 동물의 세포는 서로 비슷하다. 현존하는 모든 다세포 생물은 먼 옛날에 존재했던 단세포 생물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P134

"모든 생명 현상은 최후의 쉼터를 찾아가는 전자(electron)의 여정이다"
-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의 핵심이 ‘산화환원‘ 반응임을 의미한다.- P14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시행차오를 통한 혁신에 가깝다."- P151

"우리는 입자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감정이 생성되는 과정은 모른다. 곧 ‘마음이 없는 입자가 어떻게 마음을 만들어내는가?‘라는 문제는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P187

"자유의지는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물리 법칙에서 온 것이 아니다."(219)

"당신의 행동은 자유의지와 무관하다 해도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484, 미주46)- P219

"인간의 감정은 문화적 적응이 아닌 생물학적 적응과정의 산물이다."
-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재인용- P302

"예술이란 불멸을 추구하는 행위다."(319)
- 키스 해링 Keith Haring

"예술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원을 향한 갈망을 창조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342)
- 브라이언 그린이 키스 해링의 표현을 조금 바꾸어 표현한 듯한 문장- P319

"생명 현상(두뇌활동 포함)은 엔트로피 폐기물(폐열 waste heat)을 외부로 방출해야만 한다."
-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먼 미래의 생명과 마음을 예측하는 논문의 기본 전제

"사고체 thinker가 생각과 휴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 영원히 생각할 수 있다"
- 다이슨 논문의 핵심 주장(사고 행위가 필연적으로 열을 낳기 때문임)- P386

"우리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P436

"모든 사람들이 정체성을 잃었다. 죽음이 없으면 단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한다...나는 신이며, 영웅이며, 철학자이며, 악마이며, 세상 자체다. 이는 곧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루이스 보르헤스 <불멸 The Immortal>에 나오는 표현으로 보르헤스의 통찰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놀랍다.- P447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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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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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Ernst Peter Fischer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

 

 

지식은 금지가 아니라 통제되어야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괴테의 파우스트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구약 성서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이 모든 캐릭터의 공통점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나는 이들이 앎 또는 지식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는 점이라고 답하겠다물론 이 관점은 과학저술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금지된 지식에서 제시한 것을 기반으로 종합해본 것이다저자는 오디세우스가 지식에 중독된 자이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어 하여항해를 통해 모든 경계를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 말한다파우스트는 이 세상의 온갖 지식을 섭렵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결국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기면서까지 감각적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추구하려 한다또 저자는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를 지식과 진실을 향한 인간의 욕망’(302)을 드러내는 인물로 해석한다신탁이 예언한 금지된 지식을 얻자어머니이자 아내는 자살하고오이디푸스 자신은 핀으로 눈을 찌른다구약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는다그 결과 분별을 얻는 대신 에덴에서 영원히 추방당한다.

 

이처럼 문화사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식에 목말라 한다는 점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추구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9)라고 언급했는데고대인들도 이미 알고자하는 충동호기심을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이 본능이 얼마나 강렬한지는 문학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이야기 문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천일야화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화자인 셰에라자드 공주는 인간의 강한 호기심을 이용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제한하고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지켜낸다이 이야기를 지어낸 이들은 분명히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이들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 속의 이야기와 작품의 구성에 어떻게 반영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바로 이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앎에 대한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금지되어 왔는지를 폭넓은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저자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식의 위상에 대해 먼저 검토를 한다저자는 지식이 무엇인지 묻는데그에 따르면 지식이란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21)이다나아가 지식과 정보’, ‘데이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한다정보는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곧 1차적으로 우리에게 접수된 것으로신체에 감지된 감각 정보를 떠올릴 수 있겠다이에 반해데이터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다이렇게 데이터정보지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위계구조를 갖는데지식을 의미 있게 사용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따라서 지혜는 단지 인지 작용이 대상에 개입된 것을 넘어 어떤 가치를 내포하게 된다한편 지식에는 인간의 인지작용이 개입하기 때문에 각각의 인식 주체에 따라 지식 도출과정과 그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따라서 인간이 타인과 겪게 되는 충돌과 불화는 어떤 면에서는 앎에 대한 강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앎에 이르는 과정그리고 앎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에 따르면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지식과 성의 긴밀한 유착관계다뱀의 유혹을 통해 이브가 획득한 금지된 지식은 금지된 사랑’ 곧 성적 결합을 의미한다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사회 권력이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57)한다그는 인류사에서 지식과 성에 권력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보여주었다이렇게 권력이 지식과 성에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은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한편 서양 사회에서 이러한 특징을 예비했던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닐까한다그는 어느 시기에 계시를 받고 회개한 후,고백록을 쓴다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반성하는데중요한 것은 그가 원죄’ 개념을 생각하고 종교 철학에 도입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이 개념은 곧바로 지식에 대한 금지로 이어지게 되었다피셔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억누르고 금지했던 인물로 평가한다그의 원죄 개념이 종교라는 권위와 결합하여 도출한 금지된 지식은 인류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무엇보다 유럽 지식인의 관점에서 지식 금지의 역사를 방대하게 다룬다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내에 큰 영향력을 지니는 미국문화 중심 사례가 아니라 유럽 중심의 사례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한국인 독자로서 비교적 신선하게 다가왔다또한 저자는 구체적이고 수많은 지식 금지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금지된 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이미 우리는 전 세계가 팬데믹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왜곡되고 비밀스럽게 유지된 정보가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경험했다발병 초기에 (COVID-19의 시작이 정말로 중국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중국 정부 당국이 환자들에 대한 정보를 숨기기만 급급했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또 국내 모 종교집단의 방역지침 무시와 비협조정보의 은폐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분명히 보았다저자는 정보지식 사회에서 지식의 은폐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질 때 사생활의 권리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예를 들면저자는 정보 권력에 의해 개발된 알고리즘으로 인간이 감시받게 될 때를 제시한다손글씨나 얼굴 분석만으로도 해당 사람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알아내는 사례는 독자를 왠지 오싹하게 만든다이제 우리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보다 더 공개되고 투명해질수록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은폐된 지식이 공개되어 왜곡되어온 진실을 바로잡고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지식의 투명성이 모든 경우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최종적인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할 때 제안된 근거 기록에 대한 열람 금지 기간이 지나 공개되었을 때저자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수상자를 결정한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무지와 오판을 알게 된 저자는 오히려 투명성이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모든 마술에 대해 비밀스러운 진실을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마술사의 침묵을 바란다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저자가 지식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태도다다시 말해저자는 지식을 금지하기 전에 지식을 책임감 있게 대하는 일”(244)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아울러 고객을 착취하고 이들의 정보를 대가 없이 빼앗는’ 정보 권력 페이스북의 사례와 인간유전자 정보와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결국 저자가 지식에 대해 갖는 태도는 (지식이금지되어서는 안 되지만 통제되어야 한다’(364)는 입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결국 저자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항은인간의 지식을 향한 충동은 기본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인간의 호기심을 인정하고이를 강제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이런 본능은 유전자 조작이나 권력으로도 금지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저자의 관점은 인간이 지혜를 모아 이런 지식에 대해 제한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금지되지 않은 것은 인간을 급속히 지루하게 만든다하지만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한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진실을 향한 열망과 환상에서 느끼는 기쁨으로 충분하다’(311)고 느끼는 역설적인 존재인지 모른다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금지된 지식과 관련한 과거 사례를 검토하여점점 강력해지는 정보 권력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나아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조건을 우리가 다시 인식하길 요구하고우리의 호기심그리고 지식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갖추길 바란다그래야 비로소 지식 그 자체가 또다시 만들어내는 비밀에 인간은 계속해서 호기심과 감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리뷰의 마무리는 이 책에서 줄곧 언급 된 파우스트의 한 구절로 마무리해본다.

 

그걸 인식한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어리석어서충만한 마음을 혼자 간직하지 못하고

몽매한 무리에게 자신이 느낀 것본 것을 발설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은 자고로 십자가에 매달리고 불태워졌지.

자아이보게밤이 깊었네,

이제는 그만해야겠네."

(파우스트 I, 정영애 역, 123)



"지식 추구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언급한 말- P9

"금지된 지식은 우리를 뜨겁게 만든다."
: 볼프 비어만의 말- P15

"지식을 향한 갈망은 성적인 호기심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P65

"(태양 중심 체제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저주는) 맹목적인 배척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우주론에 담긴 종교적, 정치적 함의가 불러올 막연한 공포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역사가(미시사 전공)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언급 - P145

"핵시대에 확실한 안전 보장의 근본 전제는 개방성과 공개성뿐이다."
"(인류는) 대중적 이해와 비밀 정치 및 권력 정치의 추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이후 ‘원자력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숙고하고 한 말.- P171

"인간은 지금까지 지성(Verstand)에 붙잡혀 있었고, 그 도움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성(Vernunft)을 생각해야 하며, 이성의 도움으로 지구 위에서 인류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 칼 야스퍼스의 말- P205

"지식이란 인간이 관찰 감각을 통해 모으고 시각적 인지를 통해 인식한 경험적 재료를 개념이나 생각과 연결한 다음, 이 연결을 자신의 관점으로 표현하여 외부에 전달하는 일을 뜻한다."- P207

"진정 중요한 건, 지식을 금지하기 전에 지식을 책임감 있게 대하는 일이다."- P244

"진실은 인간에게 요구될 수 있다."
: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1959년 연설 인사말(진실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언급)- P274

"칼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잠정 지식만을 전달할 수 있고 또 다른 실험에서 반박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려와 의심은 오로지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활동이다."- P292

"금지되지 않은 것은 인간을 급속하게 지루하게 만든다."- P319

"국가의 정보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사생활의 권리‘는 어려움에 놓여 있다. 조세제도는 개인 정보에 대한 개입을 요구했다."- P328

"오늘날 절대적으로 사적인 것은 점점 더 공적인 것이 된다."- P348

"공적 영역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의 편재성 때문에 사적 에로스는 사멸한다."
: 사회학자 라이너 그로네마이어의 언급- P355

"인간은 삶에 드리운 장막에 오히려 감탄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비밀을 준다. 인간은 이에 대해 진정으로, 계속해서 감탄할 수 있다."-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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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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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Paul Nurse)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생명을 다시 쓰는 시시포스의 과업


대학 시절에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였다물론 슈뢰딩거가 활용하는 다양한 물리학 개념을 따라가기엔 벅찼지만생명 또는 생명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에 대한 슈뢰딩거의 신념이 인상적이었다그의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는 달랐다그 대신 열역학법칙이나볼츠만의 통계적 관점에 토대를 두고 타당한 논리를 구성하여 설명해보고자 했다물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한 물리학자의 대담한 제언이 얼마나 많은 자연과학도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떠올려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양한 학자들이 동일한 제목을 걸고 생명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다후대의 우리는 많은 이들이 생명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작업을 요구하는지는 지금까지 나온 책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 다시 한 생물학자가 이 커다란 주제를 건드린 셈이다이번에는 영국 유전학자 폴 너스가 집필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 생물학이 바라보는 생명 현상을 살펴본다그는 세포 분열의 조절에 관한 주제를 오래 연구했고암치료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인물이다이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지만 그는 효모균을 주요 실험 대상으로 하여 세포 분열 주기에 관한 메커니즘을 연구했고여기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인상은저자가 슈뢰딩거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시각을 반영했던 기획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대신 저자가 생명 현상을 정의하는 여러 측면을 일관되고 통합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정리하고자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특히 부단히 발전하고 있는 최신 생물학의 이해에 바탕을 둔 설명이기에 새롭게 배운 부분은 상당하다이 책에서 저자는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세부 사항과 지식들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이 책은 생물학 서적이지만 보통 등장하는 세포 혹은 유전자를 설명하는 그림은 단 한 점도 나오지 않는다저자는 물 흐르듯 다섯 가지 키워드를 따라 생명 현상을 설명하지만어떤 문장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몇 시간의 수업과 책을 읽어야 하는 밀도 있는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저자가 핵심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설명해 나가기 때문에 책이 빨리 읽히진 않는다는 말이다이런 책의 성격상 저자가 설명하고자 했던 생명 현상의 특징적인 다섯 가지 측면에 대해그리고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간추려 각각 두 문장 정도로 요약해보았다.

 

(1) 세포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기능적 기본 단위로서이 세포의 분열은 생물이 성장 및 발달하는 토대가 된다우리는 엄청난 수의 신체 세포와 그 외의 세포가 모여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하는 존재다.

(2) 유전자유전자는 생명의 설계도로서생명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하는 명령문이다이중 나선 구조로 이루어진 유전자는 생물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며오랜 시간을 견딘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3)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자연선택은 다윈이 제안한 모든 생물의 진화 메커니즘이다유전학적 관점에서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지려면개체가 번식할 수 있어야 하고유전 체계를 지녀야 하며이 체계에 다양성이 존재하여 변이를 허용해야 한다.

(4) 화학으로서의 생명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화학적 관점(특히 생명을 물리·화학적 기계로 바라봄)에서 설명한다선형 단백질 중합체 사슬이 3차원 구조를 갖추며 독특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갖게 되어생명활동에 토대가 되는 촉매 역할을 비롯한 모든 화학 반응을 수행하게 되었다.

(5) 정보로서의 생명전체로서 기능하는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이동과 저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세포막으로 구분하는 생명 내부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생명은 외부 세계와 내부 상태의 정보를 끊임없이 모으고 활용하여 이에 대응한다.

 

저자는 이렇게 생명현상을 몇 가지 주요 키워드에 입각하여 설명했는데각각이 사실상 따로 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그는 단지 관점을 옮겨 생명의 다른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저자 폴 너스는 오랜 시간 (효모)균의 세포 분열을 기반으로그 중에서도 세포 주기를 제어하고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고 그 메커니즘을 연구했다그러므로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가 분열하는 현상 그리고 외부 세계와 분리하는 세포 막 내부의 모든 화학 반응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그가 발견한 연구 결과는 암세포에 대한 이해와치료에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책에서 줄곧 드러나듯이 그는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수록 우리가 생명 활동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자연선택’ 개념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진화 기작이다이번 독서는 유전학의 발전 이후 세포 혹은 분자 수준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측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자신과 동일한 대상으로 분열하는 원핵생물과 달리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들은 진핵생물로서유성생식을 통해 유전 체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곧 진화의 관점에서 어떤 생물 집단의 유전 체계에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변이의 가능성이 높고 이를 대물림할 수 있다면 그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이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저자가 언급한 사항 세 가지 중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생물이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생물이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이 있는 다음 세대가 그들을 대체할 수 있게”(79)되기 때문이다모든 생물이 격어야만 하는 현상인 죽음이 내겐 새롭게 다가왔다다시 말해 자연은 각 개체가 소멸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매번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변이를 도입하거나 발현하여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물론 중요한 것은 자연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생명체에게 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오랜 시간 동안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이전에는 죽음이란 현상을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생물학을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스토아 학파나 몽테뉴처럼 죽음에 초연해지는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계(세포막밖의 세계에 대응하여 경계 안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생존해야 하는 입장에서생명의 소멸죽음 역시 생명 활동의 일부라는 점에 비로소 수긍이 간다.

 

저자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다섯 단계를 지나 생물학 연구의 의미와 역할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전체적인 인상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과학자로서과학자가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생명의 화학적정보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생명을 이해하는 능력뿐 아니라생명 활동에 개입하는 능력도 늘어난다.”(165) 그는 앞선 장에서 시도한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새로운 장에서 새로운 기술 가능성과 그 기대를 이야기하고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들도 언급한다다만 유전학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인지황금벼와 같은 유전자 변형(GM)작물과 합성생물학에 대해 낙관으로 일관하는 인상을 받았다이 부분은 아직 보다 공정하고 지속적인 후속 연구를 통해 활용 가능성과 우려 사항가능한 부작용 등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의한 인위적 선택으로 품종을 개량해온 이야기로 시작하지만현대 생물학에서 유전자 편집 등을 통해 생물체에 변이를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그 결과가 인간이 자연에 주고 있는 스트레스에 한 가지 더 추가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이 우려는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 준 사례들을 고려할 때 타당하며그래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전문가 모두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유전자 변형 작물이나 새롭게 만들어낸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사는 모든 생물과 환경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는 분명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이 부분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저자의 주장대로 이런 사항들은 사회 전체가 주도하여 공공의 논의와 다양한 관점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생명 현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세세한 지식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을 넘어 생명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그래서 생명을 이해하는 다섯 단계의 개념 중에서도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 현상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본인이 언급한 바에 비추어 이해해보면생명은 복잡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계라는 시각에서 더 나아가 목적을 가지고 전체로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화학적/물리적 정보 기계이다곧 생명은 외부와 내부의 정보를 관리하고 조정하며 제어하는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다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은 유전자나 촉매 반응에 주로 의존하는 효소가 일종의 스위치로서 기능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겠다그리고 이 스위치 제어는 생명이 존속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유지하고자신의 유전자를 대물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다른 생물학 관련 서적과 달리 단 한 점의 그림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저자의 의도는 무엇보다 세세한 지식 보다는 생명 현상에 대한 맥을 하나의 호흡으로 설명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싶다다만 밀도 있고 핵심적인 내용을쉬지 않고 들려주는 것 같아 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 군데군데 있었고 다소 지치는 지점이 있었다이런 부분은 저자의 설명이나 옮긴이의 주석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정리하면이 책은 아주 간결한 언어로 담백하게 생명 현상에 대한 특징들을 담아 낸 책이다물론 간결한 언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쉽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유전학자이자 암 연구에 오래 매진해온 대가 나름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생명 현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맥을 짚어준다고도 정리할 수 있겠다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어쩌면 이 작업은 결코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생명 현상을 다시 쓰는 이러한 작업은 인류가 생명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시도해야할 시시포스의 과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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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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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The Gospel of Eels: Sons, Fathers, and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패트릭 스벤손(Patrik Svensson) 지음 |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자로서 현대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여겨진다. 그는 터키 연안의 큰 섬 레스보스에서 머무는 동안 동물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저술한 동물의 역사17세기 까지 자연 과학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상황을 다르게 보면, 인간의 자연과학 탐구 방법론이 2,000년 넘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특히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뱀장어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뱀장어의 내부 장기 배치와 아가미 구조에 대한 글을 방대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혁신했던 프로이트 역시 젊은 시절 뱀장어 연구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청년 프로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관찰 기법에 따라 아드리아해 뱀장어를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 사이에는 2,000년의 시간 격차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뱀장어를 매우 진지하게 연구했다.


스웨덴의 신문 기자 패트릭 스벤손은 자신의 책 ,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줄곧 유럽 뱀장어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이 뱀장어가 얼마나 신비에 싸인 존재인지 설명한다. 이 책의 뚜렷한 특징은 저자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교대로 전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홀수 장에서 뱀장어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자료를 소개한다. 이어서 짝수 장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억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와 추억을 뱀장어를 매개로 회상하고 있다.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보육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노동자 계층의 자녀였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했던 기억을 돌아보며 뱀장어가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이어준 연결고리였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뱀장어가 우리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두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우리에게 식당 메뉴에서 흔히 보는 존재이지만, 의외로 뱀장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특히 이들은 비밀스럽고 독특한 본성 때문에 오랫동안 산란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설 제목처럼 대서양에 위치한 광막한사르가소 바다가 유럽 뱀장어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다. 그렇다면 알에서 깨어난 조그만 뱀장어들은 저자의 고향까지 6,000 km가 넘는 대장정을 거쳐 왔다는 의미가 된다. 도대체 몇 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뱀장어들이 대서양의 서쪽 한복판에서 어떻게 북유럽 해안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신기하지만 뱀장어가 여러 번 변신을 하고, 바닷물과 민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되면 뱀장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뱀장어의 비밀스러운 기원과 생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탐구와 그 여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알에서 부화한 후 네 번의 변태를 거쳐 다시 태어난 산란지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뱀장어의 엄청난 이동거리를 고려한다면 이 작고 평범해 보이는 뱀장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인간은 뱀장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여정을 따라 이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인간이 이 질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뱀장어는 멀리 떨어진 강과 웅덩이가 있는 민물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어느 시기에 알을 낳기로 결정하면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뱀장어의 특성을 보고 사람도 뱀장어처럼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49)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뱀장어의 관점에서 이 존재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해양 생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의 집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뱀장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뱀장어의 유생 상태를 찾아 그 산란지를 밝히기 위해 대서양에서 20년 가까이 뱀장어를 추적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요하네스 슈미트의 경이로운 행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넓어졌다면, 분명 슈미트와 같이 분명한 목표를 가졌던 사람덕분일 것이다. 이 인물이 보여준 삶의 행적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는 뱀장어의 본능과 숱한 실수와 방황을 겪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교차되어 내게 다가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뱀장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 태어나 나이가 먹고, 자손을 낳으며 소멸에 이른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의 삶을 보고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96)라고 평가한다. 내게는 저자의 언급이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좌충우돌하고 방황하는 존재이지만, 뜻하는 바가 있는 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게다가 슈미트는 오랜 방랑 끝에 인류에게 뱀장어에 관한 많은 중요한 사실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뱀장어는 아마도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자와 아버지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장어에 대해 탐구해왔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자는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92)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단지 뱀장어의 기원만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닐 것이다. 회고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근원 또한 탐색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정은 악성 종양 때문에 소멸(죽음)로 나아간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산란지로 되돌아가는 뱀장어들의 여정과도 닮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뱀장어는 자신이 부화한 곳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좌절된 열망이 어쩌면 방황하는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뱀장어와 인간 모두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뱀장어의 신비로운 생태에 더하여 이들 앞에 큰 시련이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로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향으로 뱀장어가 바이러스와 기생충에 감염되고, 확산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산업용 독성 물질을 비롯하여 발전소의 수문과 둑 같은 물리적 장애물이 개체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뱀장어 포획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뱀장어의 멸종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뱀장어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뱀장어의 멸종 위기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뱀장어는 그 생태적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멸종 위기종의 판정처럼 번식개체수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뱀장어가 정확히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하며, 생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배워온 저자는 독자에게 뱀장어의 소멸에 대한 경각심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준다.


정리해본다. 이 책은 뱀장어에 대해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탐색 과정을 따라가면서도 저자의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저자는 뱀장어가 매력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마도 이 대상이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37)이라고 언급한다. 이건 존재를 이해하는 일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 탐색 과정으로 남게 되는 일인지 모른다. 유럽 뱀장어에게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한편으로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물론 개체 대부분은 이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인간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뱀장어가 모두 같은 목적지를 지향하지만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니고, 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정확히 같지도 않다고 전한다. 뱀장어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밟아가는 삶의 여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근원인 죽음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지만, 여기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가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뱀장어의 이야기는 놀라운 지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은유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통찰을 믿기로 한다.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뱀장어와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들은 내게 줄곧 이런 삶의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책은 지금 내 삶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이해는 뿌리가 끊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을 언급하며- P27

"나는 왜 뱀장어가 매혹의 원천으로 여겨지는지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성격, 본질을 언급하며- P37

"뱀장어가 물고기와 다른 모든 동물을 예외로 만드는 점은 유생단계에서 하는 엄청난 규모의 장거리 이동이다."- P90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 P92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P94

"세상은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부조리한 곳이다.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P96

"모든 문이 당신에게 열려 있지는 않으며,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부족하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라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P102

"너는 뱀장어이니 뱀장어로 돌아갈 것이다."
- 창세기에 나오는 표현- P142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 어쨌든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존중이 필요한 책임이었다. 동물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우리 책임에 대한 존중이."- P158

"뱀장어는 좀처럼 으스대지 않는다. (...) 뱀장어는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는다. 뱀장어는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 뱀장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는다."- P165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생을 시작했듯이, 우리 하나하나가 바다의 축소판인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동일한 삶을 시작한다."- P171

"출생지로 돌아가는 긴 여정은 여전히 대부분의 뱀장어에게 좌절된 열망이었다."- P217

"간단히 말해 어쩌면 뱀장어는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목표 달성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미와 방법을 가진 개체일 수 있다."- P219

"인간이 뱀장어에 가까워질수록, 뱀장어가 우리 생활에 노출될수록, 뱀장어는 빠르게 죽어간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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