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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강양구 외 지음 / 바틀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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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책에 실린 20편의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는 이미 책에 소개된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부분보다는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것이다. 이들에게 영향을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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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독서

전성원 지음 |  [뜨란]

 


그렇게 나는 만들어졌다

 

가끔 내가 갖고 있는 책갈피 중에 올리버 색스가 표현을 들여다보곤 한다.

 

도서관에서 서가와 선반 사이를 오가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뭐든 골랐고, 그렇게 나를 만들어갔다.

 


나는 삶이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경험보다 훨씬 늦게 도서관을 발견했다. 헌책방과 도서관은 분명히 삶에 위로를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나한테만 그럴까. 내가 늦게 장소를 발견했을 뿐이다. 이런 장소에서 무심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어느 부분에서 가벼운 충격이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때가 있다. 시인 장석주 선생이 고등학생일 정독 도서관에서 니체를 발견한 순간의 전율이나 충격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의 삶이 역시 불안하고 막막하다고 느낀 어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펼처본 적이 있다. 콜필드가 맨해튼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읽었을 , 안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던 순간이 기억난다. 책이 예전에는 분명히 나를 위로해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을 통해 무언지모를 위로를 받았다. 가끔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며 책을 꺼내 살펴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우연히 전성원이란 작가의 위의 독서라는 서평집을 발견했다. 저자가 읽고 중에는 내가 읽은 책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 후쿠시마에 관한 도서들을 읽어보았기에 저자가후쿠시마 이후의 이란 책을 읽고 서평부분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저자의 서평은 약간 분량을 지닌 서평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나가자 곧바로 마음에 들었다. 시중에 나온 가벼운 서평들과는 다른 점이 나의 시선을 붙들었다. 비교적 짧게 느껴지긴 했지만 저자는 후쿠시마에 관하여 꽤나 디테일한 사실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저자는 후쿠시마 이후의 읽으며 시인 파울 첼란을 떠올렸다고 했다. 저자에게 대상(후쿠시마와 파울 첼란) 어떤 이유로 이어졌을까.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 역시 파울 첼란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해 홀로코스트와 원전을 작동시키는 힘이 다르지 않다라고 같다. 특히 101세로 사망한 일본의 수상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이 1954 3 1일에 있었던 수소폭탄 실험(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이 피폭되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예산을 승인한 사례를 언급한다.  희생의 시스템이란 개념을 주장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핵발전소 관련한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시스템으로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결국 홀로코스트가 작동되는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같다.

 

 


뜨거운 서평이란 이런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핵발전소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한홍구 교수가 후쿠시마와 용산 참사를 연결시키는 장면에 주목한다. 결국 사건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논리와 시스템에서 나왔다는 한홍구 교수의 지적을 다시 곱씹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후쿠시마 이후의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보였다. 나는 이번에 처음 저자의 글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뜨거운 서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이면을 뜨겁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느껴지는 묵직한 글이었다. 쉽게 읽히고 가벼운 글들을 찾곤 했던 나를 반성하게 해주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삶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같다. 초등학생이던 저자가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에 갔을 병원에서 마주친 군인들(1980 5월이었다) 보고 두려움과 의문을 품게 경험 역시 오늘의 그를 있게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의 이력을 보고서야 나는 그가 이토록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뜨거운 글을 있다는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런 글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와 같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에 도달하기에 자신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인문학자 김경집 선생이 서평 쓰기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읽어본 적이 있다. 김경집 선생은 따뜻한 시선과 냉정한 평가 겸비한 서평을 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저자 전성원의 서평은 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책에 언급된 현실을 본인이 직접 냉정하게직시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김경집 선생의 표현대로 시도하다가 평가를 위한 평가 어설프게 하는 보다는 전성원 선생의 뜨거운 서평 또한 좋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에게는 위에서 만난 모든 삶의 마주침이 세상이라는 책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비딕 작가 허먼 멜빌이 화자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일이 나에겐 예일이자 하바드였다 말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위에서 만났던 세상의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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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요즘은 개인 미디어시대라고 한다. 개개인이 지식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포하여 공유할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활발하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투버들도 이러한 맥락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보다 오래된 지식 공유의 출발점이라고 있다. 도서를 출판하는 일은 물론이고, 근래까지 활발했던 편지 쓰기도 생각해볼 있다. 학창시절 숙제로 많이 하던 일기쓰기 또한 전세계인에게 공통된 오랜 글쓰기 방법이라고   있다. 어떤 방법에 관한 도서들을 많이 찾지는 않지만, 동네 도서관에서 책들을 구경하다 우연히 책쓰기 관한 주황색 책을 발견했다. 요새 자서전 쓰기 활동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책쓰기 이렇게 열거했던 다양한 글쓰기의 종착지 같은 활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책쓰기를 염두에 예비 작가에게 전달하는 간결한 같은 도서다. 요새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과 같은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모아둔 글들을 책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을 내려면 우선 해당 책을 쓰는 이유와 독자가 누구일지를 고민하라고 전한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일이 될까?’부터 염려하는 스타일이다. 스스로 신중한 이라고 말하고, 타인들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라고 표현한다. 도대체 듣보잡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 것인가. ‘엄숙하고 진지하고 재미없어보이는 , 밋밋한 경험밖에 없는 이야기를 과연 누가 읽어줄지 생각하면 자신감 곡선이 곤두박질 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독창적인 책의 소재라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다른 작가들이 대체할 없는 유일무이한 나만의 경험이 녹아난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밋밋하고 보잘것없는 삶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글쓰기 과정이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인 장석주 선생은 저서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졸렬한 글을 있는 용기’, 이를 꾸준하게 밀고나가는 능력을 재능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던 같다. 자신에게 천부적인 문재(文才)’ 없다면,  많은 문인들이 해온 글쓰기 방법을 적용하여 글쓰기 연습을 하면 된다. 그리고 활동에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기반은 예외없이 독서 것이다. 책을 쓰기 위해 이미 다양한 책들을 꾸준히 읽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책을 써내기 위한 실천 팁을 나누는 책이라고 보면 것이다. 다만 저자가 해당 분야의 지식에 정통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의 지식과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책에 담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점검하고, 저작권 문제를 검토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아울러 예비 작가가 글을 짓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매일 써보고, 메모하며, 자신이 글도 끊임없이 읽어보고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현재 여러 책을 출간하며 활동하는 저자 세명의 글쓰기/책쓰기조언도 담겨 있다. 매일매일 상당한 양의 글을 써서 올리고, <새로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등과 같은 사전쓰기와 <시골에서 읽는 즐거움>등의 책을 펴낸 최종규 작가는 조언으로 책쓰기를 생각하지 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책쓰기 이야기하는 책에서 책쓰기를 생각하지 이라니. 무슨말일까. 최종규 작가는 글쓰기/책쓰기 무게 중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글을 우리의 삶을 즐겁게 가꾸는 길에 얹도록 하라 말이다. 말은 평범하게 들리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언급한 삶이 예술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라는 표현과 본질적으로 같은 말일 것이다. ‘글쓰기와 책쓰기이전에 우리의 삶에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교와 명분에 우리의 삶이 잠식당하거나 균형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글쓰기/책쓰기활동은 삶의 기쁨에 동참하는 활동이 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책을 쓰려는 독자/예비작가들에게 보다 실용적인 정보를 주고 있다. 인세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거나 출판사에 자신의 원고를 투고할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출간계획서의 작성요령에대해서도 담고 있다. 관련 내용은 도서를 참고하면 것이다. 자신의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이 예비 저자에게 가지 중요한 사항은 원고투고 전에 출판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는 점에 주목해본다. 출판사마다 관심을 두고 있는 글의 방향이나 일종의 출판사별 취향, 혹은 결이 다를 것이다. 투고한 원고가 출판으로 이어지는 비율을 사실 매우 낮다고 한다. 저자는 원고를 투고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선호하는 글이 어떤 것인지 출판사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을 보다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초보 작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팁인 같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도 없이 타인과 소통을 하고있다.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가족과 친구와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 받기도 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비문인 표현들이 많이 오고 가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문장 혹은 글의 형태를 통해 매일 타인들과 생각을 주고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완결된 글이 담긴 책을 씀으로써 일상적인 소통을 넘어서 우리의 정신적인 성숙을 가져다줄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지식의 증가만이 아닌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듯이, 책쓰기는 독자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무형의 독자와 시도하는 대화 행위이기 때문이다. 책쓰기는 모든 이들을 위한 활동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책쓰기를 통해 타인과 나눌 있다. 나눔 행위가 책쓰기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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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레슨(Style)

: 명확하고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

조셉 윌리엄스(Joseph M. Williams) & 조셉 비접(Joseph Bizup) 지음

라성일·윤영삼 옮김 |  [크레센도]

 

 

언젠가 사놓고 묵혀두었던(?) 이 책을 책정리하면서 발견하고 조금 읽어보았다. ‘명확하고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영어 문장쓰기, 영어 글쓰기 안내서다. 이런 취지의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읽어보니 다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말과 글로 글쓰기를 하는 데에도 참고가 만한 부분이 있을 같다.

 

1장은 무엇보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씌여졌다. 흔히 글에서 스타일(style)’이라고 하면 문체라고 번역이 되는데,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갖는 의미의 맥락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타일 문체다라고 선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묘한 문화적 맥락의 차이는 감안하고 이해를 해야 것이다.    

 

장을 읽다가 주목하게 문장은 이것이다.

 

완벽한 상태로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이 허용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흠잡을 없을 만큼 완벽하면 좋겠지만, 완벽이란 죽을 때까지 도달할 없는 것이다.)”(28)

 

문장에 주목하게 것은 내용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느껴서 라기보다는 문장이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불러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딴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고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여러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글이 완벽해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 결코 이루어질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다만 완벽이라고 있는 상태가 있다고 믿는다면’, 상태에 무한히 점근적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하는 것이 생애 우리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저자는 글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미리 힌트를 주고 있다. 글쓰기를 해도해도 안된다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원래 해도해도 (완벽하게) 안되는것이 글쓰기라고 말해준다면, 애초에 그런 기대보다는 보다 나은문장을 만들기 위해 수련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물론 해도 안되는것이기에, ‘차라리 안하겠다라는 결론은 보다 나은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장은 미완의 문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어느 문장이 명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고 판단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 책의 중요한 전제는 초고를 적용하는 규칙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고를 때는 불필요하게 글쓰기 규칙을 고민하면서 쓰지 말고 일단 쓰고 , 수정하는 과정에서 책의 글쓰기 규칙들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고라도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인 독자들에게 책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중요한 생각을 아니겠지만,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맞는 책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 자체도 자신에 대해 좀더 알아가는 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관심사에 따라 모은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은 욕망과 결핍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책은 단순히 영어공부/영어 문장 쓰기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라는 관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모호하게 숨어있는 안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여 전달하기 위한 훈련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을 알아가는데 도움을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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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19-10-15 16:23   좋아요 0 | URL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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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 당신 곁의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혼자 남은 , 당신 곁의 그림 속의 인물이 들고 있는 책이 무슨 책일까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 저자 표정훈은 2 권의 장서가 있는 자신의 서재에 혼자 남은 , 책이 그려진 화보집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음직하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책의 방향에서 짐작할 있듯이, 독자는 저자의 궁금증을 따라가며 그림 속의 인물, 인물을 그린 화가를 둘러싼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람과 책의 이야기 만나게 된다. 책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러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림 속에는 언제나 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림 속의 책이 어떤 책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대신 저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중심으로, 화가가 알고 있었을 법한 책이나 그림의 인물이 읽었을 법한 책의 제목을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통해 추정해 내고 있다. 마치 셜록 홈즈가 것처럼, 그림 책이 어떤 책인지 추리해나가는 것이다.

 

혼자 남은 , 당신은 무엇을 것인가. 스마트 폰과 TV드라마의 맹공에도 살아남아 당신 곁에 있게 책을 펼쳐 보면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화가 윤덕희의 그림 <독서하는 여인>처럼, 온전한 휴식으로서의 독서도 가능하고, 독자의 정신을 벼리는 독서를 있겠다. 보기 시작하면 끝이 때까지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드라마처럼, 다음에 읽게 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읽어나가면 좋겠다.

 


나를 위로하고 그대를 위로하다

 

혼자 남은 , 당신 곁의 에는 그림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중에서 화가 고흐가 그린 그림으로부터 시작해본다. 저자는 독서광 고흐에게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던 것은 소설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고흐가 남긴 편지, 특히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노라면, 고흐가 마주했던  고난을 일부나마 엿볼 있었다. 특히 강한 자기애와 현실에서 비롯된 자기비하가 항상 맞물려 나타나는 고흐의 자의식을 발견할 때면, 자신의 일부를 보는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고흐의 곁에 소설 남아 그를 위로해주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던가. 책에 등장하는 고흐의 그림 <석고상, 장미꽃, 소설 권이 있는 정물>에는  제목이 적혀있는 권이 등장한다. 바로 기드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 콩쿠르 형제의 제르미니 라세르퇴였다. 대개의 그림에 책은 부수적인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흐가 그린 그림에는 권이 가운데에 배치해있고, 책의 제목이 명백히 기재되어 있다. 책들은 그만큼 고흐에게 의미있는 책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굳이 권이 책일까?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고, 가족의 배척을 받는 분위기에서 언제나 홀로 느낌을 받았을 법한 고흐에게 권의 소설이 무엇보다 그에게 위로가 되었법하다. 게다가 수수께끼같이 그림 속에 여인의 토로소 석고상과 장미꽃이라니. 저자 표정훈은 그림에 보이는 권의 책을 통한 상징성 읽어나간다. 석고상, 장미꽃, 소설 이란 , 생명과 죽음의 본능, 그리고 이야기 있을지 모른다”(164)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내세우는 상징성으로 파악해보는 방식보다 단순한 이해를 선호한다. 정보(책의 제목) 주어진 권이 그림의 가운데 배치되어 있다는 점으로, 소설이 화가에게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보는 일이다. 특히 소설에 어떤 공통점은 없을까를 생각해봄직하다. 저자가 소개해주고 있듯이, 소설은 여성의 지난한 삶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있을 같다. 공교롭게도 소설에는 남성들(특히 유혹하는 남성들) 의해 (벌거벗은 석고상처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낸채) 육체적 쾌락 충족의 대상으로 농락당하고 급기야는 외면 받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덕적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던 고흐는 소설이나마 고통받는 여성들을 생각하며 장미를 놓아두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고흐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비루한 현실의 살아낼 수밖에 없는 여인들을 연민하고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믿고 싶다. 바로 고흐 자신에게 위로를 소설의 여인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민의 장미 꽃을 건네는 . 비록 그림 뿐이었지만, 무엇보다 진심을 담아 보내는 위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불태우다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다보면 놀라운 그림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15세기 말에 그려진 페드로 베루게테의 그림 < 도미니크와 알비파> 보면서 동양의 진시황만 책을 불태운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그림은 기득권을 가진 종교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지목된 교단의 서적을 파괴하고 제거하도록 이들을 불태우는 폭력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책을 파괴하거나 불태우는 행위는 문자를 읽어 있는 식자층의 사상을 통제하고 공포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사건에서도 농서 등을 제외하고 각종 서적을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수백명의 유생들도 생매장 당했다고 하니, 이만저만한 폭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책을 불태우는 일이 오래 전의 일만은 아니다. 20세기 들어 알려진 분서사건 또한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1933 5 10, 나치 독일이 광장에서 자행한 분서사건은 비독일적이라고 지정된 책들을 대상으로 했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 계열의 도서, 하인리히 하이네, 에리히 케스트너, 하인리히만, 베르콜 브레히트 많은 독일 작가들의 책이 불에 타버렸다고 전한다. 여기서 나의 흥미를 것은 독일의 소설가 W. G. 제발트가 소설 이민자들(‘막스 페르버, 233) 사건을 보도한 독일 신문의 보도 사진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바로 사건 당일(5 10) 저녁,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광장에서 비독일적으로 지정된 책들을 불태우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제발트는 사진이 조작된 것임을 소설 화자의 입으로 언급한다.  당시 책을 불태우던 시각이 저녁이었기 때문에 너무 어두워서 사건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찍을 없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전에 같은 광장에서 개최된 집회 행사의 사진에 거대한 연기기둥을 만들어 넣었다는 것이다. 제발트의 소설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소설에 사용된 사진과 사진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제발트가 직접 주인공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수집한 사실에 입각하여 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도된 신문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난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책을 불태우며 사상을 통제하는 행위에 더하여, 책에 등장하는 사진, 책의 내용이 독자를 얼마나 기만할 있는지 또한 보여주고 있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사람들을 분서 대변되는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통제할 있음과 동시에 조작 거짓 내용을 유포하는 방법을 통해 비가시적이고 조용한 대중 통제 방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어떤 매체인지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내고 영향을 주는 방식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사례로 읽을 있겠다.

 


책장을 보면 사람을 있다

 

저자는 이광수의 무정나오는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의 책장을 묘사한 대목을 인용한다. ‘새로 사온 책을 읽기로 유일한 벗을 삼는이형식은 독서가라는 칭찬을 듣고, 학생들의 존경 받는다. 이유가 책장에 정리되어 있는 어려운 영문 도서와 독문의 금박 입힌 도서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책장에 꽂힌 책을 통해 주인을 짐작할 있음 말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견해에 공감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나아가 좀더 구체적으로 도서 주인의 욕망을 읽어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란 한편으로 결핍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예로,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를 다녀와 3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정리했던 열하일기에서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 사대부들이 북경 책방거리 유리창에서 책을 사오는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필사와 돌려보기 이외에 책을 자유롭게 구하기 힘든 시절, 나아가 모든 책을 국가에서 편찬하는 시스템을 유지했던 조선의 현실에서 유교 경전을 구하는 일은 전문 브로커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브로커 역할을 했던 이들이 청나라 사신 행렬을 따라갔던 상인들이나 사대부들이었다. 이들이 사신 행렬을 따라 사들여왔던 서적들로 사대부들은 자신의 서재를 자랑삼아 꾸미게 것이 유행이 것이다. 만약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만들어 놓은 서재를 살펴볼 있다면 우리는 서재의 책들을 통해 이들의 욕망과 결핍의 자의식 또한 읽어낼 있었을 것이다.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소박한 책장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민망함을 느끼곤 한다. 경우는 소장의 빈약함 때문이 아니라 내가 욕망하고 내가 결핍을 느끼는, 때로는 내가 열등감을 갖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타인에게 거침없이 읽히기 때문이다. 타인이 책장을 때면 나는 으레 꼭꼭 숨겨둔 나만의 속물근성과 숨겨둔 욕망을 들킬 것만 같아 부끄러운 것이다. 어떤 사람의 책장 전체를 유심히 있다면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읽어낼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공감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혼자 남은 , 당신 곁의 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화가 소포니소바 앙귀솔라나 샤틀레 후작 부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그림 속에 혼인하지 않은 처녀 자신이 그린 소포니소바 앙귀솔라라고 적어 넣은 화가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때가 1554년임을 상기해보라. 저자는 그림 속의 문구를 하나의 인간 선언으로 읽어내고 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을 살다 여인은 글쓰고 책읽고 연주하고 그릴 아는 여성임을 당당하게 드러냈고, 자신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임을 선언했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이 오히려 구식으로 느껴질 만큼 멋진 여성의 자취를 만났던 기회였다.

 

이것만이 아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연인이자 후원자였으며 학문적 반려였던 샤틀레 후작 부인이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는 또한 눈여겨 볼만한 짜릿한 사례였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번역이란 언어의 치환 혹은 표현 대체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원문 도서에 대한 내용을 읽고 이해하고 깊이 생각한 후에 덧붙일 있는 것이 주석이다. 사학자 박상익이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외국의 고전 문헌을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다는 행위가 대학원에서 학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려 보게 된다. 국내의 학계가 제대로 번역 연구작업(주석 달기를 포함한) 대해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풍토가 계속 되는 우리 문화의 수준이 표피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샤틀레 후작 부인이 번역한 프린키피아  프랑스 학계에서 표준 프랑스어판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21세기에 사는 우리를 더욱 분발하게 해준다.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며 책에 소개된 그림을 둘러싼 인물들(화가와 그림 인물) 그림 책이야기를 능숙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글쓰기에 상당히 매료되었다. 단순한 배경지식과 정보들을 모으는 것만으로 내놓기 힘든 결과물이다. 그림 점마다 화가와 대상의 삶과 당대의 현실이 교직하는 지점을 저자는 날카롭고 흥미롭게 찾아내고 고찰한다. 여기에 저자의 경험과 깨닳음이 더해져 앎의 기쁨과 지혜를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장서가 있는 서재에 혼자 남아 현실과 거리를 내면을 성찰하는 관조의 순간 상상해보게 된다.




밤이다.
구석방에 홀로 있다.
그런 당신 곁에 책이 있다.
혼자이되 외롭지 않으리라.- P5

˝노년의 가낭 큰 어리석음은 젊은이들이 어리석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P40

˝그림 읽기와 소설 읽기는 시선의 놀이다.˝- P52

˝그녀의 어떤 성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녀의 다른 성품에 기뻐할 것이라˝
- <코란>(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스, no. 1469)- P127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것을 피하거나 무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면으로 마주하며 숙달하고 정통해야, 즉 무언가를 ‘마스터해야‘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며 나아가 새로운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창조할 수 있다. 아무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없듯이, 아무나 책을 찢을 수 없다.˝- P207

˝독서는 세상과 타인을 좀 더 깊이 넓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그것의 가장 깊은 차원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 독서는 곧 자기 성찰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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