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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이제야 출발선에 서다


창작과비평 187(봄호) ‘촌평

최형섭 지음 | [창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는 각호마다 새로 발간되는 도서들에 대해 분야의 전문가가 짧게 서평이 실린다. 지난 호부터 여러 주제에 걸친 서적들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있는데, 나름 읽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과학 분야 서적에 대한 서평이 궁금해서 주로 과학 도서에 대한 글을 먼저 읽는다. 이번 (187)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과학자가 직접 책에 주목했다



       암이라는 질병은 이제 우리 생활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가까운 지인, 친척 들만 해도 암을 진단받은 분들이 상당 있어서, 이제 암은 마치 성인병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일본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신의 방광암 수술을 계기로 연구를 취재하여 2007년에 펴낸 ,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 하더라도 당시 암연구의 최전선을 소개해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남궁석씨가 정복 연대기 소개 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취재 이후 동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을지 함께 읽으면 좋을 같다



       서평을 저자는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 언급한다.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해 대중이 갖는 위상의 역사성에 대해서 짧게 언급한 부분을 소개하는데, 손택은 책에서 과거에는 암이 인과응보의 성격을 가졌다 점을 지적했다. 다만 서평의 저자가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희생자가 자신의 세계와 자신 스스로에게 저지른 일의 결과라는 표현이 마치 손택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보이도록 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현은 메닝거라는 사림이 주장한 내용을 손택이 자신의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었다. 과거에 암을 비롯한 질병은 개개인들의 도덕적 품성의 결과이자 심판이었다는 생각이 퍼져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카시의 ,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에서는 세계 최초로 암유전자 RAS 발견한 로버트 와인버거 교수의 말을 소개한다. ‘살아가는 자체가 암을 낳는다. 암은 다세포 생물의 숙명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세월이 흘러 많이 바뀐 것을 감지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암을 바라본다. “암은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당신의 암은 당신 자체다라고 말이다.    



       다치바다 다카시처럼, 서평의 저자 역시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정복 연대기에서는   연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말한다. 치료도 그렇지만 암이라는 대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최근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평의 저자는 정복 연대기의 예비 독자들이 눈여겨볼 사안 가지를 간결하게 조망한다. 하나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치료제들이 아주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연구와 발전이 이전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기초 연구에 빚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안들, 물음들을 던져주는 셈이다.



      여기에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책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며 다른 과학서들과의 맥락을 덧붙인다. 이를테면 정복 연대기는 한국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 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한다. 말은 연구에 전념해온 국내 학계가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나머지 비전문가, 일반인들과의 소통에 다소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요즈음에는 해외의 좋은 도서들도 많이 번역이 되고 있고, 국내 전문가 필진들도 조금씩 들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말로 다시 쓰는 분위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가 확대되면 좋을 같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초파리 과학자 김우재의 저서도 함께 소개하며 연결짓는 독서를 권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국내 필자가 문제 의식을 갖고 글들에 주목하고 맥락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학창시절 생물학 개론을 들은 적이 있는데, 유전학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유전자는 일종의 스위치라는 개념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는 유전자가 정보로 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발현되지 않는 무용해보이는 유전자라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특정한 환경적 요인이나 내부적인 조건의 변화로 이렇게 잠을 자던 유전자들이 스위치처럼 켜져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전자가 방사능이나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아니면 노화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세포 분열 기능과 세포 파괴 기능의 변형 등이 얽혀 암을 만드는 조건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복 연대기는 암이란 대상 자체에 대한 물음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학창시절 배운 지식과 많은 지인들이 경험하는 이 질병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성, 그리고 암 발병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과 환경에 관한 물음들을 지니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암이란 개개인의 신체 내부에서 드러나지만, 그 그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속한 환경 및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책을 읽어가며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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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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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 원고

맥피(John McPhee) 지음 |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글이 실패작이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257)

 


     글쓰기로 몸부림을 치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만한 증상을 열거하고나서, 그러니까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라고 믿기지 않는 결론을 내린 사람은 맥피라는 논픽션 작가다. 그가 이렇게 언급했던 것인지 궁금하다면 논픽션 쓰기 따라 읽어가다보면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 나올 같다. 책은 글쓰기의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픽션 글쓰기의 대가 맥피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다른 논픽션의 대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자 하트가 논픽션 쓰기라는 책에서 였다.  

 


해설 내러티브 논픽션의 대가


맥피는 정확하고 신중한 스코틀랜드 남자다. 옷차림새도, 행동거지도 쓰는 스타일을 닮아 단정하다.

 


     하트가 논픽션 쓰기에는 맥피에 대한 언급이 책의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차례 나온다. 심지어 페이지 이상을 위에 인용한 것처럼 맥피라는 인물에 대해 묘사하고, 그의 글을 여기저기 인용하고 있다. 도대체 맥피라는 인물이 누구이길래, 이처럼 하트 자신이 저술하는 책에서 이렇게 칭송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눈여겨보았던 부분은 맥피가 글의 구조를 설계할 사용했던 다양한 도표들을 가져와 자신의 책에서도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만나게 번째 원고 저자의 면모에도 관심이 갔고, 이와 더불어 저자가 활용하던 글의 구조 설계 과정에 주목해보게 되었다. 책이 끝나는 부분에서 저자가 언급하듯이 논픽션, 특히 저자가 언급하는 창의적 논픽션은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진 최대한 활용하는 글쓰기. 책의 앞부분에 앤더슨이란 사람이 맥피의 정신에서 언급하듯이 맥피에게 글쓰기의 고충은 상당부분 글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에 있다. 이번 독서는 무엇보다 저자가 논픽션 글쓰기를 , ‘구조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렇게 구조 집착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찾는 데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다 .

 


     다른 논픽션 작가들이 맥피를 많이 언급하고, 참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구조에 대한 고민, 연구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우선 독자들이 저자가 설계한 구조를 눈치채지는 못하게 하라고 주문한다. 정도의 선에서 구조를 세운 다음 키워드를 뽑아 기록하고, 분류된 자료를 가지고 견실한 도입부를 쓰라는 것이 주요한 골격이다. 논픽션인 만큼 글에 등장할 인물과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대개 논픽션의 경우 연대기적으로 사건을 기술할 같지만, 맥피가 제시하는 구조의 설계도 그림은 마치 소설의 플롯 구성처럼  플래시 플래시 포워드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단순한 연대기적 구성을 탈피하고 있다. 따라서 글의 시작 역시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 배치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 직전에서 마치 영화를 보듯이 바로 독자들의 눈길을 붙들고 나아갔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플래시 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던 사건 보도 형태의 기사 작성 형식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맥피가 울프와 함께 논픽션 글쓰기의 파격을 도입했던 저널리즘 시대 배경 속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은 전통적으로 소설에 집중했던 잡지 <뉴요커> 역시 60-70년대를 거치며 논픽션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전속 필자를 많이 발굴했던 분위기와 겹치는 것으로 확인할 있다. 물론 저자가 처음부터 논픽션 작가가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시나 소설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해본 뒤에야 자신이 논픽션에 보다 흥미를 지니고 스스로에게 적합한 장르라고 여기게 되었다. 물론 사람인 까닭에 단어도 나아가지 못하고 마비상태와 마주하게 되었을 , 자신의 경험도 들려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서 연필과 종이를 들고 아무 데나 누워서 뭔가가 떠오르면 휘갈기라는 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진행이 안될 때까지 계속 써내려 가라 . 그런 다음 다시 컴퓨터에 앉아서 종이에 적은 내용을 파일로 옮기면 된다는 것이다.

 


     책의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기록하는 대목보다,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곁들이는 대목에서 저자 자신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논픽션 작가인 만큼 자신이 놓았던 사항들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들이나, 편집자들과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긴장을 유지하며 옥신각신 하는 이야기, 혹은 은근한 유머들을 웃으면서 따라가다 보니 어느 맥피라는 인물이 앞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세기 넘게 글을 써오면서도 여전히 글쓰기 마비 상태 겪기도 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글쓰기의 본질과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글쓰기 비법이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도 전에 시학에서 제시해 놓은 것들의 다양한 변주들에 불과하다는 점과, 여기에 이르는 길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

 


     책에서 아마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저자의 당부는 글쓰기는 선별이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것인가의 문제다. 선별과정은 글쓰기 소재를 취재하는 현장에서 노트에 낙서를 하는 동안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취재 대상을 인터뷰할 때도 받아 적은 말의 대부분은 생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막연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도입부를 쓰거나 초벌 원고를 쓰기만 한다면, 때부터 집필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수정이야말로 집필 과정의 본질이다”(260)라고 하면서 말이다. 책의 제목은 번째 원고인데, 여기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애착이 담겨있다. 저자는 번의 퇴고를 거쳐 손에 주어진 번째 원고에서 보다 나은 단어나 어구를 대체할 표현을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과정을 가장 즐겨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단어는 이미 알고 있지만, 보다 적확한 단어 혹은 어구를 찾아내어 수정하기 위해 단어들을 사전에서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바로 저자가 번째 원고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철학을 자신의 속에서 찾아낸 요소들로 마치 두서 없이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정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프린스턴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이야기나,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텍스트 에디터 프로그램 사용 에피소드, 그리고  자신을 닮아 딸들이 모두 글쓰기와 관련된 삶을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이들의 관계 역시 전체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글쓰기의 비법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다른 글쓰기 책에서 언급하는 요령들 개를 책에서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책은 글쓰기, 특히 논픽션 분야의 글쓰기 대가가 자신의 글쓰기 인생에서 건져 올린 글쓰기의 면면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가 도입부를 썼던 표현처럼 견실한 쓰고자 여전히 노력하는 대가의 방법론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서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저자가 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글에 대해 이렇게 엄정한 기준으로 사실을 확인한 세상에 내놓는 일은 뿐만 아니라 잡지사나 출판사의 신뢰와 권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공인들이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태도로 발언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 적고 글을 써내는 일부 언론의 모습과 분명히 비교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격려는 아마도 글의 머리에 인용했던 저자의 선언이 것이다. 바로 당신이 글쓰기에 좌절해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 글쓰기의 비밀은 바로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는 저자는 책에서 일깨워준다.   





"모든 도입부는 -어떤 종류이건 간게 - 견실해야 한다.
뒤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105면)- P105

"1000개의 디테일이 모여 하나의 인상이 된다."
(114면)- P104

"내 조언은 자기만의 고유한 특징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150면)- P150

"글쓰기는 선별이다." (172면)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257면)- P257

"수정이야말로 집필 과정의 본질이다."
(260면)
"집필 과정에서 내가 즐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네 번째 원고 작업이다."
(263면)- P263

"창의적 논픽션은 없는 걸 지어내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298면)-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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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오늘은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다시 들여다보다가 머리 속에 계속 남아있는 내용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책은 제가 가끔씩 들여다보는 책인데요, 얇아도 실속 있는 내용들이 밀도 있게 모여 있습니다. 가운데 서평의 전제라고 하는 () 나옵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부분인데요, 여기에서는 글쓰기 이전에 독자로서 어떻게 책을 읽어 나가야 하는지, ‘독서의 태도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독서를 어떻게라고 묻고 있지만, 독서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독서의 목적을 어떻게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저자의 견해는 독자가 독서 목적을 분명히 정할 주문합니다. ‘우상 숭배냐 우상 타파냐라는 문구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견해를 문장으로 나타낸 표현은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있다라는 말이 되겠네요. 대상에 대한 애정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나아가 서평자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정하고 이를 밝히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서평은 정치적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평은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는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독후감과 다르며, 두루뭉술하게 입장을 정해서는 좋은 서평이 나올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되, 무엇보다 대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라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충고가 떠오릅니다


 




     제가 서평쓰기를 고민할 참조하곤 하는 도서는 황선애/김민영 작가의 서평 글쓰기 특강인데요, 책은 글쓰기 방법론 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들을 인터뷰하여 각자의 서평쓰기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책에 소개된 가지 방법론과 더불어 인문학자 김경집의 서평쓰기인터뷰 부분이 좋아서 가끔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런 성격의 책은 서평자 각자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있기 때문에, 책에 소개된 다양한 도움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골라 적용해보면 됩니다.  앞의 서평 쓰는 에서 서평의 전제 소개한 서평자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를 명확히 밝히라 부분과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있다 말은 김경집의 비판적이되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라 말과 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쓰는 문장에서 여러 문제가 보일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대개는 자신의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퇴고하는 과정에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으로 저는 박민영 작가의 인문내공 참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사유를 하는 인간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간결한 안내서라고 있습니다. 생각 훈련법, 인문적 책읽기, 글쓰기, 글과 문장 다듬기 등의 다양한 지침이 종합적이고 간결하게 권에 담겨있습니다. 이전에 통독했던 책이지만, 때는 흘려 읽었던 겁니다. 이제 다시 글을 다듬고 문장을 개선해보려고 책을 다시 보니, 작가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시한 예시처럼 제가 문장을 쓰고 있더군요. 과거에는 책을 읽어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보았기 때문에 것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이번에 책의 5장을 다시 읽어보니 문장의 문제점이 분명히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좋은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글과 문장을 다듬을 부담되지 않고 참고해 볼만한, 군더더기 없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퇴고할 , 자주 참고할 책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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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강양구 외 지음 / 바틀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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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책에 실린 20편의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는 이미 책에 소개된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부분보다는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것이다. 이들에게 영향을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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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독서

전성원 지음 |  [뜨란]

 


그렇게 나는 만들어졌다

 

가끔 내가 갖고 있는 책갈피 중에 올리버 색스가 표현을 들여다보곤 한다.

 

도서관에서 서가와 선반 사이를 오가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뭐든 골랐고, 그렇게 나를 만들어갔다.

 


나는 삶이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경험보다 훨씬 늦게 도서관을 발견했다. 헌책방과 도서관은 분명히 삶에 위로를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나한테만 그럴까. 내가 늦게 장소를 발견했을 뿐이다. 이런 장소에서 무심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어느 부분에서 가벼운 충격이나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때가 있다. 시인 장석주 선생이 고등학생일 정독 도서관에서 니체를 발견한 순간의 전율이나 충격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의 삶이 역시 불안하고 막막하다고 느낀 어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펼처본 적이 있다. 콜필드가 맨해튼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읽었을 , 안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던 순간이 기억난다. 책이 예전에는 분명히 나를 위로해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을 통해 무언지모를 위로를 받았다. 가끔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며 책을 꺼내 살펴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우연히 전성원이란 작가의 위의 독서라는 서평집을 발견했다. 저자가 읽고 중에는 내가 읽은 책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 후쿠시마에 관한 도서들을 읽어보았기에 저자가후쿠시마 이후의 이란 책을 읽고 서평부분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저자의 서평은 약간 분량을 지닌 서평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나가자 곧바로 마음에 들었다. 시중에 나온 가벼운 서평들과는 다른 점이 나의 시선을 붙들었다. 비교적 짧게 느껴지긴 했지만 저자는 후쿠시마에 관하여 꽤나 디테일한 사실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저자는 후쿠시마 이후의 읽으며 시인 파울 첼란을 떠올렸다고 했다. 저자에게 대상(후쿠시마와 파울 첼란) 어떤 이유로 이어졌을까.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 역시 파울 첼란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해 홀로코스트와 원전을 작동시키는 힘이 다르지 않다라고 같다. 특히 101세로 사망한 일본의 수상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이 1954 3 1일에 있었던 수소폭탄 실험(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이 피폭되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예산을 승인한 사례를 언급한다.  희생의 시스템이란 개념을 주장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핵발전소 관련한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시스템으로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결국 홀로코스트가 작동되는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같다.

 

 


뜨거운 서평이란 이런

 

저자는 파울 첼란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핵발전소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한홍구 교수가 후쿠시마와 용산 참사를 연결시키는 장면에 주목한다. 결국 사건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논리와 시스템에서 나왔다는 한홍구 교수의 지적을 다시 곱씹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후쿠시마 이후의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보였다. 나는 이번에 처음 저자의 글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데, ‘뜨거운 서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이면을 뜨겁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느껴지는 묵직한 글이었다. 쉽게 읽히고 가벼운 글들을 찾곤 했던 나를 반성하게 해주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삶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같다. 초등학생이던 저자가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에 갔을 병원에서 마주친 군인들(1980 5월이었다) 보고 두려움과 의문을 품게 경험 역시 오늘의 그를 있게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의 이력을 보고서야 나는 그가 이토록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뜨거운 글을 있다는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런 글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와 같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에 도달하기에 자신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인문학자 김경집 선생이 서평 쓰기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읽어본 적이 있다. 김경집 선생은 따뜻한 시선과 냉정한 평가 겸비한 서평을 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저자 전성원의 서평은 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책에 언급된 현실을 본인이 직접 냉정하게직시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김경집 선생의 표현대로 시도하다가 평가를 위한 평가 어설프게 하는 보다는 전성원 선생의 뜨거운 서평 또한 좋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에게는 위에서 만난 모든 삶의 마주침이 세상이라는 책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비딕 작가 허먼 멜빌이 화자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일이 나에겐 예일이자 하바드였다 말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위에서 만났던 세상의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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