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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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모든 존재의 생존을 위한 언어이자 행동 강령

-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에코페미니즘(2014) 읽고


 

나는 해방 후 시공간에서 화가 이쾌대가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옥색에 가까운 두루마리를 입고 다소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의 반영이다. 왼쪽 배경에 작게 그려진 인물들은 우리의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다. 반면 그는 중절모를 쓰고 서양식 채색도구(붓과 팔레트)를 손에 쥔 모습이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분열이라는 키워드로 이 그림을 읽어냈다. 내가 주목한 지점은 이 분열이라는 맥락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인간은 그가 살아간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타인을 포함한 공동체 및 환경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기도 하다. 그를 단 몇 개의 키워드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쾌대의 자화상이 품고 있는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서 하나는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말에 출간되어 페미니즘 분야의 새로운 고전이 된 에코페미니즘을 읽으면서 간간이 이쾌대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그는 출생부터 32년간 일제 강점기 식민지인의 입장에서 미술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날 강제 해방된 공간으로 던져진 지식인이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뒤엉키며 격하게 대결하던 1940년대 말, 이제 30대 중반이 된 화가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듯 했다. 그렇게 화가의 굳은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이 때 그가 바라본 현실은 어땠을까. 해방과 함께 물러났던 친일세력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을 틈타 되돌아왔고, 나라의 앞날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정국이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통제 권한을 넘겨받은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 대체되어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식민주의적 착취와 억압은 이제 또 다른 얼굴의 식민주의적 구도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인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페미니즘 이론가이면서, “우리는 행동파 학자다”(30), “경험과 투쟁이 이론적 연구보다 우선한다”(32)라는 구호를 모토로 삼았던 활동가다. 페미니즘 및 환경과 관련한 사안에 두 사람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행동해온 인물이다. 동어반복일지 모르지만, ‘에코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과 실천이 접목된 사상으로 이해된다. ‘에코페미니즘이 내게 호소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개별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깃든 본질 혹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민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자들은 생존투쟁을 통해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이란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한다. 에코페미니즘은 환경의 구원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심을 이루지만, 환경과 관계를 맺는 모든 존재를 포용한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가 우선적으로 비판하는 대상은 성장 중심의 가부장적 경제 모델이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류사에서 농업혁명으로 호명되는 8천년 전후의 시기에 재구조화된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에 들어와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쾌대의 자화상을 통해 이야기한 식민주의는 이런 배경이 가져온 부정적인 영향이다. 성장 중심의 경제는 잉여 생산물을 낳았고, 이를 소비할 구매자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몇몇 국가들은 세계로 눈을 돌려, 자원을 착취하고 생산물을 내다 팔 시장을 확보하고자 했다. 식민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태어났다. 이쾌대가 경험했던 한반도의 식민주의는 근대 서구의 환원주의적 관점이 가부장제와 결부되고 보강되어 한반도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반다나 시바는 이렇게 식민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경제 모델이 식민지의 억압과 착취에 의존하면서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문화를 낳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런 관점이 여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데까지 용인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이 과정에서 지역적인 특색은 사라지고 획일화된다. 가까운 예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종군 위안부강제 동원, 한반도 자원과 식량 수탈,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펼친 정책 등에서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 문화적 다양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식민지 현실에서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이쾌대의 자화상에서 읽을 수 있는 배경적 맥락으로서 분열증적 징후가 아닐까 싶다.

 

이제 현대로 들어오면, 이러한 식민주의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 새로운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는 이 경제 모델이 내세우는 키워드가 전지구주의, 세계화, 민영화, 핵 발전, 개발주의,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라고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분리가 이뤄지고 경계선이 확정되고 있고, 반면 초국적기업의 투자와 시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질서전 지구적 통합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촉진하도록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사실이다.”(61)

 

여성과 자연, 이민족을 착취하며 성장했던 식민주의적 국가가 이제는 다국적 기업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계보학이다. 저자들은 이런 맥락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 및 토착 민중과 손을 잡고 생명과 공유자산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국적 기업과 통제에 순응하는 삶이 아니라 자급하는 삶이 된다. 이를 위한 전제가 바로 생명의 다양성과 사회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양성을 갖춘 공동체 및 환경은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야 지속가능한 생존이 보장된다. 이는 환경 내의 모든 존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총체를 이루고 있음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쾌대의 자화상이 분열증적 징후를 담고 있다는 것은 착취와 억압에 기반한 식민주의적 현실을 겪은 지식인의 몸에 각인된 기억일 것이다. 분열증적인 징후로서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양극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양극화 경향은 공공자원을 점유하고 강탈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환경에서 공동체 내의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이 파괴되면 생존이 어려워지고 회복이 더디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 사회의 검찰을 비롯한 정치권력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비윤리적인 기업을 비호하는 세력이 되어버렸는데, 이러한 권력이 신봉하는 것은 분열하여 통치하라는 만트라다. 근대적 식민주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우리가 이쾌대의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분열증적 징후, 혹은 지독한 현기증을 여전히 느끼는 이유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모델이 근대의 식민주의 모델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극심해진 양극화로 취약해진 이들은 벌어진 격차를 넘어 반대편 극으로 가고자한다. 이들은 기업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착취를 쉽게 용인하게 된다. 이제 분열증적 징후는 더욱 탄력을 받아 심화되어간다.

 

반다나 시바가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도 수십 년 전에 통에 받아 마시던 지하수가 이제는 상당부분 기업의 소유가 되어 버린 현실을 마주했다. 수원(水原) 주변으로 담장이 쳐지고 경호 인력이 고용된다. 이것이 민영화라는 이름의 기업 지배 양상이 정부의 민영화와 더불어 경찰국가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원주민에게서 뺐었을 때 토머스 모어가 적용했다는 논리, ‘쓸모없이 비어 있는 땅을 취할 때 몰수가 정당화된다’(95)는 논리는 이제 전 지구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민영화되었던 생수산업이 그 사례다. 이처럼 기업의 영리, 기업의 성장만을 추구한 결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더욱 열악해졌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희박해진 논리는 생태계파괴와 환경오염에 대한 불감증도 낳기 쉽다. 이러한 관점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모든 대상, 이를테면 종자, 식량, 토지, 생명 등으로 확장된다. 자연과 더불어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었던 자산들이 이제는 기업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댐건설은 또 어떤가. 반다나 시바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되는 전형적인 댐건설 과정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의 차관을 받은 국가의 정부가 강물을 막아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지역적으로 관리하던 분권화된 물 관리 주체가 정부주도의 중앙집권적인 구조로 전환되기도 한다. 여기에 차관을 제공한 경제 기구는 외국 기업이 들어와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협정 조항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차관을 받아 국책사업으로 댐건설을 한 개발도상국에서 물과 같은 공공자원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한이 민영화된다. 그럼 이 관리 권한은 누가 갖게 되는 걸까. 바로 외국의 기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저자는 이런 개발과정을 통해 차관과 엄청난 세금, 국민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댐과 수자원이 외국 기업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메커니즘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노동력만 투입되는 것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댐건설로 수많은 수몰민이 발생하고 이들은 강제이주를 강요받게 된다. 반다나 시바가 인용한 2000년 이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의 개발과정에서 인도의 1500만 명 인구가 고향에서 뿌리 뽑힌 채 쫓겨났다’(190). 물론 이 수치는 댐건설을 포함한 광산, 발전소, 군 기지 개발을 포함한 자료다. 이후 20년 간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도 초대형 삼협댐을 비롯하여 수많은 댐이 건설되었다. 수몰민과 해당 지역의 터전이 사라지면서 피해자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공동체가 삶의 터전과 맺어온 문화적 다양성 역시 소멸되어 버렸다. 또 주변 지역의 생태계가 품었던 생명의 다양성 역시 감소하게 되었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가치를 잃는 일이다. 지역 주민은 점점 영세해지는 반면, 소수의 기업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었다. 이들 기업의 이익은 무엇보다 자연과 지역 주민의 착취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을 거부하고 그 폐해를 탈피하려는 시도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은 이제 기업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코페미니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자급적 관점이다. 마리아 미스에 따르면, 가부장적 자본주의사회의 생산자는 더 많은 상품, 더 많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소비자들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음식, 안전한 생활을 원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분열증적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제한된 자연과 자원을 외면한 채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코페미니즘은 비착취적, 비식민지적, 비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추구한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도구적 비전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급적 생산과 기술이 필요하다. 삶의 새로운 균형감각을 회복하고자 하며, 이는 삶의 방식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코페미니즘은 상호연결성, 총체성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기존의 가부장적 경제 질서가 광범위하게 만들어낸 문제를 그 원인부터 치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출발은 서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오직 연계하라’(10)는 구호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모든 존재자와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주목한다. 이들이 환경과 맺는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성 속에서 각자의 존재 가치를 포용한다. 이분법적이고 분열증적인 개발 논리를 벗어나기 위해 비착취적인 관점을 추구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자급적 관점을 중시하므로,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심을 이루면서도 세계의 다른 구성원인 남성에게도 책임을 요구한다. 저자는 자급적 관점은 남성들이 지구생명체를 창조하고 보존할 책임을 실제로 분담하는 것을 의미 한다”(513)고 언급한다. 이는 기존의 가부장적 경제 모델에서 배제된 영역에 속하는,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노동, 혹은 그림자 노동을 주로 담당했던 여성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생명보존을 위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성들이 가사, 어린이와 노약자 돌보기, 지구를 치유하는 환경 작업, 새로운 형태의 자급생산 등 무임금 자급노동을 분담해야 한다’(513)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 질서에 대항하며,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상호 연관성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언어이자 실천적인 행동강령이기도 하다.

 




이쾌대,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유화, 1948-49년 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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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01 0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쾌대 자화상을 맨 아래 보물처럼 숨겨두셨군요. 읽으면서 내내 상상했거든요. 반다나 시바의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란공님

초란공 2022-04-01 01:51   좋아요 1 | URL
좀 전에 얄라알라님이 생각났었는데요 ㅋㅋ 요새 제가 글쓰기든 책읽기든 의욕을 좀 잃었는지 활동성이 떨어진 바이러스마냥(?) 움츠리고 있네요. 누스바움 여사 읽기도 미뤄두고요 ㅜㅜ 봄타나봅니다 ㅋ
 
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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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

- 백승종의제국의 시대(2022)


 


역사가들은 왜 끊임없이 역사책을 쓸까? 우선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며 이를 평가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역사는 현재를 성찰할 때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이게 역사학의 효용이다. 역사에 동일한 사건은 없지만, 과거의 사건은 현재 당면한 과제에 판단의 근거가 되고,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거나 계획할 때 영감을 불어 넣는다.


 

미시사를 전공한 백승종 교수는 제국의 시대를 쓰면서 다양한 제국의 역사를 가로지른다. 1차 사료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로부터 관심을 갖는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하던 관점을 넘어,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제국의 운명을 들여다보았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는 2000여 년의 통시적 관점과 현재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시적 관점이 접목되고 있다. 급격히 변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고려하면, 이 책은 역사가가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보고 다시 써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제국이란 황제가 지배하는 국가를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제국의 개념을 사용한다. 어느 국가의 영향력이 자국 영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 제국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가 제국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현대 러시아나 중국에서 국가 원수의 권력은 과거 전통적인 어떤 제국의 황제보다 막강하다. 이 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원고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면에서 이를 예견하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가면서 특히 실감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이 전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미국은 세계 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세계에 부상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확대하고자 했던 구 소련과 대립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구성하여 소련의 확장 야욕을 견제했는데, 이 때 형성된 기본 구도가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NATO의 존재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장 뚜렷하게 상징한다고 말한다. 20세기에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자임하며 단연코 세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미국무부의 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이란 제목이 상징하듯,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세계를 하나의 게임장처럼 보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씨앗을 심은 것은 서방 세계의 NATO 설립과 연결되고 있으며, 여기에 가장 책임이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인 셈이다.


 

1992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차관보 폴 울포위츠가 작성한 미국의 전략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적대 세력이 지배권을 쥐지 못하게 막는 것이 미국의 목표다.” (396)

 


울포위츠의 보고서는 1991년에 구 소련이 붕괴 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지배 전략을 개편하면서 마련된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1992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는데, 이 전략이 실효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처럼, 미국 혹은 미국 중심의 세계 연합 체제는 한 강대국이 주변국을 위협에 몰아넣어도 이를 제재할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은 중국이 훗날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자임하며 외교·정치·경제 영역의 패권을 유지해왔다. 반면 로마 제국의 사례와 같이 세계 주요 지점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오늘날 재정 적자에 허덕이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미국의 국가 채무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총생산량보다 많아진 상태라고 한다. 저자가 오늘날 미국은 고대 로마공화정이 붕괴하던 때와 많이 닮았다.”(413)고 지적하는 이유도 국가의 재정난과 극심해지는 양극화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과거의 제국들이 국가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일으켜왔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일부 역사가들이 앞으로 20년 내에 제3차 대전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거 없는 예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뿐 아니라 현재의 러시아나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몰락한 제국 러시아는 여전히 막대한 군사력과 자원을 등에 업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점차 노골화되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인도 편을 들어 국경의 긴장을 조성하고, 중국의 일대일로프로젝트를 견제하는 행보를 보인다. 히말라야 국경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대립하고 무기가 배치된 상황 뒤에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이는 전 세계가 단합하지 못하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분열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 냉전이란 용어를 굳이 붙일 필요도 없다. 이 대립 양상은 편나누기를 기본적인 존재양식으로 삼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전염병 및 기후 변화 문제와 같이 국경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0여 년 간 역사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제국들과 현대의 제국들 9개국을 선별하여 이들의 운명을 검토했다. 여기에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6가지를 키워드(전쟁, 지정학적 위치, 종교 및 정치사상, 지도자 및 시민의 역할, 전염병 및 기후변화)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제국의 운명에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세력 싸움에 한국 전쟁이라는 세계사적 사건 역시 상징적이다. 한반도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이념의 대리 전장(戰場)이 되었고, 전후 일본의 부흥이 여기에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여전히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과거의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몽골 제국을 거쳐 ‘100년 전의 동아시아 3에 이르자 답답한 마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상했던 반면, 청나라와 조선은 외세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쇠락해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양세력과 중국의 대립으로 시작된 아편전쟁이 청나라의 몰락을 자초하고, 일본에게 대륙 진출을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이다. 이 역사의 한 장면에서 조선은 패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한반도가 유린되었다. 이렇게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보면 아편 전쟁과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모두 연결 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역시 세계사와의 관련 속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일본은 200여 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어냈다. 이와 달리 조선 사회는 너무나 폐쇄적이고 침체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사회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 과정에서 무능한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구실을 주었다.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긴장의 수위를 높였고, 결국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모두 이긴 일본이 한반도를 삼켰던 것은 이들에게 당연히 따르는 절차였을 뿐이다.


 

지정학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일본과 우리나라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이 만나는 길목에 있다. 여러 강대국이 대립하는 경계에 있는 것이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졌다. 일본인은 패전국으로서 희생당했지만, 함께 희생당했던 외국인들(조선인 포함)은 전쟁과 무관한 상태에서 희생당해야 했다. 천만 명의 이산가족과 수백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얼마든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319)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만약에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의 불길이 타오른다면 그 무대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318)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앞에서 역사가가 역사책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이들이 끊임없이 역사를 연구하고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의 삶에 대한 앎이 그 목적일 것이다. 삶의 판단 근거로서 말이다. 이는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데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또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앎이 지혜로 바뀌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이번 독서에서는 여러 제국들이 겪은 흥망성쇠의 모습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갈등 뒤에는 ‘21세기의 로마 제국이라는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드러난 것처럼, 전염병과 기후 변화 문제는 전 세계 국가의 결속과 유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의 불확실하고 해체된 연대의 모습만을 확인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의 해결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이가 어떻게 힘을 모을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띄운 한 척의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공동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지구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 역사가는 당대의 절실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저술로 남긴다. 독자는 이로부터 가장 절실한 교훈을 얻어낸다. 이 모든 행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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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gy 2022-03-13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뜻을 같이합니다. 🙏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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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자유와 상상력을 품었던 공간, 이제는 우리의 바다


- 주경철의바다 인류(휴머니스트, 2022)



 

바다는 인류사의 중요한 무대다. 지구 표면의 70%가 넘는 바다는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장애물이었던 반면, 육지와 다른 장점을 갖춘 통행로이기도 했다. 이 논지는 일요일의 역사가, 대항해 시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로 대중에게 역사를 친숙하게 소개해온 주경철 교수의 신간 바다 인류(2022)의 큰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연구 분야인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경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안목으로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시리즈와 같은 주목할 만한 번역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도서는 바다와 함께 해온 인류 문명사에 대한 오랜 관심과 연구 사항을 총정리한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전작 대항해 시대역시 바다를 매개로한 역사를 면밀하게 다루었다. 다만 이 책은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준 근대의 형성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이번 작업은 인류가 바다와 상호작용해온 역사를 보다 긴 호흡으로 추적한 역작이라 볼 수 있다. 대항해 시대가 중세가 마무리되고 근대가 시작하는 인류사 시기의 여러 장면을 해양이라는 무대 속에서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본 작업이었다면, 바다 인류는 같은 맥락에서 바다를 탐험하고 도전해온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다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고고학 연구가 아닌 이상 인류의 역사는 무엇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남긴 문자기록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 시대란 이런 특성을 반영하고 여기에 의존하던 시기이므로, 문자가 등장하여 기록된 매체가 역사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현재 인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랜 문자로 수메르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들 수 있다. 이들 문자와 기록은 5000년에서 8000년 전의 인류가 이미문명을 이루고 있었고, 또 이들이 이미 바다로 나가 필요한 물자를 운송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관심을 지니고, 고대 문명이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개척했던 역사가 궁금했다. 문명 초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양으로의 진출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메소포타미아나 아프리카 고대 왕국에서 신전과 같은 건축물, 선박과 같은 목재 구조물을 짓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여 거대한 바위와 목재를 나르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최근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철학 등 고전에 대한 소개가 활발하다. 내게도 조금 익숙해진 지중해 지역(유럽과 아프리카, 근동 지역이 만나는 곳)의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주변의 문명과 인도양 지역의 문명(아프리카 북동부와 인도)이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통해 연결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흐름이 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중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해양 네트워크의 한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육상의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해양의 진주길이 만들어진 역사는 도전적이고 동시에 역동적이었다. 이 역사의 한 가운데에 목숨을 건 말레이인들의 중개무역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해석된 역사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번 독서에서 인상 깊게 주목한 부분은, 저자의 세심하고 균형감 있는 역사적 안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명에 익숙하고, 이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초기 지중해 세계가 그리스-로마의 독무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양한 민족들이 협력과 투쟁을 하며 복합적인 역사 흐름이 이어지는 곳’(69)이라고 말한다. 서양 역사가 혹은 이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역사가들의 설명을 왜곡된 설명이라 지적하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는 그 역사 흐름은 일직선의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성장·후퇴·갱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바다는 다양한 문명들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떠오르는 창조적 공간이었다”(69)라고 알려준다.



[로마제국의 지중해 점령지역]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식민지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균형 잡힌 설명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문명)그들(야만)‘간의 대립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나아가 그리스라는 문명이 일사분란하게 지중해 지역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문명을 수호했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중해 세계의 식민지화 양상을 고려할 때 흔히 적용되어 온 셈이다. 이에 저자는 단일 구조 아래 일부 주민을 내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설명은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인간이 항해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소통했고, 그 가운데 형성된 네트워크가 확대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에는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종교 및 문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지식, 물자가 유통되어 왔다는 점이 핵심이 되겠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문화 자산이 전달되는 해상네트워크의 중첩이다.”(109)


 

이처럼 지중해 네트워크는 점차 확대되어 인도양 네트워크 및 태평양 네트워크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갔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의 해양 네트워크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섬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 역시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운하와 해운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대목이었다. 중국의 수나라는 단명했지만 양쯔강과 황허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공사를 2대에 걸쳐 단행했다. 이 공사가 국가의 운명을 단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문화적으로 화려한 중세 황금기를 견인했다. 중국이 상이한 지역의 인적/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대한 땅에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역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대운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개방된 바다에 접해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통제가 훨씬 어렵고 그 역할도 미진했다. 이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지역을 통합하는 추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몰락은 이후 유럽의 역사에서 중국과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유럽 주변의 전쟁처럼, 저자는 유럽 대륙은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의 분열된 조합 양상으로 역사가 진행’(220)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던 중국의 대운하 사업이 역사에 영향을 준 유일한 부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저자는 대운하가 경제 성장을 가속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폐쇄와 내향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결국 중국과 유럽 문명이 각각 제국과 국민국가라는 상이한 길로 가게 된 이유를 통찰하면서 대운하를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학자가 주목한 주제를 저자가 직접 짚어주고 해석하는 대목과 만나는 부분이 이 책을 읽는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후 중국과 이슬람권의 역동적인 교류 및 교역이 아시아 해양 세계를 한동안 특징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팽창하게 되는 이슬람 문명이 가져온 세계사적 영향은 근대의 기원을 열어젖힌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로서 인류의 역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해양 네트워크를 매개로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통한 팽창이 제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예비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은 제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지니는 함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다에 초점을 맞춘 인류 역사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통찰하고 있다. 오늘날의 바다를 다룬 장에서는 무엇보다 현재 인류가 마주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환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및 미국과 같은 제국사이의 새로운 경쟁과 충돌 양상은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에게 지구 환경 변화의 문제, 지구적 오염 문제보다 더 큰 위기감을 주는 문제가 있을까싶다. 이 문제의 징후가 무엇보다 바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빙하가 영구적으로 사라져버리고, 공유 영역으로서의 바다는 플라스틱 오염원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 이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고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 바닥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일 뿐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는 거북이나 몸 안의 소화관에 미세 플라스틱을 지니고 있는 해양 생물 역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까. 이제 인류는 전체의 운명이 걸린 실존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바다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의 역사, 특히 문명이 바다로 진출한 역사는 자연과의 대결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모았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는 우리가 다시금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경고를 준다. 저자는 로마인들이 바다(지중해)로 나갔을 때, 바다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변화와 오염을 고려할 때, 자연 변화와 환경 오염은 특정 국가나 이들에 속한 영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구의 바다 전체가 곧 우리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지구에서 운명을 공유하는 지구인으로서 말이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인들의 인도양-태평양지역 확산 흐름]



이 책은 인류에게 바다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 물음은 태평양의 오스트로네시아족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확산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문양이 들어간 라피타(Lapita) 도자기 문화는 바다를 건너 확산되고 공유되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바다가 무한한 자유를 가진 공간이자 하나의 거대한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였을 것이다. 바다라는 세계를 마주했던 인류는 대상 세계를 해석하고 반응했다. 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지식을 개발하고 집단 지성을 이루어왔다. 이번 독서에서는 인류가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과감하게 도전하고 모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완성한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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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3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 초란공님 정리 넘 잘하신거 아닌가요 !!! 전 읽긴 읽었는데 정리가 안돼요 ㅠㅠ초란공님 👍

초란공 2022-03-03 20:35   좋아요 1 | URL
저도 방대한 양이라 관심가는 부분만 뽑은거지요 ^^;; 통나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워요!
 
최초의 역사 수메르 -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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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 수메르

: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

 



한 역사학자가 오롯이 담긴 최초 문명의 역사

 


지금부터 약 150년 전, 32세의 한 영국 청년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실을 발표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보다 2000년 이상 앞서 발생했던 대홍수에 관한 역사를 공개했던 것이다. 조지 스미스라는 이름의 청년은 서구인에게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성서의 기록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가 발표한 길가메쉬 서사시로부터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 알려져 있던 고대의 셈족보다 앞섰던 수메르족의 존재, 최소한 4000년 전에 묻혀버렸던 진실이 부활했다. 우리가 설형문자, 쐐기문자 등 이름을 들어본 적 있던 수메르의 점토판들을 해독하여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한 것이다. 19세기는 인류의 지성사에서 격변의 시대였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진화론이 등장하여 지구의 생명체에 관한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치에 대해 달리 바라보도록 화두를 던졌고, 고대의 셈족보다 먼저 존재했던 수메르족의 존재를 밝힌 일은 기독교적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이었다.


 

오늘 읽은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국내 연구자가 직접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하여 써내려간 역사책이다. 무엇보다 승자가 된 한 왕국의 필경사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고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을 되찾은 과정이 담겨있다. 저자는 문명의 본향인 수메르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돌려 놓았다. 그는 이 최초의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노라 말한다. 이 책의 서술방식이 독특한 이유는 역사책에 역사가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구 중에 알아낸 일들에 대해 벅찬 감격을 느끼기도 하고 이를 역사책에 기록했다.


 

수메르 최초의 황제로 밝혀진 에안나툼은 라가쉬라는 도시 국가의 지배자였으며, 보기 드문 성군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백성의 빚을 탕감하여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최초로 노예해방을 선언하여 노예로 살아야 했던 아들, 혹은 어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예를 들면, ‘자유를 의미하는 설형문자 아마-를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아마어머니를 가리키고, ‘돌아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까 에안나툼의 노예해방선언으로 노예였던 자식이 어머니에게 돌아가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폭정과 수탈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힘없는 고대 수메르인들에게는 얽매인 신분에서 벗어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이들에게 절실했던 자유의 정의였단다. 저자는 최초의 역사 이야기에서 가장 가슴이 벅찬 순간”(225)이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느꼈을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메르의 역사를 읽으면서 신기하고 놀랐던 것은 5000년 전의 고대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수메르는 문자를 통해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문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5500년 전에 수메르의 상형문자가 등장했다. 하지만 적어도’ 8500년 전에 수메르의 남부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경문명이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물이 중요했다는 의미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이 고대 국가들은 운하를 만들고 관개시설을 마련했다. 또 새로 왕이 즉위할 때면 국론을 모으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중앙에 언제나 신전을 짓거나 개축했다. 운하든 신전이든 이를 건설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했다. 사람들을 부리고 통제하기 위해서 중앙집권적인 지배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렇게 수메르의 농경문명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요건을 이미 모두 갖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도시가 발달하고, 그에 따른 필요가 증가했다. 이는 곧 자본과 자원이 도시로 모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특히 수메르 지역의 남부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의 하류가 있는 비옥토 지역이었기에, 곡식을 비롯한 농산물로 풍요로웠다. 이 지역이 바로 성경에서 신화로 여겨졌던 에덴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잉여 산물이 생겨나 물물교환을 비롯한 교역이 성행하고, 수메르 남부에서는 아라비아 만을 통한 해상무역도 발달했다. 작은 도시 마을에 인구가 증가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 전쟁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등 도시 사이에 끊임없이 경쟁과 전쟁이 벌어지던 곳. 수메르는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쉬지 않고 벌어졌던 역동적인 국가였다. 또 지금과 다름없이 권력을 향한 암투가 극심하여 위정자들은 심심치 않게 급사를 했다. 이는 자국의 신하들 혹은 가족들에 의해 살해당했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메르의 왕들이 급사하는 경우 대부분은 지병 때문이 아니라 암살당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지배자가 사망한 대다수의 경우는 자국 내에서 암살당한 사례가 더 많아 보였다.


 

저자는 5000년 전 고대인들의 삶을 해독하면서 우리의 삶을 통찰한다. 수많은 영웅들이 일어났지만, 대개 한 세대를 지나면 사라져갔다. 필멸자, 유한한 생이 주어진 인간의 운명 앞에, 나타났다 사라져간 선조의 모습이 기록되어 5000년이란 시간을 건넜다. 탐욕과 어리석음을 이토록 지독하게 반복하는 동물들이라니! 앞서 언급한 수메르 최초의 황제이자 성군이었던 에안나툼 역시 뒤를 이은 후손들이 잠깐의 틈을 보인 사이 주변 국가가 침략하고 신하가 배신을 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호기심과 흥분을 느꼈다. 반면 오랜 역사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면모를 고대의 기록에서 재확인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토록 영원히 어리석음과 이기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사라져간 인간들의 운명이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해도, 본질적인 인류의 습성과 행동방식이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환경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살림살이는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인간의 역사는 결국 비슷한 모양으로 되풀이 되고 있었다. 수많은 영웅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과 재화를 탐냈다. 전쟁을 일으키고 약탈하여 전리품을 챙겼다. 뺏고 뺏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상을 빠른 속도로 재생한 것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필경사이자 역사가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밝히고 이를 바로 잡고자 했다. 잃어버린 최초 문명의 역사를 되찾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5000년 동안 반복되어온 인간의 모순과 어리석음을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도 발견하고 안타까워했다. 고대의 수메르 지역은 현재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해당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대와 현대의 역사를 연결 지으면서 자신이 일생의 연구를 통해 얻은 결실을 마무리한다.


 

고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 고대 이란인이 수메르의 황금 들판에덴의 자본을 차지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고대 셈족이 에덴을 빼앗았다. 오늘날에도 이란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이 두 나라 사이에서 제국의 검은 손을 줄곧 뻗고 있다. 작금의 유일한 제국800개의 해외기지를 세웠다. 지구는 제국의 놀이터로 변했다.”(445)


 

과거에는 귀금속, 목재, 농산물 등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면, 현대에는 석유, 천연가스 등을 비롯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는 정도가 다를까. 저자를 비롯한 우리가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후손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줄 것인가를 독자에게 물었다. 그는 제국, 전쟁,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유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년(2021)에 원고를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넘기고 몇 달이 지나 작고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 후 저자가 직접 수메르와 설형 문자에 대해 설명해주는 강연은 없을까 기대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수메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느꼈을 저자의 감동을 나도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그가 책의 마지막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는 후손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줄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라는 문구가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저자가 30년 넘게 연구하는 동안 여러 번의 병치레를 겪으며 남긴 역작이다. 고대의 점토판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해독하면서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역사가의 사명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독특한 서술방식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그의 역사 서술이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은 서사시처럼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수메르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이 국가의 평화를 갈망하며 평화의 전령인 야생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노예를 해방했던 수메르 황제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을 저자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그가 자유’, ‘평화’, ‘비둘기를 의미하는 설형문자를 소개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글을 마칠까한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자유', '평화', '비둘기'

*비둘기는 수메르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의 평화 기원 메시지를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에게 전했던 전령이었다.

 


[1] "우루크에서 문자가 출현했고, 문명이 탄생했다. 우루크 문화가 기어이 문명을 일으켰다. 수메르는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우루크는 최초의 문명도시였고, 문명의 도가니였다." (68)

"문명의 본향은 수메르였다." (69)

[2] "에덴을 끼고 있는 라가쉬와 움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적수였다. 에덴전쟁은 물전쟁이었고 식량전쟁이었으며, 영토전쟁이었다. 수메르에서 벌어진 ‘자본전쟁의 시작’이었다." (110)

[3] "에안나툼은 평화를 갈구하는 자신의 마음을 엔릴에게 전하고 싶었다. 왕이 선택한 ‘평화의 전령’은 야생비둘기였다. (...) 왕은 비둘기를 눈화장과 삼나무 진액으로 치장했다. 삼나무는 수메르에서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신의 나무’였다." (174-175)

[4] "‘자유’를 의미하는 설형문자는 ‘아마-기(ama-gi4)’이다. ‘아마(ama)‘는 ‘어머니’이며, ‘기(gi4)‘는 ‘돌아가다’라는 뜻이다. 엔메테나가 세상에 내놓은 자유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다’에서 탄생한 철학적인 수메르어이다. 수메르어 ‘아마’의 악카드어는 ‘움무(ummu)‘이다. 여기서 영어의 ‘마마(mama)’나 한국어의 ‘엄마’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아마, 움무, 마마, 엄마’의 품에 안길 때 가장 평온하다. 이때가 고달픈 삶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순간이다. "32행: 어머니를 자식에게 돌려보냈고, 33행: 자식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 최초의 역사 이야기에서 가장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225)

[5] "수메르는 ‘적어도’ 8,500년 전에 ‘(수메르) 남부의 남쪽’ 오우에일리에서 출발했다. 4,000여 년 도안 이어져온 수메르의 역사는 수메르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수메르는 악카드인 사르곤에게 국권을 넘겨주었다." (301)

[6] "이씬의 《수메르 왕명록》은 악카드인을 위한 역사 기록이었고, 악카드인에 의한 역사 기록이었다. 어느 역사가라도 조국의 정체성·정당성·정통성에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입한다면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누르-닌슈부르의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었다." (428)
-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란 말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

[7] "1064년에 세상을 떠난 에스파냐학자 이븐 하즘(Ibn Hazm)이 가장 처음 사용한 ‘셈, 셈어, 셈족’이라는 신조어가 1781년 독일의 역사학자 루트비히 폰 슐뢰처에 의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서구인이 가지고 있던 최초의 기억은 진실이 아니었다." (439)


[8] "라가쉬의 필경사들이 4,600년 전부터 가열된 에덴쟁탈전의 실제 상황을 기록했다. (...) 그 당시 라가쉬와 에덴은 수메르 역사의 중심이었다. (...) 수메르는 우르 3왕조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3,840년 전쯤(B.C.E. 1817) 이씬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 수메르 역사를 ‘크게’ 왜곡했다."

"그로부터 약 1,200여 년 후 히브리인은 ‘수메르의 비옥토 에덴’을 ‘에덴동산’으로 바꾸었다. 수메르에 실재했던 ‘황금 들판’ 에덴은 신화 속으로 들어갔다. (...) ‘구약성서’와 ‘에덴동산 신화’를 쓴 역사가들은 누르-닌슈부르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수메르와 최초의 역사를 지웠다." (440)

[9] "에덴전쟁사와 라가쉬가 없는 《수메르 왕명록》은 거짓되고 망령된 역사이다! 이는 필자가 대한민국 산방에 홀로 앉아 세상에 던지는 화두이다. 약 3,840년 동안 잃어버린 ‘최초의 역사’를 되찾아 한없이 기쁘다." (443)

[10] "잊지 못할 전쟁이 있다. 1990년에 시작되어 2011년에 끝난 미국 대통령 부자(父子)가 일으킨 전쟁이다. 부시 부자는 수메르의 옛 땅을 ‘부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숱한 수메르 유적지와 유물이 사라졌다. ‘희대의 제국’ 미국의 광기였다." (444)

[11] "역사는 거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이다" (447)
- 미국 저널리스트, 평화운동가 노먼 커즌스의 말

[12] "나는 제국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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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9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2-01-19 19:22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

2022-01-20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0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


(A Different Mirror For Young People)

로널드 다카키 지음 | 레베카 스테포프 엮음 | [갈라파고스] | (2021)

 



이민자의 관점에서 역사 새로 쓰기

 



노파심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위 빅 히스토리라는 관점이 유행하는 현상을 다소 우려하면서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 ‘빅 히스토리관점에서는 우주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 혹은 각 나라의 역사에 관한 서술을 하나의 거대한 시간성 속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우려하거나 문제될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런 관점이 여러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화된 지식과 판단에 접하게 되는 경우다. 독자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이 희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결국 나만의 노파심일까.


 

예를 들면 미국은 북미 원주민이 살던 땅에 유럽인이 유입되어 형성된 이민자들의 나라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를 설명할 때 일반화된 핵심 개념과 설명만으로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현실이 은폐되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이 부지런히 고민하고 기록을 남기고 있을 것이므로 나만의 노파심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행처럼 느껴지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일도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자칫하면 역사적 설명뒤에 정작 사람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독자들의 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까.


 

에르난도 코르테스는 1519년에 16명의 기병과 600명의 보병을 이끌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 그가 다녀간 후 50년 만에 멕시코 중부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수가 300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천연두와 같이 유럽에서 들어온 질병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즈텍 문명을 몰락하게 만든 유럽인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는 16세기 멕시코 지역의 역사를 ‘16세기에 멕시코 중부 지역의 인구가 유럽인의 유입과 질병으로 90% 감소했다라고 간결하게 정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만을 역사책에서 접했을 때, 후대의 독자들은 과거의 선조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인구, 그리고 숫자로만 기록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역사책을 읽을 때 직관적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빅 히스토리책들을 보면 내가 이따금씩 우려감을 느끼는 이유다.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는 이런 개인적인 우려를 상당히 불식시켜주는 책이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서 주목하고자 했던 노력들의 계보를 잇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하워드 진은 이 유명한 미국사의 첫 장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난사로 시작했다. 그의 저술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워드 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에 복무하면서 폭격기에 올라 폭탄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책에서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를 솔직하게 고백했던 부분도 기억난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높은 상공에서 무감각하게 폭탄을 떨어뜨렸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폭격 받은 도시 현장을 지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본다. 내게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경우는 폭격기에서 무심히 풍경을 바라보는 폭격수의 입장과 비슷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로널드 다카키가 쓰고, 이를 논픽션 작가 레페카 스테포프가 청소년용으로 다듬고 엮은 이 책은 폭격을 받은 현장을 지상에서 바라보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 특히 주목하게 된 이유다.


파도가 좋아 서퍼가 되려 했던청년 다카키는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 후손의 3세대다. 그의 할아버지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였다. 저자가 살았던 마을은 일본인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포르투갈, 하와이 혈통의 노동자들이 모인 다문화 공동체였다. 특히 그가 저술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From the Land of Morning Calm다른 해변에서 온 이방인들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1998)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한인 이주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이 책들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엮은 레베카 스테포프 역시 인문분야의 논픽션 도서들을 선보인 작가다. 특히 청소년을 위해 하워드 진, 제레드 다이아몬드, 다윈, 찰스 만의 저서들을 편집하여 새롭게 발표한 시리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원저자 다카키 교수가 평생 붙들었던 관심사는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에서는 저자의 그런 의도가 개별 인구 집단에 적용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노예의 삶, 아일랜드인들의 이민, 중국인들의 역사, 러시아를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 등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1851)에 등장하는 포경선 피쿼드호가 백인들에 의해 멸종한 원주민 부족의 이름인 것, 그리고 이 배에 10여 개국에서 온 선원들이 있던 설정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미국의 족보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은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은 각자 자신에게 익숙했던 영역의 경계를 넘어온 이들이었다. 미국이야말로 다양한 경계인들의 나라였다. 하지만 백인 남성 위주의 성채를 세우고 이를 지키려고 했던 행보는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분열과 충돌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2021년에 백인 인구가 사상 최초로 감소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는 이 백인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투명하고 절박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국경의 담장을 높이려 했던 시도 역시 그런 백인들의 두려움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의 뉴스보도에 근거한 역자의 설명 따르면, 국내 전체 학생 중에서 한명 이상의 외국계 혈통 부모를 가진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3% 넘게 차지한다. 비록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다문화가정의 비율은 당분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도 지속적으로 다양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다카키 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개별 집단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모여 세계 시민국가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11) 대한민국도 결국 현대사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싶다. 각 다문화가정의 후손들 역시 언젠간 자신이 속한 역사를 새롭게 써야하고, 누군가는 결국 다시 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점차 다양해지는 집단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다시 새롭게 기술되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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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22-01-14 0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초란공님 미국사 시작하시는 건가요?!

초란공 2022-01-14 01:24   좋아요 2 | URL
아주 느리게 읽을 듯합니다^^;; 이 책은 특히 흥미롭네요. 미국에서는 아주 소수파에 속했던 역사학자인 듯 하고요. 지금은 돌아가신 듯하여 아쉽네요.

mini74 2022-01-14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민중사가 있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01-14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도 벽돌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저 하워드 진은 읽어보고 싶은데
아마 평생 못 읽지 싶어요.ㅠㅋ

2022-01-16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6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