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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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샤일록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피에 젖은 땅 (Blooldlands)》(2021)

    

 

저 멀리 애처롭게 스러져간 생은 얼마나 될까

 

76년 전 오늘(430), 베를린의 총통벙커라고 불린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함께 순수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제국 건설의 꿈도 막을 내렸다. 이 남자와 측근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명령으로 죽어간 사람은 이미 600만 명에 달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마저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소련 사이의 동유럽에서 전쟁과 폭압으로 죽어간 사람은 나치가 살육한 유대인 수의 두 배가 넘었다.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로 알려진 학살의 역사는 같은 시기, 동유럽에서 벌어졌던 살육 과정의 단지 일부일 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유럽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주목한 부분이다. 피에 젖은 땅에서 저자는 이 책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도자들이 내린 명령으로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22)임을 밝히며, 이를 위해 블러드랜드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블러드랜드란 대략 현재 독일의 동쪽인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의 서부까지,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남쪽으로는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대략 12년간, 블러드랜드에서 나치와 소비에트 세력의 정책으로 스러져간 사람이 1400만 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10여 개국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유럽을 배경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보다 큰 틀에서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흔히 개별적으로 연구되곤 했다면, 저자는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어 10개 언어로 된 문헌을 면밀히 조사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유럽 역사,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이 주도한 대량학살의 역사를 한 흐름 속에서 조명했다.

 

간혹 다양한 사례와 희생자 통계에 압도되어 의미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피해자 및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간간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폴란드계 문인을 떠올리며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고자 했다. 한 명은 독일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이하 라니츠키). 라니츠키는 이 책에서 꽤 상세히 소개되는 바르샤바 게토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훗날 부모와 형제를 죽인 나라의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된다. 또 다른 인물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다(이하 쉼보르스카). 그녀는 1931년부터 평생 블러드랜드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도시 크라쿠프에서 살았다. 블러드랜드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동안, 두 사람은 엄혹했던 시대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했고, 이들을 목격했으며, 마침내 생존했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이 있던 시공간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보고자 했다.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와 히틀러의 야망에 스러져간 이들

 

이 책의 초점은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동유럽의 블러드랜드라는 제한적이고 보다 명료하게 정의된 프레임에 속에 놓여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분기점을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첫 번째 분기점은 1933년 블러드랜드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이었다. 이 사건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시행된 5개년 경제계획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이 농민들로부터 무리하게 거두어들인 곡물을 해외로 수출하여 발생한 기근으로, 이는 무엇보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정치적 재앙이자 학살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스탈린이 심각한 기아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단화 과정은 농업대신 산업을 육성 하고자 했기에, 농민들은 농지 몰수 및 강제 이주를 당하며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스탈린은 식량 징발을 강제하여, 자국민을 굶주림 및 이와 관련한 질병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최소 330만 명(대부분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공산당에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스탈린이 벌인 대표적인 잔혹 행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대공포 시기(1937-38)에 이루어진 학살이며, 다른 하나는 소련이 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1938-41)에 자행한 폴란드 박멸 행위다. 대공포 시기에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 레닌이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유대계였던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를 축출하거나 누명을 씌워 처형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군대나 정당, 내무인민위원회 등 내부 조직 숙청과 기관 장악에서 나아가 사회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는 기근으로 많은 농민들이 죽어간 소련 령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부농으로 밝혀진이들을 강제이주 시키거나 총살했던 부농박멸작전이 있고, 주로 폴란드계를 대상으로 했던 민족 박멸 작전이 있다. 저자는 이 두 작전에서 처형된 이들이 625483명에 달한다고 언급한다(192).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는 스탈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테러행위였다.

 

한편 히틀러는 1939년 봄,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라고 군에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여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함께 침공한다는 합의를 했다. 193991일에 독일은 탱크와 보병을 앞세우고, 폴란드 비엘룬시를 공습하며 침공했다. 며칠 후 독일 공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공습하며 수만 명의 시민과 군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16세였던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에 크라쿠프에서 부상당한 폴란드 병사들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 훗날 9월에 관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시에 담아내기도 했다. 소련은 917일에 50만 명의 군인을 앞세우고 폴란드로 들어갔다. 928일에는 독일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이하 라인’)이라는 새로운 국경을 확정하며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새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폴란드인들은 제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을 얻었지만, 11년 만에 다시 나라를 잃었다. 라인의 동쪽에서 소련군은 15만 여 명의 젊은이를 붉은 군대에 강제 편입시켰고, 새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폴란드인 집단을 강제 추방시키기에 이른다. 이때 폴란드인 139794명이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만약 쉼보르스카가 소련군이 점령했던 라인동쪽의 리비프 같은 곳에서 살았다면, 그녀와 가족은 아마도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를 탔다가 시베리아 초원의 어딘가에 묻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당시 폴란드계 소련인들이 폴란드 문화나 카톨릭교에 대해 보인 호의를 국가 간 첩보활동에 동참했다고 하며, 묵주를 가진 사람에게도 수용소 10년 형을 내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었을지도 모른다(175). 하지만 시인의 가족은 나치가 점령했던 라인의 서쪽에 있었다. 물론 이곳에 있던 폴란드인들의 고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무엇보다 인종적 우월성에 집착했기에,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지식인이 많았던 폴란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특히 폴란드의 옛 수도였고, 쉼보르스카가 살던 크라쿠프에서는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만약 쉼보르스카의 부모가 교수와 같은 지식인이었다면, 시인의 가정 역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과거에 지방 영주의 관리인이었기에 나치의 우선적인 처분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을 것 같다. 이 시기에 폴란드인에 대한 독일과 소련의 유린 행위는 주로 총살에 의지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대략 2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고,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당했다. 당시에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는 카틴 대학살이 있는데, 소련은 폴란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 4410명 전원을 카틴 숲에서 총살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궁금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는 이 시기에 세워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학살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강제 수용소는 노동력을 위한 집단 수용시설이었고, 가끔 의료적인 안락사를 위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 쉼보르스카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는 책에 소개된 정황과 크라쿠프의 위치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크라쿠프는 아우슈비츠와 대략 50 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주요 가스 학살 공장이 들어서게 되는 헤움노,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마이다네크, 베우제츠 등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나이더는 30-40년대의 12년 동안 민간인 및 전쟁포로의 사망자를 14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숫자의 약 4분의 1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1933-1941년 사이)에 이미 사망했다고 언급한다. 1400만 명의 절반 정도는 사실상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굶어 죽은 이들이었다. 이렇게 나치의 살육 시설에 둘러싸인 옛 도시에서 장차 폴란드의 대시인이 될 소녀가 견디어내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나를 태웠다

- 최종해결책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내가 주목한 두 번째 분기점은 1941622일에 시작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다. 이날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침공했다. 새로운 재앙이 시작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1933-1941년까지의 시기를 소련이 대량학살 대부분을 담당하다가 독일이 학살에 가세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는 히틀러의 학살 작업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500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300만 명이 넘는 전쟁포로를 포함하여 1000만 명 이상이 정치적으로 학살당했다. 이 두 번째 분기점부터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을 더 많이 떠올렸다. 라니츠키는 베를린에서 가족과 지내다가 19381028일 오전, 독일 경찰의 방문을 받고 폴란드로 추방당한다. 스나이더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3810, 독일은 폴란드 시민권이 있는 유대인 17000명을 독일 제국에서 폴란드로 추방했다.”(197) 라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이 때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 유대인 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정의 밤폭력 사건은 라니츠키 가족이 떠난 지 2주 후인 119일에 발생했다.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분기점(1941-1945)에 대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그 이유는 저자가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의 조직적 학살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탁월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히틀러가 악인이었기 때문이거나, 집권 초기부터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규모 300만 명의 독일군은 동쪽으로 빠르게 진군하면서, 1941년 말까지 300만 명 이상의 소련군 포로를 생포했다. 소련군 포로들은 부족한 식량과 추운 날씨, 열악한 이송 여건 등으로 260만 명이 사망하고, 적어도 50만 명이 독일인의 손에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나치 친위대는 노동 수용소 성격을 지니던 장소를 본격적인 살육시설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명 학살 공장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의 해상력과 공군력에서 영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대륙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제국 건설 외에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히틀러의 정치적 야망에 인종주의적인 성격이 가미되면서, 유대인들은 제국건설을 위한 최종 해결책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라니츠키가 머물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가본다. 동부 전선에서 독일은 식량 및 보급품의 부족,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을 맞았고, 소련을 몇 주 만에 무너뜨리고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전격적 승리는 점점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 근교로 갔던 라니츠키 가족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이미 조성되었던 바르샤바 게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토 시절 라니츠키는 독일어 번역 작업을 하며 평생 함께할 아내 토지아와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거의 마지막까지 게토에 남았다. 반면 그의 부모님과 형, 직장 동료와 두 아들은 가스시설이 있는 트레블린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쉼보르스카의 시집 검은 노래에 수록된 시 유대인 수송은 수용소로 이송되는 열차 안의 풍경을 그린다. 죽음을 직감한 유대인들의 절망을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라니츠키는 1943118일 새벽, 트레블린카 수용소로 떠나는 행렬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극적으로 행렬에서 이탈했고, 2주 가까이 게토에 숨어 있다가 23일에 게토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에는 부부가 어느 폴란드인의 집에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숨어 지내며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회상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트레블린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곳이 라니츠키 부부의 가족이 사망한 곳이기도 했고, 또 이 수용소가 폐쇄된 이후 학살의 중심이 아우슈비츠로 옮겨가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비롯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 노동수용소에 처형장이 더해진 학살 공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와 같은 경제적 규모의 문제에 따른 정치적 해결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살육 공장 시설 네트워크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의 동쪽과 서쪽에 걸친 폴란드에 주로 세워진 것은 이 지역이 독일과 소련이 충돌하던 핵심지역인데다, 장기화되는 전시상황, 그리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지역이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주요 정착지였다는 상황도 고려해야할 듯하다. 이 시기에 독일이 벌인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1942년에 베우제츠, 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폴란드 유대인만 약 130만 명이 가스 시설에 처형되었다(456). 여기에 약 1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은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벨라루스와 바르샤바 봉기로 폴란드인 등의 소수 민족들에 대한 독일군의 보복과 총살이 계속 이어져 수십 만 명의 희생자가 더해졌다.

 

독일이 패망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눈엣가시였던 일본이 힘을 잃자 사실상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쥔 소련은 이제 냉전 구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후 새로운 재앙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다시 불어오고 있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최종해결책은 이제 스탈린의 전후 인종청소 작업에도 이용되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적 명분이 가미되면서 유대인은 물론 독일인에 대한 보복과 소수민족 박해로도 이어졌다. 이 시기의 재앙적인 만행과 인권 유린을 더 자세히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서구 유럽 문화에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민족이 여전히 큰 고통을 당했지만, 절대 다수는 인종주의라는 허울에 스러져갔던 유대인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럽 사회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독하고 욕심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희곡은 정의가 샤일록을 응징하는 모양새로 끝난다. 이처럼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희생 대상을 찾던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언제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벌거벗은 진실이 그 이유를 누설하진 않으리라

- 대량학살과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었을 법한 지점이 독일과 소련의 정치적 대량학살이기에,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 사회에서 대량 학살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 저자는 대량학살의 사례로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 해결책(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소련 침공 직후 생포한 소련 전쟁 포로를 굶기기,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정책 등을 거론한다. 대량학살이 일어난 사례를 보면, 히틀러의 신념체계와 독일인들이 처했던 경제적 규모의 문제가 대량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대량학살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 대량학살 사건으로부터 대량학살의 메커니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대량학살의 씨앗이 되는 지도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소수더라도 지도자에게 충성을 보이는 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 스탈린이 주장하던 유대인의 음모혹은 히틀러의 아리안 신화와 같은 허구적 명분이 필요하다. 이 허구의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결속을 더해주는 힘도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대량학살의 초기 단계에 이를 막을 세력이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가 처형 대상과 수행자의 목숨 사이에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존을 선택하고 학살임무를 맡은 수행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는. ‘모비 딕을 끝까지 추적해서 복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선장 에이해브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 앞에 의문을 품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있다. 하지만 스타벅도 선원들을 선동하는 에이해브를 끝내 저지하지 못하고, 결국 소극적 동조자가 되어 함께 파멸을 맞는다. 현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대량학살의 여러 특징 중에서 이 부분에 주목해본다. 대량학살로 이어지기 전에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하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대량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학살은 분명히 인간에 의해 저지되고 중단될 수 있었다.

 

다시 잠시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스탈린이 기획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서방세계에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맺고 싶었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11월에 소련을 정식승인하게 되는데, 이런 정세로 스탈린이 기획한 테러와 학살이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에서 나아가 서방 세계로부터 외면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나치 독일이 193991일 새벽,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에 따르면 이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더라면, 폴란드인, 벨라루스인들에 대한 학살 및 강제이주, 그리고 30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 포로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나치의 살육 공장 네트워크의 건설이나 레닌그라드 봉쇄로 스러져갔던 많은 이들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결론에서 제시하는 대량학살에 관한 문제의식 역시 이 지점을 향한다. 저자는 그런 (대량학살) 정책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706)라고 묻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위해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들이 왜 대량학살을 벌였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작업이 바로 우리 인간,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샤일록과 같은 인물이 존재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샤일록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샤일록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왜 그러한 행동이 당연하게 말이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도 샤일록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란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아직 헉슬리가 언급한 통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보편적인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응했다면, 최소한 자국민을 많이 학살하며 은폐되었던 스탈린식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외에서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나치의 살육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외부 세력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단계, 사람에 의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병사는 당신들의 시가 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는 내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검은 노래를 곁에 두고 펼쳐보았다. 이 글의 소제목은 모두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조금 수정하여 가져왔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자신의 책에서 아우슈비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살육공장에서 스러져간 이들은 생존한 사람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노동시설에 살육시설이 더해졌기에, 생존자들의 증언이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저자도 책에서 한정한 시공간에서 자행된 살육이 유대인에 대한 희생자 수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많다는 점도 상기시켜준다. 또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의 4분의 3정도는 1943년 봄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 복합 시설이 들어섰을 때 이미 희생된 상태(677)였음을 지적한다. 소련의 경우를 포함하면, 소련과 나치 체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된 이들의 90%이상은 이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가동되기 전에 발생했다. 이 지적은 이 시기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가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좀 더 폭넓고 균형감 있게 이 시기에 벌어진 대량학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40-45년 사이, 처칠은 이 지역의 식량을 강제로 징발하여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도인을 굶주림으로 사망하게 만든 사건에 책임이 있다. 처칠이 내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팔과 인도 동부 벵골 지역을 통해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올 수 있다는 전략적인 우려와 판단에서 취해지긴 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학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사건은 블러드랜드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벗어나 있지만, 대기근이 의도적으로 유발된 정황, 그리고 영국에 의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외면당했던 정황이 있기에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비교하기에 좋은 사례로 여겨진다. 저자가 1945년 이후 소련이 승리를 거머쥔 뒤 독일인에 대한 스탈린의 강제 이주 및 전후 인종청소와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언급하고 있는데다, 1958-60년에 마오쩌둥의 중국이 기근으로 약 3,0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언급(774, 주석7)을 한 이상, 연합국 측의 유사 학살 행위 역시 함께 언급되었더라면 보다 균형 있는 서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저자의 논점 하나는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정치적 대량학살의 기원과 그 여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그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고 있다(27). 또 저자의 다른 논점은 유럽 사회에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인종주의, 특히 반유대주의를 재발견한 점이다. 허구적 기준인 를 잣대로 삼아 인종을 평가하고 편견을 용인해온 서구 유럽의 역사가 1930-40년대, 블러드랜드라는 특정 시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어떤 재앙을 낳을 수 있었는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인종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을 접하고 있다. 역사가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현재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는 잠재력과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스나이더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정확한 숫자를 기반으로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러져간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작업도 함께하며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샤일록은 원래 악독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샤일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새롭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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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3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5-07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왠지 1등 의 기운이 ㅎㅎㅎ

북플로 초란공님 이 페이퍼에 댓글 달았었는데,,,,(리뷰 올라오자 마자)
살아졌으요 ㅠ.ㅠ

초란공 2021-05-07 18:18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이달의 페이퍼 당첨 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Scott님의 엄청난 자료와 글로 항상 풍성하게 배울것이 있어요~ 음악도 잘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음악이야기 올려주시는 것도요~ 눈호강 귀호강 제대로 해요~^^

초딩 2021-05-08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주말 되세요~!

초란공 2021-05-08 20: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초란공 2021-05-09 10:3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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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다음 날 몸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히틀러에게 바쳐진 아이로,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지켜나갈 독일인이 되도록 운명 지워진 저자의 뿌리 찾기 여정이 계속 궁금했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인생에서 50-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믿고 살아온 삶의 토대와 믿음이 체계적으로 가려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어떤 기분이 들까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리아인’ 신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이 신화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그녀의 본명은 에리카 마트코생후 1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강제로 나치의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생이별을 했다이 책은 인생의 후반에 15년 이상 지속되었던 자신의 뿌리 찾기 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수치심을 이겨내고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개인의 역사이자우리가 알아야할 지난 세기의 역사다.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감정을 40년이 다 되도록 철저히 외면했다고 했다. 11세에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을 때그리고 자신이 에리카 마트코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을 때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저자는 52세가 되던 1999년 어느 날 한 적십자 지원의 전화를 받는다.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저자 잉그리트가 그렇다라고 답한 순간그녀는 에리카 마트코를 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임을 직감했을 것이다그동안 묻혀 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나는 이 결정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와 예기치 못할 감정의 기복과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었을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저자의 어린 시절은 20세기 유럽 역사를 휘감았던 소용돌이의 한 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나치의 제2인자이자히틀러 친위대장 이었던 하인리히 힘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무엇보다 히틀러와 힘러 세력이 부활하려고 했던 인종적 순수성은 특히 힘러의 신비주의적 믿음이 더해져 종말론적 비전을 갖게 되고극도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레벤스보른곧 생명의 샘이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해석된 19세기 말의 우생학적 전통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이다다시 말해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것그래서 우수한 인종이 더 번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과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이 논리는 나아가 열등한’ 인종의 소멸이 자연법칙 상 예견되어 있으며 당연한 결과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했다그 결과, ‘열등한’ 이들에 대한 탄압을 무감각하게 만들고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것이다그 한 예로나치 세력은 아리아인의 기준에 미달한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통해 씨를 말리는 야만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저자에 따르면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까지 적어도 32만 명이 법에 따라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한다(111). 이처럼 아리아인의 신화를 실현시킬 야심찬 조직이 바로 레벤스보른이었고이 목표의 설계자가 바로 하임리히 힘러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과거사에 대한 전후 독일 사회의 은폐 분위기였다저자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게오르크 릴리엔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관공서에 자료 문의를 요청했다하지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이 점은 저자처럼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였으며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된 사회의 장벽이었다저자는 독일이 통일되었지만독일인들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87)라고 이야기하며뿌리 찾기에 걸림돌이 되는 외부적 환경에 대해 언급한다우리는 일본과 비교하여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나 역시 그랬으니까하지만 현실에서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갔다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의 프로젝트와 연루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단순히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하지만 모든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의 정확한 내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과 조롱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적국의 아이를 밴 여성의 아이들이라고 말이다이는 지역 사회와 양부모 및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상실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또 자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인류사의 커다란 오점이 된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렸다이들이 노출된 현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치심은 강력한 감정이다그리고 전후 독일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친위대처럼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던 조직에 연루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152)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이 주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왜 금기시되어 왔을지 이해하게 되었다그리고 관공서들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왜 비협조적으로 나왔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레벤스보른 출신 모임에 나가면서 수수께끼 퍼즐 같던 자신의 과거를 좀 더 맞춰 나갈 수 있었다이 모임에 오기까지 많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은 예외 없이 수치심과 죄책감그리고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 받아왔음을 알게 되었다엄마라고 여겼던 기젤라가 사망할 때까지 진실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그리고 슬로베니아(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친부모가 자신을 대신해서 건네받은 아기를 받아들였으며이후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고 고백한다이러한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격한 분노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듣고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로소 상처받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뿌리 찾기 과정을 따라가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의 모임 레벤스푸렌’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80대의 생존자들이 모두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점이었다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자신들이 연관된 오명의 역사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제대로 이해하고세상으로 나오고자 했다는 점에서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기억에 남았다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는 사람들에 맞선 이들의 용감한 행보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성장했지만, ‘정직하고 떳떳해지려고 몸부림치던 한 세대’(9)의 이야기라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나아가 자신의 후손들에게그리고 멀리 아시아에 있는 한 독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가족을 찾고역사를 알아간 한 평범한 독일인의 이야기이면서의도치 않게 나치 핵심 세력에 연루된 세대를 대변한다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또 상처받은 존재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자기 삶의 궤도를 찾고자신이 누구인지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깨달게 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을 좌절과 슬픔그리고 기쁨의 감정과 자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모두 담겨있다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놓기 까지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그녀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 말에 더하여, ‘이제 배워야 할 때라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의 의미를 강조한다이제 후손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정직하려고, 떳떳하려고 몸부림친 한 세대의 이야기다."- P9

"그곳에서 지낸 2년 동안 나는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족이 어린아이의 환상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 나는 이미 기젤라가 나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나를 데려왔는지 몰랐다. (...) 나는 그 일 전체를 내 마음 뒤편으로 치워버렸다. 내가 기젤라의 딸이며, 그녀의 가족이라고 믿고 싶었다."- P61

"1960년대 중반 나는 이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스로를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 불렀지만,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에리카 마트코였다."- P71

"나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내 감정을 거의 40년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P80

"독일은 그것을 꺼내 흔들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독일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베를린 장벽만이 아니었다. 이제 독일은 통일되었지만, 우리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 P87

"내가 진짜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 아니라는 사실은 수십 년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때는 에리카 마트코였다고 믿으면서 그 상처를 달랬다. 그런데 이제 나는 잉그리트도, 에리카도 아니었다. 나는 진짜 아무도 아니었다."- P137

"나는 안전한 내 안식처를 떠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 내 과거로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나는 예순한 살이었고, 이제 내 어린 시절을 공부할 시간이었다."- P139

"뮌헨에 자리한 레벤스보른 본부는 추방된 반나치 활동가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만의 소유였다."- P143

"이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공유하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깊은 정서적 상처와 수치심이었다."- P151

"어린이 대량 납치. 이게 사실일까? 충격적이지만 사실이었다. 힘러가 사석에서 친위대 장교들에게 이 계획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이 녹음된 자료까지 있다."- P158

"나는 ‘총통께 아이를 바치‘는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다."- P161

"그들은 고령인데도 기억이 또렷했고,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가 굳었다."- P192

"저는 살해자들의 편에서 자랐어요. 레벤스보른 아이라는 것은 여전히 수치심의 원천이죠."
-레벤스보른의 아이 헬가의 증언- P216

"이 흐릿한 흑백사진들은 나치가 내 가족에게서 나를 훔쳐 간 날의 기록이다.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과장하는 것처럼 들리긴 싫지만 정말 으스스한 떨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독한 외로움과 무력함이 나를 덮쳤다."- P241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뜻한다. 그건 사람됨의 문제이기도 했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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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들만 옳고 우리는 틀린가? - 인간과 사회를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입문
다케다 세이지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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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론을 소개하는 입문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들의 주장이 현실의 맥락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하기‘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철학하는 ‘나‘의 자리를 돌아보는 철학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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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표 저서 <Guns, Germs, And Steel>(원서)를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영어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시도했는데, 벌써 6개월 넘게 읽고 있네요(다시 따져보니 10개월 째입니다 -,-;; 1년에 원서 1권 읽는 속도라니...). 틈나는 대로 읽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제 17장을 읽고 있으니, 나머지 두 장만 읽으면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어제는 17장을 읽다가 발견한 한 단어를 발견했는데요, '암양'을 의미하는 ewe라는 단어의 발음[ju:]이 재미있어서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잡다하게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참고로 숫양을 의미하는 단어는 ram이네요.


우선 <총,균,쇠>에서 단어 ewe가 나온 문장은 이렇습니다.



For instance, the words meaning "sheep" in many languages of the Indo-European language family, distributed from Ireland to India, are quite similar:

"avis," "avis," "ovis," "oveja," "ovtsa," "owis," and "oi" in Lithuanian, Sanskrit, Latin, Spanish, Russian, Greek, and Irish, respectively. (The English "sheep" is obviously from a different root, but English retains the original root in the word "ewe.") Comparison of the sound shitfs that the various modern Indo-European languasges have undergone during their histories suggests that the original form was "owis" in the ancestral Indo-European language spoken around 6,000 years ago. That unwritten ancestral language is termed Proto-Indo-European.

 <Guns, Germs, and Steel> 1997 ed., 343p



일반적인 양 sheep이란 단어의 인도-유럽어족에 관한 설명을 하는 대목입니다.

 

ewe의 발음[ju:]이 재미있는데요, 더 재미었었던 것은 

셰익스피어의 <The Merchant of Venice> 1막 3장에서 

ewe단어로 언어유희하는 장면을 '발견(?)'해서 여기에 모아봤습니다. 




<The Merchant of Venice> 1막 3장에서 ewe가 나오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Antonio(안토니오): (...)

                     Was this inserted to make interest good? 

               (이자를 정당화하려고 그 얘기가 성경에 쓰였다는 거요?)

                     Or is your gold and silver ewes and rams

               (아니면 당신의 금화와 은화가 암양과 숫양이라는 거요?)


Shylock(샤일록): I cannot tell. I make it breed as fast. 

                 (그건 모르지만, 내 돈도 그만큼 빠르게 새끼 치지요.)

                  (...)

                              [번역은 펭귄클래식버전, 강석주 역]



여기서 this는 <창세기>  30장 25-43절에 보면 야곱이 장인 라반으로부터 검은 양을 자기 몫으로 달라고 해서 재산을 불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다시 보니 야곱이 이렇게 의도적으로 검은 양을 낳도록 구별해서 사육한 이야기는 성경에서 '사육에 의한 변이 생산'을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다윈은 <종의 기원> 1장에서 바로 '인간의 사육에 의한 변이'를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변이'에 대해 이야기 한 다음 '자연선택' 개념을 도입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성경에서 생물학 지식을 이용하여 재산을 불린 최초의 인물이라고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것은 위의 대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암양의 복수인 ewes[ju:s]의 발음과 샤일록이 유대인(jews)인 것, '사용하다'는 의미의 use를 떠올리게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특징적인 동음이의어식 언어유희(pun)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견해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 방송연극영화과 교수 피터 홀랜드의 작품 해설(펭귄클래식 버전 <베니스의 상인>, 181p)에서 참고했습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암양을 통해 새끼를 치는 것과 이자로 재산을 불리는 현상을 기가막히게 병치시키고 있다는 부분이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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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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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Terra Incognita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고고학은 현재 진행형이다’ -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단순히 새로운 유물을 발굴하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나의 편견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자기계발과 기업인문학이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업화된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의 본질은 외면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내 고고학자가 써내려간 테라 인코그니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고고학이란 학문 자체에 대한 나의 무지와 만나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이란 학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새롭게 환기시켜 주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저자가 국내 일간지에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는 시도를 한다. 우선 1부에서는 강자의 역사가 어떻게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통해 편견을 심어 놓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2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보다 구체적인 진실에 접근한다. 온돌이나 고조선의 모피, 그리고 흉노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최근에 드러난 유물과 연구 결과를 통해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 역사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열어준다. 3부에서는 역사 속에서 상상과 신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세계문명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아틀란티스의 신화를 비롯하여 근대의 히틀러가 남긴 편견의 틀을 보여준다. 여기에선 인류의 무지가 어떻게 신화와 결합되어 당대의 삶을 규정했으며,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3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고학이란 학문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이용되어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사례가 모두 흥미로웠지만, 과거의 국가들이 차별과 배제의 장치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지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빈 던바 교수가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인류는 역사를 통틀어 신화와 종교의 의식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타심과 이기심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둘은 하나의 쌍으로 언제나 공존하는 듯하다. 개인 혹은 집단이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이들의 관심이 그 경계의 안에 머물면 이타심일 수 있는 반면, 경계 밖의 존재에게 경계 안에 있는 존재의 행위는 이기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개체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공동체의 생존가능성을 늘릴 수 있다면, 공동체 전체에 있어 이득일 것이다. 이런 공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되는 서양인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시각뿐만 아니라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저자의 지적대로 지극히 악의적인 왜곡에 기반 한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오랜 시간동안 고착되어 후대의 삶에도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식인풍습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흥미로운 대목을 읽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한 장면을 떠올렸다. 소설에서 화자 이슈메일은 여인숙에서 작살잡이 퀴퀘그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된 상황이었다. 한 침대를 쓰게 된 문명인이슈메일은 식인종이자 야만인귀퀘그를 관찰하면서 저 남자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 술 취한 기독교인과 같은 침대를 쓰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충격이 덜 할지 모르나, 1850년대 미국의 백인이 이 말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상당히 도발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모비 딕의 발췌문에 나온 것처럼 허먼 멜빌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몽테뉴가 이미 500년 전에 식인종과 직접 대화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세이에 식인 풍습에 대해 편견을 걷어 내고 기록해놓았다는 점이다. 몽테뉴는 자신이 속한 문명인들이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야만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자의 역할이란 결국은 500년 전의 몽테뉴처럼 편견을 줄이기 위해 경계의 안과 밖을 공평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 강인욱 역시 식인 풍습은 미개한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식인 풍습이 드물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증오심에서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에게 체화되길 바라는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식인 풍습이 점차 문명이 형성되고 신화와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더해져서 적대감으로 인간을 죽이게 되고, 나아가 대량학살에 이르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실제 식인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여 붙여진 이름”(70)이라고 일러준다. 루쉰은 중국 역사에서 발견되는 식인 풍습에 대해 인육의 잔치는 지금도 베풀어지고 있다라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카니발리즘이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기작에 활용되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루쉰의 관점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비하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 주제에 관한 한, 다소 편협했거나 무지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식인 풍습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줄곧 고고학이란 학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는 고고학이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재를 강탈하면서 발달한 근대 이후의 학문”(278)이라는 고고학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대 국가 사이의 분쟁과 약탈의 행보를 살펴보면 고고학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우리의 고고학은 서양이 규정해 놓은 차별과 배제의 프레임을 벗어나 이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아울러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이 만들어 놓은 왜곡되고 자기모순적인(나는 엽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역사관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역사란 이미 상당히 검증을 거쳐 정립된 분야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강대국이 규정해버린 편견과 역사관을 어떤 의심이나 비판적인 검토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제는 고고학이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학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또 고고학은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도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고학은 이 땅 위에 살다간 수많은 세대, 겹겹이 쌓인 삶의 흔적을 한 겹 씩 들어내어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작업일 것이다. 절대 다수가 문자로 기록된 역사보다도 유물과 유적이라는 물성으로서만 남아 그 안에 수많은 진실을 간직하고 있으며 더 폭넓은 인류의 역사를 비쳐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후대인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어 해석되고 이용될 여지도 다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테라 인코그니타에서 고고학은 우리의 역사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서로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연결되어 있던 역사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고고학적 자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의 방향과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풍부한 사료와 함께 보여주었다. 나아가 자국 중심의 역사를 넘어 보편성에 근거하여 세계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를 위해 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타자를 배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자료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기억해두기로 한다.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할 때 만들어졌다."- P22

"카니발리즘은 실제 식인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며 붙여진 이름이었다." (70)

"식인 풍습은 미개함과 관련이 없다." (72)
- P70

"문명을 유지하고 번성하는 가장 큰 관건은 외모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었다."- P155

"고대에 사람들이 교류하고 공존했던 사실을 현대 국가의 영토로 치환하여 논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본군국주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일이다."- P298

"실제로 형제국가라는 표현은 터키 건국 직후 일본이 세운 ‘만주국‘과 친선관계를 수립하면서 등장했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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