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스티나 비르센 그림, 이유진 옮김 / 위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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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그림: 스티나 비르센(Stina Wirsen)



폭력에 반대합니다

: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 지음 | 이유진 옮김 | [위고]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연설문 - ‘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후 그에 관한 영화를 보았고 오늘은 그가 남긴 연설문을 읽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일부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폭력, 부모 혹은 보호자에 의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을 함께 떠올려 보았다.


   아동 폭력 유엔 사무총장 마르타 산토스 파이스의 기고문(2018)에는 전 세계의 어린이가 5분마다 한 명이 폭력으로 숨진다는 통계를 언급한다. 해마다 세계어린이의 절반에 달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알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 혹은 성적 폭력을 당한다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신체적, 성적 학대 이력이 있는 어린이들이 다른 어린이들보다 반응적 공격성과 언어적 공격성의 수준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현실을 지적한다.

   

   아동 폭력, 아동 학대 문제는 무엇보다 인권에 관한 문제다. 스웨덴 최초로 아동 체벌금지를 지지하고 관련법을 제정하는데 기여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주장은 무엇보다 사랑상호존중의 맥락에 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이 없다면 버릇없는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체벌 없는 방식이 무규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이를 구분한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를 존중해야 하나, 부모 또한 아이를 존중해야 하며 아이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기 마련인 상황을 잘못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존중이 함께하는 것입니다.”(39)


 

   여기에 더하여 린드그렌은 어느 여인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연설문에 담았다. 그 여인의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아아 자신이 맞을 회초리를 구해오라고 했다. 한참 후 아이가 구해온 것은 회초리가 아니라 작은 돌멩이였다. 회초리는 구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돌멩이를 사용하라는 의미였을 듯싶다. 그 여인은 아이의 두려움과 고통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인은 그 돌멩이를 부엌 선반에 놓아두고 그 돌멩이를 볼 때마다 폭력에 반대한다는 약속을 되새기고 상기하고자 했다.


   린드그렌은 자신의 연설문을 마치면서 이 돌멩이 하나가 마침내 세상의 평화에 작은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부모의 존중과 사랑, 관용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이들이 자신의 주변에 다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이러한 태도를 평생 이어간다는 믿음을 가졌다. 린드그렌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큰 감동을 받곤 하는데, 이 짧은 연설문은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흔들림 없는 신념과 사랑을 전하는 울림이 있다.




"5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폭력으로 숨집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의 어린이들이 자신이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합니다. 이는 세계 어린이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17)
- 아동 폭력 유엔 사무총장 마르타 산토스 파이스의 기고문(2018년)

"폭력 속의 삶은 삶이 아닙니다." (20)
- 어느 소년의 말 재인용

"요컨대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법이다." (32)
- 괴테의 말을 린드그렌이 재인용 한 문장

"부모를 사랑하며 사랑으로 둘러싸인 아이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주변을 향한 다정한 태도를 배우고 이런 태도를 평생 이어갑니다." (32)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존중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39)

"이 돌멩이 하나가 마침내 세상의 평화에 작은 보탬이 될 것입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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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3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님인데 이런 멋진 연설문도 쓰셨군요. 아이 사랑하는 진심이 가득. 큰 손과 작은 손의 그림이 참 따뜻해 보여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김명호 지음 | [돌베개]

 


'책꽂이에서 다시 발견한 책' -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조선 후기를 무대로 등장하는 북학파와 관련해서 정리해본다. 북학파의 거두라고 불리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남긴 유명한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 개정신판) 외에 연암의 면모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알려진 문집이 바로 연암집(신호열, 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이다. 그리고 이 연암집 번역에 참여했던 김명호 교수가 북학파에 속하는 홍대용의 북경기행의 면모를 보다 면밀히 연구하여 펴낸 책이 오늘 소개할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김명호 지음, 돌베개, 2020). 공교롭게도 모두 돌베개 출판사의 작업물이다. 이렇게 한 분야에 대해서도 꾸준히 책을 번역하고, 책을 내는 사명을 지닌 출판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나는 열하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한국사에 대한 무지를 탈피할 실마리를 이 주제/분야에서 얻었다. 블로그와 서재에서 사용하는 내 닉네임 초란공역시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정진사라는 인물의 별명이다. 연암 선생은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떠나는 북경행 사신 행렬을 따라가는데, 여기에 새로운 문물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채 음식은 볶음계란만 찾던 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연암은 정진사에게 볶을초’()자를 사용한 초란공(炒卵公)’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정확하게 어떻게 하는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추와 같은 채소를 넣은 계란 스크램블같은 간단한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초란공은 연암 선생이 열하일기에서 희화화한 인물이면서도, 나에겐 세상에 대해 보다 호기심을 갖고 나를 세상에 던져 넣어 보라고 주문하는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렇게 열하일기를 읽은 경험이 연암 선생과 북학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홍대용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읽은 저작은 거의 없다. 앞서 언급한 3권짜리 연암집860페이지(본문550여 페이지 + 주석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을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뭐 언젠간 읽겠지상태). 열하일기를 읽을 때,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연암 선생이 북경에서 청나라 문인/학자들과 글을 써서 대화를 나눈 필담장면이다. 이 필담은 연암 일행이 청나라 강희제의 여름 별장(이 시골에 있는 황제의 별장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역시 중국의 스케일은 남다르다.)이 있는 열하(현 지명은 승덕)에서도 이어진다.


열하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필담에는 엄성, 반정균, 육비라는 청나라 선비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 책은 연암 선생이 연행을 다녀온 1780년 이후 3년 간 메모해둔 종이 뭉치와 고증작업 등을 거쳐 탄생한 책이다. 홍대용은 연암이 처음 청나라 땅을 밟기 15년 전인, 1765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반년 간 이미 중국의 문물을 보고 새로운 체험을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이 때 홍대용이 과감하게접근하여 대화의 물꼬를 텄던 청나라의 학자가 바로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된 이어져 연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나이는 연암이 위였지만, 홍대용은 정말 혈기왕성할 시기에 청나라를 경험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출간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은 바로 홍대용과 청나라의 세 선비가 만남에서부터 서신으로 교류를 지속하고, 나아가 대를 이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던 양국 지식인의 국제 교류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꺼내들게 된 것은, 우선 이 책의 가치에 비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나의 생각을 기록해두고 또 소개를 하고 싶어서였다. 또 결정적으로 마침 계간지 창작과비평 191(2021년 봄)에 울산대 노경희 교수가 기고한 서평에서 다시 이 책과 만났기 때문이다. 세심한읽기와 대담한해석 이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노경희는 조선 후기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교류사에 대한 연구 결과물의 의의와 맥락을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짚어주었다.


사실 열하일기에서 묘사되는 필담 에피소드에서 상황을 관통하며 대화 사이에 흐르는 뭔지 모를 긴장감은 당시 청나라에서 시행했던 문자옥때문이었다. 이 문자옥은 청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한족과 관련된 어떤 말이라도 했을 때, 당사자 본인을 포함하여 일가친적 9족을 멸하는 징벌이 따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티벳 불교를 받아들이고 타민족에게 포용력있는 모습으로 비춰진 청나라의 이면에는 한족 지식인들에 대한 억압/탄압 정책이 함께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간 선비들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비난하면서, 한족 지식인들을 만나 자꾸 이들로 하여금 한족의 역사나 정신과 관련한 문제를 묻고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특히나 증거나 남는 필담 과정에서)은 한족 선비들에게는 목숨을 건 아찔한 상황 속에서 몰래 나누는 대화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서평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 청나라에 간 조선사신이 한족 선비와 만나 대화하는 일 자체가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경희의 서평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에 교토대 후마 스스무 교수와의 개인적인 인연과 이 책이 놓여 있는 맥락을 짚어준 점이다. 그는 후마 스스무 교수의 연구를 이렇게 평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그(후마 스스무 교수)의 풍부한 자료 활용 능력과 근거를 중시하는 엄격한 학문 태도를 인정하면서도, 18세기 조선 학계가 보이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이면보다 남겨진 기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454) 곧 저자에 따르면 후마 스스무 교수가 바라본 조선 후기는 주자학만 신봉하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인’(454) 조선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노경희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저자 김명호가 양국 지식인 교류의 모습을 홍대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다 다면적이고 역동적인 국면으로 과감하게해석한 점을 지적한다. 당시 조선의 지성계에 존명배청사상이 강력하게 지배하던 상황이었지만, 저자는 홍대용이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특히 엄성, 반정균, 육비로 지칭되는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이 존명배청사상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당시 조선 지식인의 입장에서 중화란 명나라의 계보를 잇는 강남 한족의 역사와 문화에만 해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보고 돌아온 여행 이후 홍대용의 입장에서는, 중화가 조선도 될 수 있으며, 같은 논리로 청나라 또한 중화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졌다는 것이다(창작과비평, 455). 그러므로 저자 김명호는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관에서 존명의식에 균열을 겪고, ‘존명의식과 북학사상 사이의 모순사이에서 고민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아갔던 이로 홍대용을 호명하고 있다(창작과비평, 455).


끝으로 서평에서 노경희는 김명호가 책에서 지적하는 후속 과제에 주목한다. 귀국 이후 항주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홍대용의 후반기 사상이 어떻게 변모해가는가’(창작과비평, 456)라는 문제다. 이 부분은 저자 김명호와 후학들의 연구 활동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길 바란다.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궁금해지는 지점일 것이다. 노경희는 국내 학계에 대해 다소 아쉬운 상황(보다 자주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견해)과 이 책의 의의를 정리했다. 현재 우리 역사 연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배경과 관심사, 세계관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인정받는 상황에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는 일본 및 중국의 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준거를 마련해주었다고 평가한다. 서평자가 이 책에 대해 짚어주는 의의를 들으니 이 책의 가치가 새롭게 보였다.


노경희는 저자 김명희가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시도한 해석을 대담하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실 학자의 일이란 다른 학자들의 주장 혹은 견해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일을 훨씬 넘어선다. 저자처럼 후마 교수의 연구를 인정할만한 점과 비판할만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다양한 차원에서 주제에 접근하여 우리 나름의 시각을 마련하는 일은 당연히필요하고, 또 요구되는 일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노경희 교수의 서평을 통해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의 이해를 위한 실마리 내지는 책을 읽으며 지닐 만한 화두를 얻은 셈이다. 이 책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니, 앞으로 애착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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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4 1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안에 갈일이 있어서 근처 가볼 곳이 없을까하다 홍대용 과학관을 갔었어요
홍대용이 천안 출신이고 천안의 자랑인걸 그 때 알았어요.
과학관은 정말 훌륭했어요. 천제망원경으로 관측을 할 수 있게 미리 수업도 하고 관측도 하고요.
그리고 혼천의 등 여러 조선의 관측 기구도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홍대용이 남긴 글과 시를 보고 놀랐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서양문물을 접하고 지전설을 아시아최초(맞을거에요)로 말했고
칼 세이건처럼
우주의 저 수많은 별들을 보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라는 시는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또 한번 우리 선조의 우수함과 그 우수함이 발현되지 못한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

초란공 2021-07-04 12:52   좋아요 3 | URL
아~ 홍대용 선생이 천안 출신이었군요! 선생의 이름을 딴 과학관이 따로 있다니 놀랍네요~ <열하일기>에도 ‘삼환부공설‘(우주 공간에 해/지구/달이 떠있다는 얘기)을 중국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왔는데, 홍대용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1-07-10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홍대용 과학관 이야기를 들어서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딱 100KM 라 선뜻 걸음이 떨
어지질 않네요 ㅋ

그레이스 2021-07-04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재적인 인물인듯요!

레삭매냐 2021-07-10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다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책값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초란공 2021-07-10 13:03   좋아요 1 | URL
가격이 ㅋㅋ 만만치 않습니다. ^^ 그래도 입김이 센 중국/일본 학자들의 조선 지성사 연구에 우리도 주도적으로 이 시기를 조망하는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로 읽을 시간을 내기 힘들듯하여 아내의 외할아버님(올해 만 89세 되셨죠)께 이 책 재미있을 듯하다고 선물드렸더니,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하십니다. ㅋㅋㅋ 제 나이의 두 배가 되는 어른과 이 책으로 소통이 되네요. ㅋ
 
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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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Lob der Erde)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지음 | 안인희 옮김 | [김영사]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 -정원-꽃에 대한 사랑 고백

 


니체와 하이데거, 푸코와 베냐민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움과 에로스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인간의 소외의 문제, 고전과 현대문학을 넘나들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진단하던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이번에는 정원사가 되었다. 언젠가 매일 정원 일을 하기로마음먹은 저자는 3년 동안 땅을 일구며 자신만의 비밀 정원을 가꾸어나갔다. 땅의 예찬은 저자가 정원을 가꾸면서 경험한 땅에 관한 명상이다. 철학, 미학, 문학을 이야기하던 철학자가 정원사로서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고백한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땅-정원-꽃을 키워드로 하여 읽어보고자 했다.


 

: 구원의 관문

 

철학자에게 땅은 무엇인가? 그에게 땅이 예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땅이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다른 저서에서 지적했던 신자유주의의 영향, 특히 디지털화를 다시 소환한다. ‘디지털 digital손가락을 의미하는 디기투스 digitus'에서 온 말(75)이다. 하나, 둘 셀 수 있는 것, 헤아리기에 기반한다. 그러므로 디지털화는 모든 대상을 정량화하여 비교가능하게만든다(29). 저자에 따르면 땅과 관련하여 고려할 때, ‘디지털화완전한 땅을 사라지게’(28) 하여 인간을 땅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조상이 지니던 땅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잃고, 땅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하는’(31)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저자는 땅이야말로 인류가 디지털화에 저항하고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되돌려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본다. 곧 철학자에게 땅은 예술가, 놀이하는 여인, 유혹하는 여인이면서 감사의 감정을 일으키는 존재’(182)이기에, 그에게 땅은 행복의 원천이다. 여기에서 구원에 관해 저자가 인용한 하이데거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구원이란 위험에서 구해낸다는 뜻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풀어주어 본래의 본질로 되돌린다는 뜻이다.”(32) 그러므로 정원사가 된 철학자에게 땅은 본래의 본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구원의 관문이 된다. 저자가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며 한국에서 많은 식물의 씨앗을 가져와 심고 키운 일 역시 병든 아버지가 존재하는 고향, 자신의 본질에 되돌아가고자 하는 자연적인 행위일 것이다. 이렇게 철학자가 땅을 만나고, 땅과 연결되는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정원: 사랑을 배우는 공간

 

정원사가 된 저자에게 정원이란 장소는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한공간(22)이다. 다양한 관목과 꽃을 돌보면서 삶과 죽음, 소멸과 부활을 마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정원은 노동을 통하지만 오히려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 원기를 얻는’(79) 공간이다. 책의 정황으로 볼 때, 저자가 겪는 삶의 고난은 머나먼 한국에서 소멸해가는 아버지와 관련이 있을 테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기호학자, 문학이론가였던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을 떠올린다. 이 책은 바르트의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다섯 살이던 어머니가 겨울 정원에 서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애도의 노래다. 사진을 통해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며, 떠나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고통스럽게 확인한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사진을 끌어안고 숭배하듯, 정원사도 병상에 있는 아버지 곁에서 머물며 산에서, 길에서 만난 꽃들을 신령들께 제물로 바치고,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철학자가 정원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단연코 사랑하기이다. 정원에서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23)이며, ‘사랑을 담은 인식이야말로 꽃을 구원한다(25). 나아가 꽃에 물주기는 꽃들과 함께 머무는 것’(76)을 배우는 일이다. 정원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명상이며, 정적 속에 머무는 일’(175)이기도 하다. 정원사는 대지를 체험하며 땅과 만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의 신은 이다. 흔히 물신이라 부르는 이 상징적 존재는 땅, 아름다움, 선을 완전히 파묻어버렸다. 반면 정원사-철학자에게 정원은 디지털화로 잊힌 현실을 되찾게 해주고, 경험과 기억의 언어가 머무는 곳, 나아가 신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정원사가 정원에서 배우는 사랑하기는 원자화되고 소외된 인류가 대지()와의 관계를 새로 맺는 일, 단절된 연대의 부활을 의미할 것이다.



: 그늘에서 피는 꽃과 늦둥이 꽃에 대한 애착

 

철학자-정원사인 저자는 정원이 신을 믿게 만든 성스러운 장소’(128)라고 말한다. 그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겨울꽃을 심고, 겨우내 동백꽃에는 천으로 감싸주며 돌보았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저자가 겨울꽃, 특히 그늘을 좋아하는 꽃과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늦둥이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늘을 좋아하는 꽃은 이른바 그늘식물인데, 저자는 수국과 옥잠화를 여러 번 언급한다. 그가 이 꽃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이유는 이들이 그늘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밝은 빛이란 의미를 지니는 저자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가 수국을 특히 닮았단 생각을 했다.

 

늦둥이 꽃은 옥잠화처럼 계절에 늦게개화하는 꽃을 가리킨다. 죽음과 탄생의 멜랑콜리가 뒤섞이는 낙엽 쌓인 정원에서 대부분의 꽃들이 시든 후 두 번째로 개화하는 이런 꽃들에 저자는 무엇보다 애착을 보인다. 이들은 겨울 한복판에 두 번째 봄을 정원에 불러들이는 존재들이다. 수국을 비롯하여 옥잠화는 함께 있는 다른 존재들을 압도하며 몰아내거나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다. 기꺼이 낯선 타자들과 함께하며 제 존재를 스스로 밝히는 존재이기에, 저자는 수국과 옥잠화를 기꺼이 사랑한다. 저자에게 정원이란 공간이 신을 믿게 만든 성스러운 장소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겨울꽃들은 숭고하다 못해 신적이다. 그들은 내 정원에서 신을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126). 그러므로 저자에게 꽃(특히 겨울꽃)은 신의 현현(顯現)인 셈이다. 땅의 예찬이 정원사의 신앙고백이자 철학자의 신학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꽃과 정원의 존재, 그리고 땅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철학자-정원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땅으로 되돌아가, 땅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땅과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희망하기가 바로 정원사의 시간방식(180)이다. 정원사는 새로 심은 씨앗이 내년에 싹을 내고 꽃이 피기를 희망하며 기다린다. 이 희망은 정적 속에 머물며 기다리는 가운데 미래의 시간, 타자의 시간에 머문다. 그렇기에 저자는 내 땅의 찬가는 다가오는 땅을 향한 것”(180)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많은 이들이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우리는 땅을 착취하고 경외심을 거둠으로써 땅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연결고리가 끊어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저자는 대지에 대한 감성, 상상력의 언어를 잃은 현대인들을 위해 그가 정원일을 통해 배운 아름다움과 경험한 것들을 땅에 대한 사랑의 찬가로 노래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땅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땅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한다." (31)

"땅으로 돌아가기란 행복으로 돌아가기가 된다. 땅은 행복의 원천이다." (32)

"우리가 땅에서 떨어져나간 것의 쓰라린 대가가 어쩌면 죽음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67)

"디지털 문화는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킨다. 디지털 문화는 헤아리는 손가락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다. 역사는 헤아리지 않는다. 헤아리는 것은 역사 이후의 범주다." (75)

"오늘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기를 멈춘다. 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이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헤아리기에는 역사이자 기억인 언어가 없다." (76)

"꽃에 물주기는 꽃들과 함께 머무는 일이다." (76)

"땅의 낯섦, 다름, 그 독자적 생명에 나는 자주 놀라곤 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땅에 내밀히 알게 되었다. (...) 정원에서 나는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 원기를 얻는다." (79)

"그늘을 환하게 밝히는 것은 수국이다. 수국은 도취시키는 꽃이니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106)

"겨울꽃들은 숭고하다 못해 신적이다. 그들은 내 정원에서 신을 체험하게 하는 것" (126)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을 잊었다. 나의 정원은 고요함의 장소. 정원에서 나는 고요함을 만든다." (146)

"땅은 아름답다, 아니 거의 마법을 지녔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보호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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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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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샤일록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피에 젖은 땅 (Blooldlands)》(2021)

    

 

저 멀리 애처롭게 스러져간 생은 얼마나 될까

 

76년 전 오늘(430), 베를린의 총통벙커라고 불린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함께 순수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제국 건설의 꿈도 막을 내렸다. 이 남자와 측근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명령으로 죽어간 사람은 이미 600만 명에 달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마저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소련 사이의 동유럽에서 전쟁과 폭압으로 죽어간 사람은 나치가 살육한 유대인 수의 두 배가 넘었다.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로 알려진 학살의 역사는 같은 시기, 동유럽에서 벌어졌던 살육 과정의 단지 일부일 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유럽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주목한 부분이다. 피에 젖은 땅에서 저자는 이 책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도자들이 내린 명령으로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22)임을 밝히며, 이를 위해 블러드랜드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블러드랜드란 대략 현재 독일의 동쪽인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의 서부까지,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남쪽으로는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대략 12년간, 블러드랜드에서 나치와 소비에트 세력의 정책으로 스러져간 사람이 1400만 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10여 개국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유럽을 배경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보다 큰 틀에서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흔히 개별적으로 연구되곤 했다면, 저자는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어 10개 언어로 된 문헌을 면밀히 조사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유럽 역사,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이 주도한 대량학살의 역사를 한 흐름 속에서 조명했다.

 

간혹 다양한 사례와 희생자 통계에 압도되어 의미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피해자 및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간간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폴란드계 문인을 떠올리며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고자 했다. 한 명은 독일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이하 라니츠키). 라니츠키는 이 책에서 꽤 상세히 소개되는 바르샤바 게토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훗날 부모와 형제를 죽인 나라의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된다. 또 다른 인물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다(이하 쉼보르스카). 그녀는 1931년부터 평생 블러드랜드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도시 크라쿠프에서 살았다. 블러드랜드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동안, 두 사람은 엄혹했던 시대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했고, 이들을 목격했으며, 마침내 생존했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이 있던 시공간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보고자 했다.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와 히틀러의 야망에 스러져간 이들

 

이 책의 초점은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동유럽의 블러드랜드라는 제한적이고 보다 명료하게 정의된 프레임에 속에 놓여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분기점을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첫 번째 분기점은 1933년 블러드랜드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이었다. 이 사건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시행된 5개년 경제계획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이 농민들로부터 무리하게 거두어들인 곡물을 해외로 수출하여 발생한 기근으로, 이는 무엇보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정치적 재앙이자 학살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스탈린이 심각한 기아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단화 과정은 농업대신 산업을 육성 하고자 했기에, 농민들은 농지 몰수 및 강제 이주를 당하며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스탈린은 식량 징발을 강제하여, 자국민을 굶주림 및 이와 관련한 질병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최소 330만 명(대부분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공산당에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스탈린이 벌인 대표적인 잔혹 행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대공포 시기(1937-38)에 이루어진 학살이며, 다른 하나는 소련이 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1938-41)에 자행한 폴란드 박멸 행위다. 대공포 시기에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 레닌이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유대계였던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를 축출하거나 누명을 씌워 처형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군대나 정당, 내무인민위원회 등 내부 조직 숙청과 기관 장악에서 나아가 사회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는 기근으로 많은 농민들이 죽어간 소련 령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부농으로 밝혀진이들을 강제이주 시키거나 총살했던 부농박멸작전이 있고, 주로 폴란드계를 대상으로 했던 민족 박멸 작전이 있다. 저자는 이 두 작전에서 처형된 이들이 625483명에 달한다고 언급한다(192).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는 스탈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테러행위였다.

 

한편 히틀러는 1939년 봄,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라고 군에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여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함께 침공한다는 합의를 했다. 193991일에 독일은 탱크와 보병을 앞세우고, 폴란드 비엘룬시를 공습하며 침공했다. 며칠 후 독일 공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공습하며 수만 명의 시민과 군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16세였던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에 크라쿠프에서 부상당한 폴란드 병사들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 훗날 9월에 관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시에 담아내기도 했다. 소련은 917일에 50만 명의 군인을 앞세우고 폴란드로 들어갔다. 928일에는 독일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이하 라인’)이라는 새로운 국경을 확정하며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새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폴란드인들은 제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을 얻었지만, 11년 만에 다시 나라를 잃었다. 라인의 동쪽에서 소련군은 15만 여 명의 젊은이를 붉은 군대에 강제 편입시켰고, 새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폴란드인 집단을 강제 추방시키기에 이른다. 이때 폴란드인 139794명이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만약 쉼보르스카가 소련군이 점령했던 라인동쪽의 리비프 같은 곳에서 살았다면, 그녀와 가족은 아마도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를 탔다가 시베리아 초원의 어딘가에 묻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당시 폴란드계 소련인들이 폴란드 문화나 카톨릭교에 대해 보인 호의를 국가 간 첩보활동에 동참했다고 하며, 묵주를 가진 사람에게도 수용소 10년 형을 내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었을지도 모른다(175). 하지만 시인의 가족은 나치가 점령했던 라인의 서쪽에 있었다. 물론 이곳에 있던 폴란드인들의 고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무엇보다 인종적 우월성에 집착했기에,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지식인이 많았던 폴란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특히 폴란드의 옛 수도였고, 쉼보르스카가 살던 크라쿠프에서는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만약 쉼보르스카의 부모가 교수와 같은 지식인이었다면, 시인의 가정 역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과거에 지방 영주의 관리인이었기에 나치의 우선적인 처분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을 것 같다. 이 시기에 폴란드인에 대한 독일과 소련의 유린 행위는 주로 총살에 의지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대략 2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고,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당했다. 당시에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는 카틴 대학살이 있는데, 소련은 폴란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 4410명 전원을 카틴 숲에서 총살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궁금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는 이 시기에 세워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학살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강제 수용소는 노동력을 위한 집단 수용시설이었고, 가끔 의료적인 안락사를 위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 쉼보르스카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는 책에 소개된 정황과 크라쿠프의 위치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크라쿠프는 아우슈비츠와 대략 50 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주요 가스 학살 공장이 들어서게 되는 헤움노,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마이다네크, 베우제츠 등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나이더는 30-40년대의 12년 동안 민간인 및 전쟁포로의 사망자를 14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숫자의 약 4분의 1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1933-1941년 사이)에 이미 사망했다고 언급한다. 1400만 명의 절반 정도는 사실상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굶어 죽은 이들이었다. 이렇게 나치의 살육 시설에 둘러싸인 옛 도시에서 장차 폴란드의 대시인이 될 소녀가 견디어내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나를 태웠다

- 최종해결책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내가 주목한 두 번째 분기점은 1941622일에 시작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다. 이날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침공했다. 새로운 재앙이 시작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1933-1941년까지의 시기를 소련이 대량학살 대부분을 담당하다가 독일이 학살에 가세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는 히틀러의 학살 작업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500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300만 명이 넘는 전쟁포로를 포함하여 1000만 명 이상이 정치적으로 학살당했다. 이 두 번째 분기점부터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을 더 많이 떠올렸다. 라니츠키는 베를린에서 가족과 지내다가 19381028일 오전, 독일 경찰의 방문을 받고 폴란드로 추방당한다. 스나이더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3810, 독일은 폴란드 시민권이 있는 유대인 17000명을 독일 제국에서 폴란드로 추방했다.”(197) 라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이 때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 유대인 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정의 밤폭력 사건은 라니츠키 가족이 떠난 지 2주 후인 119일에 발생했다.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분기점(1941-1945)에 대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그 이유는 저자가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의 조직적 학살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탁월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히틀러가 악인이었기 때문이거나, 집권 초기부터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규모 300만 명의 독일군은 동쪽으로 빠르게 진군하면서, 1941년 말까지 300만 명 이상의 소련군 포로를 생포했다. 소련군 포로들은 부족한 식량과 추운 날씨, 열악한 이송 여건 등으로 260만 명이 사망하고, 적어도 50만 명이 독일인의 손에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나치 친위대는 노동 수용소 성격을 지니던 장소를 본격적인 살육시설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명 학살 공장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의 해상력과 공군력에서 영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대륙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제국 건설 외에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히틀러의 정치적 야망에 인종주의적인 성격이 가미되면서, 유대인들은 제국건설을 위한 최종 해결책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라니츠키가 머물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가본다. 동부 전선에서 독일은 식량 및 보급품의 부족,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을 맞았고, 소련을 몇 주 만에 무너뜨리고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전격적 승리는 점점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 근교로 갔던 라니츠키 가족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이미 조성되었던 바르샤바 게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토 시절 라니츠키는 독일어 번역 작업을 하며 평생 함께할 아내 토지아와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거의 마지막까지 게토에 남았다. 반면 그의 부모님과 형, 직장 동료와 두 아들은 가스시설이 있는 트레블린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쉼보르스카의 시집 검은 노래에 수록된 시 유대인 수송은 수용소로 이송되는 열차 안의 풍경을 그린다. 죽음을 직감한 유대인들의 절망을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라니츠키는 1943118일 새벽, 트레블린카 수용소로 떠나는 행렬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극적으로 행렬에서 이탈했고, 2주 가까이 게토에 숨어 있다가 23일에 게토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에는 부부가 어느 폴란드인의 집에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숨어 지내며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회상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트레블린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곳이 라니츠키 부부의 가족이 사망한 곳이기도 했고, 또 이 수용소가 폐쇄된 이후 학살의 중심이 아우슈비츠로 옮겨가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비롯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 노동수용소에 처형장이 더해진 학살 공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와 같은 경제적 규모의 문제에 따른 정치적 해결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살육 공장 시설 네트워크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의 동쪽과 서쪽에 걸친 폴란드에 주로 세워진 것은 이 지역이 독일과 소련이 충돌하던 핵심지역인데다, 장기화되는 전시상황, 그리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지역이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주요 정착지였다는 상황도 고려해야할 듯하다. 이 시기에 독일이 벌인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1942년에 베우제츠, 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폴란드 유대인만 약 130만 명이 가스 시설에 처형되었다(456). 여기에 약 1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은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벨라루스와 바르샤바 봉기로 폴란드인 등의 소수 민족들에 대한 독일군의 보복과 총살이 계속 이어져 수십 만 명의 희생자가 더해졌다.

 

독일이 패망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눈엣가시였던 일본이 힘을 잃자 사실상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쥔 소련은 이제 냉전 구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후 새로운 재앙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다시 불어오고 있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최종해결책은 이제 스탈린의 전후 인종청소 작업에도 이용되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적 명분이 가미되면서 유대인은 물론 독일인에 대한 보복과 소수민족 박해로도 이어졌다. 이 시기의 재앙적인 만행과 인권 유린을 더 자세히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서구 유럽 문화에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민족이 여전히 큰 고통을 당했지만, 절대 다수는 인종주의라는 허울에 스러져갔던 유대인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럽 사회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독하고 욕심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희곡은 정의가 샤일록을 응징하는 모양새로 끝난다. 이처럼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희생 대상을 찾던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언제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벌거벗은 진실이 그 이유를 누설하진 않으리라

- 대량학살과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었을 법한 지점이 독일과 소련의 정치적 대량학살이기에,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 사회에서 대량 학살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 저자는 대량학살의 사례로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 해결책(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소련 침공 직후 생포한 소련 전쟁 포로를 굶기기,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정책 등을 거론한다. 대량학살이 일어난 사례를 보면, 히틀러의 신념체계와 독일인들이 처했던 경제적 규모의 문제가 대량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대량학살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 대량학살 사건으로부터 대량학살의 메커니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대량학살의 씨앗이 되는 지도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소수더라도 지도자에게 충성을 보이는 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 스탈린이 주장하던 유대인의 음모혹은 히틀러의 아리안 신화와 같은 허구적 명분이 필요하다. 이 허구의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결속을 더해주는 힘도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대량학살의 초기 단계에 이를 막을 세력이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가 처형 대상과 수행자의 목숨 사이에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존을 선택하고 학살임무를 맡은 수행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는. ‘모비 딕을 끝까지 추적해서 복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선장 에이해브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 앞에 의문을 품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있다. 하지만 스타벅도 선원들을 선동하는 에이해브를 끝내 저지하지 못하고, 결국 소극적 동조자가 되어 함께 파멸을 맞는다. 현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대량학살의 여러 특징 중에서 이 부분에 주목해본다. 대량학살로 이어지기 전에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하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대량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학살은 분명히 인간에 의해 저지되고 중단될 수 있었다.

 

다시 잠시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스탈린이 기획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서방세계에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맺고 싶었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11월에 소련을 정식승인하게 되는데, 이런 정세로 스탈린이 기획한 테러와 학살이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에서 나아가 서방 세계로부터 외면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나치 독일이 193991일 새벽,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에 따르면 이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더라면, 폴란드인, 벨라루스인들에 대한 학살 및 강제이주, 그리고 30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 포로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나치의 살육 공장 네트워크의 건설이나 레닌그라드 봉쇄로 스러져갔던 많은 이들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결론에서 제시하는 대량학살에 관한 문제의식 역시 이 지점을 향한다. 저자는 그런 (대량학살) 정책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706)라고 묻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위해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들이 왜 대량학살을 벌였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작업이 바로 우리 인간,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샤일록과 같은 인물이 존재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샤일록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샤일록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왜 그러한 행동이 당연하게 말이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도 샤일록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란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아직 헉슬리가 언급한 통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보편적인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응했다면, 최소한 자국민을 많이 학살하며 은폐되었던 스탈린식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외에서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나치의 살육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외부 세력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단계, 사람에 의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병사는 당신들의 시가 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는 내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검은 노래를 곁에 두고 펼쳐보았다. 이 글의 소제목은 모두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조금 수정하여 가져왔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자신의 책에서 아우슈비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살육공장에서 스러져간 이들은 생존한 사람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노동시설에 살육시설이 더해졌기에, 생존자들의 증언이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저자도 책에서 한정한 시공간에서 자행된 살육이 유대인에 대한 희생자 수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많다는 점도 상기시켜준다. 또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의 4분의 3정도는 1943년 봄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 복합 시설이 들어섰을 때 이미 희생된 상태(677)였음을 지적한다. 소련의 경우를 포함하면, 소련과 나치 체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된 이들의 90%이상은 이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가동되기 전에 발생했다. 이 지적은 이 시기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가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좀 더 폭넓고 균형감 있게 이 시기에 벌어진 대량학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40-45년 사이, 처칠은 이 지역의 식량을 강제로 징발하여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도인을 굶주림으로 사망하게 만든 사건에 책임이 있다. 처칠이 내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팔과 인도 동부 벵골 지역을 통해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올 수 있다는 전략적인 우려와 판단에서 취해지긴 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학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사건은 블러드랜드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벗어나 있지만, 대기근이 의도적으로 유발된 정황, 그리고 영국에 의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외면당했던 정황이 있기에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비교하기에 좋은 사례로 여겨진다. 저자가 1945년 이후 소련이 승리를 거머쥔 뒤 독일인에 대한 스탈린의 강제 이주 및 전후 인종청소와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언급하고 있는데다, 1958-60년에 마오쩌둥의 중국이 기근으로 약 3,0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언급(774, 주석7)을 한 이상, 연합국 측의 유사 학살 행위 역시 함께 언급되었더라면 보다 균형 있는 서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저자의 논점 하나는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정치적 대량학살의 기원과 그 여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그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고 있다(27). 또 저자의 다른 논점은 유럽 사회에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인종주의, 특히 반유대주의를 재발견한 점이다. 허구적 기준인 를 잣대로 삼아 인종을 평가하고 편견을 용인해온 서구 유럽의 역사가 1930-40년대, 블러드랜드라는 특정 시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어떤 재앙을 낳을 수 있었는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인종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을 접하고 있다. 역사가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현재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는 잠재력과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스나이더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정확한 숫자를 기반으로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러져간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작업도 함께하며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샤일록은 원래 악독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샤일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새롭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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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3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5-07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왠지 1등 의 기운이 ㅎㅎㅎ

북플로 초란공님 이 페이퍼에 댓글 달았었는데,,,,(리뷰 올라오자 마자)
살아졌으요 ㅠ.ㅠ

초란공 2021-05-07 18:18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이달의 페이퍼 당첨 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Scott님의 엄청난 자료와 글로 항상 풍성하게 배울것이 있어요~ 음악도 잘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음악이야기 올려주시는 것도요~ 눈호강 귀호강 제대로 해요~^^

초딩 2021-05-08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주말 되세요~!

초란공 2021-05-08 20: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초란공 2021-05-09 10:3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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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다음 날 몸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히틀러에게 바쳐진 아이로,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지켜나갈 독일인이 되도록 운명 지워진 저자의 뿌리 찾기 여정이 계속 궁금했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인생에서 50-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믿고 살아온 삶의 토대와 믿음이 체계적으로 가려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어떤 기분이 들까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리아인’ 신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이 신화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그녀의 본명은 에리카 마트코생후 1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강제로 나치의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생이별을 했다이 책은 인생의 후반에 15년 이상 지속되었던 자신의 뿌리 찾기 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수치심을 이겨내고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개인의 역사이자우리가 알아야할 지난 세기의 역사다.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감정을 40년이 다 되도록 철저히 외면했다고 했다. 11세에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을 때그리고 자신이 에리카 마트코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을 때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저자는 52세가 되던 1999년 어느 날 한 적십자 지원의 전화를 받는다.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저자 잉그리트가 그렇다라고 답한 순간그녀는 에리카 마트코를 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임을 직감했을 것이다그동안 묻혀 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나는 이 결정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와 예기치 못할 감정의 기복과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었을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저자의 어린 시절은 20세기 유럽 역사를 휘감았던 소용돌이의 한 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나치의 제2인자이자히틀러 친위대장 이었던 하인리히 힘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무엇보다 히틀러와 힘러 세력이 부활하려고 했던 인종적 순수성은 특히 힘러의 신비주의적 믿음이 더해져 종말론적 비전을 갖게 되고극도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레벤스보른곧 생명의 샘이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해석된 19세기 말의 우생학적 전통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이다다시 말해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것그래서 우수한 인종이 더 번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과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이 논리는 나아가 열등한’ 인종의 소멸이 자연법칙 상 예견되어 있으며 당연한 결과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했다그 결과, ‘열등한’ 이들에 대한 탄압을 무감각하게 만들고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것이다그 한 예로나치 세력은 아리아인의 기준에 미달한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통해 씨를 말리는 야만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저자에 따르면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까지 적어도 32만 명이 법에 따라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한다(111). 이처럼 아리아인의 신화를 실현시킬 야심찬 조직이 바로 레벤스보른이었고이 목표의 설계자가 바로 하임리히 힘러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과거사에 대한 전후 독일 사회의 은폐 분위기였다저자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게오르크 릴리엔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관공서에 자료 문의를 요청했다하지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이 점은 저자처럼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였으며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된 사회의 장벽이었다저자는 독일이 통일되었지만독일인들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87)라고 이야기하며뿌리 찾기에 걸림돌이 되는 외부적 환경에 대해 언급한다우리는 일본과 비교하여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나 역시 그랬으니까하지만 현실에서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갔다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의 프로젝트와 연루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단순히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하지만 모든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의 정확한 내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과 조롱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적국의 아이를 밴 여성의 아이들이라고 말이다이는 지역 사회와 양부모 및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상실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또 자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인류사의 커다란 오점이 된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렸다이들이 노출된 현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치심은 강력한 감정이다그리고 전후 독일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친위대처럼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던 조직에 연루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152)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이 주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왜 금기시되어 왔을지 이해하게 되었다그리고 관공서들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왜 비협조적으로 나왔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레벤스보른 출신 모임에 나가면서 수수께끼 퍼즐 같던 자신의 과거를 좀 더 맞춰 나갈 수 있었다이 모임에 오기까지 많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은 예외 없이 수치심과 죄책감그리고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 받아왔음을 알게 되었다엄마라고 여겼던 기젤라가 사망할 때까지 진실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그리고 슬로베니아(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친부모가 자신을 대신해서 건네받은 아기를 받아들였으며이후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고 고백한다이러한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격한 분노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듣고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로소 상처받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뿌리 찾기 과정을 따라가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의 모임 레벤스푸렌’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80대의 생존자들이 모두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점이었다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자신들이 연관된 오명의 역사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제대로 이해하고세상으로 나오고자 했다는 점에서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기억에 남았다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는 사람들에 맞선 이들의 용감한 행보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성장했지만, ‘정직하고 떳떳해지려고 몸부림치던 한 세대’(9)의 이야기라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나아가 자신의 후손들에게그리고 멀리 아시아에 있는 한 독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가족을 찾고역사를 알아간 한 평범한 독일인의 이야기이면서의도치 않게 나치 핵심 세력에 연루된 세대를 대변한다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또 상처받은 존재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자기 삶의 궤도를 찾고자신이 누구인지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깨달게 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을 좌절과 슬픔그리고 기쁨의 감정과 자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모두 담겨있다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놓기 까지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그녀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 말에 더하여, ‘이제 배워야 할 때라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의 의미를 강조한다이제 후손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정직하려고, 떳떳하려고 몸부림친 한 세대의 이야기다." - P9

"그곳에서 지낸 2년 동안 나는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족이 어린아이의 환상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 나는 이미 기젤라가 나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나를 데려왔는지 몰랐다. (...) 나는 그 일 전체를 내 마음 뒤편으로 치워버렸다. 내가 기젤라의 딸이며, 그녀의 가족이라고 믿고 싶었다." - P61

"1960년대 중반 나는 이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스로를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 불렀지만,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에리카 마트코였다." - P71

"나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내 감정을 거의 40년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P80

"독일은 그것을 꺼내 흔들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독일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베를린 장벽만이 아니었다. 이제 독일은 통일되었지만, 우리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 - P87

"내가 진짜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 아니라는 사실은 수십 년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때는 에리카 마트코였다고 믿으면서 그 상처를 달랬다. 그런데 이제 나는 잉그리트도, 에리카도 아니었다. 나는 진짜 아무도 아니었다." - P137

"나는 안전한 내 안식처를 떠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 내 과거로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나는 예순한 살이었고, 이제 내 어린 시절을 공부할 시간이었다." - P139

"뮌헨에 자리한 레벤스보른 본부는 추방된 반나치 활동가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만의 소유였다." - P143

"이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공유하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깊은 정서적 상처와 수치심이었다." - P151

"어린이 대량 납치. 이게 사실일까? 충격적이지만 사실이었다. 힘러가 사석에서 친위대 장교들에게 이 계획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이 녹음된 자료까지 있다." - P158

"나는 ‘총통께 아이를 바치‘는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다." - P161

"그들은 고령인데도 기억이 또렷했고,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가 굳었다." - P192

"저는 살해자들의 편에서 자랐어요. 레벤스보른 아이라는 것은 여전히 수치심의 원천이죠."
-레벤스보른의 아이 헬가의 증언 - P216

"이 흐릿한 흑백사진들은 나치가 내 가족에게서 나를 훔쳐 간 날의 기록이다.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과장하는 것처럼 들리긴 싫지만 정말 으스스한 떨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독한 외로움과 무력함이 나를 덮쳤다." - P241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뜻한다. 그건 사람됨의 문제이기도 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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