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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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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베를린

이은정 지음 |  [창비]

 



겨울의 재스민차를 떠올리며

 

구동독 출신의 시인 라이너 쿤체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체제에 비판적이었지만, 그의 시는 매우 서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독일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상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은정 교수의 신간 베를린, 베를린 읽으면서 쿤체 시인의 <한잔 재스민차에의 초대>라는 제목의 짧은 한편을 생각했다.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동독과 서독이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던 시절, 동독 정부에 저항적이었던 사람들은 시를 문에 붙여 놓아 눈에 띄지 않는 저항의 표시로 삼았다고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가 시인의 에서 언급한 있다. 쿤체 시인이 한국을 방문하여 국내 대학생과 함께 시와 음악을 통한 교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학생이 시인의 연애담을 물었다. 시인이 학생의 질문에 본인의 연애담을 이야기해준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시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학위를 받기 전에 대학을 떠나 자물쇠 제작 보조공으로 일하고 있을 당시(1959), 베를린의 라디오 방송국은 쿤체 시인의 금지된 편을 방송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미래의 부인이 엘리자베트 쿤체 여사는 체코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감자를 깎고 있었다고 한다. 쿤체 여사는 체코에서 의사로 지내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여러 달이 지나 쿤체 여사가 보낸 우편이 길을 돌아 쿤체 시인에게 도착했고, 이후 사람은 시와 음악에 대해서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직전이었지만, 사람은 직접 만날 없었다. 체코와 접하고 있던 국경은 폐쇄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쿤체 부부가 경험한 삶의 단면을 끌어와 냉전과 분단의 맥락에서 바라보니 2 세계대전 이후 승전연합국이 구축해 놓은 새로운 정치질서의 구도 하에 개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실감나게 짐작해볼 있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특수성

 

승전 연합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세계대전 이후 독일 지역을 동독(소련) 서독의 연방정부(미국, 영국, 프랑스) 영역으로 분할 통치하게 되었는데, 베를린 역시 도심 지역을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공동 관리하게 되었다. 특히 베를린은 동독의 영토 가운데에 위치한 대도시로서 소련이 점령하던 동독에 완벽하게 둘러싸인 일종의 섬과 같은 지역적 특수성을 지닌다. 오늘날 베를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베를린은 분단체제의 상징이면서 분단 극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바로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역사는 2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한 냉전 구도의 산물이다. 부분은 우리의 분단 현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다만 독일이라는 공간이 대한민국과 달리 분할 통치 과정에서 전쟁이 없었다는 점은 이후의 나라 재건에 다행한 일이었다.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천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양산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와는 이렇게 다른 현실이 있었다.  

 


저자는 2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 건물의 3분의 1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독일 영역 내의 모든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음을 감안하면 부분은 베를린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독 영역 내부에 섬처럼 존재했던 도시는 50년대 , 60년대 초에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진영 사이의 대립과 기싸움으로 위기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설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정치적으로 분단되었으나, 사실상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었다 한다. 민간 차원에서 엽서 왕래하기 힘들고 사실상 단절되다시피 했던, 그리고 현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경우를 비추어볼  어떻게 이런 조건이 가능할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베를린, 베를린에서 정치사적 관심에서 베를린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동서 양측이 제한적이나마 지속적으로 교류할 있었던 정황과 우리의 상황을 곁들여 비교해보고 있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의 등장과 이후 상황

 

베를린 장벽은 1961 8 13 새벽에 철조망 형태로 설치되기 시작하여, 곧이어 콘크리트 벽을 세웠고, 28년이 넘은 1989 11 9일에 붕괴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정부가 소련의 승인을 받아 기습적이고 일방적으로 구축하며 시작되었다. 장벽 설치의 목적은 당시에 늘어나던 동독 주민들의 동독 탈출을 막고 이들을 가두기 위함이었다. 2 세계대전이 끝나 독일 영역이 베를린과 더불어 분할통치된 1945 이후부터 1952 11 까지는 베를린 주민들도 왕래가 가능했고, 생필품도 구하러 다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벽이 설치 동서 양측의 왕래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여기서 저자가 더욱 주목하는 부분은 정치적으로 제한적이나마 삶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부분이었다. 경제나 우편, 통신이나 문화교류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정학적인 조건을 고려해볼 섬과 같았던 서베를린은 이러한 교류가 사실 대안이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는 유일한 기회였을 것이다


 

저자가 동서 양측의 교류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언급하는 사례 중에서 지하 연결망인 하수도를 있다. 2 세계대전 이전에 형성된 하수터널은 상당한 규모와 효율을 발휘하는 사회기반 시설이었다. 서베를린 하수의 대다수가 동베를린으로 흘러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장벽 설치 민간 차원에서 동서 양측의 기술적, 실리적 협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공간이 분리되었어도, 분리되지 않은 사회기반 시설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진영의 접촉과 협업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느 진영이 하수터널을 막거나 폭파시켜서 모든 것을 분리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국민의 혈세를 모아 새로운 하수터널을 건설하는데 오랜 시간과 자금을 쏟아부었을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우리의 상황과 견주어 아쉬워하는 부분과 더불어 이런 부분들에 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우리의 과오가 안타까웠다. 베를린의 역사를 통해 다른 진영에 있더라도 실리적인 결정을 위해 타협과 합리적 선택이 가능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고민할만한 부분이라고 본다.   

 


장벽이 설치된 이후에도 동독 주민이 탈출하려는 시도는 계속 되었고, 과정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총격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쿤체 시인처럼 체제에 비판적이던 시민들에 대한 압박도 물론 이루어졌다. 제한적이나마 우편 서비스가 유지되었지만, 모든 우편물은 검열당해야 했다. 저자는 80년대 초에 동독 주민들이 비밀경찰의 도청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했다. 특히 국제 전화는 이미 50년대 부터 도청당했던 모양이다. 쿤체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시인의 에서는 동독에 있던 시인이 체코에 있던 미래의 아내 엘리자베트 쿤체 여사에게 청혼하기 위해 국제전화를 했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당시(1959) 해도 모든 국제전화가 도청당했다고 쿤체 시인은 언급한다. 특히 정보국은 시인처럼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일거수일투족 감시했다. 당시에 시인이 휴가로 시골에 갔을 물을 시에 양동이를 우물에서 길었는지까지 구동독 정보부의 기록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정보국이 남긴 자신에 대한 모든 기록과 증거물들로 작성된 자료집을 참고하여 시집이 파일명 서정시(1990) 라고 한다. 쿤체 시인의 사례를 떠올리는 이유는 베를린을 둘러싼 정치사적 장면에서 시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삶이 어떠했는지 상상해보고 싶어서였다.

 


 

장벽의 구멍들

 

 암울하고 억압적인 조건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우리는 이제 장벽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의 정황을 되돌아보고 있는데, 장벽의 붕괴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이미 속에 다양하게 내재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민간차원의 문화교류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독일 최대의 라이프치히 박람회나 17세기부터 이어진 독일 최대의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장벽의 구멍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앞서 말한 하수터널과 같은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동서 양측의 협력을 포함하여 민간차원에서의 물적, 비물질적 교류는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책의 전반에서 저자는 장벽의 구멍 막히는 것을 방지하고 보다 많은 구멍을 만든 정치인으로서 브란트 수상을 주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아데나워 수상의 단절 정책과 달리 서베를린 시장 시절부터 브란트는 공존 정책 강조하고 접근을 통한 변화’, ‘작은 걸음 정책 통해 베를린 주민들의 고통 완화를 위한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브란트 수상에 대한 저자의 일방적인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란트 수상의 행보는 분단 독일의 통일과정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는 점을 느낄 있었다. 특히 61년에 장벽이 설치된 이후, 63 말에 이루어진 1 2 통행증협정을 통해 동서 베를린 시민 간의 왕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려는 브란트의 의지를 엿볼 있었다. 분명히 당시 브란트 서베를린 시장의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노력은 이런 결과를 낳을 있도록 그의 리더쉽에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이런 결과를 얻을 있었던 것은 어느 한쪽의 바람만으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당연히 동서 양측의 실용적인 협력의 태도에도 주목해야 것이다. 이런 행동의 바탕에는 무엇보다 베를린 시민의 고통 완화 우선 순위에 놓았던 정치인이 있었음을 독일인들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대화의 시도와 단절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1970년대 초에도 여러 가지 협력의 분위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4대국 협정’(1971 9) 통해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분쟁을 해결하려고 했으며, ‘통과협정’(1971 12) 통해 서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동독 지역을 통해 민간인 화물통과를 가능하게 있다. 나아가 여행방문협정’(1971 12)으로 66 이후 거의 중단되어버린 동독 동베를린 방문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독서에서는 2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이 서독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50년대 이후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으로불리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지구 반대편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내게는 새로웠다. 다시 정리해보면, 60-70년대를 거치며 베를린이란 공간을 둘러싼 동서 양측의 접촉과 실용주의적인 문제 해결 시도 노력을 저자는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라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더욱 성장한 서독은 동독에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해왔고, 동독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분명히 우리의 정서와는 많이 다른 부분이 이러한 점들이다. 단순히 정서의 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장벽의 구멍 한편으로 영향을 주었던 요소는 68운동이었다. 저자가 근무하고 있는 독일 자유대학교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독일의 68운동은 독일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당시의 68세대 젊은이들은 나치 협조자들에 대한 침묵을 유지하는 부모 세대에 반대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인 세대라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저자는 독일의 68운동이 대한민국의 1987년과 비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분에 대해서는 이상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독일의 68운동과 우리의 1987년의 상황과 간단히라도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으면 좋았을 부분이었다. 특히 이런 부분은 교과서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 현대사의 장면이기에 더욱 아쉬웠다.

 


독일의 68세대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독일의 작가 W.G. 제발트를 떠올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968 당시 24살의 청년이었을 제발트는 부모 세대의 침묵에 분명히 불만을 품고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게 청년이 아니었을까. 소설을 비롯한 그의 다양한 글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은정 교수가 나치 전력으로 인해 경질되었던 인사들도 원래의 사회적 지위를 되찾았다 전하는 말에서처럼,  독일 사회에도 과거사 정리에 대한 침묵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했던 같다. 그리고 이런 부조리한 모습들은 제발트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고, 이는 부모세대와 68세대 간에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 중요한 점은 동서 양측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던 것처럼 68운동의 저항적 요소가 동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68운동은 이후 70년대를 거쳐 신사회운동 녹색당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요인은 1989 여름, 동유럽의 서독 대사관에 동독 주민들이 대거 진입한 대사관 난민문제가 결정적이었다. 상황에서 동독과 서독, 체코슬로바키아(동독 옹호) 헝가리(서독 옹호) 사이의 긴박한 외교협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때에도 서독 정부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동독의 요구를 최대한 고려하여 수용할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 정황을 있다. 서독 정부 측의 합리적이고 성숙한 접근법을 주목해보게 된다. 나아가 대사관 난민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이어진 대규모 촛불시위(1989 10)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될 같다.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대규모 정치 집회로 발전하면서 동독 주민들의 바람이 모이고 이는 다시 동독 당국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내리도록 하는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베를린 장벽의 붕괴 과정에는 오랜 기간을 거쳐 쌓여온 구멍 요소들이 존재했고 요소들이 모여 장벽의 붕괴를 가져왔다.

 


 

베를린의 현재를 살펴보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오랜 시간동안 분리된 조직과 행정 단위의 통합, 그리고 사회기반 시설의 복구와 재정리 문제등은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주요 문제들이었다. 베를린을 통일 독일의 수도로 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독일 정치인들은 수도의 최종 결정 문제를 당론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고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합리적 판단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점이 돋보인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역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모습들을 우리 상황과 비교해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현재 있는 일과 조건을 들여다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일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양측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시작할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해질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관철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이를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문제를 양측이 분명히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오늘날 베를린은 테크노 음악 팬들의 성지이기도하고, 유명 건축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예술가들이 모여 활동하며, 스타트업의 메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한차례 놀란 점은 독일에서 수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2015년에만 100 이상의 난민이 독일로 유입되었고, 5 5천명이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한다. 세계의 어느 대도시가 순식간에 늘어나는 인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있는 행정인력이 있을까. 내가 놀랐던 점은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운 사실이다.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난민의 정착을 도왔다고 한다.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탈북자들도 제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사회에 새로 등장하는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없을 없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시리아와 중동 지여에서 몰려든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우려나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결국 실천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탈북자 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는 피할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름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있는지를 고민하고 행동해야한다. 이미 어려운 여건에서 봉사하는 시민들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은 분단과 통합을 동시에 상징하는 도시이다. 특히 정치인 브란트가 서베를린 시장과 서독 연방정부의 수상을 지내며 접근을 통한 변화 철학을 반영한 신동방정책으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 행보에 주목해보게 된다. 물론 사람의 지도력 이면에 양측의 협력과 민간 차원에서 사실상 교류가 끊이지 않았던 점은 무엇보다 핵심적인 요소이다. 서독은 상당한 재정지원을 하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반면, 동독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를 위한 조건을 완화했다는 저자의 지적도 우리가 귀기울여 들을 만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베를린을 바라보는 여러 방식과 정치사적인 국면을 우리의 경우와 보다 대등하게 비교하며 제시하는 작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시대적 사건이나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울러 라이너 쿤체 시인의 삶을 일부 들여다본 것처럼 개별적인 주체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곁들여 조명했다면 이들의 겪은 삶을 깊이 이해해볼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어느 나라든 정치라는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인간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여 이를 조화시키고 조율함으로써 최적의 공존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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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2명이 모여서 <뉴욕 타임즈>에서 오랫동안 서평가로 활동해온 일본계 미국인 미치코 가쿠타니의 신간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 대한 간단한 합평회를 가지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8월 오프 모임을 시도했을 때는 무산되었지만,
이번에는 한 분이 참여하여 모임이 성사되었습니다.^^

조촐하지만 2명이서 간단히 책에 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각자 써온 서평/리뷰글을 다시 읽어보고 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미치코 가쿠타니는 막연하게 '진실(truth)'이라고 하는 개념과 '사실(fact)'이라고 하는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두 개념을 혼용하여 모호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책에 인용된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이의 
말에서 그가 말하는 '의견'이 가쿠타니가 말하는 '진실'에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15면)

물론 가쿠타니가 이 두 개념을 혼동할리 만무하지만, 가쿠타니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했던 (반면 정희진 선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한) '진실'이 저자에게는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다소 모호하거나 오해의 여지를 만들어 두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책의 내용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동일한 텍스트에 대해 
서로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발견했는데요, 아마도 제가 언급된 인물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급하게 읽어서 오독을 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좀더 비판적이고 면밀한 독서를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구요.

정희진 선생은 해제에서 가쿠타니가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아'와 주관성이 대두되어 해석의 다원성, 다원주의를 가져온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 비해, 저자 가쿠타니는 확고부동하고 보편적인 진실, 파편화된 이야기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된  '거대 서사', '거대 담론'이 존재한다고 보는 태도를 '모더니즘의 관점'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경우 '가짜/진짜'프레임에 빠진다는 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인 준거가 있다는 믿음으로 이 기준에 비추어 '진위'를 판단하게 되는 함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정희진 선생이 책의 후반에 실은 해제에서 언급된 '진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도출된 결론이라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합평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은 정희진 선생의 해제 일부분이 일간신문 칼럼에 '디지털 치매'란 키워드로 기고되었던 글 일부 단락에 사용된 것이 보입니다.

[참고]  
경향신문 정희진 칼럼 -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디지털 치매

물론 본인의 글이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해제를 읽을 때 다소 뜽금없는 '디지털 치매'나 '가짜 기부왕 행세하는 이'나 '어느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부분이 왜 나왔을까, 글의 전개상 다소 어색하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위에 게제된 칼럼에서 몇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 본 저서의 해제에 활용했었네요. 영향력있는 여성학 연구자로서 해제를 쓸 때, 좀 더 진지한 자세와 태도로 완성도 있는 글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과 실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합평회회 준비를 하고 책에 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나누다보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 오독이 있던 부분, 글쓰기에 대한 것들을 좀 더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나서 책에 언급된 도서들 중에서 제게는 중요해보이고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되는 2차 도서 목록을 정리해봤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1]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지음
[2]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회고록
[3] <1984> 조지 오웰
[4]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알렉시스 토크빌
[5] <이미지와 환상> 다니엘 부어스틴
[6]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7]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8] <중력의 무지개> 토머스 핀천
[9] <나는 증언할 것이다> 빅터 클렘퍼러의 일기
[10] <죽도록 즐기기> 닐 포스트먼
[11]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2] <라쇼몽> 또는 <나생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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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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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 김영선  옮김 | 정희진 해제 | [돌베개]



들어가며

 

과학의 목표는 점진적으로 편견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였다. 그는 현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양자 역학의 정립에 기여를 했다. 말에는 인류의 역사가 편견과 싸워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효율성있게 바꾸어주었음은 부인할 없다. 하지만 모든 인간사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과학기술 자체는 인류에게 유익하거나 해로운 방향 모두에 활용될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미 인류는 20세기 중반에 원자 폭탄을 개발하여 스스로를 파멸시킬 가능성 속에서 살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기기가 발명되고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전방위적인 정보의 공유와 소수자들과 같은 소외된 계층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낼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기도 했지만, 인간은 거짓 정보의 전세계적인 유통망을 마련해놓은 셈이기도 했다. 나아가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있는 인류에게 편견이 소멸해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물음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를 묶어주는 네트워크 통신수단을 통해 미국인이 아니어도 트럼프의 시대와 무관하게, 영향을 받지 않고 하게 수는 없게 되었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디, 트위터 피드, 그의 거짓말과 으름짱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편견은 해소되었을까? 역시 그렇지 않은 같다. <뉴욕 타임즈>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있는 서평을 기고해온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자신의 평론집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진실》)에서 트럼프 시대에 스며들어온 거짓과 허위가 여전하며, 한편으로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들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트럼프는 자신의 거짓말을 첨단기술 수단과 결합하여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독설 서평가가쿠타니의 눈에 트럼프는 전적으로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서로 먹고 먹힌다는 세계관, 서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고 항상 되갚아준다는 세계관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세상은 끔찍하고 무자비한 곳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인간의 본성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보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희박한 사람으로 보인다. 《진실》 표지에 ‘8’ 모양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것만 같은 뱀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하루에 평균 5.9개의 거짓말을 한다고 평가받은 트럼프가 끊임없이 거짓 사실의 유포와 유지를 위해 자신의 꼬리를 물듯 다시 거짓말을 하는 그의 처신 대한 상징같기도 하다. 혹은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고 속였던 과수원의 뱀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트럼프 시대 대변되는, 진실이 소멸되어가는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오늘날 사실과 가짜 뉴스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주위에서 혹은 뉴스에서 종종 합리성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언가를 믿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의 신조는 신앙을 닮아있기도 하다. 《진실》에서 가쿠타니는 트럼프 시대에 그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 거짓말에 대해 기술한다. 트럼프는 국가주의,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에 호소하며, 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것들을 모두 또는 나쁜 으로 규정하며 이를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있다. 가쿠타니가 인용하듯이 움베르토 에코가 과학과 합리적 담론을 거부하며, 이견을 배신과 동일시하는 성향이라고 묘사한 무솔리니의 초기 파시즘에 대한 특징들은 트럼프가 보여주는 여러 징후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합리성의 첨단을 보여주는 과학기술 시대에 어떻게 이런 광신도들의 특징처럼 보이는 불합리가 가능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편견 사이에는 관련성이 극히 미약하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불합리한 주장 행위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거대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있었을까.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면에 상당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역사가가 탈진실 정치학 대부라고 표현한 레닌은 대중을 결집하기 위해 사회의 혼란을 이용하고, 오명을 씌울 있는 것에 무엇이든 공격하는 수사술 등을 활용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어떤가. 히틀러는 지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할 , 판에 박힌 정형화된 문구를 거듭 반복하여 사용할 , 적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대중에게서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특유의 문구나 기호로 적에게 꼬리표를 붙일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개인과 개인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이라는 무형의 연결망이 가져다준 새로운 삶의 조건으로 우리는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탈진실이라는 흐름에 더욱 취약하게 노출되어버린듯 하다. 최근 많은 이들은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 유포할 있는 가짜 뉴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러시아 해커들의 개입하여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고, 선거에 영향을 주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레닌과 무솔리니, 히틀러가 활용했던 탈진실 전술이 소멸되어간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무형의 무대에서, 마치 잠복해있던 바이러스처럼 숨어있다가 다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여전히 과거에 사용되던 전술이 활발히 사용되면서 말이다. 러시아 지도자 가리 카스파로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현대 프로파간다의 요점은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어떤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소진시키는 , 진실을 무효화는 것이기도 하다.”(134)라고 올렸다. 잘못된 거짓 정보의 과도한 공급이 사실과 분석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오히려 사실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책의 뒷부분에서 가쿠타니는 사회비평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포스트먼의 유명한 저서 죽도록 즐기기 언급한다. 가쿠타니는 책에서 사람들에게 과도한 거짓정보의 제공과 은폐되고 억압된 정보 상황 모두 우리에게 해로움을 있다는 점을, 각각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비교하며 제시한다. 멋진 신세계 나오는 사람들은 마약과 시시한 오락거리들로 무감각해져 최면에 걸린 살아간다. 반면 1984에서 사람들은 뉴스피크 Newspeak라고 하는 축소되고 제한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받는다. 언어는 정부의 관리들이 정보를 은폐하는 여론과 국민의 사고를 조작하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트럼프가 보여주는 행보는 가지 세계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남발하며, 거짓 정보를 트위터로 나르는 행동에 더하여 사실과 분석에 대한 의혹을 외면하고 덮으려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합리해보이는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이 이런 행동과 거짓 정보를 두둔하거나 받아들이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둔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감정(분노, 혐오와 두려움 같은 감정들) 이용하여 이러한 불합리를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조건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감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비난과 분노의 대상이 될만한 희생양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단들은 이상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가쿠타니는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회고록 어제의 세계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이성의 원칙이 얼마나 빠르게 정반대인‘공포심과 대중정서’에 의해 무너질 있는지를 가장 끔찍하게 보여준다.”(35)    

 

가쿠타니는 츠바이크가 말한 이성의 원칙에 과학, 인본주의, 진보, 자유에 대한 신념을 포함하고 있음을 밝히는데, 츠바이크가 번의 세계 대전을 몸소 겪으며 절실하게 체험한 진실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의 변화 인간의 조건

 

저자는 트럼프 시대가 보여주는 진실의 쇠퇴’, ‘진실에 대한 공격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가쿠타니는 ‘TV 인터넷이 진실을 얼버무리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한다 전한다. 다만 TV 다르게 인터넷은 단지 현실을 반영하는 아니라 현실을 즉각적으로 새로이 만들어낸다. 게다가 새로 만들어진 거짓말/억측/유언비어는 인터넷을 통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초만에 세계로 퍼져나갈 있게 되었다. 트위터로 자신과 이견을 가진 이들에 대해 비방과 조소, 거짓말을 배출해내는 트럼프가 성격에서나 습성에서나 트롤이다(149)라고 가쿠타니의 표현은 간결하지만 정확해보인다. 어느 실리콘밸리 관계자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서비스에 대해, ‘마술 같은 도구가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나아가 (Web) 미래에 대해서도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있다고 가쿠타니는 전한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인터넷 사용자의 주의력 결핍이라는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는 , 인류는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것이다.

 

웹에 기반한 소셜미디어를 좀더 들여다보면, 우려할 만한 사항을 발견한다. 여기에서는 바로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고려해야할 같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등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개별 사용자 계정을 통해 정보 개별화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있다. 나아가 구글을 비롯한 검색엔진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특정 집단 혹은 국가의 방침과 다른 정보에 대해서는 사전에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기도 하며, 검색되는 정보의 유형을 제한 조율할 있음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렇게 정보의 필터역할을 하는 서비스 사용자에겐 이들의 관심사와 판단의 근거를 한층 제한적이고 편향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있다. 많은 현대인들은 업무를 제외하더라도 개인 모바일기기를 통해 웹에 대개 2-3시간 이상 접속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된 제한되고 편향된 정보를 양분처럼 흡수하며 살아간다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길들여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걸러진 편향된 정보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사람들의 분노와 원초적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 메시지가 결합하게 되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있음을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있다. 2016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소셜 미디어를 조작하여 선거제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냉소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러시아 해커들의 역할이 있었음이 알려졌다. 가쿠타니는 이러한 러시아 트롤들의 활동은 특히 기술/문화/사회적 변동의 시기에 견인력을 얻는 경향 있음도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은 유럽과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국가 사회에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활동을 주요한 임무로 한다. 언젠가 사회의 우경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러시아 트롤들의 활동이 현상에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 새로운 계급투쟁에서 지젝은 2015 11 13 파리테러 사건에 대한 분석으로 책을 시작하며 유럽의 위기를 진단한다(이제 테러 사건의 4주기가 된다). 지젝은 난민과 테러의 발생 모두 기본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결과이며, 모든 문제의 기본 바탕은 계급투쟁이다라고 언급하며,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다만 후기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전세계 우경화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해커/트롤들이 미국의 선거 개입 정황과 유럽 여러 국가에 사회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활동을 통해, 이것이 지구촌의 우경화 경향 확산에 보다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국내 정치를 보더라도 현실 정치에 적용되는 정치공학적 수법은 러시아 트롤들의 수법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말이다. 남녀노소 계층에 대립과 갈등의 요소를 사회에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가쿠타니의 지적대로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분노와 원초적 감정 이용하기에 수월해지는 구도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의 양상은 외세에 의한 것이든 내부에서 형성된 것이든 불순한 목적에 의해 의도된 것이란 의심을 제기해볼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과 거짓을 구별하고,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어떤 현상 이면에 계획되거나 의도된 의미를 해독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하는 상황에 내던져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조건일 것이다.   

 

 

【가쿠타니의 포스트모더니즘 유감

 

해체주의에 대한 가쿠타니의 견해에 따르면, 해체주의가 모든 텍스트를 불안정하며, 독자에 의해 언제나 변경가능한 의미를 가질 있다고 본다. 객관적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는 미치코 가쿠타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모든 진실이 불완전하며, 보는 이의 관점에 달려있다라고 보고, 이러한 입장을 비판하며, 이러한 시각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쿠타니는 객관적인 진실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이성과 합리성의 회복을 지지하고 있다. 가쿠타니가 바라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특징은 자크 데리다로 대변되는 해체주의에 많이 주목하고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적용 범위는 언어와 해체주의에 대한 논의보다 광범위해 보인다. 만약 모든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독자가 각각 조금씩 다르게 해석할 있는 텍스트를 보다 분명히 하려는 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시도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오독의 빈번한 발생을 정당화하는, 혹은 오독의 발생이 근본적인 필연적 결과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지 않을까? 저자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와 비판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자체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속에 있다고 보인다.

 

정희진 선생의 해제에 따르면, ‘현실과 언어,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는 언어의 본질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언어의 형식과 내용에는 언어가 근본적으로 가지는 불일치, 불확정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각각의 주체는 일종의 은유적 프리즘으로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정희진 선생은 어떤 의도이건 간에 모든 사유는 오해되고 왜곡된다’(197)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모든 사유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리의 존재에 대한 입장을 고민해보니,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견해에 가까울 같다. 정희진 선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목소리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했다. 다시 말해 모든 이에게 고정불변한 하나의 진실이 있다기 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식자 개인의 사유로 인해 진실의 다원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이해된다. 나는 포스트모던적인 논의의 주안점이 진리의 존재 여부 대한 논의 보다는 공정함에 대한 태도 내지 인식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쿠타니는 객관적 진실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정희진 선생은 진실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말한다. 다만 이것은 사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대신 사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 내지는 의도에 대한 균형감각과도 같은 인식의 태도가 요구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있을 것이다.

 

가짜 뉴스도 진실도 유일한 목소리일 없다라고 언급한 정희진 선생에 따르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이를 반복하여 주장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예컨대 <나는 부정한다 Denial>이란 영화를 떠올려본다. 영화는 2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어용 역사학자와 이를 저지하려는 역사학자 사이의 법정 대결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가쿠타니의 비판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이용하는 세력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을 도발하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있다. 영화에서도 어용 역사학자가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인들에게 대학살 증거를 대보라고 요청하고 있다. 심지어 가해자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피해자 측이 피해를 증명해야하는 이런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을 불편해하고 비판하고 있음을 알지만, 어떤 관점이 달리 이용될 있는 위험이 있다고하여 이런 관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조금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이를 이용하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삶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하여 과학 자체를 배척하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희진 선생도 해제에서 과학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하고 있지만, 과학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나가며

 

진실의 쇠퇴는 민주주의의 약화를 예비한다. 역사를 통해 배울 있는 것은 비이성적 전통이 바이러스처럼 퍼질 있으며, 잠복해 있다가 언제든 다시 활동을 재개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실이 부정되거나 은폐되고, 분석의 역할이 감소하는 탈진실 시대에 존재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가쿠타니가 인용하는 니콜스의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에는 다음과 같은 실마리가 보인다.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이해하는 기본 문해력을 습득하는 신경 쓰지 않으면, 좋든 싫든 이런 문제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가 이런 중요한 결정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 무지한 선동 정치가가 민주주의를 장악하거나 또는 좀더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민주주의 제도가 권위주의적 기술지배체제(technocracy) 쇠퇴하는 위험에 처한다.”(31-32)

 

우리는 니콜스의 경고를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바로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변해버린 미국사회가 증거이다. 2017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민주주의가 이렇게 퇴보할 있음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분명한 것은 이런 일이 미국만의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다시 도래할 있다는 점을 책은 경고해주는 셈이다.  진리/앎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말은 이성에 가치를 두는 합리론의 전통에 근거한다. 말은 가짜 뉴스/정보와 진실이 쇠퇴하는 시대에 중요한 표어가 있다. 미국의 사례로부터 ‘역사’와 ‘시민론 교육’이 심각하게 위축된 문화 속에 러시아의 허위 정보가 얼마나 쉽게 뿌리내릴 있는지’를 보았다. 결국 스스로 진실이 어떤 것인지 따져보고 의문을 던지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명인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1796) 인용하며 현재의 미국 사회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전한다. 워싱턴은 미국의 미래를 보장하려면 헌법을 보호하고, 정부 권력의 분립과 균형을 파괴하는 활동에 대해 방심하지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울러 교활하고 야심 차며 파렴치한 인물 출현을 경고하기도 했는데,  국민의 권력을 와해시키는 인물의 존재, ‘방심할 없는 외세의 책략’, ‘당파심의 끊임없는 폐해’, ‘파벌주의(미국의 동부-서부, 남부-북구, 주정부-연방정부)’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200년도 과거의 지도자가 전하는 진심어린 경고는 우리가 지켜야하는 가치가 이를 파괴할 있는 환경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있는지를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를 통해, 그리고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보고 있는 트럼프 시대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가 것이라는 경고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충고하고 있다.

 

단테의 장편 서사시 신곡에는 밤에 등불을 뒤로 들고 가는 사람 대한 언급이 나온다. 지상의 인간으로서 저승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 사람이 연옥을 지날 ,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스타티우스에게 어떤 경위로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를 물었고, 스타티우스는 베르길리우스의 영향으로 시인이 되고 신앙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며, 베르길리우스를  밤에 등불을 뒤로 들고 가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그를 칭송한다.

 

당신은 마치 밤에 등불을 뒤로 들어

자신에게 유익하기보다 뒤의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분처럼 말했지요.

(신곡 연옥편, 열린책들 191)

 

나는 대목에서 밤에 등불을 뒤로 들고 가는 사람 가쿠타니가 언급한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탁월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뒤에서 등불을 안내삼아 따라오는 후손들을 염려하는 일은 바로 오늘날 필요한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한 1 미디어의 주체로서 개인에 주어진 역할이자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오래전 보스니아에서 이뤄진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을 취재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희생자를 정당한 이유없이 공격하는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도덕이나 사실의 거짓 등가성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도무지 입에 담지 못할 범죄와 그 결과의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립성이 아니라 진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실을 진부하게 만드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믿습니다.”

-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이란계 영국 저널리스트)의 말
- P69

“(워싱턴의 허무주의는) 예의의 상실, 즉 갈수록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논쟁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말해주는 징후면서, 우리가 점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어주고 정직한 실수의 여지를 주면서 정중히 들어주고 싶어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P145

‘시민들은 독재자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들이 저항을 와해시키기 위해 의존하는 냉소주의와 체념을 반드시 거부해야한다.’
‘동시에 시민들은 미국 건국자들이 민주주의의 지붕을 떠받치기 위한 기둥으로서 만든 제도를 돌보고 보존해야 한다.’
‘교육과 자유로이 독립된 언론(언론의 자유)’이 매우 중요하다.
- P160

“그러므로 나는 확신한다. 진실의 문을 여는 것과 이성으로써 모든 것을 살피는 습관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스스로 동의해 국민을 속박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 손에 채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갑임을.” (토머스 제퍼슨)- P161

“이념적 저장탑에 고립된 사람들의 대안사실이 아닌, 공통으로 동의한 사실 없이는 정책에 대한 합리적 논의가 있을 수 없고, 정치 공무원 후보자를 평가할 실질적 수단이 없으며, 선출직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해 책임지게 할 방법도 없다. 진실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절름발이다. 미국 건국자들은 이를 알았고, 오늘날 민주주의를 살리려는 사람들도 이를 알아야한다.”
- P161

“진실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있었을 뿐이다. (…) 어떤 의도이건 간에 모든 사유는 오해되고 왜곡된다. 그래서 모든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의 ‘올바름’이 아니라 효과다. 언어의 사용 과정에서, 즉 누가 어떤 위치에서 말하는가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희진 해제)- P197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식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대안 없는 해체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니다. (…) 역사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과거의 승자와 동일시하는 대중의 인식이다.”
“진실(객관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공간의 횡단을 통해 구성된다는 의미다. (…) 현장의 역사적 맥락이 언어의 의미를 정한다.”
(정희진 해제)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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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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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대담 |  한승동 옮김 |  [돌베개]

 

일본의 책임에 대한 오랜 물음의 대화

 

얼마전 일본에서 전시되고있던 위안부 소녀상작품의 전시 중단 소식을 접했다. 뉴스와 후속 기사를 보면서 사건의 양상이 내게는 이전과는 다른 맥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최근에 서경식 교수의 저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를 읽고난 이런 뉴스가 내게 달리 보였다고 말할 있겠다. 뉴스에서는 사건이 표현의 자유 침해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보도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인하는 사람들도 뉴스에 보도되는 맥락만을 따져본다면 소위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되었다 방향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회의 시민이 표현의 자유 보장받는 일은 응당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시민이 가진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사회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는 쉽게 제한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그리고 사태가 하나의 우려를 재확인하는 사례임을 알게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사건의 배경은 일본군 성노예 끌려간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작품 앉아있는 소녀상 일본 내에서 전시되는 가운데, 일부 일본인들의 반발과 주최측에 가해진 압력으로 작품의 전시가 중단된 것이었다. 내가 느낀 위기감은 표현의 자유문제에 국한되어 해결의 초점이 맞추어지면, 일본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주의 영향으로 결과한 사건의 본질이 회피되고 심지어 무화(無化)되는 상황으로 종결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건드리지도 않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양보 필요가 있는가의 논쟁으로 소비될 있기에, 아베 정부에 동조하는 세력들에게는 편리한 변명으로 작용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하는 구실이 마련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도된 뉴스는 표현의 자유 억압문제에 관심이 맞추어지다보니 보다 본질적인 면이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회피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읽게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짐 책임에 대하여에서 바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있다.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대담자들은 일본의 보수세력에 대항했던 리버럴파 지식인들이 보여준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 외면하는 상황을 응답 책임의 회피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비판적인 집단임을 자처하던 리버럴파가 몰락 내지는 자폭한 상황은 결국 아베 신조를 비롯한 강경파가 착실하게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소녀상 전시 중단과 같은 사건이 일본 사회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왜곡된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세력이 너무 비대해짐과 동시에 제한적이나마 비판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던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붕괴에 가까운 무기력으로 비판기능이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해볼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으로 넘어설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천황제 존재다. 일본사회는 천황 중심으로 어느 시기나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던 국가였기에, 천황에 대한 강력한 인정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책임에 대하여에서 교수는 일본국의 본성에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식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천황이라는 단어가 수반하는 힘은 특별하다. 일본 국민과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천황=국가라는 도식 속에 스스로가 신민 되는데 이견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분명히 정치와 종교를 헌법상에서 분리하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패전 70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천황에 대한 비판은 매국노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제정된 헌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적 자유의 보장이 일본인들 스스로 간절히 원하여 누리게 시민적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얻어낸 경험없이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자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후에 그나마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기회를 여러 놓쳐 버린 것이 오늘의 전체주의적인 일본의 모습에 이르게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천황은 평화주의자였다라며 본질을 흐리는 발언을 하거나, ‘요새 그런 이야기(민족, 식민주의) 하면 내셔널리스트라고 비난 받아요라는 말을 리버럴파로부터 듣게되는 상황이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지적하는 희생의 시스템에는 과거로부터 여전히 지속되는 위안부나 조선인 징용공 문제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있다. 대담자들은 모든 사례가 바로 식민주의의 과거 현재의 형태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사례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희생에의 강요 정리해볼 있을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경식 교수는 한결같이 해당 문제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식민주의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담자는 일본국의 본질적인 식민주의 척결을 있었던 여러 시기를 일본 사회는 놓쳤다고 한다. 패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주어진 자유이긴 하지만 자국민 스스로가 천황제를 폐지하고 자주적인 국민으로서의 인식과 행동으로 이어졌다면, 아직까지도 이어져오는 여러 희생의 시스템 목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당수의 진보적인 일본 지식인들은 천황제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런 정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전체주의시대가 도래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풀이해볼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정당 혹은 기타 정치 집단이나 매스 미디어 그리고 학계의 저항이 거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것이다. 다카하시 교수가 결과로 저항자는 가장 마이너인 입장으로 내몰리고 고립되어 버리는 이라고 말에서, 일본 내에서도 극소수인 대담자의 고립감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어낼 있었다.

 

전체주의 일본이 형성된 결과는 다시 일본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예를 들면 미일 안보체제는 일본의 헌법을 초월한 존재인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미군이 기지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미군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우월적인 태도는 오키나와 대학에 떨어진 미군 헬기 수습 과정이나 미군에 의해 자행된 오키나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서 뚜렷이 확인할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군측은 일본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는데, 놀라운 것은 일본 정부가 이런 미국 측의 대처방식에 대해 항의나 사고 수습에 대한 의지 조차 없어 보였다는 점이었다. 내게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돌아가버리는 구조가 되었다. 자국민인 오키나와의 재산과 인명이 피해를 봤는데 뒷짐지고 구경만 하는 본토 일본인들과 정부의 행보는 충격적이었다. 결과 오키나와인들은 본토 일본인들에 의해 버린 취급을 받으며 다른 차별과 희생을 떠안게 되어 버렸다. 정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일본 사회의 식민주의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다시 자국민의 인권이 온갖 형태로 침해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있다.   

 

서경식 교수는 책의 일본어판 후기에서 2017 <치안 유지법> 적법하게 제정되었으므로 손해 배상도 사죄도 실태 조사도 하지 않겠다라는 법무대신의 국회 답변을 보고 일본은 마침내 데까지 왔다라고 판단했다. 1990년대 부터 일본의 반동기(리버럴파의 몰락과 강경파의 장기집권) 들어선지 사반세기가 지나자 이제는 국민과 국제적인 시선은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런 말을 언론 앞에서 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은 없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와 마주하는 일이 남았다. 문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문제에서 해결될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최근 일간지의 뉴스를 보니 일본의 관광객이 크게 줄어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 정치인(자민당 간사장)  우선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있는 것은 양보할 "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우리(일본) 어른이 한국의 주장을 듣고 대응해 나가는 도량이 없으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출처: 중앙일보] "한국에 양보할 하자"…관광객 급감에 온건파들이 움직인다   (2019 09 29일자 기사)

 [ https://news.joins.com/article/23589845 ]

 

우선 총재 다음 자리인 자민당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 二階俊博·80) 이면에는 이번에 읽은 대담집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 행보의 가해자라는 인식을 전혀 확인할 없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유아적인 우월의식에 젖어 있음을 확인할 있다. 특히 양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 의미하는데, 그가 사용한 맥락에서의 양보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행위의 맥락으로 감지된다. 나는 물론 양국의 경제적 교류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여파가 일본인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국면에 대한 이해나 깨달음을 주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언젠가  끝나게 되겠지만, 일본인들이 전후 이래 학습된 사고 정지와 (천황제로의) 자발적 예종의 습관으로 공고화된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본성에 일말의 영향을 미칠 있으리라는 기대에는 회의적이다.

 

책을 읽으며 가지 주목하게 것은(서경식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있었던 리버럴파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본 사회의 반동기 오늘날 일본형 전체주의가 이제 완성되었다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아직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가 배운 점은 오늘날 일본의 전체주의 형성에 미국의 역할을 빼놓을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것은 서경식 교수가 국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자국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천황제를 잔존시켰기 때문”(255)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있다. 나아가 전후 일본사회 재편의 양상이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양상과 궤를 같이 한다는 , 그리고 중심에 공통적으로 미국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해방을 맞았을 , 도망갔던 한국인 검찰·경찰 세력이 미군정 국내 장악과 함께 다시 복귀한 사실, 이들이 해방된 공간에서 다시 정치적 역량을 확보한 사례는 일본의 경우와 매우 유사함을 발견한다. 이런 정국에서 우리는 친일파에 대한 파악과 처벌 과정에 중요한 골든 타임 놓치게 되었다. 상황은 일본도 다를 바가 없었다. 유사한 패턴의 배후에 미국이 보인 행보를 우리는 주목해야 것이다.

 

패전 일본 내의 정치적 상황은 역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1947 트루먼 독트린 이후 냉전 태세를 굳혀 가던 미국은 중국 공산화와 한국 전쟁을 계기로 일본 재무장을 핵심으로 동아시아의 냉전적 대결 체제를 본격화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 처벌과 ‘평화 국가 일본’으로의 개조라는 기존 정책을 전쟁 범죄자 재기용과 일본 재무장, 이를 위한 일본 경제의 재건이라는 방향으로 급회전시켰다. 이것이 일본 패전 지금까지 70 년간 동아시아의 정세 흐름을 결정지었다.(302)

 

일본 사회 역시 패전 직후 미국은 천황제를 존속시키면서 전범자를 재기용하도록 방관하여 식민주의가 오늘날에도 건재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미구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를 일본이 누리게 해주면서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화에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미국은 ·간접적으로 아시아의 평화유지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점과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 형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없을 것이다.

 

앞서 서경식 교수는 일본이 이제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적인 전체주의를 완성했다고 했다. 동시에 데쓰야 교수는 제국 시기의 식민 지배 책임을 계속 부인함으로써 과거의 단절 극복하지 못하고 국제 지도 속에서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적한다. 이유를 데쓰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통해, 근린 민족들과의 신뢰 관계를 구출할 없게 현실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284)

 

일본이 이렇게 무모하게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자신만의 행보를 유지하는 것은 배후에 미국과의 유착 혹은 상당한 정도의 대미 의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은 결국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적신호가 켜져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 살려고 노력해도 그럴 없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일본 정부는 전근대적인 천황제를 폐지하고, 식민주의를 극복하여 일본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대로, 자유로운 개인적인 주체로서 존재할 있도록 해야만 것이다. 천황제의 종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일본 국민의 다수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신민으로 회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발언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천황제는 원리적으로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정부를 비롯한 대다수 일본인들이 회피해왔던 책임 다시 바라보고 인식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같다. 그래야 역사 수정주의 문제나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는 모럴의 붕괴 계속 진행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은 이미 옛날의 일이다. 과거의 허물을 그만 들추라 논리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논리는 가해자, 기득권자가 가장 좋아하는 레토릭이라고 서경식 교수는 말한다. 보다 밝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언제나 함께하는 가운데 과거사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알려져야 하며, 후세는 이를 알아야만 한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행위는 미래에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마무리 대담자들을 다시 보며

 

다카하시 교수의 가차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