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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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살린다: 앎에서 삶으로 향하는 공부

-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 최경은 정리 [문학동네] (2024)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이하 괴테 할머니)을 읽는다. 책을 통해 저자인 괴테 할머니전영애 교수의 발자취를 여러 방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발자취 가운데 언제나 만나게 되는 모습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간절함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괴테 할머니를 이해하려면 그의 배움과 앎에 대한 간절함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은 결핍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며,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우선 저자는 한결같은 간절함으로 평생 공부해 왔다. 그에게 공부란 무엇이었을까? 짐작컨대 공부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을 통한 지식을 얻는 행위보다 넓은 의미로 이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괴테 할머니는, 공부란 결국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22)이었노라 말한다. 진실로 살아있다는 것은 곧 부단히 공부하는 일이라는 말로 들렸다. 이 행위가 모여 한 개인에게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으며, 그가 마주하게 된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던 셈이다.


 

뿐만아니라 저자가 실천해 온 삶의 태도는 괴테에 빚진 바가 크다. 괴테가 삶을 대했던 태도는 저자가 실천해온 삶의 행보마다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괴테 할머니의 소개에 따르면, 괴테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열어 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괴테 할머니는 이렇게 일러준다. 놀라며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 있음을 인간이 지닌 최상의 부분으로 보는 것이지요. 괴테는 이를 파우스트가 가진 추동력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29) 괴테가 얼마나 열린 인간이었는지는, 그가 관심을 갖고 평생 공부한 분야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괴테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분야만 해도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학, 회화, 색채론, 식물학, 광물학 등이다. 무엇보다 괴테의 삶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란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괴테는 여기에서 나아가 자신의 결핍을 자각한 상태로 둔 적이 없었던 것같다. 자신의 결핍을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일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평생 자신의 부족함을 부단히 극복해 갔던 초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였다면 모든 걸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며 자기합리화를 했을 법한데 말이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의 신포도와 같은 상황으로 곧잘 돌아가곤 하는 나의 습관을 돌아보게 한다. 이는 우리가 늘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괴테 할머니는 나의 마음을 이미 들여다보셨는지, 괴테의 말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준비하지 않고, 기다려내지 않고, 쟁취하지 않았던 좋은 것과 마주친 일은 나의 인생행로에는 없습니다.”(49)


 

괴테는 이미 청년 시절부터 그냥 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그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일찍 이해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내 독서 감상이 다소 자기계발서 같은 교훈 찾기가 되어버린 감이 있지만, 괴테라는 인물의 태도와 행보를 볼 때마다 항상 배울만한 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삶은 언제나 결핍투성이였지만, 대부분 기다려내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일깨워준다.


 

견뎌내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해 내는 일’, 괴테의 태도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책읽기도 되돌아보게 한다. 책을 막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에는 읽은 책이 너무 없어서 그저 많이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책만많이 읽는다고 그 사람이 건전한 상식과 윤리를 가진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한 명사들 중에 어떠한 형태의 권위나 권력의 논리에 동조하거나 심지어 혐오에 앞장선 이들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책읽기란 자신의 결핍(타인에게 보여지는 욕망)을 메워주고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자격처럼 여겨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래텍스트는 그 자체로 엘리트주의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에게 애초에 자연스러운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텍스트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텍스트에 익숙한 능력은 돈과 다를 바 없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이른바 책읽기혹은 독서행위를 통해 축적된 지식이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권위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독서 혹은 독서를 통한 지식이 이른바 물신화된 사례를 여러 차례 보고 있다.


 

이와 달리, 괴테 할머니가 소개하는 괴테의 모습에서 공부는 책읽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공부가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괴테의 공부는 분명히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그의 지향점이 아니었을까. 그에게는 이것이 인생의 우선순위였던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더라도 자신이 머물고 있던 곳, 익숙하고 안락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보고 느끼며 살아봐야 겠다는 결심으로 마차에 올랐을 한 서른일곱의 괴테를 생각해 보았다. 삶의 관성을 과감히 물리친 청년 괴테의 모습을 말이다. 괴테 할머니는 괴테의 선택을 기존 규범으로부터의 떠남’(98)이라고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괴테 할머니에서 저자가 소개한 괴테의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표현을 꼽으라면, “리벤 벨렙트 Lieben belebt."(50)를 들 수 있겠다. 이 문장은 사랑이 살린다는 뜻이다.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이 간결한 문장은 죽어 있는 것을 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괴테가 60여 년 간 손보았던 작품 파우스트는 결국 우리의 삶에 사랑이 남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표현은 80대의 괴테가 인간을 바라볼 때 느꼈던 마음가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때론 잔인하고 폭력적인 면모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80대의 대문호가 인간을 바라본 시선에는 분명 사랑이 담겨 있었으리라. 괴테의 사랑이 살린다라는 표현은 한강 작가의 감동적인 노벨상 수락 연설을 또다시 떠오르게 해주었다. 대문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을 관통하는 배움은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느꼈다. 한강의 연설을 듣다보면 그는 자신의 어느 작품에서든 기도하듯 사랑을 담고자 했던 작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인간에게서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다니 말이다. 괴테 할머니가 보여준 괴테의 삶은 모두 앎에 대한 간절함에서 출발한 공부가 결국 삶으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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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작년인가? TV에서 전영애 교수 다큐멘터리 본 적이 있는데 꽤 인상적이었죠.
자그마하신 분이 낮에는 땅을 일구고 밤에는 번역하시고.
항상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는데 궁금하더라구요.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