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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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주 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래되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이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말  오늘도 무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집 밖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곳인지 아니까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다시 집 밖을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말고는 할게 없더라구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미취학 그것도 기저귀를 달고 있거나 막 떼었거나 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

집 밖에 두려우면 얼마나 두렵고 학교가 힘들면 저 혼자 힘들까 싶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왕따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거 같고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학교가 위험하다는 표현은 듣기 거북했다,

너무 애를 감싸는게 아니야?

내 애를 위해 내 아이 내 가족을 제외한 모두를 나쁜 편으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정의감도 들었다,

 

#  2

 

아이를 키우면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우스개소리로 하고 혹은 심각하게 알게 되는 것이

내 아이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있는 곳에서 행동하는 것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특히 엄마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어야 한다

라는 아주 모순된 두 문장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를 믿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심해서도 안된다,

그건 늘 모순이지만 진실이었다,

 

 

#  3

 

몇번 썼던 적이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들이 순진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정의롭게 흘러가고 어른들 말을 잘 듣고 쉽게 반성하는 건 동화나 영화속의 이야기일뿐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로 말갛게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입히고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무탈하게 견디는 공간과 시간은 누군가는 어렵고 힘들게 견디기도 한다, 같은 대상 같은 공간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가 힘들었을 때 너무 좋은 엄마처럼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거웠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내 아이가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문제를 크게 만든다고도 생각했고

아이들의 문제는 누군가가 가해자고 누군가가 피해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는 부분도 있어서 우리아기가 전적으로 피해만 보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위축되기도 했다,

솔직히 그런 아이가 부끄럽기도 했고 왜 남들처럼 무탈하게 살아주지 않는지 표나지 않게 원망도 했고 아이때문에 내가 움츠려 드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도 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아 한다는 걸 알지만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았지만

내가 힘들고 내가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한 적도 많았다,

말하지 않으면 더 묻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들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는데 싶기도 했고

어쩌다 아이가 보여주는 밝은 모습이나 학교 생활을 재미나게 들려줄 때는 그래 이렇게 괜찮은 걸 괜히 걱정했구나 스스로 다독이면서 이게 원래 모습이라고만 믿고 싶었따

어쨌든 나의 태도는 두려워서 무능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머리 큰 자식 문제를 부모가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모른 척하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이 순간만 잘 모면하길 바랬던 것이 내 솔직한 태도였다,

 

 

#  4

 

지금도 아이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떨 때는 친구랑 어떻게 지냈는지 막 조잘거리다가도 어떨 땐 친구가 없어 외톨이라고 했다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다가

다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치받으면 또 자기가 친구도 없고 힘든데 왜 집에서도 가만두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내고 말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고 자주 배가 아프고 편두통이 나는 것이 사춘기 아이의 특징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우울증의 한 특징이라는 걸 이 책을 읽기전에 어디서 보긴 했다,

아 저게 다 우울증이구나...

아이가 우울질이 큰 성향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고 본인도 인지하고 있으니 더 크게 번지지는 않을거라고 몰라서 대처못하는 상황은 없을거라고.. 그리고 누구나 조금씩의 우울한 기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나도 설마 우리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아이들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버릇없다고 종종 생각될 만큼 솔직하게 감정이나 욕구를 드러내니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고 나를 위안하고 있었다,

가끔은 살얼음 위를 지나는 것처럼 불안해서 이러다 내 명에 내가 못살겠다 여기다가도

이정도이기만 해도 감사다하다는 나날들이 번갈아 온냉탕처럼 지나가면

서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과 살고 있다,

 

 

#  5

 

우스개로 넘기기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작고 여린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학교에서 맞고 다니진 않은지 혹시 덩치 큰 녀석들이 내 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은지 아버지는 늘 아들을 염려하고 관심을 가졌다, 혹시 누군가가 괴롭히지 않은지 때리지는 않은지 늘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염려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부모호출이 왔다,

아버지는 아 내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았구나 큰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학교로 달려갔더니

세상에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고 또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한탄 하는 아비에게 아들이 그랬단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가에게 맞고 다니는지 괴롭힘을 당하는지만 물었지 내가 누군가를 때렸냐고 누구를 괴롭혔냐고는 한번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답할게 없었다고....

누구나 부모라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전전긍긍하지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염려를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평범하고 그래도 잘 컸다고 믿는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학교폭력 실태나 사례를 볼 때도 피해를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만 눈여겨 보고 일반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싶에도 누구가가 피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만 소문처럼 떠돌 뿐이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그 부모도 똑같고 그렇게 키웠으니 그런 자식이 나왔다고 그러게 철석처럼 믿으면서 나는 나쁜 부모가 아니니 내 자식이 나쁜 자식일리 없다고 믿는다,

 

 

#  6

 

어릴 적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억에 가장 어릴 적 죽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였고 내가 잃어버린 우산만 5개가 넘어가서 늘 그 문제로 혼나곤 했는데 드디어 6개째 우산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면 혼날 게 뻔하고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어쩌면 우산분실은 핑계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언가로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모든게 그 모든 괴로움은 내탓이었고 나만 없으면 다 괜찮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굳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했던거 같다

그 때 나를 살린건 나의 소심함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자니 떨어지는 순간이 두려웠고 칼로 자해하지니 그 고통이 끔찍했다, 목을 매달까 했지만 숨막히는 순간의 고통이 느껴져서 싫었다,, 결국 어떤 방법도 무서워서 그냥 엄마에게 야단맞는게 가장 덜 아프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야단을 맞았는지 어땠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때 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그때도 그 이후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도 내가 그랬다는 걸 절대 모른다,

나 역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이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죽는것 보다 더 싫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잘 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런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마음  알아봐도 소용없을거라는 마음이 뒤섞여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더 웃고 더 활발했던 걱 타았다,

결국 그렇다 책에도 나오지 만 속이려 들려면 누군든 속일 수 있다,

다만 모든 사건 이후 결국 그때 그런 행동이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그때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숨겨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른바 '완벽한 아이들" 이야기가 무척 많아서 놀랐다, 과학박람회에서 상을 받고 육상대회 메달도 휩쓸고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성생활이나 약물에 탐닉하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빛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한 만큼 부모가 가지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숨기는 일도 잘 했다.,

 

 

 

토맘스 조이너 박사는 심라학자이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사람으로서 꼼꼼한 자료조사는 물론 공감과 개인적 관점이 담긴 아름다운 책을 쓴다, 세걔의 원이 겹쳐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조이너 박사의 자살 이론이 이 분야를 새로이 정의했다,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했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 (나는 혼자야) 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거야) 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 위험에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번째와 두번째 심리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몇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였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명을 살려주었습니다,

 

                         피터 레먼 박사의 이메일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에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느 ㄴ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공부를 할수록 딜런에게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것들을 배워나간다,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되나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 딜런에게 집중하고 캐묻고 다그쳤더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밀착했더라면 조핬을 것이다,

이런 후회를 하지만 딜런이 파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뚜렷한 징조는 전혀 없었다,

 

 

모든일이 지나고 나면 명확하게 보인다,

저자 수 클리볼드도 컬럼바인 사건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계속 딜런을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생각하면서 조각들을 맞추어간다,

그때 그런 행동이 징후였을까 그때 나는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그때 그렇지 않았떠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그때 그 아이의 행동을 그냥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넘기지 말았더라면 뒤늦게 모든 것이 뿌엏게나마 보이고 모든 것이 회한이었다,

 

자기 자식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관심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수 클리볼드도 그렇다,

책을 보면 그녀도 최선을 다했다,

딜런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모의 모습도 있겠지만 누구나 그만큼 하고 누구나 그만큼 무지하고 무심하다, 내가 그때 다가갔더라면 내가 그때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었더라면 하는 회한속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빈공간에 내 이야기로 채우지 말고 가만히 옆에 있어줄걸. 이라는 거였다,

나역시 그렇다,

내 아이가 잘못될까봐 손가락질은 당하지 말하야지 무시당하거나 잘못 컸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어쩌면 대화의 70퍼센트는 잔소리인지도 모르고 타이르고 가르치고 주입하는데 보냈던거같다, 아이가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는 것

그 당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고 내키지 않은 마음이 있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을 수도 있고

죽기보다 하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모든 걸 해야하고 좋게 보여야 한다는 걸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주입하면서

사실 나는 내 아이가 잘 컸다는 것으로 내가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거 같다,

어쩌면 수 클리볼드도 그런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동동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모습이 내 자부심이기도 한 법이ㅏ,

 

아이는 잘 못된 부모탓이 아니고 총기 사용의 문제 왕따문제 사춘기 감정의 문제 뇌건강의 문제(이 책에서는 정실질환이 아니라 뇌건강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복합적이었다, 어는 것 하나가 원인이가고 당위성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문제이며 동시에 모든것이 문제가 아닐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볼 때 명확한 대답이 나오면 모두가 편하다,

부모의 방치나 폭력이라고 나오면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니까 하고 안심하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라고 하면 내 아이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 아이의 피해만 살펴보게 되고

불안한 사회 경쟁의 심화라고 나오면 사회탓 시대탓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대상을 정해 화풀이를 하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안도해버리는 일

그것은 아니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인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한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것 그때읙 정서와 뇌건강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우리가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

더 크게 확장해서 사람이 누군가 타인을 이해하고 완전히 안다는 것

그건 불가능 한 일일것이다,

내 자식이라 가장 가까워서 늘 함꼐 하니까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속기 쉽고 속이기 쉬운 존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철석같이 믿으며 전혀 의심하지 않은 그 절대성의 틈을 비집어 틈은 내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아니었을까

무조건적인 믿음 그리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동시에 갖는일 ..

그것이 관계에 대처하는  어쩔 수 없는 자세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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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결점은 곧 부모의 결점,
자식의 좋은 점은 곧 부모의 좋은 점

대부분 부모가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저희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너무 집착하면 자식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은 점만 보려고 합니다. 자식이 결점이 곧 부모의 결점에서 비롯한 일로 받아들이니까요. 제가 부모가 되지 않아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결국 부모를 닮지요 보웬의 다세대 전수과정 이론이 괜한게 아니거든요 자기를 닮아서 애틋하다가 밉다가해서 마음이 더 복잡할지두요^^

hnine 2016-12-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더 잘하고 못하고는 그야말로는 번호 붙이자면 5번이나 6번쯤 순서에 있을까요? 그보다 더 신경써야하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에 비하면 저는 공부와 성적은 한참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라서요.
내가 보는 아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은 고개 끄덕여지면서도 또 한편 마음이 서늘해지네요.
저자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만 아무튼 자식 키우는 엄마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자식 얘기라고 흘려듣게 되지도 않고요.

푸른희망 2016-12-13 17:28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답이 없는 일이라 늘 어렵지요

머리로 아는것도 몸으로는 영 움직이지않은것도 많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