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남성 수트에 대한 페이퍼를 올렸었다. 의외로 이곳 서재에서도 호응 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내친김에 맞춤 수트에 대한 것도 올려 볼까 한다.
우선 개인적인 맞춤 수트의 경험을 토대로 경제적이고 질 좋은 나만의 수트를 장만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입는 것이 수트를 제대로 입는 것인지 부가해 보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처음으로 수트를 맞췄습니다. 잡지책을 보다가 너무도 멋진 수트 사진이었기에 핸펀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맞춤 양복점에 가서 그 사진과 최대한 비슷한 원단을 골라 될수 있는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잡지에서 본 수트는 네이비 핀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수트였습니다. 브랜드는 팔질레리였고, 잡지책에 나온 정가는 250만원 짜리 수트였습니다.
첫 맞춤 정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양복점의 사장님은 약간 사이비 기질이 있었는데, 그걸 간파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단갖고 장난칠 분은 아니었고, 시청 내에 있는 양복점이었기에 어느 정도 믿음은 있었지요. 당시 제일모직 vip원단으로 맞춤 수트를 한 가격은 46만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안 사실이, 나름 꽤 경제적으로 맞춤 수트를 장만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후인 2011년 12월.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원단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원단이 있길래 어디꺼냐고 물으니, 팔질래리 신상이라고 합니다. 양모 90에 캐시미어 10의 혼용율을 보인 원단은 겨울 원단 중 색감과 디자인 면에서 발군이었습니다. 당시 그 많은 원단 중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가격도 두루마기 하나(3마 반)25만원 선이었습니다. 원단집 사장님이 좀 싸게 준 거 같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2만원을 깍아 23만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게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왼쪽 위에 보이는 택이 원단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원단이 어디에서 왔으며 혼용율과 넓이 등 원단의 상세 스펙을 담고 있는 택
이 원단으로 몇 곳의 맞춤 하는 곳을 알아보다가 그냥 예전에 맞춘 양복점에 가서 맞춤을 했습니다. 마지막 한 곳과 저울질을 하다가 예전 하던 곳에 갔다 줬는데, 이게 제일 후회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곳은 완전 비스포크식으로 맞춤해 주는 곳이었거든요. 공단비는 똑같았습니다. 이전 사장님에게 제가 속은 것이죠.
그곳은 반맞춤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반맞춤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기계식으로 맞춤을 해 주는 곳이었지요. 당시는 몰랐습니다. 라펠을 젖혀 보면 비스포크는 수많은 바느질 자국이 나 있습니다. 기계식은 아주 매끈하지요. 여튼 저 좋은 원단이 기계식으로 맞춤이 되어 속이 많이 쓰리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뭐, 어쨌거나 제게 맞는 수트는 만들어 졌습니다. 평면적인 원단이 입체의 수트가 된 느낌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원하던 대로 베스트가 나오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당시에는 원단이 입체화된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때라 완성된 수트가 모든 단점을 커버했습니다. 위의 원단으로 재단된 수트입니다.
당시 몇번 입고 나갔다 온 후의 사진이라 암홀 있는데가 쪼금 구겨져 있습니다.
원단으로 볼 때와 수트로 입체화 되었을 때의 미적 차이는 완전 천양지차였습니다. 입체화된 원단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도톰하고 따뜻하니, 영하 5도까지는 수트만 입어도 하나도 안추웠습니다. 캐시미어의 위력이 느껴졌다 할까요..ㅎ
맞춤을 한 1년 후, 백화점 팔질레리 매장을 가서 보니, 저 원단으로 기성복이 나와 있더군요. 쓰리피쓰가 아닌 투피쓰였고 디자인도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소매버튼도 리얼버튼으로 했습니다.ㅎ 거기 수트 매장 직원이 제가 입은 수트를 보고 어디서 샀냐고 묻더이다. 매장의 택 가격은 350만원이었습니다.
저는 원단비 23만원에 공단비 35만원을 줬으니 총 58만원에 질 좋은 팔질레리 수트를 장만한 셈이 된 것이죠. 당시 팔질레리 최고가 라인의 수트였으니 백화점에서 사는 것보다 맞춤을 하는 게 어느 정도 경제적 이점이 있는지 알고도 남을 겁니다.
사실 백화점 가격의 1/5가가 정상가임을 감안하면 백화점 수트 가격은 비싸도 너무 비싼거 같습니다. 어쨌든 제일모직 최고급 원단이라는 슐레인 급으로 맞춤을 해도(팔질레리 원단은 슐레인 급 아래) 100만원 안 쪽에 맞춤을 할 수 있으니, 타임 옴므나 시스템 옴므에서 비싼 돈 주고 수트를 사는 것은 낭비 중 낭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몸에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구요.
제 개인적인 맟춤 수트 경험을 언급한 이유는 수트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안을 알려드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수트를 입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꼭 맞게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1600만원 짜리 키톤 수트를 입고 있어도, 그 옷이 자기에게 꼭 맞지 않는다면 폴리에스테르로 자기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수트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자 수트를 입을 시 종종 간과하는 사실입니다. 브리오니, 휴고 보스, 아르메도 질도 제냐...다 필요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원단으로 자기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명품 수트 스타일이 될 수도 있고, 후질근한 수트 스타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몸에 꼭 맞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네, 이게 좀 까다롭습니다. 바지는 밑단 통이 20센티를 넘으면 안되고, 바지 끝단이 구두 위에서 접히면 안됩니다. 구두 위로 칼날같이 딱 떨어져야 합니다. 그도 아니면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은게 접히는 것 보단 낫습니다.
상의를 입었을 시 셔츠 목 부위가 1(2센티도 무방)센티 정도 나와야 하고, 팔 부분도 셔츠 소매가 2센티 정도(1.5센티도 무방) 나와야 합니다. 수트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오면 절대 안됩니다. 그러니 좀 짧다 싶을 정도로 수선을 해야 셔츠 소매가 보일 겁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자켓들은 소매가 기형적으로 길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드시 셔츠 소매가 보여야 제대로 입는 게 됩니다.(맞춤 수트를 할 시 반드시 소매에 리얼버튼을 추가하시길)
어깨는 딱 맞아야 합니다. 수트의 생명이 어깨선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허리에 착 하고 감겨도 어깨가 1센티라도 크면 그 수트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어깨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이 때에는 그 수트가 정말 원단이 좋고 아울렛에서 정가 대비 80%정도 싸게 산 경우입니다.
어깨 수선은 맞춤 양복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맡기면 그래도 수트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선할 수 있습니다. 해 봐서 아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10만원 이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수선을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계속 상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입었을 시 등에 가로 줄이 간다면 자신에게 작은 사이즈라는 신호입니다. 입었는데 등에 새로 줄이 간다면 자기 몸보다 한 칫수 큰 것입니다. 모두 사서 입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백화점 기성복 직원들은 큰데도 불구하고 잘 맞는 거라는 구라를 칩니다. 그러니 사는 고객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입는 옷이 잘 맞는 옷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실은 자기 칫수보다 한 칫수 큰 약간 벙벙한 수트인데도요.
상의 수트의 단추를 잠궜을 시 등에 주름이 없고 앞 단추 옆으로 약간의 가로 줄이 가는 것이 몸에 가장 잘 맞는다는 표시입니다. 간혹 수트 디자인에 따라 싱글 브레스트의 경우 역V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상의가 작아서 그런게 아니라 디자인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역V자가 생기는 디자인이 그렇지 않은 디자인보다 세련되고 활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역V자가 생기지 않는 수트는 좀 고루한 느낌이 강합니다. (고로 요즘 대세는 역V자가 선명한 디자인 입니다.)
그리고 상의는 반드시 엉덩이를 덮어야 합니다. 물론 키가 작은 분들은 수트 상의의 길이를 좀 짧게 하여 키가 커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도 엉덩이의 반 이상은 덮어야 합니다. 그래야 클래식 수트입니다. 엉덩이가 드러나는 수트는 일명 삐끼들이 입는 '삐끼 양복'입니다. 품위를 내기 위해 입는 수트가 경박함의 극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광택이 나는 수트도 피해야 합니다. 캐시미어나 실크가 섞여서 윤이 흐르는 광택이 아니라 은갈치식 광택이 나는 수트가 있습니다. 이런 수트도 피해야 합니다.
제대로 입는 클래식 수트는 네이비, 그레이, 브라운 계열 중 하나의 색상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트를 여러 상황에 맞게 믹스 매치할 수 있습니다. 비싸게 구입한 수트를 회사 출근할 때에만 입는다는 건 너무나 아까운 처사입니다.
얼마든지 캐주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클래식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와 허리띠 그리고 가방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청색 계열이나 회색 계열의 수트를 맞췄다면 브라운 계열이나 블랙 계열의 옥스포드 레이스업 슈즈를 선택하도록 하십시오. 이게 비즈니스의 정석입니다. 쉽게 말해서 끈달린 구두를 말합니다.
끈 없는 구두는 로퍼라고 해서 캐주얼적인 면이 부각되는 구두입니다. 단, 몽크 스트랩이라는 버클이 달린 구두가 있습니다. 끈이 없지만 유일하게 클래식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입니다.
가방은 토트백이 정석입니다. 요즘 보면 수트에 어울리는 백팩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클래식 수트의 정석은 토트백입니다. 일명 브리프케이스라는 드는 가방말입니다. 수트 어깨에 가방을 매면 수트 어깨가 손상되고 변형됩니다. 절대 어깨에 걸치거나 매지 마십시오. 수트를 입었을 시 남자의 가방은 언제나 손에 들여 있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 말이 아니라 수트 입는 정석을 알려주는 책들에 그대로 나와 있는 공통분모들입니다. 월간 GQ난 아레나에서 이전에 부록으로 주는 책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내용들이니 허튼 소리는 없을 겁니다. 단지 사진을 곁들이지 못한 점이 좀 아쉬울 뿐입니다.
어쨌든 자신의 몸에 맡는 수트를 입으세요. 그게 정석이고 서양 수트를 제대로 입는 방식입니다. 백화점에서 수백만원을 주고 명품 수트를 사는 우를 범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명품 기성 수트 보다 훨씬 좋은 원단으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명품 값의 1/3도 안되는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말입니다.
만일 자신이 50-60 만원 선에서 기성복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맞춤 수트를 시도해 보세요. 수트에 대한 이해와 수트를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을 겁니다. 예,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적어도 맞춤옷을 입으면 옷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바뀔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