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논쟁을 하다가 '그건 취향의 문제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취향은 논란을 넘어서 있습니다. 개인의 선호도를 갖고 뭐라 하는 게 더 우스운 꼴이 되곤 하지요.
스타일에서도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옷의 영역은 다른 뭔가가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그건 진정으로 내가 좋아서 입는 게 아니라 유행이 그렇게 입으라고 부지불식 간에 세뇌 아닌 세뇌를 시키기 때문이지요.
보는 매체들이 모두 그런 걸 암암리에 개인에게 주입하여, 패션에 있어서 만큼은 '욕망하는 개인'만 있는 듯합니다. 뭐, 그렇다고 취향이 지배하지 않는 영역은 아닙니다.ㅎ
서설이 길었습니다. 할 얘기는 이게 아닌데....
옷 덕후로서 스타일 격전지인 한 사이트 스타일 게시판에 사진을 한 장 올렸습니다. 가입하고 눈팅만 했지 제 스타일 사진을 올리기는 처음이었거든요. 대체로 비슷비슷한 룩들이라 심심해 보였습니다. 이 게시판의 대세는 모나미 룩.
그래서 다른 이들과의 차별점을 내세우며, '최저가로 멋내기'란 컨셉을 잡고
"저는 좀 튀는 옷을 입습니다. 지향하는 바가 있기에...기반은 클래식 스타일...이를 재밌게 변형해서 내게 맞춰 입기..이게 제 컨셉입입니다~"
라는 부가 설명을 단 다음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게 아래 사진~
티 : 유니클로 대박세일할 때 5개 구입한 것 중 하나. 5천원
베스트 : 마(린넨) 원단 끊어다가 내가 디자인 한 거.
원단 값 3천원(짜투리 원단)
바지 : 동네문종합시장 원단 가게에서 제일 시원한 달라니 준 거.
좀 튀지만 바로 구입.
이건 동네 양복점에서 맞춤한 것. 원단값 7천원+재단비 25000원.
슈즈 : 엔씨백화점에서 지금 대박 세일 중.
25000원짜리를 5천원에 팔고 있어, 바로 구입.
모자 : 위와 상동. 50%세일해서 1만원에 구입.
총 7만 2천원!
7만2천원으로 이 정도로 입고 다니면 괜찮지 않나욤??
그나저나 바지 대박입니다. 반바지 보다 더 시원합니다!!! 비치지도 않아요~ㅎ
사실, 이곳 서재에 올렸던 [데일리룩] 사진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 동기부여가 돼면, 사람은 모험을 하게 돼지요.ㅎ 제가 그랬습니다.
사진을 올리고 몇 시간이 지나 순식간에 수많은 덧글들이 달리더군요. 하루가 지나니 50개 이상의 덧글이 달렸습니다.
평가는 크게 3가지로 갈리더군요.
첫째, 너 뭐하는 넘이냐? 개같은 취향이다.
둘째, 흠....절대 내가 입을 수 없는 스타일이자 거부감이 드는 스타일인데, 취향이니 존중한다. [여기서 파생된 한 의견; 난 도저히 용기가 안나는 데 정말 대단하다. 그런 자신감이 부럽다.)
셋째, 우와 당신은 진정한 패셔니스타다. 개부럽다~ 그 자신감이..
이 세 의견이 균형을 이루고 있더군요. 여기 스타일 사진들은 아주 무난한 스타일을 추구하나 봅니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아직 어떻게 입어야할 지 모르는 분들이 많고, 결정적으로는 옷입기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우리나라 사람들의 직장 문화가 모나지 않고 튀지 않는 거니, 이 게시판의 취향은 곧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옷입기 스타일의 표준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스타일 고수 분들이 있어 세세하게 평가해 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많은 의견을 접하니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스타일 사진을 기대한다는 분들이 있어 당분간 사진을 올리고 추이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사진을 올리고 한 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남의 취향은 존중해 주는 거라는 것을요.ㅎㅎ 자기 취향하고 안 맞는다고 욕하고 인신공격하지 않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게시판에 사진을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사토리얼 사진집을 다시 꺼내 봐야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