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블로그에 자기 스타일 사진을 올리는 것은 일종의 자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행위를 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부차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은 옷으로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옷 입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이 개성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르듯이 그들이 입는 옷의 스타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자신이 스타일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 한 해서는 말이다. 유행하고 전혀 관계없이 옷을 입지만, 입는 사람 그 자체를 나타내기에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그게 바로 스타일 있다는 증거. 명품 브랜드가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가치다.
사실 예전 학부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내 동기 동창에 대한 일화다. 그는 365일 같은 옷만 입고 다녔다. 소위 남방이라고 말하는 타탄 체크 무늬 셔츠와 베이지 면 바지를 입고 4계절 내내 다녔다. 추우면 그 위에 카디건이나 코트를 걸쳤다. 당시 다른 한 친구가 그랬다. 너는 옷이 없냐고? 그랬더니 그 동창 녀석이 그랬다. 같은 옷으로 4벌 정도 있다고.
왜 그렇게 입냐고 내가 물으니, 상대방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입는다고. 자신은 말도 어눌하고 옷도 잘 입지 못해(정말 옷을 딱 맞게 입지 않고 좀 헐렁하게 입고 다녔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금새 잊혀지는 게 싫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자신은 뭘 먹을 때 잘 흘리고 먹어서(옷에 음식물 자국이 항상 나 있다.) 비싼 옷이 부담스럽다고.
요즘 한 SNS에 스타일에 관한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그리고 데일리 룩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그 친구를 간혹 떠올린다. 백화점 브랜드로 말쑥하게 입는 사람들보다 그 때 그 친구가 입던 옷차림이 바로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가까웠다. 비록 아주 잘 입지는 못했지만, 그는 옷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입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놀렸지만(당시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누구보다 스타일이 뭔지 알았던 거 같다.)체크 셔츠와 면바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다. 멀리서도 그 인지 정확히 알아봤으니.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룩이 그와 겹쳤다. 잡스가 늘 입던 검은 터틀넥에 진바지. 그리고 뉴발 스니커즈. 잡스는 항상 이렇게 입었다. 심지어 세계에 애플 신제품을 프리젠테이션 할 때에도 똑같이 입었다.
그런 그를 보고 한 잡지에서 한 디자이너가 옷을 매우 못 입는 유명인사로 잡스를 거론하는 걸 봤다. 아주 캐주얼하게 딱 맞게 입지 않았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죽을 때까지 똑같은 옷을 입었다. 이렇게 입기 위해 같은 옷이 수없이 많았다고.
잡스는 거부였지만 간단한 옷을 똑같이 반복해서 입었기에, 비싸지 않고 흔한 검정 터틀넥 니트와 진바지 그리고 뉴발을 세계적인 스타일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개개의 아이템은 명품 브랜드가 아닌 중저가 브랜드였지만 잡스로 인해 불멸의 스타일 아이템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 매일 같은 옷을 전략적으로 입는 것이 브랜드로 치장하는 것보다 훨씬 스타일 있는 옷차림이다. 비록 일반적인 멋쟁이 룩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 옷 속에는 입는 사람의 생각이 표현되어 있기에 고유한 가치가 생긴다. 생각을 옷으로 표현하는 행위, 난 이것이 패션에서 ‘스타일’이라 생각한다.
이는 ‘멋내는 행위’가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옷 입기의 가치다. 그래서 스타일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쉽지 않다. 이건 전 세계 스타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스마트하게 자신의 옷을 소비하는 행위는 그래서 멋지다.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 이상하다. TV에서 스타가 입는 스타일이 금새 유행이 된다. 아무개 탤런트가 입은 트렌치코트가 이쁘면 금방 비슷한 코트가 거리에 넘쳐난다. 공항에서 가수 아무개가 신은 스니커즈가 전파를 타면 얼마 안가 신발 트렌드의 대세가 된다.
개인적으로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옷을 서로 입으면 안정감이 생기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빙글에 사진을 올리면 다음과 같은 댓글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한다. 봐줄 수 없으니 좀 듣고 고쳐 입어라.’
얼마 전 내가 열심히 글을 올리던 SNS 스타일 사진에 아래 내용을 담은 멋진 댓글이 달렸다.
수트 : 이지오. 7만원(울100%) - 작년에 가산 현대몰에서 대박행사할 때 건진 것. 대박 따뜻함~
베스트 : 동대문에서 원단 끊어다 내가 디자인해서 맞춤한 것. 3만원
블루 셔츠 : 더셔츠 스튜디오. 1만원 - 7일날 가산 아울렛에서 동생이 사준 것.
흰색 더플 코트 : 일본 도메스틱 브랜드. 2만원(울100%) - 작년 겨울 빈프라임 역삼에서 건진 거.
슈즈 : 스웨이드 윙팁 더비. 2만원 - 작년 여름 슈펜 가죽 슈즈 70% 세일 행사 때 건진 거.
머플러 : 3천원(울30%, 아크릴70%) - 아름다운 가게 미아점에서 머플러 행사 때 건진 거.
총 15만 3천원
“자기만족 그리고 남들 의식 안하고 자기만의 패션 그 생각은 멋지죠. 하지만 대다수가 별로면 좀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겟네요. 많은 지식이 있으나 이론과 실전은 많이틀리다는 걸 보여준 정확한 예로 뿐이 안보이네요.. 발품 팔아 사는 것은 좋으나 조합이 안되면..패션아는 사람은 멋진데 무지하니 나의패션이 안 멋지다.. 저 현재 모대기업 패셔브랜드회사다니는데요... 저 의견 포함 디자이너 등등 대부분직원 의견은 백 프로 별로네요 남의의견을 좀 받고 고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왠만하면 그냥 좀 그렇네요 할려다 댓글들을 보니 많이 받아들이시는 것이 나을듯해요.. 입으신 룩 자체가 별로라 님의 글이 신빙성이 떨어지네요.”
요지는 간단하다. 자기만족도 좋지만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하니 대세에 따라 고치는 게 낫다라는 거.
이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특히나 댓글을 다신 분은 나름 이 사이트의 남성 패션 코너에서 꽤 유명하셨던 분인 듯하다. 포스팅한 글과 사진을 보니 그렇다는 인상.
그런데, 이 분이 자신의 글에 전문가적 권위로 언급한 것이 ‘현재 모대기업 패션 브랜드 회사를 다닌다’는 거다. 정말 헛웃음이 절로 났다. 왜냐하면 나는 백화점 대기업 브랜드 직원에게 뭘 물어서 답을 얻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 내 입점해 있는 신사복 계열의 대기업 브랜드를 두루 돌아다녀 보면서 느낀점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 브랜드 직원들은 옷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손님의 취향과 사이즈를 정확히 간파해서 그에 부합하는 옷을 제시해 주는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신사복 매장에 근무하는 갤럭시, 마에스트로, 캠브리지멤버스, 로가디스 등의 점장과 직원들도 남성복의 기본을 알 지 못했다.
저번 주 아버지 수트를 고르기 위해 백화점 4군대를 돌았다. 물론 대기업 계열의 신사복 브랜드들이다. 최고가 라인을 보여 달라고 하니 보여준다. 로로피아나나 제냐 원단을 쓴 수트가 100 ~ 150만원 사이였다.
갤럭시를 가서 보니 제냐 트로페오 원단으로 나온 상품이 99만원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이게 진짜 이태리 원단인 제냐 원단 맞냐니까 그렇단다. 원단 등급은 뭐냐니까 모른단다. 라벨에 ‘트로페오’라고 달려 있는데도! 원단이 어디서 생산됐는지 알 수 있느냐니까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고.
제냐 트로페오 원단 시장 가격은 1야드 당 20만원 정도 한다. 재킷과 바지가 나오려면 최소한 2야드 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원단 값만 50만원이다. 근데 이 원단으로 나온 수트가 99만원이다? 뭔가가 이상한 거다. 제냐 매장에서는 400-500백 만원은 간다. 그래서 물었던 건데, 되돌아 온 답변은 모른다는 일변.
로로피아나 130만원 짜리 수트의 경우, 로로피아나 어떤 등급의 원단을 썼는지 물어보면 10이면 10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제일모직 원단 등급도 몰랐다. 백화점 내 대기업 수트 브랜드를 파는 직원들이 죄다 똑같았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수트를 팔고 있다. 차림새는 멋지게 입고 있었지만 하나도 스타일 있어 보이지 않았다.
라펠, 고지라인, 스티치, 리얼 버튼 등 전문 용어 운운 하면 전문가인가? 제일모직 템테이션 급의 정장을 찾는데 비슷한 가격대 좀 보여 달라고 하면,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남성복에서 이게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근데, 백화점 내 대기업 브랜드 직원들은 아무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나를 딱 보고 취향에 맞는 정장을 내밀 수 있는 직원 역시 없었다. 이는 뭘 반증하는 것이겠는가. 백화점 내 대기업 브랜드 직원들은 자신들이 취급하고 있는 옷의 기본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거다.
아니, 남성복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겠지. 판매량이 중요한 거니까. 고객과 별로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잘 맞는다고 구라치는 직원들이 백화점 대기업 브랜드 직원들이다. (‘중요하고도 세세한 물음들’은 생략하자. 다~ 몰랐다. 그냥 헛소리만 했다.) 그래서 난 결론지을 수 있었다. 백화점 내 대기업 브랜드 직원들은 옷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그 백화점 내 대기업 직원이라는 사람이 내게 댓글을 단 거다. 내가 위처럼 생각하는 백화점 직원을 그는 권위의 근거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내가 SNS에서 스타일 사진과 글을 발행하는 목적은 푼돈으로 클래식한 옷차림을 흉내내 보자는 거다. 클래식한 남성복은 매우 비싸다. 진품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클래식 남성복(깅스맨에서 보여준 콜린 퍼스의 룩)을 구현하려면 최소한 최소한 1000만원 대에 근접하는 돈을 써야한다.
이건 일반 샐러리맨들이 도저히 구입해서 입을 수가 없는 옷들이다. 그래서 백화점 매장에서 파는 클래식한 옷을 타겟으로 삼아 푼돈으로 그걸 흉내 내서 입을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패션에서 ‘오캄의 면도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SNS를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클래식을 지향하고 적은 돈으로 클래식하게 입는 것이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켓을 매우 좋아하고 자켓 위주로 항상 옷을 입기에, 돈이 정말 많이 든다. 옷 입기에서 자켓이 중심이 되면 그에 따르는 부수 아이템들을 그에 맞게 구매해야 하기에..
옷에 대해 몰랐을 때는 은행 잔고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패턴과 소재에 대해 공부를 하고 보니 저렴하지만 품질은 매우 좋은 옷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나는 이런 옷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 것이다. 월급이 제한되어 있고, 가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별로 없는 비즈니스맨들을 위해서.
특히 빈티지 매장에서 구매한 3만원 짜리 재킷이 백화점 매장에서 30만원에 팔리는 재킷보다 소재와 클래식한 디자인이 좋은 것을 안 이후, 난 이런 옷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면에서도 옷의 리사이클은 정말 중요하니까.
내가 이렇게 주구장창 많은 말을 씨부린 까닭은 내 스타일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난 저렴하지만 품질 좋은 옷을 소비한다. 내가 입고 걸치고 드는 것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10만원 선에 그친다. 하지만 소재는 모두 천연에서 얻은 것들이고 제대로 가공한 괜찮은 제품들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품질 좋은 클래식 옷을 입자!’ 이게 내가 지향하는 스타일이자 내 취향이다.
물론 이걸 사진에 담았을 때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내가 톰 브라운 옷을 좋아하고 칼 라거펠트 옷을 싫어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라거펠트 디자인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 취향이 아닌 것이다. 룩이 별로면 그냥 보고 넘어가면 된다. 대세에 따라 고쳐 입으라는 건 정말 옷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 사람들의 망발이다.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식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내 스타일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 룩을 올리는 거다. 비싼 브랜드가 아닌,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룩을 보고 조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나름대로 조합해서 입으면 그만인 거다.
내 룩을 보고, ‘이상해요’, ‘별로에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입고 있는, 즉 (수십 만원에서 100만원을 넘어가는) 브랜드로 치장한 룩은 어떤가. 브랜드의 이념과 가치를 드러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본의 충실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브랜드를 걷어 내고 남는 것, 그게 옷 입기의 본질이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브랜드)을 넘어서, 스마트한 소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내 스타일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브랜드로 치장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적어도 나는 옷에 내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은 하니까!
참고로 지금까지 읽었던 남성 패션에 대한 안내서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책들을 꼽아 봤다. 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는 오치아이 마사카츠의 책이다. 옷에 대해서 이 사람처럼 사유를 깊게 파고들어간 사람을 난 만나본 적이 없다. 읽어 보면 직감적으로 '최고다'라는 생각이 덮친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남성복 전문가라는 남훈도 이 사람 책을 베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