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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고통을, 눈물을, 분노를, 

어떤 사건으로 인해 유예된 시간을 가슴 한켠에 품고 일상을 유지해본 적이 있는가?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고, 완치되지 않는 트라우마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욱 내면의 다른 곳들을 단단하게 닦아 낸 나를, 그렇게 받아들이며 의연히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여기, 고통스런 경험을 딛고 회복의 동력을 타인들에게까지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이 있다. 

한국의 마녀 D와 미국의 샤넬 밀러다. 




 













샤넬 밀러는 2015년 1월, 동생과 함께 집 근처 스탠포드에서 열린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참석한다. 술을 마시다가 기억이 끊긴 후 깨어난 곳은 병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화장실에 갔다가 팬티가 없다는 걸 깨닫고, 머리카락과 옷에 수많은 낙엽들이 붙어있다는 걸 깨달을 뿐. 그녀는 자신이 파티가 열린 곳 바깥, 쓰레기통 뒤에서 반라의 상태로 발견되었음을 알게 된다. 만취한 그녀의 몸을 붙들고 그녀의 몸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다가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붙잡힌 가해자의 이름은 브록 터너, 유망한 수영선수다. 

1심 재판의 최후변론에서, 샤넬 밀러는 '에밀리 도'라는 가명으로 법정에 서서 피해자 진술서를 낭독한다. 이 피해자 진술서는 이후 온라인에 공개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비록 1심 판사는 브록 터너에게 불과 6개월의 형을 선고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샤넬 밀러는 성폭력 피해자, '생존자'들의 연대에 눈을 뜬다. 작가로 변신한 샤넬 밀러가 쓴 <디어 마이 네임>은 사건 이후 그녀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년 내내 외로움이 나를 따라다녔다. 직장 계단참에서, 필라델피아에서, 나무로 된 증인석에서, 거의 비다시피 한 내 청중석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하지만 자기 침실에서, 차에서, 층계참에서, 아파트에서, 줄곧 나를 지켜보고 나를 응원하는 눈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 우리의 고통,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익명성 안에 은폐되어 있었을 뿐이다. 내 주위에는 생존자들이 있었다. 나는 어떤 우리의 일부였다. 그들은 나를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말 없는 육체로 보게 만드는 농간에 걸려들지 않았다. 나는 전선에서 싸우는 지도자였고, 내 뒤에는 보병대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정의를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승리는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에 있는 마을의 방 안에서 조용히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다.    - <디어 마이 네임> 332쪽 


'마녀 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그녀 역시 성폭력 생존자다. 그녀는 사법시스템의 부당함을 느끼고 이후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활동을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D의 연대활동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얼마나 세심하게 여러 측면을 고려하며 활동하고 있는지에 놀랐고, 생계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다는 점에 또 놀랐다. 힘들었을 텐데. 다른 이를 돕는 일이 나 자신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겠지만, 내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일이 될 때도 많았을 텐데. 그냥 다 잊어버리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며 자신을 속이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 대단하다고밖에 못 하겠다. 개인의 영달, 유명세, 그런 것에도 등돌린 채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체 가능한 연대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품는 사람.  



연대 초기에는 '잊히기 위해' 연대한다고 했다. 물론 이는 내가 연대한 피해자들이 나와의 연대마저 잊고 일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연대 활동의 중단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대자로서 내가 수행해야 할 공적 활동과 책임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피해자가 편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그리고 시스템 감시와 변화를 위해 연대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내가 없어도 이런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연대자로서의 나는 잊혀도, 내가 한 활동이 피해자를 위해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 가능한 연대자가 되기를 원한다.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384쪽 


이 두 권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으니 어쩐지 한 가지 주제를 다룬 문학(디어마이네임)과 비문학 실용서(그림자를 이으면), 또는 피해자를 위한 지침서: 심리편(디어마이네임)과 절차편(그림자를 이으면)을 본 느낌이다. <그림자를 이으면~> 뒤에 실린 깊이 읽기 위한 자료 중에는 <디어 마이 네임>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다만, <디어 마이 네임>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썼고, 종류가 직접적인 성폭력인 반면, <그림자를 이으면~>은 연대 경험 위주로 썼고, 종류가 직접적 성폭력보다는 디지털 성폭력(불법 촬영, n번방 사건 등) 중심이라는 점, 전자는 '문학'이라고 표현할 만큼 풍부한 비유와 묘사들로 가득한 반면 후자는 '실용서'라고 표현할 만큼 매우 꼼꼼하게 사법 절차를 분석하고 비판해 놓은 점 등에서 결이 다르다. 

  

자, <디어 마이 네임>의 자세한 내용은 따로 리뷰로 쓸 예정이고, 여기에서는 두 책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들만 써보겠다. 그 전에, 함께 분노할 만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이 일이 결코 남일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Q씨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11월이었다. 그때는 이미 법적 싸움이 마무리된 후였다. 전 남자친구인 가해자의 불법촬영과 영상 유포로 고통받던 그는 가해자를 고소했고, 가해자는 촬영에 한해서만 기소된 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유포는 증거가 없어 기소조차 안 되었다고 한다. (...)

재판에 들어가서도 가해자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부각하며 '성실한 학교생활'을 했다고 강조했으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탄원 등 선처를 위한 다양한 양형자료를 제출했다. 20대 후반 남성의 '미래'를 감안한 재판부는 벌금형을 선고했고, 검사는 항소를 포기했다. 피해자의 엄벌 요구는, 피해자의 미래는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Q씨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성실한 장녀로 집안의 기둥이었다. 가족은 그에게 부양할 대상이었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2017년 1월, 그는 또다시 자신의 영상이 올라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직원에 의해서. 남성 직원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대는 일이 잦아지던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피해자에게 사적 만남을 요구했고, 피해자가 거부하자 '걸레'라고 모욕했다. 그러면서 영상을 봤다고 피해자에게 말한 것이다. 삭제 작업을 외부에 맡기고 이제 좀 숨을 쉬려 했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던 이와 보냈던 그 시간이 영원히 박제된 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며 자신을 옭아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는 절망했다.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313-315쪽 


1. 피해자에게만 적용되는 엄격한 기준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엄격하게 요구되는 무결성, '피해자다움'이라는 이미지. 피해자는 사건 이후 재판까지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자신의 무결성을 입증하기 위한 태도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무결한 피해자란 누구인가? 어린아이 외에 누가 완벽하게 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무죄 추정의 원칙' 아래, 한번의 거짓말(또는 착각에 의한 잘못된 증언)도 피해자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피해자는 일상이 무너지는 바람에 생계에도 타격을 입지만, 섣불리 피해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합의하는 순간, 돈을 노린 '꽃뱀'이 되기 일쑤. 


이번에 나는 피해자에게는 어떤 태도가 허용되는지 궁금했다. 어떤 톤이요? 아라레는 화를 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화를 내면 방어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배웠다. 단조로운 어조는 무심해 보인다. 너무 명랑하면 미심쩍어 보인다. 울면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감정에 치우치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지만 감정이 너무 없으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그 모든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한단 말인가? 침착해. 내가 나에게 말했다. 차분하게. 하지만 심리를 하는 동안 나는 자제력을 잃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어쩌지? 배심원들은 내가 힘든 일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고 검사가 상기시켜주었다. 그냥 당신 자신이 되세요. 그녀가 말했다. 어떤 자신이요? 나는 되묻고 싶었다.  - <디어 마이 네임> 235쪽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면 종종 자동으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가해자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낙인이 찍히지 않는다. 우리는 어째서 피해자가 잘못된 기소를 할지에 대해서는 경계하면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기 행동에 대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지, 자신의 행동을 축소하는지, 다른 사람들을 조종해서 자기 행동을 덮는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걸까?   - <디어 마이 네임> 301쪽 

가해자들이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합의'를 이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수사 과정에서는 소의 취하를 유도하기 위해 합의를 요구하지만, 실상 합의에 실패해도 불리할 것이 없다.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금전적 요구를 했거나 금전적 보상 제안에 응했다면, 그 사실을 내세워 피해자가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것으로 몰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합의해야 공소사실(범행 내용)을 인정하겠다고 버티거나, 합의를 해야 법정 싸움이 길어지는 걸 막고 피해의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도,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은 불리하지 않다. '진지한 노력'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은 합의에 성공해도, 합의에 실패해도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한다.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106, 107쪽


2. 가해자의 미래를 생각하라는 요구


  성폭력 사건만 발생하면 등장하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론! 바로 그것이, 브록 터너 사건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그는 앞날이 창창한 수영 유망주다. 장래에 올림픽에 출전할 수도 있다! 그는 10년 동안 외과의사의 꿈을 품어왔는데, 수영선수로서 성취가 끝나면 외과의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네가 망쳐놨다! 앞서 Q씨의 사례에서도 재판부는 가해자의 미래를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면, 피해자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라고 표현되지 않는다. 정작 불의의 타격으로 앞날 뿐 아니라 현재의 생활이 무너진 사람은 누구인가? 



피해자가 도움을 얻고 싶어서 나설 때 사람들은 보통 폭행범을 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별개다. 도움을 구하는 것이 그녀의 일차 동기이고, 가해자에게 악영향이 미치는 것은 부차적인 효과다. 하지만 네가 떠들어대면 그에게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훈계를 듣는다. 당신은 그가 얻지 못한 모든 직장에 대해, 그가 뛰지 못한 모든 경기에 대해 비난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의 가족, 친구, 공동체, 팀이 당신에게 지옥을 풀어놓을 텐데 당신은 그걸 원하는 게 확실한가?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그녀의 인생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너의 행동이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일지 치열하게 생각해보라고 강요한다. (...)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린 한 번도 그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네가 거짓말을 하는게 분명해. 이런 정서는 브록의 누나가 작성한 탄원서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증거와 그의 성격에 대해 내려진 결론은 그의 일생에서 단 하룻밤을, 그를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건 브록이라는 존재의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이 아니다. 우리는 빙산 전체다.  - <디어 마이 네임> 442, 443쪽 


나는 그들의 눈에는 피해자가 그 20분이라는 시간 안에 영원히 살면서 정체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했다. 브록은 점점 다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고, 그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삶과 추억의 스펙트럼이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녀는 냉동되어 있었다. 그는 한 인격이 되었다. 그녀가 구원받은 이야기는 어디 있나?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 고통을 다 드러내 보였지만 나에게는 핵심 요소가 없었다. 판사는 내게로는 전혀 확장되지 않을 무언가를 브록에게 선사했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었다. 내 고통은 그의 잠재력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았다.   - <디어 마이 네임>376, 377쪽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배제로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들 한다. 모두 구조의 문제란다. 그래서 가해자도 그 구조의 피해자란다. 가해자를 용서하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한다. 참 이상적인 말이다. 그래, 그러니 성폭력 가해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가해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며, 책임질 수 있게 만들고 있는가? 가해자에 대한 응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 회복과 일상 재구성을 위해서는 피해 사실을 잊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낫다고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합당한가?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261쪽 


3.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상실의 크기


  성폭력 피해를 축소하려 드는 이들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샤넬 밀러의 경우, 그녀는 집에서도 편안하게 잠드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문앞에 물건을 쌓아 막고, 호신용품을 준비하고, 긴장 속에서 아침을 맞이한 후에야 잠이 든다. 사람들은 너는 집 안에 침입한 자에게 폭행을 당한 게 아니잖아? 하고 의문을 표하지만, 샤넬 밀러는 자신은 잠 든 상태의 취약성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아무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당한 폭행, 뉴스에서 보고서야, 법정 기록을 통해서야 알게 된 자신의 드러난 몸의 형태와 증거사진들.. 그녀는 단지 남학생 사교클럽만 피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취약한 상태에서 저항할 수 없이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나아가 그런 경우 그녀의 전후 행동이 낱낱이 조사되고 심판대에 올려질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특히 유포된 영상의 피해자는? 그 두려움과 불안을 감히 재단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과 불안, 긴장은 인간관계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는 고립되기 쉽다. 



폭행이 일어난 그 밤은 내게서 어떤 속 편한 감정을 앗아갔다. 즉흥성과 무모함은 어떻게 다를까? 알몸 상태가 문란함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조심성과 피해망상의 경계는 어디일까? 나는 이 점이 애통하다. 어떻게 해야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디어 마이 네임>  402쪽 

아무리 만만찮거나 자신감에 넘치더라도 나는 언제나 올챙이일 것이다. 나는 피해자가 된다는 건 그런 거라고, 당신 안에 그 작고 까탈스럽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품고 사는 거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달이 선형이라고 말하지만, 생존자들에게 발달은 순환이다. 사람들은 위로 성장하고, 피해자는 돌면서 성장한다. 우리는 상처의 장소를 돌면서 강해지고, 나이가 들고 더 옹골차지지만, 취약한 핵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생존은 개구리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바들바들 떠는 올챙이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라고 믿는다.   -  <디어 마이 네임> 472쪽 

성폭력 피해로 생긴 부수적인 상실로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기 힘들어진 것 등이 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타인을 신뢰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책임을 분담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또한 감각과 감정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일 모두 엉망이 되었고, 문화와 예술 등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일상에 부재하거나 결핍되면서 삶이 상당히 단순해졌다. 모난 인간, 재미없는 일상, 사라지지 않는 상흔, 홀로 멈춘 것 같은 기분. 피해 이후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내 주변에는 누가 있었는지, 무엇에 흥미를 갖고 재미를 느꼈는지, 도통 모르는 것 일색이었다.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334쪽 


샤넬 밀러와 마녀 D의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한다. 피해자가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시스템이 바로서지 않으면, 정의는 구현될 수 없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는 망각을 선택했고, 피해자들에게는 기억을 강요했다. 가해자들이 미래를 계획할 때 피해자들은 과거에 머물렀다. 이제 법적 싸움이 끝난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선택권을 갖고 자신의 삶을 구상할 수 있게 조력해야 한다. 그들이 더이상 피해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도록 그들의 말, 시간, 자리를 함께 지키고 찾아야 한다. 사회가 기억하고 개인은 잊을 수 있도록, 그들의 피해 회복과 일상 재구성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   -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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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23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글과 내용 모두 참.. 할 말이 많지만 하~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꾸준히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이 성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여타의 다른 물리적 폭력들과 함께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연대하고 함께 싸울테다! 좋은 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자...> 책을 읽고 페이퍼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독서괭 2022-11-24 10:14   좋아요 0 | URL
네 건강해야 합니다, 쟝쟝님! 잘 먹고 운동하고 건강해야 싸움을 지속할 수 있지요!
그림자~ 사두셨군요. 촘촘하고 법률 얘기가 많이 나와서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디어 마이 네임> 쪽이 읽기 쉬우실 거예요.

다락방 2022-11-24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읽기 힘든 책을 읽으셨네요. 저는 준비해 두고서도 읽기가 겁나더라고요.

오늘 페이퍼 읽으니 ‘캐리 멀리건‘ 주연의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생각이 납니다.
영화속에서는 여주인공의 친구가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술을 마셨고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합니다. 우리의 여주인공은 그들에게 복수를 준비하고요. 그때 그 피해를 학교에 알렸었지만 모두가 다 가해자의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전도유망하다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렇다면 피해자의 미래는?‘ 을 묻는 영화라고 해요. ‘프라미싱 영 우먼‘ 은 성폭행 가해자를 풀어줄 때 했던 ‘프라미싱 영 맨‘에 대한 표현이고요.

왜 다들 성폭행 가해자의 미래가 스러질까 두려워할까요? 피해자의 미래는 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걸까요?

힘든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독서괭 님.

독서괭 2022-11-24 10:18   좋아요 1 | URL
오 프라미싱 영 우먼? 그런 영화가 있군요. 프라미싱이 뭔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Promising‘이네요 ㅎㅎ 어떤 복수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시선이 집중되어서 그런 건지.. 가해자가 휘저어놓은 피해자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폭행 가해자의 미래는 일단 합당한 처벌을 받은 후에 사회가 고민할 문제가 아닐런지요.
<디어 마이 네임>은 힘든 책이지만 또 필력이 좋아 읽기 쉬운 책이기도 합니다. 샤넬 밀러가 좋은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좋은 남친(!!)을 주변에 두고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하고요. 한번 시작해보세요^^

공쟝쟝 2022-11-24 10:26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까 진짜 이상하고, 이해가 안돼요 .. 가해자 걱정하고 두둔하는 거… 진짜 성폭행 사회네요… 징글징글

건수하 2022-11-24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가 기억하고 개인은 잊을 수 있도록... 정말 따뜻한 말이에요.
사회가 기억할 때에야 개인은 비로소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이 책을 자꾸 깜박하게 되는데,
알라딘 북토크에서 모자를 쓰고 나오셨던 마녀 D님이 생각납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던 북토크였어요.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제2의성, 가부장제의 창조, 페미니즘 철학 입문...
내년에 읽어야 할 책이 많네요. (올해는 일찍 포기..)

독서괭 2022-11-24 12:49   좋아요 1 | URL
수하님,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는 두번 읽으시려는 거죠? ㅋㅋㅋㅋ (놀림)
저는 가부장제의 창조는 읽었지롱~요!^^ 저도 페미니즘 철학 입문 담아놓긴 했는데, 내년에는 또 내년의 여성주의책읽기 도서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일단 페미니즘 서적은 그거랑 이미 사둔 책으로 충분할 것 같아요. 백래시도 있고 페미니즘의 도전도 아직 못 읽고 가지고만 있어요.
북토크는 못 봤는데 익명으로 활동하시는데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했어요. 모자를 쓰셨군요.
수하님 올해 아직 안 끝났어요, 화이팅~^^

건수하 2022-11-24 13:08   좋아요 1 | URL
앗 왜 두 번 있는 거죠 ㅋㅋㅋㅋ 읽겠다는 강한 의지를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수정했어요 ㅋㅋ)

참 D님은 모자가 아니고 가면? 을 쓰고 나오셨어요.

저는 이미 사둔 책이 너무 많아요. 이러다가 안 읽고 관심사가 바뀌는 일을 몇 번 경험했기에 자제중입니다. 페미니즘은 안 그럴 거라 생각은 하지만.. 언제 사놓고 안 읽은 책 점검 들어가야겠어요 :)

독서괭 2022-11-29 11:08   좋아요 1 | URL
가면을 쓰고 나오셨군요. D님이 더이상 분투하지 않아도 되도록 시스템이 많이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안 읽고 관심사가 바뀌는 일 저도 많이 ㅋㅋㅋ 쌓여있는 벽돌들 어떡하죠? ㅠㅠ 내년엔 안 읽은책들 좀 열심히 읽고 치워보려합니다.

그레이스 2022-11-28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의미가 좋아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가능한 연대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말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들이네요.

독서괭 2022-11-29 11:09   좋아요 1 | URL
이런 마음을 품고 활동하신다는 게 놀랍고 신선하더라고요^^
개인이 이렇게 분투해야만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고요..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2-11-30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서괭님 이 페이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정리하시려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요. 작가의 노고도 엿보이고요.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정희진


정희진쌤 말씀이 딱 맞네요. 독서괭님의 연대에 저도 함께합니다.

독서괭 2022-12-02 12:45   좋아요 1 | URL
읽는 것으로 연대한다니, 참 책읽기에 힘이 되는 말씀이네요^^
우리는 읽는 데다가 공유하기까지 하니! 한단계 업! ㅋㅋ
함께해서 좋습니다 단발님♥
 
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뭣 때문인지, 소설로서의 매력을 못 느끼겠는 건 왜일까? ㅠㅠ 나는 입체적인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따라가는 걸 좋아하는데, 철이도 선이도 철이아빠도 생생하게 다가오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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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23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만, 작가의 말을 읽으니 역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냥 2022-11-23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이아빠가 잘못했네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1-24 10:19   좋아요 0 | URL
철이아빠 왜 그랬어 ㅋㅋ

공쟝쟝 2022-11-23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김영하는 소설보다 에세이... ㅋㅋㅋㅋ

독서괭 2022-11-24 10:19   좋아요 0 | URL
역시 그런가요? 역시 에세이를 읽어봐야겠어요^^
 




「백설 공주」에서 여왕이 자기가 미워하는 의붓딸과 싸우는 데 무기로 사용한 빗, 코르셋 끈, 사과와 마찬가지로, 거식증이나 광장공포증 같은 고통은 가부장제가 정의한 ‘여성성‘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극단으로 몰고 간 결과이자, 사회적 처방에 대한 본질적이고 어쨌든 피할길 없는 패러디다.
그러나 19세기에 여성들을 아프게 한 것은 이런 질병이 패러디하고 있는 복잡한 사회적 처방전만이 아니었다. 19세기 문화 자체가 여성들을 병들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고통받았던 ‘여성의 질병‘은 꼭 여성성 훈련이 낳은 부산물만은 아니었다. 그 질병이 바로 훈련 목표였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디어러 잉글리시가 보여주었듯, 19세기 내내 ‘상류층과 중상층 여성들은 ‘병든‘(허약한, 건강이 나쁜) 존재로 여겨졌으며, 노동자 계급 여성들은 ‘병들게 하는‘(감염시키는, 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은 ‘숙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 ‘숙녀란 약하고 병약한 존재라는 사회적 동의가 있음‘을, 그 결과 ‘여성의 병약함에 대한 숭배‘가 영국과 미국에서 발달했음을 지적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무자비한 자기 억제를 의미한다면 필연적으로 질병을 수반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감염된 문장은 새끼를 친다‘는 디킨슨의 주장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세기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절망은 마카리에의 인생 같은 삶, 즉 ‘이야기를 갖지 못하는‘ 삶이라는 절망, 바로 그것이다. - P153~155



제2장 감염된 문장

: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감염된 문장은 새끼를 친다. 우리는 절망을 들이마시겠지." -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 시가 오싹하게 느껴진다. 이는 페미니즘 비평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유구한 억압의 역사 속에서 쓰이고 살아남은 문장들은 감염되었고, 우리는 읽음으로써 그 안의 절망을 들이마신다. 적절한 비평을 통해 감염된 문장이 '감염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고 내 안에 항체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특히 이 책에서 새롭게 깨닫는 부분은 여성혐오, 여성대상화로 가득한 남성작가들의 글 뿐만이 아니라 여성주체를 내세워 여성작가가 쓴 문장들 역시 감염되었고, 오히려 더 교묘한 방식으로 감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병약함에 대한 숭배, 예전 어느 미술관에서 여성 초상화 작품을 설명하면서 당시 창백한 피부를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기 전에 찬물에 손을 담가 일부러 피부를 창백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일이 떠오른다. "영원이 여성적인 것이 무자비한 자기 억제를 의미한다면 필연적으로 질병을 수반하지 않겠는가?" 수세기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는 여전히 절망을 들이마시고 있다. 10대 여자아이들이 거식증에 걸리는 사회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몸무게에 대한 걱정, 거부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에 대한 갈망 같은 특정한 주제는 여자아이 개인의 '병리 현상'이라기보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기대에 뿌리를 두는 듯했다. 여자아이들은 뒤섞인 메시지와 씨름해야 했다.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섹시해야 한다. 하지만 야해서는 안 된다.' '솔직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다정해야 한다.' '똑똑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을 위협할 정도로는 안 된다.'  - <내 딸이 여자가 될 때> 67쪽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기 삶의 주체였던 여자아이들이 다른 사람 삶의 객체가 된다"고 소녀들이 겪는 문제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들은 천천히 유년기를 땅에 묻고, 독립적이고 도도한 자아를 버리고, 순종적으로 성인이라는 존재가 되어간다."고도 했다.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은 인간 존재로서의 지위와 여성으로서의 소명 사이에서 갈등한다. 보부아르 말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은 '존재하기being'를 그만두고 '보여지는seeming' 삶을 시작한다". - 같은 책, 36쪽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시기에 겪는 여자아이들의 혼란을 분석한 <내 딸이 여자가 될 때>의 내용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서술하는 여성 작가들의 혼란과 겹쳐 보인다. 어쩌면 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던 19세기보다 상반된 메시지가 다양한 경로로 무분별하게 전달되는 21세기가 여성(소녀)들에게는 더 불안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가정에서는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고전들은 대부분 남성 작가에 의하면, 남성 정신의 위대함을 그리는 이야기다. 상업광고, 뮤직비디오, 같은 학교 남자아이들은 '섹시하지만 야해서는 안 되는' 등의 기준을 들이대며 이에 미치지 못하는 여자아이들을 조롱한다. * 그나저나 여기나 저기나 등장하여 적재적소 촌철살인을 날려주시는 보부아르님, 당신은 대체.. 내년엔 꼭 읽을게요. 



유사하게 『오이디푸스』에서 『파우스트』까지 전형적으로 위대한 비극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남자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는데, 남자 주인공은 지배하거나 반항하려는 강한 의지로(또는 둘 다를 원함으로써) 고귀해질 뿐 아니라 상처받는다. - P174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 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 P175


고전에 한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탐험하고, 모험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만화영화들에서는 남자캐릭터가 대세다. 한팀 중 한두명 여자를 끼워넣을 뿐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혼성팀에서 대장은 예외없이 남자다. 혼성팀 대장이 여자인 경우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없다. 옥토넛도, 퍼피구조대도, 미니특공대도 마찬가지다. 대장은 남자다. 과거에 반장은 남자였던 것처럼. 대다수의 대통령과 CEO가 남자인 것처럼. 등장하는 여성인물의 숫자가 적을 때, 문제는 해당 캐릭터의 '성별'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해당 여성캐릭터가 아무리 훌륭하게 묘사된다고 해도(여성캐릭터가 적을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캐릭터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쉬운데, 동일시할 캐릭터가 적으면 그만큼 선택지가 적어진다. 남성캐릭터는 많기 떄문에 다양한 성격구현이 가능하다. 

많은 고위집단에서 소수인 여성들은 완벽을 요구받는다. 실패해도 그 사람의 문제로 여겨지는 남성들과 달리, 소수자 여성의 실패는 '여자라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1837년에 샬럿 브론테는 ‘저는 여자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고 말하며 로버트 사우디를 안심시켰다. 브론테는 ‘항상 성공한 것은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르치거나 바느질할 때 가끔 저는 차라리 독서하거나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하고 부끄러운 듯 고백하고, ‘저는 저 자신을 부정하려고 애씁니다. 아버지의 인정은 그런 결핍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어주고요‘라고 공손하게 덧붙인다. - P168


오, 샬럿 브론테가 나왔다. 이런 말을 했구나. 샬럿 브론테의 <빌레뜨>를 읽고 있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강인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느껴진다. 저런 말을 한건, 정치적 스킬이 아니었을지..? 



<빌레뜨> 너무 재미있다.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에 뒤이어 읽고 있자니, 언니쪽이 훨씬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 싶다. 인물의 생생함이나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능력 면에서 특히 샬럿 쪽이 탁월해 보인다.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 얼마나 개성있고 입체적인지, 감탄하며 읽는다. "이해관계야말로 성격의 핵심이자 동기의 주요 원천이고,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112쪽)이며 "혼자서 수상과 검찰총장을 겸임할 수도 있었을 인물"(113쪽)이라는 베끄부인, "즐거움과 쾌락 만세! 위대한 열정과 엄격한 정조 따위 물러가라!"(140쪽)고 외치는 팬쇼 양, 또한 꽤나 도덕적이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화자 루시 스노우도 자신의 앞길을 찾아 낯선 곳에 과감하게 발을 디디고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에 용감하게 나서는 인물로 그려진다.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앤 브론테를 언급하는 부분을 보니, <와일드펠 홀의 거주인>(혹은 소작인)을 읽어봐야 그녀의 진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번역본이 없다..



앤 브론테의 『와일드펠 홀의 거주인』(1848)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가치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여성 해방 이야기다. 특히 잘못된 결혼의 감옥 밖으로의 탈출, 그리하여 예술가로서 성공해 독립성을 성취하고자 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소설의 주인공 헬렌 그레이엄은 남편을 피하려면 신분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전문 화가가 된 뒤 자신의 풍경화에 가짜 서명을 써넣고, (...)- P193


관람객 중에는 그녀가 도망치고자 하는 남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헬렌은 자신의 상황을 그려야 할 필요성과 자신의 위치를 숨겨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따라서 자신의 예술과 맺는 긴장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젠더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헬렌의 불안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통해 여성 예술이 여성성에 의해 어떻게 근본적으로 제한받는지 추정할 수 있다. - P196



어찌됐든, 감염이 되었든 아니든 간에 여성 작가들이 시대의 역경을 뚫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낸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남성인물에 자신을 투영하거나, 남성작가가 쓴 여성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으므로.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근본적인 권위를 획득한 이런 작가들은 또한  ‘모든 진실을 말하되, 비스듬히 말하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유명한 (그야말로 여성적인) 충고를" 따름으로써 이들 특유의 작가 됨에 대한 불안을 누그려뜨렸다. - P182


제인 오스틴과 메리 셸리에서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여성들은 어떤 의미에서 양피지에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것 같은 문학작품을 생산했다. 이런 작품들의 외관은 표면의 무늬가 훨씬 깊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더 어려운) 층위의 의미를 감추거나 흐려놓았다. 작가들은 이렇게 가부장적인 문학의 표준에 순응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복시킴으로써 진정한 여성문학의 권위에 도달하는 어려운 임무를 해냈다. - P183


숨겨진 이야기나 메시지는 ‘인류의 반이 꾸려가는 한낱 사적인 삶’이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갖는 19세기 여성문학 대부분에 은폐되어 있는 단 하나의 플롯은 어느 정도는 자기 이야기에 대한 여성 작가 자신의 탐색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아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성의 탐색이다. - P186


‘어떤 남자도 추측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감염과 질병을 치유해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고자 애쓰는 여성의 이야기다. - P187


이 모든 선택, 즉 확실히 주류적인 것이 아니라 외관상 소품 같은것, 극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것,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 영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은 것을 선택한 데는 의식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아이러니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선택의 필요성은 아주 최근까지 영미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들이 처했던 상황, 즉 작가 되기의 병적인 불안을 강조해준다. 모든 여성의 삶과 시, 그리고 선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간단히 말해, 여성 문인이 세계 내에서 자신의 공적 현존을 규정해야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든 똑같이 항상 자기 존재를 비하하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성 문인은 자신의 작품을 전적으로 억압하거나 작품의 출판을 필명이나 익명으로 출판해야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녀는 겸손하게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고백하고, 열등한 능력에 걸맞게 숙녀들을 위한 ‘더 하찮은‘ 주제에 집중해야 했다. 후자의 선택이 실패의 인정으로 보인다면 여성 문인은 반항할 것이며 그 결과 불가피하게 추방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 P168, 169


이런 혼란과 억압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감추고 비틀며 써냈다고 생각하니, 19세기 여성문학을 읽는다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냥 재미로 읽었던 과거 독서와는 달리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빌레뜨는 그냥 재미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긴 하지만. 여기에도 감금의 이미지가 나오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제인에어>에서 등장하는 로체스터의 미친 전부인이 작가의 분신이라는 분석은 흥미롭다. 샬럿이 제국주의자라는 비평도 있다는데, 이 부분 염두에 두고 재독하고 싶다.



심지어 표면상으로는 가장 보수적이고 얌전하게 보이는 여성 작가들조차 대단히 독립적인 인물들을 강박적으로 창조했으며, 이런 인물들은 작가나 작가의 순종적인 여자 주인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는 모든 가부장적 구조를 파괴하고자 한다.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 P189



3장: 동굴의 비유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아서 패쓰.

4장, 5장에서는 제인 오스틴 작품들을 본격 분석한다. 제인 오스틴 예습할 걸 그랬다고 후회막심 중. ㅠㅠ 5장 읽는 중인데, 모르고 읽어도 읽을 만하긴 하지만 답답한 지점도 많다. 또 언급되는 다른 작품 중 마리아 에지워스의 <래크렌트 성>이 궁금한데 번역서가 없다. 번역 좀 해주세요.. 19세기 문학을 원서로 읽을 자신은 더더욱 없다구?!!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 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게다가 그런 여성들은 루퍼스 그리스월드 같은 사람의 주장("우리는 여성의 글을 읽으면서 ""쓸데없는 감정‘이 넘쳐날 뿐인데도 창조적인 지성을 피워내는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오인할 위험이 있다")에 깔려 있는 전제에 깊이 영향받았다. 이 말은 비록 여성이 펜을 드는 일이 부조리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병적(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신경증적‘)임을 암시하고 있다. - P162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 P166

자신의 문학적인 노력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은 미친 사람 내지 괴물로 취급받았다. 성을 ‘벗어났기‘ 때문에 기이하고 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기이하다는 것이다. - P167

현대 여성들이 활력있고 당당하게 펜을 들어 써내려간다면, 그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여자 조상들이 병들 정도로 심한 고립 속에서, 미칠 듯한 소외감 속에서, 마비를 일으키는 모호함 속에서 자신들의 문학적 하위문화에 고질적으로 퍼져 있던 작가 되기의 불안을 극복하려고 싸웠기 때문이다. - P148

남성 모델의 지속적 사용은 여성 예술가를 심리적 자아 부정이라는 위험한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몰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심리적 자아 부정은 키츠가 숙고했던 형이상학적 자아 상실을 훨씬 넘어선다. 배럿 브라우닝의 상드 소네트가 드러내듯, 자아 부정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로 치닫을 것이다. - P177

첫째, 많은 여성 문인이 여성의 ‘겸손함‘이나 남성 흉내를 벗어버리고 뛰어넘어 성장했다. 오스틴에서 디킨슨에 이르는 이런 여성 예술가들은 모두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중요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 P181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괴물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힘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다. 메리 셸리는 창조자에게는 단지 ‘움직이고 말하는 더러운 덩어리‘에 불과한 괴물을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며 그런 인물의 내면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 P191

글자 그대로의 집이 된다는 것은 결국 몸을 정신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런 초월성이야말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장했듯, 인간을 고유하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데 말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출산에 갇혀 있는 것은(그리고 우리가 지금 ‘출산‘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일컫는 19세기 단어가 ‘감금‘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점에서는 집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큼이나 문제적이다. - P206

배반당한 에우리디케는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주디스 셰익스피어’처럼) ‘무덤 동굴‘이라는 감옥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시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여성 예술가는 이시스와 에우리디케를 복원하면서 문학 유산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즉 가라앉은 대륙을 재정의하고 되찾는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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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1-22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흐.... 독서괭님 명품 페이퍼 너무 좋네요. 저는 아직은 샬럿이 최애인데 에밀리는 독특한 느낌이 있잖아요. 앤도 그에 못지않는 특별한 매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작가들은 이렇게 가부장적인 문학의 표준에 순응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복시킴으로써 진정한 여성문학의 권위에 도달하는 어려운 임무를 해냈다. - P183

저는 183쪽의 이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이 소설을 사서 읽을만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 조롱, 냉소를 ‘섞어서‘ 창조했다는 점에서요. 순응과 전복. 여성 작가들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저도 페이퍼 쓰고 있어요. 곧 돌아오고 싶으나, 쩜쩜쩜.

독서괭 2022-11-22 17:29   좋아요 1 | URL
단발님 샬럿이 최애시군요! 전 아직까지는 완독이 딱 1작품 씩이라 ㅋㅋ 뭐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ㅋㅋ 그동안은 <폭풍의 언덕>이 최애였어요. 하지만 빌레뜨 읽으니 넘 좋아서 샬럿파로 갈수도.. 읽은 것도 재독하고 안 읽은 것도 읽어보려면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그 부분 넘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제인오스틴 4장 읽으면서 참 영리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단발님 페이퍼 기대할게요^^

거리의화가 2022-11-22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레뜨 재밌죠^^ 저는 역시 오스틴보다는 브론테 쪽인 것 같아요^^; 3부 들어가야 하는데 역시 안 읽고 진입하기는 답답한가보군요. 3장 동굴의비유는 인상적이지 않은 것도 그랬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라는 생각도 있었고 단 번에 이해는 잘 안갔어요. 수하님 댓글과 페이퍼 통해서 뒤에 관련해서 내용이 나온다고 하길래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괭님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1-22 17:31   좋아요 1 | URL
오 화가님에게 오스틴보다 브론테 승! ㅋㅋ전 오스틴은 좀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오만과 편견 나름 재밌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서;; 다미여 읽고 읽으면 또 달리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동굴비유 뒤에 또 나오는군요? 저도 수하님 페이퍼 보며 공부 좀 다시 해야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2-11-22 18:33   좋아요 2 | URL
제가 페이퍼는 안 썼는데....
7장에서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이 나올 때 3장의 내용이 조금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독서괭 2022-11-23 13:11   좋아요 0 | URL
오, 네. <프랑켄슈타인> 읽었으니 7장은 조금 수월하려나요? 어렵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다락방 2022-11-22 16: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어서 빨리 빌레뜨 시작해야 겠습니다. 저는 오늘 3장 들어갔어요. 독서괭 님의 진도가 훨씬 앞서있네요!

제2의 성 읽을 때 와 이런 얘기도 했어? 이런 얘기도? 하면서 온갖 얘기 다 들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보부아르 님 대단... 아무튼 저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 분이 이렇게나 근사한 페이퍼를 작성해주시다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흑흑 ㅠㅠ

독서괭 2022-11-22 17:32   좋아요 1 | URL
으흐흐 다락방님, 빌레뜨 책 딱 보고 넘 예뻐서 기분 좋았는데, 내용도 재밌어서 완전 씐나요^^
제2의 성에 엄청난 얘기들이 많군요. 밑줄 어마하게 긋게 될 것 같네요. 내년에 벽돌들 좀 깨 볼까 해서.. 제2의 성도 도전해보렵니다..! 다락방님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셔서 넘 감사해요^^

건수하 2022-11-23 13:25   좋아요 0 | URL
오, 저도 읽다만 제2의성 내년에 마저 읽으려고요! 독서괭님 같이 읽어요 ㅎㅎㅎ

독서괭 2022-11-23 13:43   좋아요 1 | URL
수하님, 좋아욧!🤩

건수하 2022-11-22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샬롯 브론테의 <셜리>도 번역되지 않아 매우 아쉬운 책 중 하나예요.
<실낙원>에서 넘어졌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 읽으며 다시 회복하고 있습니다.

8장에서 <폭풍의 언덕> 나오는데 역시 넘 어려워요 ㅎㅎ 제가 왜 그 소설을 읽으며 혼란스러워했는지 정도만 이해하며 넘어가려고 해요 :)

독서괭 2022-11-23 13: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셜리>는 왜 번역 안 해줄까요? 어서 해달라!
실낙원은 영 다들 어려우신가 봅니다. 전 시도 안하려고요;;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읽어보고 싶어요!
<폭풍의 언덕> 읽은 책이라 나오길 기대하고 있는데 어렵군요ㅠㅠㅠㅠ 역시 비평은 어렵다..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페미니즘 비평이라니ㅠ 수하님 파이팅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11-22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빌레뜨로 선택하셨었군요?
책 표지 이쁘죠??^^
다미여도 많이 읽으시고, 아까 바람돌이님 서재에서 디킨슨 시인의 정답 한 개도 맞추시고?? 괭님 너무 천재 아니신가요??
알고 보니 천재!!! 알천재????ㅋㅋㅋ

독서괭 2022-11-23 13:13   좋아요 1 | URL
네 나무님! 책이 넘 예뻐서 여러번 쓰담쓰담 했어요 ㅎㅎ 볼때마다 기분 좋네용^^
알천재라니 ㅋㅋㅋㅋㅋ 뭔가 어감이 요상하지만 ㅋㅋㅋ 그런 이미지로 밀어봐야겠습니다 ㅋㅋ

바람돌이 2022-11-2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와 에이드리언 리치는 무슨 책을 보든 어디에서나 튀어나오는 주인공들! 저는 내년에 이분들의 책을 목표로 해야 할 거 같아요. ^^ 후발주자의 이점은 앞선 사람들이 이룬 성과를 온전히 흡수하고 간다는거죠? 먼저 읽으신 분들의 이런 명품 글을 보면서 아 이런 면을 유의해서 봐야겟구나 막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은 제인에어의 버사가 샬럿 브론테의 분신일수도 있다는 것,
또 샬럿 브론테가 제국주의자? 이것도 염두에 두면서 읽어볼게요. ^^

독서괭 2022-11-23 13:15   좋아요 0 | URL
오 에이드리언 리치도 그렇군요. 둘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명품 글이라니 과찬이십니다. 버사가 분신일 수 있다. 샬럿 브론테가 제국주의자라는 비평 등의 내용은 다른 분 페이퍼에서 봤어요 @_@ 참 해석이란 재미있습니다.
바람돌이님 파이팅입니다^^

scott 2022-11-22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빌레트 이토록 잼 나는데
영쿡인들은 오로지 오스틴 작품만 줄창 영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2-11-23 13: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오스틴만 편애하다니! 브론테도 사랑해달라!^^
 
아그네스 그레이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2
앤 브론테 지음, 문희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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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의 <제인에어>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매혹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동생인 앤 브론테는 생소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계기로 이 책을 사둔지 한참 되었으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시작한 후 비로소 펴들게 되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도 앤 브론테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비중은 적은데,

집에 있는 많지 않은 19세기 여성작가 소설 중 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의 작품이 극적인 요소를 많이 품고 있는 데 비해 

(제인에어는 차분한 분위기지만 감금된 전부인의 존재가 오싹하고 로체스터와의 사랑이나 마지막 화재 등이 강렬하며, 폭풍의 언덕은 폭풍우 치는 밤에 창을 열고 미친 듯이 캐서린을 부르는 히스클리프의 모습을 그린 시작 부분부터 마지막까지 눈을 떼기 힘든 폭풍같은 매력이 있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대단히 수수하고 평범하며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는 않고 소소하고 솔직한 맛이 있다. 특별날 것이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주인공 아그네스에게 이입하기는 쉬울 듯. 제인에어와 로체스터의 사랑이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아그네스와 웨스턴의 사랑은 지극히 평범하고 '온당해' 보인다. 


아그네스는 서로를 아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에게서 태어난 막내딸이다.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었는데 가난한 그레이에게 반해 모든 걸 버리고 그와 결혼한다. 아버지는 때때로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만 어머니는 전혀 불행해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이미 작가가 '부'라는 세속적 가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그네스는 자신을 아기 취급하는 가족들에게서 떠나 스스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 그녀는 상당한 고등교육을 받았기에 가정교사 자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걸 좋아하고 나름의 교육 원칙이 있기에 부푼 마음으로 일터에 간다. 

그러나 그녀를 가정교사로 고용한 첫 집은 글러먹었다... 부모의 성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아래서 방종하게 자란 아직 어린 아이들(7살 남자아이, 6살 여자아이 등)은 거짓말을 하고, 가정교사를 골탕먹이기 일쑤, 공부에는 뜻이 없으며, 타인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라든가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그네스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바른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동동거리지만 소용이 없고, 아이들의 문제는 전부 가정교사 탓으로 취급된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 아그네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가정교사 자리를 구한다. 두번째 집은 언뜻 첫번째보다는 나아 보인다. 일단 아이들 나이가 좀더 많다. 하지만 역시 부모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하고 아이들의 인성교육에는 관심이 없으며, 아이들은 가정교사를 무시한다. 첫째 딸 로잘리는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 났는데 그 용모를 가꾸고 거기 유혹당한 뭇남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데만 관심이 있다. 둘째 딸 마틸다는 말을 타고 쏘다니는 걸 좋아하고 거친 언행을 하며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어쨌든 이 여자아이들과는 나름의 애정과 신뢰를 형성해가며 버티던 아그네스 앞에, 목사관에 새로 부임한 부목사, 웨스턴이 나타난다.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드나들던 아그네스는 웨스턴과 우연히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고, 그의 진지하고 올바른 성품에 큰 감명을 받는다. 실은 그는 군계일학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그네스와 그녀의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진실하게 하느님을 믿고(성경구절이 자주 인용됨) 올바른 일을 행하며, 타인에게 따뜻한 애정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로잘리는 여러 남자들을 농락하며 즐기다가 웨스턴에게도 마수를 뻗친다. 아그네스는 크게 상심하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남주인공답게 웨스턴은 넘어가지 않는다. 결국 로잘리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아그네스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러 집에 돌아갔다가,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가정교사 일을 그만둔다. 

웨스턴과 어떤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 학교 일에 전념하던 그레이스는 어느날 아침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거기에 짠! 웨스턴이 나타난다. 이후 그는 자주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고 결국 청혼하기에 이른다. 


대단히 교훈적인 내용이다. 

부를 쫓는다든가, 겉치레에 현혹된다든가, 생명을 함부로 여긴다든가, 자기 신분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든가 하는 세속적이고 경박한 행태에 대해 소설 전반에 걸쳐 비판하며, 반전 같은 건 없다. 

그러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어가고 있는 영향인지 1847년도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로 보이지만 상당히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병들어 쓰러진 아버지로 인해 어려워진 가정형편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여성. 부유한 귀족계급의 오만과 위선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 버텨가는 여성. 남편이 앓다가 사망한 후에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강인한 여성(아그네스의 어머니). 돈이나 외모, 지위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의 진실함을 알아보아 배우자를 선택하는 여성. 

"여성도 생각할 수 있다. 고귀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얌전해보이는 여성의 눈빛에 흔들림 없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 


언니들 소설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지만(너무 '온당한' 탓이 아닐지) 당시에 실존했던 인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느껴지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브론테 자매들, 다들 일찍 죽어 안타깝다.. 

사람 마음은 인도산 고무 같아서 조금만 더해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만 아무리 더해도 터지지는 않아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생겨도 상심하지만 ‘있는 문제에서 조금만 덜어져도‘ 살 만하지요. 우리 몸 바깥에는 그 자체로 필요한 힘이 생겨서 외부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준답니다. 우리를 흔드는 모든 힘은 우리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줘서 나중에 입을 타격에 맞서게 해주지요. - P167

사람이라면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사랑하기 마련인데 예쁜 얼굴이 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 아름답고 상냥한 여자는 두 가지 자질 모두에 대해 찬사를 듣지만 특히 아름다운 외모는 뭇 남성들의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외모와 성격이 모두 별로인 여자는 대단한 죄라도 지은 양 욕을 들어먹는데, 그 까닭은 평범한 외모가 보는 이에게 불쾌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 P212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들에겐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가 없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안고도 묵묵히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를 압도하는 슬픔을 이겨내고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확실한 처방이 아닐까? 제대로 된 위안거리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리지 못할 휴식을 탐하기보다 열심히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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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18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으로 돌아가 학교 일에 전념 하다가 어느날 눈앞에 나타난 웨스턴... 의 부분을 읽어보고 싶네요. 크-

쨘- 하고 등장하는 웨스턴
아닛! 하고 놀라는 아그네스
그리고 타오르는 그들의 사랑.. ♡

공쟝쟝 2022-11-18 18:56   좋아요 1 | URL
타오르진 않고 대단히 온건했을 것 같지만…ㅋㅋㅋ

독서괭 2022-11-22 15:59   좋아요 0 | URL
으하하 역시 로맨스 마니아 다락방님은, 그 부분에 꽂히시는군요.
쟝쟝님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대단히 온건합니다 ㅋㅋ
조심조심 오랫동안 얌전히 타오르는 불꽃이랄까요.. 나름대로 좋네요^^

새파랑 2022-11-18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앤 브론테 책은 안읽어봤는데 리뷰만 봐도 왠지 착하고 교훈적일거 같아요 ㅋ

독서괭 2022-11-22 15:59   좋아요 1 | URL
네 되게 착하고 교훈적입니다 ㅎㅎ 슴슴한 맛이네요^^

레삭매냐 2022-11-1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에어 읽다가 말았는디 -

마저 다시 읽어야 하나요.

독서괭 2022-11-22 16:00   좋아요 1 | URL
매냐님 제인에어 재미없으셨나요? 저는 지금 빌레뜨 읽는데 제인에어보다 재밌는 것 같아요. 제인에어를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바람돌이 2022-11-18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또 에밀리 브론테 말고 에밀리 디킨슨에서 헤매고 있어요. ㅠ.ㅠ
이 소설이 다른 자매들의 작품에 비해서 왜 덜 유명한지는 알겠네요. 굉장히 계몽적인 소설이라는 느낌? ^^
재능있는 이집 자매들은 왜 다 폐가 약해서 일찍 죽었는지.... 문학사의 안타까움입니다.

독서괭 2022-11-22 16:02   좋아요 1 | URL
오 디킨슨 읽으시나요! 저는 시랑은 친하지를 못해서 디킨슨은 손댈 생각도 못했어요^^;
언니들에 비해 앤 브론테의 이 작품은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가 전부인이었다니! 뚜둥- 뭐 이런 요소가 없어요 ㅎㅎ
정말 다 일찍 죽어서 안타깝습니다 ㅠㅠ

moonnight 2022-11-1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반갑습니다^^ 줄거리는 독서괭님 리뷰로 그런 내용이었군@_@; 이러고 있습니다만ㅎㅎ; 모슬린 드레스가 함께 떠오르는 책이에요 ^^

독서괭 2022-11-22 16:0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문나이트님^^ 저도 항상 다른 분 리뷰 보면서 앗 이런 내용이었나..@_@ 이럽니다 ㅋㅋ 참 착한 소설이었어요^^

단발머리 2022-11-19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글 읽으면서 제가 느낀 점은.... 아, 우리 브론테 세 자매 중에 앤이 제일 순한 맛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운 맛 에밀리, 중간 매운 맛 샬럿, 그리고 앤이 순한 맛. 아니면, 착한 맛 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이 잘 정리해 주셔서 <아그네스 그레이>의 진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고마워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11-22 16:04   좋아요 0 | URL
넵 단발님 너무나 정확한 지적이시네요 ㅋㅋ 매운 맛 중간 맛 순한 맛 ㅋㅋㅋㅋ 어릴 땐 매운 맛이 젤 좋았는데 지금은 순한 맛도 나름? 중간맛 <빌레뜨>도 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해요, 단발님!
 
안녕, 나의 순정 (여름에디션)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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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풍미한 순정만화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만화대여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어본 사람이라면, 밤새워 만화를 읽고 며칠간 제정신을 못 차려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달콤쌉싸름한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들이 내 주체적 여성상의 롤모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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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말입니까? ㅎㅎ 진짜 그 때 그 시절 제가 좋아하던 작가들과 작품이 다 들어있는 책이네요. 여기 나오는 만화 다 읽었습니다. ^^

독서괭 2022-11-17 16:00   좋아요 0 | URL
오셨습니까? ㅋㅋㅋ 정말 그때 그시절을 휩쓸었던 작가들 대다수가 나옵니다. 다 읽으셨군요!! 바람돌이님 윈! 저는 문흥미 작가님을 몰랐어요. 오디션도 안 읽었네요^^

singri 2022-11-09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다 보고싶네요
프린세스 넘 좋아했ㅋㅋ

독서괭 2022-11-17 16:00   좋아요 1 | URL
프린세스 진짜 대작인데 띄엄띄엄 나오니까 자꾸 잊어버려서 전 중도포기했더랍니다 ㅠㅠ

공쟝쟝 2022-11-14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ㅜㅜ 저도 책 목록 봤는 데요... 다 보진 않았지만 몇몇 작품들은 ㅜㅜㅜㅜ 벌써 부터 마음이 막............................. (안되겠어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몰랑몰랑해질 수 없어.......어떻게 내가 나를 굳히고 있는 데!!!!!!!!!!!!!!!!!!!!!!!!!!! (그러나 저는 소녀시절에도 소년만화를 더 많이 봤다능...)!!

독서괭 2022-11-17 16:01   좋아요 0 | URL
소녀시절에도 소년만화를 더 많이 본 쟝쟝님 ㅋㅋㅋㅋ 전 순정만화 쪽을 압도적으로 많이 봤습니다.
몰랑몰랑해지지 않는 만화들도 있잖아요. 새삼 그때 그시절 치고 너무나 앞서 나간 만화내용들에 깜놀했어요^^

레삭매냐 2022-11-14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대여점, 이제 추억이네요.

웹툰과 모바일이 대세가 된
지금 만화대여점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느낌입니다.

독서괭 2022-11-17 16:02   좋아요 1 | URL
아 정말 만화대여점 사랑했는데.. 그래도 지금도 만화방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집에서 읽는 걸 좋아해서 만화방은 잘 안 갔습니다. 역시 종이책이 더 좋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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