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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광기
필리스 체슬러 지음, 임옥희 옮김 / 위고 / 2021년 9월
평점 :
연애할 때, 나는 꽤 애교가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애교는 부드럽게 상대를 파고드는 방법이고,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키는 멋진 기술이라고 여겼다. 애교 있는 여자는 소개팅 자리에서 선호되고, 남자들에게 대체로 호감을 사기 쉬웠다. 애교가 없는 여자는, 미모가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평범하면 평범한 대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한 평가를 받은 건 물론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마치 여남관계에서- 그것이 연애이든 결혼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비록 배후 위치에 있는 그림자같은 것일지라도)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부드럽고 완곡한 태도로 남자를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하는 것- 예컨대 어떤 고치고 싶은 습관이 있을 때 직접 이를 지적하기보다는 폭풍칭찬으로 분위기를 좋게 만든 후 슬쩍 흘리듯 말하고, 좋은 행동이 나왔을 때 또 폭풍칭찬을 하는 식의 -이 현명한 태도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이 세련된 굴종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드럽고 완곡한 설득 방식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주는 기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 배우자에게만 그러한 태도가 요구되는 것은, 결정적으로 관계의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배후에서 은근하게 이루어지는 지배는, 전면에 나서면 그 힘을 잃고 결정적인 데서는 쓸모가 없다. 이런 방식은 그 지배를 허용하는 남성 배우자의 너그러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게다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필리스 체슬러가 말하는 '식민화'를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했다.
수많은 여성- 교육을 받았건 안 받았건, 직업이 있건 없건간에 - 이 여전히 '식민화된' 것처럼 행동한다.
(...) '식민화'는 피식민자들이 식민자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원은 피식민자들을 풍요롭게 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 (...) 식민자들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고 피식민자들은 열등하며, 자신들이 식민자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
많은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며 여성은 남성 없이는 무가치하다고 믿는다. 식민화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스스로에게 더욱 가혹하다. 여성들은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런 기대에 조금만 모자라거나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다른 여성들을 좀처럼 용서하는 법이 없다. - 48, 49쪽
애교 역시 마찬가지다. '식민화'의 증거로 우리나라에 특유하게 존재하는 '애교'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고유 표현은 또 있다. 바로 '애교'다. 외국인 친구에게 아무개의 매력은 애교라고 이야기를 했다. '애교'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하게 될지는 몰랐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76/250쪽(전자책 기준)
애교는 여성의 고유적인 성격 특질이 아니다. 주변을 보면 첫째보다 둘째, 셋째가 애교가 많은 사례가 대다수인데, 성별과는 무관하다. 여성의 애교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적 특성'으로서 자라나며 억지로 장착되거나 격려되는 것이다. 여성연예인들에게 툭하면 벌어지는 "애교 보여달라"는 요구를 보라.
필리스 체슬러는 <여성과 광기> 앞부분에서 정신병원에 갇혔던 뛰어난 네 여성- 엘리자베스 패커드, 엘렌 웨스트, 젤다 피츠제럴드, 실비아 플라스 휴스 -의 예를 들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규범'에 맞지 않는 여성들이 주로 남성 정신과의사에 의해 '미쳤다'고 판정받아 정신병원행을 당해왔음을 밝힌다.
엘리자베스 패커드의 정신과의사였던 "맥팔랜드 박사는 패커드가 '정신적으로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뒤 '후미진 병동'에 그녀를 방치했다. (...) 그녀에 대한 '치료법'은 감금과 다른 여성들을 위한 가사노동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었다." (118쪽)
"젤다 피츠제럴드의 정신과 담당의는 스콧의 아내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그녀를 재교육하려고 노력했다. 젤다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는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이 스콧과 함께하는 삶보다 더 중요한지 물었다." (121쪽)는 등의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그들이 부모로부터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순응시키기 힘들다'고 인식되었다. 부모는 그들이 어린 시절 (여자애치고) 유별나게 '활동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여기서 '활동적'이라는 것은 단지 신체적 혹은 공격적 행동뿐만 아니라 인식적, 지적, 언어적 태도까지를 포함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정신분열증 여성들은 여성적 역하르이 한 측면을 구체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가족 내 갈등을 야기했고 결국 정신분열증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감금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 176쪽
이로써 여성이 건강하려면 여성이라는 자기 성별에 합당한 행동 규범에 '적응하고' 그것을 (심지어 사회적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유형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 우리 문화의 정신건강 윤리는 남성적이다. (...) 여자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불안한' 순종', '수줍음', '속좁음' 등은 결코 문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특징은 오히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훨씬 빨리 '성장하는' 증거로 간주된다. 남자아이들의 '공격적인' 행동이 문제가 되는 유일한 이유는 가부장제가 그들이 좀 더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성성'을 실천하도록 원하기 때문이다. - 198, 199쪽
이 책이 출판 당시 얼마나 센세이셔널 했을지 짐작이 간다. 정신과의사와 심리치료사들이 단지 '여성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신병동에 감금되었다거나, 정신과의사와 심리치료사들이 그들의 여성환자를 상대로 파렴치하게 성관계를 맺었다는 증언,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성적 학대와 부적절한 수준의 전기충격요법 실시 등에 대한 고발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이를 숨기고 싶은 자들은 강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이어서 필리스 체슬러는 본인이 행한 인터뷰들을, 인터뷰이의 특성에 따라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카테고리별 특성도 있지만 여성이라는 단일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들이 더 눈에 띈다.
심리치료 그리고 백인 또는 중산층의 결혼은 여성을 서로 격리시킨다. 이 둘 모두 여성의 불행에 관해 집단적인 해결보다는 개별적인 해결을 강조한다. 양쪽 모두 강한 남성 권위자에게 여성을 의존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사실상 이러한 사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린 소녀가 아버지와 맺는 관계를 다시 재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여성들에게 거의 대안을 제공하지 않는(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거의 없는) 사회에서 중산층 여성들에게 가장 안전한(가장 인정받고 가장 친숙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253쪽
나는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미래를 꿈꿨다. 연애를 시작하면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이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시장에 던져진'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불특정 다수의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주로 다른 남성과의 적대적이거나 불안한 상황에서 내 앞에 서줄 수 있는 방패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결혼으로 그 안정감은 확고해졌다. "안전한 안식처", 딱 그것이다. '사랑'이라는 반짝이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면, "가장 인정받고 가장 친숙한" 도피처를 택했다는 게 드러난다. 그걸 얻기 위해 포기한 것들과 함께.
페미니스트 집단을 포함해 여성은 개별 여성이건 아니면 집단 속의 여성이건 남녀 행동에 대한 유해한 이중기준을 버리기가 힘들다. 역설적으로 여성은 '성공'해서는 안 되지만 어떤 일에서든 성공한다면 그런 여성은 모든 면에서 성공하지 않는 한 여전히 실패한 것이 된다. 여성은 완벽한 존재(여신)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자(창녀)다('티끌 하나 없는 완전무결'이라는 폭력적인 조건화는 '불결'이라는 감각과 함께 묶여 사실상 어린 여자아이들에게까지도 깊숙이 새겨져 있다). 만약 여성이 중대한 과업을 성취한다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과 달리, 그런 성취를 이루기 위해 자녀를 돌보고 자기 외모를 가꾸는 것을 포기한다면 여전히 실패자에 속한다. 여성이 법적이고 지적인 투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여성 혹은 다른 남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 여성은 실패자가 되고 만다. - 500, 501쪽
완벽한 성공이 아니면 실패자로 취급되는 여성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품에 안고 산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그것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 있다면 또 그것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포기했다면 또 그것 때문에. 여신과 창녀 이분법에서 우리 여성들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서로에게 더이상 가혹하지 말자. 이 책에 인용된 안셀마 델올리오의 말처럼, "우리 여성이 자기연민과 자기파괴와 우리가 기억하는 한 우리의 유산이었던 무기력으로부터 빠져나오려면, 서로의 실패와 약점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성취와 성공과 능력을 지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493쪽)
필리스 체슬러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내가 성별 간 전쟁을 시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전쟁을 치러왔다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 여성은 언제나 패자였다고. 여성들이 이런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 것은 남성이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반면 여성은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여지껏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가 이미 치르고 있었던 성별 전쟁의 비전은 좀 더 확실해질 것이다. - 523쪽
나는 프로이트가 천재라고 생각한다. 많은 중요한 부분에서 그는 옳았다. 무의식적 동기는 존재하고, 증상과 꿈은 해석될 수 있으며 ‘대화 치료(talking cure)‘는 유효하다(...). 하지만 여성의 마조히즘과 남근선망에 대해서는 틀렸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잘못 이해했다. 유대계 그리스도교나 이슬람 문화에서 실제로나 심리적으로나 죽임을 당하는 쪽은 아들이지 아버지가 아니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도 이해하지 못했다. 천재 프로이트도 자기 시대의 가부장제를 초월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군들 자기 시대를 초월할 수 있겠는가! - P46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웠다. 우리는 예외적인 발견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대학원과 의과 대학 교과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결코 번성한 적도 없이.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우리 시대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근친상간, 강간, 성적 학대, 아내 구타, 아동학대 등에 관해 대학원이나 의과 대학 교과서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의식화 그룹과 연구조사 그리고 풀뿌리 운동으로부터 배운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름 아닌 피해자들로부터 배웠다. 피해자들은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페미니즘으로부터 발언할 힘을 얻게 되었다. - P61
우리는 강간이 사랑이나 정욕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혹은 위압적인 섹스와 성적 수치심을 통해 모멸감을 주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 전쟁에서 적군의 포로로 잡힌 남성이 겪는 공포는 가정에서 폭력적인 ‘가정 내 감금‘ 상황에 놓인 여성이 겪는 고통의 정신적 외상과 유사하다. - P64
자유와 정의는 정신건강에 기적을 행한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악명 높은 질문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한다. 초심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특별한 순서 없이 언급해보겠다. 여성은 자유, 음식, 자연, 은신처, 여가시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정의, 음악, 시(詩), 탈가부장제적인 가족, 공동체, 만성적이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고 있을 때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함께하는 온정 어린 지원, 독립, 책, 육체적(성적)인 쾌락, 교육, 혼자일 수 있는 시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 사랑, 윤리적인 우정, 예술, 건강, 존엄한 고용, 정치적인 동지를 원한다. - P77
전문 패널로 참석한 일부 의사들은 페미니스트 참가자들에게 다소 신경질적이고도 야만적으로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신경증적이고 범죄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둥 온갖 소리를 다 퍼부었다. 종종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이 여성에게 주는 상처보다는 남성에게 주는 상처에 관해 발표하기를 원한다. 나는 언젠가 이런 회의 자리에서 어느 흑인 남성 심리학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흑인의 권력과 평등과 자결권에 관한 회의에서, 인종차별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이렇게나 크게 공감하면서 곱씹을 일인지 생각해봤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웃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페미니즘에 가장 공감하는 남성 전문가들조차 가부장적인 남성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 P457
표면상으로 ‘이타주의‘ 혹은 ‘동정심‘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공간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심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정심을 베푸는 자‘로서의 여성이 받는 훈련은 효과적으로 그들을 집 안에 머물도록 만든다. 20세기의 상류층 아내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했다. 중산층의 아내들은 평화나 생태계를 위한 시위를 조직하며 사회복지사, 간호사, 교사, 심리학자로 일했다. 서민층의 아내는 비서, 도우미, 창녀로서 자기 자녀와 남편과 자기 가족을 돌보고 남의 아이들과 남편을 보살폈다. 하지만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도 환경오염도 인종차별도 사라지지 않는다. 임신, 출산과 양육이라는 보편적인 여성의 속박은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 남아 있다. - P488
전통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피한다. 심지어 자기보호마저 행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자기보호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들에게 금지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은 ‘패배하도록‘ 훈련받으며 이상적인 남성은 ‘승리하도록‘ 훈련받는다. 여성들은 기꺼이 제물로 희생되도록 훈련받는다. 예를 들어 대다수 어머니(여성)는 자신만의 고유하고 인간적인 자아를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포기하고 만다. -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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