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써야 할 시간에 공연히 아침 뉴스를 검색하다가 또 챙겨놓을 수밖에 없는 기사들을 읽었다. 소득격차가 심화되면서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 지젝이 말하는 객관적 폭력, 시스템의 결과로 산출되는 구조적 폭력의 사례라 할 만하다(<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젝이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현단계 자본주의에서 중산층은 사치이다. 중산층까지 챙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거기에 더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 혹은 '윗선'이다. 당장은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명하다(계급의 양극화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서울신문(11. 04. 26) 20:80…소수가 富 누리는 양극화 현실로 

20%의 소수가 80%의 부를 누리는 이른바 ‘20 대 80 사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같은 부의 양극화는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대기업의 영역 확장과 ‘골목 상권’으로 불리는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5일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1999년 5800만원에서 2009년 9000만원으로 10년 새 55%나 늘어 대부분 억대 수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하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같은 기간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54%나 급감했다.

●자영업자 몰락등 작용
10년간의 경제성장 과실을 전혀 누리지 못한 채 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종합소득세는 사업, 부동산 임대, 이자 등 여러 소득을 합쳐 과세하는 세금으로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가 신고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체 소득금액 중 계층별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IMF 위기’로 불리는 외환위기 이후 소득의 양극화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9년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총 소득금액은 90조 2257억원이었다.이 중 상위 20%가 가져간 소득금액은 64조 4203억원으로 무려 71.4%에 달한다. 상위 20~40% 소득자의 소득금액은 13조 5337억원으로 총 소득금액의 15%에 불과했다. 중간층인 상위 40~60% 소득자는 7.7%, 60~80%는 4.3%, 하위 20%는 1.6%의 소득밖에 벌지 못했다.

결국 상위 20%의 개인사업자가 총 소득의 3분의2 이상을 거둬들인 반면 전체 신고자의 60%를 차지하는 상위 40% 이하는 고작 10% 정도의 소득에 머물렀다. 양극화 현상은 월급쟁이도 마찬가지다.

●상위 40%이하 고작 10% 소득
2009년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연말정산자의 총 급여액은 315조 7363억원이었다. 이 중 상위 20% 소득자의 급여액은 131조 1652억원으로, 총 급여액의 41.6%를 차지했다. 상위 20%가 소득의 절반 가까이 가져간 셈이다. 반면 하위 20% 소득자의 급여액은 25조 2242억원으로, 총 급여액의 8%에 지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소득의 양극화는 사회적 불안 요인이자 성장동력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대기업의 신성장 분야 투자를 통한 고용 창출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지원, 고용과 연계된 소외계층 복지대책 등 부의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다각적이고 지속가능한 재분배 정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오일만기자)   

노컷뉴스(11. 04. 26) 건강보험료 폭탄 …윗선 지시로 사전에 국민에 설명 안 해

25일 월급날에 많게는 수십만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직장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건강보험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대국민 설명을 전혀 하지 않아 혼란과 충격을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른 바 '윗선'에서 4.27 재보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건강보험료 정산문제에 대한 자료배포와 설명을 연기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2일 2010년도분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 정산과 관련, 보도 자료를 통해 설명할 예정이었다. 즉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 등으로 2009년도에 비해 2010년도에 소득이 증가한 경우 추가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고 임금 등이 인하된 경우 보험료가 환급되며 이 절차가 4월 월급날에 이뤄지게 된다는, 월급날 전에 국민이 알아야 혼란이 없을 내용을 22일 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특별한 이유없이 오는 28일 발표로 연기됐다. 복지부 담당자는 다만 설명 연기와 관련해 “올해부터 4대보험이 통합징수되면서 데이터 량이 방대해져 업무처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군색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속사정은 달랐다. 정산 금액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난다는 내용을 미리 설명할 경우 4.27 재보선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윗선'의 지시 때문에 연기하게 된 것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재보선이 끝난 다음인 28일로 연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어느 곳의 지시였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통상적으로 정부 부처가 언론 브리핑이나 보도 자료를 통해 국민들에게 정책을 설명할 경우 당정청과 사전에 조율 절차를 거친다. 정부 부처는 먼저 안을 만든 뒤 청와대 비서실의 담당 정책파트너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친다. 교육과 관련한 중요한 정책이나 발표사항이라면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실에 먼저 보고하고 협의하는 것이다. 또 총리실에도 보고하지만, 주는 청와대여서 청와대와 협의된 내용이라고 하면 총리실은 의례적인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사전에 당정협의 절차를 거치는 경우도 많다. 여당과 협의하지 않을 경우 당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줘 견제를 받을 수 있고 대국회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에 자료 배포 연기를 지시했다면 청와대나 여당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중있는 사인인 경우 반드시 청와대에 보고하고 있고, 건보료 정산문제는 해마다 하는 일이라 당정협의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연기 지시는 청와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진영곤 고용복지수석은 CBS기자와의 통화에서“발표를 연기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고 예정대로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가 건보료 정산 관련 설명을 연기한 것은 갑자기 월급에서 많은 액수의 건강보험료가 빠져 나갈 경우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쳐 재보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의도와는 반대로 설명 연기가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직장인들은 갑자기 수십만원이 빠져나간 월급명세서를 보며 깜짝 놀랐고 이는 건강보험과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고 정부가 건보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혼란은 건보 재정적자 해소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에서 정부가 정책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했다며 선거법 위반 여부를 문제삼고 나설 경우 논란이 확산되면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 마련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김선경기자) 

11. 04. 26.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4-2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비평

프랑스 비평가 피에르 바야르의 <햄릿을 수사한다>(여름언덕, 2011)이 출간된 김에 피에르 바야르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소개된 다섯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한 서평을 쓴 이후로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다 모아놓긴 했다. <햄릿을 수사한다>부터 더듬어 읽어볼 참이다. 내친 김에 서평도 써보고 싶군...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햄릿을 수사한다-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확장되는 끝없는 텍스트의 공간들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1년 4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4월 26일에 저장

셜록 홈즈가 틀렸다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9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1년 04월 26일에 저장
절판
예상 표절-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6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1년 04월 26일에 저장
절판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4월 26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4-2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8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용히 보내긴 했지만 엊그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기념하여 국제연합이 지정한 '세계 책의 날' 날짜가 4월 23일이다. 해럴드 블룸의 새책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 나온 김에 블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세계 책의 날'과 관련한 재작년 기사를 읽게 돼 뒤늦게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4. 23) [어제의 오늘]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사망 

1616년 4월23일 세계 문학계의 큰 별 두 개가 나란히 졌다.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다. 52년간 세상을 살다간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그는 2만1000여개의 단어를 사용했으며, 1800개가량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훌륭한 작가라도 2000개 남짓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셰익스피어는 초창기엔 희극에 집중하다가 <햄릿> 이후 비극도 써냈다.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인류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는 셰익스피어밖에 없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보다 17년 먼저 태어났다. 젊은 시절의 세르반테스는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으나 왕실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전투 중 다쳐 평생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고 투르크군에 붙잡혀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주로 걸작 <돈키호테>에서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했던 <돈키호테>는 이상적 인물 돈키호테와 현실적 인물 산초 판자의 우스꽝스러운 모험담을 그렸다. 후대의 평자들은 <돈키호테>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한다.

동시대 인물이었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까.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를 몰랐지만, 셰익스피어는 말년에 <돈키호테> 번역본을 읽었다고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전한다. 아울러 블룸은 두 작가가 없었다면 스탕달, 투르게네프,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도스토예프스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그들이 창조한 상반되는 캐릭터로도 오래 기억된다. 숙부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다. 반면 비쩍 마른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간을 일컫는다.

글로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창조된 인물이 400년 후 사람들의 머리에도 하나의 전형으로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국제연합은 두 천재의 사망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백승찬기자) 

11. 04. 25.  

P.S.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창조해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햄릿과 돈키호테는 기사에서처럼 여러 모로 비교가 되는데, 그런 비교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작가가 투르게네프이다. '햄릿과 돈키호테'(1860)란 문학강연을 통해서 '사색가형 인간 vs 행동가형 인간'이란 이분법을 제시한 이가 바로 그다. 이 유명한 강연문은 예전에 세계수필선 종류의 책에 번역/수록돼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만한 강연문도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수 없다는 게 유감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번역가들의 책이 가끔씩 출간되고 있다. 번역서가 아니라 번역가 자신의 책이다. 지난주에 나온 건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권남희 씨의 <번역에 살고 죽고>(마음산책, 2011)이다. 번역가 지망생이라면 베테랑 번역가의 '생존 노하우'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문화일보(11. 04. 23) “번역가는 바람둥이, 금세 새 책과 열애”

“백댄서만 하다가 가수로 데뷔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척 기뻤어요. 그만큼 두려움도 크더군요.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제 개인사와 번역에 대한 제 생각을 쓴 것이니 세상에 알몸으로 선 기분도 들고요.”

번역가인 권남희씨는 ‘번역에 살고 죽고’(마음산책 발행)를 펴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이 책은 일본문학 번역가로서 최고 반열에 올라있는 권씨가 번역 입문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을 진솔하게 담은 책이다.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모았는데,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한달음에 읽힌다. 경쾌한 보법을 사용하는 문장 속에 유머와 휴머니티가 담겨 있어서 자주 미소를 짓게 된다.

권씨는 번역을 할 때와 자기 글을 쓸 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번역은 어떤 상황에서도 책상 앞에 앉으면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글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이른바 글발 받는 날이 아니면 아무리 쓰려고 해도 한 줄도 안 쓰이더라고요. 1주일 동안 한 줄도 안 쓰여서 애가 탔던 적도 있어요.”

20년차 번역가인 권씨는 자신이 업계에서 최정상급의 대우를 받게 된 것을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1990년대 이후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된 바람을 탔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보면 스스로 스펙(학력, 경력)이 약한 ‘마이너리그 출신’이라고 하는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보통의 번역가들이 200자 원고지 1장당 2300원을 받을 때 600원을 받고 일했다. 그럼에도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자 권씨는 일본에 가서 직접 책을 구입해서 기획하며 일거리를 만들었다. 

 

권씨는 당시 에피소드들을 책에 소개하며 익살스럽게 중얼거렸다. “너무 앞서갔던 나는 번역계의 이상(李箱)이었던가.” 그 시절에 그가 일본 현지에서 발굴한 책의 작가 중에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가 있었다. 그에 대한 우리 출판사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름이 바나나야? 토마토가 아니고? 에쿠니 가오리? 앗싸 가오리? 내용이 뭐 이래. 이런 걸 누가 읽어요.” 그런 천대를 받았던 ‘바나나’와 ‘가오리’의 작품들이 지금은 출판사들이 앞다퉈 번역하고 싶어하는 대상이 됐으니….

유미리,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온다 리쿠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그는 번역가를 ‘바람둥이’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의 작품과 열애에 빠졌다가도 금세 다른 소설에 온 마음을 뺏겨버린다는 점에서다.

권씨는 번역 작업이 너무 즐겁다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직업으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열 명이 시작하면 한두 명 성공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큰 수입을 얻는 건 아니에요. 물론 일하는 만큼 돈이 되니 더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건강을 포기해야겠죠. 저는 여가 생활을 전혀 못하면서, 또 주말도 즐기지 못하면서 일한 끝에 겨우 여기까지 왔거든요. 그래서 이제 사회에 나오는 친구들, 혹은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 할 젊은이들한테는 번역 쪽은 택하지 말라고 하죠.”

그럼에도 권씨는 책에 문답형식으로 번역가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들을 자세히 정리해 놨다. 그는 여기서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외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우리말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역의 실제를 설명하면서 외국어를 그대로 직역했을 때와 그것을 우리말로 제대로 다듬었을 때의 차이를 구체적 사례로 소개한다.

그는 번역을 직업으로 택했을 때의 장점을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모든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책에는 그가 번역 원고의 첫 독자로서, 비평자로서 역할을 해온 딸 ‘정하’와 함께 살아온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물론 번역가도 저자, 출판사 편집자와 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원만한 성품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번역 고료 지급이 안 되거나 그것이 늦어졌을 때 해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권씨는 실력이 뛰어난 후배 번역가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문학의 우리말 번역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후배들 때문에 제 밥줄이 위태롭다”고 하면서도 권씨는 흐뭇한 눈치였다. 그는 영미문학 번역가였던 고 이윤기씨처럼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간직해왔다. “경로우대증이 나오는 65세까지는 열심히 번역을 할 거예요. 그 후에는 여유롭게 먹고 사는 걱정 안 하면서 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장재선기자) 

11. 04. 24. 

 

P.S. 번역가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조재룡 교수의 <번역의 유령들>(문학과지성사, 2011)에는 한국 문학 속에 번역과 번역가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나 살펴본 글들이 포함돼 있다. 저자가 정리해준 통념상의 번역, 번역가의 스테레오타입은 이런 모습이다. 

예컨대 잠시 머무는 직업, 임시방편의 직업, 일정한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작업,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하는 일, 빈둥거리면서도 할 수 있는 일, 거쳐가는 일, 이동 중인 일, 통과하는 일, 그래서 또 자유롭다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번역이며, 그리하여 룸펜일 수 있는 자가 바로 번역가인 것이다.(228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4-25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4-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 번역료가 200자 원고지 1장당 2300원인데 지금은 200자 원고지 1장당 4000원이라고 하더군요.그래선지 실력있는 번역자들이 없어서 FTA번역 오류들이 생긴다고 하네요.

로쟈 2011-04-26 07:37   좋아요 0 | URL
4000원 이하도 많습니다. 이 또한 열정을 착취하는 시스템이에요. 하기 싫으면 관둬라는...
 
벤야민과 아벨 강스
벤야민에 관한 첫번째 수다

서점 두 곳에 들러 이주의 관심도서 두 권을 사들고 왔다. 둘다 이론서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윤영 교수가 엮은 <사유 속의 영화>(문학과지성사, 2011)는 영화이론 선집이고, 호미 바바가 엮은 <국민과 서사>(후마니타스, 2011)는 '네이션'에 관한 탈식민주의적 성찰들을 묶은 것이다. 두 책을 모두 갖다놓은 서점이 없어서 한권씩 구하면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알라딘에는 <국민과 서사>가 아직도 입고돼 있지 않다).   

그중 <사유 속의 영화>에는 벤야민의 유명한 텍스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한번 더 번역돼 있어서 눈길을 끄는데, 이번엔 불어판의 번역이다. 제목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 편역자가 서문에서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벤야민이 1936년에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불어로 쓴 텍스트이다. 이미 알려진 세 편의 독어본을 고려하면 '제4의 텍스트'인 셈이다. "이 불어판은 한국어로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고 독일어로 된 다른 세 판본들과 대조 및 비교를 거쳐 영화 연구뿐만 아니라 벤야민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편역자는 적었다.  

책을 들춰보다가 벤야민이 인용한 아벨 강스의 말에 눈길이 멈추었는데, 그건 예전에 이 한 대목의 번역에 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벤야민과 아벨 강스' 참조). 내가 참조할 수 있었던 몇 개의 번역본이 모두 '오역'이 아닌가 싶어서 올렸던 글이었다(최초로 의견을 적은 건 2005년 '벤야민을 좋아하세요?'란 글을 통해서이다). 3판을 기준으로 할 때 벤야민 텍스트의 2절 말미에 나오는 문제의 문장과 예전글의 요지를 다시 가져오면 이렇다(강유원본과 김남시본은 출간본이 아니라 온라인 버전이었다).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반성완)

-아벨 강스는 1927년 이미 이렇게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차봉희)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태동)

-1927년 아벨강스가 열광적으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고 외쳤을 때...(강유원)

-1927년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김남시)

이 대목에 대한 영역본은 (2종 모두) 대략 "When Abel Gance fervently proclaimed in 1927, 'Sha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ill make films..."라고 옮기고 있다. 내용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이다. 그리고 벤야민의 독어본에서 인용문은 "Sh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erden filmen..."이다. 이 역시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를 벤야민이 옮겨온 것이므로 '원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건 아니다. 구문은 단순한데,  추측하자면 werden이 미래시제 조동사이고(사전에는 werden이 '-가 되다'란 뜻도 갖는 걸로 돼 있다), filmen이 동사원형(부정법)이어야 영역본에 대응한다. 러시아어본도 같은 식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가 의미론적으로 동치가 아닌 이상(물론 아니다) 어떤 해석이 맞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나는 5종의 국역본 대신에 영어와 러시아어본이 맞다고 본다. 그건 의미의 논리상 그렇다.  

   

이런 의견을 제시한 후에 동의와 함께 반박 의견도 많이 받았는데, 벤야민의 독어 텍스트뿐 아니라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에 대해서까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은행나무, 2003)에 아벨 강스의 말이 이렇게 옮겨진 것을 발견했다. 이 대목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기에 '벤야민과 아벨 강스'란 글을 적었더랬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벤토벤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국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동시에 훨씬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들은 온통 소란스런 전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게다가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것보다 위대한 꿈들이 환상적이고도 급작스럽게 꽃을 피울 것이다. 단순한 인쇄기계를 넘어서, 모든 심리적인 상황을 변조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이요 왕수(금이나 백금 따위를 녹이는 화학용액)요 리트머스 용액이기도 한 영화. 이미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236쪽)

그러나 다시금 반전이 벌어진다. 최성만 교수의 '발터 벤야민 선집'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외>(길, 2007)에서는 이 대목을 예전판들과 마찬가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벨 강스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 물론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을 아니지만 - 광범위한 전통의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47-48쪽, 106쪽)

이에 대해서는 출판기획자(현재는 도서출판 난장 대표) 이재원 씨가 다시금 이견을 정리해준 바 있다('벤야민에 관한 첫번째 수다' 참조). 여하튼 '소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아벨 강스는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통용되던 차였는데, 작년 가을에 나온 <크리티카 4호>(올, 2010)에 루카치를 전공한 '자유 연구자' 김경식 씨가 벤야민의 텍스트를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이라고 재번역하면서 이 대목을 이렇게 옮겼다.  

1927년에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즉 "셰익스피어와 렘브란트와 베토벤은 영화를 찍을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와 모든 설화, 모든 종교 창시자, 아니 모든 종교까지도... [카메라의] 빛이 비친 부활을 기다리고 있으며, 영웅들은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라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아마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전통가치의] 포괄적인 청산으로 초대했던 것이다.(291쪽) 

역자는 해제의 각주에서 난장출판사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재원 씨의 글을 참고했고 애초에 아벨 강스의 말을 "영화화 될 것이다"라고 옮겼다가 "영화를 찍을 것이다"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내 생각엔 그렇게 해서 번역 텍스트상으론 최초로 셰익스피어와 렘브란트와 베토벤이 '영화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찍게 될 것'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이윤영 교수의 번역에서 이 대목은 다시금 이렇게 옮겨졌다. 

그리고 1927년에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미래에 태어날]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를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학,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립자, 모든 종교 그 자체까지도 ... 스크린 위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며 영웅들이 서로 떼밀면서 영화의 문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때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우리를 광범위한 청산으로 초대했던 것이다.(107쪽)

이로써 논란이 된 벤야민의 한 문장, 아벨 강스의 말 한 마디에 대해선 정리가 되는 듯싶다. 오래전에 제시한 '사소한 이견'이 결말을 본 듯해서 일의 자초지종을 한번 더 적었다...  

11. 04. 24. 

P.S. 참고로 또다른 온라인 번역판인 신우승본(http://tobebuff.egloos.com/1420194)에서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리고 1927년, 아벨 강스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감독]이 [나타나] 영화를 제작할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신화적 인물, 모든 종교 창시자, 모든 종교가 [영화의] 빛을 통해 부활을 기다리며, 또 모든 영웅도 [영화의] 문전에 몰려든다."라고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그는 - 물론 그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 [전통의] 광범위한 청산에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감독]"을 나는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과 같은 창조적 천재들"이란 뜻으로 이해하지만, 여하튼 그들이 문학이나 미술, 음악 대신에 영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옮긴 점에서는 신우승본도 뜻을 같이한다. 한가지 보태자면, 역자의 블로그에는 영국 킹스 대학의 피터 애덤슨 교수가 진행하는 철학사 프로젝트(http://www.historyofphilosophy.net/)가 번역돼 있다(http://tobebuff.egloos.com/category/PeterAdamson_HoP). 저자의 동의를 얻은 번역이라고 하는데, 철학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겐 유익한 자료가 됨직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4-25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