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보내긴 했지만 엊그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기념하여 국제연합이 지정한 '세계 책의 날' 날짜가 4월 23일이다. 해럴드 블룸의 새책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 나온 김에 블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세계 책의 날'과 관련한 재작년 기사를 읽게 돼 뒤늦게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4. 23) [어제의 오늘]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사망
1616년 4월23일 세계 문학계의 큰 별 두 개가 나란히 졌다.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다. 52년간 세상을 살다간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그는 2만1000여개의 단어를 사용했으며, 1800개가량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훌륭한 작가라도 2000개 남짓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셰익스피어는 초창기엔 희극에 집중하다가 <햄릿> 이후 비극도 써냈다.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인류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는 셰익스피어밖에 없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보다 17년 먼저 태어났다. 젊은 시절의 세르반테스는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으나 왕실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전투 중 다쳐 평생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고 투르크군에 붙잡혀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주로 걸작 <돈키호테>에서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했던 <돈키호테>는 이상적 인물 돈키호테와 현실적 인물 산초 판자의 우스꽝스러운 모험담을 그렸다. 후대의 평자들은 <돈키호테>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한다.
동시대 인물이었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까.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를 몰랐지만, 셰익스피어는 말년에 <돈키호테> 번역본을 읽었다고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전한다. 아울러 블룸은 두 작가가 없었다면 스탕달, 투르게네프,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도스토예프스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그들이 창조한 상반되는 캐릭터로도 오래 기억된다. 숙부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다. 반면 비쩍 마른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간을 일컫는다.
글로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창조된 인물이 400년 후 사람들의 머리에도 하나의 전형으로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국제연합은 두 천재의 사망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백승찬기자)
11. 04. 25.
P.S.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창조해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햄릿과 돈키호테는 기사에서처럼 여러 모로 비교가 되는데, 그런 비교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작가가 투르게네프이다. '햄릿과 돈키호테'(1860)란 문학강연을 통해서 '사색가형 인간 vs 행동가형 인간'이란 이분법을 제시한 이가 바로 그다. 이 유명한 강연문은 예전에 세계수필선 종류의 책에 번역/수록돼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만한 강연문도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수 없다는 게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