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분야의 책은 따로 분류하고 있진 않지만 '이주의 종교서'에 해당하는 책은 박노자의 <붓다를 죽인 부처>(인물과사상사, 2011)였다. 당장은 손에 들 여유가 없어서 제쳐놓았었는데, 막간을 이용해(목에다 파스를 붙이고 잠시 쉬고 있다) 기사라도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1. 10. 22) 대입 수험 기도·대형 불사 건립… 한국의 불교 지나치게 세속화"

"한국에서 불교는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을 내면화한 개신교와 정체성이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와 유착하고 기복의 상징처럼 돼 버린 건 불교 정신의 변질일 뿐이지요."

한국 사회의 국수주의, 자본주의 문제 등을 비판해온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이번에는 세속에 찌든 한국 불교에 죽비를 내리쳤다. 계간 인물과사상에 연재한 글을 묶은 <붓다를 죽인 부처>(인물과사상사 발행)에서다. 그가 불교를 화두로 삼았다는 게 언뜻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자신을 "남을 살리는 불교적 삶을 동경하는 불자"라고 자주 말해왔다. <우승열패의 신화>(2005)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2007) 같은 저서에서는 불교적인 생각을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는 고다마 싯다르타의 다른 명칭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음역되는 과정에서 한자 '불(佛)'이 됐고 다시 한국에서 '부처'라고 불렸다"며 "부처란 말은 한국화한 불교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붓다, 즉 원리불교를 죽이고 부처(한국화 된 불교)가 된 종교가 국가와 자본에 종속되거나 최소한 편안한 공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박 교수는 고향인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고등학생 시절 <법구경>을 읽으며 불교와 처음 만났다. 그가 불교에 '꽂힌' 이유는 연대와 상생이라는 불교의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 붕괴과정을 차례로 지켜보며 인간의 폭력성을 고민하던 당시, 상생과 비폭력을 설파했던 불교 경전은 '큰 충격이면서 감동'(44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불교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만난 불교는 자신이 경전으로 알던 불교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불교에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꼭 신이 있어야 종교가 되는 게 아니니까. 종교는 개인을 압도할 수 있는 인식의 패러다임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하죠. 불교가 세속화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책에서 '대입수험 기도' 같은 기복신앙, 대형 불사 추진 등 한국 불교계의 문제점을 두루 지적하며 불교가 한국에서 국가주의와 결탁해온 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테면 호국불교라는 말은 살인하는 부처 같은 모순적인 단어이지만 '세속오계'를 강조하는 국가(신라)의 지속적인 교육과 불교계의 묵인으로 거부감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기독교에는 문제가 없나"는 질문에 그는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이념이 되어버린 느낌"이라며 "대형 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면 가난을 신앙 부족으로 설명하거나 부자가 되는 걸 신이 바라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내면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불교의 형편도 기독교와 다르지 않다. 그는 "불교 역시 자본주의와 대립각을 세우는데 실패했고 크게 볼 때 두 종교가 다르지 않지만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힘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초기 불교 교리로 돌아가 '붓다'의 가르침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교를 신앙으로서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회와 우주를 사색하는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처음 이메일 인터뷰를 청했지만 그는 전화로 이야기 하자고 했다. "최근 10주간 육아휴직을 해서 9살, 10개월 된 두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편이 시간이 덜 걸린다는 이유였다. 자신의 한국학 수업은 다른 강사가 대신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박 교수는 "노르웨이는 복지가 잘 돼 있어 일반인이 자본주의 모순을 덜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반자본주의 시위도 여기서는 별로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저에게 종교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남과 연대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이지요."(이윤주기자) 

11. 10. 23.  

P.S. 짐작할 수 있지만 불교서적은 차고 넘친다(기독교서적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중 '교양 불교'로 분류할 만한 책 몇권을 골라놓는다. 읽은 책이 아니라 언젠가 읽어보려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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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1-10-23 19:32   좋아요 0 | URL
지금은 품절이지만, 불연 선생님의 불교개론강의도 좋은 책이지요.

로쟈 2011-10-23 20: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관련서가 너무 많아서, 저로선 종교학자들의 책을 고르게 됩니다...

2011-10-23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3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0-24 19:57   좋아요 0 | URL
여튼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모든 종교는 기복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욤..ㅎㅎ

로쟈 2011-10-26 08:26   좋아요 0 | URL
저는 한국적 허무주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과학분야의 이번주 관심도서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본능>(사이언스북스, 2011)이다. 원서는 'Catching Fire'이고 그 부제는 '어떻게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이다. '본능'이란 말 때문에 자연스레 떠올린 책은 <전쟁본능>(살림, 2010)인데, 전쟁이 인간의 일곱번째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이번주에 나왔다. 중국의 저술가 자오신산의 <전쟁호르몬>(시그마북스, 2011). 전작인 <천재적인 광기와 미친 천재성>(시그마북스, 2010)도 사두긴 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 생소한 저자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해놓은 상태다. 긴가민가하지만 <전쟁본능>도 구해놓은 터라 <전쟁호르몬>도 주문은 넣었다. 물론 먼저 읽을 책은 <요리본능>이다.    

서울신문(11. 10. 22) 요리를 시작한 인류, 진화에 속도를 붙이다

야구 좋아하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에 갔다고 치자. 대략 6만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이다. 당신 오른편엔 할머니를, 그 옆부터는 증조할머니 등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며 순서대로 유령들을 앉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왼편에서 누군가 툭툭 치며 알은체를 할 게다. 할머니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그 원시 인류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당신에게 오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무엇일까. 



그 답을 ‘요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인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랭엄이 지은 ‘요리 본능’(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골자다. 랭엄은 책을 통해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의 등장”이라고 주장한다. ‘불에 익혀 먹는 행위’, 즉 요리가 인간의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적·심리적·사회적 변화로 이어져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침팬지의 먹이 행동과 생태, 인류의 생활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지의 원시 부족들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 그리고 선행 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을 기반으로 더욱 공고한 설득력을 갖는다.  

불에 익힌 음식은 맛도 좋지만 소화율도 높다. 그 덕에 인간의 몸이 소화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됐다. 이뿐 아니다. 가열 조리는 세균이나 각종 병원균을 제거해 보다 안전하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날것을 씹을 때보다 품도 덜 든다. 이때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인간은 이를 품이 많이 드는 사냥 등에 투자했다. 게다가 날것에 비해 익힌 음식에서 추가 에너지가 생기고, 소화 기관이 줄어들며 절약하게 된 에너지와 합쳐져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큰 용량의 뇌를 갖게 됐다.  

랭엄은 불에 먹거리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역설한다. 유인원 같은 모습을 벗어 던지고 더 이상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 대형 육식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되레 이들과 맞서 싸우며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가에 모여 앉아 사냥한 먹이를 나눠 먹으며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 등을 발달시켰고, 사냥을 하는 자와 요리를 하는 자라는 성별 분업과 결혼이라는 남녀 간의 제도적 결합도 탄생시켰다. 이처럼 익힌 음식으로부터 얻은 풍부한 열량은 지구상 그 어느 종보다 큰 두뇌를 가질 수 있게 한 데 더해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요리다.(손원천기자) 

11. 10. 22. 

 

P.S. 요리 얘기가 나온 김에 거들자면, 이탈리아 요리계의 '스타 셰프'로 통하는 박찬일의 신작도 이번주에 나왔다. <어쨌든, 잇태리>(난다, 2011). 내가 추천사를 썼던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코리아, 2010)의 감수를 본 이가 박찬일 셰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엊그제도 들렀던 홍대 앞 레스토랑 '라꼼마'의 주방장이므로 인연이 아예 없진 않다. 음, 주말엔 어쨌든,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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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2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2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데르센과 동화작가의 진실

주말 북리뷰를 대충 훑어보다가 발견한 책은 '주석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주석달린 안데르센 동화집>(현대문학, 2011)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을 좀더 증보할 일이 있어서 안 그래도 책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침 최적의 판본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냉큼 주문을 넣고 소개칼럼은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10. 22) 안데르센 동화에 첨부한 ‘불편한 진실’

안데르센 이야기를 빼놓고 어린 날의 ‘도덕’이란 걸 이야기하긴 힘들다. 아이들은 ‘미운 오리 새끼’를 읽으며 언젠가 찾아올 비상을 기다릴 줄 알게 되고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며 동정심을 알게 되었다. ‘인어 공주’를 읽으면서 자신의 전부를 거는 슬프고 맹목적인 사랑이란 게 있다는 걸 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안데르센 동화집을 다시 읽으니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온다. <주석 달린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은 ‘황제 폐하의 새 옷’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황제가 사기꾼들에게 속는 장면부터 새롭다. 사기꾼들은 자신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쁜 옷감을 짤 수 있는데 그 옷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자신의 직위에 맞지 않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황제는 자신의 새 옷으로 왕국에서 누가 제 직위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 어린 시절 기억과는 다르다.

나는 어려서 사기꾼들이 신비로운 옷감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며 사람들을 속여 넘긴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란 게 들통날까 두려워 속아 넘어가는 걸로 알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착한 사람이고 싶어서 내키진 않아도 속아주는 그런 전전긍긍은 어딘지 인간적으로 공감이 가는 구석이 있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냐 아니냐, 자신이 어떤 존재냐를 결정하는 것은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은 책에서 황제를 포함해 그 옷을 본 모든 대신들은 옷감이 보이질 않자 ‘아니 어떻게 내가 내 지위에 맞지 않을 수 있어?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아야지’란 생각으로 위선을 떨게 된다. 사람들이 용기와 정직함을 잃게 되는 동기가 도덕이 아니라 지위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사실은 현대의 정치판에 비추어 볼 때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 어른들이 작은 것 하나에도 자기 이해관계와 평판이 걸려 조마조마해할 때 한 어린아이가 “하지만 폐하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한다. 아무런 계산도 없는 순수한 마음은 늘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무 목적이 없음.’ 이것이 결과적으로 어린아이를 용기 있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도 그렇게 행동하면, 그러니까 직위를 차지하려는 목적에 연연하지 않았다면, 황제의 새 집, 아니 새 옷에 대해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갖게 됐을 것이다.

‘황제 폐하의 새 옷’에는 신나는 순간이 한 번 더 있다. 어린아이가 진실을 말한 다음에 어른들이 수군수군 그 말을 옆에서 옆으로 전하다가 마침내 다 같이 “그래, 폐하는 아무것도 입지 않으셨어”라고 외칠 때다. 여기서 “폐하가 벌거벗었다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란 냉소주의자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중요한 변화들은 바로 진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선함, 현명함, 그 외의 다른 많은 덕성들이 발휘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무서운 이야기 하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무서운 이야기는 “폐하가 벌거벗은 걸 눈앞에 보고서도 어떤 아이도 폐하는 벌거벗었대요! 라고 외치지 않았다”로 끝난다.(졍혜윤_CBS 피디) 

1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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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산을 처음 학계에 알린 최익한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에 주목하게 된 책이 최익한의 <실학파와 정다산>(서해문집, 2011)이다. 월북 지식인이기에 국내에서는 거의 잊혀진 그를 재발견한 송찬섭 교수에 따르면 최익한은 “한문과 사회과학의 소양을 겸비한 근대의 최고 지식인”이었다. 거기에 <실학파와 정다산>은 현존 실학 연구의 최고 저작이라 한다. 다산뿐만 아니라 우리 학문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  

 

경향신문(11. 10. 15) “다산을 세상에 알린 근대 지식인 ‘학계에서 소외된’ 최익한 재평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저작 500여권이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사후 100년이 지나서였다. 1936년 신조선사는 당시 한반도에 불어닥친 국학열(熱)을 업고 여유당전서 출간에 들어간다. 앞서 고종 광무연간에 <목민심서>와 <흠흠신서>가 간행되긴 했지만 <경세유표> <마과회통> <논어고금주> 등 다산 저작 전부가 한데 묶인 것은 처음이다. 여유당전서 편찬은 식민지시대 출판계의 최대 사건이었다. 다산의 수고(手稿) 500여권을 한데 모은 여유당전서 편찬에는 당대 최고 국학자 정인보와 민세 안재홍이 교정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즈음 최익한(1897~?)은 동아일보에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독(讀)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여유당전서에 대한 최초의 논설이었다. 글은 65회까지 이어졌고 최익한은 “여유당전서를 완독한 최초의 학자”(다산연구가 정해렴)가 되었다. 

최익한의 다산 연구는 1948년 월북 이후 본격화됐다. 북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되면서 국학 연구에 몰두한 최익한은 1955년 여유당전서 독서를 바탕으로 <실학파와 정다산>이라는 저작을 출간했다. 다산과 실학에 대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였다.

다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산을 처음 학계에 알린 최익한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 최익한을 소개하면서 독립운동가 최익환과 헷갈려 적었다. 백남운, 이청원, 인정식 등 월북 학자 계보에서도 최익한은 빠져 있다.

송찬섭 한국방송통신대 교수(55·한국사·사진)는 “최익한의 중요 저작이 북에서 발간된 데다 대학에 몸담지 않아 제자가 없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교수가 최익한 전집을 내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학계에서 소외된’ 최익한을 재평가하겠다는 뜻이 크게 작용했다.

송 교수가 최익한을 ‘발굴’한 것은 20여년 전이었다. 그는 경남 산청의 한 유학자 서재에서 <실학파와 정다산>을 발견한 뒤 1989년 이를 국내 한 출판사에 건넸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당국의 북한 서적 검열에 걸려 회수당했다. 그러나 최익한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갔다. 송 교수는 역사학회지에 최익한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며 그를 알리기에 나섰다.

최익한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한학자이자 문화사학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다. 고향 경북 울진에서 한학을 공부한 그는 사회주의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6년간 복역했다. 여유당전서를 소개할 무렵에는 정약용 연구에 몰두하며 국학 연구에 적극 참여했다. 그가 해방 전후에 남긴 저작은 <실학파와 정다산> <조선사회정책사>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 <강감찬장군> 등이 있다.

송 교수는 최익한을 “한문과 사회과학의 소양을 겸비한 근대의 최고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 최익한 전집의 제1권으로 나온 <실학파와 정다산>의 경우 조선 후기의 정치사와 경제사를 바탕으로 실학파의 사상과 학설을 체계적으로 풀어냈다. 한국 실학의 명칭, 개념은 이 책에서 유래했으며 정약용을 “실학 집대성자”라고 지칭한 것도 이 책이 처음이다.

송 교수는 “<실학파와 정다산>은 조선의 사회·정치·경제는 물론 서학·대외관계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며 현존 실학 연구의 최고 저작으로 꼽았다. 또 <조선사회정책사>는 조선의 구휼·진휼정책을 근대의 ‘복지’ 개념을 적용시켜 분석한 “국내 최초의 사회복지학 저서”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최익한의 단행본 저서뿐 아니라 ‘여유당전서를 독함’ 등 신문 기고문, 논문 등도 모아 7~8권의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익한 연구는 “한 사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학제 간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조운찬 선임기자) 

1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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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8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요하네스 발라허의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대림북스, 2011)을 거리로 삼았다. 독어 원제는 '더 가치 있는 행복'이란 뜻인 듯싶다. '윤리경제학'에 대응하여 '경제윤리학'의 자리와 의의에 대해서 짚어주는 책으로 읽었다.  

  

매경이코노미(11. 10. 26) 소득이 더 많으면 더 행복하다고?

한 가지 실험에서 시작해보자. 당신이라면 다음 두 가지 세계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두 세계가 가격과 구매력에서 조건은 동일하다. 첫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 소득은 5000만원인 반면 사회 전체의 연평균 소득은 2500만원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 소득은 1억원인 반면에, 사회 전체의 연평균 소득은 2억원이다. 독일의 경제윤리학자 요하네스 발라허가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의 머리말에서 들고 있는 선택지에다 단위만 유로에서 원화로 바꿨다. 절대소득은 두 번째가 더 높지만, 평균소득과 비교한 상대소득은 첫 번째가 더 높다는 게 핵심적인 차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실험에서 피설문자의 절반 가까이가 첫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고 한다. 절대소득보다는 자신의 소득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또 한 가지 실험이 있다. 역시 두 가지 세계가 있다. 첫 번째 세계에서는 당신에게 2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균 연차휴가는 1주일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당신에 4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균은 8주다. 이번에도 두 번째 세계가 절대 휴가일은 더 많지만 평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실험에서는 피실험자의 절대 다수가 두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 휴가일이 다른 사람들의 절반밖에 안 되더라도 첫 번째 세계보다는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리하면 소득의 경우에는 남들과의 비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가에서는 상대적 비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이 두 실험결과를 통해서 ‘더 높은 소득은 곧 더 큰 행복’이라는 일반적 공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행복에 관한 그런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 전체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경제와 윤리의 결합이다. 경제와 윤리를 서로 별개 영역으로 간주하기 쉽지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더 오래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경제(economy)라는 말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것이며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가계를 꾸려나가는 일을 뜻했다. 그런데 이 가계경영으로서의 경제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엔 더 높은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것은 시민의 성공적인 삶, 흔히 행복이라 불리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위한 수단이었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또한 윤리철학자로서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경제와 윤리는 애초에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그런 분리가 비롯된 것은 사상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칸트부터이다. 칸트는 행복을 윤리학의 핵심 범주로 다루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이므로 행복에 대한 보편적 진술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러한 판단을 계승해 경제학의 신고전학파는 행복이나 이익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린다. 행복 대신 이윤만이 경제학의 관심사가 된 배경이자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탄생하게 된 맥락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가진 수단을 이용하여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내는 ‘경제적 인간’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 추구’는 ‘이익의 극대화’와는 별개의 문제로 간주됐다. 아니 소득이 올라가면 행복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소득과 행복 사이의 긍정적 상관성은 1만 달러 정도가 한계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는 나라들의 경우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소득의 한계효용 체감’ 현상이다. 이 단계에서는 소득보다도 건강과 교육수준, 민주적 참정권, 안정된 직업과 사회적 기회 보장, 투명성 등이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변화된 상황에서도 국민소득만을 행복의 지표로 내세운다면 좀 멋쩍은 일이다

1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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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1-10-1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한하게도 이번에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계에서 노벨상이 나왔더군요.....
한 쪽에서는 反 월가 시위하고 있는데요...^^;

로쟈 2011-10-19 22:31   좋아요 0 | URL
비주류 학자가 수상했다면 그게 희한한 일이겠죠.^^;

헌내 2011-10-21 09:39   좋아요 0 | URL
엇,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는 나름(?) 비주류 아닐까요? ㅋ~

로쟈 2011-10-22 09:08   좋아요 0 | URL
'나름'으론 그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