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8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요하네스 발라허의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대림북스, 2011)을 거리로 삼았다. 독어 원제는 '더 가치 있는 행복'이란 뜻인 듯싶다. '윤리경제학'에 대응하여 '경제윤리학'의 자리와 의의에 대해서 짚어주는 책으로 읽었다.  

  

매경이코노미(11. 10. 26) 소득이 더 많으면 더 행복하다고?

한 가지 실험에서 시작해보자. 당신이라면 다음 두 가지 세계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두 세계가 가격과 구매력에서 조건은 동일하다. 첫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 소득은 5000만원인 반면 사회 전체의 연평균 소득은 2500만원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 소득은 1억원인 반면에, 사회 전체의 연평균 소득은 2억원이다. 독일의 경제윤리학자 요하네스 발라허가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의 머리말에서 들고 있는 선택지에다 단위만 유로에서 원화로 바꿨다. 절대소득은 두 번째가 더 높지만, 평균소득과 비교한 상대소득은 첫 번째가 더 높다는 게 핵심적인 차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실험에서 피설문자의 절반 가까이가 첫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고 한다. 절대소득보다는 자신의 소득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또 한 가지 실험이 있다. 역시 두 가지 세계가 있다. 첫 번째 세계에서는 당신에게 2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균 연차휴가는 1주일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당신에 4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균은 8주다. 이번에도 두 번째 세계가 절대 휴가일은 더 많지만 평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실험에서는 피실험자의 절대 다수가 두 번째 세계를 선택했다. 휴가일이 다른 사람들의 절반밖에 안 되더라도 첫 번째 세계보다는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리하면 소득의 경우에는 남들과의 비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가에서는 상대적 비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이 두 실험결과를 통해서 ‘더 높은 소득은 곧 더 큰 행복’이라는 일반적 공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행복에 관한 그런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 전체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경제와 윤리의 결합이다. 경제와 윤리를 서로 별개 영역으로 간주하기 쉽지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더 오래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경제(economy)라는 말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것이며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가계를 꾸려나가는 일을 뜻했다. 그런데 이 가계경영으로서의 경제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엔 더 높은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것은 시민의 성공적인 삶, 흔히 행복이라 불리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위한 수단이었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또한 윤리철학자로서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경제와 윤리는 애초에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그런 분리가 비롯된 것은 사상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칸트부터이다. 칸트는 행복을 윤리학의 핵심 범주로 다루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이므로 행복에 대한 보편적 진술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러한 판단을 계승해 경제학의 신고전학파는 행복이나 이익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린다. 행복 대신 이윤만이 경제학의 관심사가 된 배경이자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탄생하게 된 맥락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가진 수단을 이용하여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내는 ‘경제적 인간’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 추구’는 ‘이익의 극대화’와는 별개의 문제로 간주됐다. 아니 소득이 올라가면 행복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소득과 행복 사이의 긍정적 상관성은 1만 달러 정도가 한계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는 나라들의 경우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소득의 한계효용 체감’ 현상이다. 이 단계에서는 소득보다도 건강과 교육수준, 민주적 참정권, 안정된 직업과 사회적 기회 보장, 투명성 등이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변화된 상황에서도 국민소득만을 행복의 지표로 내세운다면 좀 멋쩍은 일이다

1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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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1-10-1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한하게도 이번에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계에서 노벨상이 나왔더군요.....
한 쪽에서는 反 월가 시위하고 있는데요...^^;

로쟈 2011-10-19 22:31   좋아요 0 | URL
비주류 학자가 수상했다면 그게 희한한 일이겠죠.^^;

헌내 2011-10-21 09:39   좋아요 0 | URL
엇,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는 나름(?) 비주류 아닐까요? ㅋ~

로쟈 2011-10-22 09:08   좋아요 0 | URL
'나름'으론 그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