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분야의 이번주 관심도서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본능>(사이언스북스, 2011)이다. 원서는 'Catching Fire'이고 그 부제는 '어떻게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이다. '본능'이란 말 때문에 자연스레 떠올린 책은 <전쟁본능>(살림, 2010)인데, 전쟁이 인간의 일곱번째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이번주에 나왔다. 중국의 저술가 자오신산의 <전쟁호르몬>(시그마북스, 2011). 전작인 <천재적인 광기와 미친 천재성>(시그마북스, 2010)도 사두긴 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 생소한 저자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해놓은 상태다. 긴가민가하지만 <전쟁본능>도 구해놓은 터라 <전쟁호르몬>도 주문은 넣었다. 물론 먼저 읽을 책은 <요리본능>이다.    

서울신문(11. 10. 22) 요리를 시작한 인류, 진화에 속도를 붙이다

야구 좋아하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에 갔다고 치자. 대략 6만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이다. 당신 오른편엔 할머니를, 그 옆부터는 증조할머니 등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며 순서대로 유령들을 앉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왼편에서 누군가 툭툭 치며 알은체를 할 게다. 할머니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그 원시 인류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당신에게 오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무엇일까. 



그 답을 ‘요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인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랭엄이 지은 ‘요리 본능’(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골자다. 랭엄은 책을 통해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의 등장”이라고 주장한다. ‘불에 익혀 먹는 행위’, 즉 요리가 인간의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적·심리적·사회적 변화로 이어져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침팬지의 먹이 행동과 생태, 인류의 생활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지의 원시 부족들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 그리고 선행 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을 기반으로 더욱 공고한 설득력을 갖는다.  

불에 익힌 음식은 맛도 좋지만 소화율도 높다. 그 덕에 인간의 몸이 소화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됐다. 이뿐 아니다. 가열 조리는 세균이나 각종 병원균을 제거해 보다 안전하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날것을 씹을 때보다 품도 덜 든다. 이때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인간은 이를 품이 많이 드는 사냥 등에 투자했다. 게다가 날것에 비해 익힌 음식에서 추가 에너지가 생기고, 소화 기관이 줄어들며 절약하게 된 에너지와 합쳐져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큰 용량의 뇌를 갖게 됐다.  

랭엄은 불에 먹거리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역설한다. 유인원 같은 모습을 벗어 던지고 더 이상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 대형 육식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되레 이들과 맞서 싸우며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가에 모여 앉아 사냥한 먹이를 나눠 먹으며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 등을 발달시켰고, 사냥을 하는 자와 요리를 하는 자라는 성별 분업과 결혼이라는 남녀 간의 제도적 결합도 탄생시켰다. 이처럼 익힌 음식으로부터 얻은 풍부한 열량은 지구상 그 어느 종보다 큰 두뇌를 가질 수 있게 한 데 더해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요리다.(손원천기자) 

11. 10. 22. 

 

P.S. 요리 얘기가 나온 김에 거들자면, 이탈리아 요리계의 '스타 셰프'로 통하는 박찬일의 신작도 이번주에 나왔다. <어쨌든, 잇태리>(난다, 2011). 내가 추천사를 썼던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코리아, 2010)의 감수를 본 이가 박찬일 셰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엊그제도 들렀던 홍대 앞 레스토랑 '라꼼마'의 주방장이므로 인연이 아예 없진 않다. 음, 주말엔 어쨌든,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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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2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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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2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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