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과 동화작가의 진실

주말 북리뷰를 대충 훑어보다가 발견한 책은 '주석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주석달린 안데르센 동화집>(현대문학, 2011)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을 좀더 증보할 일이 있어서 안 그래도 책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침 최적의 판본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냉큼 주문을 넣고 소개칼럼은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10. 22) 안데르센 동화에 첨부한 ‘불편한 진실’

안데르센 이야기를 빼놓고 어린 날의 ‘도덕’이란 걸 이야기하긴 힘들다. 아이들은 ‘미운 오리 새끼’를 읽으며 언젠가 찾아올 비상을 기다릴 줄 알게 되고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며 동정심을 알게 되었다. ‘인어 공주’를 읽으면서 자신의 전부를 거는 슬프고 맹목적인 사랑이란 게 있다는 걸 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안데르센 동화집을 다시 읽으니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온다. <주석 달린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은 ‘황제 폐하의 새 옷’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황제가 사기꾼들에게 속는 장면부터 새롭다. 사기꾼들은 자신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쁜 옷감을 짤 수 있는데 그 옷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자신의 직위에 맞지 않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황제는 자신의 새 옷으로 왕국에서 누가 제 직위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 어린 시절 기억과는 다르다.

나는 어려서 사기꾼들이 신비로운 옷감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며 사람들을 속여 넘긴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란 게 들통날까 두려워 속아 넘어가는 걸로 알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착한 사람이고 싶어서 내키진 않아도 속아주는 그런 전전긍긍은 어딘지 인간적으로 공감이 가는 구석이 있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냐 아니냐, 자신이 어떤 존재냐를 결정하는 것은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은 책에서 황제를 포함해 그 옷을 본 모든 대신들은 옷감이 보이질 않자 ‘아니 어떻게 내가 내 지위에 맞지 않을 수 있어?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아야지’란 생각으로 위선을 떨게 된다. 사람들이 용기와 정직함을 잃게 되는 동기가 도덕이 아니라 지위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사실은 현대의 정치판에 비추어 볼 때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 어른들이 작은 것 하나에도 자기 이해관계와 평판이 걸려 조마조마해할 때 한 어린아이가 “하지만 폐하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한다. 아무런 계산도 없는 순수한 마음은 늘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무 목적이 없음.’ 이것이 결과적으로 어린아이를 용기 있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도 그렇게 행동하면, 그러니까 직위를 차지하려는 목적에 연연하지 않았다면, 황제의 새 집, 아니 새 옷에 대해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갖게 됐을 것이다.

‘황제 폐하의 새 옷’에는 신나는 순간이 한 번 더 있다. 어린아이가 진실을 말한 다음에 어른들이 수군수군 그 말을 옆에서 옆으로 전하다가 마침내 다 같이 “그래, 폐하는 아무것도 입지 않으셨어”라고 외칠 때다. 여기서 “폐하가 벌거벗었다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란 냉소주의자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중요한 변화들은 바로 진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선함, 현명함, 그 외의 다른 많은 덕성들이 발휘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무서운 이야기 하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무서운 이야기는 “폐하가 벌거벗은 걸 눈앞에 보고서도 어떤 아이도 폐하는 벌거벗었대요! 라고 외치지 않았다”로 끝난다.(졍혜윤_CBS 피디) 

11.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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