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서 아이가 늦게 잠이 들었다. 할일이 태산보다도 1센티는 더 높이 쌓여 있건만 아이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계시라도 받아야겠다. 사실 준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 갑론을박 꼭지에 실은 글이 동화작가 안데르센에 관한 것이니까. 다만 문제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아니라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것. 이런 글로 아이가 만족할 리는 만무하다. 나대로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고교 독서평설(09년 5월호) 순수한 동심의 상징 VS. 상처받은 쓸쓸한 영혼  

덴마크의 천재 동화 작가, 안데르센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가 ‘동화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덕분이다. 구전 설화에서 시작된 동화를 하나의 문학 장르로 만든 사람, 156편에 이르는 많은 이야기를 창작해 냄으로써 ‘동화의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얻은 사람, 그가 바로 전 세계 어린이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다.  

동화가 어린이의 삶에 중요한 문화적·정신적 자양분이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W. 워즈워스)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작가로서 안데르센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진다. 자신의 특이한 외모를 조롱하던 이들을 향해, “언젠가 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 성공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할 거야. 나는 세계적인 천재로서, 호메로스와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파르나소스 산에 오를 거야.”라고 다짐했던 그의 꿈이 과연 사후(死後)의 명성을 통해서 실현된 것일까. 푸르른 5월을 맞아 이달에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 세계를 살펴보면서, 동화라는 장르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환상 속에 숨겨져 있는 불행한 현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여느 전기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흔히 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어릿광대’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창작은 고치고 또 고친 육필 원고의 흔적들이 보여 주는 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도,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실의 쓰라림보다는 견딜 만한 것이었다.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의 가장 궁벽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은 스물두 살의 구두 수선공이었고, 어머니 안네 마리는 서른 살의 세탁부였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재능이 넘치며 순수한 시적 정서를 간직한 남자”로, 어머니를 “사랑으로 가득 찬 분”으로 묘사했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행복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다만 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가끔 그림으로 연극을 꾸며 보여 줄 때만 행복해 보였다. 편지를 읽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름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럼에도 아들은 무척 아꼈으며, 그가 자신에 비해서 얼마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지를 자주 일러 주곤 했다. 홀어머니의 강요 때문에 구걸에 나서야 했고, 구걸을 못하면 다리 밑에 앉아 하루 종일 울곤 했던 것이 어머니 안네 마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성냥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녀가 성냥 불빛에 의지해 잠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으려 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아름다운 동화’라기보다는 ‘잔혹 동화’에 가깝다. 이 동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사람들은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새해 아침에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영광스런 나라로 갔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이것을 ‘동화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맨발로 어두운 밤거리를 서성거려야 했던 성냥팔이 소녀의 현실은 분명 냉혹하며 비극적이다. 성냥 불빛으로 밝히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둡고, 그 불꽃으로 몸을 데우기에는 한겨울의 추위가 너무 매섭다. 하지만 그녀는 성냥 불빛 속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죽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 곁으로 가기를 소망하고, 결국 그 소원을 이룬다. 소녀의 환상(판타지)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그러한 환상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현실은 너무 무자비할 것이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를 쓰면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이 너무도 분명하게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잠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때,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고향 오덴세에 가지 않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고통이 막을 내렸습니다. 불효자인 저는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 드리지 못했습니다.”라며 애도의 눈물을 뿌렸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현실에서가 아니라 그의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이를 ‘동화 작가의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안데르센은 언제나 동화나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만 외부와 소통했다. 아니,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서만 그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비루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성냥팔이 소녀』는 그의 동화에 대한 동화로도 읽힌다.

상류 사회를 향한 끝없는 욕망
가난한 하층 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성장하면서 ‘타고난 고귀함’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된 안데르센은 작가로 성공한 뒤에는 자신이 속했던 하층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거의 강박 관념에 빠진 사람처럼 자서전을 썼다. 이미 스물일곱 살 때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행복하고 온갖 신나는 일로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자서전을 쓰고, 거의 10년마다 새로운 내용을 보탰다. 남의 집 빨래를 해 주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간 가난하고 무지한 여인의 아들과, 온 유럽에 명성을 떨치면서 여러 나라의 군주와 사교계 명사들의 친구가 된 작가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했다는 것이 전기 작가들의 분석이다.   

안데르센은 ‘시인’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재능은 상류 계급에게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청년 안데르센이 수도 코펜하겐으로 올라왔을 때 그의 후원자 역할을 해 준 요나스 콜린(Jonas Collin) 같은 인물이 그 상류 계급의 대표적 인사다. 콜린은 그 당시 재정부 장관이자 은행 설립자요, 극단 대표였고 예술가 후원 재단의 사무관이었다. 인자하지만 독재적인 콜린은 곧 안데르센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안데르센과 콜린의 관계는 안데르센이 자서전에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지만 나는 아버지(콜린)가 정말로 무서웠다. 그 이유는 내 인생의 행복, 아니 내 온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한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콜린은 안데르센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버지도 아시지요. 제가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란 사실을 아버지가 알아주시는 것,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자부심이자 기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라는 고백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  

콜린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고 안데르센은 비슷한 연배의 그들과 자주 어울렸지만, 그들 틈에서 안데르센은 종류가 전혀 다른 생물처럼 보였다. 단단한 체구에 사각형 얼굴, 짙은 색 머리칼을 지닌 콜린 가족에 비해서 비쩍 마르고 길쭉한 몸에 새의 부리처럼 입이 튀어나온 안데르센의 외모는 말 그대로 ‘미운 오리 새끼’를 연상시킨다.   

안데르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미운 오리 새끼』는 알다시피 정체성에 관한 동화다. 엉뚱하게 오리 둥지에서 깨어난 ‘미운 오리 새끼’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차별과 따돌림을 당한다. “내가 못생겨서 모두들 날 싫어하는 거야.”라고 생각한 미운 오리 새끼는 고향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렇게 잔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미운 오리 새끼는 아름다운 백조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헤엄쳐 간다. 오리들에게 쪼이고 닭에게 맞고 겨울에 굶주려 죽느니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바로 그때 미운 오리 새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 백조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부터 그의 참모습은 백조였기 때문에 오리에게서 태어난 것쯤은 아무런 허물도 아니었다.”는 이야기 속 화자의 언급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윽고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가 닭장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으로 이 동화는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주변의 냉대와 차별도 잘 견뎌 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동화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반복적인 학교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이 조금 더 인내를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혹 내가 미운 오리 새끼는 아닐까?’, ‘백조다운 본질을 되찾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그래도 성냥 불빛보다는 환한 전조등이 되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동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계급적·우생학적 전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일단 고상한 ‘백조’와 평범한 ‘오리’라는 전혀 다른 종의 구분이 있으며, 이들 간의 우열 관계는 이 동화에서 전혀 의심되지 않는다. 이들의 각기 다른 운명은 ‘아름다운 정원’과 ‘농장’이란 공간적 대비에서도 확인된다. 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가 열등한 하층 계급 동물들에게 구박받고 쫓겨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아기 백조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 백조’는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는 게 낫다고까지 여긴다. 여기서 안데르센은 평민들의 운명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표현한다. 하층 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 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생 역전을 보여 주는 듯한 동화지만, 현실에서 안데르센의 운명은 ‘미운 오리 새끼’의 운명보다 덜 행복한 편이었다. 자신이 ‘백조’라는 걸 확인한 뒤 “미운 오리 새끼였을 때, 난 이런 큰 행복은 꿈꾸지도 못했어요!”라고 기뻐하는 ‘백조’와 달리, 안데르센은 자신의 재능과 정체성에 대해서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콜린 집안이었지만 그 고향은 그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더불어 안데르센은 자신이 선택받은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검증 필요성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가 평생 동안 신경 질환과 정신 장애에 시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다른 대표작 『인어 공주』에서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높은 분들’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인어 공주는 물 밖으로 빠져나와 왕족들 사이로 걸어 다니기 위해 꼬리가 다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리로 걷거나 춤출 때마다 칼날 같은 아픔을 감수한다. 그녀는 자신이 왕자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데도, 자기 부류, 자신의 계급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부정과 함께 다만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할 따름이다.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
하지만 이런 것이 안데르센이 보여 준 동화적 윤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에 대한 가장 탁월한 반전은 말년작 『정원사와 주인 나리』를 통해서 제시된다. 주인공 정원사의 일은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오래된 성에서 오만한 귀족 주인의 정원을 돌보는 것이다. 주인은 그의 충고를 듣지도 않고 실력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단지 왕실에서만 그의 실력을 최고로 인정해 주는데, 그렇다고 정원사는 잘난 척하거나 자만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그리하여 결국엔 덴마크 전역에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주인 부부는 정원사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이기 때문에. 그런데 주인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점잖은 사람들’이어서. 이러한 줄거리 속에는 안데르센이 인생의 말년에 도달하게 된 성찰적 아이러니가 반영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정원사는 안데르센 자신이며, 주인 나리는 콜린가(家) 사람들을 비롯한 그의 후견인들이자 덴마크의 상층 계급이다. 그들은 안데르센을 끝내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만 괜찮은 ‘대중 작가’ 정도로 치부했다. 안데르센은 그들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평생에 걸쳐 상층 계급을 모범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를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고통과 굴욕, 모멸과 고문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의 동화가 ‘문명화의 도구’로서 기능하면서도 ‘전복을 꿈꾸는 상상’일 수 있는 가능성은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한다. 안데르센은 비록 비굴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이 우러러보았던 가치를 동시에 혐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09.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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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데르센 동화의 불편한 진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21 22:59 
    주말 북리뷰를 대충 훑어보다가 발견한 책은 '주석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주석달린 안데르센 동화집>(현대문학, 2011)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을 좀더 증보할 일이 있어서 안 그래도 책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침 최적의 판본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냉큼 주문을 넣고 소개칼럼은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11. 10. 22) 안데르센 동화에 첨부한 ‘불편한 진실’안데르센 이야기를 빼놓고 어린 날의 ‘도덕’이란 걸 이야기하긴 힘들
 
 
2009-05-05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5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이] 2009-05-05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원밖에 안되는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있었다니!!!!!! 정보고맙습니다

로쟈 2009-05-05 13:53   좋아요 0 | URL
네, 현대지성사판은 너무 비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