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주말마다 반복하는 일은 필요한 책을 찾다가 포기하는 것이다(가끔 찾을 때도 있다). 내주 강의할 모리 오가이의 책을 찾다가(<아베 일족>도 방에서 못 찾아서 어제 다시 구입했건만 다른 책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서 들고온 책이 박정대의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다. 재작년 가을에 나왔군.
잠시 펼쳐보았다가 덮어둔 기억이 있는데, 다시 펼쳐보아도 마찬가지다. 이 시인의 시집은 <단편들>(세계사)이 가장 좋았다. 1997년에 펴낸 첫 시집. 1990년에 등단했으니 첫 시집이 더디 나온 셈이었다. 32살 때의 첫 시집이면 많이 늦은 건 아니지만. 첫 시집에 대한 긍정적 인상 때문에 이후에 나온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아무르 기타> 등의 시집도 구해본 기억이 있다. 아마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 건 음악에 대한 취향 때문인 듯.
프로필에서 시인은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중˝이라고 적는다. 그럼 많은 게 이해가 된다. 이 시집의 온갖 자기도취적 말들이. 횡설수설이. 흥얼거림이. ‘전직 천사‘라는 자기소개가. 그리고 이런 고백이.
˝사실 나는 시를 쓸 때 어떤 구절을 쓰는지 신경쓰지 않을 때가 많다, 계속 음악만 듣는다, 가령 내가 좋은 시인이라면 분명히 괜찮은 구절들을 제대로 써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시를 그 음악에 매치시키는 데 더 집중한다.˝
인용한 대목을 포함한 50여 쪽의 기분기술(‘자동기술‘에 견주어)에 ‘의기양양‘이란 제목을 붙인 건 정확해 보인다. 그의 시는(시라고 한다면) 의기양양한 자기도취의 시이다(해설도 자신이 쓴다).
개인적인 유감은 젊은 시절의 빛나는 시들을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점. ˝시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씌어졌고 그것도 영원히 씌어졌으며 나는 그저 시를 발견할 뿐이다˝라는 진술에 기대면 나는 그가 ‘물질적 황홀‘들(<단편들>)을 발견하던 때가 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홀 말이다(시집을 지금 갖고 있지 않아서 정확한 인용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간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 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시선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위장처럼 나부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만이 죽음을 피해갔다, 음습한
관에서 부활하듯 나는 외출한다, 가로수들이 읽고 있는 거리
거리는 간판들의 무표정과 행인들의 그림자를 안고
도시의 페이지 속에 서표처럼 꽂혀 있다,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봄볕에 불탄다, 유곽과 성당을 지나온 나의 긴 그림자
나는 읽혀지지 않는 한 권의 책과 싸우듯
그렇게 걸으며, 이 거리가 나에게 전해주는 불임의 페이지를
피가 마르듯 그렇게 외로운 가슴의 강들을 스쳐지나며
씨팔, 모든 강들 흘러가 아우성치며 만날
바다를 생각하였다 죽음보다도 깊을
바다의 사랑을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