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사뿐만 세계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가이기에 발자크 소설은 언제든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한데 문학독자라면 그 관심이 독서와는 별개라는 점도 숙지하고 있다. ‘너무 많이 쓴 작가‘의 대명사가 또한 발자크이기에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가 곧장 문제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고 나의 원칙은 <고리오 영감>(1835)을 필독서로 하고 나머지 작품은 선택사항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강의에서도 <고리오 영감> 외에는 <루이 랑베르>를 읽은 게 유일하다.

그런 입장이기에 발자크의 신간이 반갑지만은 않다. <13인당 이야기>(문학동네)라니? 듣도보도 못한 작품인데 조사를 해보고 나서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세 편의 작품을 하나로 묶어서 ‘13인당 이야기‘라고 통칭하는 것. 어떤 이야기인가?

˝<13인당 이야기>는 13인당이라는 비밀결사 조직 구성원들의 사랑과 복수를 다룬 소설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자크의 작품 중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이 처음 사용된 소설이며, 훗날 ‘인간극’ 전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 파리 역시 여기에서 처음으로 이야기의 중심 요소로 등장한다. 19세기 초 파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왕정복고 시기 도시사적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불어판으로는 한권으로 합본돼 있는 듯하지만 위키백과에 따르면 두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중편(노벨라)으로 구성돼 있다.

페라귀스(1833)
랑제 공작부인(1834)
황금 눈의 여인(1833)

이 가운데 ‘황금눈의 여인‘이 중편으로 분류돼 있다. 전체 분량이 600쪽 가량이니까 장편으로 분류되는 나머지 두 편도 두꺼운 편은 아니다.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게 1829년부터이므로 30대 중반에 발표한 이들 소설은 초기작에 해당한다. 흔히 <고리오 영감>을 발표하면서 그의 문학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 면을 고려하면 유난히 초기작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학동네판 발자크의 특징이다.

나귀가죽(1831)
루이 랑베르(1832)
13인당 이야기(1833-34)

같은 초기작이라도 나로선 청년 도스토예프스키가 번역을 시도하기까지 한 <외제니 그랑데>(1833)에 더 관심이 있지만(현재로선 완역본이 절판된 상태다) <13인당 이야기>도 초역이므로 감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 중요도만 따지자면 분명 <잃어버린 환상>(1837-43)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손목을 잡기에. 이러다가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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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6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의 마지막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지만지). 반가움과 유감이 교차하는데, 늦게라도 거장의 작품이 번역돼 나온 건 환영할 일이지만 지만지판은 고가 정책을 취하고 있어서(그만큼 찾는 독자가 적다는 뜻이다) 어렵게 나온 번역본이라도 강의에서 쓰기 어렵기에 유감스럽다. 여느 세계문학전집판과의 차이다.

입센의 작품으로는 대표작 <인형의 집>과 <유령>만을 주로 강의에서 읽었는데 시야를 확장해보려 해도 마땅한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는다. 지만지판으로 나온 <바다에서 온 여인>이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개인적으로 참고할 수 있을 따름. 스웨덴의 극작가 스트린드베리도 <유령 소나타>(지만지) 같은 작품이 재번역돼 나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번역 출간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례가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나오는 고전들이다. 가령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한국문화사) 같은 경우 4권짜리로 나와 있는데 권당 400쪽 안팎이고 책값은 15000원이다. 한 작품을 읽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한 것.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한국문화사)도 4권에 총 1400쪽 분량이고 권당 21000원이다. 아무리 중요한 작품이라 해도 일반독자가 읽기엔 부담스럽다(전공자라도 울며 겨자먹기가 아닐까).

진작 품절된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새물결)도 대표적인 사례다. 두권 짜리에 1456쪽이면 만만찮기는 하다. 그렇다고 99000원이라면(양장본 학술원서 가격이다) 구입도 부담일 뿐더러 강의에서 다룰 수 없다. 반대중적이라고 할까. 읽는 건 일도 아니라고 말하곤 하는데, 말 그대로 책을 손에 들 수만 있다면 읽는 건 누워서 떡먹기에 해당한다.

독자가 줄어서 책이 고가화되고 책이 고가화되면서 독자는 더 줄어든다. 불가피한 일인가. 그래도 상관없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언제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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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3-26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반독자인 저에겐
책값은 부담~읽겠다고 하는건 무모한 도전이
아닐런지.

로쟈 2018-03-26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책값은 부담이에요. 고가의 학술서도 부담인데 작품번역본까지 5만원대를 넘어가면.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강의차 아주 오랜만에 읽는다. 그 사이에 전집(전8권)도 나왔지만 여러 여건상 단편선 정도에서 만족하려 한다. 한데 이것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읽어볼 작품들이 분산돼 있어서다.

독서가의 물음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다. 작가의 대표작을 읽느니 마느니 하는 단계가 있다면, 그 다음 단계 독자부터가 내가 동지애를 느낄 만한 독자들이다. 동지들끼리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소송>까지도 필독서 범주에 속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로의 감상을 물어볼 수 있는 건 <실종자>나 <성> 정도부터다. 그리고 <일기>와 <편지>에 대해서는 애환과 고충을 나눌 수 있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아쿠타가와가 사숙한 스승이기도 한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련님>이나 <마음>을 읽었다면 교양독자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재미있었다거나 지루했다거나 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한데 동지들끼리는 <플베개>와 <갱부>에 대해서, <행인>과 <명암>에 대해서 질문한다. 번역본들 간의 차이에 대한 소감까지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고는 소세키의 <문학론>과 <문명론>에 대해서 근심어린 표정이 된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아쿠타가와의 첫 창작집 <라쇼몬>을 읽었고 구로자와의 영화 <라쇼몽>이 ‘라쇼몬‘과 ‘덤불 속‘을 각색한 영화라는 것까지 안다면 교양독자다. ‘인식론적 상대주의‘까지 들먹인다면 맞춤하다. 독서가가 되는 것은 그의 첫 신문연재소설 <희작삼매>나 유서에 해당하는 <어느 바보의 일생>을 읽고자 할 때다. 그러면서 <아쿠타가와의 중국기행>을 놓고 표정이 굳어진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독서가의 질문이면서 문학강사가 매주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주일은 7일에 불과하기에, 책만 읽기에도 인생이 길지 않기에 부닥치게 되는 질문이다. 아쿠타가와의 <어느 바보의 일생>을 읽어보려고 책을 주문하려다(전집이나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 등에 수록돼 있다) 든 상념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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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세상을 떠난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작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세상이 잠든 동안>(문학동네)은 초기작 16편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써놓고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건 특별히 아껴둔 게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았다는 뜻일 텐데(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 표제작 ‘세상이 잠든 동안‘을 읽어보니 보니것의 기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걸 알겠다

˝<세상이 잠든 동안>의 단편들에는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막 이해하기 시작한 젊은이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보이는 명징함이 있다. 보니것만의 목소리, 특유의 블랙유머, 유쾌한 풍자, 뜻밖의 반전과 함께 찾아오는 분명한 메시지가 빛을 발한다.˝

표제작만 고려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제목을 찬송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에서 가져온 단편이다.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봐야겠다. 보니것의 블랙유머는 원문도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만간 원서도 장만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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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읽다 보니 자연스레 보르헤스도 언급하게 된다. 포 단편소설의 적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스페인어권에 확산시킨 장본인이 보르헤스이기 때문이다. 새삼 보르헤스의 포론이 궁금해지는데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서문 말고 더 있는지 모르겠다(심증으로는 더 있어야 한다).

이번에 나온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에서도 일차적인 관심은 보르헤스의 소설론이다. 언젠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강의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다루게 된다면 꽤 요긴한 참고가 되겠다. 더불어 관심이 가는 타이틀은 엠론 에스플린의 <보르헤스의 포>(2016)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포의 영향과 재발명을 다룬 책이다. 딱 관심에 맞는 책이긴 한데 소프트카바도 나오면 좋겠다. 물론 번역되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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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라는 책에 보르헤스가 포의 시와 소설을 언급한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포를 설명하는 내용의 분량은 적어요.

로쟈 2018-03-22 14:31   좋아요 0 | URL
네 기억납니다. 보르헤스는 에세이도짧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