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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과 해방공간에 일본어와 한국어로 작품을 썼던 작가 김사량의 생애를 다룬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소설 <다시, 빛 속으로>(나남)가 나왔다. ‘김사량을 찾아서‘가 부제. 평전이 아닌 소설이란 점이 특이한데, 평전의 부담을 덜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책을 봐야 알겠다.

˝사회학자 송호근의 장편소설. 일제강점기, 도쿄제국대
학 재해중 집필한 소설 <빛 속으로>로 일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천재 작가 김사량. 일본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하층민의 삶을 기록해 나간 그의 작품에는 박경리의 역사적 울혈, 백석의 토속적 감성, 김승옥의 근대적 감각의 원형이 도처에 발견된다. 그럼에도 분단 이후 이념 대결 과정에서 그는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데올로기의 시대, 한국문학사는 북한 인민군 종군작가로 변신한 그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 그의 극적인 변신을 이끌었나? 그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빛‘은 무엇인가?˝

<다시, 빛속으로>는 그 추적기의 모양새다. 아직 <빛속으로>로도 읽어보지 않은 터라 이번에 안우식의 <김사량 평전>과 함께 김재용 교수가 엮은 <김사량 선집>도 구입했다. 김재용 교수는 <김사량, 작품과 연구>(전5권)의 편자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의 꽤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인데 그 문제성과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이번 기회에 살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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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2-2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한국근대문학 강의 들으면서 김사량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로쟈 2018-02-27 14:45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합니다.^^
 

연극인 이윤택의 과거 성추행이 미투운동의 이슈가 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집단 고소로 그의 행각은 법적 심판대에 오를 전망이다. 문득 생각난 건 내가 읽은 책들인데, 내가 읽은 건 아주 오래전 ‘문화 게릴라‘ 시절 혹은 그 이전 시절의 이윤택, 시인 이윤택이다. 찾아보니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세계사, 1989)과 <카프카의 아포리즘>(청하, 1989)이 기억엔 제일 처음 읽은 책들 같다. 거의 30년 전이다.

시집은 절판된 지 오래 되었고 카프카 책은 <위대한 꿈의 기록>(북인, 2005)으로 다시 나왔다(이것도 구입했군). 그의 시를 찾아보니 카프카의 <소송>의 시적 번안이었다는 걸 알겠다. 연작시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1‘이 이렇게 시작하니 말이다.

그렇다, 현실 그 자체가 체포되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체포된 상태 그대로 내일 아침 출근할 것이다
체포된 현실 속에서 제 밥그릇들을 챙겨야 한다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삶의 행로가 카프카의 삶과 문학과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주었다는 점. 권럭(아버지/법)과의 투쟁이 카프카의 핵심이었던 걸 고려한다면 문화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성추행/성폭력을 일삼은 것은 그에 대한 독자/관객의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이면서 동시에 카프카에 대한 배신이고 모욕이다(카프카에게서도 성적 욕망이 은밀한 주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투쟁과 연결돼 있다. 이윤택도 그러한가?).

결국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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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할 책들과 함께 미래학 관련서를 조금 읽다 보니 주말과 휴일이 후딱 지나가버렸다(어느 때이고 안 그랬던가). 주목할 만한 책들이 적잖게 나왔지만 페이퍼로 정리하는 건 기약하기 어럽다. 여유가 생기거나 미친 척할 때나.

문태준의 신작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를 슬렁슬렁 읽었다. 제목만 보자면 비호감이지만(‘사모하는 일‘에 끌리지 않는다), ‘문학동네 시인선 101‘에 대한 기대감과 (독서)의무감으로. 좀 당혹스러웠는데, 내가 기억하는 문태준(‘가재미‘의 문태준)과 다르다고 느껴져서다(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그러고 보니 <가재미> 이후에 무얼 더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내가 시인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동시 세 편‘도 들어가 있지만 동시풍의 시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고 연시풍의 시도 끌리지 않는다.

한 편만 고르라면 ‘염소야‘를 고르고 싶다. 가장 밀착해 있다는 느낌 때문에(대부분의 경우 시는 구체적일 때 와 닿는다).

염소야, 네가 시름시름 앓을 때 아버지는 따뜻한 재로 너를 덮어주셨지
나는 네 몸을 덮은 재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너의 곁을 지켰지
염소야, 새로 돋은 풀잎들은 이처럼 활달한데
새로 돋은 여린 풀잎들이 봄을 다 덮을 듯한데
염소야, 잊지 않고 해마다 가꾼 풀밭을 너에게 다 줄게!
네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버지‘가 결정적인 도움을 준 시로 읽힌다. 시는 시인 혼자 쓰는 게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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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의 초상사진가‘라고 소개되는 질 크레멘츠의 <작가의 책상>(위즈덤하우스)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크레멘츠는 작가 커트 보니것의 아내이기도 하다니까 작가들과는 각별한 인연이겠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상을 흑백사진으로 농밀하게 담아낸 포토 에세이. 캐서린 앤 포터, E. B. 화이트, 조르주 심농, 파블로 네루다부터 제임스 미치너, 존 치버, 커트 보니것, 수전 손택에 이르기까지 56인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내밀한 사적 공간에 크레멘츠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무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곳으로 초대받는다. 

작가들의 영혼과 내면까지 찍어낸 듯한 크레멘츠의 사진뿐만 아니라, 집필을 위한 사소한 습관과 금기 또는 남다른 의식 등 개성적인 작업 방식과 창작 비결을 털어놓은 작가의 진솔한 육성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원저를 찾으니 1996년에 나왔고 이미 절판된 책이다. 즉 영어판으로 희귀한 책을 한국어판으로는 읽어볼 수 있게 된 셈. 저자의 다른 책으로 <작가의 이미지>(1980)도 있는데 더 오래 전 책이다.

잠시 작가들의 책상을 구경하면서 내 책상을 바라보니 차이가 확연하다. 더블 모니터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작가의 일‘이 될 성싶지 않다. 쓰기는커녕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못 되니. 다시 식탁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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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2-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백이라 뭔가 더 있어보이는?
작가의 집을 찾아가는 수고도 없이 작가의 책상을구경할수 있다니.
선물같은 책이네요.

로쟈 2018-02-24 13:08   좋아요 0 | URL
네 문학독자들에겐 꽤 유혹적입니다.~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소설 세 편이 ‘리커버 특별판‘으로 나왔다. <20세기의 셔츠>와 <셀프>, 그리고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작가정신)이다. 이 가운데 <20세기의 셔츠>(원제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에 대한 추천사를 써서 어제 책을 받았다. 2013년에 나온 구판은 책의 판형이 너무 크고(그래서 무겁고) 표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리커버판은 그런 불만을 해소해주어서 다행스럽다(독후감도 자연스레 달라지겠다). 소개는 이렇다.

˝얀 마텔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인 <20세기의 셔츠(원제 : Beatrice & Virgil)>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 가운데 하나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홀로코스트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얀 마텔은 우리 주변에 있는, 어쩌면 내 안에 각인되어 있는 광기와 증오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적은 추천사의 일부.

˝20세기의 지옥으로서 홀로코스트를 안내하기 위해 등장시킨 당나귀와 원숭이는 자연스레 이 소설 전체를 알레고리로 만든다. 이 소설에서 유대인의 비극적 운명은 동물의 운명과 연결된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가리키는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동물의 대량학살도 뜻한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인류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동물의 비극이다. 이 소설은 우화라는 장치를 통해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새로운 방식으로 환기하는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의 범위를 동물의 세계로까지 확장한다. <파이 이야기>가 ‘인간과 동물의 소설‘이라면 <20세기의 셔츠>는 ‘인간과 동물의 우화‘다. 얀 마텔의 홀로코스트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운명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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