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28호)의 별책부록으로 '2013 행복한 책꽂이'다. 해마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특집으로 꾸미고 있는데, 인문사회분야의 추천위원으로 선정을 거들었고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 2013)에 대한 리뷰도 맡아 썼다. 올해 인문사회분야 올해의 책으론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2013),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 2013)도 나란히 꼽혔다. <아파트 게임>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시사IN(13. 12. 28) 코믹하다 '호러'되는 아파트 이야기

 

직함은 ‘디자인 전문가’이지만 이쯤 되면 ‘아파트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에 이어서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을 통해서 한국 중산층의 보편적 경험과 욕망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는 저자 박해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중산층 웃지 못할 흥망사’란 문구가 암시하듯, 세대별로 아파트 게임 참여자들을 묘사한 그의 ‘비평적 픽션’은 자못 코믹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가 거울을 들이대며 비춰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얼굴이라는 게 문제다.


인상적인 문제제기는 처음에 프랑스 지리학자에게서 나왔다.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이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한 것이다. 줄레조의 고백에 따르면 “1990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아파트 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이후” 어떻게 이런 대단지 아파트가 양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이 박사학위논문의 주제가 되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의 아파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징지을 만큼 특별했다. 이런 나라가 따로 없다는 뜻이다.

 
줄레조 역시 아파트 거주민으로 한국적 의미의 중간계급인 ‘도시 중산층’을 지목했다. 그는 여러 사례를 제시했는데, 도시 중산층의 전형 김 아무개씨에 대한 기술은 이렇다. “50대 초반의 김모 씨는 전업주부다.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 계열 회사의 부사장이고 두 자녀를 두었다. 큰아이는 이웃의 서초고등학교에 다니고 둘째는 아직 중학생이다.” 박해천의 비평적 픽션은 이를 좀더 세련되게 만들었다. 가령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꽤 알려진 기업에 다니고 있는 ‘58년 개띠’ 박모 씨. 지방의 명문고와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 그의 자산은 목동의 아파트 단지 한 채가 전부다.”


이런 인물들이 아파트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아파트를 둘러싼 중산층 흥망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기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성장 신화는 바로 이 중산층의 성장 신화였다. 하지만 이제 그 신화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 이르러 박해천은 이 신화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아파트 게임의 이면이면서 세대론의 이면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저마다 4.19 세대, 유신 세대, 386 세대 등을 자임하면서 권력에 항거했던, 곧 ‘아버지’에 맞섰던 자신의 청춘을 예찬한다. 하지만 이는 가족 로망스의 1막에 불과하다. 그들도 곧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밥벌이에 나서야 하는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때 시작되는 가족 로망스의 2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파트이다. 아파트를 한국 중산층의 ‘무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아파트 매매의 시세차익을 노리며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 간과된 것은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회적 부는 복지 제도를 통해서 배분, 환원되어야 했지만 한국사회는 그것을 투기장의 경품으로 만들었다. 이 무지와 무관심은 막대한 사회적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게 돼 있다. 아파트 게임의 2막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셈이랄까. 자못 코믹한 아파트 이야기가 ‘호러’로 바뀌는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 아파트 게임은 무서운 게임이다.

 

13. 12. 24.

 

 

P.S. 올해 나온 아파트와 부동산 관련서로 더 읽어볼 만한 책은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현암사, 2013), 선대인의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3)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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