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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밀레니얼의 사랑과 섹스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아니다.
관계(특히 젠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학/피학적 역학에 대한 스케치다.
내게 이성애 섹스가 재미없고 피곤한 이유(나에게는 피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희열이며 지식이자 예술로도 다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좀 하려고 하는 요즘이다)는 권력의 비대칭 혹은 낙차가 존재하며, 관계를 둘러싼 참조할 만한 다양한 각본들이 문화적으로 과잉 생산되어 있고, 그것을 재료 삼아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섹텐. 섹슈얼텐션. 그러니까 텐션.
삶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지나치게 긴장을 하는 몸으로 변했고, 그래서 게임같은 관계에는 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게 너무 보여서 일지도. 나는 솔로, 환승 연애 이런 프로그램 너무 끔찍하다.) 이런 생각 역시 내 머리가 좀 썩어서라는 걸 인정한다. 관계를 통해 생겨나는 순간들이 그저 힘의 작용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친밀하고자 하는, 보호하고자 하는, 다정한 동기로 이루어진 온기의 교환이기도 하단 걸 알고 있다. 알고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음. 말을 아끼겠다.
행위 혹은 말의 이면에 대한 곤두섬없이 관계를 내 좋을대로 낭만화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나의 비관적인 시선은 일견 타당하다. 염두에 둘 것은 ‘일견’이어야 한다는 것. 이견. 삼견. 사견. 인류애를 꽤 많이 잃어버린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치열하게 골라진 시선이었음 해서 책을 읽는다.
*표제작 <캣 퍼슨>
극장에서 만난 20살 여자 아르바이트 생이 자신과 첫 경험일 거라 기대한 34살 뱃살 남의 웃픈… 섹스 이야기.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좀 잘 하지 좀… 아니다. 이것도 틀린 말 같다. 니가 뭘 아냐. 에그. 니가 뭘.
‘뭘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고,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그런 식으로 섹스 판타지를 구축하는 남성성에 대해 난 질문하고싶다. 동등한 관계, 평등한 관계는 끌리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남들에게 대체 섹스는 뭐지? 물론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언젠가 마리 루티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종류의 말을 쓴 적이 있다. 여성은 복종을 성애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쁜 아이>
섹스로 이것 저것 다 해볼 수 있는 시대(인지는 모르겠다)의 판타지란 이렇게 진부하다. 진부한 섹스의 진부한 폭력. 진부한….
나는 BDSM이 우려스럽다. 도대체 그게 쾌락이 되는 이유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물리적 폭력이 싫다. 정말 싫다. 어린시절에 경험한 물리적 학대는 근막에 남는다라는 말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폭력은 몸에 새겨진다. 사유는 머리로만 하는거라 믿고 싶은 데카르트스러운 사람들에겐 안타깝지만 현대의 신경과학-뇌과학이 부단히 해체하고 있는게 바로 머리(의식)와 몸(신체)의 이분법이다. 언어가 신체에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물리적 폭력은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에 법이 규제하는 것이다. 상추만 던져도 특수 폭행이 성립되는 게 현대의 법 체계인데 왜 섹스는 사적인 영역이라 법이 개입하면 안되는 거지? (그걸 하자는 것도 아니며 거기에 대해서 논할 건 아니다.)
BDSM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을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가 단순히 금지의 위반에 대한 쾌락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 디테일한 완급 조절에 대한 쾌감을 즐기는 것이라면… 스스로를 혹은 계약서를 과대평가하는 자아감이 우려스럽고, 그러한 성관계를 통한 무력감 혹은 통제감의 회복이 목적이라 항변한다면 섹스 말고 다른 관계부터.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때리는 게, 지배하고 복종하는 게 사랑이 되냐. 그걸 못하게 세세하게 법률로 만들어온 인류와 문명이 폭력이냐? 그래 그게 폭력이라고 치자. 내가 또 너무 모르고 막 쓰는 것 같아서 지금 당장 좀 찔리니까 관련된 책을 읽어야... 에휴... 그래... 읽자...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책을 쓴다.
근데 아니, 이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나는 모르겠는 데 (아, 페미니즘은 이토록 나를 과계몽시켜버렸도다. BDSM을 쿨내나는 힙으로 여기는 거에 진짜 포르노 문화가 없다고 할 건가? 쓰면서 점점 짜증이 올라와서 밥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런데 이제 졸리네.🥱)
우리는 도를 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찬다. 그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는지 살펴보고 싶다면 이 단편을 추천한다. 전형적임.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천착했고 이제는 힘을 휘두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다. (재미도 없고, 뻔하다.)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넘겨주는 사람에 대해 차라리 관심이 더 많고 그들의 ‘복잡함’을 어떤 의미로는 이해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소설 속의 남주에 이입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가져야 했다. 최소한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대칭적이다. 아니다. 방금 한 말은 취소, 취소다.
삶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 신체에 대한 통제권까지 고스란히 반납하게 만드는 존재 내 결여…를 들여다보는 것 보다 나 자신을 아예 잊어 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좀 알고 있다. 그것은 정도의 문제이며 삶과 사람이 그래서 컴플리케이트 한 거다.
그러므로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는 거다. 그러지 말자는 거고. 운전대 꽉 잡아라. 자기 인생의 운전대는 자기가 잡고 가는 거고 가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면… 보험이 있잖아요?은 헛소리고 암튼 운전대 옆 사람한테 내주지 말라는 소리다.
*<좋은 남자>
이 소설은 진짜 징그럽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대단한데, 좋지 않은 의미로 대단하다. (그래서 난 이 책에 별 다섯을 쾅쾅쾅쾅쾅 박기로 한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 가지는 지저분한 심연을 이렇게까지 알려주다니 감사합니다. 놀랍습니다. 놀랬고요. 막판에 단지 사랑받고 싶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똥 싸고 있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랑 뭐냐. 참내...
*<풀장의 소년>
“(307)그는 피뢰침 같은 존재다. 그뿐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거친 에너지를 받아내는 피뢰침. 욕망이 향하는 대상일 뿐, 욕망이 생겨나는 근원은 아니다”
욕망이 향하는 대상과 욕망이 생겨나는 근원이라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에 대해서. 아리까리 잘 모르겠어서. 생각해 봐야지.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욕망은 책 구매욕…인데. 대상이자 근원임.
*<겁먹다>
요 단편이 소설집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가학적인 권력’ 혹은 ‘권력의 도취’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듯. 크리스틴 루페니언이 특별히 이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독자를 어떤 사유의 장으로 안내하기 위함이 아닌 정말로 이러한 권력‘관’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투명한 시선의 반영이라면 문득 난 정희진의 말을 좀 옮겨주고 싶다. 권력(힘)은 *영향력/책임감*이라고. 그것을 잘 다루는 것은 어렵지만 책임감으로 권력을 이해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말이다.
*<성냥갑 증후군>
오래 전 연애 경험이 떠올라서 현타왔다. 확실히 나는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평생의 목표는 셀프 럽~이 되시겠다.
*<죽고 싶어 하는 여자>
고통이 자아의 경계를 결정짓는 자아감을 가늠하는 척도라면 오랫동안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밀도 높은 폭력에만 자아감/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때려달라고 한다고 때리지는 말자. 문득 생각나는 건 <노멀 피플>의 코넬인데… 코넬 정도만 되면 정말 훌륭한 이성애자 남성이구나 하게 되는 것이 서글프다. 이성애 여자들은 언제까지 남자 보는 눈을 낮춰야 하는가?
*
나는 미국의 젊은 소설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이 아주 예리하게(그리고 무척이나 비관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사적인 관계 안에서의 역학 관계를 꿰뚫는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소설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읽은 소설이 많지가 않아서, 이 책은 내게 별 다섯 개다. 다만 작가의 인간 혐오를 충분히 이해하는 동시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나 역시 인간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어 버렸다. 알기 싫었는데. 투덜투덜. 그런데 이런 *면*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이 정말로 밀레니얼의 섹스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면 그 까닭은 보편화된 포르노/이미지/판타지가 장치로 전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젊은 사람들이 백신처럼 이런 소설을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판단은 독자의 몫. (의외로 나이 지긋한 여성 독자들에게서 열광적인 공감의 메일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모든 단편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단편에서 생각이 많아졌고, 읽어볼 만한 단편 몇 편만 추려서 휘리릭 썼다. 나중에 소설 집을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 들어서 중고로 구매했고, 구매한 중고에는 섹쉬한 표지가 없어서 초금 서글펐다. 어쨌든 <82년생 김지영>처럼 읽는 사람이 할 말이 없으면서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인 건 확실하다.
(이 리뷰를 읽고 마음이 동해 읽으신다면…. 읽고 난 뒤 꼭 트랙백 걸어주세요!)
(캣퍼슨)마고가 침대에 앉아 있는 동안 로버트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발목 밑으로 내리다가 아직 신발을 신고 있었 다는 걸 깨닫고 허리를 숙여 신발 끈을 풀었다. 어정쩡하 게 몸을 숙인 자세, 털에 가려진 물렁하고 불룩한 배를 보며 마고는 생각했다. 아, 싫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발동을 걸어놓고 이제 와서 중단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이 요구 될까, 생각만 해도 까마득했다. 대단한 재치와 상냥스러움이 요구될 테지만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런 수준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의 의사에 반해 그가 억지로 그녀에게 뭔가를 시킬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모든 것을 주도해 놓고 이제 와서 그만두자니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놓고 정작 음식이 나오자 마음이 바뀌어 돌려보내는 꼴이다. 마고는 자신이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비칠까 두려웠다. 그녀는 저항감을 억누르려고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 P37
(좋은남자) 그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었다. 앤절라가 흐느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를 때 테드가 말했다.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 당신도 알잖아"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 앤절라가 말했다. "난 당신한테 늘 정직했어" 테드가 말했다. "언제나, 이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 말을 믿을 수도 있었는데 당신은 내 감정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판단했어. 내가 가벼운 관계를 원한다고 말 했을 때 당신도 같은 것을 원한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러고는 뭔가 특별한 관계로 만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기 시작했지.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우리 둘의 관계를 진지한 관계로 만들고 싶어했고, 그러지 못하자 상처받았어. 알아. 하지만 당신한테 상처를 준 건 내가 아니야. 당신이 그런 거야, 내가 아니라. 나는, 나는 그저 당신 이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데 이용당한 도구일 뿐이야" 앤절라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작게 기침을 했다. - P196
(좋은남자) 그는 절대로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애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다. 그저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것 같은, 약을 먹고 있는 것 같은, 혹은 채소를 먹고 있는 것 같은 표정. 으음 내 삶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으니 차라리 테드와 섹스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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