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3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선욱 옮김 / 책세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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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는 극작가와 소설가를 겸했지만, 소설 《돈키호테》의 비중이 커서 극작가로서의 세르반테스는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극작가로서의 세르반테스는 고전주의의 대가들에게 영감을 얻기는 했으나, 제 작품의 속살을 스페인의 문학 전통이 스며든 강렬한 생명력으로 채웠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집필하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희곡을 썼다. 그러나 생전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리지 못했고,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희곡 작품의 수도 많지 않다.

 

와인 좀 아는 사람이라면 스페인에서 제조된 와인 ‘베가 데 토로 누만시아(Vega de Toro Numanthia)’를 알 것이다. 이 와인 명의 유래가 세르반테스의 희곡 《누만시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누만시아는 고대 로마의 침략으로부터 강렬하게 저항했던 스페인 내 지역명이다. 스페인은 카르타고를 이끈 한니발(Hannibal)의 본거지였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는 스페인을 기습 점령하여 카르타고군을 차례로 괴멸시켰다.

 

《누만시아》는 누만시아를 호시탐탐 노리는 스키피오와 그들과 맞서 끝까지 저항하는 누만시아 사람들의 갈등을 소재로 한 희곡이다. 역사는 간혹 뛰어난 적수를 상대한 덕분에 승리가 한층 돋보인 영웅의 예를 보여준다. 승자 스키피오는 영원히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반면에 승자의 역사 서술은 모든 과거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승자의 잔인한 폭력의 역사, 타락 행위의 역사, 가혹한 지배의 역사와 무엇보다 패자의 저항 의지가 돋보인 역사가 묻힌다. 승패의 명암은 그렇게 뚜렷하지만,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비극의 이면에 숨어 있는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세르반테스는 승자의 과거가 아닌, 패자의 과거, 즉 피억압 민중의 과거가 역사의 동력으로 이해했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역사를 굴러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민중을 상징하는 누만시아 사람들은 제국이 휘두르는 엄청난 억압과 파괴의 역능에 저항한다. 비록 강압적인 군사력 앞에서 저항하다 끝내 패배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스페인의 부활을 향한 기폭제가 된다. 실제로 《누만시아》는 한동안 잊히다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침략 이후로 재조명되었다. 《누만시아》가 일반 민중의 삶의 숨결을, 그 생생한 삶의 육성을 되살려낸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것은 숱한 혼돈 속에 살아가던 스페인 민중을 위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혀줬다.

 

《사기꾼 페드로》는 ‘페드로 데 우르데말리스’라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사기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영웅들의 위대한 활약상을 그리지 않는다. 이는 세르반테스가 16세기 스페인의 실상을 그리기 위해 당시 스페인에 유행했던 소설 양식인 피카레스크 기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피카레스크 기법은 보잘것없는 주인공을 내세우며 진술이나 기록 형식을 빌려 사회를 풍자한다. 페드로는 미천한 신분이다. 그렇지만 신분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말과 행동은 현실의 한계를 헤쳐 나가며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기도 한다. 《사기꾼 페드로》의 매력은 나쁜 주인공을 대놓고 처벌하는 데에 있지 않다. 여기에 등장하는 위선자, 천박한 인간성을 가진 자들의 마음은 사기꾼의 속내보다 쉽게 읽힌다. 사기꾼은 마음에 돋아난 인간의 뾰족한 촉수를 알아본다.

 

사기꾼 페드로는 역경 속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적, 희망적 정신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경우든, 공치사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은 그저 훨훨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자존심을 가지고 높은 이상을 설계하면서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거,
나는 좋다고 생각해.
나 역시, 머리는 둔하지만,
왕자나 교황, 황제나
군주가 되기를 꿈꾸지.
환상에서는 나도
이 세상의 주인이란 말이야.

 

(《사기꾼 페드로》 2막 207쪽, 페드로의 대사)

 

 

이 대사는 페드로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마치 도전을 멈추지 않는 돈키호테의 열정과 닮았다. 페드로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에 도전하고, 연속되는 패배에 굴하지 않고 희망과 꿈을 꾸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가 조롱하는 세상은 민중을 괴롭히는 불의의 괴물을 상징한다. 《사기꾼 페드로》가 정확히 언제 써졌는지 연도가 불분명하다. 만약 이 작품이 《돈키호테》가 나오기 전에 집필되었다면, 세르반테스는 페드로를 통해 돈키호테의 근대적 모험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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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6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 없지만 누만시아 와인한잔 땡기는 밤이네요..ㄷㄷㄷㄷ

cyrus 2016-11-16 19:47   좋아요 1 | URL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생각하면 술이 당긴 신체 반응은 당연한 겁니다.. ㅠㅠ

동성로 시내에 집회 있던 날에 오랜만에 소주, 맥주를 마셨어요. 역시 힘들 때 마시는 술은 맛이 끝내주더군요. ^^;;

표맥(漂麥) 2016-11-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여왕님은 돈키호테... 글읽기 싫어지는 세상을 만든 분이시라서... 쩝...

cyrus 2016-11-17 08:25   좋아요 0 | URL
여왕님도, 돈키호테도 아닌, 그냥 나라 망치려고 작정한 사기꾼입니다. 오늘 아침에 불쾌한 뉴스를 봤어요. 한일군사협정 추진을 박씨가 지시했다는군요..
 

 

 

 

 

옛날에, 신기한 옷 입기를 아주 좋아하는 임금이 살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들은 사기꾼이 임금을 찾아왔다. 사기꾼은 오직 착한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신기한 옷을 만들 줄 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기꾼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한 임금은 그 사기꾼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줬다. 사기꾼은 옷을 만드는 흉내만 냈다. 임금의 신하는 옷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사기꾼을 꾸짖었다. 그러자 사기꾼은 자신이 만든 옷이 아름답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신하는 난처했다. 만약 신하가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신하는 옷이 보인다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궁전에 돌아와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 옷을 칭찬했다. 임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착각이었다. 임금을 제외한 많은 사람은 임금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몰랐던 사람은 임금 자신뿐이었다. 벌거벗은 임금이 어느 날 궁궐 밖으로 행차했을 때, 백성은 보이지 않는 임금의 옷에 탄성을 질렀다. 그때 어린 아이가 임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박근혜는 라임()’[1], 벌거벗은 임금이다. 그녀는 벌거벗은 사실을 온 국민이 알고 떠드는데 정작 본인은 왜 모르는 척 청와대에 남아있을까. 자신의 어리석음과 실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한다면 분명히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타인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식적인 이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자신의 정당성만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인간관계는 힘들어진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불통의 뿌리로 인해 하루하루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증폭되었다. 불통(不通), 불신(不信). ‘2()’은 박근혜에게 안정감을 주는 담요이면서도 그녀가 항상 청와대에 등장할 때마다 입는 투명옷 역할을 했다. 그녀는 4년 동안 청와대에 눌러앉아 포근한 ‘2()’을 덮고 지냈다. 청와대를 드나들던 최순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마처럼 ‘2을 덮어주는 자상함을 보였다. 박근혜가 ‘2을 덮고 있을 때, 최순실과 그 일당들은 마음껏 잇속을 챙겨왔다.

 

일부 청와대 측근과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의 눈과 귀까지 덮은 ‘2()’의 정체를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다. 박근혜는 그렇게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은 채 편안하게 청와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국정은 최순실에게 맡겼다. 그녀는 쓴소리를 듣지 않는 벌거벗은 권력자.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박근혜 게이트와 비교되는 면이 있다. 임금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위와 굴종에 눌려 그 많은 신하 어느 사람도 바른 소리를 내지 못 할 때 임금은 벌거숭이라고 사실대로 외쳤던 것은 누구였던가. 박근혜 주변의 정치인들은 그동안 대통령의 권위에 눌려 아무도 바른 소리를 내지 못 했다. 벌거벗은 것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최순실이 주도한 국정에 순순히 따르고, 일부러 눈 감고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국가 지도자의 책임 의식이 취약하면 참모들이 보완해야 하는데, 역사는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음을 말해주고 있다. 권위 앞에서 직언하는 사람은 없어지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자신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렇게 되면 벌거벗은 임금이 될 위험성이 커진다. 개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확신하는 내용이 아닌 한 다수가 옳다고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 십상이며,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얻기 위해서도 그 집단의 주류 견해에 동조하기 쉽다. 그래도 그 엄연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오직 하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다. 오늘 사회의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정치인은 이런 어린이와 같아야 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의 불이익을 감내하려는 것이 참된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의 모습이다. 좋은 세상으로 가는 일. 그것은 다수의 그림자 뒤에 숨어버리려는 타성을 벗어던지고, 사실을 사실로 말하는 기개가 필요한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1]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를 의미하는 임금은 순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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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짜....상상하던 것보다 그 이상의 상상현실 입니다.ㄷㄷㄷㄷ

cyrus 2016-11-16 11:30   좋아요 1 | URL
방송 3사는 올해의 연기대상, 예능대상을 박근혜에게 줘야 합니다. 최순실은 나라 말아먹은 일로 공로상을...

stella.K 2016-11-1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라임이 진짜 그런 뜻이 있었구나. 작가가 선견지명이 있었네. 솔직히 작가들 이름 짓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거든.ㅋ

cyrus 2016-11-16 15:23   좋아요 0 | URL
저는 라임이 순우리말인 줄 알았어요. 이름 작명할 때 ‘벌거벗은 나‘를 잘 쓰지 않잖아요. ^^;;

푸른희망 2016-11-1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설마하며 무엇을 상상하던 모두가 현실이 되는 기막힌 세상입니다,

cyrus 2016-11-16 18:01   좋아요 0 | URL
탄광에 일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이런 단어는 진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완전 최악의 끝을 보여주는 ‘막장’입니다. ㅠㅠ

오쌩 2016-11-1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거벗은 임금님 다시 생각해보니 되게 철학적인 내용의 책이네요.
군중심리부터해서...
아침에 길라임 덕분에 엄청 웃었습니다. 이게 끝은 아니겠죠 ㅠ

cyrus 2016-11-17 08:31   좋아요 0 | URL
이제 길라임을 검색하면 박씨가 뜹니다. ㅠㅠ

표맥(漂麥) 2016-11-1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에 취하여 국민을 볼모로 잡은 희대의 여왕님... 씁쓰레 합니다...

cyrus 2016-11-17 08:32   좋아요 0 | URL
진짜 민폐 갑입니다.

transient-guest 2016-11-1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누리당 일부가 아니라 사실 다 알고 있었다고 봐요..권위가 아니라 열심히 잇속을 챙기고 자리보전을 하느라 외면하거나 덮고 있었겠죠..지금은 다 박근혜 탓이라고만 하는걸 보면..박근혜씨는 이제 국민왕따로 등극할 듯...

cyrus 2016-11-17 08:35   좋아요 0 | URL
물러난 뒤에 한국에서 지내기 힘들 겁니다. 호화 저택을 짓고 말년을 보낼 수도 없어요. 박씨는 감옥에도 한 번 생활해보셔야 합니다.

낭만인생 2016-11-1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뭐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뽑은 사람이나..

cyrus 2016-11-17 11:43   좋아요 0 | URL
박 씨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더 심각합니다.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극한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의 실제 경험치에 더욱 가까운, 그래서 더욱 실감 나는 현실 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영화 『그래비티』는 무중력으로 가득한 우주의 공포를 그린다. 이 영화에 아름다움과 긴장을 동시에 가져오는 것은 우주라는 공간 자체다. 무한한 우주는 경외심을 가지고 창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인간이 중력의 한계를 벗어나 부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무한 공간에 갇힌 조난자에게는 끝없는 공포를 가져온다. 산소는 희박하고, 중력이 없는 탓에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망망한 공간을 떠돌다 죽게 된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공포다.

 

우주는 수백억 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 왔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그만큼 오랜 시간을 달려야 우주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 우주는 작은 행성부터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 나아가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곳은 우주 한구석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행성에 불과하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계는 대략 130억 광년 거리에 있다.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이 은하계를 관찰한다 해도 우리는 이미 130억 년 전의 모습을 볼 뿐이다.

 

 

 

 

 

 

 

 

 

 

 

 

 

 

 

 

 

 

 

 

 

 

 

 

 

 

 

 

 

 

 

우주의 무한한 풍경은 인간의 정신을 압도한다. 광활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자기 몸이 보잘것없으며 그 삶도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 무기력은, 무시간적 우주에서 우리가 그 나름의 삶을 꾸려간다는 사실로 하여, 활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은 공포로 인한 감정으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모순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버크가 정의한 ‘숭고함’이 여기에서 나온다. 숭고는 무시무시한 대상에서 느끼는 공포와 연관된 특별한 정신적 경험이다.

 

 

 

 

 

 

 

 

 

 

 

 

 

 

 

 

 

 

우주 사진은 단순한 눈으로 보는 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숭고한 사진이다. 그래서 우주 사진은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로 멋있어야 한다. 우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진집 《별빛 방랑》(사이언스북스. 2015)은 지구 밖 미지의 공간들을 마주하면서 생기는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황인준 씨는 30여 년 동안 신비하고 놀라운 우주 쇼를 카메라에 담았다. 인간의 의식으로서만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의 우주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사진집 속에 구름 조각 사이에 천연색으로 빛나는 별, 개기일식이 정점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혜성과 오로라까지 생경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사실 우주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이런 사진집에 눈을 다 뜨고 보기 힘들 수 있다. 색은 깊고, 공간은 넓고, 저기 먼 밤하늘은 아득하다. 이 지평에서 우리는 무한의 어떤 끝자락을 섬광처럼 떠올린다. 그 경험은 놀라움을 지나 전율에 가깝다. 그래서 신성하다. 참된 자연의 체험은 장엄한 종교의식과 같다. 우주와 생명, 물질의 세계를 파고들다 보면 비록 신을 믿지 않더라도 뭔가 오묘한 법칙과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신비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누구처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을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우주의 기운’ 지껄이면 사이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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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11-15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정말 웃긴다.ㅋㅋㅋㅋ

cyrus 2016-11-15 16:56   좋아요 1 | URL
이거 말고 우주의 기운 관련 패러디 사진 더 찾아보면 많이 있어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6-11-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시크릿>이란 책으로 그렇게 밀었던 자기계발서의 문구인데도 뜨지 못하다가 이번에 훅 ~떴네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고ㅎ
이러려고 우리가 개그맨 됐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개그맨,개그우먼들이 유행어에도 밀리고 있으니ㅎ

중간에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이 눈에 띄네요. <마라의죽음>이란 그림도ㅎㅎ
책은 좀 어렵지 싶은데요ㅠ

cyrus 2016-11-15 17:56   좋아요 1 | URL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도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코빅, 개콘보다 재미있는게 JTBC 뉴스입니다. ㅎㅎㅎ

버크의 책 문장이 딱딱하고 지루할 겁니다. 사실 저도 안 읽어봤어요. 에코의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에 버크의 숭고미를 쉽게 소개한 내용이 있어요. 이것만 보셔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

yureka01 2016-11-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써주는대로 받아 읽으니 우주의 기운 이런 소리가 뭔 말인지도 몰랐을듯..ㄷㄷㄷㄷ

cyrus 2016-11-16 08:37   좋아요 1 | URL
‘우주의 기운‘이 《시크릿》 에 있는 구절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겁니다. ^^;;

yureka01 2016-11-1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갈라임까지 나옵니다. 망연자실..ㄷㄷㄷㄷ

cyrus 2016-11-16 11:06   좋아요 1 | URL
박근혜의 ‘주원‘은 최태민이겠군요...
 

 

 

 

 

 

 

 

 

 

 

 

 

 

 

 

 

 

 

 

 

 

 

그리스신화에 크레타 미노스 왕의 미궁(Labyrinthos) 이야기가 있다. 미노스의 왕비는 황소와 정을 통해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왕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짓고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 괴물의 제물은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이었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미궁에 들어간다.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실타래를 줬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설주에 실 끝을 묶고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풀어놓은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미궁에 빠지다’, ‘미로를 헤매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살다 보면 출구가 안 보이는 것 같은 미궁과 미로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로댕은 ‘우리는 자기를 둘러싸는 깊은 미궁 속에서 항상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로 게임을 즐겨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미궁=미로’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미궁을 연구하고 분석한 《우주의 자궁 미궁 이야기》의 저자 이즈미 마사토는 ‘미궁=미로’ 관념을 부정한다. 미궁은 의도적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다.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애초에 미궁을 그렇게 제작했더라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고도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미궁은 탈출할 수 있는 통로 또는 도달 가능한 목적지가 있다는 전제하에 정밀한 계산으로 설계된 구조물이다. 실타래를 사용하지 않아도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다. 막힌 통로를 만나더라도 다시 지나간 통로를 되짚어 나오면 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탈출구를 찾아낼 수 있다. 반면 미로는 (이즈미 마사토가 정의한) 미궁과 정반대의 뜻이 된다. 미로에는 탈출구가 없다. 또한,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므로 복잡한 상황에 부닥칠 때 사용되는 관용어구 ‘미궁에 빠지다’는 틀린 거고, ‘미로를 헤매다’ 또는 ‘미로에 빠지다’가 정확하다. 다만, 미로를 무조건 미궁으로 통일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궁이나 미로나 이 구조물에 들어가면, 누구나 길을 잃어버려 헤매기 때문이다.

 

 

 

 

 

 

 

 

 

 

 

 

 

 

 

 

 

 

 

이즈미 마사토는 미궁이 이성의 힘을 통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구조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무질서하고 흐트러져 있는 세계보다는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 있을 때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의 토대가 되는 규칙과 질서였다. 그런 규칙과 질서를 부여하는 권위가 바로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이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이 느끼는 약점이나 한계를 보완(또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추상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둥그런 구멍 따위의 작은 것들이 뭉쳐 있는 것을 보면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환 공포증’을 느낀다고 말한다. 환 공포증의 원인을 연구한 학자들은 환 공포증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독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천적의 위협을 피하려는 생물의 몸에는 원 무늬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공작나비의 경우 앉아 있을 때는 보호색을 띠지만, 천적이 다가오면 날개를 펴서 눈알 모양의 무늬로 위협을 준다. 이런 무늬를 볼 때 인간의 뇌는 몸에 무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위협적인 대상을 피하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정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동그라미의 무시무시한(?) 존재에 맞서려면 그 형태 한가운데에 점 하나 콕 찍으면 된다. 아니면, 동그라미 안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려 넣으면 된다. 점을 찍거나 동그라미 안에 그림을 채워 넣는 행위는 ‘추상 충동’이다. 보링거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발생한 ‘추상 충동’이 예술 창작의 원동력으로 봤다.

 

 

 

 

 

 

미로는 인간의 ‘추상 충동’에 의해서 탄생한 ‘이성의 구조물’이다. 고대의 미로는 인간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맞닥뜨려야 할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이렇게 인간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은 채 힘든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날아오를 수가 없고, 막다른 통로 속에 갇혀 버린다. 힘든 과정 없이 미궁에 극적으로 탈출한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흥분에 도취하여 추락했다. 미노타우로스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미궁 안에서만 머무르는 괴물로 살아갔다. 이카로스와 미노타우로스는 공통으로 미궁이라는 통과의례를 넘어서지 못했다.

 

중세의 미로는 천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순례의 길이다. 이 또한 종교인들이라면 절대로 피하면 안 될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인간은 미로를 제작함으로써 목적지로 향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된다. 즉 미로는 인간에게 시련과 고난을 선사해주면서도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지혜의 힘을 북돋워 주는 안정적인 구조물이다. 중세 시대의 교회 건물 바닥에 미로가 디자인 요소로 그려졌다. 흑사병과 죽음 앞에 불안을 떨면서 살아간 중세 사람들은 바닥에 그려진 미로를 바라보면서 심신에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만 있으면 이 세상 어떠한 두려움을 잊고,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근대의 미로는 세속화의 바람을 맞으면서 과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종교의 힘이 약화된 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선택이 불가피한 시련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미로는 교회 건물 밖으로 나가 왕족 및 귀족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정원 도안으로 전락했다. 특히 연인들에게 미로는 최상의 안식처였다. ‘사랑의 미로’는 탈출구가 없어도 된다. 단둘이서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현대의 미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미로를 만나선 안 된다. 왜냐하면 현대의 미로는 출구와 입구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큐브>의 등장인물들처럼 이유를 모른 채 거대한 구조물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보자. 특히 그 구조물이 출구와 입구를 모르는 미로라면 불안감과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은 우화」는 미로 같은 현실에 마주한 인간의 불안감을 우화 형식으로 표현한 짤막한 글이다. 나는 단 5줄에 불과한 이 글이 꿈도 희망도 없는 미로에 갇힌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아아.” 하고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만 해도 세상이 하도 넓어서 겁이 났었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마침내 좌우로 멀리 벽이 보여 행복했었지.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마주 달려오는지 어느새 나는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모퉁이엔 내가 달려 들어갈 덫이 놓여 있어.” ㅡ “넌 오직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되는 거야.”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프란츠 카프카 「작은 우화」, 《변신 (단편전집》 605쪽)

 

 

카프카도 종종 작품에 미로 구조를 도입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갑자기 달라진 세상과 마주친다. 미로 같은 세상의 몽환적 풍경 때문에 당혹스러워한다. 무턱대고 카프카의 미로에 들어간 독자들도 점점 자신을 에워싸는 불투명한 상황에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를 절실히 구원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기대하지 말라. 카프카도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같은 신세가 됐다. 미로를 방심하면 금물이다. 한 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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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이야기지만,요즘 나뭇잎들이 허공의 미로를 단 한번의 처녀비행이자 마지막 비행을 합니다.....바람의 미궁으로 헤매는 시간입니다.^^.

cyrus 2016-11-15 07:59   좋아요 1 | URL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어제 바람이 많이 안 불었는데도 바닥에 낙엽이 많았습니다. 가을이 짧아졌다고 해도 가을다운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
 
미로 정원 -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자기 발견 놀이터
울리히 코흐 지음 / 보누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2011년에 출간된 구판 《미로 로직》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미로 로직》을 가진 독자는 《미로 정원》을 구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저는 구판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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