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항쟁 -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김상숙 지음 / 돌베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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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10월 항쟁》 70쪽)

 

 

1946년 10월 1일 노동자를 비롯한 빈민들이 대구부청(현재 대구시청) 인근에 모여들었다. 빈민들은 오랫동안 굶주렸다. 광복 직후, 대구에 정착한 미군정은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 보수 세력을 끌어들이기에 바빴다. 최악의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빈민들은 미군정에 향한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 ‘대구 10·1 폭동’으로 알려진 ‘대구 10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오후에 들어서자 시위 군중은 4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치하던 경찰이 끝내 발포했다. 격렬한 대치 속에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1명이 사망하자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에 분노한 군중과 파업 노동자들은 다음날에도 대구부청과 대구역 광장으로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들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이 또 한 번 총을 쐈다. 경찰의 위협에 희생된 민간인은 스무 명 이상이었다. 미군정은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몇 시간 만에 시위가 진압되었다. 그러니 민중 항쟁은 경북으로 번져 멈추지 않았다.

 

우파는 대구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지었다. 이 사건은 폭동의 요소와 항쟁의 요소가 때와 곳에 따라 혼재되어 있어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빈민과 학생 그리고 노동자 등 계층을 초월한 민중이 참여한 이 이틀 동안의 시위는 ‘지역 민중 운동’이다. 즉 지도부 없이 민중이 능동적으로 전개한 대중 운동이다.

 

 

 

 

 

 

그런데 최근에 공개한 국정교과서에는 대구 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것처럼 소개했다. 이는 민중 항쟁의 의의를 무시하고, 왜곡했다. 대구 항쟁은 소련은 물론, 광복 직후 당시 대구에 조직 활동을 펼친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개입이 없었다. 현재로썬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이 대구 항쟁을 지도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료가 남아 있지 않다. 운동의 주체를 좌파적 시각으로만 바라본 탓에 대구 항쟁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총탄에 맞아 숨진 일부 희생자의 이름이 잊혔다. 언급하는 일 자체가 금기였다. 뒤이은 한국전쟁과 군사정부 시절, 그들의 후손은 조상의 죽음을 하소연하지 못했다. 해방공간부터 진행된 반공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극단주의의 갈등이 민중 운동의 흔적을 제거한 이유이다. 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무고한 많은 민간인이 군경이나 인민군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지만, 반공주의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도 감히 학살의 얘기를 드러낼 수 없었다.

 

대구 항쟁, 경북 일대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 그리고 1948년 여순 사건 등을 진압하고 수립된 남한 정부는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함으로써 지배할 수 있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까지 반공은 군정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이 때문에 대구에 극단주의 반공주의가 내면화돼 좌익 운동의 중심지로서의 역사마저 완전히 잊혔다. 196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사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구를 ‘보수의 성지’로 생각한다. 요즘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최악이다.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지도자가 태어난 지역’, 그리고 그 지도자를 뽑아주고, 열렬히 그 지도자를 찬양하는 ‘꼴통’ 시민들이 사는 지역. 다른 지역 사람들은 늘 ‘1번’으로 향하는 대구 민심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미군정이 대구를 완전히 지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등 좌익 세력의 정당 조직이 활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좌우세력이 함께 건국 운동 준비를 시도한 적이 있었고, 공동으로 정치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구에 짧게나마 이념적 갈등을 넘어선 대중정치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절없이 흘러간 과거가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진다. 미군정과 친일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대구가 좌우 세력이 공존하여 민중을 위한 정치문화가 본격적으로 싹 틔우기 시작한 지역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유럽의 정치무대처럼 대구에 자유롭게 활동하는 진보세력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구,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뿌리는 영광스럽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썩었다! 불행하게도 대구와 대한민국은 미군정과 친일파들이 지배해왔다. 1946년 10월 이후부터 민심의 맥박과 함께 움직였던 대구의 시계는 멈춰진 상태다. 이 시계가 원상 복구하려면 친일 세력으로 인해 썩어버린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뜨겁게 숨 쉬었던 대구의 그 시간, 1946년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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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8 19:30   좋아요 1 | URL
정말 간신히 살아남으셨군요. 이승만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 누군인지 관심 없어하는 반응입니다. 그들은 좋은 것만 보려고 하죠.

저 방금 서구청 앞에 갔다 왔습니다. 제가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오늘 촛불 집회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역시 대구는 새누리당 그늘에 벗어나기 쉽지 않은 지역입니다.

낭만인생 2016-12-0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주화의 중심이 대구였는데.... 두환씨가 잔머리 굴리면서 지역감정으로 찢어 놓고 이렇게 되 버린 것은 아닌지.....

cyrus 2016-12-08 22:29   좋아요 1 | URL
이승만과 친일 세력이 대구를 포함한 남한 전지역 좌파 세력을 억압했고, 여기에 반공주의를 박정희가 이어받아서 대구는 그렇게 박정희를 찬양하는 지역이 되었죠. 그리고 낭만인생님 말씀처럼 전두환이 지역감정을 부추겼어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44882&viewType=pc

 

(한겨레, 2016년 12월 7일자)



많이 알려주세요. 이제 정말 새누리당 때문에 꼴통 소리 듣고 싶지 않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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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07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서구 주민들에게 화이팅 보냅니다..^^..

cyrus 2016-12-08 09: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단발머리 2016-12-07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 서구 화이팅이요!!!

cyrus 2016-12-08 09: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12-08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의 민주주의 수복이 시작되려나 봅니다...화이팅입니다.

cyrus 2016-12-08 09:07   좋아요 1 | URL
1946년 대구에 집회와 항쟁이 많이 열렸습니다. 이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의에 저항하고 거부하는 시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누리당 홈그라운드라는 오명을 떼어내야 합니다.

페크pek0501 2016-12-08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춥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cyrus 2016-12-08 15:32   좋아요 0 | URL
대구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덜 추운 곳입니다. 촛불이 많아지면 춥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
 

 

 

 

 

 

 

제가 살고 있는 대구 서구는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작은 텃밭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99214대부터 올해 20대까지 총 7번의 국회의원 선거 모두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이었습니다. 15대 서구 갑 국회의원에 당선된 백승홍 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신한국당에 입당했습니다. 서구 을 선거구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강재섭 씨가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를 포함한 17대까지 이 서구 지역구에 출마해서 내리 4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2011년 재보궐 선거 경기도 성남 분당구 을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이렇듯 서구는 야당 또는 진보 성향의 무소속 정치인이 들어설 자리는 아닙니다. 무소속 정치인이 출마해봤자 새누리당 공천에 떨어진 사람들이고, 아직 믿을 만한 야당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구 서구 국회의원은 김상훈 씨입니다. 지난 총선에 이어 2선입니다. 그런데 김상훈 의원은 박근혜 탄핵 소추에 반대했습니다. 김상훈 의원은 낙후된 마을 환경을 재정비하는 등 발전을 꾀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탄핵 소추에 반대한 사실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서구에 거주하는 중장년층은 김상훈 의원이 탄핵에 반대한 것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어 봅니다. 서구에도 평일 촛불 집회가 열리니까요. 플래카드는 어제부터 걸려 있었습니다. 비록 집회 장소가 협소해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새누리당의 작은 텃밭 서구에도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다는 건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내일 촛불 집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김상훈 의원 사무실 앞에서도 2차 집회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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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7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7 18: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정말 심각한 수준이군요. 상황이 불리해도 야당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서구를 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면서 말이죠.

2016-12-07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7 19:0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새누리당 관련 인사들이 후보로 나오면 투표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올해 총선에 저는 김상훈 씨 말고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이 무소속 후보가 서구 토박이입니다. 선거에 계속 고배를 마셨는데, 다음 대선에도 출마한다면 서구 촛불 집회에 나와야 합니다. 내일 집회가 어떻게 진행될 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syo 2016-12-0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청 앞이라 함은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서구청 주차장을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뒷쪽에 있는 공원일까요?

cyrus 2016-12-07 18:58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어요. 마침 내일 일정을 소개한 한겨레 기사를 찾았습니다. 서구청 건물 앞 인도에서 진행됩니다. ^^
 
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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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한 노인이 지칠 대로 지쳐 짐을 땅에 내려놓고 죽음의 신을 소리쳐 불렀다. 노인의 부탁을 듣고 나타난 죽음의 신은 노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노인이 힘든 기색을 얼른 감추면서 말했다. “제가 짐을 다시 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솝(Aesop)의 입에서 구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우화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의 심경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을 하게 만든다. 인간의 삶은 모래시계에 비유된다. 모래시계 위에 있는 모래가 밑으로 떨어지듯이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줄어든다. 이처럼 인간에게 시간은 흘러가기보다는 없어진다. 어렸을 때는 세월이 너무 천천히 간다고 불평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세월의 빠름을 한탄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인과(因果)를 벗어날 길이 없다. 이 세상에 목숨을 받고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고야 만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죽을지는 ‘창살 없는 사형수’이다. 영생불멸의 욕구, 인간만이 버리지 못하는 지독한 욕심이다. 
 
《슬픈 불멸주의자》를 집필한 세 명의 저자 모두 심리학자다. 그들은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공포 관리 이론’을 제시한다. 공포 관리 이론은 삶 속에 항상 죽음이 있음을, 그리고 죽음과 삶은 분리될 수 없음을 밝혀주는 학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공포의 힘은 대단하다. 두려움은 인간에게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세차게 몰아넣는다. 그 힘이 셀수록 인간은 쉽게 절망하고 실패하게 된다. 그렇지만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이라는 두 개의 심리적 자원 때문에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문화적 세계관은 인간이 세상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 자신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자존감까지 더한다면,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며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
 
이렇듯 죽음과 삶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죽음을 제대로 죽지 못하게 되면 삶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게 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떠한가? 죽음을 망각하면서 지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발전의 동인(動因)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로, 어떤 사람은 쾌락에 탐닉하여 죽음의 공포에서 도피한다. 또한, 과학 기술로 수명을 더 연장하는 법을 개발하여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래 살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다. 인간은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자신보다 미약한 존재(동물, 사회적 약자 등)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그들이 겪은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고의 희생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까지 생긴다.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죽음의 한복판에서 삶을 생각하는 인간다운 자세마저 사라지고 있다. 스멀스멀 엄습해오는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남 이야기처럼 느낀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는 삶에 대한 불안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삶은 죽음 위에 군림하는 척하지만, 이런 집착은 삶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세네카 같은 스토아학파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공포에 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건 쉽지 않다. 한평생 인간이 이 두려움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인생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게 왜 이리 어려울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며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태연히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나보다. 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남아 있는 날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또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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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7 12:5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김기춘은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심장에 문제 있어서 건강 상태가 안 좋다고 말하지 않나, 더 가관인 건 최순실입니다. 박근혜 덕분에 세계 여행 잘 하고 다녔으면서 ‘공항 장애‘ 때문에 청문회 출석 못한다고 우기더군요.

낭만인생 2016-12-07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결코 제대로 된 삶을 살수가 없을 겁니다. 비겁해 지니까요...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는 삶이 아니라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6-12-07 12:59   좋아요 0 | URL
올해 들어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어서 임종 순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비겁해질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요.
 

 

 

 

어제 친구와 고기 뷔페에서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통풍 걱정은 잠시 제쳐놓고, 배 터지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소재가 직장 뒷담화입니다. 친구는 직장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제일 불만이 많았던 것이 일요일 출근이었습니다. 친구는 지난주부터 일요일에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전인 일요일에도 출근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직장은 원래 주6일제였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작업량이 갑자기 늘어났고, 푹 쉬어야 할 일요일에도 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친구는 회사가 평소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유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원들이 주말 촛불 집회에 가는 걸 막으려고 회사 윗선이 직원들을 주말에도 일하게 시키는 것 같다.”

 

저는 처음에 친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친구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는 회사가 SK의 협력 업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SK 회장은 국정특위 청문회에 출석하여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80억 원의 기금 출연 요구를 받았으나 사업 계획 내용이 부적절해서 지원을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SK재벌도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논란에 피할 수 없습니다. 재벌 입장에서는 임직원들이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임직원들마저 촛불 집회 열기에 동참하게 되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오늘 점심 이후에 Theodora님이 서재에 공유한 보도문을 접했습니다. 그 보도문 내용에 따르면 이마트가 대통령 하야 배지를 단 직원에게 징계를 내리려고 했습니다. 이마트 노조는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마트 측은 하야 배지를 유니폼에서 떼어 달라고 요청한 것일 뿐 징계를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직원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존중하지만, 근무 중에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회사 전체의 입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측과 노조 측, 양자 입장을 살펴보면서 갈등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석해봤습니다. 사측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직원의 배치 착용으로 인해 회사 이미지가 악영향을 받을 거로 생각했을 겁니다. 최근에 홈플러스 매장 직원들이 하야 배지를 착용한 것을 비난하는 글이 홈플러스 고객센터에 올라온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측은 배지를 착용한 직원의 등장에 예민하게 생각했고, 징계를 내리겠다고 언급한 관리파트장이 회사 직원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회사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말한 게 노조 측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직원에게 근무 중 배지를 착용하면 안 된다는 회사 내 규칙을 언급하고, 일차적으로 주의를 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측은 회사 규정 내용을 언급했고, 해당 직원이 그 사실을 확인하며 배지를 떼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해당 직원은 관리파트장의 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마치 회사가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사측이 해명한 것처럼 근무 중 배치 부착이 불가능하다면 직원들이 근무 중에 사랑의 열매배지도 착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월호 리본 배지도 달지 못합니다. 과거에 사측이 사랑의 열매 배지, 세월호 리본 배지, 심지어 박근혜 배지를 착용한 직원에게 단 한 번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면, 대통령 하야 배지 착용 직원에게 징계를 준다고 언급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직원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하야 배지를 착용한 채 근무한다고 해서 매출에 악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박근혜 지지율 5%가 하야 배지 착용한 직원이 일하는 매장을 비난하고, 불매 운동을 벌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모나 샤이 박근혜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번 국정농단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고 있으며, 박근혜가 대통령직에 물러나 죗값을 받도록 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마트는 고작 5%에 불과한 지지율의 위력이 무서웠거나 아니면 그 5%의 지지율이 자신들 매출에 기여하는 콘크리트 구매율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하야 배지 착용을 제한한 이마트를 친박기업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이마트가 불명예스러운 오명에 벗어나려면 박근혜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착용한 직원을 발견하는 즉시,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트는 친박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떼어내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박근혜 배지를 착용하면서 일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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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6 21:06   좋아요 2 | URL
제가 다니는 직장은 대학교 내 사무실이라서 교수들과 자주 만나는 일이 많습니다. 당연히 정치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일부러 피합니다. 대학교가 경북 지역에 있다보니 교수 대부분이 친박 꼰대입니다. 그분들은 박근혜 정치가 엉망인 걸 알면서도 야당을 믿지 못한 건지 아니면 혼란스러운 정국이 두려워서인지 촛불 집회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입니다.

stella.K 2016-12-06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지 말아야 할 일들을 버젓이 자행하는구나.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 치사하다니까.
지금 순실이 때문에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최순실 때문에 이게 뭔가 싶다.
애국을 해도 부족할 판에 그 일당들은 나라도 팔아먹겠다 싶어.ㅠ

cyrus 2016-12-06 21:11   좋아요 0 | URL
세월호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뉴스를 봤어요. 솔직히 이런 사람을 끝까지 지켜야 할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박사모와 자칭 보수 친박 세력들은 노답입니다. 그들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어요.

:Dora 2016-12-0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4월 총선 투표 전까지 세월호 뱃지 다는 게 쉽지 않았었죠. 경복궁에서는 씨씨티비로 뱃지를 단 입장객을 감시까지 했었다네요. 촛불집회 이후 모든 게 점점 달라지고 있는 걸 체감합니다. 그들이 뻔뻔하게 나오거나 은근슬쩍 말을 바꿀수록 촛불은 더 타오를 듯 합니다.

cyrus 2016-12-06 21:29   좋아요 1 | URL
제 주변에 박근혜, 새누리당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대구에도 평일 집회가 열릴 정도로 박근혜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Conan 2016-12-08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구나 춘천같이 과거에 여당의 성지로 여겨졌던 도시들이 최근에 오히려 탄핵요구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느껴지는 배신감의 크기가 큰 것 이겠지요~

cyrus 2016-12-08 16:15   좋아요 1 | URL
저는 대구 토박인데도, 항상 1번만 바라보는 대구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대구 사람들이 정치적 입장에 대한 변화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번 박근혜 게이트 계기로 대구 사람들이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내년 대선 때 1번 찍으면 진짜.. 정말 답이 없는 지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