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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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원래 조직폭력배라는 의미로 사용돼온 경찰 전문용어였다. 지금 조폭은 가장 익숙한 말 중 하나가 됐고, 그 실체는 일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문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조폭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마도 배신과 불신이 판치는 세태에 거친 사나이의 야성적 매력과 자기들끼리긴 해도 끈끈한 의리랄지 우정 같은 것들이 재미를 주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천명관의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조폭물의 세계를 비꼬고 희화화한 코미디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천 뒷골목 조폭 두목과 건달들은 그저 우습거나, 망가지는 존재로 묘사된다. 작가는 처음부터 익숙한 조폭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액션과 웃음 속에 막판 감동을 살짝 끼워 넣는 뻔한 줄거리의 조폭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의리나 인정 같은 조폭 세계에 대한 알량한 미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싸움에 휘말린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조폭 그 자체보다는 남자들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일상적 폭력성과 먹이 사슬을 형성하는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한 공포가 더욱 구체화하여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건달 울트라는 정식 조직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그가 심부름을 가던 도중 재수 없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조직원 전체가 원산폭격(손을 뒤로하고 머리를 박는 벌)’을 받게 된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울트라는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단체로 요가라도 하는 중인가? 울트라는 단순하고 무식했지만 그래도 예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 예감은 뭔가 일이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울트라는 답답하고 무서워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못 본 척 사무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금이 저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41)

 

이 소설에 묘사된 조직 내 가혹 행위는 남자들이 말하기 불편했던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다. ‘원산폭격은 지금은 사라진 군대식 기합이다. 과거에는 연대 책임이라는 군대 문화 때문에 장병들은 연일 군홧발에 죽도록 맞고 원산폭격을 밥 먹듯 했다. 의무적으로 군대에 몸을 담게 되는 대한민국 남성은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적응할 것인지, 반항할 것인지. 그러나 개인의 힘으로 군대의 조직문화에 반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상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받는 셈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남성들은 권위에 복종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법, 비합리적 상황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피하는 법을 배운다.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곧 군대에 다녀와야 복종과 포기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다시 이 말을 조금 순화하면 군대에 다녀와야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말은 명백한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원래 조직사회란 그런 곳이라고 합리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의 원리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많은 조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내리 갈굼으로 표현되는 일방적 의사소통 구조, 강요되는 복종의 문제는 비단 군대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좀 더 넓게 보면 권력에 의한 일상적 폭력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인천 연안파 두목 양 사장의 유년시절은 참혹하다. 그는 뱃사람이었던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렸다. 아버지 때문에 어둡고 좁은 어창에 사흘 동안이나 갇히는 바람에 아사 직전, 죽음의 위기까지 갔다. ‘물고기 썩은 내가 진동하는어창에 갇힌 양 사장의 기억은 어린아이에게 있어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양 사장의 정신적 탯줄이 끊겨버린다. 그렇게 일찌감치 존재의 연줄이 사라져 버린 양 사장은 남성성을 통해 자신을 살찌우면서 뒷골목 세계에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조폭 집단은 모든 권력이 한 사람, 즉 두목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는 강한 남성으로 행사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상처의 기억을 잊으려고 한다. 작가는 이런 양 사장의 심리적 경험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집착임을 짚어낸다.

 

그러나 이런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 관습화된 조폭물을 넘어설 만큼 특별한 무엇을 보여줬다고는 평가하기 힘들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묘사한 수컷의 모습들은 시시콜콜 헤집을 것까지도 없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군대 미담을 언급하거나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관찰하면서 희희낙락거리는 사내들의 모습은 남자들끼리 모여 있을 때 등장하는 공식 클리셰(Cliché). 무망한 목표를 위해 거칠고 물불 안 가리는 위험한 열정을 과시하면서 사력을 다하는 건달들의 모습은 우리 남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실상 남자는 상처를 지닌 하나의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 약점을 지우려고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동족들의 호들갑이 불편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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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29 19:51   좋아요 1 | URL
그쪽 세계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져요. 제 친구 중에 조폭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연락을 끊을 겁니다. 괜히 친하게 지냈다가는 엉뚱한 일에 휘말릴 것 같습니다. ^^;;

자강 2016-11-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수준높은 리뷰를 보니 같은 책 다른 리뷰라는 말이 머리속에 내내 남는군요 ㅜㅜ

cyrus 2016-11-29 19:55   좋아요 0 | URL
과찬입니다. 알라딘에 리뷰를 꾸준히 기록하시는 분들 보면 대충 쓴 티가 나지 않고, 생각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읽기 편합니다. 자강님도 그러한 분들 중의 한 분입니다. ^^

stella.K 2016-11-2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대를 갖다 왔야 한다는 진짜 속내는 네가 지적한 말이 맞긴 할 거야.
근데 그것도 한끗 차이 아닌가?ㅋ
또 어떤 면에선 그게 여자들에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여자는 결국 거의 대부분이 의젓하고, 힘 세고, 자기를
보호해 주는 남자를 좋아하거든.
그리고 군대 안 갔다오면 엉덩이 뿔난 망아지 같다고 싫어해.ㅎㅎㅎㅎ

cyrus 2016-11-29 2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자 취급 안 해줘요. 저는 그런 상황을 지켜봤어요. 대학교 다닐 때 사정상 군대 안 간 선배가 있었어요. 제가 좀 눈썰미가 있는 편인데요, 예비역 선배들이 그 선배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보였어요. 제가 군대 안 간 선배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을거예요.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거든요. ^^;;

수다맨 2017-07-26 0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주관을 말하자면 천명관 소설은 수준 편차가 상당히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쓰인 소설(예컨대 ˝고래˝)은 맛깔나고 기름진 장광설의 향연을 보여주는 데 반하여 범작이나 졸작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재미와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작가가 무절제하게 뱉어 놓은 요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박하게 말하자면 저는 천명관이 ˝고래˝라는 기념비적 작품 이후로는 그가 가진 문학적 명성에 걸맞는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는 확실히 구라를 푸는 재주는 탁발한 작가인데 그 구라가 깊이가 떨어지는, 범속한 수준에서만 계속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cyrus 2017-07-30 09:58   좋아요 0 | URL
오래 전에 독서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가끔 천명관의 소설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호평한 천명관의 소설이 <고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 이후에 나온 천명관 작가의 작품들에 대판 평가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수다맨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하여 쓰는 편이 나은 법이라오.

웃음이 인간의 본성일지니.

 

(프랑수아 라블레, 유석호 역 《가르강튀아》 14쪽)

 

 

 

 

 

 

 

 

 

 

 

 

 

 

 

 

 

 

 

 

중세 유럽은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모든 인간의 영광과 찬란함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 즉 이름뿐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저 날카로운 전율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슬픈 생각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그 시대는 가시적 공포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서 부패하는 시체의 이미지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사라져 버리고 없음’이라는 관념을 좀 더 짧은 시간의 틀 속에서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중세의 가을》 269쪽)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전도서 문구처럼, 기독교의 교훈적인 성격과 연관된 바니타스(vanitas)의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말 죽음과 관련된 마카브르(macabre) 도상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시체를 대신해서 해골이 죽음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부나 명예의 덧없음, 쾌락의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다루었던 바니타스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위징아는 중세의 분위기가 잿빛 구름이 드리워진 고즈넉한 가을 풍경과 같다고 이해했다. 즉, 중세는 시들고 쇠퇴해간 가을이었다. 하지만 중세인들에게도 강렬한 열망을 품은 채 뜨겁게 살아온 ‘여름’ 같은 시절이 있었다.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중세인의 삶 중에서 다른 한 극단을 차지하는 밝은 반쪽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 세대의 웃음은 죽어 버렸고, 중세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과 생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열망은 민요와 소극에서만 살아 있는 듯하다. (《중세의 가을》 73쪽)

 

 

중세의 밝은 반쪽이 완전히 잊히는 바람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이제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만 정의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하위징아는 중세인들이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선택한 세 가지 길을 정리했다. 세계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부하든가, 모순의 세계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공상의 세계를 꿈꾸는 길. 15세기 프랑스의 민중들은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을 표현하려고 ‘첫 번째 길’ 또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이다. 두 거인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중세적 금욕과 규율마저 씹어 삼킬 정도로 쾌락을 즐긴다. 가혹한 현실에 진저리를 친 민중들에게는 두 거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라블레의 문학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바흐친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는 단언 최고다. 그런데 이 책은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구해야 한다.

 

다행히 라블레 전공자인 유석호 교수의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이 나옴으로써 그동안 주류 고전문학으로부터 멀어진 라블레 문학이 재조명받을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 책에 당연히 바흐친의 라블레 연구서의 주요 내용도 나온다. 600쪽 넘는 바흐친의 책이 부담스러우면 유석호 교수의 책을 참고해도 된다. 그런데 이 책에 오자가 눈에 띈다. 책 199쪽 주석에 ‘디드로(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를 ‘디디로’로 표기되었다.

 

 

미하일 바흐친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를 중세 민중문화의 실체를 증명해줄 수 있는 문헌으로 봤다. 라블레의 소설은 음담패설, 욕설 등 상스러운 말들로 가득하다. 이에 대해 바흐친은 천박한 표현들이 민중이 자주 모이는 장터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했다. 장터에는 민중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 즉 ‘카니발(Carnival)’이 펼쳐진다. 카니발은 왕족과 귀족이 참여하는 공식적 축제와 거리가 멀다. 계급 초월, 해학과 풍자, 질서를 파괴하는 카니발 속에 억압된 욕구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니발은 중세의 비공식적 민중 문화이며 장터는 서민들만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특별한 광장이다. 바흐친은 라블레의 소설이야말로 ‘광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241쪽)

 

인류 전체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욕망이 축제를 통해 표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데서 유래한 축제 내내 음주 가무를 즐겼고,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콩 임금의 축연’이 전통적인 민중 축제로 자리 잡았다. (‘콩 임금의 축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미야시타 기쿠로의 《맛있는 그림》을 참고할 것)

 

 

 

 

 

 

 

 

 

 

 

 

 

 

 

 

 

그러나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카니발을 정기적으로 열기가 불가능했다. 카니발의 의미가 역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이 최악의 기근으로 인해 생긴 식량 부족일 수도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술과 음식이 가득한 정물화나 축제를 묘사한 그림을 걸어 놓고, 굶주림에 대한 고통을 잊으려고 했다. 서민들이 풍족한 공상의 세계를 꿈꾸고 있을 때,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하위징아는 중세 궁정의 화려한 식탁 정경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궁정의 위계적 배열은 식사와 주방과 관련해서는 라블레적 풍성함을 갖추었다. 대담공 샤를의 궁정 식탁은 빵 담당, 고기 담당, 와인 담당, 요리장이 늘 대기했고 그들의 서비스는 거의 의전 절차 비슷한 위엄으로 규제했다. 식사 과정은 장엄하고 엄숙한 연극과 비슷했다. 식사의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엄격한 격식에 맞추어 시중을 받았다. (《중세의 가을》 101쪽)

 

 

하위징아는 대식가의 면모를 드러낸 두 거인의 식탐이 생각나서 궁정 식탁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바흐친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내용이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배고픈 민중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라블레는 위계질서를 무시하는 두 거인을 등장시켜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을 썼다. 그러므로 라블레는 ‘민중 친화적’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다. 엄격한 격식이 지배하는 궁정 문화와 라블레는 상극이다.

 

민중 축제는 권력의 억압에 밀려 사라졌고, ‘축제’의 의미가 그 권력의 축인 기득권층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문화 유형으로 변질하였다. 이는 종교가 라블레의 소설을 금서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혹자는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가 ‘축제 같은 시위’로 비치는 것을 꺼린다. 나도 촛불 집회가 ‘평화’라는 단순한 프레임 속에서만 갇혀서 보는 것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축제의 원래 의미를 탐색해보면 촛불 집회를 ‘축제 같은 시위’로 보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X 같은 현실에 짓눌린 압박에 해방감을 느끼고, 썩어빠진 권력이 만든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축제 같은 시위’가 되려면 가수들의 공연 시간과 집회를 주도하는 주요 시민단체들의 연설 시간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시민은 광장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중이 즐기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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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1-25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말씀따라 내일 즐기려면 일찍 자야겠네요 ㅋㅋ 편한 밤 되시고 원기를 모으시길.

cyrus 2016-11-25 22: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울이 대구보다 많이 추울텐데 내일 그곳에 집회 인원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2016-11-2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6-11-2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서평도서로 받아 두기만 하고 여적도 못 읽고
있는 책이네요.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
카오

cyrus 2016-11-29 15:07   좋아요 0 | URL
<중세의 가을>에 꼭 알아두어야 할 중세 시대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거의 다 있습니다. 중세 역사를 다룬 고전을 천천히 읽고 나서 에코의 <중세>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
 
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지음, 김덕민.김성환 옮김 / 나름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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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음에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침탈을 통해 세계적 지배권을 확립했던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지배국의 자리를 미국에 넘겨줬다. 냉전기 소련과 함께 세계의 양대 축으로 군림하던 미국은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10여 년 만에 세계 패권주의의 정점이 올랐다. 계획경제보다 시장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은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는 것을 보고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자본주의적 변신에 성공한 중국과 70여 년의 사회주의 실험에 실패하여 결국 붕괴한 소련의 차이는 바로 시장과 사유재산제도에 있었던 셈이다. 일찍이 다니엘 벨은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한 바 있다. 이데올로기가 정치 이념을 뜻한다면, 이념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80년대 후반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이제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견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현실에 적합한 최적의 사회적 담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정치·사회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는 주목할 만하다. 현재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신하여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기업 주도 세계화는 실패했고, 2008년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홍역을 앓은 이후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은 확산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만 넘기면 다시 탐욕과 착취를 반복한다. 첫 번째 위기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기업의 수익성 저하였다. 경제적 타격을 받은 자본가들은 금융기관의 보호 덕택에 기사회생했다. 이때부터 금융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29년 대공황이다. 일약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미국경제가 1929년 10월 주가의 폭락과 함께 순식간에 끝났다. 끝없는 실업자의 행렬이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게 되었고,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 정부가 시행한 뉴딜 정책은 자본가 계급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관리직 계급과 민중의 ‘사회적 타협(좌파적 타협)’이었다.

 

신자유주의가 탄생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소수의 상위 자본가 계급들은 금융자본을 이용해 자기 몸집을 키워왔다. 그사이 전 지구적 범위에서 투기와 거품이 끊임없이 양산되었고 이렇게 커진 거품은 경제 체제의 약한 지반을 따라 부분적인 폭발을 일으키면서 문제들을 누적시켜왔다. 세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좌파 정당의 목표는 언제나 효율적인 자본주의 경제 관리와 경제 성장 촉진, 그리고 이를 통한 보다 공정한 잉여의 분배였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 정당은 미래를 위한 경제정책과 정치적 목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열해왔다. 여기에 우파들은 자본가 및 금융기관과 함께 동맹을 결성하여 신자유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주도했다.

 

《거대한 분기》의 공동 저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 자체마저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좌파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좌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파의 위기는 거대한 세계 경제 위기의 뒤에 찾아왔다. 1929년 경제 붕괴와 대공황 시절, 1970년대 성장둔화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그때다.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또 한 번 ‘거대한 분기’에 직면하게 된 자본주의의 향방을 예측하면서도 유럽 좌파들이 선택해야 할 경로를 넌지시 제시한다. 그들은 뉴딜 정책의 사례처럼 ‘사회적 타협’이 형성되어 민중 계급이 신자유주의 쇄신에 주도하는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위기의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이 있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각 정파 내에서도 또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며, 역사적으로도 변화해왔다. 역사는 가변적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분기》는 신자유주의에 반감을 보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거대한 숙제다. 사실 우리나라도 ‘사회적 타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의 허상이 낱낱이 알려졌음에도 관리직과 자본가 계급의 우파적 동맹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동맹의 핵심은 노동과 시민을 억압하고 배제한다. 이 관계의 ‘뿌리’가 지금까지 썩고 있었던 사실을 목격했다.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특히 금융이 승승장구하리라는 것을 전망하는 주장들이 빈축을 사고 시대착오적이라 비난받아 마땅한 시기가 왔다.

 

 

 

 

 

 

우리나라가 ‘거대한 분기’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경기 침체의 늪에 계속 허덕인다면, 먼 훗날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보수 우파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미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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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11-2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러다임이 shift하는 건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지 아직 모르겠지만, 엄청난 사건이죠...

cyrus 2016-11-26 10:23   좋아요 0 | URL
181쪽 문장을 보면서 제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음을 느꼈습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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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지망생들은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기성 문인들도 마찬가지다. 문단 내의 추문이 잇따른 이 상황 속에 문학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다면, 문학을 하는 행위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하기에 십상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문인에게 자신의 글쓰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대부분 뛰어난 문인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과 진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이 실종된 시인에게서 탁월한 시가 나올 수 없다. 나는 김용택의 오래 한 생각을 읽으면서, 문학과 시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오래 한 생각, 울고 들어온 너에게20)    

    

 

문학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숙명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투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시인이나 문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용택은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사랑을 모르나보다같은 시는 엄밀한 자기 성찰의 표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쓸 때는 정신없어.

써놓고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놀라다가, 며칠 후에 읽어보면

정말 싫다. 사는 것까지 싫어

당장 땅속으로 푹 꺼져버리거나

아무도 안 보는 산 뒤에 가서

천년을 얼어 있는 바위를 보듬고

얼어 죽고 싶다.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르나보다.

 

(사랑을 모르나보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69)

 

 

난해한 시를 읽으면 정말 싫다. 시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시인과 독자 사이의 본원적인 교감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는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시인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즉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할 시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이유를 시인도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난해한 시는 대체로 자폐성이 있다. 그 시를 쓴 시인은 마음을 꽉 닫아놓고 나는 나대로 이렇게 쓸 거야라고 생각하는 자폐성이 있다. 시는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진 가장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문학적 대화이다. 시도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대화이다. 시인이 힘 있고 감동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대화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오는 시를 쓸 수 있다. 이는 시인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적인 책임이다.

 

김용택의 시는 담백하고 착하다. 화려한 기교와 인공조미료가 가미된 듯 문장을 요란하게 꾸미고 멋 부리기를 하는 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거짓 없고 꾸밈없는 글쓰기를 지향해온 시인답게 열두 번째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는 순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는 천진하고 순박한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 시인은 꽃 한 송이로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감동을 안겨주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내가

저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저기 꽃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보라고

다시 말했다.

 

(시인, 울고 들어온 너에게25)

 

 

시를 읽는 것은 시인과 서로 대화가 돼서 알아들을 때 재미있게 느껴진다. 시인 혼자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시보다는 서로 대화가 될 수 있는 시를 읽는 게 편하다. 간혹 가벼운 시마저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럴 때 이게 시냐?’, ‘이런 시를 쓰고 다니는 시인이 누구냐?’라고 묻기 전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말을 듣기 위해 좀 더 바싹 다가앉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요즘에 나온 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시집 읽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 시의 난해성 앞에서 절대로 좌절하지 마시라. 그런 시들은 거친 생각을 도정(搗精)하지 않고, 언어를 다듬지 않은 공허한 문자 덩어리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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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11-24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많이 어렵지 않아서 저도, 김용택 시인을 좋아합니다.^^

cyrus 2016-11-25 09:10   좋아요 0 | URL
쉽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시험 문제지에서 보면 어렵게 느껴질까요? 아이들이 시를 문제지에서만 보게 되니까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

단발머리 2016-11-25 09: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희 집 아이도 시 분석을 그렇게 싫어하더라구요~~ 먼저 충분히 느껴야하는데 ㅠㅠ

2016-11-2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5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6-11-25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쉽게 이해한다고 시인이 시를 쓸 때 정말로 ‘쉽게 쓰여진 시‘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cyrus 2016-11-25 09:14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인들은 서재 밖으로 나와서 독자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독자들이 선호하는 시가 뭔지 직접 알 수 있잖아요. ^^
 
소리의 정치 -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제국의 관객
이화진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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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인류의 역사에 처음 등장한 영화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무성 영화였다. 무성 영화는 화면만 움직이고, 화면 옆에서 변사(辯士)가 영화 내용을 관객에게 설명해 주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극장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변사가 고소득 인기직종이었다. 소리가 없는 영화였던 탓에 영사막 옆에서 영화를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과 배우들의 목소리가 첨가된 발성 영화(talkie, 토키)가 나오자마자 변사는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영화 속 음향은 영화의 화면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와 함께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것은 무성 영화에서 발성 영화로 전환된 1920년대 이후부터 유효했다.

 

통상 한국영화의 역사는 한국인들의 손으로 처음 만들어진 <의리적 구투>(1919년 작)로부터 시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해방기 혼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대다수 필름이 사라져 한국영화사 복원은 추측과 주변 자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본이 없기에 어떤 추측과 주장도 입증 불가능한 명제로 남는다. 그래서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 제작된 조선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으며, 상당히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조선영화사에서 당대 정서를 절절히 녹여낸 첫 작품으로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년 작)이 꼽힌다. (올해가 <아리랑> 개봉 90주년이며, 내년은 나운규 사망 80주기다) 나운규는 일본에 억눌린 민중의 한을 스크린에 담아내 전국에서 관객 약 15만 명을 끌어모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제창하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전한다. 그 후로 나운규는 <아리랑 후편><아리랑 제3>을 제작, 출연했으나 무성영화 시대에서 토키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넘어서지 못했다.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스타였던 나운규는 조선어 토키를 만들어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것이 바로 <아리랑 제3>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출연한 그는 연기의 한계를 드러냈고, 흥행에도 처참히 실패했다. 최초의 조선어 토키는 이명우 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다. <춘향전>(1935년 작) 개봉 이후 무성영화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다.

 

명함만 영화평론가인 조희문(왜 이렇게 소개했는지 궁금하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조희문을 검색해보시길)<아리랑>의 감독이 나운규가 아니라 일본인일 가능성과 <아리랑>이 항일영화가 아니라는 의견을 주장한 적이 있다. 억측에 가까운 주장이다. 다만, 조선영화 제작 과정에 일본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조선인들은 조선어로 된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극장은 조선인 상영관과 일본인 상영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인 상영관은 외국영화, 일본인 상영관에는 일본영화가 상영되었다. 우리가 이 시절로 되돌아가서 조선인처럼 생활하면서 영화를 본다고 상상해보자. 조선어 영화를 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한글이 1도 없는 영화를 무슨 재미로 보는가. 게다가 외국영화에 일본어 자막을 입혔기 때문에 영화의 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화면을 바라봐야만 했다. 피식민지인으로서의 차별을 피하려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인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일본인 상영관에 드나들어야 한다. 조선인들은 공적 공간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가정을 포함한 사적 공간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상태(diglossia, 다이글로시아)에 처했다. 

 

이런 부당하고,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운규 같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우리도 조선어 토키 제대로 만들어보자!”라는 공통된 생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말재주가 뛰어난 변사들은 극장을 찾은 조선인 관객들에게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고취하는 역할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사가 관객의 영화 이해와 감상을 돕는 무성영화의 해설자로만 이해했다. 이러한 인식 탓에 그들이 다이글로시아의 풍경에 저항한 주체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어 토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명우 감독의 형이자 <춘향전> 녹음 작업을 담당한 이필우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토키 제작자들의 조언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영화 한 편 만들어지려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당시 조선이 처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필우의 시도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리하여 조선어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리는 조선어 토키가 나올 수 있었다. 이필우가 설립한 경성촬영소는 조명과 촬영 설비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촬영장을 개축하는 데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조선의 영화인들은 양질의 자본이 투입된 영화 제작의 중요성을 몸소 경험했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한 영화인들 덕분에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발성영화 시대의 포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인들을 위해 조선어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인들의 초심이 희미해져 갔다. 일본의 대동아(大東亞) 환상에 찬양하는 조선어 영화나 전시 체제 동원을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조선인 배우가 일본어 대사를 하면서 등장한 영화를 조선영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일본영화로 봐야 하는가. 여기서도 또 한 번 복잡한 다이글로시아에 마주친다. 복잡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조선인 관객들의 저항 의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존재를 위협하는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 그것에 저항하고 견디어내는 힘이 나온다. 아마도 조선어 토키는 일종의 고통에 대한 저항 에너지 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진경의 말을 빌리자면, 극장은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는 삶에 대한 욕망과 혁명이 조우하는 특별한 지점이다. 이 지점, 극장은 식민지 시대를 탈주하려는 자들이 통과하는 곳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항의 탈주를 이끌어 내는 매체로 일제강점기 영화인들이 선택한 것이 다름 아닌 조선어 토키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고 지배적인 예술이 된 영화야말로 권력이 자신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은밀하게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배 권력의 피해물들이며 동시에 그 지배 권력을 공격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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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11-24 0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장이네요.ㅎ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한쪽에서는 국뽕을, 양식있는 이들은 언론이 다뤄주지 않는 문제를 영화로, 그 중간에서는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는...

cyrus 2016-11-24 09: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늘날의 영화는 상업 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습니다. 국위선양 목적의 상업 영화도 만들어지기도 하죠. 민감한 소재를 예리하게 파헤친 영화를 보기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