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신앙심이 두터웠던 다윈의 아내 에마는 남편의 진화론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윈은 딸까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신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진화란 인간이나 신의 의지가 아닌 냉엄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진행된다는 확신이 갈수록 강해진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은 개체적 특성이 세대를 통해 어떻게 전달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멘델과 드 브리스에 이르러서야 유전자와 돌연변이의 개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진화의 원인이 설명된다.

 

 

 

 

 

 

생물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고등동물일수록 자식 사랑은 본능적이다. 고상하게 삶의 의미를 논하고 이 본능을 마다한 동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미 멸종했다. 진화론은 오늘날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진화의 정점이라 여기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진화론에 파생된 오해를 믿고 있다. 진화론은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권력욕과 폭력은 강자의 권리로 포장됐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패배자들의 약한 소리로 전락했다. 우파는 진화론을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해석했고, 인간의 불평등을 합리화했다.

 

진화는 더욱 완전한 존재를 향한 발전 과정이 아니다. 꼭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동물과 식물은 진화라는 거대한 지구의 게임에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최선의 적응전략을 갖춘 개체만이 진화 게임에 살아남는다. 반면에 운 없는 개체도 나온다. 진화 게임의 극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생물이 바로 고래와 스텔라바다소다.

 

바다에 사는 포유동물 고래는 생물 계통상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전자 분석상 하마에 가깝다. 고래의 조상은 몸길이가 3m가 채 되지 않는 곰만 한 육식동물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육상동물과 달리 두 눈의 간격이 좁고 주둥이가 길며 발달한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네 다리를 가졌으며 우제류의 특징적인 발목뼈 구조를 보여줬다. 그런 동물이 바다에 적응하더니 최대 150t이나 되는 초대형 고래로 진화했다. 고래가 코끼리보다 훨씬 큰 크기로 진화하게 된 이유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개체는 적의 눈에 띄기 쉽다. 특히 인간의 눈에 띄면 씨가 마른다. 다 자란 놈의 몸무게가 10t이나 됐던 스텔라바다소는 한때 북태평양 전역에서 살았지만, 인류의 눈에 띈 지 단 27년만인 1768년에 종의 수명을 다했다. 움직임이 느리고 순해 선원과 상인의 손쉬운 식량감이었다. 스텔라바다소는 현존하는 듀공, 매너티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세 동물은 바다소목에 속한다. 듀공과 매너티도 최근 그 수가 격감하여 멸종위기에 있다.

 

 

 

 

 

번식은 동물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섹스가 불가피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동물에게 섹스란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이며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수명을 단축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중노동이다. 똘똘한 자식을 만들어줄 섹시한 파트너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도 벌여야 한다. 수컷은 자신이 진화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페니스를 과시한다. 그런데 진화를 위해서 페니스를 퇴화하는 종이 있다.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 하지만 닭과 타조 등을 제외한 조류는 하늘에 오래 날기 위해서 페니스를 포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류는 작은 파충류로 진화의 여정을 시작하여, 깃털을 발달시키고, 서서히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 뼈가 있는 꼬리와 이빨이 사라졌다. 꼬리가 있던 자리에 가벼운 꼬리 깃털이, 이빨 대신에 튼튼한 부리가 생겼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털이 없고, 눈은 좁쌀만 하다. 앞니만 톡 튀어나온 게 못생겨도 이렇게 못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형태 또한 삶의 환경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작은 눈은 평생 땅속에서 살기 때문에 빛만 감지하면 되므로 큰 눈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입 주변에 있는 수염이 눈 역할을 대신해 사물을 감지한다. 또한 털이 없는 이유는 땅속은 기온이 일정하므로 털의 역할이 없어져서 저절로 퇴화했다.

 

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숙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진화는 있을지언정, 실패 없는 진보는 없다.’는 것.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인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인류의 진보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일 진화론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적용해보자. 수많은 종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들이 탄생해왔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거나 혹은 아예 멸종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멸종한 생물들을 진화에 실패한존재로 규정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인류의 생태적인 성공이 수많은 시련과 난관을 거쳐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시도라는 긴 대열에서 유래했다. 스텔라바다소의 사례에 볼 수 있듯이 진화가 오로지 진보와 발전이 아닌 퇴행도 함을 잘 보여준다. 진화는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이다. 살아남은 생명은 또 하나의 가능성에 매달리면서 마침내 새로 진화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장대한 시련의 연속 속에서 종은 살아남기 위하여 나무로, 물로, 하늘로,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 도전과 실패의 과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화 게임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진화 게임은 완벽한 진보의 혜택을 누린 승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화의 의미는 막다른 환경의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있다. 이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변화 앞에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이제 우리는 다른 차원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진화의 세계를 혹독하게 경험했던 털 없는 원숭이는 자연을 점점 더 큰 재앙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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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9-1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진화에 관심이 많아요. 별로 아는게 없어서 항상 새로운데 cyrus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나 많은 걸 배우게 되네요^^

cyrus 2016-09-18 18:39   좋아요 0 | URL
MID 출판사에서 나온 <멸종>과 <짝짓기>를 같이 읽으시면 진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16-09-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18 18:5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로 설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문장을 다시 보니까 표현이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로 고쳤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초현실주의 회화의 의미를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생뚱맞음이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을 모아놓고 수수께끼의 이름이 붙인 그림은 관람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런 생뚱맞은초현실주의 미술을 구축한 화가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시기는 고작 4년에 불과하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데 키리코는 형이상학적 회화로 명명된 그림들을 제작했다. 1920년부터 데 키리코는 돌연 고전주의 화풍을 시도했다.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에 회귀한 데 키리코의 작업을 비난했고, 그를 집단에 제명하기에 이른다.

 

 

 

 

 

 

 

 

 

 

 

 

 

 

 

브르통은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사실주의를 조야한 자기도취라고 비판했다. [참고 1] 데 키리코는 라파엘로, 루벤스 등의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사실주의를 환기했고, 이를 형이상학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려고 했다. 그의 후반기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회화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고, 데 키리코의 대표작으로 많이 소개되는 작품이 거리의 신비와 우울이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데 키리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게 하여버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광장에 노랗게 번지는 오후의 색깔이 몹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고대의 성벽이 서 있는 골목길은 햇볕을 받아 환하게 밝고, 오른쪽 반을 차지한 성벽은 완전히 칠흑처럼 컴컴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광장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상반신 그림자가 마치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는 소녀를 관찰하듯이 골목길에 삐져나와 있다. 굴렁쇠 소녀는 그림자를 향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온다. 보이지 않는 광장도 보이는 골목길도 적막하기만 하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밀라노 등을 여행하면서 지중해의 햇살이 고대유적과 광장에 가로질러 들어오는 풍경에 매료되었다.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은 첫 번째 현현(顯現, epiphany)이다. 이때부터 데 키리코는 광장을 소재로 형이상학적 그림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묘사한 광장은 황량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짙게 감돈다.

 

 

 

 

사랑의 노래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아폴로 석조 두상과 수술용 장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녹색 공이 놓여 있다. 이 오브제들이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제목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잔뜩 생긴다. 딱 거기까지만. 우린 절대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해답을 찾게 되면 이 그림 본연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진다.

 

 

 

 

데 키리코는 처음에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ocklin)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뵈클린 역시 음습한 분위기, 초자연적인 세계의 기이한 경험을 표현했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 속에 텅 빈 광장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관람자에게 꼿꼿하게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데 키리코의 수수께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없다. 여기서는 광장의 유령이라고 표현하겠다) 광장의 유령은 뵈클린의 그림에 등장한 인물과 닮았다.

 

 

 

 

망자의 섬중앙에 온통 암흑으로 드리워진 사이프러스 숲은 고요하고 아무런 형태가 없는 심연(深淵)을 형성하며 무한으로 향하는 미지의 세계, 즉 알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을 나타낸다. 검은 옷의 뱃사공이 노를 젓고, 하얀 옷을 입은 망자는 죽음이란 최후의 여행을 암시한다. 데 키리코는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도시의 거대한 탑으로 변용했다. 거대한 크기와 단순한 형태의 탑은 무한한 환상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1919년에 데 키리코는 로마 미술관에 전시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고 두 번째 현현을 체험한다. 그는 형이상학적 회화에서 고전적 사실주의로 돌아선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집단은 데 키리코를 변절자로 몰아세워 비난했으나 그들은 처음부터 데 키리코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데 키리코가 한창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열중했던 시기에 이미 고전주의적 소재(고대 유적, 조각상, 도리아식 열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와의 단절을 추구했지만 데 키리코는 과거와의 연결을 시도하여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브르통은 데 키리코의 사소한 일탈을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했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의 그림도 봤을 것이다.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다.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건너가는 과도기에 형성된 미술양식을 가리킨다. 더러 매너리즘으로 쓰기도 한다.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의 단순한 조화를 해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변형한 것이다. [참고 2]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는 미완성 작품이지만, 마니에리스모 양식에서 볼 수 있는 불균형한 구도와 비현실적인 신체 왜곡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목이 긴 성모에 특이한 기둥이 그려져 있다. 그 기둥 아래에 성 히에로니무스로 추정되는 사제가 서 있다. 진중권은 이 오묘한 구도를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과 닮았다고 했다. 곰브리치는 정통적인 양식을 거부한 파르미자니노를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라고 평가했다. [참고 3]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데 키리코가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목이 긴 성모스가랴와 함께 있는 성모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다. 데 키리코가 피렌체를 여행하는 중에 우피치 미술관에 들렀을 것이다. 그는 파르미자니노의 특이한 신체 묘사, 배경에 배치한 고대 건물과 기둥을 인상 깊게 봤을 수도 있다. 데 키리코가 고전주의 회화에 탐닉했던 시기에 마니에리스모 양식과 유사한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합리적인 세계를 뒤집으려는 계획을 갖고 현실을 재창조하는 예술 행위를 추구했다. 초현실주의 집단 일원들과 교류했던 피카소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 키리코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화풍으로 현실을 재창조했다. 그는 보이는 것을 그리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데 키리코의 영향으로 달리,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자유로운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형상화해낼 수 있었다. 그가 달리와의 관계를 끊고(브르통은 달리가 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히틀러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 당연히 달리와 브르통은 예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갈라섰다), 자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그리트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참고 4] 달리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자신의 기억, ,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그렸고, 마그리트 역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환상의 세계를 중시했다. 데 키리코는 자신의 그림이 꿈과 무관하며 초현실주의를 의식하고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현실의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전주의로 관심을 돌렸다. 데 키리코는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것을 시도했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결합. 물과 기름 같은 서로 상반된 양식이 만나 색다른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도전이었고, 동료 화가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데 키리코가 죽을 때까지 형이상학적 그림을 그렸다면, 초현실주의 회화를 논할 때 달리, 마그리트보다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 것이다.

 

 

 

[참고 1]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 65

 

[참고 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창비, 2016) 2장 매너리즘 편

 

[참고 3] 교수대 위의 까치(마로니에북스, 2009) 11장 목이 긴 성모 편

서양미술사(예경, 2013) 18장 미술의 위기 편

 

[참고 4]다시 구할 수 없는 미술책 시리즈’ (20123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55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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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2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지금 지진이었죠?

cyrus 2016-09-12 20:40   좋아요 1 | URL
네. 하루에 진동을 두 번 느낀 건 처음입니다. 지진의 여파 때문인지 지금 카톡도 안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신비와 우울` 그림은 저도 근간 <경제와 미술을 지배하는~> 책 보고 첨 알았습니다. 제 느낌 소감도 매우 비슷합니다. ^^

cyrus 2016-09-12 20:56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 그림이 좋은 이유가 해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1:22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님도 괜찮으세요?
진도 5.0 이상은 정말 큰 지진인데, 그것도 내륙에서요...

cyrus 2016-09-12 21:28   좋아요 2 | URL
무사합니다. 또 여진이 일어날까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군요. ㅎㅎㅎ

yureka01 2016-09-12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지진의 파장이 사회를 초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린듯이 웅성거림과 두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아 떨림의 두려움이 그런가봐요....역대급이었다고 하네요...

cyrus 2016-09-13 08:46   좋아요 1 | URL
빌라에 살고 있어서 또 지진이 일어날까봐 두렵습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1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 잠시 서양사에 관심이 있어 한 일년쯤 수강했는데 키리코의 그림은 매너리즘으로 아주 잠깐 훑고가더라구요. 기묘한 느낌때문에 인상에 완전 남았는데! 스페인의 엘 그레코도 그렇고 매너리즘으로 약간 낮게 보는 게 좀 짜증났어요. 왜냐면 제 취향엔 이상하게 맞았거든요..ㅎㅎ
근데 전 초현실주의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인데 그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니 역시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재밌네요. 그게 제가 남의 서재를 염탐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cyrus 2016-09-13 23:27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한 입장입니다. 저는 달리의 그림을 안 좋아해요. 난해해요. 달리의 그림이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달리가 프로이트 사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점을 지나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요. 사실 마그리트의 그림도 어려워요. ^^;;

낭만인생 2016-09-13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세계도 있군요. 처음 접하는 거라 낯설고 신기합니다. 뭔지 잘 이해도 되지 않구요... 저의 미술 실력이....

cyrus 2016-09-13 23:28   좋아요 1 | URL
그냥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꼭 알아야 할 내용도 아닌데요. ^^

초딩 2016-09-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iOS10 업데이트하고 난 후부터 북플에 긴글이 마지막에 ... 으로 나오는 것 같네요 ㅜㅜ
문자 길이에 따라 영역계산하는 것을 예전 함수를 써서 그런것 같아요.
최신 함수를 써야하는데...
10이전까지는 그럭저럭 동작했는데, 10 이후부터는 옛날꺼는 문장 영역 계산에 오차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cyrus 님께서 신문고를 울려주세요~~~
ㅎㅎ 초딩하는 일이 이런 앱 만드는 일이라 조금 압니다 ㅎㅎ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어떡하죠. 저는 갤럭시 안드로이드 폰을 쓰고 있어서 애플 iOS 시스템은 잘 모릅니다. ^^;;

사소한 문제도 서재지기 게시판에 글 남기시면 됩니다. 아니면 초딩님 서재에 이 문제에 관한 글은 전체 공개로 작성해서 공론화해도 좋습니다. 일단 초딩님의 댓글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비종 2016-09-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화가들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보았어요. cyrus님 덕분에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게 되었구요, 미술에 대한 상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마음에 드네요. 기발한 발상과 색채의 톤이 밝고 건전해보이는 그림이 많더군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은 맘에 안들지만^^;
달리의 그림은 뾰족한 뼈다귀들이 잔뜩 나오고 왠지 피 질질 흘러내릴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라 별로입니다. 형이상학적 세계라 해서 그렇게까지 날카로울 필요가 있을까 싶구요. 부드러운 무의식도 분명 있을 텐데...
데 키리코는 처음 들어본 화가였어요.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그림을 통해 본 대체적인 성향은요, 소개해주신 7점의 작품에는 <사랑의 노래>를 제외하고 모두 2명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예요. 근육질이든 이쑤시개처럼 표현이 되었든 항상 두 사람이더군요. 그림자가 많이 나타나고, <거리~>와 <떠나야~>에 등장하는 콘테이너는 집과 같은 의미였을까 생각도 했어요. 바나나를 좋아했나봐요. <몽파르~>에 널려있는 무더기가 뭔가 신경이 쓰였는데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니 바나나였라구요. 지중해의 햇살을 좋아해서였는지 노란색을 많이 썼고, 빨강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랑의~>에 등장하는 고무장갑도 빨강이고 그외 중요 포인트에도 빨강을 쓴 것 같거든요. 빨강/노랑/초록/파랑을 주로 쓴 사람이네요. <검투사>를 한참 바라보았어요. 등장하는 2명의 피부톤이 반반씩 교차되어있는 것 같아서요. 뒷모습을 보이는 근육질 남자의 하체톤이 마주 바라보는 허연 남자와 비슷합니다.ㅋ
이 포스트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15년부터 1919년까지 4년간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그린 그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더라구요. 소개해주신 그림 중 5점은 1910년부터 1914년까지의 그림이고(물론, <떠나야~>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2점은 1920년 이후의 그림이니, 고전주의 화풍이 가미된 작품과의 차이점은 어느 정도 느낌으로 오는데요, 가운데 도막이 빠져 before에서 after로 넘어가는 과정이 생략된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개뿔도 모르면서 감히 이런 멘트를~^^; ;==33)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항상 그림 이미지를 위키아트에서 가져 옵니다. 위키아트로 검색하면 웹사이트가 나와요. 거기에 화가 영어 이름으로 검색하면 전부는 아니지만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까지 나옵니다. 여기에 데 키리코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이 뭔지 알겠습니다. 데 키리코의 그림에 등장한 바나나는 ‘야생’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해석한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데 키리코의 그림 이미지를 고르느라 나름 고민했습니다. 그림 이미지를 많이 소개하고 싶은데, 이미지를 많이 올리면 글의 길이가 길어져요. 초현실주의 회화에 관한 글이 생소한데다가 분량까지 많게 느껴지면 정독하기가 힘들죠. 제 글을 정독하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제 글을 보는 분들을 위해서 길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데 키리코 후반기 그림 이미지를 넣지 못했어요. 제 글의 부족한 점을 아주 잘 짚어주셨습니다. ^^

나비종 2016-09-18 20:26   좋아요 0 | URL
위키아트. 저도 나중에 검색해봐야겠습니다.^^
아. .바나나의 의미가 그런 것이었군요.
^^;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cyrus님의 글은 공들여서 쓴 한 편의 논문같아서요. 여러 번 곱씹어서 읽게 됩니다. 댓글도 리뷰처럼 쓰게 되구요.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읽으면 뭔가 정갈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게 제게는 묘하게 위안이 된다는^^;

cyrus 2016-09-20 17:07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정독하면 안 됩니다. 시력 나빠져요. ㅎㅎㅎ
 
라 셀레스티나 을유세계문학전집 31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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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 라 셀레스티나

 

 

 

 

예나 지금이나 결혼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중매다. 중매(仲媒)쟁이가 지나치면 사람을 사고파는 중매(仲買)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옛날부터 미혼남녀가 자유롭게 사귀지 못하던 시절에 양측을 맺어주던 사람들을 뚜쟁이라고 불렀다. 사전적으로는 부유층이나 특수층을 상대로 하는 직업적인 여자 중매쟁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주로 신고를 하지 않고 몰래 다니며 명함을 뿌리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중매쟁이들을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뚜쟁이를 매춘 알선 브로커의 의미에 가깝게 쓰인다.

 

셀레스티나(Celestina)는 세계문학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뚜쟁이다. 그녀의 이름은 ‘뚜쟁이’를 뜻하는 스페인어 고유명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셀레스티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1499년에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이라는 희극 작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귀족 명문가 아들 칼리스토가 멜리베아라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저자명은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에 저작권의 개념이 없었던 터라 아류작들이 생겨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페르난도 데 로하스도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과 유사한 아류작을 썼는데, 이 작품이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호평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로하스는 제1막으로 된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 원고를 발견하여 본인이 직접 15막을 더 만들어 소설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아류작의 인기에 힘입어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고,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아닌 뚜쟁이 노파 셀레스티나가 더 많이 주목받았다. 로하스의 소설 제목은 《라 셀레스티나》로 널리 알려졌다.

 

칼리스토는 화려한 귀족 출신이지만, 연애가 서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여자를 정복하는 것. 하지만 그는 입만 살아있는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이다. 결국 하인 셈프로니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욕망에 눈이 먼 주인의 본심을 알아차린 셈프로니오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다. 셈프로니오는 칼리스토에게 늙은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소개한다. 뚜쟁이는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사랑을 성사시켜 물질적 보상을 얻으려고 한다. 칼리스토의 또 다른 하인 파르메노는 뚜쟁이와 동료 하인의 간계를 눈치챈다. 그는 주인이 정신 차리길 바라는 마음에 셀레스티나의 사악함을 알렸지만, 칼리스토는 파르메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셀레스티나는 매춘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를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와 연결해 자기편으로 만든다.

 

셀레스티나는 악명 높은 뚜쟁이로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악행에 떳떳하게 생각한다. 그녀는 현세의 쾌락을 즐기는 대신 악마에게 영혼을 판 쾌락주의자다. 세속적 욕망과 관능적 쾌락을 인생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셀레스티나의 쾌락주의자는 에피쿠로스가 추구하는 쾌락과 다르다. ‘향락주의자’로 불리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지향점은 관능적 쾌락이 아니라 고통과 불안이 없는 상태였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역설을 말한다. 혀와 입의 쾌락을 향한 극단적 추구는 구토와 설사라는 고통으로, 성애에 대한 탐닉은 성적 장애와 음욕의 노예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쾌락을 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통이라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금욕주의로 돌아서서 마음의 평정인 아타락시아(ataraxia, 부동심)를 진정한 쾌락이라고 갈파했다.

 

셀레스티나는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거의 가까워진 인물이다. 셀레스티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인물도 죽음 앞에 사라지는 존재다. 쾌락을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향락주의자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섹스를 즐기면서 ‘생의 불안’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물질적 욕망에 향한 셀레스티나의 집착은 끔찍한 파멸을 이르게 한다. 욕망(desire)은 욕구(need)와 달리 무한하다.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물을 부어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의 노예다. 살아있는 한 유한성의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쾌락은 ‘채움’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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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12 16: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냈습니다. ^^

yureka01 2016-09-11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심리학에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의 비밀은 욕망에서 비롯된 무차별적 계획은 아닐까 싶어요.
괘락의 감각기관이 사라진다면,과연 우리가 존재하기는 할까 라는 질문이 생기네요..

잘봤습니다^^..

cyrus 2016-09-12 16:23   좋아요 0 | URL
욕망이 아예 없었으면 사는 일이 재미 없었을 것 같아요. ^^;;

초딩 2016-09-14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세요~~~
 

 

 

 

 

북플이 만들어진 지 어느덧 2년째로 접어드는데도 미흡한 문제점이 남아있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쓸 때, 앞표지 그림이 없는 책을 입력합니다. 표지가 없는 책도 클릭하면 책 소개를 확인할 수 있고, 장바구니에 담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북플에서 보면 표지 없는 책이 ‘No Image’로 뜹니다. 책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요. 알라딘 서재에서 가능했던 링크 기능이 북플에서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표지가 없는 책에 별점을 부여하고, ‘읽은 책장’에 추가하려면 책 제목을 검색해야 합니다. 검색 결과에 표지가 없는 책 이미지가 두 개 이상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본인이 찾으려는 책이 맞는지 하나씩 확인해야 합니다.

 

마이페이퍼 작성 시 표지 없는 책을 포함할 때, 북플에 ‘No Image’가 안 뜨게 조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건데 표지 없는 책에 회원이 직접 책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이 문제에 대한 이웃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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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0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이미지 자료가 없어서 일까요..간혹 오래된 책들 이미지가 안뜨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cyrus 2016-09-09 17:47   좋아요 1 | URL
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 현재 구하기도 어려워서 표지만 확인하는 일조차 불가능해요. ^^

아무 2016-09-0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예전 책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신간 중심이라 그런지.. 그런데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는 15년 책인데도 이미지가 안 나옵니다. 이런 걸 보면 꼭 구간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닌 듯하고..

AgalmA 2016-09-09 21:32   좋아요 1 | URL
제가 <고쿠분~> 페이퍼 쓸 때는 이미지가 정상이었거든요.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신간 dvd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는데, 별점을 줄 수도 없이 튕겨져 나와요. 예전에 별점 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이건 북플 내 버그라고 봐야죠.

아무 2016-09-09 21:48   좋아요 1 | URL
아 예전에는 이미지가 정상이었군요. 그러면 그건 버그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예전에 들뢰즈에 대해 알고 싶어서 찾아보던 건데 전 그때부터 안 보였거든요. 결국 여러 권 중에 고민하다 사진 못했는데..^^;; 지금도 북플로는 이미지가 안 나오긴 합니다ㅠ

syo 2016-09-09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책 제목 검색했는데 노 이미지 5개 뜨면 모르는 문제 OMR카드 마킹하는 기분이에요.

cyrus 2016-09-10 09:02   좋아요 1 | URL
좋은 비유입니다. 노 이미지 중에 외서도 포함되어 있어요. ^^;;

AgalmA 2016-09-09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장성의 문제죠.
중고책도 구간 책인데 재출간된 이미지로 대체해놔서 주문했다가 반품하는 일이 종종 생기잖아요? 즉 수요와 판매 우선으로 DB를 짜니까 오래된 책이나 없는 책에 대해서까지 신경쓰지 못하는 상황이겠죠.
cyrus님이 말씀하시는 회원이 직접 올리는 방식은 위키처럼 하자는 거네요. 사진의 퀄리티가 고르지 못하면 역효과로 흉할 수도 있어서 북플리언이 해당 책이미지를 북플 담당자에게 보내 알맞은 형식을 갖춰 올리도록 하는 건 어떨까 싶네요. 그런 경우 소정의 적립금 같은 걸 줘도 서로 윈윈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역시 시장성의 문제...자신들이 팔 책도 아닌데 이런 수고를 할 정도로 알라딘이? 흠.

cyrus 2016-09-10 09:07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의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합법적인 땡스투 적립금이니까요. ㅎㅎㅎ

일부 온라인 중고샵 셀러들은 직접 책 표지 사진을 찍어 올려요.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헌책방에 구한 책 서평을 쓸 때 표지 사진을 올리려고 해요.

transient-guest 2016-09-10 0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no image를 그대로 올려놓곤 했는데, 보기 안 좋더라구요.ㅎ

cyrus 2016-09-10 09:09   좋아요 1 | URL
북플로 노 이미지를 볼 때마다 액박처럼 느껴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6-09-1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cyrus 2016-09-10 21:07   좋아요 1 | URL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서비스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레삭매냐 2016-09-10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퀄러티 컨트롤이 되지 않아 그런게 아닐까요? ㅋㅋ

cyrus 2016-09-10 21:09   좋아요 1 | URL
그럴 수도 있어요. 오래된 책의 표지 이미지는 선명도가 떨어지는 편이에요.
 

 

 

 

 

 

 

 

 

 

 

 

 

 

 

 

 

 

 

 

초현실주의는 일상세계로부터 단절을 추구하는 사조다. 회화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로 화면을 꾸미는 장르를 말한다. 또한, 대상을 과도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리되 그것을 약간씩 비틀어 생소한 느낌을 주어 혼돈을 체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화가들에게 강조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보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뛰어난 상상력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꿈과 욕망,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세계를 상상력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변용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기욤 아폴리네르였다. 그는 생전에 시인으로만이 아니라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에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이 초현실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브르통은 일상의 상식에 매몰돼가는 인간을 해방하고 꿈과 잠재의식이 엮어내는 초현실의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로 인간을 안내하는 길잡이인 초현실주의 회화의 기법을 마련한 것은 막스 에른스트였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콜라주(collage)를 보고 브르통은 이것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시금석’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에른스트는 다양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선보였는데, 프로타주(Frottage)는 20세기를 거쳐 오늘날 작가들에게 유용한 실험적인 기법이다. 누구나 어릴 적에 백 원짜리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검게 문질러 그려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게 프로타주다.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것이다. 프로타주의 어원은 '문지르다'는 뜻의 프랑스 단어 '프로테'(frotter)에서 파생됐으며, 화가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 에른스트가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한 것도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비가 내리던 그날 저녁, 나는 프랑스의 해변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룻바닥에 깊게 파인 홈들을 흥분한 가운데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명상과 환각 능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나는 마루 위에 종이 몇 장을 아무렇게나 놓고 연필을 문지르기 시작해 몇 장의 스케치를 떴다.

 

(막스 에른스트, 베르너 슈피스의 책 《막스 에른스트 : 프로타주 기법과 예술세계》 14쪽)

 

 

 

 

그라타주(Grattage) 또한 에른스트가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이것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그림 제작 방식이다. 종이에 크레파스로 여러 가지 색을 칠한 뒤에, 까만색을 덧칠해 날카로운 물건으로 원하는 형상이 나오도록 긁어낸다. 에른스트는 캔버스에 물감을 여러 겹 바른 후 표면을 긁어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이성과 상식을 거부하는 초현실주의 미술은 192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서구 미술 흐름의 중추적인 사조였다. 그러나 국내 화단에서 초현실주의는 상대적으로 별로 활발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은 있었지만, 이들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초현실주의 그림의 난해성은 관객의 접근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에른스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그림들은 어둡고 불길한 징후를 간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에른스트의 『세 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 예수를 때리는 성모』는 기존의 성모자 상을 뒤집는 도발적인 그림이다. 성모는 벌거벗은 아기 예수의 엉덩이가 벌겋게 되도록 손바닥으로 때린다. 힘이 세게 들어간 성모의 엉덩이 스매싱 때문에 아기 예수의 광륜(halo)이 바닥에 떨어졌다. 성모 뒤에 에른스트, 브르통, 엘뤼아르 세 사람은 무심한 눈빛으로 폭력의 광경을 바라본다. 에른스트는 도발적으로 종교의 금기를 우롱한다. 그러면서 종교적 금기 속에 감추어진 폭력성을 보여준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행위는 언뜻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연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인간이기도 하고 또 일상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상 폭력성을 두려워한다. 살풍경한 현실, 이해 불가능한 인물들의 태도를 보면서 관객은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비 온 뒤의 유럽 II』는 1차 대전이 휩쓸어 황폐해진 유럽을 초현실주의적인 연출로 극대화한 작품이다. 에른스트는 군 복무 중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유럽을 목격하면서 ‘반 문명, 반이성’을 표방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 사정은 이해되고 남음 직하다. 에른스트에게 전쟁은 인간 내면의 증오와 파괴성에서 시작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광란의 현실을 그리면서 인간 무의식의 지층 속에 새겨진 폭력성을 더듬었다.

 

에른스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게 될 때 화가의 생명은 끝”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에른스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굳이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정답에 가까운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상한 불길함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만 즐기면 된다. 이 불길한 환영을 보라, 그리고 긴장하라. 초현실주의 그림이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순간, 그림의 생명은 끝이다.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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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0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문예사조에 밝으시네요 ^^!: 덕분에 해설이 곁든 명화 감상 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9-09 17:00   좋아요 2 | URL
그림 해설은 책에 있는 내용을 기본적으로 참고하고요, 그림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입니다. ^^;;

yureka01 2016-09-0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서도 현실의 은유..이런게 초현실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너무 직설적인 경우 정치적인 박해가 염려될때 써먹는 고단수의 기법같은거..^^.

cyrus 2016-09-09 17:44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자 대부분은 좌파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마그리트는 벨기에 공산당원이었습니다. 달리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소재로 초현실적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

yureka01 2016-09-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주장을 직설적인 회화로 표현하기보다는 역시 예술은 한번 비틀어야 제맛인가 봐요..

cyrus 2016-09-09 17:5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화가의 메시지를 숨긴 그림을 좋아해요. 이런 그림은 관객의 호기심을 유도해요. 그리고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