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아름다운 가슴이 있을까? 옛날부터 남자들은 아름다운 가슴의 정의를 찾으려고 했으며 직접 만져보고 싶어 했다. 와인 잔, 특히 손바닥으로 감싸 안은 둥그런 부분은 봉긋한 가슴 모양과 비슷하다. 최초의 와인 잔은 고대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의 가슴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헬레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이다. 그리스 남자들은 헬레네의 가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미인이라면 가슴도 아름다울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름다운 가슴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가슴의 외모를 운운하는 것은 가슴을 성적인 기능으로만 보는 남성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보건복지부가 아름다운 가슴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구체적인 수치와 모양, 색깔 등을 그림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아름다운 가슴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놓고선 아주 자신 있게 이상적인 가슴의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또 여성의 가슴을 2의 성기라며 논란이 될 만한 내용도 덧붙였다. 아니, 작성자님. 무슨 약을 하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영국의 인류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가슴의 형태가 성적 신호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은 남자를 유혹하는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이 발달하였다는 관점을 받쳐주었다. 그러니까 모리스는 여성의 가슴을 2의 엉덩이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모리스의 주장에 반박하는 가설도 있다. 모리스의 가설에는 남성 중심의 관점이 반영되었다. 아기가 편하게 수유를 할 수 있도록 가슴의 형태가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최근에 후자의 가설이 주목받고 있으나 모리스는 여성의 가슴이 성적 신호라는 주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이 양육 기능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문제투성이 글을 쓴 사람은 욕을 먹어도 싸다. 글 작성자가 정말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라면 자질이 의심된다. 글 작성자는 남성중심주의에 갇혀 있다. 그리고 여성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을 썼다. 정확한 수치를 나타내면서까지 이상적인 가슴의 조건을 설명하는 것은 노예 시장이 성행했던 구시대에 나올 법한 발상이다. 여자 노예들은 노동력과 생식능력 때문에 남자 노예들보다 가격이 비싸게 책정되었다. 그래서 노예 시장에 가면 알몸의 여자 노예들이 서 있었다. 상인들은 건강한 여자 노예를 사기 위해서 몸 전체를 훑어봤다.

 

페미니즘의 빛이 환하게 밝혀졌어도 아름다운 가슴을 숭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의 외형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찾는 여자들이 있다. 가슴은 단지 크기와 모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남의 시선에 따라 가슴을 돋보이는 일에 치중하면, 가슴의 건강을 소홀히 여길 수 있다. 가슴이 큰 여성일수록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게 나온다. 에스트로겐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유방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는 유방암의 원인이나 이를 예방하는 유익한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 아름다운 가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일은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아름다운 가슴이 뭣이 중헌디. 당신들이 뭔데 감히 여성의 가슴을 판단해!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16-08-0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다 한 잔 마신 것 같은 걸요~ㅎㅎ
보건복지부 인간의 글이 ˝가슴은 우리 여성의~˝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여성분이 쓰신 글인 것 같긴 한데, ˝아기에게 생명의 정수를 물려준다˝는 부분만 제외하고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많았거든요.
`저는 제 의미와 자존심과 미적 가치를 가슴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만~, 음, 현대인의 기준이라니! 전 현대인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게 빌렌도르프나 미로의 비너스 가슴이나 판단하시지 왜 살아있는 현대를 건드리실까` 라며 계속 꿍시렁댔죠.
한 편의 사설을 읽은 기분입니다. 지극히 감성적인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일관적으로 논리적인 글의 흐름이 참 좋습니다^^

cyrus 2016-08-10 07:35   좋아요 0 | URL
보건복지부가 글로 설명하는 것이 아쉬워서 그런지 그림까지 그려놓았습니다. 야한 그림이 아닌데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보건복지부 가슴`이라고 입력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기준`이라는 표현도 웃깁니다.

나비종 2016-08-10 08:46   좋아요 0 | URL
ㅎㅎ 검색하다가 이크종의 풍자 패러디 ˝아름다운 꼬추의 모식도˝ 보고 아침부터 뿜었습니다~

cyrus 2016-08-10 11:10   좋아요 0 | URL
그거 저도 봤어요. ㅎㅎㅎ

2016-08-09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10 07:40   좋아요 0 | URL
**님이 말한 설리에 관한 소식이 궁금해서 검색해봤어요. 사람들이 별 것 아닌데 과민반응을 했네요.

남성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진 여성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성인이라면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

transient-guest 2016-08-10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친놈은 어디에나 있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려..-_-: 저딴걸 연구리포트라고 써낸 놈이나 그걸 감수한 놈이나...어이구..

cyrus 2016-08-10 07:42   좋아요 0 | URL
공무원이 독서를 안 하면 이런 몰상식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

fledgling 2016-08-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좋습니다! 참 재주가 남다른 능력이 부럽네요~^^ 재밌게 읽고갑니다.

cyrus 2016-08-11 16:5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논란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알라딘에 저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
 
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맥심 사 오랬더니.’ 이 사진의 제목이다. 사진 속에 맥심커피 상자를 들고 있는 군인의 뒷모습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진 고전유머 사진이다. 얼핏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진이지만, 그 제목과 배경을 알고 보면 보는 이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상황이다. 이 사진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상상력과 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잡지 맥심은 사병들의 필독서다. 휴가를 나온 후임에게 선임이 잡지 맥심을 사 오라고 부탁을 했는데, 후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피믹스를 산 것이다.

 

 

 

 

머리 좋은 후임이라면 커피믹스 상자 안에 잡지를 숨겨올 수 있다. 남성 잡지나 성인 잡지는 부대 반입 금지 품목이다. 하지만 사병들은 여자 사진이 많은 잡지를 보고 싶어 한다. 내가 근무한 부대에 볼 수 있었던 교양 잡지는 샘터월간 에세이였다. 입대 전에 평소 책을 안 읽은 사병들이 글자가 많은 잡지를 거들떠볼 리가 없다. 사병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이런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군인들은 섹스 장면이 많이 나오는 책을 가장 좋아합니다.” [1]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요즘 부대에 운동시설, 사이버지식정보방 등이 설치되어 있다. 운동과 컴퓨터, 책보다 재미있는 것들이다. 군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아질수록 진중문고의 존재가 희미해진다. 사실 진중문고도 군인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보급된 오락거리다. 전선에 배치된 군인들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포탄의 위협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지냈다. 옆에서 식사하던 동료 군인이 그다음 날 전사자가 되는 모습은 군인들이 자주 보는 일상적인 장면이다. 적은 내부에도 있다. 향수병은 군인들의 정신력을 감퇴시켰다.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희망이 교차하는 일상은 군인들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든다. 삶에 대한 허무감이 점점 온몸을 휘감는다. 우울 증세는 불시로 군인들을 덮쳤다. 병사들의 사기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진중문고 제도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시기에 미국 전역의 사서들이 군인들에게 전달할 수백만 권의 책을 모았다. 전쟁터에서의 상황, 인쇄상황에 맞게 작은 페이퍼백을 찍어 보급하게 되었다. 사서들은 책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전쟁터에 간 책들은 때론 군인들을 즐겁게 하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불안감을 떨쳐주는 어머니의 역할까지 해주었다.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은 군인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진중문고 중의 한 권이다. 군인들은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난 뒤, 소중한 삶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그냥 잊힐 뻔한 그저 그런 책이었다가 진중문고 제도 덕분에 다시 알려진 책이다. 군인들은 개츠비의 삶을 보면서 부와 사랑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군인들이 일반 소설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군인들은 외설적인 장면이 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 했다. 진중문고를 선정하는 미국전시도서협의회는 군인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당혹스러워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진중문고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전역 군인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책들이 진중문고로 선정되었다. 진중문고는 말 그대로 전쟁 중에 읽는 책(陣中文庫)’이다. 책은 전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군인들이 뛰어놀 수 있는 안식처였다. 그리고 포탄에 산화될 때까지 군인들의 곁을 지켜준 든든한 벗이었다. 진중문고는 군인들에게 진짜 중요한책이다.

 

우리나라 군대는 진중문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책들을 잔뜩 고른다고 해서 좋은 진중문고라고 할 수 없다. 군인 간부들의 입맛에 맞춘 책은 진중문고가 아니다. 군인들이 읽고 싶은 책이 진중문고다. 진중문고의 가치를 모르는 간부들은 훈련 교본, 뉴라이트 계열의 책들이 장병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에도 국군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픈 간부의 마음이다. 이런 간부는 전시 상태에 진중문고를 선정할 때 훈련 교본, 성경 같은 책들을 보낼 것이다. 안 되겠다. 전시 상황에 대비한 나만의 진중문고를 미리 갖추어야겠다.

 

 

 

[1] 전쟁터로 간 책들183

 

[내가 단 주석 1] 캐슬린 윈저의 영원한 엠버는 외설적인 성애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군인들이 열광한 인기 도서였다. (전쟁터로 간 책들184) 이 소설은 내 사랑 엠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분량은 네 권으로 되어 있다. 출판사는 90년대 출판시장을 주름잡았던 추억의 이름, 고려원. 당연히 구하기 힘든 책이다.

 

[내가 단 주석 2] 전쟁터로 간 책들243쪽에 던위치의 공포와 그 외의 기이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제목만 봐도 책의 저자가 누군지 알 수 있다. 미국의 공포소설 작가 러브크래트프다. ‘던위치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가 쓴 단편소설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08-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식적인 진중문고는 ㅎㅎㅎㅎ아실 겁니다..그 진부함과 고루함을....

뭐 정권에 잘 맞는 책들까지 포함해서....

cyrus 2016-08-09 19:35   좋아요 0 | URL
미국 정부도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진중문고에 포함시키지 않아서 사서협회의 반발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종북 기준이 모호한데다가 안 읽어놓고선 무조건 금서라고 규정합니다.

오거서 2016-08-0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심 박스를 보면서 배꼽을 잡습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6-08-09 19:37   좋아요 0 | URL
요즘 군인들도 맥심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8-10 0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안에 숨겼을 듯..ㅎㅎㅎ 이 책도 얼른 보관함으로 옮겼습니다. 전장에서의 독서라..뭔가 비극적이기도 하고, 공포를 느끼게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낭만의 내음이 피어납니다. 마치 Band of Brothers를 보는 것 같네요..그나저나 한국군에선 옛날이라도 책읽기는 일단 상병정도를 달지 않으면 매우 어려웠을 듯 합니다. 지금은 다른 시설도 그렇지만, 책이라고 해야 어록이나 정치인 자서전 나부랭이나 비치해놨을 것 같아요.. 장군들 수준이 딱 그 정도잖아요..

cyrus 2016-08-10 07:53   좋아요 0 | URL
진중문고에 관한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합니다. 전사자의 옷에 책을 발견하는 장면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제가 입대했을 때 병영 생활 개선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절이라서 선임 눈치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yamoo 2016-08-1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런 페이퍼를 쓸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이러스 님이 먼저 선수를...--;;

cyrus 2016-08-11 20:39   좋아요 0 | URL
글을 누가 먼저 쓰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그냥 쓰는거죠. ^^;;
 

 

 

 

 

 

 

 

 

 

「박제된 손」(La Main d'écorché)은 모파상이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모파상은 청년 시절 노르망디 지역의 어촌 도시 에트르타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아름다운 절벽의 바닷가로 유명한 지역이다. 모파상은 에트르타의 해안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해안을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 모파상이 구한 사람은 영국 시인 찰스 스윈번이었다. 시인은 생명의 은인인 모파상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모파상은 그곳에서 기괴한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미라 형태가 되어 말라비틀어진 사람의 잘린 손이었다. 모파상은 이때 당시의 기억을 소재로 삼아 「박제된 손」을 썼다.

 

「손」(La Main)은 「박제된 손」의 줄거리와 유사한 단편소설이지만, 발표 연도가 다르다. 「박제된 손」은 1875년에, 「손」은 1883년에 발표되었다. 프랑스어 원제와 발표 연도가 명시되지 않으면, 두 작품이 서로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19세기 중반 센 강에 즐기는 뱃놀이가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졌다. 모파상도 센 강에 보트를 띄워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놀았다. 모파상은 물이 있는 강이나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를 엄청 싫어했던 러브크래프트와 상반된 모습이다. 모파상은 물을 소재로 뛰어난 단편소설을 썼는데, 그 작품이 바로 「물 위에서」(Sur l'eau, 1876년)다.

 

8, 90년대에 외국의 무서운 이야기들을 출처 없이 짜깁기했거나 ‘외국 유명 작가의 공포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들이 많았다. 이런 책들에 가장 많이 소개된 소설이 모파상의 「물 위에서」였다. 초딩 때 「물 위에서」와 비슷한 이야기를 ‘서양 괴담 모음집’ 같은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야기의 출처가 모파상의 소설이라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물 위에서」의 배경은 센 강이다. 모파상은 달빛이 흐르는 아름다운 센 강을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장소로 연출했다. 흔히 센 강을 낭만적인 파리를 상징하는 명소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낭만과 아주 거리가 먼 평범한 강이었다. 모파상이 센 강에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을 시기에 센 강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자살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익사체를 보는 것이 파리지앵의 일상적인 일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18세기에도 센 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았고, 익사체를 건지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1]

 

 

「오를라」는 예전에 언급했으니까 패스.

 

※ Colla[book]ration #11 모파상 X 러브크래프트

http://blog.aladin.co.kr/haesung/8636891

 

 

 

 

 

 

 

 

 

 

 

 

 

 

 

 

 

 

 

 

 

 

 

 

 

 

 

 

 

 

 

 

 

 

 

 

 

 

 

 

 

 

 

 

 

 

 

 

 

 

 

 

 

 

 

 

 

 

 

 

 

 

 

 

 

 

 

 

 

 

 

 

 

 

 

 

 

 

 

 

 

 

 

 

 

 

 

 

 

 

 

 

 

※ [주1]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스 2016-08-0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기소설?벨아미의 그 모파상이 맞나요?ㅋㅋㅋ

cyrus 2016-08-08 07:36   좋아요 0 | URL
네. 키미리키님이 생각하시는 그 모파상이 맞습니다. ㅎㅎㅎ

2016-08-0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08 07:5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사드의 《사랑의 죄악》, 에르베 바쟁의 《손아귀에 든 독사》, 디드로의 《수녀》 그리고 모빠상 괴기소설이 장원출판사 하드커버판으로 나온 적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장원출판사 책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6-08-10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가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ㅎ

cyrus 2016-08-10 07:54   좋아요 0 | URL
모파상의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출전작

 

 

 

살다 보면,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들먹이며 허무에 감염될 때가 있다. 영혼의 복판을 꿰뚫는 통렬한 슬픔을 겪은 사람은 절대 그 아픔을 경험하기 전, 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승자 시인은 깊은 내면의 상처를 온전히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질끈 무심한 척 내버리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되새김질한다. 그녀의 시는 지금까지의 삶을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시인의 피 흘리는 상처를 응시해야 하는 시집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아프게 눈물로 그려낸 통렬한 생존 증명서이며,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눌렀던 고독을 건조한 문장으로 풀어낸 일기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50쪽

 


 

한정되고 닫힌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범하게 담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비애와 허무를 드러낸다. 시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다. 시인이 읊조리는 말은 애처로운 묘비명처럼 느껴진다.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빈 배처럼 텅 비어」 9쪽

 

 


시인은 자신의 생존기를 통해 허무와 죽음 앞에서 인간의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가치와 존엄을 그려냈다. 절망 속에서 삶의 진정성은 어쩌면, 생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세상에서는 생존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 잘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지식과 지식이 싸울 때
自然 소외는 한없이 깊어지고
역사는 흙탕물이 되어 흘러간다
죽으면 땅의 지식은 필요가 없고
하늘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잘난 지식들을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웃더라

저기 지식을 구걸하는
한 무리의 동냥아치들이 지나간다

 

「들판에서 보리와 밀이」 49쪽

 

 

 

시인은 삶의 허무와 우울, 그리고 슬픔의 소리 들을 품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한 마리의 부운몽(浮雲夢)이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몽유(夢遊)의 세계를 떠돈다.

 

 

 


정신과 병동에서
또 고장난 하루가 펼쳐진다
세상은 흘러가겠지
넋 놓고 세월은 흘러가겠지
하루하루 바보 같은
나날이 지나가겠지

 

(나는 지금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이올시다)

 

「한 마리의 떠도는 부운몽」 21쪽

 

 


인생은 단 한 번에 끝나는 ‘일회용 인생살이’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인생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믿기에 희망을 품고 버틴다. 일생을 타인의 임종을 지키고 살아온 한 수도사의 증언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죽을 때 모습은 그가 살아왔던 모습과 같다.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삶과 동질이다.” 죽음은 평생 살아온 삶의 열매와 같다. 그래서 대충 살고 의미 없이 죽을 수 없다. 내용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인생은 허무하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이냐의 고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해는 뜨고 언제나 달도 뜬다
저 무슨 바다가 저리 애끓며 뒤척이고 있을까
삶이 무의미해지면 죽음이 우리를 이끈다
죽음도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虛와 손을 잡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31쪽

 


시인에게 허무는 더 이상 애써 극복해야 할 대상도 끝내 무릎 꿇을 운명도 아닌, 이제 다만 물끄러미 들여다봐야 할 삶의 풍경이다. 허무의 끝에까지 가봤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신병동 같은 막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김춘수 시인은 ‘무의미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실눈을 뜨더라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해야 한다. 그래야 허무를 견디게 하는 면역성이 생긴다. 우리는 차가운 허무와 손을 잡아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8-05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06 20:07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서평을 보는 분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6-08-06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베의 용어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상으로 매우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일베 회원들은 보수적 정치성향을 유머로 표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그들의 발언은 이성과 지성에 대한 혐오와 맞닿는다. 일베 자신들 스스로 병신이라고 부른다. 일베는 그들만의 용어를 만들어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로 지칭하며 심한 욕설과 성적 폭력이 포함된 게시물들을 소비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표현하며, 호남인들은 홍어로 불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는 운지라는 표현으로 조롱하고 있다. 일베 용어는 재미로 웃고 넘기기엔 극단적 폭력성과 특정 지역과 진영에 대한 비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프로그램 개발자 이준행 씨가 일베 게시물을 분석한 사이트를 공개한 적이 있다. 일베 내 추천 수가 높은 게시물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욕설이 포함된 게시물이 5천 개 넘었다. 그 밖에도 많이 나온 키워드가 여자(4,321), 노무현(2,339), 종북(1,633), 광주 (1,622),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단어·1,564), 민주화(1,204), 섹스(616) 등이 있었다. [1]

 

문제는 이러한 용어들이 일상생활에 침투했다는 점이다. 일베를 접속하는 이들에게는 일정한 내성이 생긴다.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하는 폭력 등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우려가 있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그 말을 직접 듣는 특정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혐오의 대상이 된 속성을 가진 집단 전체에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 이렇듯 혐오 표현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폭력 행동, 즉 혐오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알라딘 서재도 혐오 발언의 위험성에 쉽게 노출된 곳이다. 일베 회원들은 이곳에서도 자신들의 색채를 여실히 드러낸다. 알라딘 회원이 아니거나 회원 계정 로그인을 하지 않은 사람도 댓글을 작성할 수 있다. 그래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단원고 학생들을 주제로 한 글에 일베 용어를 사용하면서 조롱하는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비회원계정으로 댓글을 남겼기 때문에 그들이 누군지 알기란 불가능하다. 혐오 발언 댓글을 피하려면 댓글 작성자 권한을 설정해야 한다. 그러면 알라딘 회원이 아닌 사람은 댓글을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안심하기에 이르다. 알라딘 회원 계정으로 혐오 발언 댓글을 남길 수도 있다. 알라딘에 서재명과 서재를 운영하는 회원 닉네임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서재 활동을 하지 않지만, 일베 용어를 서재명과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회원들이 있다. 과연 이들은 일베 회원일까, 아니면 일베 용어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사용한 것일까?

 

 

* 슨상 : 16

* 노알라 : 12

* 응딩, 응딩이 : 7

* 노운지 : 4

* 야기분좋다 : 4

* 노무노무 : 3

* 노시개, 노시계 : 3

* 놈현 : 3

* 김치남 : 3

* 보슬아치 : 2

* 핵펭귄 : 1

* 홍어친구코알라 : 1

* 홍어민주화운동 : 1

* 전라디언 : 1

* MC무현 : 1

* 전땅크각하 : 1

* 빨통녀 : 1

 

 

혐오 발언 규제에 찬성하는 찰스 로렌스는 혐오 발언을 언어에 의한 뺨치기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 언어 뺨치기에 당하기 쉽다. 예전에 나도 당한 적이 있다. 지역 차별의 심각성을 주제로 한 글에 어떤 사람이 전라도를 비하하는 댓글을 남겼고, 작년에는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을 비하하는 댓글도 봤다. 두 개의 댓글 모두 비회원 계정으로 작성된 것이다. 일베는 자신의 성향과 다른 세력과의 대립을 유도하여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세를 확장한다. 그들의 어이없는 발언에 반박하거나 욕지거리를 퍼부어도 소용이 없다. 게릴라성 테러를 연상시키는 언어 뺨치기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정체를 숨기는 비회원은 막을 방법이 없다. 인간적인 예의가 눈곱만큼 없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는 수밖에.

    

 

 

[1] <‘일베분석한 일베리포트 등장언어폭력 위험수위”> 매일경제, 201352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8-05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05 18:33   좋아요 0 | URL
반대 세력에 향한 반감을 부추길 수 있다면 일베를 동원하는 일은 어렵지만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일베도 일당 받으면서 집회 시위를 한 어버이연합처럼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감은빛 2016-08-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선 아직 댓글테러를 당한 적이 없지만,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선 개발반대 관련 글에 자주 욕설이 난무하곤 했죠. 그런 댓글이 달리면 전투력이 막 올라가죠. ㅎㅎ

cyrus 2016-08-06 20:09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정말 악플 청정지역이죠. 네이버, 페이스북은 전쟁터입니다. ㅎㅎㅎ

페이스북 한참 빠졌을 때 논쟁하는 것을 지켜만 봐도 지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