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들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 있다. 친척에서부터 친구들 그리고 온라인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몇 몇분들 또 교수님까지, 사진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스토리에 간단한 댓글 또는 문안인사를 남긴다.  

 

이렇다보니 항상 카카오스토리 어플을 열면 제일 먼저 내가 친구추가했던 사람들이 업데이트한 스토리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매일 카카오스토리에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사촌동생이 있다. 이번에 고등학생에 입학하게 된 여자아이인데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크게 재미 들린 모양이다.

 

어느 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스토리 업데이트에 5~10분 간격마다 사촌동생의 스토리들이 쭉 올려져 있었다. 나는 장남삼아 카카오스토리 하는 것을 줄이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차마 거기에 댓글을 달 수가 없었다. 동생이 쓴 글들이 대부분 짤막하면서도 학교 생활에 대한 불평,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도 입원해서 학교 안갔음 좋겠다 ㅇㅇ

 

 

 방과후 진짜 싫다 --

 

 

 방과후째고싶엉ㅠㅠㅠㅠ 집에가고싶엉

 

 

 아 학교개짜증나 -- 수학진짜때리고싶다

 

 

 학교에서 이따구로 가르치면 학교 갈 이유가 없지

 아 진심 짜증터진다 자꾸 욕나오네

 

 

 

글의 내용이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게 싫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며칠동안 쭉 사촌동생이 남긴 스토리 글들을 관찰(?)해봤는데 동생이 스토리 글에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와 말이 '불만', '짜증', '화난다', '싫다' 가 제일 많았다. 이런 단어와 말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날 때 사용한다. 그동안 꾹 눌러져왔던 불만과 분노의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대화 속에서 표출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이런 의미상 좋지 않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정확한 뜻도 모르는 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비속어를 청소년들의 입에서 많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다보니 비속어는 단순히 또래에게 하는 장난스러운 말이 아닌, 자신보다 나이가 높은 웃어른에게 반항을 한다거나 분노를 표출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돌발적인 반항심과 분노로 인해 어른 앞에 해서는 안 될 비속어를 자신도 통제하지 못한 채 내뱉고 마는 것이다. 결국에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불만 섞인 비속어가 입 밖에 자주 나온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청소년들의 잘못된 심리상태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이 청소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 

 

좋은 명문대, 아니 안정된 삶을 위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수능시험 공부에 3년동안 매진해야 한다. 3년동안 노력한 공부의 결실은 1년 중 단 한 번의 시험에 의해서 당락이 결정된다. 자신이 원하는 고득점을 받게 된다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지만 반대로 목표했던 점수에 못 미친다면 3년 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이 너무나 쉽게 와르르 무너지듯이 큰 절망감에 휩싸인다. 여기서 수능시험을 치뤄지고 난 후의 수험생들의 반응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은 재수를 선택함으로써 비용이 더 들더라도 공부 과정을 반복한다. 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점수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려고 한다. 대학의 전공이 자신의 취미에 적합한 지 아닌지는 안중에 없다. 어떻게든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고졸자의 취업 우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수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름 듣도 보지 못한 지방 변방에 위치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은 원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자신의 수능점수만으로는 도저히 갈 만한 대학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 몇 년 동안 더 공부하는 것보다는 먼저 직장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고졸자를 채용해주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이렇다보니 병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정은 앞에서 언급한 세 사람에 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고통스러워하고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인생의 허무함을 견뎌내지 못해 옥상 위에서 떨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다음 날에 뉴스에는 수험생의 투신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갑, 을, 병, 정. 이 네 사람이 취한 삶의 태도와 방식으 서로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경쟁과 성적을 강조하는 입시교육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경험에 인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행복하지가 않다. 초, 중, 고, 총 12년 동안 '공부'만 해서 정작 이들의 손에 쥔 것은 초라한 점수가 적힌 수능 성적표일 뿐이다. 그 길고 긴 노력의 과정이 평가받는 것이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허무하기만 하다.

 

이런 불합리한 교육제도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공부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의 의미도 변질되었다. 단순히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가는 데 실용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성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광주의 모 여고에서 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빠진다는 이유만으로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자퇴서를 강요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피해 학생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한 독서실에서 공부하기를 원해서 담임교사에게 정해진 기간에 자율학습에 불참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사를 전화상담을 통해서 피력했다. 그러나 학생에게 돌아오는 것은 요구에 수긍하기는커녕 되려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려면 차라리 자퇴서를 쓰라고 답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광주학생인권조례에도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학습은 강제적으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몇 고등학교에서는 법규의 내용을 피해 강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학기 초에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의미로 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꼭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능시험에서 좋은 점수 받을거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학생이 원하는 의사대로 독서실에 공부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거리가 없었다. 오히려 인권조례의 사항대로라면 학생의 자율적인 학습권을 보장해줘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부를 학교 내, 그것도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교내 규정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교육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가 단일적으로 정해진 시간 규칙은 학생들의 학습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정해진 틀 안에서 공부를 하루 내내, 그것도 3년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해야될 판이니 학교 자체를  하나의 '감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교육 세 가지

 

 

 

 

 

 

 

 

 

 

 

 

 

 

 

 

 

그러나 학생들이 공부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은 비단 학교 책임만은 아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데 투자를 하는 부모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말 그대로 내부의 적인 셈이다. '감옥' 같은 학교에서 하루의 절반을 공부하고 난 뒤에 학생들은 집이 아닌 입시학원으로 향한다. 얼마 안 되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외우고 문제를 푸는 방식만 되풀이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원 유명 강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이범은 절대로 자녀들에게 해서는 안 될 사교육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학원 강사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입시전문가답게 그의 세 가지 경고는 이제 막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 둔 부모라면 귀 기울여도 좋다.

 

첫째, 초등학생 시기에는 선행 학습을 절대로 시키지 말 것. 물론 공부하는 데 있어서 선행학습의 효과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선행학습'의 문제점은 일관적으로 반복하는 데 그치는 과정이다. 학원에서 선행 학습으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면 반복 효과로 인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지나친 선행 학습으로 인한 반복 학습은 오히려 학생의 학습 유도를 저하시키게 되는 역효과가 있다. 처음에 본 드라마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 드라마를 여러 번 재방송으로 보게 된다면 그 때 봤던 재미와 흥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부하는 내용도 너무 반복되면 공부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그는 이것을 '수동적 학습' , '관광식 공부'라고 비유하고 있다.

 

둘째, 초등학생 때 선행 학습으로 공부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종합학원에 다니지 말 것. 일반적으로 종합학원은 학생들의 공부 계획을 설정해주고 학생들은 학원의 계획에 맞춰서 수동적으로 학습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학습이 유지된다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형성할 수 없다. 특히 중학생이 되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해지게 되는데 이 시기까지 종합학원에 의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자신이 배우고 있는 학습 내용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된다. 자기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남이 정해준 공부가 더 익숙해진다.

 

셋째, 고등학생들은 문제집만 열심히 풀지 말 것. 특히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들을 풀다 보게 되면 항상 처음 접하는 문제들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주도학습 과정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만 치중하게 된다. 특히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시험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답만 찾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매일 한 손에 들고 다니면서 풀고 있는 문제집 뒤에는 정답과 해설집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스스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면 좋은 공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공부 방법이 익숙치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문제집 뒤에 딸려 있는 정답에 먼저 본다. 그러고는 정답 해설집에 소개된 해결 과정을 머릿속에 암기한 채 학습한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이 매년 수능에 등장하게 되는 신유형의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범 씨를 이러한 학습 과정을 '정답 중독증'이라고 비유했는데 말 그대로 학생들은 공부할 때 너무 정답에 의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보충'의 성격이 강하다.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 '0교시 제도'와 '야간자율학습'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겨진다. 사교육 더 시키기를 경쟁전략으로 선택하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를 무조건 많이 시키게 된다. 이러한 부모들의 강요에 자녀들은 공부에 압박감에 느끼게 된다. 결국 사교육비 지불능력과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교육 본래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돌변한다. 계층 상승의 희망이 아니라 계층 고정이라는 좌절의 빌미로 작용한다.

학생에 대한 관심과 진실한 애정이 결여된 사교육은 대부분 공부 부담만 키울 뿐이다. 선생님은 학생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공부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의욕을 보일 수 있는, 그렇게 정서적으로 격려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자발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교육은 대부분 부모의 대리인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부모는 비싼 돈 들여서 하게 된 사교육인데 효과를 못 보면 본전심리까지 발동해 자녀들에게 더욱 공부에 대한 강요를 가하게 된다. 자신의 의견은 묵살한 채 사교육을 강요당한 자녀는 부모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불만과 원망을 끝내 표출하지 못한 채 방치한다면 폭력 또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는 공해

 

 

 

 

 

 

 

 

 

 

 

 

 

 

 

 

가스펠 가수로 유명한 홍순관은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닌, 그저 삶의 목표만을 위해서 공부밖에 모르고,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사회제도는 그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공해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습득 정도가 아니라 검소한 태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남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삼갈 거란 말이지. 공부 잘해 출세하려고 선거에 몸을 던진 사람들 약력을 읽어보면 다들 일류대학에 나왔잖아. 그런데 막상 자리에 오르면 하는 짓들이 제 배 채우고, 남 괴롭히고, 나라 망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과정을 밟지. 너무 진부하고 뻔해서 식상할 따름이야. 왜 그럴까? 왜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올까? 그래, 바로 공부라는 공해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공부는 본디 숲처럼 다양하고 푸르고 맑고 신선한 것인데, 오염이 되어 그런 거야.

 

 - 홍순관『춤추는 평화』중에서, pp 103 -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회 교육제도, 아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했던 것 또는 지금도 하고 있는 이 공부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공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미 공부로 인한 공해는 수험생들이 있는 교실에서부터 발생하고 있다. 단지 일류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출세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면 급우의 학습노트를 훔친다거나 심지어 일부러 분실하게 할 정도로 교실은 영화 속 '배틀 로열'처럼 경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교실 속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게 되면 겸손, 협력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공부가 만들어버린 공해는 우리의 삶을 비뚤어지게 만들거나 심하면 질식시키게 만든다.

 

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로 인해서 생긴 사회의 공해를 말끔하게 걷어낼 수는 없지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게 되듯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그리고 실천이 있다면 이전보다 좀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비록 이것이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면 사회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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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04-03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청소년들의 공부는 모두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수능 제도를 바꾸든 사교육을 없애든 대학만 들어가면 만사가 오케이 될 것이라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네요... 잘 읽었어요!

cyrus 2012-04-04 19: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티티카카님 ^^

저도 수헙생 시절을 겪어봐서 잘 알기에 여전히 교육제도가 고질적인 문제점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씁쓸했어요. 오히려 저희 세대보다 더 힘들게 공부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마녀고양이 2012-04-0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공감.
한마디 붙일 것도 없이 완전 공감하고, 추천 100개 누르고 싶네요!

cyrus 2012-04-04 19:45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코알라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2012-04-0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4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4-04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대한민국 사교육은 공고육의 보충이 아니라 공고육과 공생관계에 있다고 봐야죠.학교교사들도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르치니까요.그리고 교사들도 아들 딸들을 다 학원이나 과외교습 시키고요...

cyrus 2012-04-04 19: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불합리한 입시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채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것도 학생, 학교교사, 학원교사. 이 세 집단들이 이미 교육제도의 환경에
종속되어서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져 왔다고 생각해요.
 

 

 

 

 

 

 

 

 

 

 

어제, 참으로 날씨가 좋았다. 햇살이 따사로웠고 움츠렸던 꽃들이 활찍 피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날에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근 3개월 만이다.

나나 그녀나 학교 생활하느라 바쁘다보니 서로 얼굴 보기가 뜸해졌고 

예전에 비해서 연락 횟수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제 같은 봄의 기운이 충만한 날에 사랑스러운 그녀를 만나서 기분이 들떴다.

깨끗한 하얀 피부, 해맑고 상큼한 미소는 여전했다.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내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보 같이 그녀에게 나의 진심어린 사심을 제대로 전달해보지 못했다.

오늘도 역시 멀뚱히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짝사랑의 괴로움 때문에 평소에 안 먹는 술도 연거푸 마셔댔다.

하지만 마음만 더 쓰라려 올 뿐, 이젠 술도 나의 상사병을 달래 줄 수 없을 정도였다.

바보 같이 술만 마시다보니 어느새 그녀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작별 인사를 했다.

 

또 몇 달 간은 그녀의 미소를 보지 못하겠지... 

밀려오는 아쉬움 속에서 나는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얼큰하게 취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술 마시고 난 뒤에는 허전함이 밀려올까?

이럴 때 나의 외로운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혼자 쓸쓸히 애수에 젖어 있을 때,

폰에서 한 통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그녀'였다!

이런 시간에 그녀가 나에게 문자를 보낼 리가 없는데...

그녀가 보낸 이 한 통의 카톡 메시지가 또 한 번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오빠, 집에 잘 들어가셨나요?  오늘은 술을 많이 드신거 같은데, 무슨 일이 있으셨어용? ^^

 

 

 

 

평소 같았으면 아무 일 없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카톡 메시지를 보내기 싫었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고서라도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어.. 있잖아.. 요즘 힘든 일이 있어서 그래.. 누구 땜에 넘 미쳐버리겠다, 정말 ㅋㅋ 

 

 

 

그러자 그녀가 또 다시 답장을 보냈다.

 

 

 힘든 일이라니... ㅠㅠ  누가 오빠 힘들게해요?  감히 우리 오빠를 힘들게 하다니..

 

 

 

이성을 마비시킬만큼 술기운에 지배당한 나는

그동안 마음 속 깊이 꾹 눌려왔던 것들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 그래서 말인데... 진희야,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

 

 " 할 말이 머에요? ^^ " 

 

 

 

 

평소에 카톡을 단답형을 보낸 내가

지금까지 길게 내용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희야...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너를 위해 사랑의 고백을 할려고 해.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 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니?

 

함께 걸어가야할 수 많은 시간 앞에서
너를 향한 나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 것을 믿고 있니?

힘든 날이 있을거야. 항상 삶에는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저 하늘이 부르는 그 날까지 사랑만 가득하다는 것을 나는 믿어.

 

만약 내가 널 좋아한다면
우리는 이제 오빠 동생 사이도 될 수 없겠지?  그래도
절대 난 널 포기할 수 없어. 네가 날
뻥 차버린다해도 난...
문턱이 닳도록 다시 뛰어가서
자신있게 사랑한다고 말할거야.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이 카톡은 너무나도 좁았다.

 

술기운에 문자를 쓰다보니 오타가 많았다.

하지만 나의 진심어린 고백에 부끄러운 오타를 그녀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정말 버튼을 꾹꾹 눌러가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완성했다.

 

쓰는데만 10분 정도 걸린 카톡 문자를 보내자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막상 두려움과 후회감이 밀려왔다.

 

어느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문자로... 그것도 취중 상태에서 고백을 하겠는가?

술기운에 또 한 번 대형참사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의 거절은 곧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둘 사이 관계의 단절이다.

 

 

메시지를 보낸지 10여 분이 지난 뒤에t서야 그녀의 답장이 왔다...

 

 

 

 

바라만 봤어요, 오빠를 지켜  
보는건 그만할래요...
속상한일도 정말 많
았지만 우리 사귀어요
지금 대답해주세요!!

 

 

 

.

.

.

.

.

.

 

 

 

 

 

 

 

 

드디어 24년 동안의 고독이 사라지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 찾아왔다.

하느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지금도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그녀와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

블로그에 글 쓰는 시간도 줄일려고 한다.

이 글이 어쩌면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참에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내 인생 처음으로 결실을 맺게 된,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랑에 축복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살면서 드디어 '사랑'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Love

is

El dor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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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cyrus 2012-04-02 22:59   좋아요 0 | URL
ㅎㅎ 나인님이 제일 먼저 속으셨군요 ^^;;

stella.K 2012-04-0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정말! 너 나뻐!
오늘이 만우절인 걸 이 페이퍼 보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잖아.ㅜㅜㅜㅜ
너의 인생에도 봄은 오나 보다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속은 것 생각하면 10년 동안 애인 없어라고 저주해 주고 싶었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고. 에잇! 이를 어쩐다...
아무튼 좋다. 네 마음 알 것 같아. 꼭 올 봄엔, 늦어도 올 가을엔...
아니 올해가 다가기 전에 크리스마스 때부터라도 함께 보낼 애인이 있기를
진짜 진짜 바랄게.
하지만 이 페이지에 추천은 없다. 추천하면 마법에 걸려 진짜 10년 동안 애인 없을까봐.ㅋㅋ
근데 제대로 웃겼다. 축하해!ㅋㅋ

cyrus 2012-04-02 23:00   좋아요 0 | URL
그런데 누님 말대로 이 글 쓰는 이후부터 10년동안 없으면 어떡하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

맥거핀 2012-04-0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친구 저도 아는 처잔데..알바 하면서 근근이 대학 졸업하고, 선배언니 집에서 얹혀 살면서 병원인가, 보건소인가에서 인턴하다가 얼마전에 겨우 회사들어갔다고 하던데..이제 연애할 여유가 좀 생긴 모양이네요. 좋은 사랑 하시고 조심하셔요. (요즘에 의사 하나가 찝쩍거린다고 하더라구요..ㅋ)

cyrus 2012-04-02 23: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사실 그거 때문에 고백하기 전에 마음이 좀 걸렸어요 ㅋㅋ

차트랑 2012-04-0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무지하게 고민하면서 털어 놓은 Love is....이건만...
반응들이 꼭 만우절 행사라는 듯...합니다요??
특히 스텔라님...

맥거빈님의 반응은??
cyrus님의 여인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이거참...머리가 빙빙 돈다
으아~~~~ㅠ.ㅠ

아 그리고 ..위 글은 추천 10개짜리~!!!

아무래도 여친 얼굴이 마음에 걸려 다시 왔습니다 ㅠ.ㅠ
여친 얼굴을 온라인게 이렇게 공개하는것이 아녀~~~!!

stella.K 2012-04-02 12:2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 차트님 저는 진짠 줄 알았어요.
아시면서 모른 척 하시는 것 아니어요? 그렇담 차트님 고수다!ㅋㅋ

cyrus 2012-04-02 23:0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랑공님이 일부러 모르는 척 아시는지
알 수 없는데요 ^^

참고로 이쁜 처자 사진은 백진희라고 최근에 종방되었던
하이킥3에 나온 연기자에요 ^^

차트랑 2012-04-03 00:11   좋아요 0 | URL
저는 TV방송을 제시간에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연유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녹화를 해서 따로 봅니다.
하이킥은 녹화 목록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감동의 물결이 이는 퍼이퍼인데...
만우절 이벤트라니...좀 서운하다는...ㅠ.ㅠ

고수는 원래 방송을 안보는거 맞죠? ㅋ

blanca 2012-04-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왜이리 쉬운가 했더니 역시 ㅋㅋ 이런 반전이 있었군요.

cyrus 2012-04-02 23:03   좋아요 0 | URL
너무 구라의 티가 났었나요? ^^

잘잘라 2012-04-02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흣, 올해는 만우절을 너무 밋밋하게 보냈다 했더니만 님 덕분에 뒷북 한 번 치고 갑니다. 뒷북도 북은 북입니다^^ 근데 이상하게 만우절을 가장한 진실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이겁니다?!

cyrus 2012-04-02 23:06   좋아요 0 | URL
뉴스에서 보니깐 일부러 고백을 가장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이성이 있대요.
하지만 제가 정말 만우절을 노려서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어했는지
포핀스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2012-04-0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2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4-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희가 바로 그 진희였군요.ㅋㅋ
태그를 안 봤으면 소가너머갈뻔했자나~~~그래도 Love is... 오랜만에 즐겁네요.
곧 멋진 사랑하시길~~~~~^^

cyrus 2012-04-02 23: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순오기님 ^^

아이리시스 2012-04-0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시루스님이 지금껏 나한테 숨긴 줄 알고 배신감 들고 막 그랬는데ㅋㅋㅋ

cyrus 2012-04-04 19:51   좋아요 0 | URL
ㅎㅎ 절대로 저는 숨기는 짓 안해요 ㅋㅋㅋㅋㅋㅋ

마녀고양이 2012-04-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행입니다.
이렇게 유치한 고백을 하시면 안 됩니다..... 캬캬캬!

복수야 복수, 속은데 대한! 그래도 사이러스님이 빨리 사랑에 폭 빠지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2-04-04 19:52   좋아요 0 | URL
음.. 고백을 이렇게 하며 안 되는군요 ^^;;
만우절 글 덕분에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2-04-0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지인은 소희 백진희 박보영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합니다.

cyrus 2012-04-04 19:53   좋아요 0 | URL
이 세람.. 은근히 닮았죠. 그래서 저는 이 세 명을 다 좋아합니다. ^^
 

 

 

 

 

 

 

 

 

목요일을 제외하면 등교를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스쿨버스가 오는 정류장이랑 거리가 많이 멀지 않을 정도라서 10분만 걸어도 금방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아침 8~9시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일찍 줄을 서지 않으면 버스 안에 탈 수 없게 된다. 앉을 자리가 없다. 좌석이 없으면 시내버스 타듯이 서서 가도 괜찮지만 학생들을 위한 안전운행을 위해서 몇 년 전부터 버스 안에 서서 갈 수 없게 되었다. 두 대의 버스가 오는데 앉을 자리가 없으면 스쿨버스에 탑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앉으면서 편안하게 등교를 하기 위해서는 일찍 집에 나서는 것뿐이다.

 

내가 타야 할 스쿨버스는 8시에 출발한다. 버스가 정확하게 7시 55분에 정차데 아침 식사하고, 씻고, 학교 갈 준비를 다 하고 집을 나서게 되면 항상 7시 25분쯤에 정류장에 도착한다. 어찌 보면 너무 일찍 온 감은 있지만 날씨가 풀리고 있는 요즘, 상쾌한 아침 공기를 피부로 느끼는 것도 이제는 시원하기만 하다.

 

스쿨버스를 기다리게 되면 꼭 서서 기다려야 할 필요는 없다. 일단 정류장에 오면 먼저 자신의 소지품을 꺼낸다. 그리고 소지품을 길바닥에 놔둔다. 자신의 소지품을 길바닥에 놔두는 이유는 자신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 먼저 줄을 서서 기다린다'라는 무언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아서 여유롭게 버스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일찍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의 소지품을 길바닥에 놔두고 벤치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원래 정류장에 오면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 편이다. 몸과 정신이 워낙에 아무 것도 안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을 원초적으로 싫어해서 그냥 정류장 주변을 혼자서 걸어다닌다. 가끔 자판기에서 뽑은, 조금은 맛이 없는 싸구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지만 오늘따라 벤치에 앉고 싶었다. 딱히 할 것도 없고 그냥 서 있는 것만 해도 뻘줌했다. 그래서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벤치에 골라 앉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앉고 있는 벤치 양쪽에 역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커플들이 앉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내가 처하고 있는 상황이 무척 묘했다. 그저 벤치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양쪽 벤치의 커플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대화를 주고 받는 닭살 행위를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속이 오글거리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중, 고등학생 시절 동안 친구나 여자친구와 함께 등교를 해 본 적이 많이 없었다.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집에 가는 방향이 비슷한 친구들과는 동행은 많이 했지만 정작 등교할 때는 친구 한 명이라도 같이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은 그렇게 쌀쌀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그런 생각이 들게 되자 옆구리가 시려오기 시작했다.

 

양쪽 커플들 사이에 떡 하니 혼자 앉아 있는 게 너무 뻘줌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정말 뻘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버릇처럼 대부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쓸쓸한 상황을 요즘 하는 재미에 푹 빠진 카카오스토리에 짤막한 글을 남겼다.

 

 

  스쿨버스 기다리는 중,,,

  아무도 앉지 않은 벤치에 앉았는데

  어느새 내 양쪽에 커플들 앉았음  (ㄱ-)

  양 사이드에 닭살 행위를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속이 오글거리면서도 쪼금은 부럽네ㅜㅜ

  ...   부러우면 지는거다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남긴 지 10분이 지난 뒤에 누가 내 글에 답글을 남겼다. 답글을 남긴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 댓글을 확인했는데 알고 보니 보낸 사람이 평소에 내가 존경하고 있는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이 남긴 댓글은 간단명료했다.

 

 

 마쉬멜로우를 떠올려라.

 

 

 

'마쉬멜로우...?  이게 무슨 뜻이지?'

 

나는 교수님의 댓글을 보자마자 댓글 내용이 궁금해졌다. 왜 마쉬멜로우를 떠올려라고 하는지 교수님의 댓글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버스 타는 내내 '마쉬멜로우'의 의미를 생각했다. 원래 버스를 타게 되면 단잠을 자는 편이다. 학교에 도착하는 데 35분 밖에 안 걸리지만 앉은 상태에서 버스를 타게 되면 잠이 온다. 그런데 나는 잠을 뒤로한 채 마쉬멜로우, 이 한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만 했다.

 

마쉬멜로우와 관련해서 떠오른 게, 예전에 '마쉬멜로우'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귀여운 여가수 아이유 그리고 초코파이 안에 있는 하얀 마쉬멜로우, 고작 이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수님의 댓글의 의미가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정작 나의 상황에 어울리는 답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교수님의 스토리에 답글을 남겼다.

 

 

 교수님, 제 스토리에 남긴 댓글에 '마쉬멜로우'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얼마 안 되어 이 질문에 대한 답글이 달렸다. 마쉬멜로우의 의미를 알려주셨는데, 너무나도 기가 막힌 댓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교수님이 말한 '마쉬멜로우'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쭉 써내려가고 싶었지만 지금 글을 길게 쓸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오늘 수업한 내용, 복습해야 한다.  

 

 

오랜만에 책 선물 이벤트를 해보려고 한다. 정답을 정확하게 맞추거나, 또는 내가 알고 있는 정답에 근접한 한 분에게 책 선물을 드리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답을 댓글(비밀댓글 안 됨!)로 남기면 된다. 사실 마음 같으면 두 세 분에게 책 선물 하고 싶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일리지가 많지 않다. 두 분까지 책 선물을 하게 된다면 내가 쓸 수 있는 마일리지가 없다... ^^;;

 

퀴즈가 좀 어려울 수 있겠다. 창의적인 생각이 요구된다.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언급하자면, 마쉬멜로우의 특성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마쉬멜로우는 달다.' 

 

댓글을 달 수 있는 마감시간은 밤 12시까지다. 머리가 아파오는 문제이지만 면접관이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이것도 나름 두뇌 트레이닝이다.

 

정답은 밤 12시 이후 이 글의 먼댓글 형식으로 올리겠다. 근접한 답이 없다거나 댓글이 없으면 그냥 책 선물은 없는 걸로 하겠다. ^^;;

 

 

 

---------------------------------------------------------------------------------------

 

 

교수님은 내 질문의 답글을 이렇게 다셨다. 답글 역시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지금 단 것을 좋아하면 나중에 쓴 맛을 본다는 교훈!

 

 

 

결국 교수님은 나에게 재치 있는 위로를 해주신 것이었다. 마쉬멜로우가 저런 상황에서 비유를 할 수 있다니..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뭐,, 교수님 말씀도 옳다지만 한 번도 연애 경험이 전무한 나로써는 한 번쯤 단 것도 맛 봐야할텐데,,  이건 뭐,,, 교수님의 비유에만 감탄만 했을 뿐, 정작 큰 위로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P.S> 그런데 막상 글로 써보니깐, 임팩트가 없어 보인다. 처음에 교수님 댓글이 엄청 멋있어 보였는데 내가 글로 옮겨 써서 그런지 그 때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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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2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마쉬멜로우라..마쉬멜로우가 먹을 때는 달아서 좋긴하지만, 칼로리가 꽤 세죠. 그러니 마쉬멜로우를 많이 먹으면, 그만큼 살찔 각오도 해야할거고, 많이먹으면 다이어트도 필요할거고..뭐 그러니 연애가 할 때는 달달하고 좋지만, 그만큼 책임져야할, 귀찮은 일도 많다, 그러니 부러워하지 말아라..뭐 그런 얘기 아닌가요? (하하..아님 말구요.)

cyrus 2012-03-29 00:20   좋아요 0 | URL
거의 정답에 가까운데요. 문제가 너무 쉬웠나요? ^^
전 마쉬멜로우 엄청 좋아하는데 저런 상황에 비유할 줄은 꿈에 몰랐어요.

일단 맥거핀님이 일등이시고 정답에 가까우니 책 선물 드릴께요,
제가 아는 서재 이웃분에게 책 선물을 줄 수 있어서 무처 기쁘네요 ^^

주소, 성함, 전화번호를 비밀답글로 남겨주세요 ^^


2012-03-29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3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1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3-2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건 지금 당장 하기보다 제일 나중으로 아껴두고 힘든 것부터 하는 것.
책 "마쉬멜로우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에 충실하게 해석하자면 그런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떤 뜻이었을까, 저도 궁금하네요.

cyrus 2012-03-29 00:25   좋아요 0 | URL
나인님 생각처럼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봐요. 연애도 하면 좋지만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나중에는 큰 코 다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힘들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원래 한 분만 책 선물 드릴려고 했는데, 댓글을 맥거핀님과 나인님
딱 두 분만 다셨으니 나인님께서 안 받으시면 섭섭하실꺼 같아서
책 선물 드릴께요 ^^

성함, 주소, 전화번호를 비밀답글에 달아주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2-03-2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아이유 노래 중에서 마시멜로가 있는데...'달콤해서 나는 좋아 마시멜로 마시멜로' 하는 가사입니다.이 노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cyrus 2012-03-29 00:2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마쉬멜로우 보자마자 제일 먼저 아이유가 떠올랐어요.
마지막에 아이유 마쉬멜로우 뮤직비디오를 올렸어야 했는데 생각을 못 했네요 ^^;;

다락방 2012-03-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아이유의 노래와 초코파이를 생각했는데, 그래서 아마도 지금 달게 먹어도 나중에 엄청 고생한다(왜 마쉬멜로우 먹고 찐 살은 지구를 일곱바퀴 반을 돌아도 안 빠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가 아닐까, 하고 댓글을 달 생각이었는데 하하, 끝났네요. 게다가 이미 정답자도 나왔구요! ㅎㅎ

cyrus 2012-03-29 20:06   좋아요 0 | URL
아쉽네요. 제가 마감시간을 적게 정하지 않았으면 다락방님도 행운이
찾아올 수 있었는데 말이죠 ^^;;

생각보다 마쉬멜로우가 은근히 칼로리가 많군요. 예전에 대형마트에 가면
봉지에 담은 마쉬멜로우를 사서 먹곤 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좀 줄여야겠어요
ㅎㅎ

stella.K 2012-03-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끝났잖아! 괜히 열심히 읽었네. 우이쉬!ㅋ
근데 저 사진은 뭐니?

cyrus 2012-03-29 20:08   좋아요 0 | URL
막상 써보니 이건 뭐,, 재미와 감동, 교훈이 없는 시시콜콜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

사진 속 남자 상황이 제가 어제 겪은 경험과 비슷해서 한 번
올려봤어요 ㅎㅎ

blanca 2012-03-2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남자가 cyrus님인 줄 알았어요. 교수님이 멋지시네요. 운치 있는 페이퍼예요.

cyrus 2012-03-29 23:33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이 사진이랑 비슷했어요 ^^;;


2012-03-30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진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문학전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다. 2년 전에 100권 세트를 구입했는데 정작 구입해놓고선 10여 권 남짓 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세계문학전집이 한 두 출판사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평소에 관심이 있는 타 출판사의 문학전집에도 기웃거리다보니 집에 모셔둔 100권 세트는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3월 초부터 읽고 있었던 것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백년의 고독』이다. 굳이 설명 안 해도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서 읽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16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16인의 반란자들』때문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진솔한 면모를 답은 책을 읽다보니 저절로 이들이 쓴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 팍 들었다. 책에 소개된 몇 몇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정작 이들의 대표작은 단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뭐 읽을까 싶어서 무심코 골라서 읽기 시작한 것이 마르케스의 소설이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소설답게 이야기의 진행이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어 있고 읽는 나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복잡한 가계도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이름마저 비슷비슷하다. 정신 바짝차리고 읽지 않느다면 누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혼동이 올 수 있다. 이렇다보니 이 복잡한 주인공들 이름을 계속 읽다 보면 흡사 마법의 주문을 외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소설 장면 곳곳에는 연금술사, 전통 주술와 유사한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민음사에서는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는데 1권만 읽는데 2주일 정도 걸렸다. 1권의 총 페이지 수가 2백 여 페이지 정도이고 읽는 속도가 빠른 나의 리딩 스피드를 감안한다면 더디게 책을 읽은 것이다. 이번 주부터 2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이번 달 안에 다 완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2권을 읽기 시작한 것만 해도 나 스스로도 기특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으면 읽어갈수록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케스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가고 있는 이유는 재미있게도 마술적 리얼리즘 특유의 구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라는 대립물의 경계가 무너진 모순어법적 글쓰기 형식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몽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이루어진 요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 등과 같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초합리적인 현상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배경과 대상들에 대해서 독자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독서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거기에서 독자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진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충고 한 마디에서 비롯된 주먹질

 

 

일반적으로 남미 문학이라면 '마술적 리얼리즘', 그리고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항상 제일 먼저 '마르케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남미 문학의 영역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광대하다. 그리고 남미문학의 상징으로 '마르케스'만 떠올리게 된다면 그에게 주먹을 날린 앙숙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둘째가라서 서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앙숙답게 이들이 지금 걷고 있는 사회적인 노선도 정반대 방향이다. 마르케스는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긴밀한 우정을 키워가면서 좌파 작가의 길을 걸었고, 요사는 마거릿 대처 前 영국 총리의 숭배자가 돼 우파 후보로 페루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1936~    )

 

요사 영감님!  생일 축하해요 ^^

 

 

 

이제는 '마르케스'라고 하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같이 언급해줘야 한다. 요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앙숙과 함께 거론된다는 것 자체를 혐오스러워하겠지만. 재미있게도 이 두 사람의 생일도 같은 달이다. 마르케스가 3월 8일에 태어났고, 요사는 3월 28일, 오늘이 그의 생일이다.

 

 

 

 

 

한 쪽에 시러펀 멍이 든 상태의 마르케스의 사진은 영국, 미국 주요 언론에 실리게 되면서

마르케스와 요사 간의 불화 관계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요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고 있는 마르케스가 참으로 넉살 좋아보인다.

 

(사진출처: 부산일보)

 

 

 

콜롬비아 출신 마르케스와 페루 출신 바르가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면서 부부끼리도 돈독한 우정을 다질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요사의 주먹질로 인해 너무나도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어느 날, 마르케스는 오랜만에 만난 요사가 반가운 나머지 반갑게 그를 껴안았지만, 요사는 그에게 폭언을 퍼부으면서 수차례 마르케스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이틀 후 그의 친구 로드리고 마요는 마르케스의 시퍼렇게 멍든 눈을 사진으로 찍음으로써 이 두 사람의 싸움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음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주먹질을 하게 디는 앙숙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싸움의 원인을 과거에 일어난 사소한 일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마르케스 부부가 바르셀로나에 살 당시 요사는 스웨덴 출신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났던 지울 수 없는 전과가 있었는데, 마르케스 부부는 버림받은 요사의 부인을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요사와 이혼하라는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사소한 충고 말 한 마디가 둘 사이의 관계를 갈라서게 만드는 불화의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후에 요사는 극적으로 부인과 화해를 했고,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사의 부인은 요사에게 직접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요사와 불화를 겪었던 시절에 마르케스 부부에게 듣었던 충고의 말을 포함 모든 전말을 얘기하고 만 것이다. 요사에게는 마르케스의 충고가 자신과 아내를 더욱 갈라서게 만들 수 있는 말이며 그것이 오히려 바람을 핀 자신을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느닷없는 마르케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던 것이다.

 

주먹다툼 이후 30년 동안 이 두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한 채 사건의 진위를 간직했다. 그러다가 5년 전부터 이들의 냉전 관계는 해빙 무드로 감돌기 시작했다. 마르케스는 요사와의 다툼에 관한 일화를 자신의 자서전에 소개함으로써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내막이 공개되었고 요사는『백년의 고독』초판 발행 40주년 기념판에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비록 공식적인 화해는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그 날의 주먹질은 지나간 과거의 일로 남았을 것이다.

 

 

 

 

 라틴 붐 문학, 40년 동안의 쇠퇴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미 문학의 세계는 광활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소개된 것은 그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마르케스를 필두로 1960, 7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 붐 문학이 세계 출판의 시장을 지배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절판 상태다. 세월이 흐르게 되면 유행의 열기가 금방 식어지게 되듯이 오래전에 출간된 붐 문학의 작품들은 찾아보기가 드물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붐 소설의 선구자로 알려진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가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서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이라니...  이름이 생소한 작가이지만 그는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이다. 그도 마르케스처럼 좌파 성향의 문학가였으며 이로 인해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모 헌책방 온라인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1981년, 풀빛에서 출간되었던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 표지

 

 

 

사실 이 소설은 내가 자주 다니던 헌책방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구입하려고 눈도장 찍고 있는 상태에서 반갑게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서지 정보에 의하면 1981년에 풀빛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런데 1981년에 나온 이 번역본이 완역본인지 확실하지 않다. 풀빛에 나온 번역본의 총 페이지 수가 330페이지인데 반해 최근에 나온 을유문화사 번역본은 총 480페이지다)

 

붐 문학의 세계적인 열풍이 휩쓸 무렵에 우리나라에서도 마르케스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오늘날에는 그의 초기 작품들을 시중에 찾아보기가 어렵고 새롭게 번역된 것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 마르케스 앓이 때문에 헌책방 정보를 검색한 결과 현재 몇 몇 헌책방에 매물로 나온 책이『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단편집)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80년대 말, 중앙일보사에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얕굿게도 요사의 대표작 『빤딸레온과 위안부들』(오늘날에는 문학동네에서『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라는 이름으로 번역됨)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미로 속의 장군』『족장의 가을』이 있다.

 

 

 

 

 

 

『미로 속의 장군』김점석 역, 솔출판사, 1990년 초판 발행

 

알라딘에 검색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국내에 번역된 마르케스의 작품들 중에서 '레어'에 가깝다  

 

 

 

그러다가 알라딘 중고샵에서 마일리지로 나름 싼 가격(?)으로 구하기 힘들다는『미로 속의 장군』을 구입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간략하게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남미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시몬 볼리바르의 일대기를 토대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마술적 리얼리즘 요소가 곁들여져 있으며 '권력에 대한 고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족장의 가을'을 검색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 대한 백과사전의 소개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족장의 가을』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공들여 읽어야 하는,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자 가장 저평가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상업적 성공을 거둔 다른 유명한 작품들의 그늘에 가려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권력의 고독에 대한 시”라고 말했다. 그 중심에는 깊은 고독과 편집증 때문에 정치적 재능까지 타격을 입은 익명의 남아메리카 독재자(=시몬 볼리바르)가 있다.

“족장”은 20세기 동안 권좌에 있었던 다양한 독재자들과 정신병자를 아우르는 이름이다. 그는 순수한 포악과 순수한 절망의 생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창조한 신비한 아우라 속에서 오랜 세월 고통 받아온 대중을 끊임없이 학살한다. 혁명가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부가 축적된 환상의 공간”인 그 궁전에서 “족장”의 썩어가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마르케스는 거대한 언어의 격류에 물린 재갈을 풀고, 죽은 폭군이 남긴 편린들을 통해 그의 공적, 사적인 삶을 재건한다.

이 소설은 거의 구두점이 없다시피 한 문장들로 구성된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종종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몰리 블룸의 독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 역사적 사건과 허황한 상상의 날개 속으로 마구 길을 잃는 예측 불가능한 내러티브 덕분에 시간과 공간 감각은 완전히 붕괴되어버린다. 이 소설은 카리스마, 부패, 폭력, 그리고 정치권력의 도구에 대한 뛰어난 연구이다.

 

 

 - 네이버 지식사전 -

 

 

 

 

 

 

 

 

 

 

 

 

 

 

 

 

 

'볼리바르'라고 하면 흔히 남미의 독립운동 지도자, 지금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볼리비아를 탄생시킨, 중남미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의 동상이 남아 있을 정도로 남미인들에게는 존경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유일한 책이 헨드릭 반 룬의 『시몬 볼리바르』(서해문집, 2002)가 있다.   

 

지금까지도 간간이 라틴 붐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30여 년 전의 열기만큼에 비하면 삭막하기만 하다. 마르케스와 요사, 너무나도 잘 알려진 두 작가들의 작품만 많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틴 붐 문학을 유행시킨 이 두 작가의 전지구적 명성에 의해 정작 대중들에게 제대로 소개를 하지 못한 채 묻혀간 작가들도 있다. 2010년에 요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라틴 붐 문학 부흥의 신호탄이 되는가 싶었지만 '요사'라는 작가의 인지도만 높이는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라틴 붐 문학의 40년 동안의 쇠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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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2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밤탱이 된 눈이 그때 그 사건이었군.
하여간 남미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이나 웃겨.
난 오히려 그들이 싸웠다니까 쾌감이 느껴지더라.
아무래도 난 친구는 한번 사귀면 끝까지 오래 가야한다고 생각하나 봐.
하긴 남자는 싸우면서 친해진다며?
여자는 싸우면 멀어지고. 그렇다고 언제나 사요나라 할 수도 없는데.
암튼 인간관계란 쉽지가 않아. 특히 여자는. 나도 여자지만.ㅋ

사람들은 '백년간의 고독' 재밌다고 하던데 난 읽다 포기했어.
요사도 그닥 읽고 싶은 생각이 아직 없네. 아, 하나 읽긴 했구나.ㅋ

cyrus 2012-03-28 20:27   좋아요 0 | URL
남미 사람들은 다혈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쿨할 정도로 쾌활한 사람들일거
같아요. 그리고 누님 말씀처럼 남자들은 한 번 싸우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친해지게 되죠 ^^;;

저도 요사는 '염소의 축제'만 읽어봤어요, 제 생각이지만 남미 문화랑
우리나라 문화랑 많이 달라서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남미 문학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3-2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투리아스 <대통령 각하>는 워낙 유명한데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강풍>은 신구문화사에서 60년대에 번역된 뒤 통 소식이 없더군요.저는 이 희귀본을 운좋게 구했답니다.

cyrus 2012-03-28 20:28   좋아요 0 | URL
<강풍>은 처음 들어봅니다. 뭐 저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 번 눈에 불 켜고 찾아봐야겠습니다. ^^
 

 

 

 다음 날 아침, LED램프는 다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용 LED 램프를 구입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다. 밤에 책 읽을 때 이 녀석(?)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LED 램프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번은 램프를 충전하려고 컴퓨터 본체에 있는 USB 콘센트에 꽂아둔 채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 날, LED 램프는 다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스위치를 수차례 눌러 봤는데도 이상하게도 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충전했을 때는 모르고 있었는데 충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램프에 빨간 불이 나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원래 충전 상태 시에는 램프에 조그만 빨간 불빛이 나오게 되어 있다. 분명히 USB 콘센트에 꽂혀 있는데도 충전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빨간 불빛이 나오지 않았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껏 사용해봤자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뿐이었는데 갑자기 불이 켜지지 않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 문제에 대해서 A/S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주문조회를 통해서 이 문제의 램프의 사용자 후기들을 확인했다. 덕분에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 램프만 이런 고장이 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램프를 구입했던 딱 한 분의 고객도 나처럼 충전을 해도 불이 안 들어온다고 상품 후기를 남기셨다. 이 램프를 구입했던 다른 고객분들은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필 내가 구입한 램프가 이런 고장이 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모든 기계들은 왜, 내가 손을 대면 다 고장이 나는가?

 

이상하게도 나의 손을 거쳐간 기계들은 꼭 하나같이 '고장'이라는 운명을 맞이할 때가 많았다. 우리 집에 있는 컴퓨터만 해도 내가 사용하다가 고장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컴퓨터 본체만 해도 네 번 정도 교체했는데 모두 다 내가 사용하다가 고장나버리고 만 것이다.

 

최근에 컴퓨터 본체를 교체한 시기가 이제 막 1년 다 되어간다. 그런데 하필 최근에 컴퓨터가 이상해졌다. 아직 A/S 서비스를 부르지 않아서 '고장'이라고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지만 컴퓨터가 맛이 간 것 같다. 잘 쓰고 있다가 갑자기 안전모드에 걸리고 말았는데 원래대로라면 '표준모드'로 다시 설정하면 원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준모드로 설정해도 계속 안전모드 상태로만 뜰 뿐이었다. 컴퓨터에 무지해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Window 오류 상태'로 인해서 윈도우가 원래 상태로 되돌려지지 않았다. 항상 컴퓨터를 켜게 되면 검은 바탕화면에 흰 글자로 윈도우에 오류가 있다는 식으로 모니터에 뜬다. (지금 우리 집 컴퓨터 상태를 사진으로 촬영해서 올리고 싶지만 지금 학교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어서 올리지 못했다)

 

왜 하나같이 나의 손을 거쳐간 기계들은 고장이 나는걸까?  이런 일이 겪게 되면 무척 난감하다. 한 번씩 컴퓨터 또는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이 고장이 나게 되면 그것을 일으키게 한 주범으로 항상 나를 지목한다. 그동안 내가 고장낸 기계가 MP3, 전자 백과사전도 있다. 이렇다보니 그 전에 내가 사용하다가 고장낸 기계들이 있었기에 평소에 잘 쓰고 있다가 갑자기 작동에 이상이 생기면 그것이 왜 작동이 안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기계들을 오작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해프게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잘 사용하고 있는 기계가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이 안 되거나 고장이 나는 경우가 살면서 꼭 겪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과거들을 쭉 되돌아보면 이런 경험이 단순한 우연만은 보기에는 빈번할 정도로 많았다.

 

 

 

 

 군 복무 시절, 정비의 추억  

 

예전에 군 복무를 포병연대에서 했다. 쉽게 말하면 포를 쏘는 군인인 셈이다. 군사 무기에 대한 이야기는 기밀이라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박격포라고 보면 좋겠다. 그 박격포는 쇳덩어리고 이루어져 있는만큼 무게가 꽤 나갔을뿐더러 항상 여러 명의 힘이 있어야 포를 조립하고 사격할 수 있는 100% 수동식, 말 그대로 구식 무기였다. 그런데 얕궂게도 항상 내가 다루던 박격포들은 하나같이 '작동 불가' 또는 '고장' 판정을 많이 받았다.

 

군대에서는 정기적으로 무기들을 검열하는 기간이 있는데 꼭 그 때만 되면 박격포에 히나씩 결함이 발견하곤 했었다. 검열 시에 박격포에 결함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이는 병사들의 소홀한 관리에 의한 문제로 보기 때문에 검열 기간이 다가오게 되면 병사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을 지는 상관까지도 예민해지게 된다. 검열 기간 몇 주전부터 하루 일과의 반을 박격포의 부품들을 정비해야 한다. 어찌 보면 부품들을 정비한다는 게 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군대 가본 남자들은 알 것이다. 부품 정비도 '노가다'인 것이다.

 

하루에 부품 정비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군복 그리고 양 손에 기름 떼가 묻혀지는 건 다반사이고 부품에 묻은 녹을 지우기 위해서는 못 쓰는 군용 내복, 칫솔 그리고 빼빠를 가지고 무한반복 문질러야 한다. (아, 참!  여기서 '빼빠'사포의 군대식 용어다. 사실 '빼빠'는 사포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이외에도 군대 내에서 사용되는 일명 '군대 용어'들 중에는 일본말을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부품들의 녹은 대충 문질러서 없어지지 않는다. 그 부품의 표면이 광이 날 정도로 계속 시도 때도 없이 기름칠 해가면서 문질러야 한다. 그래서 이등병 시절에는 하루종일 녹 지우느라 고생한 적이 많았다. 녹을 지우고 나면 항상 고참들에게 확인을 해야했는데 녹에 의한 조그만 까만 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워야했다. 말 그래도 '광이 날 정도'로 녹을 지워야하는 것이다.

 

특히 제일 힘든 것은 포구를 정비할 때이다. 포구는 포가 쏠 때 지나가는 둥그스름한 원기둥 형태의 관이다. 포를 쏘게 되면 포구 안에는 포를 쏠 때 생기게 되는 그을림과 재가 묻게 되는데 그것을 닦아내지 못하면 포탄이 제대로 발사되지 못한다. 그래서 포 사격 훈련이 끝나면 무조건 포구를 청소를 해야했다. 청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반 사람의 키만한 크기의 특수한 솔이 있는데 두 세명이 달라붙어 함께 포구 안을 문지르면 된다. 두 세 명이 함께 문지른다고 해서 이 또한 쉬운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근력과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포구가 워낙 작기 때문에 생각보다 잘 쉽게 문질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포구를 계속 문지르다보면 어느 새 양손에는 물집(!)이 잡힐 때가 많았다. 그래서 포구 정비 또한 고참들 사이에서는 사랑하는(?) 후임병들을 위한 일종의 가혹 행위가 되기도 했다.

 

 

너무 오랜만에 추억에 빠지다보니 글이 옆길로 빠지고 말았는데,,,

 

어쨌든 며칠 간 고생하면서 나름 꼼꼼하게 정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열 날이 되면 예상치 못한 결함이 발견되기 마련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세 곳 넘는다면 그것을 관리한 병사나 상관이나 무척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 된다. 특히 하나의 분대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관리하고 이끌어나가는 분대장들은 검열 날이 되면 욕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했다. 그로 인한 분대장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신 밑에 있는 분대원들에게 향하는 '갈굼'의 화살로 변해서 날아온다.

 

군 복무 시절 때 관리했던 박격포만 해도 10대 정도는 넘었을텐데 정말 하나같이 제대로 성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 사용했던 박격포가 수십 년 전에 제작되어질 정도로 노쇠화된 것도 있었지만 평소 훈련 때에는 잘 되다가 꼭 중요한 순간에서는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대가 많은 돈 들여가면서 새 박격포를 구입했는데 이것 또한 얼마 안 가 작동 불능이 된 경우도 있었다. 무기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게 되면 다시 원 상태로 작동될 수 있도록 세밀한 정비를 해줘야 한다. 군 복무 시절 동안 결함 많은 박격포만 다루다보니 당연히 정비를 하는데만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사용하고 있는 기계들이 한번씩 문제가 일으키면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똑같다. 결국에는 물건이 고장나면 그 물건뿐만 아니라 주인도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들을 고장나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

 

 

 

 

 

 

 

 

 

 

 

 

 

 

 

 

 

 

자주 기계를 오작동을 일으키게 하고 고장나게 만든 탓에 내 동생은 나를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비아냥거리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무조건 닿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게 된다는 '미다스의 손'이 있듯이 나는 모든 기계들을 고장을 일으키게 하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손 대는 물건마다 족족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에 미다스는 음식마저 직접 먹을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나는 이상한 징크스 이후로는 기계를 다루는 것에 둔감해졌다. 그래서 항상 기계를 처음 사용하게 되면 배우는 속도가 남들보다 더딘 편이다. 이렇다보니 정보 기술에 그닥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컴퓨터 같은 경우에는 고장이 발생하면 먼저 내 스스로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역시 천성적인 기계치라서 그런지 고장의 악화를 더 야기시킬 뿐 제대로 고쳐본 적이 없다. 여자들은 보일러와 같은 기계들을 잘 다루고, 잘 고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데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미래의 신부에게 엄청 욕 먹을 것 같다.  "왜, 이거 하나 제대로 못 고치냐" 고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남편을 위해서하면 남편의 미숙함에 답답해보이더라도 안 하는게 낫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번거롭고 비용이 들겠지만 얼른 A/S 서비스를 불러야겠다. 결국 고장난 기계를 고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A/S 서비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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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03-2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기계치예요. 남들보다 매뉴얼 숙지도 오래 걸리고. 대신 좀 천천히 자세히 알아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또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컴퓨터 고장 나면 망연자실이에요. 가족 중에 맥가이버가 있어서 집에 한 번 오면 다 뚝딱 고쳐놓고 가십니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본체를 뜯어 청소부터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본체를 뜯는 게 너무 무서워요--;; 저 LED등 탐나는데 고장이 잘 날까요?

cyrus 2012-03-27 22:49   좋아요 0 | URL
저도 본체를 뜯는 걸 안 좋아해요. 고칠려고 뭣도 모르구 분해했다가는
오히려 더 안 좋게 될 수도 있거든요. 정말 컴퓨터 수리에 능통하다면
괜찮지만요 ^^;;

제가 산 제품이 고장난 게 운이 없어서 불량품을 만난 거 같아요.
지금까지 구매후기들 보니 저처럼 불이 갑자기 안 들어왔다고 적는
사람이 단 한 사람뿐이었거든요. 차마 이 제품을 사지 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고장만 안 나면 정말 괜찮은 램프에요 ^^

stella.K 2012-03-2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손이 있긴 하더라. 그런데 네가 그럴 줄 몰랐다.
여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고 남자들은 그것을 고치는.
뭐 대충 이런 그림 상상하잖아.
요즘 기계들은 웬만한 기계치가 만져도 고장이 잘 안 나던데.
비교적 처음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동생이 그랬거든.
아무거나 막 만져 보라고. 고장 안 난다고.
그런데 컴도 오래 쓰면 한번씩 에러가 나고 그러더라.
지금까지는 동생 불러다 고치곤 했는데 이 녀석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해. 그래서 기계 잘 다루는 사람은 꼭 있어야겠더라.ㅋ

cyrus 2012-03-27 22: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계를 잘 다루면 사는데 요긴한데요.
저는 군대 가면 좀 많이 배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배운게 그닥
많지 않았는거 같아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2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LED 램프 저도 잘 쓰고 있는데...
다만 충전시간이 길지 않아서 자주 충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불이 안 들어오진 않아요. 어쩌나....
책 좋아하시는 cyrus님에게 딱 좋은 물건인데 말예요.

cyrus 2012-03-27 22:52   좋아요 0 | URL
현맘님, 잘 쓰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그냥 운 없게
불량품을 구입한 걸로 받아들일려고 해요. 구매후기를 확인해보니
저처럼 그러한 고장을 겪은 사람이 별로 없는거 보니
다른 구입자들은 별 탈 없이 잘 쓰고 있는가봐요 ^^

BRINY 2012-03-2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모컨으로 방의 전등을 끌 수 있는 집으로 이사와서는, 저것이 필요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cyrus 2012-03-27 22:55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요즘 집에는 리모컨으로 방의 전등을 끌 수 있는게
있군요. 전등 켜고 끄는데 편하겠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2-03-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중대에서는 81밀리 박격포를 썼어요.Cyrus님은 몇 밀리짜리 박격포였나요?

cyrus 2012-03-29 23:36   좋아요 0 | URL
제가 근무했던 중대에는 4.2 박격포를 썼어요. 밀리로 치자면
107mm인걸로 기억합니다. (전역한 지 2년째 되어가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 하지만 일반적으로 4.2인치 박격포로 많이
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