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Art Classic 2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줄리오 카를로 아르간 지음, 이경아 옮김 / 예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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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지만, 자신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고흐의 소원은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그림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1888년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유일하게 고갱만이 고흐의 초대에 응답했다. 고갱이 고흐의 화가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봤을 거라고는 당시 동료 화가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때 당시 고갱은 고흐보다 평판이 좋은 화가였다. 고갱은 동료화가들과 함께 퐁타방 파(Ecole de Pont-Aven)’라는 화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브르타뉴에 있는 작은 마을 퐁타방에 고흐를 중심으로 한 청년화가들이 모여 기존에 유행했던 표현을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퐁타방 파는 인상주의와 점묘주의를 거부하고, 단순한 형태의 화면과 검은 윤곽선을 강조하는 종합주의를 강조했다. 이들의 그림은 상징주의와 유사한 관념적 경향이 보였다. 동생 테오를 통해서 프랑스의 예술 동향을 접했던 고흐가 고갱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흐는 고갱을 선망의 대상으로 느꼈고, 그의 조언을 참고할 생각이었다. 둘이 함께 지내는 동안, 고흐는 고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반 고흐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 (1888년)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천사와 싸우는 야곱)」 (1888년)

 

 

 

1888년에 고흐가 그린 아를의 원형 경기장의 관람객들은 고갱의 기법을 따른 작품이다. 이 그림이 제작되기 전에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구도가 상당히 흡사하다. 두 작품 다 화가의 시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고흐는 수많은 관람객을 세부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스케치를 하듯이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고흐는 고갱의 종합주의 기법을 빌렸을 뿐, 소재 선정에서는 고갱과 다른 노선을 보였다. 고갱은 설교 후의 환영에서 천사와 야곱이 싸우는 환영을 지켜보거나 기도하는 브르타뉴 여자들을 그렸지만, 고흐는 투우 경기가 진행되는 시끌벅적한 경기장 풍경을 그렸다. 이렇듯 두 사람의 관심은 서로 달랐다. 고갱은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중시했다. 모델의 중요성을 외면했다. 반면, 고흐는 고갱처럼 상상해서 그리는 것에 반대했다. 고흐가 생각하는 화가란 모델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고흐는 관념성에 치우친 그림을 그리는 종합주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고흐는 고갱의 표현에 불만을 드러냈고, 자존심이 상한 고갱은 노란 집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둘의 예술적 견해차로 인해 두 달 만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고갱을 향한 고흐의 열등감과 질두심도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고흐는 분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자해를 일으켰다.

 

아무리 극찬의 평가라고 해도 고흐를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치켜세운다면 고흐가 면도칼로 당장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생전에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에 분류되는 것을 싫어했다. 예경 Art Classic 두 번째 시리즈인 고흐는 고흐가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고흐와 친하게 지냈으며 상징주의 그림을 그렸던 에밀 베르나르도 고흐의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고갱에 비하면 에밀은 넓은 아량을 가진 좋은 화가였다. 에밀은 고흐가 잘되기 위해서 친분이 있던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라는 사람에게 고흐에 관한 기사를 청탁했다. 오리에는 고흐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리에는 상징주의 예술가들을 지지하는 비평가였다. 고흐를 독창성 있는 화가로 주목했으나 그를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오리에의 글 덕분에 고흐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흐의 그림이 예술계가 공인하는 전시회에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된 사실을 알게 되자, 오리에와 에밀에게 편지를 보내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흐는 인상주의의 영향력이 시들어가고, 동시에 상징주의와 점묘주의가 알려지기 직전인 과도기에 활동했어도 유행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고흐를 인상주의라고 분류하고 있으나 사실 고흐는 특정 화파에 속할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고흐의 그림은 추상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의 그림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하고 선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밭을 가는 농부, 해바라기, 정원, 카페, 집배원 룰랭 씨 가족 사 등 고흐는 모든 것들을 단순한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 평범함과 사실성의 각질을 벗긴 상태에 색채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붓으로 바른다. 인상주의자들처럼 찰나의 빛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았으며 상징주의자들처럼 현실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고흐는 눈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미적 포장을 과감히 거부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고흐의 눈은 그저 순수하기만 했다.

 

 

 

 

 

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의 고흐의 생애와 예술과 줄리오 카를로 아르간의 예술과 부조리는 고흐의 삶과 회화 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 글이다. 하지만 고흐의 잘린 귀를 오른쪽이라고 적은 오류는 옥에 티다. (49, 162, 222)

 

8쪽에 독일의 작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의 책이 짧게 언급된다. 192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본 제목은 반 고흐, 지상에 유배된 천사(책세상, 1990)이다.

 

알베르 오리에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 주장한 내용과 정반대였다. 오베르는 반 고흐가 (중략) 상징주의자라고 주장했다. (70) 오베르오리에의 오자다.

 

(고흐)는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가이자 헌옷 철학을 설파했던 토마스 칼라일의 열렬한 독자였다.” (80쪽) 킬라일1836년에 Sartor Resartus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국내에서는 의상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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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ung 2015-07-0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글을 보면 고흐는 고집이 정말 센 사람 같네요..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것 같고.. 고갱과는 많이 다른 듯 하네요

cyrus 2015-07-07 18: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라서 사람 관계가 서툴렀죠. 그런데 고갱도 고집이 셉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7-06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뿜어내는 진솔한 생명력은 어떤 사조로도 분류될 수 없어요. 고흐의 그림은 반드시 육안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이 익숙하다고 느꼈던 자신을 반성할 강렬함을 선사하니까요..

cyrus 2015-07-07 18:33   좋아요 0 | URL
2013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고흐 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직접 고흐의 그림을 보게 되니까 책에서 봤던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흐 특유의 굵직한 붓 터치를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후즈음 2015-07-0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그날 저는 좀 눈물이 났습니다. 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고흐의 그림이라니.(우리 나라에서 한 고흐전을 한번도 못 보고 파리가서 봤습니다. 그것도 작품 몇개 ㅠㅠ)
무엇보다 그가 참 쓸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 났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쓸쓸해 지더라구요..

cyrus 2015-07-07 18:35   좋아요 0 | URL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오후즈음님이 오르세에서 보신 그림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

오후즈음 2015-07-07 18:47   좋아요 0 | URL
유명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그 그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정말 놀라워 하며 봤구요. 사실은 그림이 엄청 작더라구요..그것도 놀랐네요 ㅋㅋ

cyrus 2015-07-07 18:49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그림을 보셨군요. 직접 보고 싶은 고흐 그림 중 하나입니다. ^^

[그장소] 2015-07-0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는 것이온데, 랄까...요? (저 그림을 그림이라고 왜 말을 못해!)상징..이란?! ^^ 어디를 봐서 상징주의 라고 느꼈던? 건지..명료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너무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7-07 18:37   좋아요 0 | URL
미술 평론가들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나름대로 좋게 포장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간혹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해석한 평론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기도 해요. ^^;;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5
토마스 다비트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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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 (1889년)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화가가 반 고흐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반 고흐가 자른 귀가 어느 쪽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해 소동 이후에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자. 그림 속 반 고흐는 붕대를 머리에 두른 상태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반 고흐의 오른쪽 귀가 잘려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잘려나간 귀는 왼쪽이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거울상은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을 깜빡 잊은 채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보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종종 잘린 귀의 위치를 착각한다.

 

이제 반 고흐의 잘린 귀가 어느 쪽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반 고흐를 소개한 책을 읽을 때 저자와 역자가 이 기본적인 사실을 제대로 아는지 꼼꼼히 확인해보자. 의외로 몇몇 책들이 반 고흐의 귀를 잘못 알려주고 있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 5권인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서양미술 사학자 노성두 씨가 옮겼다. 역자는 이주헌 씨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미술을 알리는 데 노력하는 서양미술 사학자이며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RHK(랜덤하우스코리아)’. 독자는 역자와 출판사 이름만 믿고, ‘내 손안의 미술관시리즈를 신뢰한다.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판형에, 200쪽 넘지 않는 분량은 청소년 독자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반 고흐라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싶거나 그림을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흐의 연보(188)에 반 고흐가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적혀 있다. 잘린 귀를 잘못 소개한 점은 독자에게 틀린 내용을 알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다비트는 미술사를 전공한 방송작가이다. 그래서 반 고흐의 생애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풀어썼다. 첫 장부터 반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자살하기 직전의 삶을 소개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이 다 그렇듯이 다비트의 책도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화가의 삶을 추적하고, 복원한다. 반 고흐라는 한 사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거주했던 지역의 배경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고흐의 그림들은 시대별로 크게 네덜란드 시절파리 시절아를 시절로 구분한다. 고흐는 한 지역에서 정착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다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시대에 유행하는 미술사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반 고흐가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어떤 대상을 선호했는지, 또 그 대상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그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반 고흐를 알기 위한 좋은 공부 방법이다.

 

차례

 

1.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화가

2. 아를의 다리
3. 아를과 프로방스
4. 고흐의 어린 시절
5. 아를에 도착한 고흐
6. 다리 위에서 단숨에 그림을 다섯 점이나 그린 고흐
7. 화랑 점원이 된 고흐
8. 기독교에 귀의한 고흐
9. 고흐의 노란 집
10. 농부 화가가 된 고흐
11. 파리에서 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흐
12. 정신병자가 된 고흐

 

그런데 다비트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연대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1장이 반 고흐가 자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2장과 3장은 갑자기 반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었던 시절을 소개한다. 4장에 어린 고흐가 등장한다. 아를 시절은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지방인 아를에 지내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그림들을 제작했던 최고의 시기. 원숙기에 해당하는 시절을 앞부분에 배치한 저자의 서술이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술사 전공자답지 않게 고흐의 창작 시기를 무시하면서 뒤죽박죽 소개했다. 9장은 1888년 반 고흐가 폴 고갱노란 집에서 함께 살았던 시절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다가 10장에서는 1883년 네덜란드에서 지낸 시절로 이야기가 엉뚱하게 과거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젊은 반 고흐는 농촌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반 고흐의 청년 시절을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소개한 저자의 서술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 정도면 고흐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자격 미달이다.

 

저자가 과연 반 고흐를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고흐의 편지를 인용해서 이를 근거로 화가의 미술 세계를 조명하는 방식은 좋지만, 일부 문장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들도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일반적으로 책과 미디어에서는 반 고흐를 영혼의 내면까지 그려낸 화가라고 소개한다. 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문구가 화가가 죽은 뒤 수십 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반 고흐는 죽고 나서야 미술평론가와 미디어의 후광에 힘입어 미치광이 화가에서 천재 화가’로 급부상했. 반 고흐가 특정 대상에 관한 느낌마저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실체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즉 대상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고 난 뒤에 그것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상의 실체를 무시한 채 온전히 화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은 추상화에 가깝다. 고흐는 추상화가로 볼 수 없다. 사실 반 고흐는 인간의 눈보다 감정을 더 중시하는 상징주의를 눈 여겨 봤을 뿐,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자신의 눈앞에 모델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반 고흐의 생각을 고갱은 부정적으로 봤다. 고갱은 반 고흐와는 반대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상반된 인식 때문에 두 사람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지 않았다. 눈과 머리와 몸이 느끼면 느끼는 대로 솔직한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붓을 움직였다. 고흐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다른 화가 같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겠지만, 고흐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식과 허상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이야말로 화가가 참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라고 굳게 믿었다. (107)

 

 

그런데 저자는 반 고흐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식과 허상으로 여기는 화가로 묘사했다. 반 고흐의 영혼이 붓에게 일러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문장이 멋있다기보다는 그저 우습기만 하다.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건지 아니면 역자 노성두 씨가 나름대로 멋스럽게 꾸며서 우리말로 옮긴 건지 번역본을 원서와 같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으나 고흐를 이렇게 과대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107쪽에 소개된 반 고흐의 모습은 분명 내가 아는 반 고흐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한 '고갱'을 소개했다.

 

빈센트 반 고흐 :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는 다행히 품절이다. 분량이 얇다고 이 책을 고르지 마시길. 딱히 영양가 있는 책은 아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이 책은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모으고 싶어도 이 책만큼은 돈 주면서 사고 싶지 않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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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흐의 귀
    from 새빨간 활 2015-07-07 11:28 
    고흐가 스스로 자른 귀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어느 날, 고흐는 광기에 휩싸인 채 칼로 귀를 도려낸다. 귀를 도려낸 것으로 보아 “ 환청 ” 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위 그림은 그가 귀를 도려내고 난 후에 그림 자화상‘이다.
 
 
AgalmA 2015-07-0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레를 흠모해 <씨뿌리는 사람> 등 여러 농촌 풍경을 뎃생하여 그린 것이나, 그의 유명한 모든 그림들(자화상, 정물, 풍경)은 다 뎃생에 기반한 그림들이죠. `영혼의 내면`, `상징주의` 당치 않습니다. 문학 평론 만큼이나 회화 평론도 너무 주관적/지위적 포장의 극대화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cyrus 2015-07-04 21:13   좋아요 0 | URL
고흐를 잘 아시네요. 고흐가 한때 밀레를 흠모했고,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

2015-07-04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7-04 21:16   좋아요 0 | URL
오자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다음부턴 ‘고흐’라고 써야겠어요. 저도 원래 안 좋은 책은 안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곰발님의 ‘주례사 서평’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악평을 써보고 싶었어요.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타당성 있게 설명해주는 서평이 많이 있어야 해요. ^^

페크pek0501 2015-07-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정보를 알려 주는 글입니다. 저는 시공사에서 나온 디스커버리 총서로 고흐의 책을 읽었는데 지금 책장을 찾아보니 눈에 띄지 않네요. 붕대를 감은 모습을 제대로 썼는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문고판 형의 작은 책인데, 책 찾기도 쉽지 않네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의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글도 잘 쓰는구나 했어요. 어떤 문장이 아주 좋았거든요.

cyrus 2015-07-04 21:22   좋아요 0 | URL
저도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나온 고흐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런지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는 고흐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고흐의 편지를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를 했어요. 사실 고흐는 편지를 쓸 때 자신이 읽은 책이나 성경의 문장을 인용을 많이 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5-07-04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비평이 마음에 드네요~ㅎㅎ
전 우연찮게 방금 고갱을 소재로 한 - 하지만 실제적인 차이는 꽤 있는-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고흐와 고갱을 잠깐 생각했었죠.
예술가들의 삶이란...항상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워요.

cyrus 2015-07-04 21:28   좋아요 0 | URL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한 책도 의외로 재미있어요. 그림에 관한 일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특히 예술가들의 연애 이야기는 위인전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에요. 고갱도 알고 보면 고흐만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보면, 어느 그림 보니 고흐는 오른손잡읻군요. 알기는 쉽잖아요. 팔레트를 쥔 손과 붓을 든 손을 보면 아니깐 말이죠. 그가 오른손잡이이므로 당연히 왼쪽 귀를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쪽 귀를 자를 수는 없거든요. 자해를 할 때 사람들은 평소 익숙한 손에 칼을 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모르 잘린 귀는 오른쪽 귀...

cyrus 2015-07-06 20:29   좋아요 0 | URL
고흐가 오른손잡이인 것 맞습니다만 마지막에 잘린 귀가 오른쪽이라는 말씀... 실수로 잘못 쓰신 것 아닙니까? ^^;;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7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그렇군요. 이거이거... 이상하게 댓글만 달면 오타가...
제가 댓글을 생각없이 빨리 써서 그렇습니다

cyrus 2015-07-07 18:38   좋아요 0 | URL
댓글을 쓰다 보면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알라딘 서재에서 고흐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잘린 귀를 잘못 쓴 적 있었는데요. ㅎㅎㅎ
 
반 고흐 : 빛을 담은 영혼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
안나 토르테롤로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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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 출판사에서 기획한 화가 시리즈는 총 세 개나 있다. <Taschen 베이직 아트>,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그리고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 Art Book 시리즈는 문고본보다 조금 더 큰 아담한 크기의 판형으로 되어 있다. 분량은 얇아도 내용은 제법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덜 알려진 화가의 그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대표작 소개에만 치중하는 미술책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마치 도슨트가 직접 설명하듯이 그림에 있는 표현 기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 화가가 활동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종반부에 이르면 화가가 후대에 끼친 미술사적 영향을 설명한다.

 

활자와 그림 크기가 작아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에 불만이 있겠지만, 고흐를 공부하는 독자라면 <마로니에북스 Art Book> 시리즈를 그냥 건너뛰면 안 된다. 미술책이 화가를 독자에게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독서도 나름대로 공부의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화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두 권의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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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04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리뷰로는 반고흐를 공부하기 부족한 책에 대해 바로 다음 리뷰로는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니 정말 좋아요 ㅎㅎ

cyrus 2015-07-04 21:30   좋아요 0 | URL
당분간은 고흐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고야, 영혼의 거울 - 개정판 다빈치 art 6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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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부터 스페인의 화가 고야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에 고야의 삶과 미술 세계를 소개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5년 전에 읽었던 《고야, 영혼의 거울》도 오랜만에 펴봤다. 《고야, 영혼의 거울》은 2001년에 출간되었고 10년 뒤에 개정판이 나왔다. 재미있게도 《고야, 영혼의 거울》 구판의 서평을 마지막으로 쓴 사람은 나였다. 서평을 읽어 봤다. 역시 몇 년 전에 쓴 글을 읽으면 마치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벌거벗은 채 찍었던 돌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고작 몇 줄을 읽었을 뿐인데 부끄러움이 벌써 내 얼굴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1799년)

 

《고야, 영혼의 거울》 개정판을 다 읽고 난 다음에 5년 전에 썼던 서평을 읽어봤다. 서평 내용이 부실했다. 책, 아니 고야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고, 중구난방 고야의 그림 달랑 몇 점 소개하는 데 그쳤다. 그림을 제멋대로 해석한 채 고야의 미술 세계를 함부로 단정하는 오류도 저질렀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1799년)가 수록된 판화집 「변덕」(Los Caprichos)은 미신과 흑마술에 사로잡혀 이성이 압도당한 인간상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사회의 부조리가 만나서 생긴 사회의 불순물은 우스꽝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한 인간 혹은 추악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관람객 앞에 등장한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는 이성을 지배하는 몽상과 환상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도 환상과 이성이 만나면 새로운 예술이 등장할 것임을 예찬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데 나는 그림 제목만 보고 몽상에 마비된 이성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썼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카를로스 4세 가족」(1800년)

 

 

지금까지 나는 《고야, 영혼의 거울》 한 권만 읽고 나서 고야를 제대로 안다고 착각했다. 고야를 친 프랑스파라고 단정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스페인 왕정에 개입하면서 유럽 패권을 향한 탐욕의 손을 뻗치려고 했을 때, 고야는 수석 궁정화가로서 왕족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계에 몸을 담은 귀족들까지도 깊이 친분을 맺고 있던 터라 고야의 주변에는 구체제를 옹호하는 기성세력과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에 매료되어 구체제에 불만을 품은 자유주의 세력이 있었다. 카를로스 4세가 다스리던 스페인도 프랑스에서 휘몰아치는 혁명의 바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 전역에서 울리는 변화의 진동에 무감했으며 통치 능력이 부족했던 카를로스 4세는 스페인의 재상이자 왕비의 내연남인 마누엘 데 고도이에게 통치를 위임한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프랑스의 개입 앞에 힘을 제대로 못 쓰는 식물 국가가 전락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스페인 왕임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자유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지배계층의 권력욕에 신물이 나던 고야는 궁정화가 임무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왕실의 그림 주문을 단번에 거절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인 스페인 왕 조제프는 구체제 타파에 목표를 두는 노선을 추구했으니 고야는 반신반의 그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스페인을 쥐락펴락하는 프랑스를 외면했고, 나폴레옹은 자주독립을 갈망하는 스페인 민중 앞에 총칼을 들이댔다. 이 시기가 고야에게는 내적으로 무척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시기였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808년 5월 3일」(1814년) 

 

고야는 궁정 사람들을 위해서 화려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스페인 민중을 잔인하게 억압하는 프랑스군과 이를 묵인하는 친프랑스파 세력을 경멸하여 동판화 연작 「전쟁의 참화」까지 제작했다. 수석 궁정화가 고야의 업적만 본다면 그를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예술 창작욕을 채우는 기회주의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전쟁의 참화」나 「1808년 5월 3일」(1814년) 같은 전쟁의 광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본다면 붓을 무기로 삼은 고야의 저항 의식을 확인하게 된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야를 무조건 친프랑스파 혹은 기회주의자로 보는 것은 편협한 평가다. 스페인의 최고 화가로 군림했던 고야도 재정적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부채에 시달리던 고야는 수입을 얻기 위해 왕 앞에서 손에 붓을 쥐어야 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마르틴 사파테르」(1797년)

 

 

고야와 마르틴 사파테르의 우정은 고흐와 테오 형제와 함께 서양미술사에서 기억해야 할 브로맨스(bromance)다. 고야가 사파테르에게 보년 편지글은 고야 한 사람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고야와 사파테르의 서신 왕래는 사파테르가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고야의 편지에는 그림 작업의 진전 상황이나 가족 안부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귀족들과 함께했던 사냥 활동까지 사소한 일상들을 일일이 보고하듯이 적혀 있다. 고야는 사파테르를 아내나 연인을 지칭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썼는데, 사파테르와의 각별한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주고 있다. 고야가 얼마나 사파테르를 좋아하느냐면, 자신의 아내가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게 되자 사파테르를 일찍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감정을 드러낼 정도다. 고야의 아내는 고야가 이름을 날리기 전에 수석 궁정화가로 인정받았던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여동생이다. 성공에 대한 집념이 뚜렷했던 고야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바예우와 친분을 맺었지만, 바예우가 자신보다 조금 더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바예우 때문에 자신의 앞길이 막힐 뻔한 일에 자존심 상한 감정을 사파테르에게 보내는 편지에게 드러내기도 했다. 고야 입장에서는 처남에 대한 불만을 아내에게 쉽게 터놓을 수 없었다. 바예우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아내와의 사랑보다는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파테르의 우정을 더 중요시하게 여긴 듯하다. 사파테르는 성공과 명예를 얻기 위해 이미 전쟁 같은 삶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고야를 제대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어쩌면 고야는 하루하루 내면에서 일던 감정의 폭풍우를 잠재우고 싶은 마음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휴식같은 친구'를 더 가까이 두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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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2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렇게 생각의 뿌리가 다양하게 뻗으시는지! 서양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많이 배워가면서도 참 부럽습니다. 방대한 호기심 닮고 싶네요 ㅋㅂㅋ,,

cyrus 2015-06-23 19:39   좋아요 0 | URL
저는 <마의 산>을 완독하시는 해피북님의 인내심을 닮고 싶습니다. ^^

에이바 2015-06-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야의 정치관은 꽤 복잡하지요. 지난 리뷰를 돌아보는 모습이 멋집니다. 고야와 사파테르.. 소울메이트인가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cyrus님의 소개로만 보면 아내가 불쌍해요. 이길 수 없는 우정이여! ㅠㅠ

수이 2015-06-23 10:09   좋아요 0 | URL
우정에는 이길 수 없죠_ 사랑은_ 근본적으로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어도 우정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봅니다.

에이바 2015-06-23 10:20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어쩌면 사랑의 궁극적 모습은 우정일지 모르겠어요. 우정도 사랑을 기반한 것이고.. 제가 아내가 불쌍하다고 한건 (그 시대 보편적이었겠지만) 출세를 위한 혼인-결합이었고.. 처남에 대한 고야에 열등감이 아내에 투사되었다는 부분 때문에요. 거장의 솔직함에서 인간적 면모가 느껴지고요.

수이 2015-06-23 10:21   좋아요 1 | URL
응_ 저도 에이바님의 생각에 절대 공감_ :) 변하지 않는 우정_ 사랑은 인간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테마 같아요.

cyrus 2015-06-23 19:47   좋아요 0 | URL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동성애 관계처럼 보이는데, 아쉽게도 사파테르의 답장을 남아 있지 않아서 이들의 친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야의 아내에 관한 문헌도 없더군요. 아마도 고야는 아내를 애 낳는 여자 정도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라스콜린 2015-06-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 ^

cyrus 2015-06-23 19:4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15-06-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계신 cyrus님 서재에 오면, 저도 덩달아 여러 분야에 대해 귀동냥하게 되네요. 오늘은 고야 사진도 보고, 오랜만에 <1808년 5월 3일>도 보게 되구요.
잘 읽고 갑니다.~~

제 방에는 아이유가, cyrus님 방에는 고야가^^

cyrus 2015-06-26 14: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술이 되는 순간 - 메트로폴리탄 관장의 숨은 미술 기행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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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정말 성가신 단어다. 이 단어에 정의를 내리기가 우선 까다롭다. 그렇다 보니 의미가 다양하고, 연상되는 관념도 뒤숭숭하다. 미술을 아름다운 것, 세련된 것, 멋진 것 등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날 미술은 더 이상 현실이나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화가는 자신의 감정과 사고, 의지를 표현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새롭고도 다채로운 회화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아니 난폭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싶다. 어떻든 유추하기 힘든 오늘날의 미술이 뭔가 충격과 부담, 또는 당혹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요즘 마크 로스코 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회화적 장치나 단서가 없고 거대한 캔버스에 색채만 존재하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관람객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거나 감성의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난해한 그림 앞에 당혹스러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로스코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지를 잘 모른다. 만약에 사람들이 나에게 “로스코의 그림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림을 보기 전에 로스코에 관한 책을 읽어보세요. 로스코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전시회 그림을 봤는데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전시용 도록을 사서 읽어보세요. 미술을 이해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되묻는다. “농담 하시는 거죠?” 내 대답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로스코 같은 현대미술은 그냥 눈으로 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로스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가격이 매겨진 로스코의 그림이 어린아이가 물감으로 장난치는 수준으로 본다. 그림을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머리로 먼저 이해해야 그림을 보는 눈이 떠지고, 화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래서 미술을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일상도 무겁고 힘든데 난해한 그림을 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을 무려 31년 동안 지낸 필립 드 몬테벨로는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실망감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와 함께한 대화에서 필립은 미술과 관람객이 더 가까이 좁혀질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한다. 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틴은 자신과 필립을 가리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은 미술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자신들을 미술의 아마추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amateur)’는 비전문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는데 ‘프로’의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하수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마추어를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필립과 마틴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30년 넘게 미술관 관장에서 짬밥(연륜)을 먹은 필립이라면 미술 초보자도 어려운 미술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립도 미술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술을 이해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인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작품이 무덤이 될지 보물이 될지는 관람객에게 달려 있다.” 결국, 손철주의 책 제목처럼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출발은 곧 그림에 대한 안목은 넓어지고 또한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유익한 태도이다. 어느 시대의 미술이든 시대의 맥락, 작품과 화가가 마주한 현실에서 그림이 탄생하기 때문에 그림을 보기 전에 전반 지식을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이다.

 

멋진 예술 작품을 보고 잠시 정신 착란에 빠지는 현상을 일컫는 ‘스탕달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탕달은 소설 못지않게 미술에도 크게 경도됐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원본이 무한 복제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스탕달처럼 예술 작품을 보면서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그림 앞에서 무덤덤할 뿐이다. 스탕달이 살았던 시대의 미술관은 예술적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하루에 많으면 수백 명의 인파가 드나드는 산만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동일한 이미지의 복제로 원본의 아우라가 희미해져 버렸다. 과연 이 시대에 미술의 효력도 사라진 것일까. 필립은 아우라를 사랑했던 발터 벤야민의 걱정에 반기를 든다. 복제기술이 사람들을 미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훌륭한 복제기술은 원본의 세부묘사도 복원한다. 그러므로 미술관에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그림 원본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복제품을 볼 수 있다. 요즘 전 세계의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들을 모아놓은 인터넷 웹사이트가 있다. 웹사이트에 있는 그림 사진을 확대하여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림의 세부표현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원본의 힘과 그 고유한 가치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법. ‘모나리자’ 원본을 보기 위해 오늘도 전 세계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 박물관은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원본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갈망으로 세워진 아우라의 거대한 집합소다. 유럽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 중 상당수는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것들이다.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문화재는 출토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세계인의 문화유산이라는 논리를 펼치지만, 약탈 문화재가 어떻게 그들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이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약탈문화재를 반환하지 않을까? 문화대국이라서? 천만의 말씀이다.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다. 이것저것 다 돌려주면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빌 것이고, 그에 따라 주요한 수입원인 관람료 수익이 팍 줄어든다.

 

필립은 유럽의 미술관이 식민지의 노획물을 보유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미술관이 식민지의 문화재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구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미화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캄보디아 문화재 사례를 든다. 캄보디아 문화재는 약탈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본국의 문화 재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앙코르와트는 대단한 문화유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리를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가 약탈당한 자국 문화재가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유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반환을 요구하는 태도를 필립은 모순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필립은 문화재의 가치를 입증하고 소중하게 관리를 하는 박물관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가 국가의 유산으로 인식되는 것이 서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필립의 입장을 동의할 수 없다.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국가의 입장을 서구적 관점으로 덧씌우는 필립의 논리는 문화재 반환의 정당성을 흐려 놓을 수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필립의 태도는 기 소르망의 어이없는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기 소르망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약탈이 아니라 서구가 문화재를 보호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필립의 입장이 모순적이다. 그는 파리에 있었던 산 마르코 대성당의 말 조각상이 베니스에 반환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본다. 또 산 마르코 대성당의 말 조각상은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 있고, 베니스 사람들의 자랑거리이므로 원래 자리인 베니스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 조각상이 파리에 15년 동안 있었던 시간이 산 마르코 대성당 출입구 위에서 보낸 800년이라는 시간과 비교하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필립은 반환 문화재에 부합되는 조건으로 ‘시간’을 강조한다. 그의 입장대로라면 대영 미술관에 전시된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게 돌려줘야 한다. 엘긴 마블스는 영국인 엘긴 경이 약탈해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이다. 2천5백 년 전에 제작된 그리스 고전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국 정부가 3만5000파운드에 사들여 대영 박물관에 전시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리스 정부는 엘긴 마블스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당시 정부 승인 하에 합법적으로 반출했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거부했다. 이렇게 시작된 양국 간 분쟁은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이다.

 

2013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0세기 때 만들어진 캄보디아의 석상을 본국에 되돌려 준 적이 있다. 예술품이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미술관에 전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많은 약탈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에서야 어정쩡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터다. 미술을 사랑하는 미술관 관장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미적지근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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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5-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탈인가 구제인가
문화유산의 보호자라고 봐야하나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도서를 우리나라에 대여형식으로 돌려받은 걸로 알고있는데
반환이면 반환이지 몇년단위로 갱신 대여라는게 완전 웃깁니다.


cyrus 2015-05-15 21:24   좋아요 0 | URL
그들의 문화재 보호 역할을 존중하지만, 약탈의 역사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입장을 보면 어이가 없죠...

transient-guest 2015-05-15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시작은 약탈입니다만, 그간 보존해온 공로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습니다. 계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인데요,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엄청난 유물/유적들이 파괴되었거나 팔려나갔잖아요. 고대 바빌론/앗시리아 유적이 망가진 것을 tv에서 보면서 엄청 맘이 아프고 속이 상했습니다.

cyrus 2015-05-15 21: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조국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무뢰배들 때문에 제3국이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